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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제2훈련소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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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국 Seo Sanggook | |
학력 |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제관계학 / 석사[1]) 대전대학교 대학원 (군사학[2] / 박사[3]) |
복무 | 대한민국 육군 |
기간 | 1984년 ~ 2017년 |
임관 | 육군사관학교 (40기) |
최종 계급 | 소장 |
최종 보직 | 육군교육사령부 전투발전부장 |
주요 보직 | 육군훈련소장 제22보병사단장 제3야전군사령부 작전처장 육군사관학교 생도대장 국회 협력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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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육군의 군인. 최종 계급은 소장. 육군훈련소 소장을 역임했다.2. 생애
강원도 춘천시 출신으로 1980년 육군사관학교(40기)에 입교하여 1984년 학사 학위 취득과 함께 육군 보병 소위로 임관하였다.2005년 대령 1차 진급 후 연대장 보직을 거쳐 대한민국 국회 협력관 보직을 수행하였으며, 2009년 준장 1차 진급 후 육군사관학교 생도대장, 제3야전군사령부 작전처장을 거쳤다. 2012년에는 소장 1차 진급하고 제22보병사단장이 되었으며, 2014년 대형 사고가 터져서 보직해임된 후 육군훈련소장으로 전보되었다. 이후 육사 42기 출신 구재서 소장에게 훈련소장직을 넘겨주고 육군교육사령부 전투발전부장을 끝으로 전역하였다.
3. 주요 경력
- 중령
- 대령 2005년 1차 진급
- 대한민국 국회 협력관
- 준장 2009년 1차 진급
- 소장 2012년 1차 진급
- 전역 2017년 xx월
- 한남대학교 경영·국방전략대학원 국방획득정책학과 교수
4. 여담
- 중위부터 소장까지 전 계급을 모두 1차에 진급하였으며, 육군사관학교 생도대장 등 엘리트 코스만 밟아왔다. 제22보병사단 중 발생한 대형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중장은 물론 대장 진급까지 바라볼 수 있었다. 결국 사단장 재직 중 발생한 대형 사고로 육사 동기가 4성 장군이 되는 것을 지켜본채 전역해야만 했다.
- 부친은 육사 16기 출신 서정규 씨이며, 서정규 씨는 장세동의 육사 동기이기도 하다.
- 독실한 개신교인이다.
[1] 석사 학위 논문: 남북한 군비통제정책의 비교 분석과 전망에 관한 연구 (1994. 08.)[2] 군사정책/전략 전공[3] 박사 학위 논문: 5주간의 신병훈련이 비만장병의 체력 및 혈중 생화학적 변인에 미치는 영향 (2017. 02.)[4] 별들의 무덤이라는 제22보병사단의 별명답게 전임 사단장인 조성직 소장(육사 38기)은 이임 1개월을 남기고 북한군 노크 귀순 사건으로 인해 보직해임됐다. 서상국 소장의 후임 사단장으로 최병혁 소장(육사 41기)이 부임했다. 최병혁은 보란듯이 전임들이 못한 이임식을 박한기 당시 8군단장의 주관아래 홀가분하게 치르고 육군본부에서 보직을 받은 후 중장 진급은 물론 대장 진급까지 성공했다. 이후 김정수 장군과 권영호 장군은 무사히 임기를 마쳐서 중장 진급에 성공하였으며 이승오 장군은 사단장 취임 2주 만에 발생한 월북 사건을 잘 수습하여 합동참모본부의 작전부장으로 영전할 수 있었고, 윤봉희 장군은 휘하 장병이 부대 철책을 넘으려는 오토바이 운전자들을 잘 제압한 덕분에 대통령 표창을 받고 국방부 정책기획관으로 영전하였다. 그러나 표창수 장군은 경계작전 실패로 보직해임되어 육사 47기 동기인 손식 장군이 4성 장군이 되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고, 육사 48기 정형균 장군 역시 사태 수습에 노력했음에도 휘하 장병의 허위 제보로 보직해임되어 육사 동기 3명이 중장 진급하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다.[5] 그리고 별들의 무덤이라는 제22보병사단의 별명답게 여기에서 보직해임 당한 사단장들의 다음 보직들이 하나같이 비참하다. 조성직 소장은 국군사이버사령관으로 좌천, 서상국 소장도 육군훈련소장으로 좌천, 표창수 소장도 육군보병학교장으로 좌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