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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2-20 20:58:18

박찬길 검사 살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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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경찰 관련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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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 박찬길 검사 살해 사건
<colbgcolor=#bc002d> 발생일 1948년 10월 24일
발생 위치 전라남도 순천시 매곡동 북국민학교 운동장
피해자 박찬길, 방기환 등

1. 개요2. 상세3. 관련 보도 및 자료

[clearfix]

1. 개요

1948년에 민간인 학살을 제지하던 대한민국 현직 검사가 대한민국 경찰에 의해 누명을 쓰고 총살당한 사건.

2. 상세

사건 당시 광주지검 순천지청 차석검사로 재직 중이던 박찬길 (朴贊吉, 1910~1948) 검사[1]는 경찰에게 좌익 혐의를 받고 억울하게 체포된 사람들을 증거 불충분 등의 이유로 무혐의 처리나 선처를 하고, 과도하게 권한을 남용하는 경찰관을 처벌하는 등의 활동을 했고, 경찰은 이에 많은 불만을 갖고 있었다. 이 불만은 어느 경찰관이 무고한 민간인을 사살한 것[2]을 박 검사가 살인죄로 기소하여 징역 10년형을 구형하자, 상부에 박 검사를 ‘적구(赤狗)검사’라고 보고하며 극대화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여수·순천 10.19 사건이 벌어지자, 1948년 10월 23일에 박찬길 검사는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구타당했다. 다음날인 24일 아침, 박 검사는 ‘반란군에 가담해 인민재판소 판사를 했다’는 누명을 쓰고 재판조차 없이 순천 매곡동 북국민학교 운동장에서 광주지법 순천지원 서기 방기환(方基煥, 1918~1948)를 비롯한 20명의 민간인과 함께 총살당했다. 또한, 배갑수 제8관구경찰청 수사과 물자주임은 박동수 대한청년단 상무를 사주하여 박 검사의 부친인 박인서를 때려죽이게 하고, ‘박인서가 경찰 아무개를 반란군에게 밀고해 처형당하게 했다’는 내용의 문서를 작성하여 사건을 조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총살 집행의 근거는 ‘박 검사가 반란군이 순천을 장악하고 있을 때 인민재판에 관여하였다’는 순천읍장의 허위증언 정도였으며, 정작 계엄사령부에는 총살과 관련한 어떠한 연락도 취하지 않았다.

박 검사의 유족이 진상 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법무부에 탄원하여 조사한 결과, 1년이 지난 1949년 2월~6월까지 법무부는 내사를 통해 박 검사를 비롯한 21명의 시민이 재판조차 없이 처형된 것을 확인하고 ‘법치를 무너뜨린 중대한 사건’으로 규정하였다. 이후 동년 8월에 군·경·검 합동수사본부가 ‘최천 제8관구경찰청 부청장[3] 등이 허위 사실을 토대로 총살을 지시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해당 사건을 접한 당시 법무부장관이던 권승렬 장관이 당시 내무부장관이던 윤치영 장관에게 관계자 처벌을 요구하자, 제8관구경찰청 경찰들은 ‘최 총경을 처벌하면 여순사건으로 숨진 경찰을 모욕하고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논리로 총기 및 각종 장비를 경찰청 뒷마당에 방치한 채 일체의 훈련과 업무를 거부하는 등 명백한 상급자인 내무부장관에게 위계질서조차 무시한 채 조직적으로 반발했다. 이에 이승만 대통령이 ‘불문에 부치라’는 지시를 내리고, 국회에서도 조국현 의원 등이 ‘동료나 친척을 잃고 흥분한 상태에서 옥석을 가릴 여유가 없었다'는 발언을 하며 옹호하자, 내무부는 최천 총경을 처벌조차 하지 않고 경상북도경찰청 경무과장으로 전보 조처하는 선에서 사건을 무마해 버린다.

최천 제8관구경찰청 부청장은 이후 논란이 되자 국군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담으로, 박 검사의 누명을 벗기는 데 큰 기여를 하며 ‘의혈검사’라는 별명까지 얻은 기세훈 당시 광주지검 차장검사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건 당시 5여단장이던 김백일 대령이 경찰의 처형 집행을 만류했으며, 이 외에도 황두연 의원, 미국인 선교사 구례인 (John C. Crane, 1888~1964) 등의 탄원에도 불구하고 총살은 강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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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관련 보도 및 자료



[1] 황해도 출신으로, 숭의전문학교일본 중앙대학 법학과를 졸업하여, 1945년 11월에 검사로 임용되어, 서울지검에서 시보생활을 하다가 1947년 11월 7일에 광주지검 순천지청 차석 검사로 발령되었다.[2] 산에서 무허가 땔깜 채취를 하던 남성이 경찰을 보고 단속이 두려워 도망가자 좌익 활동가로 오인하고, 이를 추적하며 총격을 가해 다리를 맞히고, 이미 남성이 제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확인사살까지 한 사건이다. 설령 남성이 반란군 등 좌익 활동가였다고 하더라도, 제네바 협약 제1추가의정서 41조 위반으로, 엄연한 전쟁범죄에 해당하는 것이다.[3] 사건 당시 총경 계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