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Twenty rules for writing detective stories (직역하면 『탐정 소설 작법 20법칙』) 영어 원문미국의 소설가 반 다인이 1928년 《아메리칸 매거진》에 발표한 법칙으로, 그는 추리 소설은 작가와 독자 간의 공정한 지적 게임이므로 페어플레이를 유지하기 위해 이 법칙들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2. 법칙 일람
원문은 아래 요약글보다 훨씬 길고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수수께끼를 해결할 때 독자에게는 작중의 탐정과 동등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모든 단서는 명확하게 기술되어야 한다.
- 작중의 범인이 탐정에 대해서 적당히 행하는 속임수나 술책이 아니고 독자를 속이는 기술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 이야기 중에 연애적인 흥미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 요컨대 범인을 재판정에 내보내려는 것이지 사랑에 고민하는 남녀를 예식장에 내보내려는 것이 아니다.[1]
- 탐정 자신 또는 수사 당국의 직원 중 한 사람이 범인이라고 결말을 지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구리로 만든 돈을 반짝반짝 빛나게 닦아서 금화라고 속이는 것과 같다. 명백한 사기 행위이다.[2]
- 범인은 이론적 추리를 통해서 판정되어야 한다. 우연, 암호, 이유 없는 자백 등에 의한 결정은 안 된다. 이렇게 하는 것은 독자가 고생하여 범인을 찾게 하였다가 이것이 잘 안되니까 실은 내 손안에 모든 단서가 있었다고 독자를 놀려주는 것과 같다. 이것은 수수께끼가 아니라 장난이다.
- 반드시 탐정이 등장해야 한다. 탐정이라고 하는 한 탐정을 해야 한다. 탐정한다 함은 모든 단서를 수합하고 이것에 의해 범인을 추적, 결정짓는 것이다. 이것이 안 된다면 해답편을 따로 보는 것이나 다름없다.
- 추리 소설에는 반드시 시체가 있어야 한다.[3] 살인이 아닌 범죄를 다루는 것은 좋지 않다. 살인보다 가벼운 죄를 가지고 수백 페이지 책을 읽게 할 수는 없다. 독자의 노고는 보상되어야 한다.
- 범죄의 수수께끼는 엄격한 자연의 법칙에 따라 풀려야 한다. 범죄를 해결하기 위하여 점을 친다든가 심령술, 최면술 등을 사용하는 것은 금물이다. 독자는 이성적 추리력이 있는 탐정과 머리 싸움을 해야 승산이 있는 것이지 영계와 경쟁을 한다면 처음부터 승산이 없다.
- 탐정 소설 중의 탐정, 즉 추리의 주역은 한 사람이어야 한다. 탐정이 여럿이라면 독자의 흥미가 분산되고 논리의 체계가 흐트러진다.[4]
- 범인은 소설 중에서 어느 정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인물이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독자가 관심을 가지게 해야지 전혀 관심밖에 인물을 범인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 작가는 심부름이나 하는 하인을 범인으로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논점이 약해지고 사건이 쉬워진다. 범인은 좀처럼 혐의를 두기 어려울 만큼 상당한 지위에 있는 인물인 것이 좋다.
- 범죄가 있든 없든 범인은 한 사람이어야 한다. 원조자 기타의 공범자가 있는 것은 무방하나 범행의 모든 책임을 지는 자는 한 사람이라서 독자의 의심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도록 해야 한다.
- 비밀 결사, 카모라당, 마피아당 등을 탐정 소설에 등장시켜서는 안 된다. 상당히 절묘한 범행이라고 감탄하고 있는데 배후에 그토록 절묘한 조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정도는 있음직한 것이 되어버려서 흥미가 반으로 줄어든다. 탐정 소설에서의 범인에게는 십중팔구 도주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인데 배후에 그런 조직이 있다면 도망치는 것은 당연하고 쉬운 것이 되어버린다. 웬만큼 자존심이 있는 범인이라면 그런 배후 조직의 도움이 없이 일대일로 탐정과 대결하고 싶을 것이다.
- 살인 방법과 이에 대한 수사 방법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이어야 한다. 공상적이고 비과학적인 방법은 탐정 소설에서의 살인일 수 없다. 만약에 환상적인 세계에서의 범행이고 수사가 된다면 이는 모험 소설이 되어버린다.
- 사건의 진상은 통찰력 있는 독자라면 의심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것이 되어야 한다. 환언하면 사건의 종말을 알고 다음에 다시 읽어본다면 모든 단서는 분명히 제시되었고 모든 증거는 범인을 향하고 있음을 알게 되어 충분한 납득이 가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탐정과 같은 정도의 지능을 가진 독자라면 마지막 장까지 가지 않더라도 수수께끼를 혼자서 풀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실제로 혼자서 풀어보는 독자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 추리 소설에는 장황한 서술적 묘사, 지엽적인 일에 관한 문학적인 설명, 정교한 성격 분석, 분위기에 대한 도취 등을 해서는 안 된다. 이런 것들은 사건의 기록과 그 추리를 위하여 중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줄거리의 진행을 산만하게 하고 관심을 딴 곳으로 유도해 버리는 것이 된다. 탐정 소설의 주목적은 사건의 설명, 분석, 해결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야기의 진실성을 묘사하는 데 필요한 정도의 자연 묘사, 성격 묘사가 있는 것으로 족하다.
- 탐정 소설에서는 직업적 범죄자가 범인인 것은 좋지 않다. 강도나 절도에 의한 범죄는 경찰의 관할이지 탐정가나 재치 있는 아마추어 탐정이 다룰 범죄는 아니다. 교회의 중진이라든가, 자선가로 소문난 귀부인이 저지르는 범죄 같은 것이라야 흥미가 있다.
- 사고 또는 자살이었다고 결말을 지어서는 안 된다. 애써서 추리를 해왔는데 알고 보니 단순 사고로 죽은 것에 불과하다면 이것은 독자를 놀리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 탐정 소설에서 살인의 동기는 반드시 개인적인 것이여야만 한다. 국제적인 음모나 정적 제거 같은 정치적인 동기 하에서 이루어지는 살인은 소설의 장르가 스파이 또는 비밀 요원에 속한다. 탐정 소설에서는 오직 개인적인 것을 다루어, 어떤 형태로든 독자 자신의 억압된 감정과 욕망의 탈출구가 되는 것이여야 한다.
- 끝으로 나의 신조를 20항으로 끝내기 위하여 자존심이 없는 작가라면 써먹을지도 모르는 수법을 열거하려 한다. 이들은 너무나 많이 써먹은 것이라서 범죄 문학의 애호가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들이다. 이것들을 사용한다는 것은 작가의 무능함과 독창력의 부족을 폭로하는 것이 되고 있다.
- 범죄 현장에 남아있는 담뱃갑과 혐의자가 애용하는 담배의 종류가 일치한다는 것으로 범인임을 짐작하는 것.
- 최면술 같은 것으로 범인을 억압하여 범인이 자백하게 하는 것.
- 지문의 위조.
- 대용품에 의한 알리바이 조작.
- 개가 짖지 않았다고 잘 아는 사람에 의한 범죄로 보는 것.
- 무고한 쌍둥이 또는 근친자를 진범으로 체포하고 결말을 짓는 것.
- 피하 주사와 맹독.
- 경찰이 들어간 다음에 일어나는 밀실에서의 살인.
- 유죄 판정을 위한 언어의 연쇄 반응 테스트.
- 최종적으로 탐정에 의해서만 해독되는 암호 또는 약호.
3. 평가
녹스의 10계에 비하면 조문이 많은 만큼 세세하고, 좀 비틀어 말하면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추리 소설 장르에 대하여 자신의 주관을 과도하게 들이미는 측면이 있다. 등장인물이 지나치게 많아질 수 없는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에서 이 규칙을 억지로 준수하기 위해 범인이 될 수 없는 사람을 다 빼면 범인은 추리할 것도 없이 그냥 정해진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어떤 의미로는 반 다인 본인이 좋아하는 추리 소설의 성향을 그냥 나열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도 보인다.실제로 반 다인이 비판한 크리스티의 기법은 후대의 추리 소설에서는 하나의 방식으로 완전히 정착되었고, 7번 규칙도 살인 사건을 다루지 않았을 뿐 재미있고 잘 짜인 추리 소설도 많다. 반 다인 본인의 주관이 좀 과하게 개입되어 있기도 하고, 추리 소설의 영역이 본격 미스터리에만 한정되지 않는 최근에는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아예 특수 설정 미스터리라는 장르까지 등장한 현시점에서는 더더욱. 그나마 의미가 있는 규칙은 1, 5, 8, 10, 14, 15번 정도. 그마저도 14번은 특수 설정 미스터리에선 그냥 의미 없다. 그런데 이렇게 추려 버리면 내용이 녹스의 10계와 별다를 바 없어진다.
추리물에서 이러한 규칙 가운데 어떤 것을 지키고 어떤 것은 지키지 않았으며, 지키지 않은 이유는 작가의 부주의인지 아니면 의도한 바인지를 생각해 보면 재미있을지도 모른다.
예컨대 애거서 크리스티는 최소 세 작품[스포일러]에서 4번 규칙을 위반한 적이 있고, 엘러리 퀸도 연속 페이크로 허를 찌르는 반전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4번 규칙을 위반한 적이 있다. 셜록 홈즈 시리즈는 이 법칙상으로 보면 반 다인이 학을 뗄 만한 소설(...)[6]이고 명탐정 코난은 확증급 증거를 숨겨대서 1번 규칙을 많이 어긴 경력이 있다.
현대 독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반 다인이 제시한 20개의 규칙 각각이 동등한 중요성과 의미를 가진 것은 아니라고 이해하면 편하다. 어떤 규칙은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의 핵심적인 정체성을 설명하지만 다른 규칙은 단지 기술적인 측면을 설명하고, 심지어 일부 규칙은 객관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반 다인 개인의 취향을 내세우는 것에 가깝다. 이런 규칙들이 그 중요도와 의미에 따라 종류별로 나뉘어 정리된 것이 아니라, 순서없이 섞여있으므로 현대의 독자라면 각각의 규칙을 적절히 해석하여 선택하고 받아들이면 되는 것.
사실 20칙을 통해 가장 잘 알 수 있는 부분은, 저 법칙이 등장했을 시기의 추리 소설을 보는 인식이 어땠는가이다. 본격 미스터리의 팬들이 '황금기'라고 흔히들 지칭하던 시기의 추리 소설은 이처럼 '똑똑하고, 지적인, 중상류 계층의 지적 유희'라는 느낌이 상당히 강했다. 역으로 말하자면 저러한 규칙들이 하나하나 파괴되고,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지금은 추리 소설이 그만큼 대중화되고 그 저변도 넓어졌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저런 성향 때문에 본격 미스터리의 중증 팬들 중에서는 '현재는 추리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 책이 없다.', '추리 소설은 타락해 버렸다.'라는 발언을 서슴없이 내뱉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저렇게 한정된 틀 안에만 갇혀 있었다면, 과연 추리 소설이 여전히 사랑받을 수 있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추리 소설이 문학성이 빈곤한 추리 퍼즐을 넘어서 하나의 장르 문학으로 대접받을 수 있게 된 것도 변화의 결과이기도 하다.[7]
4. 관련 문서
[1] 에르퀼 푸아로는 친구인 헤이스팅스를 포함해서 실제로 연인을 맺어주거나 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같은 창조자에 의해 창조된 또 다른 탐정인 미스 마플 또한 그녀가 등장한 에피소드가 끝날 때 비극적인 사건 결과와는 별개로 새로운 커플들이 많이 생겨 '커플 메이커 할머니'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2] 탐정이나 수사 요원이 아닌 일반인이 적극적으로 수사에 관여 또는 협조했는데 알고 보니 범인이었다는 것은 괜찮다. 범인이 혐의를 딴 사람에게 두기 위하여 또는 수사 과정을 방해하기 위하여 이런 수를 쓰는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3]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 가장 안 지켜지는 법칙이다.[4] 예컨대 작품에 등장하는 탐정이 여럿이어도 추리의 주역이 되는 이가 하나이며 다른 탐정들 중 누군가가 다른 이에게 자신의 혐의를 전가하는 작품이라면 이런 규칙을 어기지 않은 것이라 판단 가능하다. 다만 사건 해결 과정을 이해하기 어려워져 소설 작품의 몰입감을 급감시킬 여지는 충분히 있다.[스포일러] 애크로이드 살인사건과 끝없는 밤의 범인은 화자였고, 1938년작 푸아로의 크리스마스에서는 무려 경찰이 범인으로 등장했다.[6] 셜록 홈즈의 경우 살인이 아닌 사건은 모두 단편이어서 수백 페이지를 읽게 한 게 아니므로 크게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그리고 애초에 홈즈 시리즈가 법칙보다 훨씬 일찍 나와 클리셰를 만들었으니 어찌 보면 위 법칙이 나오게 만든 근본 원인일 것이다.[7] 대신 순수 퍼즐러는 추리 게임 분야에 많이 접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