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한자: 本籍자신의 호적의 기준이 되는 주소를 가리키는 말이다. 예전에는 한 개인의 출신지를 나타내는 척도로 많이 쓰였으나 점차 그 용도가 좁아졌고, 2008년 1월 1일부로 등록기준지로 대체되었다.
2. 내용
호적 제도에서는 호적의 기준이 되는 사람인 호주 아래에 배우자(아내)와 자녀 포함 친족이 편제되는 식으로 짜여 있었는데, 호주 본인의 본적지를 기준으로 배우자와 자녀의 본적지가 같아지는 식이었다.특히 농경사회였던 옛날에는 본적지는 곧 선조의 출신지, 가까이 말하자면 할아버지, 아버지의 출신지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한 개인의 출신지를 나타내는 척도로 오히려 출생지보다 많이 쓰인 시절이 있었으며, 이로 인해 지역차별을 당하는 부작용도 있었다.
장남은 혼인하여도 아버지 호적의 호주지위가 승계(1989년까지 호주상속)되기 때문에 주민등록상 세대분리와 별도로 분가신고가 없이 본적지가 바뀌지 않았으나[1], 차남 이하 남성 및 여성은 결혼 및 기타 개인사유로 분가를 한 경우 분가가 이루어진 장소(= 신혼집)로 본적지가 변경될 수 있다.[2] 여성의 경우 아예 혼인신고와 동시에 친정 호적에서 제적되고 시가 호적으로 들어갔는데, 남편이 장남이라면 시아버지 호적으로, 남편이 차남 이하라면 남편 호적으로 들어갔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본적지도 바뀌었다. 실제로 그런 식으로 서울특별시로 본적지가 바뀐 남부 이주민 출신들 및 그 자손들이 많다. 예를 들어, 부모가 대대로 경상북도 출신이지만 부모가 상경하여 결혼하면서 그 부모 본인의 본적지가 서울로 바뀌고, 서울에서 출생한 그 자녀들도 본적지 또한 서울이 된다. 참고로 서울특별시가 등록기준지(구 본적지)인 인구 수는 2014년 기준으로 978만 명 정도 된다. 기사
현재 본적지로 바뀌기 이전의 원래 본적지를 '전적지'라고 한다. 전적지를 원적지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종종 있으나, 호적에서 원적은 38선 이북과 (수복지구와) 이북 5도에 본 적이 있는 자가 가호적 제도로 새로 호적을 취적하기 전 본적주소를 의미한다. #
인구 이동이 잦아진 오늘날에는 출신지로서의 의미를 점점 상실해가고 있으며, 특히 장손 집안의 경우 예를 들어 3대째[3]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선조가 전라남도 출신이라는 이유로 본적지가 뜬금없이(?) 전라남도로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지역감정까지 얽히기 시작하면 점입가경의 경지에 접어든다.
야구를 비롯한 스포츠에서는 본적이 아직 의미있게 작용한다. 서울에서 태어났고 서울에서 살고 있지만 본적지를 따라 '기롯삼한'(KIA 타이거즈, 롯데 자이언츠, 삼성 라이온즈, 한화 이글스)과 NC 다이노스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으며, 실제로 잠실이나 고척 스카이돔 경기를 보면 원정팀 관중이 홈 팀 관중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많은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재외동포들에게도 본적은 제법 중요한 요소다. 이들은 자기소개를 할 때 본적지를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3. 사용
1994년까지는 병역판정검사도 본적지 기준으로 받았기 때문에 서울에 사는 사람이 본적지가 지방이라는 이유로, 신검 하나 때문에 몇 시간씩 가서 이틀을 날려먹는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 유승준은 서울에서 태어나 성장해서 대구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지만 본적지가 대구광역시 북구 복현동이라 대구경북지방병무청의 달서구 죽전동 소재 징병검사장에서 신검을 받았다.[4] 물론 검사만 받고 끝이었지만. 그 당시 서울에서 신검을 받았던 사람들은 서울이 본적인 토박이들+차남 이하의 상경민 부모를 둔 사람들과 서울에 정착한 실향민 출신들이 대부분이었다.또한 각급 학교나 대학에서 학생증이나 졸업장[5] 등에 본적을 표기한 경우가 많았으며, 이외에도 여러 곳에서 본적 주소가 쓰였다. 당시에는 공무원 시험에서도 본적지가 지방인 서울 사람들이 지방의 공무원 시험을 볼 수 있었다.
취업의 경우, 당연하지만 2010년대 이후에는 본적의 개념이 매우 희미해졌기 때문에 절대다수의 회사에서는 신입사원들을 채용할 때 본적 따위에는 아무 관심 없고 관련 서류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호주제가 폐지되고 대가족이 해체, 핵가족화가 진행됨으로 인해 친족 관념이 많이 희미해진 상황이라, 본적을 그 사람과 연결짓기는 불가능한 일이며 특히 개인정보 조회 관련 법률이 강화되면서 이제는 국가기관도 이 정도의 인적사항은 마음대로 들여다보기 어렵다.
4. 폐지 이후
급기야 2008년에 호적법이 폐지되자 호적단위의 기존 본적 제도는 개인단위의 등록기준지 제도로 대체되었다. 변경 여건이 나름 까다로운 구 본적지 제도와 다르게 등록기준지는 개인이 원하는 장소로 제한 없이 언제든지 변경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다만 그 변동내용은 고스란히 기본증명서에 기록에 남는다... 2007년 12월 31일 이전 출생자는 자기 기본인적 사항에 손 안 댔다면 옛 본적지대로 최초 등록기준지가 설정되며, 2008년 1월 1일 이후 출생자는 부모가 지정해 준 등록기준지대로 따라간다. 다시 말해서, 2008년 이후 출생자는 부모가 특별히 따로 자유롭게 해당 자녀의 등록기준지를 설정하지 않는 이상 그 출생자가 따르는 성씨나 본관의 부 또는 모의 등록기준지를 따른다.[6]현대에는 일상생활에서 전혀 쓸 구석이 없는 정보라서, 1990년대[7] 이후에 태어난 젊은이들은 자신의 본적지(현 등록기준지)를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일단 1999년 이전에 발급된 종이 주민등록증에는 본적과 호주까지 기재했지만, 현재의 플라스틱 소재 주민등록증이 나오면서 기재내용에서 제외되었기에, 실질적으로 본적주소를 인지할 기회가 낮아진 탓도 있다.[8] 또한 입사원서 등 각종 서류에서 본적지란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는 것도 이에 한몫한다. 단, 군대 개인자력에는 아직도 본적지 란이 있다.
5. 중화권과 일본의 본적
서구국가의 경우에는 신분등록제도가 대체로 개인별 편성, 즉 이름과 생모의 결혼 전 성명, 출생지, 출생일을 조합해서 편성하기 때문에 지번에 기반한 호적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자문화권에서는 본적의 개념이 있다.중국과 홍콩 등 중화권에서는 본적을 적관(籍貫)이라고 한다. 보통 적관은 조부의 거주지였던 곳으로 하며, XX성 XX현(시)[9][10] 정도로 현급 행정구역까지 표시한다. 현직 중국 국가주석 습근평도 출생지는 북경이지만, 적관은 조부의 고향인 산서성 부평현(富平縣)으로 되어 있다. 귀화한 외국인은 귀화 전 출신국의 명칭을 기재한다.
같은 중화권인 대만에도 본적(적관)의 개념이 존재했는데, 일본이 제국 시대에 대만과 한국[11]에 자국의 호적체계를 이식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대륙 시기 중화민국에도 중화권판 본적인 적관의 개념이 있었으므로, 체계는 중화민국 대륙 시기 및 현 중국 대륙처럼 XX성 XX현(시)을 적관으로 삼았다. 가령 등려군의 경우 출생지는 대만이지만 적관은 하북성 대명현(大名縣)[12]이었다. 그러나 1992년 대만 입법원이 외성인과 본성인의 괴리감을 없애고 '중화민국의 현상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호적법을 개정, 본적 등기를 출생지 등기로 변경했다.
일본에도 본적의 개념이 있는데, 1872년 메이지 정부가 도입했으며 당시에는 주소와 본적지가 일치해야 했다. 둘이 달라져도 되기 시작한 건 1898년. 본적의 위치는 황거(...)나 공항, 혹은 외국과의 영토분쟁 지역에 두는 것도 가능하지만, 소속 도도부현, 시정촌이 불명확한 필지나 일본이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영유권을 포기한 지역에는 둘 수 없다.[13] 2024년 이전에는 본적을 옮기려면 해당 본적지의 관청에 신고해야 했지만, 지금은 전국 어디서나 가능하게 되어 본적지를 옮기는 수요가 늘었다고.
일본 여권 정보면에는 출생지 대신 본적[14](도도부현 단위까지만)이 기재되어 있다. 물론 한국이나 중화권에도 그런 사례가 비일비재하듯이 본적이 반드시 출생지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세습 정치인 가문 총리들인 후쿠다 야스오, 아베 신조, 기시다 후미오, 이시바 시게루 모두 출생지는 도쿄도이지만 본적지는 각자의 중의원 지역구에 있다. 이들은 모두 아버지(후쿠다 다케오, 아베 신타로, 기시다 후미타케, 이시바 지로) 고향 지역구를 그대로 세습했기 때문이다. 다만 후쿠다, 아베, 기시다는 아버지도 중의원 출신이라 해당 중의원 지역구(군마현 제4구, 야마구치현 제4구, 히로시마현 제1구)까지 그대로 물려받은 반면, 이시바 쪽은 아버지는 참의원과 돗토리현지사만 했고 중의원은 해본 적이 없었지만 본인은 처음부터 돗토리현 제1구 중의원으로 들어갔다는 차이점이 있다.
6. 관련 문서
[1] 혼인신고 이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경우에는 어머니를 제치고 아버지의 호주 지위가 승계되었다. 물론 이렇다 하더라도 본적지가 바뀌지 않았다.[2] 다만 분가 시 신본적을 기재하지 않은 경우, 신호적의 호주가 될 자가 종전에 속한 호적의 본적지를 따랐으며, 이는 호적법 제19조의2 제3항에 의한다. 바꿔 말하면, 분가하더라도 본적지를 변경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3] 한 지역에서 계속 3대 이상 살아온 경우 보통 토박이로 쳐준다. 애초에 전통적인 토박이의 기준이 본적에서 나왔다.[4] 내국인들은 1995년부터 거주지 관할 지방병무청에서 검사를 받을 수 있게 됐어도 유승준은 재외국민이라 실거주지와 관계없이 본적지에서 신검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5] 1950년대 졸업장에는 조사나 순우리말 정도를 빼면 모두 한자로 적었고, 연도도 단군기원으로 적었다. 또한 일본처럼 우종서로 썼다.[6] 부모조차도 본인의 등록기준지를 모르는 경우 공무원이 자녀의 출생지나 출생신고하는 부모의 주민등록지를 등록기준지로 알아서(부모가 특별히 등록기준지를 지정했다고 간주) 등재해 주는 것이 가능하다.[7] 1980년대 출생자의 경우 1990년대 이후 출생자와 다르게 본적지에 대한 개념을 어느 정도 아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특히 1982년생까지는 종이 주민등록증을 발급 받는 적이 있어 잘 아는 편이다.[8] 호적이 전산화되기 이전인 2002년 이전에는 본적을 알아야만 관할지역의 관공서 호적과에 의뢰를 하여 호적등초본의 발급이 가능했다. 호적이 전부 전산화가 된 이후에는 신분증과 주민등록번호만으로 발급이 가능해졌기에 본적의 필요성이 떨어진 것이다. 고등학생들이 최초로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을 경우에도 등록기준지를 작성하게 되어 있지만, 해당란은 보통 공무원이 개인별 주민등록표를 보고 알아서 기재해 준다.(현재는 등록기준지를 아예 적지 않으므로 미해당) 마찬가지로 혼인신고서나 출생신고서의 부모의 등록기준지도 보통 공무원이 알아서 기재해 주거나 아이의 출생지 내지는 부모의 현 주소지를 적으라고 안내해 준다.[9] 일반적으로는 '성', '현'이라는 글자는 생략하고 가령 '山西 富平(人)' 정도로 표기한다. 지급시 산하 현 출신이면 지급시 이름은 생략한다.[10] 다만 몽골족 자치지역 출신의 경우에는 행정구역명으로 현(縣) 대신 기(旗, khoshuu)를 사용하며, 성과 기 사이에 맹(행정구역)(盟)이 붙기도 한다. 어쨌든 한족뿐만 아니라 소수민족에게도 적관이 있다. 한편 현대가 아닌 과거 청나라 시절 만주족의 경우 기인(旗人)은 주현에 속한 민인(民人)과 달리 旗籍으로 관리되었기 때문에 적관 대신 팔기(八旗)로 '만주 정황기인(滿洲 正黃旗人)'처럼 적었다.[11] 일제강점기 때 작성된 호적을 열람해 보면 전산화되기 직전 일본의 호적과 거의 유사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12] 지급시인 한단시 휘하이나, 중화민국에서는 (당대에는 더더욱) 중공의 행정구역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둘째치고, 게다가 중국 본토에서도 지급시 산하 현인 경우 지급시를 생략한다.[13] 황거에는 2025년 기준 약 3000명이, 오사카성에는 2010년 기준 800여명이, 고시엔 야구장에는 2011년 기준 699명이 본적을 두고 있다고 한다.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독도에는 2012년 기준 88명이 본적을 두고 있었다.[14] 本籍/Registered Domic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