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04:47:43

서울시립교향악단

서울시향에서 넘어옴

{{{#!wiki style="margin:-12px -0px"<tablebordercolor=#ae1932>
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
}}}
{{{#!wiki style="color: #000,#fff; margin: -0px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colbgcolor=#ae1932><colcolor=#fff> 지방공기업 서울특별시 서울아리수본부 | 서울특별시 하수도
서울교통공사 | 서울주택도시공사 | 서울특별시농수산식품공사 | 서울에너지공사 | 서울시설공단 | 서울물재생시설공단
지방출연기관 서울의료원 | 서울연구원 | 서울경제진흥원 | 서울신용보증재단 | 세종문화회관 | 서울시여성가족재단 | 서울시복지재단 | 서울문화재단 | 서울시립교향악단 | 서울디자인재단 | 서울장학재단 |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 | 서울특별시50플러스재단 | 서울디지털재단 | 120다산콜재단 | 서울관광재단 | 서울특별시사회서비스원
}}}}}}}}} ||

대한민국의 관현악단
{{{#!wiki style="color: #FFCC00; 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color: #373A3C; margin:-6px -2px -12px"
KBS 교향악단 KNN 방송교향악단 강남 심포니 오케스트라 강릉시립교향악단
경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경상북도립교향악단 과천시립교향악단 광주시립교향악단
군산시립교향악단 군포 프라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당진챔버오케스트라 대구MBC교향악단
대구시립교향악단 대전시립교향악단 목포시립교향악단 부산 심포니 오케스트라
부산시립교향악단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서울시립교향악단 성남시립교향악단
수원시립교향악단 심포니 송 양주시립교향악단 울산시립교향악단
원주시립교향악단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인천시립교향악단 전주시립교향악단
제주도립교향악단 창원시립교향악단 천안시립교향악단 청주시립교향악단
춘천시립교향악단 충남교향악단 충북도립교향악단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필하모니안즈서울 }}}}}}}}}
서울시립교향악단
Seoul Philharmonic Orchestra (SPO)
파일:서울시립교향악단 로고.svg파일:서울시립교향악단 흰색 로고.svg
<colbgcolor=#f49e00><colcolor=#fff> 정식명칭 <colbgcolor=#ffffff,#2d2f34>재단법인 서울시립교향악단
독어명칭 Seouler Philharmoniker
불어명칭 Orchestre philharmonique de Séoul
창단 1948년 1월 (서울교향악단)
1950년 10월 (해군정훈음악대)
1957년 8월 (서울시립교향악단)
2005년 6월 (재단법인 서울시립교향악단)
거점 지역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장르 클래식(고전 음악)
콘서트홀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대로 세종문화회관
대표이사 손은경
음악감독
상임지휘자
얍 판 츠베덴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네이버TV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1. 개요2. 특징3. 연혁
3.1. 창단 초창기(1948~1980)3.2. 1980~1990년대3.3. 2000년대3.4. 재단법인 독립과 정명훈 영입3.5. 정명훈 사임과 그 이후3.6. 오스모 벤스케 체제3.7. 얍 판 츠베덴 체제
4. 관현악단 조직
4.1. 역대 지휘자4.2. 아티스트4.3. 단원
5. 녹음과 음반
5.1. 도이치 그라모폰 음반5.2. 오스모 벤스케 음반5.3. 그 외 음반
6. 사건사고
6.1. 영어 명칭 문제6.2. 박현정 대표와의 갈등 및 소송전

[clearfix]

1. 개요

1948년 창단된 서울을 거점으로 하고 있는 관현악단이자, 서울특별시 산하 지방 공공기관. 서울시향이라는 약칭으로 주로 불리며 영문 약칭으로는 통상 SPO를 사용한다. 서울시향은 KBS 교향악단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이다.

현재 주요 공연장은 예술의 전당, 롯데콘서트홀, 세종문화회관이다.

현재 음악감독은 네덜란드 출신의 얍 판 츠베덴[1]이며, 첫 계약기간은 2024년 1월부터 2028년 12월까지 5년이다.

2. 특징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랜 관현악단 중 하나이며, 한국을 대표하는 관현악단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창단 이후 상당기간 동안 KBS 교향악단(국립교향악단)과 더불어 대한민국 양대 관현악단의 위치를 지켜왔다.

대체적으로 혼란스러웠던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꽤 심한 부침을 겪기도 했고, 내부 불화나 대립이 확대되어 스캔들로 번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 악단을 거쳐간 지휘자들의 경우, 서울시향에 객원으로라도 출연하지 않을 정도로 관계가 악화되는 경우가 많았다. 1990년대 이후 연주 실력이 크게 저하되면서 극심한 암흑기를 겪었다.[2]

2002년 이명박 서울시장이 취임한 후 서울시향 재건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2005년 서울시향이 재단법인으로 전환되었고 동시에 정명훈이 상임지휘자로 취임하면서 급격히 달라지게 되었다. 지휘자의 이름값도 있고, 연주력도 크게 향상되었다.[3] 또 재단법인으로 전환된 후 재정 문제가 탄탄해져 여러 기획 연주회나 해외 유명 음악인과 지휘자의 초빙, 해외 순회 공연 등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서울시에서도 계속 재정 지원을 하고 있고, 대기업이나 기타 재단의 스폰서도 받고 있다.

주요 공연장은 세종문화회관, 예술의전당, 롯데콘서트홀이다. 2005년 이전 서울시향이 세종문화회관의 관리하에 있을 때는 세종문화회관을 주요 공연장으로 사용했다. 1988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 개관하면서 대부분의 오케스트라들이 세종문화회관을 떠나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으나 세종문화회관 산하 단체였던 서울시향은 세종문화회관에서 정기공연을 지속하는 유일한 오케스트라가 되었다. 2005년 이명박 시장이 서울시향을 재단법인화시키고, 동시에 정명훈을 영입하면서 비로소 세종문화회관으로부터 어느정도 자유로워진 서울시향은 이후 예술의 전당에서 대부분의 콘서트를 열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는 1년에 1~2번[4] 정도만 개최할 뿐이며, 최근에는 2016년 8월 개관한 롯데콘서트홀에서도 자주 콘서트를 열고 있다. 다만 단원들의 실내악 연주회 같은 경우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을 주로 이용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의 경우 나중에 지어졌기 때문에 음향 상태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록 세종문화회관에서 독립했지만 여전히 지금도 연습실[5]이나 사무실은 세종문화회관 것을 그대로 쓰고 있다.

3. 연혁

3.1. 창단 초창기(1948~1980)

해방 후 한반도에서는 다양한 음악 재건 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정규 관현악단의 창설 운동도 있었다. 1945년 10월에 작곡가 현제명과 바이올리니스트 계정식의 발의로 해방 후 최초의 관현악단인 고려교향악단이 창단되었는데, 3년 뒤 운영난과 악단 내부의 분란 등으로 인해 해체되고 잔존 단원들과 서울관현악단의 단원들이 모여 서울교향악단이라는 악단이 탄생했다.

이 악단이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직접적인 모체가 되었고, 공식 창단 연도도 1948년으로 인정되고 있다.[6] 초대 상임 지휘자는 바이올리니스트 출신인 김생려가 맡았는데, 2년 뒤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이 악단도 해산되고 말았다. 미처 피신하지 못한 단원들이나 관계자들은 북한군의 서울 점령 후 월북 혹은 납북되었고, 연습실과 악기, 악보도 소실 또는 파손되는 등 재기불능 상태 직전까지 갔다.

하지만 1950년 가을에 피난지인 부산에서 해군 소속의 '해군정훈음악대' 라는 단체로 가까스로 재건되었고, 휴전 후인 1954년에는 해군교향악단으로 개칭했다. 1957년에 해군에서 서울시 측으로 관리 주체가 넘어가면서 민간 악단이 되었고, 이름도 서울시립교향악단으로 바뀌었다. 동시에 초대 상임 지휘자였던 김생려가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재차 상임을 맡았는데, 1961년에 단원들과 불화가 생기는 바람에 물러나고 다시 미국에 이주했다.

후임으로는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유학하고 온 김만복이 부임했고, 김만복은 1969년까지 재임하면서 그 동안 고전에서 초기 낭만에 국한되었던 연주 곡목을 후기 낭만에서 근현대까지 적극적으로 확장했다. 뒤이어 미국과 오스트리아에서 유학한 원경수가 1970년에 제3대 상임 지휘자로 부임했지만, 악단이나 운영진과 관계가 그다지 좋지 않았는지 불과 한 시즌만 지휘하고 물러났다.

원경수의 사임 직후에는 미국 유학을 갓 마치고 귀국한 정재동이 전임 지휘자라는 직책으로 초빙되어 공백기를 메꿨고, 1974년에 제4대 상임 지휘자로 공식 부임했다. 상임지휘자가 된 후 정재동은 단원 오디션제를 실시했다. 단원들의 큰 반발이 있었지만 정재동의 굳은 의지로 단원 오디션이 서울시향에서 처음으로 실시되었고, 그 결과 실력이 형편 없는 일부 단원들이 퇴출되었다. 이후 빈 자리를 실력있는 단원들로 채우면서 서울시향이 한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정재동은 이후 16년 동안 장기 재임하면서 일반적인 관현악 연주회 외에도 대중적인 팝스 콘서트나 신진 작곡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범세대 음악회' '청소년 음악회'[7] 등의 기획 연주회를 개최하는 등 활동 영역을 넓혔고, 신규 단원을 적극 영입해 100명 이상의 대규모 악단으로 탈바꿈시켰다. 정재동 재임시기에 서울시향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으며, 유럽투어를 단행하여 '동유럽의 1급악단'이라는 호평을 얻었다.

1978년에는 악단 운영권이 서울특별시에서 세종문화회관으로 넘어갔다.

3.2. 1980~1990년대

명예지휘자 김만복 지휘의 1983년도 실황[8]
정재동이 1990년 퇴임한 후에는 박은성이 후임으로 들어왔지만, 1년 뒤인 1991년에 조기 퇴임하고 다시 상임 공석 상태가 몇 년 동안 유지되었다. 1994년에 원경수가 다시 초빙되었으나, 1996년까지 단기 재임하고 물러나고 말았다. 지휘자의 단임과 공석 상태가 반복되자 악단 안팎에서도 비판 여론이 일기 시작했고, 1999년에는 세종문화회관이 경영난 타개를 위해 법인 단체로 바뀌면서 잠시 명칭이 '서울시교향악단' 으로 바뀌었다. 명칭 변경과 동시에 단장으로 들어왔던 지휘자 정치용도 여기에 휘말렸다가 2001년 불명예 퇴진했고, 영문 명칭과 관련한 어느 민간 악단과 고소전을 벌이는 등 명성과 실력에 꽤나 먹칠을 했다.

이 시기, 운영권 및 재정 분배 문제로 서울시향과 세종문화회관은 크게 대립하게 되었다. 게다가 당시 서울시향의 실적저하 문제가 클래식계에 큰 문제가 되자 2000년 세종문화회관은 단원들을 대상으로 한 오디션을 실시하였고 그 결과 몇 명의 단원이 해고되었다. 이에 서울시향이 오디션에 격렬하게 반대하며 파업에 들어갔고, 법정 투쟁을 벌이는 등 흑역사급 사태가 연이어 연출되었다. 결국 이때 해고된 단원들은 결국 전원 복직된다.

1990년대 이후 연주실력도 상당히 저하되면서 서울시향은 깊은 침체기에 빠져들었다.[9] 오랜 라이벌이었던 KBS 교향악단과의 격차도 크게 벌어지게 되었다. 1980년대말 이후 KBS 교향악단은 KBS의 안정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중견급 해외 지휘자를 초빙하는 등 국민소득의 급증과 더불어 높아진 시민들의 예술적 욕구에 어느 정도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여 가시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었다. 국내의 저명한 연주자들을 잇달아 단원으로 영입했고, 국내 최초로 4관 편성을 구성하여 당시 국내에서 자주 공연되지 않던 말러, R. 슈트라우스, 브루크너 등의 대작들을 자주 연주했다. 이처럼 KBS 교향악단이 양적 측면과 질적인 측면에서 모두 성장을 거듭하며 국내 클래식 팬들에게 크게 인기를 얻고 있던 사이 서울시향은 정체 내지는 퇴보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서울시의 제한된 재정 지원은 KBS 교향악단과 차이가 있었고, 공무원이라는 안정된 신분으로 인해 단원들은 안주하는 경향을 보였다. 1980년대 후반 잇달아 새로 창단된 신생 교향악단들 중 부천필, 코리아 심포니, 수원시향, 대전시향 등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에는 서울시향이 이들 신생 교향악단들에게 밀린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침체기를 보냈다. 예술의 전당 건립 후 대부분의 오케스트라들이 예술의 전당에서 연주했지만 서울시향은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음향사정이 좋지 못한 세종문화회관에서 주로 공연을 해야했던 점도 관객들의 발길을 돌리는데 한 몫했다.

3.3. 2000년대

침체기가 지속되던 와중에 서울시향은 2000년에는 창단 이래 최초의 외국인 상임 지휘자인 마르크 에름레르를 초빙했다. 이것은 사실 서울시향이 원경수, 박은성, 정치용 등 당시 국내 중견 지휘자들과 모두 불과를 겪게 되면서 국내에서 마땅한 지휘자를 물색하기 힘들었던 상황에서 나온 고육지책에 가까웠다. 외국인 지휘자를 초빙하여 당장 화제를 끌어보려는 의도가 다분히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지휘자의 역량과 명성이 그에 미치지 못해 크게 좋은 반향은 얻지 못했다. 당장 당시 KBS 교향악단이 모세 아츠몬을 비롯하여 박탕 조르다니아, 드미트리 키타옌코, 제임스 저드 등 당시 해외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를 갖고 있는 지휘자들을 잇따라 초빙하면서 국내 클래식 애호가들의 시선도 그만큼 높아져 있었다. 아츠몬, 조르다니아, 키타옌코, 저드는 모두 베를린 필을 객원 지휘한 적이 있고 마이너 레이블에서 낸 음반들을 통해 실력 있는 지휘자라는 평을 받아온 지휘자들이다. 반면 서울시향의 에름레르는 KBS 교향악단의 외국인 지휘자들과는 네임 밸류에서 확연히 차이가 나는 지휘자였다. 에름레르는 주로 발레오페라 무대에서 경력을 쌓아왔을 뿐, 콘서트 지휘자로서의 경력은 일천했고, 알만한 이름 있는 콘서트 교향악단을 맡은 적도 없었다. 어쨋든 서울시향 측은 해외 지휘자라는 점을 내세워 크게 홍보해 왔다. 에름레르는 2002년 4월에 악단과 리허설을 마친 직후 급성 신부전으로 갑자기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졌다. 에름레르는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회복하지 못하고 이튿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뜻하지 않게 지휘자를 잃은 악단에서는 같은 해 예술 고문 자격으로 곽승을 영입했고, 곽승은 2003년에 공식적으로 상임 지휘자에 취임했다. 하지만 불과 1년도 못되어 세종문화회관 측에서 해임 선언을 해버렸는데, 사유는 출근 일수 미준수였다.[10] 하지만 곽승과 단원들은 회관 측의 발표를 독단이라고 맹렬히 디스했고, 또 다시 회관과 악단 사이의 관계가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곽승을 해임시켰던 당시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뇌물수수 혐의로 중도에 강판당해 처벌받았다.

3.4. 재단법인 독립과 정명훈 영입

2002년 서울시장에 취임한 이명박[11]은 침체 일로에 있는 서울시향을 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2003년 서울시향은 로린 마젤을 객원 지휘자로 초빙하여 화제가 되었다. 당시 그정도 네임 밸류를 갖춘 지휘자가 국내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큰 화제를 모았다. 당시 로린 마젤의 객원 지휘는 이명박 시장의 특별지시에 의해 성사된 것이었다. #[12] 공연 이후 로린 마젤을 수석 객원 지휘자로 영입하는 것을 추진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성사되지는 않았다.

이명박 시장은 2004년부터 서울시향을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성장시키기 위한 방안의 일환으로 서울시향을 재단법인으로 만드는 방안을 추진했다. 서울시향을 세종문화회관에서 독립시켜 서울시가 세종문화회관을 거치지 않고 직접 시향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2005년 1월 서울시는 서울시향 재단법인 관련 조례안을 입법예고했고, 3월 서울시의회를 통과하여 마침내 재단법인으로 출범하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서울시는 2005년 1월 정명훈을 상임지휘자로 영입한다고 발표했고, 3월 정식 취임했다.

아울러 서울시는 단원들에 대한 처우를 대폭 개선해주는 한편 단원평가제를 도입하여 단원들의 기량을 향상시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 단원 평가제는 정명훈의 요구 조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상당수 단원들이 단원평가제에 반발하면서 이후 서울시향이 상당한 내홍을 겪는 원인이 되었다. 정명훈의 상임지휘자 취임 회견에서 단원평가제의 구체적인 내용이 발표되었는데, 외부 지원자를 모집함과 동시에 기존 단원들에 대한 전면 오디션을 실시한 후 악단을 재창단하겠다는 방침이었다. 이에 단원들은 “사실상의 정리해고”라며 격렬하게 반발했고 오디션을 거부하며 즉각적인 파업에 돌입했다. 하지만 심각한 기량 저하에도 불구하고 철밥통을 유지하고 있는 서울시향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 단원들의 파업에도 불구하고 서울시향의 단원 모집 공고가 정식으로 나갔고 그 결과 외부지원자 606명이 몰려 6.5대1의 경쟁률을 보였으며, 특히 수석주자의 경우 21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단원 오디션도 예정대로 실시되었다. 정명훈은 단원들의 격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오디션을 강행했지만, 타협책으로 기존 단원들을 70% 이상 재기용하기로 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단원들은 오디션 거부를 철회했다. 이러한 이야기가 밖으로 퍼져 나가면서 서울시향에 지원한 수백명의 음악가들이 공정치 못한 경쟁이라고 반발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 오디션 후 실제로 상당수의 서울시향 단원들은 그대로 자리를 유지하게 되었다. 정명훈의 굳은 의지로 강행된 서울시향 단원 오디션은 많은 갈등을 낳았지만 결과적으로 서울시향의 가시적인 수준 향상으로 이어졌다. 또한 서울시가 약속한 단원들의 대폭적인 처우 향상도 실현되었고, 이러한 처우 향상 덕분에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 수석 출신 연주자들의 영입도 이루어지게 되었다.[13]

또한 서울시향은 상임작곡가 제도를 도입하여 세계적인 작곡가 진은숙을 초빙했다. 정기 연주회를 시리즈별 세분화하고 횟수도 대폭 늘렸으며, 아르스 노바라는 현대음악 전문 공연 시리즈를 만들어 브랜드화하였다. 기타 공익적인 활동도 체계적으로 정비해 퇴근길 음악회, 우리동네 음악회 등의 시도가 행해지고 있으며 해외 투어 공연도 활발하게 다니는 중이다. 정명훈 음악감독의 리드 아래 미국 투어와 유럽 투어를 진행했으며, 세계 최상급 클래식 음악 음반사인 도이치 그라모폰 레이블과 계약하여 10종의 음반을 발매하였다.[14]

2011년 추석 연휴 동안 방북했던 정명훈이 귀국 후 연말에 북한의 조선국립교향악단과 합동 공연을 갖자고 북측에 제의했지만, 그 연말에 김정일이 죽는 바람에 성사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정명훈이 취임한 이후에는 서울시향은 세계적인 위상이 생겼다. 2014년에 세계 최고로 뽑히는 BBC 프롬스 페스티벌에 초청되었으며 그 실력이 인정된 셈이다. 또한 일본의 한기자는 "한국의 오케스트라 발전이 부러울 정도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상술했듯 DG와 계약해 여러 음반들을 발매했을 정도로 당시 서울시향은 최전성기를 달렸다.

3.5. 정명훈 사임과 그 이후

그런데 2014년말 박현정 서울시향 대표가 시향 사무국의 일부 직원들에게 폭언, 폭행을 저질렀다는 추문이 터지면서 대표와 직원 사이의 소송전이 시작되었다. 17명의 서울시향 사무국 직원이 언론사를 상대로 호소문을 배포한 것인데, 이에 박현정 대표는 시향 사무국의 방만한 운영을 바로잡고자 강행해온 개혁에 대한 반발이라고 맞서며, 이와 같은 자신에 대한 공격이 부당하고 그 배후에 정명훈 지휘자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불똥이 옮겨간다. 정명훈 지휘자가 악단을 독재적으로 부리면서 항공료를 횡령하거나 지나치게 높은 대우를 받고 있었고 사무국이 이를 묵인하고 편승하면서 공정한 행정을 하지 못했다는 내용#[15]이 그것인데, 갈등이 커지면서 직원 소송전에 이어 정명훈까지 검찰 조사를 받게 된다. 이에 정명훈 측에서는 지휘자 재계약에 대해 부정적 의사를 내놓았으며, 1차적으로 악단측의 요청으로 2016년까지 연주를 하기로 하고 새 시즌 일정까지 다 나와서 예매까지 오픈되었다. 하지만 계속된 논란으로 결국 2015년 마지막 연주를 끝으로 상임지휘직을 사임했다. 정명훈과 관련된 여러 의혹 가운데 항공권 횡령에 대해서는 횡령 혐의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어 '혐의없음' 처분으로 사건이 종결되었다.

정명훈 사임이 악단에 끼친 가장 큰 영향은 사실 DG과의 계약 문제였다. DG에서 정명훈과 서울시향이 발매한 음반들은 타이틀 당 20,000장 가량이 판매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현재 클래식 음반 시장에서 메이저 오케스트라들이나 연주자들의 타이틀이 2,000장도 안팔리는 것을 감안할 때 별다른 홍보 없이도 10배 이상씩 팔리는 서울시향의 음반들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 수준이었다. 결국 DG측에서 신보 10장을 추가 연장계약을 제안했는데 정명훈이 사임하면서 흐지부지되었고 당초 계획되었던 브람스 교향곡 4번 음반 발매까지 취소되었던 것. DG로서는 정명훈이 없는 서울 시향을 필요로 하지도 않고 시향측에서도 계약 연장을 요구하지 않으니 벌어진 일이다. 결국 DG-Decca에서는 기존에 계약중인 오자와 세이지-사이토 키넨 오케스트라/미토 챔버 오케스트라 조합 이외에도 다른 아시아권 오케스트라를 찾아 상하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새로 계약했다.[16]

이 사태 이후로는 악장 스베틀린 루세브 등 각종 수석들이 계약이 종료된 후에 떠났으며, 서울시향은 현재까지 부악장인 신아라와 웨인 린이 이 오케스트라의 악장역할을 하고있다. 또한 정명훈이 떠난 2015년 이후인 2016-2019년까지는 상임지휘자가 공석인 이유로 2017년부터는 상임지휘자가 아닌 두 명의 수석객원지휘자가 지휘했다. 유타 심포니의 음악감독인 티에리 피셔와 네덜란드 라디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 마르쿠스 슈텐츠가 수석객원지휘자로 선출되었다. 티에리 피셔는 3월 9/10일 첼리스트 트룰스 뫼르크와 협연한 쇼스타코비치 첼로 협주곡 1번, 하이든 교향곡 1번, 그리고 브람스 교향곡 1번으로 2017 시즌을 시작했다.[17]

한편, 정명훈과 서울시향의 재회는 2016년 8월 롯데콘서트홀 개관연주회에서 이루어졌다. 정명훈과 서울시향의 결별이 큰 이슈였던 사건인 만큼 재회 콘서트는 굉장한 주목을 받았고 티켓 또한 일찌감치 매진되었다. 베토벤의 서곡, 생상의 3번 교향곡을 연주하였는데 관객의 반응이 폭발하였던 것은 물론, 정명훈을 다시 만난 백스테이지가 울음바다였다는 후문이다. 이후로도 끊임없이 서울시향 복귀설이 나오고는 있지만, 문제의 원인이었던 박현정 前대표-서울시향 직원간의 소송전이 여전히 진행중이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입장도 애매하였기 때문에 현실적인 움직임은 없는 상태다.

2016년 11월에는 객원악장으로 빈필하모닉 악장이 오게되어서 화제가 되었다. 그외에도 뉴욕필 악장등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악장을 초청해오면서 어느정도 객원악장 체제도 생겼다.

당초 2017년말 상임지휘자 선출이 미뤄지면서 2018년에도 일단 상임지휘자 없이 티에리 피셔와 마르쿠스 슈텐츠가 수석객원지휘자로서 1년을 이끌고 나갈 예정이다. 티에리 피셔는 내년에 번스타인의 캉디드 전곡 등을 지휘할 예정이며 연말 베토벤 교향곡 9번도 지휘한다. 마르쿠스 슈텐스는 모차르트 교향곡 39번, 말러 교향곡 5번등의 독일 교향곡들을 지휘할 예정. 그외의 객원지휘자로 러시아 레파토리의 떠오르는 신예 지휘자 바실리 페트렌코, 시벨리우스 스페셜리스트 오스모 벤스케, 스위스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인 젊은 지휘자 리오넬 브랑기에등의 지휘가 예정되어있다.

두 수석객원지휘자의 연주가 그런대로 호평을 받고 있으며 악단과의 관계도 잘 유지하고 있는 것이 다행인 점이다. 특히 해외연주자로서는 쉽게 서기 어려운 '우리동네 음악회' 등 찾아가는 공익공연에도 활발하게 출연하고 있다. 또 두 상임지휘자가 장기로 삼는 음악레퍼토리나 지휘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악단의 역량을 다양한 측면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악단에 상주하지 않는 직책에 불과하다 보니 음악감독이나 상임지휘자보다는 파트너쉽이 느슨할 수 밖에 없으며, 강력한 리더십이 존재하지 않아 정명훈 지휘자가 구축해놓은 서울시향 고유의 사운드가 퇴색하고 있기 때문에 악단의 캐릭터가 희미해져 가는 점은 단점으로 지적된다.

2018년 3월, 강은경 前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새로운 대표이사로 취임하였다.서울시향 대표에 강은경 교수

2018년 12월에는 정명훈 지휘자가 2016년 이후 2년여만에 서울시향 객원지휘자로 나선다. 도이치 그라모폰 120주년 기념 갈라콘서트 무대에 서는것. 일각에선 정명훈의 복귀설이 나오지만 정명훈 본인은 상임지휘자로서의 무거운 책임감을 오랫동안 졌다면서 선을 그었다.# 하지만 정명훈이 서기로 했던 연주회의 지휘자가 리오넬 브랑기에로 변경되었다고 공연기획사측에서 밝혔다. 이유는 정명훈의 건강상 문제로 장거리 비행이 어려워져서라고 한다. 브랑기에는 이미 서울시향과 호흡을 맞춰보기도 했기 때문에 이런점이 반영된걸로 보인다.# 천안예술의 전당에서 정명훈 지휘로 12월 9일 갖기로 한 드림콘서트도 취소되었다.#

2018년 12월 17일에 서울시향과 서울시 합창단은 애국가를 새로 녹음해서 음원 저작권을 국가에 기증했다. 이 새 애국가 음원은 전 부지휘자 최수열의 지휘로 녹음되었다. 2020년 현재 행정안전부 홈페이지에 게시되어 있는 애국가 음원은, 1995년에 의식의 노래 음반을 통해 녹음되어 나온뒤, 2014년에 KBS 교향악단에 의뢰하여 재녹음된 것이다. 기존 음원은 저작권이 KBS에 있어서 비영리 공익적 목적으로만 사용해야 했으나, 이번 음원은 출처를 표기하면 누구든지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행안부의 표준 음원을 새 음원으로 대체하기로 협의를 마쳤다. 애국가 표준 음원, 23년 만에 새로 제작…기증저작물로 등록 한편 한국저작권위원회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음원은 “애국가 표준 음원을 교체하기 위한 것은 아니며 애국가 선택의 폭을 넓히는 차원으로 봐주시면 된다”라고 설명했다. 애국가 음원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됐다 행정안전부는 "정부기관과 관공서 등이 정부행사시 사용중인 애국가 음원 교체 여부를 검토한 바 없다"고 밝혔다.

2019년에도 상임지휘자 선임은 미뤄졌고 티에리 피셔와 마르쿠스 슈텐츠가 수석객원지휘자로 서울시향을 이끌 예정이다. 그 외에 오스모 벤스케, 파비앵 가벨, 리처드 이가, 유카 페카 사라스테, 성시연 등이 서울시향과 무대에 설 예정이다.

그리고 2019년 5월 2일에 차기 음악감독이 발표되었는데, 시벨리우스 스페셜리스트이자 현재 미네소타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핀란드 국적의 오스모 벤스케가 선임되었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계약이며 상임지휘자를 겸한다.

2019년 11월 마르쿠스 슈텐츠와 함께 러시아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특히 김웅식 장구 연주자와 협연을 하여 눈길을 끌었다.

3.6. 오스모 벤스케 체제

티에리 피셔와 마르쿠스 슈텐츠 두 수석 객원 지휘자는 2020시즌까지 계약을 연장했다.

현대카드현대캐피탈의 부회장이자 서울시향 이사를 맡고 있는 정태영의 아이디어로 2020년부터 후원 제도 및 유료 회원을 대거 개편하기로 했다. 유료회원제도는 폐지하고, 무료회원[18]은 티켓 10%할인, 만 24세 이하는 40% 할인 그리고 후원 회원은 등급에 따라 최고의 팬서비스를 선사하기로 하였다.[19]

2020년 신년음악회의 지휘를 정명훈이 협연자는 클라라 주미 강. 브람스 교향곡 제1번과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다.정명훈·서울시향, 4년 만에 만난다. 2020 '신년음악회' 롯데콘서트홀 개관 공연 이후 4년 만의 첫 공연으로 세종문화회관 3천석이 일찌감치 매진 되었고, 세월이 지나도 '정명훈과 서울시향' 사운드는 여전히 빛났다. 공연이 끝난 후 청중들은 정명훈과 서울시향이 만들어낸 선물같은 시간에 열띤 환호로 답하며 객석 곳곳에서 "브라보"를 쏟아냈다.4년 만에 재회한 정마에와 서울시향이 만든 선물 같은 시간

오스모 벤스케의 취임 연주회는 2020년 2월 14-15일에 열리며 서울시향의 부활을 선포한다는 의미에서 말러 교향곡 제2번 부활을 연주한다. 5월 정기연주회에는 2019 차이코프스키 콩쿨의 우승자인 알렉상드르 캉토로프와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협연하며, 이 연주회에서 또한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과 본 윌리엄스의 탈리스 주제에 의한 환상곡을 연주하며 12월 송년음악회에서는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연주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대대적인 유행으로 인해 사실상 오스모 벤스케의 취임 연주회 이후 서울시향의 대면 연주회는 전면 중단되었다. 3월에 부지휘자 윌슨 응의 지휘로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을 연주한 온라인 콘서트가 개최되었고, 5월에 이르러 코로나19 유행이 진정세로 접어들고 생활방역체제로 전환하면서 서울시향도 정기연주회로 다시금 연주회를 시작하게 되었다. 당초 5월 29일 오스모 벤스케의 지휘로 대면 정기연주회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이태원 등에서 발발한 집단감염 사태로 인해 오스모 벤스케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연주곡목과 연주인원을 대폭축소한 온라인 콘서트로 대체되었다. 당초 스트라빈스키의 관악기를 위한 교향곡, 본 윌리엄스의 탈리스 주제에 의한 환상곡,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을 연주할 예정이었으나 90여명이 동원되는 수수께끼 변주곡 대신 50여명 정도로 연주되는 모차르트 교향곡 39번으로 대체되었다.

서울시향은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당초 2020년 예정된 정기연주회의 프로그램과 출연진들을 대폭 조정하고 연주시에는 단원들간 1.5m의 거리두기 및 관악기 주자들 앞에 비말전파를 방지하기 위한 아크릴 차단막 설치, 단원들과 관객들의 발열과 호흡기 증상을 파악하는등의 방역대책을 시행하면서 연주회를 시행할것이라 밝혔다. 협연자는 국내연주자로 조정하거나 해외 연주자의 경우 2주간의 자가격리기간을 고려한 일정 재조정등을 시행할것이라고도 밝힌 상황.

6월에는 수석 객원지휘자 티에리 피셔의 지휘로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 등을 연주할 예정이었으나 취소되고 대신 오스모 벤스케의 지휘로 말러 교향곡 4번의 실내악 버전을 연주할 예정이다.

오스모 벤스케와의 음악감독 계약은 2022년으로 종료되지만, 2023년 3월까지 시벨리우스 리사이클로 연주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그러나 오스모 벤스케가 지휘할 예정이었던 2022년 12월 14~16일의 송년음악회는 12월 7일 오스모 벤스케가 골절상을 입는 바람에 대체 지휘자로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서게 되었다.

이후 오스모 벤스케가 기적적으로 재활에 성공하며 예정된 두 번의 시벨리우스 교향곡을 지휘함으로써 서울시향 상임지휘자로의 임기를 마무리했다. 골절상으로 인해 예정되었던 시벨리우스 교향곡 7번 연주를 얍 판 츠베덴의 서울시향 데뷔 무대가 대신하게 되며 2022-23년에 야심차게 추진했던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곡 연주 또한 7번을 남겨놓은 채로 끝나게 되었다.

물론 상임지휘자 임기 중 코로나 19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더십의 부재로 인해 서울시향의 연주력이 눈에 띄게 악화되었던 시기였다. 이 정점을 찍은 것이 윌슨 응 지휘의 2021년 송년음악회로 평가받는데, 바로 다음 주에 정명훈이 지휘한 KBS 교향악단의 동일한 베토벤 교향곡 9번과 비교당하며 위상이 역전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올 정도였다. 이후 코로나 19 상황이 진정세로 접어들며 2022년부터는 벤스케가 직접 지휘하는 공연들이 열렸으나 이 공연들 또한 그렇게 좋은 평을 받지는 못했다.

오스모 벤스케의 후임 음악감독으로는 네덜란드 출신 지휘자이자 현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인 얍 판 츠베덴이 2024년부터 취임할 예정이다.

3.7. 얍 판 츠베덴 체제

일단 2023년은 음악감독 없이 한 해를 마무리 할 예정으로 3월까지 시벨리우스 교향곡 사이클을 진행하며 이후 객원지휘자 체제로 운영할 계획이었다. 또한 얍 판 츠베덴이 정식 취임 전인 2023년 7월에 서울시향 데뷔 무대를 가질 예정이었으나 오스모 벤스케의 예상치 못한 낙상사고로 2023년 첫 정기연주회에 갑작스럽게 대타로 투입되며 서울시향과의 데뷔 무대가 조금 더 일찍 열리게 되었다.

2023년 1월 12일, 원래대로라면 전임 음악감독인 오스모 벤스케의 지휘로 시벨리우스 교향곡 7번이 연주되었어야 할 공연에서 츠베덴이 지휘 대타를 맡으며 브람스 교향곡 1번과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박쥐 서곡으로 프로그램을 변경하고 서울시향과의 첫번째 인연을 맺었다. 이후 같은 해 4월 7일에는 이화여자대학교 대강당에서 특별 자선 연주회[20]를 개최하며 서울시향과 두번째 공연까지 마쳤다. 자선 연주회 중간에 서울시향과 서울시에 대한 넘치는(?) 애정을 드러냈고, 내년에도 가능하다면 같은 장소에서 자선 연주회를 열겠다고 공언해 관객들의 마음을 얻었다. 여러모로 정식 취임 전부터 오스모 벤스케와 달리 매우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데, 클래식 지휘자로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홍보를 위해 배철수의 음악캠프에도 출연하고, 예정에 없던 공연까지 만들어가며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클래식 애호가들의 기대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같은 해 8월 26일에도 국립중앙박물관 야외극장에서 무료 공연을 열 예정이다.

2024년 5월 9,10일에 열린 정기연주회는 비하인드가 있는데 당초 협연자로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4번을 연주할 예정이었으나 몸이 안좋아져 무대에 설수없게 되었고 츠베덴이 급하게 자신과 친분이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에게 부탁해 한국에서 리사이틀을 하기 위해 오고 있던 힐러리 한이 불과 얼마 맞춰보지도 못한 상태로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게 되었다.[21] 그러나 완벽한 연주를 선보여서 힐러리 한이 얼마나 철저한 준비가 된 바이올리니스트인지 증명했다는 평가.

4. 관현악단 조직

4.1. 역대 지휘자

4.2. 아티스트

상임 작곡가
공연기획자문역
올해의 음악가

4.3. 단원

2015년 박현정 대표 및 정명훈 감독의 사퇴 이후 신규 단원 공개채용이 없었고, 2019년 오스모 벤스케 감돋 취임 후 공채 재개의 길이 열리는가 싶더니 2017년 개정된 행정안전부 내규인 '지방 출자·출연기관 인사조직 지침'에 따라 지원자와 동일한 부서 사람이 심사위원으로 앉지 못하게 했기에 무산되는 듯했다. 2023년 1월부터 서울시와 협의를 거쳐 단원 공채를 재개했다.

제1바이올린
악장: 공석
부악장: 웨인 린[34], 신아라
수석: 문주영, 한지연
부수석: 엄성용, 주연경
차석: 보이텍 짐보프스키, 허상미
단원: 고현수, 김민용, 김민정, 김혜연, 두루미, 송혜림, 양유진, 유미나, 주연주, 최해성

제2바이올린
수석: 임가진
차석: 김수영, 정지혜
단원: 곽승란[35], 김미경, 김미연, 김영아, 김용화, 김인학, 김지원, 엄자경, 이주은, 이혜미, 조은주, 진영규, 최고은

비올라
수석: 강윤지
부수석: 공석
단원: 안톤 강, 구이삭, 김대일, 김선영, 김성은, 김예진, 성민경, 이선주, 이형은, 임요섭, 홍지혜

첼로
수석: 공석
부수석: 최혜인
단원: 김민경, 김소연, 김완정, 박무일, 박은주, 반현정, 신애경, 이혜재, 장소희, 차은미, 최운선

더블베이스
수석: 안동혁
부수석: 이영수
단원: 강인한, 김진철, 이충석, 장승호, 조정민, 한민아

하프
박라나

플루트
수석: 박지은
부수석: 공석
단원: 송연화, 장선아

오보에
수석: 이미성
부수석: 이연주
단원: 류경균

클라리넷
수석: 임상우
부수석: 공석
단원: 이창희, 정은원

바순
수석: 곽정선
부수석: 장명규
단원: 정수은, 최종선

호른
수석: 공석
부수석: 이세르게이(세르게이 아키모프)
단원: 김병훈, 최윤

트럼펫
수석: 공석
부수석: 제프리 홀브룩
단원: 닐스 하이도우

트롬본
수석: 공석
부수석: 제이슨 크리미
단원: 김태훈[36], 노영남

튜바
지승렬[37]

팀파니
수석; 공석

퍼커션
수석: 에드워드 최
부수석: 스콧 버다인
단원: 김문홍, 김미연

2020년 1월 기준

5. 녹음과 음반

정재동 지휘의 서울시향 최초의 음반.[38]

음반 녹음 같은 경우에는 여타 한국 악단들과 마찬가지로 그리 활발하지는 않은 편이였는데, 정재동 재임기였던 1984년에 안익태의 한국 환상곡[39]과 관현악으로 편곡된 우리나라 민요 4곡[40]을 성음에서 LP로 발매했고[41], 이것이 악단의 최초 녹음이다. 또한 1987년 8월에는 악단 창립 30주년(당시 기준)을 기념하기 위해 서울 스튜디오에서 차이콥스키의 환상 서곡 '로미오와 줄리엣' 과 슬라브 행진곡, 리스트의 교향시 '전주곡', 정윤주의 '황병기 주제에 의한 가야금 협주곡' (양승희 협연) 네 곡을 녹음했고, 서울음반(현 로엔엔터테인먼트)을 통해 LP카세트테이프로 출반되었다. 1989년 2월에도 역시 정재동의 지휘로 악단 상주 공연장이었던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프랑크의 교향곡 D단조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이혜경 협연)을 녹음했는데, 이 녹음도 같은 해 SKC에서 악단 최초의 CD로 출반되었다. 하지만 이 음반들은 오래 유통되지 못하고 폐반크리를 맞는 바람에 레어템이 된 상태다.

이후에는 잦은 상임 지휘자 교체와 공석 상태를 거듭하던 탓에 녹음 계획 자체가 잡히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다만 1994년에 당시 상임 지휘자였던 원경수의 지휘로 정기연주회 무대에서 연주한 앙코르의 녹음들을 모은 컴필레이션 앨범이 삼성뮤직 산하 클래식 레이블인 나이세스를 통해 출반되기도 했다. 그리고 정명훈 재임기에 들어 악단 정기 회원에게만 주어지는 비매품 특전이기는 했지만, 베토벤교향곡 5번6번(2006), 브람스교향곡 1번과 대학 축전 서곡(2007),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9번(2008), 스트라빈스키봄의 제전(2009) 등의 공연 실황 녹음을 담은 비매품 CD가 매년 주기로 규칙적으로 나왔다.

이 유튜브에서 서울시향의 80년대 연주 실황 영상들을 볼 수 있다. 방송용으로 녹화, 송출된 것들이다.[42] 보면 1984년 5월에는 스타워즈 OST[43]까지 연주(정재동 지휘, 청소년 음악회 12회)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44]

5.1. 도이치 그라모폰 음반

순서 수록 곡 지휘 특징
1 드뷔시 바다 / 라벨 '어미 거위', '라 발스' 정명훈 플래티넘
2 말러 교향곡 1번 ‘거인’ 정명훈 플래티넘
3 말러 교향곡 2번 ‘부활’ [45] 정명훈
4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 / 라흐마니노프 `보칼리제’ 정명훈 골드
5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46] /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정명훈 골드
6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47] 정명훈 골드
7 진은숙 피아노 협주곡[48] / 진은숙 첼로 협주곡[49] / 진은숙 생황 협주곡 '슈' [50] 정명훈
8 말러 교향곡 9번 정명훈
9 말러 교향곡 5번 정명훈
10 베토벤 레오노레 서곡 제 3번 / 생상스 교향곡 3번 ‘오르간’ / 최성환[51] 아리랑환상곡[52] 정명훈
실황 녹음을 내놓으며 녹음 분야에서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다가 2010년 말에 도이체 그라모폰(약칭 DG)과 계약해 5년 동안 매년 두 종류 씩[53]의 CD와 디지털 다운로드 음원을 출반하게 되었다. 한국/아시아 관현악단으로서는 최초로 클래식 메이저 레이블/DG와 손잡고 세계 시장을 공략하는 계획이라 나라 안팎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DG와 맺은 계약 기간은 5년으로 잡혀 있어서, 2015년 하반기에 나올 예정인 열 번째 음반/디지털 다운로드 음원인 브람스의 교향곡 4번을 끝으로 만료가 될 예정이었으나, 2016년 1월 말러의 교향곡 6번 실황 연주를 녹음으로 담을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아선 계약이 연장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명훈의 사임으로 모든 계획이 무산되었다.

5.2. 오스모 벤스케 음반

2021년 쯤 오스모 벤스케의 지휘로 음반이 제작 될 예정이라는 루머가 있다. 곡은 미정, 실황 녹음 음반이라면 말러 3번이 예상 된다.

5.3. 그 외 음반

DG의 음반 외에는 공식적으로 서울시향 이름을 달지는 않았지만, 비발디바이올린 협주곡 시리즈인 사계 전곡을 넥스트의 기타리스트인 김세황일렉트릭 기타 협주곡으로 편곡해 시향 현악 단원들만으로 구성된 12인조 현악 합주단과 녹음한 음반이 2011년에 CJ그룹 산하의 CJ E&M에서 발매된 바 있다. 또한 서울시향 현악 단원 세 명이 멤버로 있는 콰르텟 크네히트라는 현악 4중주단도 소니 뮤직 코리아를 통해 하이든의 현악 4중주 62번과 53번, 그리고 하이든 곡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로만 호프슈테터의 곡으로 사실상 확정된 현악 4중주 '세레나데' 세 곡이 담긴 데뷰 음반을 발매했으며, 이어서 2015년에 멘델스존의 현악 4중주 2번과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 14번 '죽음과 소녀'가 수록된 음반을 발매했다.

6. 사건사고

6.1. 영어 명칭 문제

영문 명칭이 완전히 같은 악단이 존재했었는데, 1991년에 '뉴서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라는 이름으로 창단되어 활동하던 민간 악단이 1990년대 후반에 '뉴' 라는 단어를 빼버리고 '서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로 개명하면서 이 악단과 서울시향 사이에서 살벌한 대립이 시작되었다. 서로에 대한 고소와 맞고소가 이어졌다.

서울시향은 여전히 영문 명칭을 'Seoul Philharmonic Orchestra' 로 고수하고 있고, 몇몇 음악 잡지나 신문에서는 아예 '서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라고 싣는 경우도 있다. 민간 악단인 서울 필은 해당 악단 홈페이지의 명칭에서 'Orchestra' 를 빼고 그냥 '서울필하모닉' 이라고 하고 있다. 다만 서울시향의 영문 명칭도 마찬가지로 '서울 필하모닉' 이라고 축약해서 쓸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언제 또 양자 간에 키배가 연출될 지 모르는 상황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와 관련된 법정 소송은 2013년 3월에 서울시향 측의 완승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미 2004년에 서울시향측이 제기한 민사 소송에서 승소한데 이어, 형사 소송에서도 상표명 도용 혐의가 인정되어 서울필하모닉과 단장에게 유죄 판결이 확정되었다. 관련 기사 현재 해당 오케스트라는 뉴 서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로 명칭을 바꾸되돌리었다.

6.2. 박현정 대표와의 갈등 및 소송전

2014년 말, 박현정 서울시향 대표가 전년도 취임 시부터 시향 사무국의 일부 직원들에게 폭언, 폭행을 저질렀다는 식의 호소문을 기자들에게 배포한 걸 계기로 추문이 터지면서 대표와 직원 사이의 소송전이 시작되었다. 사건 당시 서울시 시민인권보호관 측은 직원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박 대표가 직원들을 상대로 성추행/폭언을 했다"고 결과를 발표하였으나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서는 2016년 3월 해당 호소문을 조사한 결과 '허위 사실'이라고 밝히고 정명훈 전 감독의 비서 등 관련 직원 10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2014년 서울시향 사건에 대해 박현정 vs 정명훈 부부와 그를 지지하는 직원들의 갈등이 극에 달했던 사건이라는 사실과 다른 여론이 형성되었으나 기본적으로 이 사건은 대표와 직원들의 문제였다. 또한 시민단체로 부터 고발되어 재판으로 넘겨진 정명훈 지휘자의 2017년 항공권 횡령에 대해서는 횡령 혐의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어 '혐의없음' 처분으로 사건이 종결되었다.

한편 2020년 3월 18일 박현정 前 서울시향 대표가 직원을 손가락으로 찌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사건은 무죄가 확정됐다. 1심은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으나,(2017고정2141) 2심은 "여러 사정을 검토해보면 검사가 제출해 채택된 증거만으로 합리적인 의심 없이 공소사실이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2018노2864) 대법원은 2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2019도18636, 연합뉴스 기사)

박현정 前 서울시향 대표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가 무고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서울시향 직원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2심 역시 주요 증인들의 주장이나 상황에 대한 진술이 엇갈리고 특정 증인의 진술을 믿기 어려운 점, 그리고 박 전 대표의 주취 상태에 대해 증인들은 물론 자신도 엇갈리는 증언을 한 것 등을 들어 무고로 판단하기엔 증거 부족이라고 지적하며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1심과 마찬가지로 명예훼손 혐의 일부는 인정하여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박현정에 따르면 이명박 前 대통령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서울시향 자체가 방만한 운영으로 인해 내부적으로 여전히 썩어 있어 유럽 클래식 음악계에 비웃음까지 살 정도라, 답답해서 내가 친다는 마음가짐으로 박현정 前 대표가 체질개선을 촉구했는데, 오히려 나머지 직원들과 정명훈의 부인이 이를 괘씸죄로 걸고 넘어지고 싶어 집단따돌림을 도모하고 성추행으로 내쫓기로 작당했다는 것이었다.(월간조선 인터뷰) 이후 월간조선의 인터뷰 내용과 달리 2022년 10월 재판부에서는 직원들의 대화, 직원과 정명훈 부인의 대화는 단순히 당시 직원들과 전 대표와의 상황 해결을 위한 상의와 자료 수집으로 판단했다.#국민일보 기사

2020년 3월 22일 위와 같이 대법원 판결을 언급한 기사가 나갔지만, 5년 전 대중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건 것과 달리 대법원 판결이 크게 공론화되지는 않은 상황이다. 2014년 고소공방이 이루어졌을 때에는 네이버 실검에 '정명훈 박현정'이 오르내렸으나 시간이 지나고 정명훈은 해외로 떠나고 박현정 전 대표도 서울시향을 떠나 더 이상 이슈가 되지 못한 상황이다. 서울시향도 DG와 음반을 발매해서 클래식 팬들의 가슴을 웅장하게 해주던 정명훈 시절의 명성을 잃은지 오래라 클래식팬들마저 서울시향 사태에 대해선 더는 별 관심이 없는 분위기다. 오스모 벤스케의 취임 이후 BIS에서 음반이 나올 것도 기대되었으나, 벤스케는 이전부터 미네소타 오케스트라에 진행 중이던 말러 사이클에 집중 중이고, 코로나로 인한 각종 문제로 활발하진 않은 편으로, 서울시향도 다시 화제성을 얻을 계기를 만들지 못하고 있어, 흑역사 취급을 받으며 잊혀져갔다.

2014년 발생한 사건에 대해 박 전 대표는 2015년 직원 곽씨 등 7명을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10억원 가량의 손해배상소송을 냈고, 2018년 2월 1심에선 곽씨에게 5,000만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가(2015가합565714) 2022년 4월 2심에선 8,000만원으로 올렸고(2018나2016063), 동년 9월 대법원 상고심에선 심리불속행으로 일부 승소했다. 반면 다른 관련자 4명은 2022년 10월 28일 1심에서 당시 서울시향 직원들의 호소문이 “진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으며 비방의 목적이 증명되지 않았고, 공적 단체인 서울시향과 그 단체의 대표로써 공인인 대표의 운영방식에 대한 것”으로 박 전 대표를 비방한 것이 아니라는 판단을 받으며 무죄를 선고 받았다.

2021년 6월에는 이와 관련된 직원 3명이 인사위원회에서 '직위 해제' 처분을 받았다가 당사자들이 서울중앙지법에 '직위해제 등 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서 2022년 7월 1심에서 승소하였다.

2024년 6월에는 2022년 10월 판결에 대한 2심이 있었는데 박 전 대표에 대한 무고 및 명예훼손 혐의를 주장한 검찰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과 마찬가지로 직원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다툼의 주요한 부분이 실제 사실에 부합하는 부분이 있고 명예훼손죄에 관하여 적시된 사실은 서울시향 대표로서의 박현정에 대한 사항이라는 점들을 종합해 볼 때 호소문이 허위사실이라 인정하기 부족하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재판부의 판결문은 사실상 직원들의 판정승이라고 볼 수 있다. 아무런 영광도 없는 상처뿐인 승리지만#
[1] 1960년생으로, 1979년부터 16여년간 로얄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의 악장이었으며,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 역사상 최연소 악장이기도 하다. 레너드 번스타인이 1987년 6월에 녹음한 말러의 교향곡 4번 2악장의 바이올린 솔로를 맡았던 사람이 바로 츠베덴이다.[2] 당시 대한민국의 산업화로 인한 결실로 80년대말부터 문화예술계의 양적, 질적 성장이 급속히 이루어졌다. 때문에 당시 KBS 교향악단을 비롯한 여타 오케스트라 역시 급격한 실력 향상을 이루었다. KBS 교향악단은 4관 편성으로 외연을 확대하면서 정원이 대거 확대되어 실력 있는 젊은 단원들이 대거 충원되었고, 그 밖에 신설되거나 사실상 재창단에 가까운 변혁을 거친 부천시향, 코리안 심포니, 수원시향, 대전시향 등이 대거 약진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서울시향은 공무원 조직의 특성으로 완전히 정체되어 있었다.[3] 다만 2000년대 중반 이후의 급속한 성장세는 정명훈의 이름값과 영향력에 상당 부분 기인하고 있어서, 정명훈이 직책에서 물러날 경우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는 우려도 있다. 실제로 2013년 1월 25일에 개최될 예정이었던 바그너 음악회가 공연 직전 정명훈의 급성 요통 발병으로 인해 급히 취소되는 일이 벌어졌을 때도 이와 관련된 여론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4] 정기공연 이 아닌 특별공연 때 만 쓴다[5] 5층에 위치[6] 다만 1990년대까지는 이 악단이 본격적으로 서울시향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1957년을 창단 연도로 보고 있었으며, 이에 따라 1987년에는 창단 30주년을 맞아 기념 공연과 음반 발매 작업을 하기도 했다.[7] 80년대 중후반 MBC에서 방송되었다.[8] 여담이지만 이 공연 협연자인 랄프 고토니는 유명한 한국 작곡가 진은숙의 시아버지이다. 즉 진은숙의 남편이 랄프 고토니의 아들.[9] 1987년에 정재동 지휘로 말러의 교향곡 2번을 무난하게 소화했을 정도의 연주력이었지만, 박은성 시절에는 브람스 교향곡 1번마저 무너질 정도로 실력이 퇴화되었다.[10] 출근 일수가 180일을 넘기지 못하였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런데 "상임"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매일 출근부 찍어야 된다는 뜻이지만, 음악계에서는 그 악단의 연주를 주로 책임지는 역할 정도로 그 의미를 다르게 사용한다. 그래서 두, 세 악단의 상임지휘자를 동시에 맡는 경우도 허다하다. 실례로 정명훈 전 예술감독은 당시 곽승 보다 더 적은 일수를 출근하고 있으므로, 이 규정을 똑같이 적용한다면 그 또한 당장 해임되어야 한다. 그만큼 180일 출근이라는 조건은 말이 안되는 조건이었던 것.[11] 후에 대한민국 대통령을 역임한다.[12] 참고로 이 날의 공연의 평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지휘자와 악단의 합이 잘 맞지 않아 곡이 산만하였다는 것이 중평.[13] 정명훈이 유럽에서 주로 파트너쉽을 맺고 있던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로열 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 라 스칼라 필하모닉의 소속단원들이 서울시향을 겸직하는 형태가 많았다.[14] 이전에도 국내 음악가나 단체가 세계적인 명성의 음반사에서 음반을 발매한 적이 있으나 이는 세계적인 음악가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로컬라이선스로 한국 내에서만 판매하는 음반이었다. 하지만 서울시향과 정명훈의 음반은 인터내셔널 라이선스로 전세계에서 발매하고 판매되었던 것. 한마디로 카라얀&베를린필의 음반과 동등한 자격으로 제작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시아 오케스트라가 DG와 계약한 것은 서울시향이 최초다.[15] 박현정 전 대표의 주장은 기사 참조[16] DG는 서울시향과 정명훈이 발매한 음반에서 아시아 시장 개척의 필요성을 통감했는데 오자와 세이지가 발매하는 음반들은 장당 판매량이 엄청남에도 불구하고 지병으로 인해 애초에 지휘대에 서는 일이 연간 3번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서울시향과의 계약이 해지된 것이다. 따라서 중국 시장에 눈을 돌리게 된 것.[17] 시작의 의미를 강조하고자 전부 1번으로 선곡했다고 한다.[18] 홈페이지 가입회원[19] 연 1000만원이상 후원시 부여되는 Osmo Vänskä 등급부터는 오스모 벤스케 예술감독과 만찬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온다![20] 서울시향은 티켓 수익금을 전액 기부하고, 지휘자 본인도 노개런티로 출연했다는 후문이 있다.[21]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은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 상당히 어려운 곡으로 꼽히는 작품이다.[예술감독] 예술감독 겸임[음악감독] 음악감독 겸임[음악감독] 음악감독 겸임[25] 줄리어드 음대 재학시절 강효 교수를 사사했으며, 2023년 4월 5일 내한 중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출연해 한국과의 인연들을 언급하면서 강효 교수와 인연을 말했다.[26] 2020년까지 계약이었다가 1년 연장[27] 경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예술 감독 겸 상임 지휘자로 이임[28] 부산시립교향악단 상임 지휘자로 이임[29] 수석부지휘자 Associate Conductor[30] Assistant Conductor[31] 수석부지휘자 Associate Conductor[32]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내한 취소. 다만 올해의 음악가로 선정되기 이전인 2018년 4월에 내한해서 서울시향과 협연한 기록이 있다.[33] 아티스트 건강상으로 인한 내한 취소[34] 공식적인 행사에서 임시대표로 활동한다[35] 서울시향 근로자이사 겸직. 근로자이사는 근로자 대표가 이사회에 참여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경영 참여제도로 2017년 4월에 도입.[36] 베이스트롬본[37] 단원노동조합 위원장[38] 한국환상곡과 우리나라 민요 4곡 수록[39] 부분 발췌[40] 아리랑, 천안 삼거리, 밀양 아리랑, 몽금포 타령[41] 이후 CD로 재발매가 되지 않아 정보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42] 대부분이 1986~1987년 녹화된 청소년 음악회용 영상이다.[43] 사실 이미 1977년 주빈 메타가 지휘해 데카에서 음반으로 발매한 적도 있긴 하다.[44] 당시에는 '별들의 전쟁'이라 불렸다.[45] 협연 이명주, 페트라 랑, 국립합창단, 서울시립합창단, 서울모테트합창단, 그랑데 오페라 합창단[46] 협연 김선욱[47] 협연 캐슬린 킴, 양송미, 강요셉, 사무엘 윤, 국립합창단, 서울모테트합창단, 안양시립합창단[48] 협연 김선욱[49] 협연 알반 게르하르트[50] 협연 우웨이[51] 북한의 작곡가[52] 편곡[53] 총 10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