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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5:43:14

볼프강 에른스트 파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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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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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판 데르 메이르 클라우스 폰 클리칭 에른스트 루스카 게르트 비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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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볼프강 에른스트 파울리
Wolfgang Ernst Pauli
파일:92c148da6e1514d20840d0bf4c7a5cc9.jpg
출생 1900년 4월 25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사망 1958년 12월 14일 (향년 58세)
스위스 취리히
직업 이론물리학자
학력 뮌헨 대학교 (이론물리학 / 박사)[1]
경력 괴팅겐 대학교
코펜하겐 대학교
함부르크 대학교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IAS)
수상 로런츠 메달 (1931년)
노벨물리학상 (1945년)
왕립학회 외국인 회원 (1953년)
마테우치 메달 (1956년)
막스 플랑크 메달 (1958년)
종교 가톨릭무종교(불가지론)
서명 파일:Solvay1933Signature_Pauli.jpg

1. 개요2. 생애3. 파울리 효과4. 물리학의 독설가5. 물리학의 양심6. 여담

[clearfix]

1. 개요

오스트리아물리학자. 파울리 배타 원리를 발견. 이 업적으로 1945년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2. 생애

1900년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수도 가톨릭으로 개종한 유대인[2] 가문에서 태어나 뮌헨 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공부했다. 이때 학부생 시절 교수의 추천으로 수리과학 백과사전의 상대성 이론 파트를 집필하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극찬을 받았으며, 또한 대학에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를 만나 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숨마 쿰 라우데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 후 괴팅겐 대학교에서 막스 보른 교수의 조교로 일했으며, 코펜하겐 대학교에서 닐스 보어 교수의 조교로 일했다.

1923년에는 함부르크 대학교에서 교수로 취임했는데, 그곳에서 지냈던 6년의 시간은 그의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는 양자역학에 있어서 질풍과 노도의 시절이었는데, 그 격렬한 시절을 오토 슈테른, 에리히 헥케, 봘터 바아데 등 그와 뜻을 같이 하는 동료들과 함께 보냈고, 그들과 많은 학문적 영감을 교환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1928년에는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 교수로 부임했고, 1929년 결혼했지만 1년만에 이혼하고 1934년 프란체스카 베르트람이란 여성과 재혼했으며 자식은 없었다. 1935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교수로 부임했다. 1958년 12월 15일 비교적 이른 나이에 취리히에서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3. 파울리 효과

전형적인 이론 물리학자로 실험과는 거리가 멀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실험실에 가면 사고를 자주 내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심지어 동료 실험 물리학자들 사이에서는 '파울리가 실험실에 들어오기만 해도 실험기기가 고장나버린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들은 이를 파울리 효과라고 불렀다. 이 부분은 2017년 5월 21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루었고 해당 회차는 워니프레임 웹툰 버전으로도 제작되었는데, 이 웹툰을 담당한 wony는 해당 화를 보고 아는 형이 생각난다고 발언했다.

함부르크에서 가장 유명한 한 실험물리학자는 실험실문이 단단히 잠겨있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파울리와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혹시라도 파울리효과로 실험장치가 망가질까봐서…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파울리 효과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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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물리학의 독설가

또한 양자역학이 불러온 물리학 혁명의 선두주자로서 기존의 고전역학적 개념을 철저하게 거부, 새로운 이론이나 착상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고전역학에 조금이라도 기대고 있다거나 혁명적인 신개념 제시가 동반되지 못하면 자비심 없이 짓밟아 버리는 것으로도 악명을 떨쳤다.

폴 디랙디랙 방정식을 통해 이 세상에는 반입자, 즉 반물질이라는 것이 있을 거라고 예견하자 과학계에서는 '증거는?' 하고 물었을 때, 폴 디랙은 '내 방정식이 그 증거다'라고 말하며 어그로를 세게 끌었고, 그런 폴 디랙을 가장 신랄하게 공격한 게 파울리다. 물론 몇년 뒤 실제 반입자의 활동이 관측되면서 모두 데꿀멍.

덕분에 젊은 물리학자들에게는 공공의 적 제 1호로 꼽히기도 했다고 한다.[3] 거기다 독설도 상당히 심해 한번 어떤 이론이 나오자 질문을 던졌는데, 그 질문에 물리학자가 대답하지 못하자 "확실히 예스든가 아니면 확실히 노든가 그것도 아닌 건 대체 뭐야"라고 신랄하게 깠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물리학자들이 그렇듯 그도 물리학 이외의 학문들을 은근히 무시하는 경향[4]이 있었는데, 결혼 1년만에 이혼한 전처가 화학자와 새살림을 차리자 털썩 주저앉으며 "투우사에게 갔더라도 이해를 하겠는데, 화학자라니..."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그런데 독설도 나름 그가 갖고 있던 유머감각과 훌륭한 대인관계 능력의 지배 하에 있었던 듯 하다. 1927년 솔베이 회의에서 폴 디렉이 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인간이 창조한 산물이라 신랄하게 비판했으나 파울리는 그에 노코멘트를 유지했다. 그러다 자신의 의견을 묻자 비로소 "음, 우리의 친구 디랙도 종교를 가지고 있고 이 종교의 첫 번째 계명은 '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폴 디랙은 그의 예언자'인 게 아닌가?"라고 받아쳤고 폴 디렉을 포함한 다른 과학자들이 이를 듣고 폭소하였다. 훗날 아인슈타인이 무종교적 신념에 잡혀 빅뱅 이론을 거부한 것을 고려하면 나름의 뼈있는 디스라고 볼 수도 있다.

5. 물리학의 양심

파울리는 이론적 완성도가 없는 그 어떤 이론이나 학설도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에[5], 그의 동료 과학자들은 저녈에 논문을 투고하기 전에 파울리에게 먼저 보내어 논문의 적정성을 미리 평가받았을 정도다.[6] 이러한 그의 철두철미한 면모는 물리학의 양심[7]이라는 평판으로도 이어졌다.

그는 그 어떠한 사이비 유사 과학도 당연히 거부했는데, 그가 말한 심지어 틀리지도 않았다[8]는 말이 유명하다.

6. 여담

뮌헨대학교 재학시절 아르놀트 조머펠트는 자신의 수학책에 사용될 상대성이론 부분을 파울리에게 작성하도록 했는데, 237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원고를 1년도 되기 전에 완성해서 스승인 조머펠트 뿐만 아니라 그 원고를 본 아인슈타인까지도 놀라게했다.


[1] 1921년.[2] 그의 증조부는 유대교 잡지 출판업자 였으며, 외할아버지는 유대인 저널리스트였다.[3] 여기에 당한 사람 중 한명이 다름아닌 리처드 필립스 파인만. 파울리는 파인만의 대학원 첫번째 세미나에 참석하였는데, "나는 이러이러해서 이 이론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파인만을 대차게 깠다. 다만 이때 옆에 있던 아인슈타인이 여기에 대해 "Nooooooo!"라고 한마디 했는데, 파인만은 자기 인생에 있어서 가장 멋진 No였다고. 사실은 파인만도 파울리의 지적에 대해 "위대한 사람이 즉시 문제를 깨닫고 자신을 일깨워 준 것"이라고 평했다.[4] 유명 물리학자 중에서 이런 성향은 드물지 않게 있는데, 대표적으로 원자핵을 발견한 러더퍼드가 있다.[5] 심지어 아인슈타인 면전에서 그의 이론을 비판했을 정도다.[6] 동료 평가[7] 성과 위주의 연구 부정 행위를 일절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8] Not even wrong, 반증 가능성이 없다는 말. 쉽게 말해 애초에 과학적 방법론으로 거짓임을 밝힐 수도 없는, 제대로 된 주장 자체가 아니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