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8d0000><colcolor=#fff> '''''' | |||
출생 | 1422년경 | ||
사망 | 1452년 (향년 30세) | ||
재위 | 몰다비아 보이보드 | ||
1차: 1443년 5월 ~ 1445년 4월 | |||
2차: 1447년 8월 ~ 1447년 12월 | |||
3차: 1448년 2월 ~ 1448년 10월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8d0000><colcolor=#fff> 부모 | 아버지: 알렉산드루 1세 어머니: 미상 | |
형제 | 일리아슈, 슈테판 2세, 보그단 2세, 페트루 4세 아론 | ||
가문 | 무사티니 가문 | ||
종교 | 기독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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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역사 기록에 등장하는 몰다비아 공국 제13대 보이보드.2. 행적
몰다비아 공국 제10대 보이보드 알렉산드루 1세와 사생아이다. 1443년 5월 형제 슈테판 2세에 의해 공동 보이보드로 발탁되어 수년간 함께 통치했지만, 1447년 7월 슈테판 2세가 로만 2세의 정변으로 피살되면서 물러났다. 이후 추종자들을 끌어모아 로만 2세와 맞선 끝에, 1447년 8월 로만 2세와 타협하고 공동 보이보드에 재차 등극했다. 그러나 그해 12월, 로만 2세의 암살 위협을 받고 트란실바니아로 피신했다.이후 트란실바니아의 궁정백 후녀디 야노시의 영접을 받았고, 그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친척과 결혼했다. 1448년 2월 로만 2세가 오스만 제국군의 몰다비아 침공을 피해 크라쿠프로 피신한 뒤, 후녀디 야노시의 지원을 받아 몰다비아로 복귀했다. 1448년 후녀디 야노시가 오스만 제국을 상대로 원정을 단행했을 때 3,000명을 지원했지만, 야노시의 원정은 2차 코소보 전투의 패배로 끝났다. 또한 칠리아 요새현재의 루마니아 도브루자 북부 툴체아 카운티의 칠리아 베체)를 후녀디 야노시에게 양도했다.
1448년 10월 30세의 나이로 사망했는데, 사망 경위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후 후녀디 야노시가 파견한 헝가리 장군 치우바르 보다가 임시로 군림했다가, 로만 2세의 형제인 알렉산드루 2세가 몰다비아 보이보드에 등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