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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민주당1 38석 | 국민자유당2 22석 | |||||
루마니아 구국연합 19석 | 루마니아 헝가리인 민주연합 10석 | |||||
신임과 보완 | ||||||
소수 민족 교섭단체 0석 | ||||||
야당 | ||||||
루마니아 결속동맹3 28석 | S.O.S. 루마니아 6석 | 청년당 5석 | ||||
무소속 6석 | ||||||
재적 134석 | ||||||
1. 사회민주당과 무소속 의원이 참여 중인 교섭단체. 2. 국민자유당과 무소속 의원이 참여 중인 교섭단체. 3. 루마니아 결속동맹과 무소속 의원이 참여 중인 교섭단체. | ||||||
좌측은 원로원(상원) 의석 수, 우측은 대의원(하원) 의석 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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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idul Social Democrat | |
약칭 | PSD |
한글명칭 | 사회민주당 |
상징색 | 빨간색 |
대표 | 소린 그린데아누 (대행) |
창당일 | 1992년 |
이념 | 사회민주주의 좌익대중주의 좌익 내셔널리즘 사회보수주의[1] 연성 유럽회의주의 |
정치적 스펙트럼 | 중도좌파 (혼합정치) |
당사 | Şoseaua Kiseleff, nr. 10 부쿠레슈티 |
국제 조직 | |
청년 조직 | 사회민주 청년(TSD) |
유럽 정당 | 유럽 사회당 |
유럽의회 정당 | 사회민주진보동맹 |
상원 의석 수 | 36석 / 134석 |
하원 의석 수 | 86석 / 330석 |
유럽의회 의석 수 | 11석 / 33석 |
웹사이트 |
1. 개요
루마니아의 주요 정당 중 하나이다. 동유럽의 사민주의 정당 중 가장 이질적이다.2. 상세
2.1. 창당기 (1992년 ~ 2001년)
이 당의 창립자라 할 수 있는 이온 일리에스쿠는 원래 루마니아 공산당 정권 하에서 과학기술 및 청년 부문을 담당하던 고위 관료였으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와의 노선 차이와 갈등으로 인해 1970~80년대에 좌천되었다. 이후 1989년 루마니아 혁명 당시 정치 전면에 복귀하여, 차우셰스쿠 축출 이후 과도정부를 이끈 루마니아 구국전선(FSN)의 중심 인물로 부상하였다.1990년 루마니아 최초의 자유선거에서 일리에스쿠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민족구국전선(FSN)은 집권 여당이 되었다. 그러나 1991년 내부 노선 갈등과 연정 운영의 필요성으로 인해 FSN은 사실상 연립 정부 체제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1992년 5월, FSN 내 권력 투쟁이 표면화되면서 페트레 로만이 당 주도권을 장악하자, 일리에스쿠는 지지 세력을 이끌고 FSN을 이탈하여 민주민족구국전선(FDSN)을 창당하였다.
같은 해 6월 민주민족구국전선(FDSN)은 일리에스쿠를 대선 후보로 공식 지명하였고, 일리에스쿠는 1992년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하였다. 1993년 7월, FDSN은 사회주의민주당, 공화당, 협동조합당 등과 합당해 루마니아 사회민주당(PSDR)으로 재편되었으며, 이후 중도좌파 연정 하에 1996년까지 집권을 이어갔다.
1996년 총선 패배로 야권으로 전환했던 PDSR은, 2000년 총선에서 루마니아 사회민주당(PSDR), 루마니아 인도주의당(PUR)과 함께 루마니아 사회민주 연합(PDSR)을 구성해 재집권에 성공하였다. 이후 2001년 6월, PDSR은 중도좌파 성향의 동명 정당인 PSDR과의 합당을 통해 현재의 사회민주당(PSD)로 전환되었고, 이 합당은 일리에스쿠 정치 노선의 최종 정당적 구심점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2.2. 전성기와 노선 전환 (2001년~2011년)
신생 사민당의 총리였던 아드리안 너스타세는 루마니아의 유럽연합과 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협상을 주도하며, 유로-대서양 통합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또 뛰어난 행정 능력과 정책 조율력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고, 경제 안정화와 국가 현대화를 이끌며 루마니아 민주화 이후 가장 실무적이고 효율적인 총리라는 평가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집권 기간 동안 정권 내부의 부정부패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이에 따른 유권자들의 정치 혐오도 점차 누적되었다.2004년 총선에서 사민당은 제1당 지위를 유지했지만 과반에는 미치지 못했다. 연정 파트너로 기대를 모았던 인본주의당(PUR)과 루마니아 헝가리인 민주연합이 보수 야권의 트라이안 버세스쿠 측에 합류하면서, 당시로서는 충격적이게도 사민당이 정권 구성에 실패했다. 같은 해 대통령 선거에서는 너스타세가 결선까지 진출했으나, 박빙의 승부 끝에 버세스쿠에게 패배하며 사민당은 완전히 야권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이듬해 열린 전당대회에서는 당의 원로이자 구주류를 대표하던 이온 일리에스쿠가 미르체아 죠아너에게 당권을 내주며, 세대교체와 노선 변화의 신호탄이 올랐다. 그러나 죠아너 역시 2009년 대선에서 패배했고, 2010년에는 보다 젊은 리더십을 표방한 빅토르 폰타가 당 대표로 선출되며 당내 권력 구도가 재편되었다. 이후 사민당은 기존의 노선을 바꿔 보수·자유주의 세력과의 전략적 연합을 통해 정권 재탈환을 모색했고, 이러한 흐름은 2011년 국민자유당 및 인본주의(PC)과 함께 결성한 사회자유연합(USL)의 출범으로 이어졌다.
2.3. 세력 축소 (2011년 ~ 2014년)
2011년 결성된 사회자유연합(USL)은 일종의 대연정으로, 반(反)버세스쿠 전선을 형성하며 빠르게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했다. 2012년에는 미하이 러즈반 운구레아누 내각 불신임을 계기로 USL이 집권에 성공하였고, 사민당의 빅토르 폰타가 총리에 취임하였다. 같은 해 총선에서도 USL이 압승을 거두며 사민당 중심의 정치 질서가 한때 재건되었다.그러나 2014년, 사회자유연합(USL)은 내각 운영 방식과 대선 후보 지명을 둘러싼 갈등 끝에 붕괴되었고, 사민당이 단독으로 정권을 유지하게 되었다. 같은 해 대선에서 사민당은 빅토르 폰타를 후보로 내세웠으나, 예상과 달리 국민자유당 출신의 클라우스 요하니스 후보에게 패배하면서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이후 사민당 내부에서는 당 운영 방식과 부패 문제를 둘러싼 비판이 고조되었고, 폰타 총리는 2015년 부패 혐의로 기소된 뒤 사임하였다.
2.4. 현재 (2015년 ~ 현재)
폰타의 몰락 이후 2015년부터 당을 이끈 리비우 드라그네아는 대중 동원력과 조직 장악력을 바탕으로 중심 세력으로 부상했으나, 동시에 사법부 독립성과 법치주의를 훼손하려는 시도로 국내외에서 강한 비판을 받았다. 2016년 총선에서 사민당이 다시 한 번 압도적 승리를 거두며 정권을 탈환했으나, 드라그네아는 실형을 선고받고 2019년 수감되었다. 이 시기 사민당은 사법개혁, 언론통제 시도 등 권위주의 행보로 유럽연합 및 유럽 사회당과도 마찰을 빚었고, 결국 유럽 사회당으로부터 자격 정지를 당하기에 이르렀다.2019년에는 수감된 드라그네아를 대신해 비오리카 던칠러가 사민당 역사상 첫 여성 총리로 취임했으나, 정권 운영에 실패하면서 같은 해 총선과 대선에서 모두 패배했다. 이러한 참패는 사민당 집권 기간 동안 저질렀던 사법 제도 훼손과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유럽 사회 전반의 깊은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정치적 정화 과정을 통해 오히려 유럽 사회당이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2020년부터 당을 이끈 마르첼 치올라쿠는 드라그네아 이후 당을 장악한 권위주의적 정치 문법에서 벗어나, 보다 실용적이고 온건한 노선을 내세우며 당 개혁에 나섰다. 사민당은 2020년 총선에서도 제1당 지위를 유지했지만, 이전 정부의 혼란스러운 통치에 대한 여론의 반감으로 단독 정권 수립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2021년 루마니아 정치 위기 국면에서 국민자유당(PNL)과 다시 한번 대연정 협상을 통해 니콜라에 치우커 내각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사실상 정권 복귀에 성공했다. 2023년 6월 니콜라에 치우커가 물러난 뒤 6월 15일 치올라쿠가 정식 총리로 취임해 오랜만에 총리를 배출하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3. 성향
오늘날까지도 구 루마니아 공산당의 조직 문화와 정치적 사고방식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는 정당으로 평가된다. 이는 같은 공산당 출신 기반을 가진 동유럽의 다른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에 비해서도 두드러지는 특징으로, 사민당은 오랜 시간 동안 권위주의적 체제의 유산을 청산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뚜렷한 이념보다는 권력 유지와 인맥 중심의 정치 운영에 기대 온 탓에, 사회민주주의 정당으로서의 색깔은 점점 흐려졌다.정책적 성향 면에서는 사회·문화적 측면에서는 보수적이지만, 경제정책에서는 복지 확대와 재분배 중심의 좌파적 노선을 유지하는 이중 구조를 보여준다. 이런 혼합적 성격은 루마니아 사회 전반의 보수적 문화 환경과, 과거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대중의 양가적 태도를 모두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30년이 흐르면서 점차 세대교체가 진행되고 있으며, 구 공산당 출신 정치인들의 영향력도 점차 약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서구 사회민주주의 정당들과 유사한 방향성을 점차 추구하고 있으며, 조직 내 이념 정립과 가치 재정립에 대한 논의도 활발히 전개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