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8d0000><colcolor=#fff> '''''' | |||
출생 | 1564년 | ||
사망 | 1623년 (향년 59세) | ||
오스만 제국 보스포루스 해협 | |||
재위 | 몰다비아 보이보드 | ||
1차: 1611년 11월 20일 ~ 1615년 11월 22일 | |||
2차: 1621년 9월 ~ 1623년 8월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8d0000><colcolor=#fff> 부모 | 아버지: 슈테판 7세 톰샤 어머니: 미상 | |
형제 | 레온 톰샤 | ||
가문 | 톰샤 가문 | ||
종교 | 기독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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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몰다비아 공국 제46대 보이보드.2. 생애
몰다비아 공국 제30대 보이보드 슈테판 7세 톰샤의 아들이다. 형제로 레온 톰샤가 있었다. 그는 일찍이 피레네 산맥에서 벌어진 프랑스군과 스페인군간의 전투에 참전하면서, 전투 교리를 익혔다. 이후 폴란드-리투아니아 국왕 스테판 바토리 휘하 중위를 맡았고, 나중에 오스만 제국군에 입대하여 사파비 왕조와의 전쟁에 참전했다.그러던 1611년 11월, 오스만 제국 궁정은 몰다비아 보이보드 콘스탄틴 모빌라가 자국에 등을 돌리고 신성 로마 제국의 봉신이 되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콘스탄틴을 슈테판 9세 톰샤로 교체하기로 했다. 슈테판 9세는 오스만 제국군의 후원을 받아 이아시에 입성한 뒤 몰다비아 보이보드에 취임했지만, 반 오스만 성향의 보야르들은 폴란드-리투아니아로 피신한 뒤 콘스탄틴 모빌라를 복위하기 위해 군대를 보내달라고 호소했다.
1612년 여름, 폴란드 헤트만 스타니스와프 졸키에브스키, 브라츠슬라프 주지사 스테판 포토츠키 등이 이끄는 폴란드군이 콘스탄틴 모빌라를 앞세워 몰다비아로 진군했다. 슈테판 9세는 이에 대항해 오스만 제국군과 크림 칸국이 파견한 타타르군의 지원을 받았다. 1612년 7월 3일 ~ 13일, 양군은 프루트 강둑에 있는 사스 호른에서 격돌했다. 그 결과 폴란드군이 참패했고, 콘스탄틴 모빌라는 타타르군에 생포된 뒤 드네스트르강을 건너던 중 익사했다. 그 후 슈테판 9세는 콘스탄틴 모빌라를 지지했던 보야르들을 대거 숙청하고, 그들의 영지를 농민들에게 나눠줬다.
1613년, 슈테판 9세는 오스만 제국 파디샤 아흐메트 1세의 지시에 따라 왈라키아 보이보드 라두 9세와 함께 트란실바니아 공 바토리 가보르를 상대로 벌인 오스만 제국군의 원정에 참여했다. 오스만군은 바토리 가보르를 성공적으로 몰아낸 뒤 베틀렌 가보르를 트란실바니아 공으로 옹립했다. 이후 몰다비아 공국, 왈라키아 공국, 트란실바니아 공국은 3자 동맹을 체결했다. 그 해 여름, 친 폴란드 성향 보야르들이 그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킬 음모를 꾸몄다. 하지만 그는 이 음모를 적발한 뒤, 보야르들을 연회에 초대한 뒤 그 중 75명을 참수했다.
1615년 9월, 네키포르 벨디만, 발도빈, 스투르자, 볼, 미르자 등 친 폴란드 성향의 보야르들이 용병대를 동원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그들은 한때 이아시를 포위하고 슈테판 9세에게 물러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슈테판 9세는 병력을 끌어모아 반격을 가했고, 파쿠라 분수 인근에서 적군을 격파하고 여러 보야르를 생포한 뒤 처형했다. 그러나 그해 11월, 폴란드군이 알렉산드루 7세 모빌라를 앞세워 몰다비아로 진군하자, 다수의 보야르들이 대거 폴란드군에 가세했다. 그는 도저히 대적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왈라키아로 도주했다.
1616년 봄, 슈테판 9세는 왈라키아 보이보드 라두 9세의 지원을 받아 몰다비아로 진군했다. 그는 이아시를 불태우는 등 기세를 떨쳤지만, 끝내 몰다비아 보이보르로 복위하지 못하고 물러나야 했다. 그해 8월, 알렉산드루 7세 모빌라가 오스만 제국군에 생포된 뒤 코스탄티니예에 끌려갔지만, 슈테판 9세는 오스만 제국 궁정의 호의를 잃었기 때문에 몰다비아 보이보드로 복귀하지 못하고 라두 9세가 그 대신 몰다비아의 보이보드로 옮겨졌다.
이후 조용히 지내던 슈테판 9세는 1621년 9월 오스만 제국 궁정의 선택을 받고 몰다비아 보이보드로 복위했다. 그는 2번째 통치 기간 동안 친 폴란드 성향의 보야르들과 화해를 도모하려 했다. 그러나 2년 후인 1623년 8월 오스만 제국 궁정에 의해 폐위되었고, 배에 타서 보스포루스 해협을 항해하던 중 외국인들 사이에서 일어난 폭동에 휘말려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