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8d0000><colcolor=#fff> '''''' | |||
출생 | 미상 | ||
사망 | 1451년 10월 15일 (향년 미상) | ||
몰다비아 공국 루세니 | |||
재위 | 몰다비아 보이보드 | ||
1449년 10월 12일 ~ 1451년 10월 17일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8d0000><colcolor=#fff> 부모 | 아버지: 알렉산드루 1세 어머니: 미상 | |
형제 | 일리아슈, 슈테판 2세, 페트루 3세, 페트루 4세 아론 | ||
배우자 | 마리아 올테아(정부) | ||
자녀 | 슈테판 3세 | ||
가문 | 무사티니 가문 | ||
종교 | 기독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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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몰다비아 공국 제17대 보이보드. 몰다비아 공국 최고의 명군 슈테판 3세의 아버지다.2. 행적
몰다비아 공국 제10대 보이보드 알렉산드루 1세의 사생아다. 1449년 10월 12일, 트란실바니아 궁정백 후녀디 야노시의 지원을 받아 반기를 들어 시레트 강 인근의 타마세니 전투에서 몰다비아 공국 제16대 보이보드 알렉산드루 2세를 격파하고 보이보드에 군림했다. 알렉산드루 2세는 폴란드의 삼보르 시로 도주했다. 1450년 초, 알렉산드루 2세는 폴란드군의 지원을 토대로 몰다비아를 되찾기 위한 원정을 단행했지만 실패했다.1450년 2월 11일, 보그단 2세는 후녀디 야노시와 동맹을 맺고, 그를 몰다비아의 보호자로 지명했다. 이에 폴란드 당국은 이러다가 몰다비아가 헝가리 왕국에 완전히 귀속될 것을 우려해, 알렉산드루 2세를 몰다비아 보이보드에 앉히기 위한 원정을 재차 나서기로 했다. 그해 6월 24일, 르비우의 스타로스타 게네랄니인 피오트르 오드로바츠, 산도미에시 스타로스타 피오트르 코니에츠폴스키가 지휘하는 폴란드군과 디드리히 부자키가 지휘하는 리투아니아군이 르비우에서 집결했고, 알렉산드루 2세의 소규모 군대가 합류했다.
이후 폴란드군이 알렉산드루 2세를 앞세워 공세를 개시해 베사라비아 북부로 진군했다. 보그단 2세는 이에 대응해 청야 전술을 시행해 적의 보급난을 가중시키고, 적군을 몰다비아 내부로 깊숙히 유인한 뒤 부트나리우 강과 바라트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폴란드군과 평화 협상을 한 끝에 9월 5일 평화 협약을 맺었다. 이에 따르면, 보그단 2세는 1453년까지 통치를 보장받되, 그 기간 동안 매년 50,000 플로린을 알렉산드루 2세에게 지불하기로 했고, 폴란드에게 연간 7,000 굴덴의 공물을 제공하기로 했다. 그렇게 합의를 맺은 폴란드군이 후퇴를 개시했지만, 그는 곧바로 합의를 깨고 크라스나 강과 바라트 강이 합류하는 크라스나 평원에서 적군을 기습 공격해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오직 알렉산드루 2세가 이끄는 몰다비아군과 소규모 폴란드인만이 빠져나갈 수 있었다.
1451년 10월 15일, 형제 페트루 4세 아론이 루세니에서 정변을 일으켜 보그단 2세를 살해하고 보이보드 작위를 찬탈했다.
보그단 2세는 생전에 올테아라는 여인을 정부로 뒀다. 올테아는 그가 사망한 뒤 마리아로 개명해 수녀로 지내다가 1464년 11월 4일에 사망했고, 수체아바의 프로보타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보그단 2세와 올테아와의 사이에서 테어난 아들 슈테판 3세는 몰다비아 공국 역사상 최고의 군주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