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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베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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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상무정신과 전투력
3. 아랍인과의 차이4. 문화5. 종교6. 해외의 베르베르인7. 분파8. 인물9. 대외 관계
9.1. 리비아와의 관계

1. 개요

파일:베르베르.jpg
파일:베르베르기.svg
이마지겐(베르베르)의 기
언어 명칭
베르베르어 ⴰⵎⴰⵣⵉⵖ[1]
ⵉⵎⴰⵣⵉⵖⵏ[2]
영어 Berbers[3]
지금의 알제리튀니지, 모로코, 리비아 등 주로 마그레브에 사는 유목민이며 이집트 서부 일부 지역에도 거주한다. 사용 언어는 베르베르어이다. 유전적으로는 사하라 사막 및 지중해라는 장벽 때문에 어느 민족들과도 유전적으로 거리가 멀지만 육로로 연결되어 있는 중동 및 서아시아 쪽의 백인들과 그나마 유전적으로 가까운 편이다. 사막 유목민이라서 , 낙타동물을 잘 키우며, 전체적으로 사납고 용맹하다고 한다. 흔히 용감한 사막의 유목민이라면 아예 생활권 및 근거강역 자체가 다르지만 베두인과 함께 많이 떠오르는 게 이들이다. 원래 명칭은 "아마지그" 또는 "이마지겐"이다(베르베르는 "야만적인", "야만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4]

베르베르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을 "타마즈가(tamazgha)"라고 부른다.[5] 타마즈가의 범위.

2. 역사

역사적 이유로 인해 베르베르인의 외양은 남유럽인들과 얼추 비슷해졌다. 고대에 북아프리카 지역이 고대 카르타고로마 제국식민지였고, 아랍인들이 남이탈리아와 스페인 일대, 북아프리카 전역을 하나로 통합하여 지배한 적도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수차례 이민혼혈이 성행했기 때문이다.

고대 서구 세계에서 뛰어난 경기병대로 명성을 떨쳤던 누미디아, 고대 이집트 제국과 접했던 고대 리비아 및 사하라 사막 일대에 관개 수로를 건설한 가라만테스 왕국, 오늘날 모로코에 해당하는 마우레타니아[6] 등이 베르베르인의 선조에 해당한다.

카르타고와 로마의 지배를 거치면서 이 지역은 관개 농업이 발전하였고 해안지역은 깊게 로마화되었으며 이후 기독교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4세기 이후 도나투스파 기독교를 믿는 소작농 계급과 아타나시우스파를 믿는 지주 계급이 반목하고 반달족이 침입하였다.[7] 서로마 멸망으로 인한 혼란기 와중에 북아프리카 농민 중 많은 수가 유목민과 동화되었다. 서기 6세기까지는 부유한 농업 지역이었으나 이후 계속된 사막화로 다른 지역에 비해 발전이 뒤쳐질 수 밖에 없었다. 로마 제국 남부에 위치한 가라만테스 왕국 역시 사막화와 이에 따른 지하수 고갈로 서기 7세기 멸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서기 7세기 말부터 8세기 중엽까지 70년 동안 약 35번에 걸쳐 아랍인들과 치열하게 맞서 베르베르 대항거를 벌였다. 그 후 우마이야 왕조아바스 왕조의 교체기에 동방 칼리파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이베리아후우마이야 왕조가 완전히 무너진 11세기 이후, 쉬아 이스마일파 파티마 왕조모로코 일대의 베르베르계 세력이 세운 무라비트 왕조, 무와히드 왕조, 마린 왕조가 북서아프리카의 패권을 잡았다. 이후 파티마 왕조 치하의 베두인 유목민들이 북아프리카 상당수 지역 농경지를 황폐화시키고 이슬람교를 믿는 베르베르인들의 주도 하에 아랍인과 아랍 문화에 조금씩 동화되어 현재 북서아프리카 인구로 이어진다.

이베리아 반도이슬람 왕조의 지배를 받던 시절, 북서아프리카 지역의 이들과 아랍인들, 그리고 흑인들을 무어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지금도 이슬람 세력의 지배를 800년간 받은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는 이들의 후손이 많다고 한다. 기독교 세력에게 알안달루스멸망한 요인중에 하나가 이슬람의 내분인데, 이 내분의 성격이란 게 대체적으로 아랍계 타이파[8]들과 베르베르계 타이파들간의 대립이었다.[9] 기독교 국가인 카스티야 출신의 엘 시드무슬림 타이파였던 사라고사 타이파와 손 잡고 같은 무슬림인 무라비트 왕조에 대항해 싸운 것도 이런 이유가 있었다. 무라비트 왕조는 베르베르인들이 주도하여 창설했던 반면 사라고사는 아랍 타이파였기 때문.[10]

근세 오스만 제국은 모로코를 제외한 북아프리카 전역을 장악하는데 이로 인해 모로코와 나머지 북아프리카 지역은 언어와 문화가 많이 달라졌다. 오스만 제국에서 파견한 관리들은 베르베르인들을 무시하고 방치하는 정책을 폈다.

이후 프랑스 제국이 바르바리 해적 토벌을 명목으로 알제리 일대를 식민화하고 튀니지모로코를 차례로 식민화하면서 베르베르인들은 프랑스 문화의 영향을 조금씩 받게 되었다. 그러나 프랑스 식민 통치 시절 우민화 교육으로 프랑스 문화의 영향은 생각보다 제한적이었고, 해안 지역 비옥한 농토를 유럽인 이주민에게 먼저 분배하는 정책으로 많은 베르베르인들은 내륙에 건조하고 척박한 농토를 경작하거나 유목을 하며 근근히 연명했다 한다. 프랑스 식민 지배 시절 당시 베르베르인 상당수는 초등 교육에도 소외된 문맹 상태였다.[11]

2.1. 상무정신과 전투력

유목민족들이 그렇듯이 역사적으로 상무정신과 전투력으로 지중해권에선 명성이 자자했다. 북아프리카에 진출한 페니키아의 경우, 카르타고를 건설한 이후 베르베르인들과 상호 교류하고 그들을 용병으로 부리기도 했는데, 그들의 자존심을 건들거나 수 틀리는 행동을 했다하면 이 일로 크게 당하기도 했다. 고대 시대 베르베르인들의 국가 중 하나인 누미디아 왕국은 누미디아 기병으로 유명했는데, 이들은 카르타고의 주요 전력 중 하나로 활용되어 한니발을 따라 로마를 상대하기도 했다. 누미디아 기병은 포에니 전쟁 당시 로마에게 고용되기도 하며 리비우스를 비롯한 역사가, 지식인들에게 당대 최고의 경기병 전력 대우를 받았다. 또 다른 베르베르인들의 고대 왕국 마우레타니아는 서기 40년 마우레타니아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이 로마에서 암살되자[12], 마우레타니아의 베르베르인들이 복수를 외치며 벌어진 마우레타니아 전쟁에서 로마는 당초 자신들의 힘으로 금세 제압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거의 3년 가까이 베르베르인들의 전투력과 정신력 탓에 고전해야만 했다.

중세 시절엔 경제력으론 훨씬 더 뛰어난 아랍 이슬람 제국 상대로 종종 반란을 일으켜 마그레브, 이베리아 일대에선 아예 한동안 지역 패권을 차지한 정복 제국을 만들기도 했다. 르네상스 이후 기술력, 군사력에서 토착 북아프리카 세력보다 더 우위를 지니게 된 포르투갈, 스페인 이베리아 제국주의 국가들도 종교적, 지정학적 명분을 따라 탕헤르, 멜리야, 세우타등 해안 거점을 차지하는걸 넘어 마그레브 내륙지방으로도 진출하려 했으나 여전히 근세 시절의 화약 무기 정도론 극복할수 없는 베르베르 부족 기병들에게 번번히 좌절, 모로코와 바르바리 해안 해적 공국들의 주권을 지켜냈다. 특히 포르투갈의 경우 이 베르베르 기병들이 중심이 된 모로코와의 전쟁에서 왕과 나라 고위귀족 태반이 덜컥 전사하여 이베리아 연합이란 동군연합 상태에 빠지기까지 했다.

근대 들어와서 프랑스군의 기술력과 군사력으로 마그레브 지방은 결국 유럽 제국주의 세력에게 평정당했지만 이 과정마저도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일단 프랑스-스페인 양국의 모로코, 알제리 정복만 하더라도 양쪽 모두 수십년에 걸친 격렬한 정복 전쟁과정에서 프랑스, 스페인도 굉장히 고생하며 겨우겨우 스페인령 모로코, 스페인령 사하라 같은 식민지를 설치할수 있었다. 특히 스페인의 경우 1920년대 리프 전쟁 당시 아누알 전투에선 리프 공화국 아랍-베르베르 부족민들 상대로 무려 멜리야 식민지 군사령관 실베스트르 중장이 전사하고, 만명 넘는 스페인군과 식민지 보조병들이 전사하는등 엄청난 패배를 겪으며 이때 국내에서 터진 정치적 스캔들과 군의 명예 회복에 대한 강박관념이 결국 스페인 내전으로 이어지는 스페인군의 우경화를 초래했을 정도다. 베르베르인들의 침략자에 맞선 투지가 아예 침략국의 운명까지 엄청나게 바꿔버린 것이다.

이탈리아가 처들어간 리비아에서도 베니토 무솔리니가 경악할 정도로 베르베르인들은 이탈리아군을 엄청나게 두들겨팼다. 리비아 주둔군 사령관이 7명이나 교체될 정도였다.[13] 마지막으로 교체된 루돌포 그라치아니 대장은 엄청난 물량공세로 결국 베르베르인들을 이끌고 20년이 넘게 이탈리아에 맞서던 지도자 무크타르 오마르(1862~1931)를 잡아 처형시켰다. 무아마르 알 카다피가 이 종족 출신(정확히는 아랍계-베르베르인 혼혈)이라 그런지 막대한 자본을 들인 영화 사막의 라이온(1981)를 제작한 바 있는데 이 영화가 바로 무크타르 오마르를 그려낸 영화이다. (안소니 퀸, 올리버 리드, 존 길구드 같은 호화 캐스팅을 보여줬다.) 잔혹하기 그지없는 방법을 동원해 10년동안 질질 끌며 겨우 식민지를 평정하면서 이탈리아군은 결국 군 근대화와 조직 개편 과정에 필요한 재원을 다 까먹었고, 리비아 전쟁이 끝나고 몇년 되지도 않아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이란 전쟁판을 다시 열며, 여기서도 또 상처뿐인 '승리' 끝에 재원은 다 까먹자마자 다시 스페인 내전 개입… 결국 이탈리아군의 졸전 기록이란 근현대 군사사의 부끄러운 전설이 만들어지는데 또한 베르베르인들이 크게 한몫한 셈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프랑스 등 베르베르인들이 많이 사는 북아프리카 상대로 식민지 좀 펴보려고 한 남유럽 제국주의 세력 치고 한번쯤 나라 전체의 역사에 트라우마가 남을만큼 뜨겁게 데여본적이 없는 나라가 없다. 현대 와서도 리비아 내전, 말리 내전을 비롯하여 북아프리카의 각종 분쟁에 당사자들이나 용병으로 종종 참여하는 베르베르인들은 강력한 전투력으로 명성이 높은 편이다.

3. 아랍인과의 차이

둘 다 아프리카아시아어족인데다 종교 또는 종파도 거의 다수가 같다보니 베르베르인을 아랍인, 베두인의 일파 정도로 오해하는 한국 사람들이 많지만, 아랍인과 베르베르인은 별개의 민족이다. 7세기 이슬람의 확장 이전까지 아랍인들은 아라비아 반도에서 거주하던 민족이었고, 베르베르인은 전통적으로 북아프리카에서 거주하던 여러 민족들의 후예이다. 두 지역 사이에는 이집트라는 별개의 문명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두 민족은 멀리 떨어진 남남이었다. 7세기 이후 아랍인의 치열한 공세 끝에 결국 기존의 기독교나 토착 신앙을 버리고 이슬람으로 개종하기는 했지만, 아직도 이들은 자신들이 무슬림이기는 하지만 아랍인은 절대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자부심이 높다.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지라 리비아처럼 내전이 있었던 곳에서는 아랍-베르베르계의 분쟁 양상도 있었으며, 지금도 내분이 어느 정도 남아있다보니 여전히 이들의 분쟁이 있는 편이다.

베두인아라비아 반도에서 기원한 아랍어를 쓰면서 유목 생활을 하는, 민족 집단이라기보다는 문화적, 사회적 집단에 가까운 반면 같은 사막 유목민이라 해도 같은 아프리카아시아어족이나 베르베르인은 언어 자체가 아랍어가 아닌, 독자적인 민족 집단이다. 그것도 이슬람8세기마그레브 일대를 평정한 이후 몰려 온 아랍인들과 현지 패권을 두고 치열하게 반목해 오며 끝까지 정체성을 지켜온 자존심 강한 전투민족이니 혹시라도 이들을 접하게 되면 결코 "아랍인 아님?" 같은 식으로 함부로 물어보면 실례가 될 수 있다. 농담이 아니라 지금도 모로코, 알제리 등에서 아랍인 우대 정책을 펴는 중앙 정부와 사이가 안 좋은 베르베르족이 많아 속으로 짜증 내는 수도 있다. 실제로 베르베르주의 성향의 베르베르인들도 있는 편이기도 하다.

다만 이집트를 제외한 나머지 북아프리카 아랍인의 경우에는 베르베르인들과 유전적 차이는 그다지 크지는 않다. 이는 아랍인과 베르베르인 사이의 통혼이 드물지 않게 일어나기 때문도 있지만, 사실상 가장 큰 이유는 아랍인의 정의가 모어로 아랍어만 쓰면 될 인정될 정도로 굉장히 포괄적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라비아 반도와 가까운 이집트인들도 다른 북아프리카 아랍인에 비해 좀 더 본래의 아랍인과 가까울 뿐이지 혈통적 차이 자체는 상당히 크다.

북서아프리카 일대의 아랍인들(아랍계)들은 이곳의 이마지겐(베르베르인)들과 같이 지내면저 서로 혼혈되었고, 그 과정에서 서로 정서, 문화, 사회 등 부분적으로 동화된 사람들도 적지 않다(베르베르에서 아랍으로, 반대로 아랍에서 베르베르로 서로 동화된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이들을 아랍계 베르베르인(arab-berbers)이라고 부르며, 반대로 베르베르계 아랍인들도 있다. 위에서 언급된 카다피도 아랍계 베르베르인 출신이기도 하다.

4. 문화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0px-Berber_Calendars.jpg

베르베르 달력. 율리우스력의 후손으로 달 이름도 라틴어에서 파생된 태양력이다. 주로 농업용으로 쓰이는데 이슬람력은 태음력이라 농업에는 적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베르베르력 기원은 기원전 950년이라고 1960년대에 정해졌는데 역사상 최초로 유명한 베르베르인으로 추정되는 셰숑크 1세(Shoshenq I) 파라오가 집권한 걸로 추정되는 해다.

베르베르어가 있으며 티파나그라는 별개의 문자도 존재한다.

베르베르 카페트가 특유의 기하학적 모양으로 유명하다. 정교한 모양으로 카페트 짜기가 베르베르 여인들의 몇 안 되는 삶의 낙 중 하나였다.

그 외에 도자기 문화도 발달되었다.[14]

5. 종교

지역마다 각기 다른 토속 신앙 및 기독교를 믿고 있었으나 이슬람 정복 이후 수니파 무슬림이 대다수이다. 그러나 수니파 무슬림 일색인 것은 아니고 알제리의 Mozabite 베르베르인들은 주로 이바디파[15], 그리고 이전의 분파인 카와리지파 무슬림이며, 유대교[16]기독교(가톨릭, 개신교)[17]를 믿는 경우도 있다.

6. 해외의 베르베르인

해외로 이주한 베르베르인들도 있는 편인데 주로 지중해, 대서양를 건너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유럽 남서부 국가들에 많이 이주했다. 북아프리카 일대가 실업률이 많이 높다보니 취직하려고 유럽으로 이주한 사람이 많은것이다.마그레브 주변으로는 서아프리카부르키나파소, 카나리아 제도에 간 베르베르인들도 있다. 일부는 미국, 캐나다, 뉴칼레도니아로도 이주했다. 아시아를 건너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 정착한 베르베르인들도 있는데 유대인과 혼혈된 유대계 베르베르인, 베르베르계 유대인들이 주로 많이 갔다. 아랍화된 아랍계 베르베르, 베르베르계 아랍인들은 팔레스타인으로도 갔다.

7. 분파

8. 인물

9. 대외 관계

9.1. 리비아와의 관계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리비아-베르베르 관계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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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mazigh. 단수.[2] Imazighen. 복수.[3] 그리스어로 야만인을 의미[4] 그래서인지 베르베르인(아마지그인)에게 베르베르라는 단어는 좋지 않은 단어라고 한다. 원래대로라면 원래 명칭인 아마지그를 써야 되며, 베르베르로 알려진 아마지그인에게는 베르베르인보다는 아마지그인이라는 표현이 더 옳다.[5] 베르베르어:ⵜⴰⵎⴰⵣⵖⴰ, ⵜⴰⵎⴰⵣⵗⴰ, Tamazɣa.[6] 오늘날 모리타니와는 위치가 다름[7] 반달족 정착의 영향으로 오늘날 일부 베르베르인 중에서는 금발벽안도 종종 발견되는 편.[8] 이베리아 반도의 이슬람계 도시 국가.[9] 근본적인 원인은 아랍 타이파들의 베르베르인 차별이다.[10] 안달루시아 내에서도 후우마이야 왕조수도이자 무어인들의 첫 중심지였던 코르도바는 아랍계가 장악한 도시였던 반면 당시 "잇-시비야"라고 불렸던 세비야는 베르베르인 위주 도시여서 서로 알력이 많았고, 비록 아랍-베르베르 무어인들은 모두 축출되었지만 지금도 안달루시아 지방의 문화적 수도 자리를 두고 양 도시 주민 간에는 일종의 상호 디스가 벌여진다. 둘 다 가톨릭 카스티야에게 넘어 갔고 세비야스페인에서 4번째로 큰 대도시인 반면 코르도바는 유적을 활용한 관광업으로 연명하는 지방 소도시이다.[11] 프랑스의 식민지 우민화 정책 당시 모로코의 초등학교 취학률은 아랍인, 베르베르인 합쳐서 6%에 달했다. 출처 : 이슬람의 세계사 / 아이라 라피두스 저[12] 수에토니우스는 칼리굴라가 삼촌뻘 친척 어른 프톨레마이오스가 부유하고 황제의 색인 보랏빛 망토를 시기해 암살을 명했다고 주장했지만, 그가 로마에서 황제와 원로원의 밀명에 따라 암살된 진짜 이유는 로마 통제 밖으로 나갈 만큼 부국강병을 하면서도 로마 내정에 끼어들며 그 심기를 단단히 건드렸기 때문이다.[13] 이 당시의 이탈리아군은 군기가 개판이라서 졸전으로 악명이 높았다고 하지만 이탈리아군의 졸전 기록에 나오듯이 상당수가 카더라 뻥도 많음을 알아두자.[14] 출저: 베르베르 문명, 서구중심주의에 가려진 이슬람과 아프리카의 재발견(임기대 지음).[15] 오만의 주요 종파[16] 이스라엘에 베르베르계 유대인이 거주하는데, 천명단위이다. 이스라엘 건국 후 마그레브 현지에서 해외로 쫓겨나거나 현지에 동화된 것이다.[17] 소수이지만 콥트 정교회 신자도 있다.[18] 관체족들은 카나리아 제도에 살던 베르베르계 민족이었지만, 스페인의 정복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