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29 04:20:53

성동일(응답하라 1988)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파일:응답하라 1988 로고 화이트.svg
등장인물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덕선이네
성동일 이일화
정환이네
김성균 라미란
성보라 성덕선 성노을
김정봉 김정환
선우&택이네
최무성 김선영
동룡이네
류재명 조수향
성선우 최택 성진주 류동룡과 4형들 }}}}}}}}}

응답하라 시리즈 역대 성동일
파일:응답하라 1997 로고 화이트.svg 파일:응답하라 1994 로고 화이트.svg 파일:응답하라 1988 로고 화이트.svg
1997년 버전 1994년 버전 1988년 버전
<colbgcolor=#b9ac75><colcolor=#fff> 성동일
파일:성동일.jpg
배우: 성동일
이름 성동일 (Sung Dong-il)
출생 1944년[1]
(1988년 당시 45세, 2015년 기준 72세
전라남도 곡성군
거주지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1~20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20화)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가족 어머니 김영옥[2]
형 성원중, 여동생 성혜령, 성지민
배우자 이일화
장녀 성보라, 차녀 성덕선, 장남 성노을
학력 광주상업고등학교 (졸업)[3]
[ 공식 홈페이지 인물 소개 ]
-----
한일은행[4] 감사부 만년대리[5][6]. 직장에서는 근면성실. 얇은 월급봉투 탓에 집에서는 아내 잔소리에 시달리는 고달픈 가장이다. 서울에 올라온 지 한참이 지났지만, 전라도 사투리는 그대로다.

정 많고 사람 좋아, 거리에서 나물 파는 할머니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빚보증으로 전 재산을 날리고, 성균네 반지하방에 세 들어 살면서도, 월급날이면 백과사전전집부터 태교테이프까지 양손에 한 가득이다.

돈 없어 힘들고 서럽지만, 가족을 위해 묵묵히 애쓰는 든든한 버팀목. 성격이 급하고 무뚝뚝해도, 세 남매를 살뜰히 챙기는 정 많고 자상한 아빠다. 그 중에서도 막내아들 노을에 대한 사랑은 각별하다.


1. 개요2. 작중 행적
2.1. 1화2.2. 2화2.3. 3화2.4. 4화2.5. 5화2.6. 6화2.7. 7화2.8. 8화2.9. 9화2.10. 10화2.11. 11화2.12. 12화2.13. 13화2.14. 14화2.15. 15화2.16. 16화2.17. 17화2.18. 18화2.19. 19화2.20. 20화
3. 기타

[clearfix]

1. 개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등장인물. 성보라, 성덕선, 성노을아버지.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와 다르게 폭삭 가난해졌으며 야구팀 코치가 아닌 한일은행(현 우리은행) 직원이 되었다.

2. 작중 행적

2.1. 1화

빚 보증을 잘못 서서 김성균의 집 반지하에서 살게 된 45세 가장.[7] 보증 잘못 서 줬다가 식구가 반지하방에서 대충 풀칠이나 하고 살게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 월급 탄 날에 자기처럼 보증을 잘못 선 친구 책 팔아 준다고 11만원[8] 썼다가 아내에게 바가지 복복 긁히는 동네의 흔한 가장이다.[9] 취미는 퇴근길에 발로 연탄 차서 박살내기.

집 앞 평상에서 EDPS을 푸는 아내의 친구들엔 불만이 많지만[10] 또 정작 아내와의 금슬은 남다르다.[11]

여기서도 재산 늘리는 눈이 좋지 않아 일산이 뜬다는 말에 "논밭 밖에 볼 게 없는데 뭐가 뜨냐?"라고 반문하지만 15화에서 분당·일산신도시 계획 발표가 나왔다.[12] 또한 16화에서 주가지수 1000포인트를 넘어서며 주식 투자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때 주식시장이 미쳤어도 너무 미쳤다며 은행 예금[13]이 최고라는 지론을 펼치기도 한다. 그러나 마지막 화에서는 시리즈 사상 최초로 타인의 조언을 받아들여 김성균의 말대로 판교[14]로 이사를 하며 최후에 웃는 자가 되었다.

1화부터 보증을 잘못 든 친구를 도운다고 700만원을 날려버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후 일화에게 바가지 긁히고 개딸들의 싸움을 보며 절규한다.

2.2. 2화

모친상을 당했다. 형제 관계로는 미국 사는 형[15]이 있고 밑으로 여동생 둘. 장례식 기간 내내 맏상주 노릇을 하며 술 마시고 노래 부르는 등 아무렇지 않은 듯한 모습을 보여 덕선이의 오해를 샀지만 조문객들이 돌아간 후에는 멍하니 앉아 눈물 한 방울을 흘렸고, 그러면서도 덕선이가 자신의 본심을 깨달으며 걱정하자 애써 웃으면서 괜찮다고 달래준다. 곧 뒤늦게 미국에서 날아온 형이 통곡하며 끌어안자 형을 얼싸안고...
"우리 엄니 불쌍해서 어쩐데 승[16]..... 우리 엄니 불쌍해서 어쩐데.... 뭐시 급하다고 이렇게 먼저 가있스까이.... 뭐시 급하다고...! 이제 우리 엄마 못 보잖에... 우리 엄마 못 보잖에.... ","뭣한다고 이제 와! 뭣헌다고!"
하며 여동생들과 함께 대성통곡했다.[17][18]
파일:external/www.kyeongin.com/2015110701000503600027631.jpg
이후 서울로 올라와서 집 안에 있기는 답답했는지 잠깐 나갔다 오겠다며 나와서 집으로 돌아오는 택을 만나 술 친구를 해 주라며 평상에 앉아 술잔을 기울인다. 그리고 택에게 엄마가 언제 보고 싶냐고 묻고, 택은 눈물을 흘리며 매일 보고 싶다고 한다.

2.3. 3화

3화에서 짠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빚 보증을 잘못 서 망하고도 별로 돈 걱정 없이 남들을 도와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물을 사 오고, 감자를 사 오고, 태교 테이프까지 사 올 정도. 수학여행 가는 덕선이 줄 용돈조차 없어 걱정하는 일화를 뒤로 하고 돈을 빌려오겠다며 호기롭게 나가지만... 성균의 집 앞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망설이기만 한다. 그러다 일일 찻집을 하다 걸린 노을이 때문에 학교에 갔다가 노을의 친구들이 노을을 반지하라고 부르는 걸 보고[19] 크게 충격을 먹는다. 결국, 포장마차에서 술을 진탕 먹고 껌을 팔러 들어온 할머니에게 오늘은 못 팔아드린다고 하지만, 결국엔 오늘이 마지막이라며 사 주었다.

2.4. 4화

4화에서는 반찬에 꼬막이 없다고 투정부리면서 하는 말이 "악처도 처다."[20]
기원에서 돌아오는 택에게 일화가 미역국 같이 먹자고 하자 아니 너는 눈치를 어디 옆집 개새끼 행국이[21]한테 줘버렸냐?라며 일갈한다[22]

이런 식으로 일화와 말싸움을 하며 일화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고 비가 오는 날 일화와 함께 칼국수집에 간다. 매정하게 기다리지 않고 먼저 자리에 앉거나 시킬 메뉴를 물어보지도 않고 칼국수 두 개를 시킨다. 이후 밥을 다 먹은 뒤 동일은 먼저 나와 기다린다. 한편, 일화는 기존의 우산을 바꿔치기해 우산을 쓰지만 하필이면 구멍난 우산이었다. 이러한 일화를 보고 옆으로 오라며 팔짱을 끼고 우산을 씌워주어 일화를 미소짓게 한다.

구수한 사투리로 맛깔나게 욕지거리를 해대는 능력자답게 기발한 아이디어의 멘트도 많은데, 이번 회차에 "염병~ 순돌이 백점맞는 소리 하고 있네"는 80년대 드라마 "한지붕 세가족"의 세계관상 가장 꼴통인 전파상집 아들내미 순돌이의 속성을 '말도 안 되는 소리'의 의미의 새로운 조합으로 창조해냄으로써 '입고 출신'의 바람직한 표본으로 자리잡았다. 30대 중후반부터나 공감할 수 있는 이 개그를 공감하지 못하는 시청자들도 많겠지만, 알아들은 시청자들은 분명 빵빵 터졌을 듯.

2.5. 5화

초반에 시위 현장 근처를 지나게 되어 최루탄에 재채기를 하던 중 한 학생이 옆에 와 어색하게 팔짱을 끼자, 학생운동을 하다가 경찰에 쫓기던 학생인 걸 눈치채고 어깨를 감싸며 "넌 저러지 말고 공부만 열심해 해라."라고 하며 학생의 아빠인 척 연기해 경찰을 따돌리게 도와 주고, 이런 학생이 안타까웠는지 맛있는거 사먹으라며 용돈까지 주며 다독인다.[23] 부모님께 걱정 끼치지 않게 최루탄 냄새가 빠지도록 씻고 들어가라는 말은 덤.#[24]

그 날 저녁 보라가 들어오면서 최루탄 냄새가 나자 시위를 하는 걸 알고는 그런 짓 하지 말라고 소리치나, 보라가 이 말을 안 듣고 기어코 민정당 점거 농성까지 한 걸 뉴스에서 보고는 잘못했다고 말하기 전까진 방에서 못 나오게 하고 밥도 주지 말라고 소리친다. 아예 하루 월차를 내서 방 앞을 지키기도 한다.[25] 그러나 보라가 경찰에 잡혀간 후 경찰서에 갔다가 나와서 담배를 피울 때 김성균이 무릎 꿇리고 호되게 야단치라고 하자, 잘못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그래서야 되겠냐고 말한다. 초반에 일면식도 없던 학생을 도와준 것이나 이런 말을 하는 것 보면 학생 운동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진 않고, 군사정권의 독재가 분명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딸이 위험해질 수 있기에 걱정하는 마음이 다른 방식으로 표출된 셈이다.[26] [27]

87년 6월 항쟁 때 넥타이 부대라고 불린 화이트컬러 직장인들의 참여가 큰 역할을 했었고, 또한 대학생의 데모에 대한 인식 역시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군부독재를 종식시키는데 학생 운동이 큰 역할을 한 것에 대해서는 대다수의 국민들이 긍정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28] 진영 간의 이념 갈등이 극대화가 된 현재에도 민주화 이후의 행적에 대해 비판할지언정 87년 6월 항쟁과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는 어느 진영도 폄하하지 않는다.

또한 동일과 보라의 갈등은 곧 세대 간 갈등으로 볼 수 있는데, 이 세대 간 갈등이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 주요 갈등 중 하나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 회차에서 보여주는 갈등과 봉합의 장면들은 꽤 의미심장하게 다가올 수도 있는 장면이다.

2.6. 6화

택의 우승 기념으로 선우네 집에서 동네 어른들만 모여 축하주[29]를 먹는데, 술이 떨어지자 겨우 한 병만 가져왔다고 무성에게 뭐라 하자 술을 더 사오겠다며 무성이 일어서려고 한다. 그 때 일화는 집에 담궈놓은 매실주가 있다며 보라더러 가져오라 집에 전화하라고 동일을 시킨다. 하지만 보라의 성격을 아는 동일은 다른 아이들한테 시킨다고 하니까 덕선과 노을은 친구들과 논다며 그냥 하라고 한다. 동일이 전화를 하자 전화 너머에서 보라의 짜증난 목소리가 들린다. 외출할 건데 시킨다고 뭐라 하는 보라에게 딱 네 걸음만 더 오면 되니까 외출하는 길에 가져다 달라고 한다. 동일은 툴툴거리며 매실주를 가져다놓고 나가는 보라의 뒤에다 대고 오늘 만나는 선배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묻고, 일화 역시 매일 어딜 다니는지 모르겠다며 한탄한다. 미란과 성균은 보라가 똑똑한 아이니 알아서 잘 할 것이라고 걱정 말라고 하고, 취한 동일은 명대사로 화답한다.
염병, 두 번 똑똑했다가는 니기럴거. 지 부모 대가리 꼭대기서 자반뒤집기하것네. 니기럴거

2.7. 7화

선우네서 주기적으로 하는 동네 반상회에 참석했다. 성균이 자신을 무성과 비교하며 깎아내리자 뿔난 미란이 사과 대신 오과 육과 칠과 드립치는 김성균에게 빡친 나머지 전병을 집어던지는 건 덤. 여기서 진주의 성탄절 선물 이야기가 나오고, 진주에게 '산타는 허구' 라는 인식을 심어준 원흉이 자기 딸이기에 자고 있던 진주를 깨우고 눈사람을 선물로 가지고 싶다는 진주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당일 내리지 않은 눈 대신에 얼음 조각을 만들어 줄 기발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성탄절 당일 날 그 얼음 조각 눈사람은 비 때문에 녹아버렸다. 다행히 진주가 말하는 눈사람은 아이스크림이었다.

2.8. 8화

술을 먹고 지하철에서 아들인 노을이와 닮은 사람에게 산 큰 약 먹는 통 3개 분량의 빨간 액체를 샀다. 그런데 이 액체는 잉크를 지우는 액체라고 해서 옷에 잉크를 뿌리고 닦아보니 알고 보니 사기를 당한 것. 결국 일화가 화나서 각종 물건을 던지는데 그만 평평한 짱돌을 오른쪽 눈에 맞아버려서 멍이 들어버렸다!!! 이후로 부인에게 하오체를 사용했다.

그리고 덕선과 노을이 파출소로 잡혀가자, 자초지종도 모른 상태로 수경과 그 언니에게 막말을 퍼붓고 일화와의 존댓말도 봉인해제시켰다. 거기에 학생 주임 교사 유재명과 교련 교사 김검사를 데려와서 찬물을 끼얹은 것은 덤이다. 참고로 일화의 지갑에서 3만원을 훔친 진범이다.[30]

2.9. 9화

일요일에 노을과 목욕탕을 다녀오다가 무성이 친구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것을 보고는 같이 술을 마시자고 약속을 한다. 그리고 저녁 때 봉황당으로 술을 같이 마시러 찾아갔다가 무성이가 뇌출혈로 쓰러진 것을 보고 급히 병원으로 옮긴다. 30분만 늦었어도 위험해서, 그야말로 생명의 은인이 되었다. 이후 김성균, 유재명과 화투를 치는 모습이 나왔다.

2.10. 10화

성균의 에피소드와 개딸들의 연애 에피소드 때문에 별 비중이 없었다.

2.11. 11화

아, 니기랄거, 내 딸 이름도 내 맘대로 못 부른대! 아, 덕선이 이름만 좋구만! 덕선이 덕선이 덕선이 니기랄거 덕선이 덕선이!
이 회차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명대사와 명장면을 많이 터뜨리며 거의 진 주인공으로 활약한 회차. 점집에 가서 덕선이의 이름을 성수연으로 바꿔온 일화에게 성질을 내며 위의 대사를 내뱉더니, 바닥이 기울어지는 바람에 며칠간 이웃집과 더부살이를 하면서 만든 소소한 에피소드가 많다. 특히 핵심은 바로 덕선이네 - 정환이네 - 류재명의 삼파전으로 크게 한 판 붙은 화투 이야기로, 일명 진주만 대첩. 발단은 심심하다고 화투판에 재명을 불러들인 미란과 일화인데, 순진한 척 하던 류재명이 사기를 쳐서 두 사람이 화투판에서 돈을 크게 잃어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동일과 성균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재명의 이름을 듣고 진저리를 친다. 그리고 그날 저녁, 두 사람이 일찍 퇴근하고 2차 대전이 시작되는데...
동일은 은행 감사부[31]서 근무로 다져진 눈썰미로 재명의 사기화투를 무산시키고 판세가 자신에게 돌아온다.[32] 그러나 쓰리고도 아닌 파이브고를 앞둔 상황에서 진주를 이용한 미란의 잔머리로 판이 엎어져 파토가 나자 절규한다.
진주야아!!!! 밍키야아!!!!!!!
결국 동일은 출근 때 진주네 집 연탄재를 부수고, 퇴근 때에도 분이 안 풀렸는지 "진주야아~" 를 외치면서 연탄재를 부순다. 심지어 설날 고향으로 출발하는 길에 골목에서 진주를 만났을 때에도 본체만체하며 쌩까고 지나간다.

2.12. 12화

매일 같이 야근 및 회식 때문에 가족들이 모두 잠든 야밤에 귀가하고 있다. 술에 취하면 귀가하자마자 사랑하는 아들 노을의 볼을 만지는데, 추운 겨울 밖에서 꽁꽁 언 채 들어온 동일의 손 때문에 노을은 매번 잠에서 깨어난다. 그런 패턴을 몇 번을 반복하다가 후반부에는 아들이 차가워 잠에서 깬다는 사실을 먼저 인지하고는 노을의 볼을 만지기 전 따뜻한 이불 밑에 손을 녹인 후 만진다. 아빠의 티나지 않는 진득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장면.

2.13. 13화

건강 검진에서 일화의 가슴에 유방암으로 의심되는 종양이 발견되면서 시름에 잠긴다.[33][34][35] 아내에게는 필사적으로 아무 것도 아닐 것이라며 침착한 척 하지만, 사실은 포장마차에서 성균을 붙잡고 "평생 나를 만나서 고생만 했던 우리 일화 불쌍해서 어쩌냐!"며 오열한다.

다행히 종양은 암이 아니라 단순한 물혹으로 밝혀지고 성균이 찾아와 축하주로 산삼주를 먹자고 하자 안 된다고 했지만, 결국 성균이 포장마차에서의 있었던 일을 폭로한다고 하자 입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아끼고 아끼던 산삼주를 꺼내야만 했다.[36] 이후 포장마차에서 무성, 성균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나누던 중 성균[37]과 서로 남자답지 못하다고 투닥거리다가, 큰 일에도 남자답게 대처한 무성[38]을 칭찬하지만 무성 역시 쥐를 무서워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신나게 웃는다. 아버지는 슈퍼맨처럼 가족을 위해서 언제나 든든하게 있지만 그도 한 사람이란 걸 알게 된 에피소드로, 티비에서 슬픈 내용의 드라마(영화)를 보고도 절대 울지 않지만, 다음 신에선 혼자 숨어 책[39] 을 보면서 입을 막고 오열한다.

2.14. 14화

동일에게 보증을 덮어씌우고 도망갔던 친구가 은행에 빚을 모두 갚고[40][41] 사과를 하러 찾아왔다. 월급 차압이 끝나면서 드디어 그 동안의 가난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이튿날 아침, 처음으로 수연과 노을에게 용돈도 두둑이 쥐어줬다. 그리고 붓글씨로 애들 책덮개에 이름을 써 준다. 또 큰 딸 보라에게 이제는 얼마가 걸리든 뒷바라지를 충분히 해줄 수 있으니까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사법고시를 다시 준비하라는 권유를 한다. 보라가 집안 사정으로 인해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항상 미안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4화에서 전작들의 성동일과 마찬가지로 이 분이 예측하면 반대로 된다는 기믹이 생겼다. 동일이 보고 있던 비바청춘에 나온 고등학생 시절의 유재석을 보면서 노을과 일화는 재밌다며 깔깔대면서 나중에 꼭 뜰 거 같다고 말했지만.... 역시 동일만 "수연이 서울대 가는 소리하고 있네"라면서 "코미디언 되기가 어디 쉽냐고 메뚜기 같이 생긴 쟨 딱 여기까지다."라는 독설을 날리는데...[42]

2.15. 15화

15화에서 동일의 집 테마는 보라의 고시 준비, 덕선의 진학 상담, 동일과 딸들의 미묘한 관계, 그리고 꼬막이다. 집마다 특정 음식이 등장하는데, 동일의 집은 꼬막이 등장한다. 식사 장면마다 식탁에 거의 꼬막이 올라오는데, 일화의 설명으로는 동일과 보라가 꼬막을 좋아한다고.

시장에 다녀온 일화가 저녁 준비를 하면서 자녀들을 부르자 일화에게 짜증을 낸다. 자신을 부르지 않았다고... 그러자 일화가 "동일아~ 밥 묵자~"라고 부르자 대답한다(목소리 출연). TV에 일산과 분당 신도시 개발 뉴스를 보면서 수연이의 편을 들어주며 서로 애교를 부린다. 그러다 보라가 아르바이트를 한 돈으로 와이셔츠를 선물하자 감격한다.

어느 날 아침식사 중 꼬막이 가득 담긴 접시가 식탁에 올라오자 굉장히 흥분한다. 그 와중에 보라와 대화하던 중, 밥에 꼬막을 얹어주려는 것을 보라가 말리자 굉장히 어색해한다. 이런 어색함은 1994년으로 접어든 극 후반에 가서야 조금 해소되는데, 15화에서는 서로 어색함을 풀고 싶지만 잘 안 되는 모습이 계속 등장하며 작은 여운을 남긴다.

2.16. 16화

김성균의 병실에서 TV 뉴스의 주가지수 1000포인트 돌파 소식을 보고 무성이 5000만원 정도의 투자를 고려하고 성균이 자신의 친구가 주식매입을 추천해 준 삼성전자, 한미약품, 태평양화학에 대해 이야기하자[43] 주식 시장이 미쳐도 너무 미쳤다며 이자 17% 짜리 은행 예금에 넣어둘 것을 권한다.

또한 스포츠 뉴스를 보던 중 해태 타이거즈는 어차피 포스트 시즌 진출이 뻔하니까 다른 진출 팀을 맞춰보기로 하였을 때 성균이 "김성근 감독이 와서 올해는 태평양 돌핀스가 일낼 꺼 같다."라고 하자 "자넨 허리 수술을 한 거여? 아니면 뇌 수술을 한 거여?"라며 그 자리에 있던 최무성과 김성균에게 태평양 돌핀스의 4강 진출 여부에 대한 내기를 하자고 제안한다. 김성균과 최무성은 플레이오프 진출에 돈을 걸었고 성동일은 진출 못한다에 돈을 걸었다.[44]

2.17. 17화

뭘 예언해도 안 되는 성동일[45]

지난 16화에서 미리 예언해 놓은 태평양 돌핀스의 4강 진출 내기는 태평양이 3위를 기록함으로써 깔끔하게 무성과 성균에게 졌다. 그리고 마지막 1994년으로 넘어갈 당시 90년부터 93년까지 올해의 가수상을 시상하는 것을 가족과 지켜보는데 90년의 변진섭부터 91년의 노사연, 92년의 신승훈, 93년의 서태지까지 완벽히 4년 연속으로 빗나간다...

또 꿈이 없다는 덕선에게 조언과 격려를 해 주기도 하고, 자식들이 잘 되는 것이 현재 자신의 꿈이라고 애기한다.[46]

2.18. 18화

하루가 멀다하고 지점 돈을 들고 튀는 직원이 발생하는 바람에 고생중.

일 때문에 지친 모습이 자주 나왔다.[47] 농담삼아 "정년까지 4~5년 남았는데 명예퇴직 신청할까?"라는 말을 할 정도면... 하지만 일화는 "안 된다. 아직 딸내미들 시집도 못 보냈다아이가? 상견례할 때 백수라고 할끼가?"라면서 뜯어말린다.

그런데 3년 후에 발생할 IMF 외환위기에 의해 성동일의 직장인 한일은행은 부도나서 1999년 1월 초에 한국상업은행과 합병으로 해체[48]되어 정년 이전에 퇴직하는게 불가피해질 수도 있다. 정확히 해체 날짜까지 계산하면 정년 시기와 비슷하게 맞출 수 있겠지만 부도로 인한 직원 감축은 보통 해체 이전에 완료되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다음 에피소드인 19화에서는 응답하라 1988에서도 1997년 시간대의 작중 배경을 보여줄 것으로 예상되지만 퇴직금을 제대로 받을지도 불투명. 이런 불행이 예고되어있는 만큼 성동일이 농담삼아 던진 말과 모습이 남은 화에서 본인의 운명에 대한 복선이 될 수도 있다.

보라는 연수원에 다니면서 그 근방에서 자취를 하고 덕선은 자주 직장동료 집에서 자고 오며, 노을은 연습이다 뭐다 해서 늦게야 들어오니, 한가족이 모두 모여서 밥을 먹은 적이 언제인지 모를 정도로 썰렁해진 집안 분위기 때문에 쓸쓸해하는 모습도 자주 비쳤다. 밥상 받을 때도 독상이 보통. 그 탓에 입맛이 없어졌는지 몇 술 뜨다 말고 나가기도 한다. 오랜만에 집에 온 덕선이 아이들과 만나다며 나가자 매우 서운해한다. 하지만 바로 일화가 곧 있으면 보라가 온다고 그때 같이 밥먹자고 하니까 금방 기분이 좋아진다.

일요일 아침에 드디어 온 가족이 모이고 밥상머리에 앉아 밥을 먹는데 옆방에서 늦잠자다 깬 개딸들이 티격태격하는 소리를 듣고 이제 사람 사는 집 같다며 기뻐한다. [49] 그러나 은행에서 직원들의 횡령 사건 때문에 일요일임에도 출근을 해야 했다. 이에 보라는 "아빠 내일 모레가 정년퇴임인데..." 하면서 안쓰러워한다.

2.19. 19화

당신은 최선을 다했다[50]
이제 더 이상 성동일 과장님이란 이름으로 불릴 수는 없겠지만,
변함 없는 건 이일화의 남편이자 삼남매의 자랑스러운 아빠입니다.
우리 아빠가 가장 잘하는 말은 염병과 니기럴 입니다.
우리 아빠가 가장 싫어하는 말은 만년대리와 빚보증 입니다.
우리 아빠가 가장 잘하는 것은 쓸데없는 물건사기, 우리에게 뽀뽀하기입니다.
우리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양념꼬막과 소주입니다.
그리고 우리 아빠가 제일 사랑하는 것은 바로 우리 가족입니다.
사랑한다 말하지 못해서, 아빠란 이름의 무게를 헤아리지 못해서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그럼에도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보라에겐 존경하는 아빠,
덕선에겐 친구같은 아빠,
그리고 노을에겐 든든한 아빠가 되어주셨기에
그 감사한 마음을 담아 이 패를 드립니다
나이가 가장 많은 과장이 되었다. 그리고 고졸이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그리고 결국 명예퇴직을 당했다. 이는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에서 철밥통이었던 성동일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51] 성동일의 직장인 한일은행이 IMF 외환 위기 당시 부도가 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보면 신의 한수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52] 퇴직금이 2억 넘게 나온다는 언급도 있다.

사실 명퇴를 당했긴해도 성동일 입장에선 아쉬울 것이 없긴 하다. 작중 덕선이네를 가장 괴롭게 했던 빚도 결국 다 갚았고 자식들도 다 자라서 검사, 스튜어디스, 대학생으로 제 앞길 찾아 잘 살아갈 수 있게 되었고[53] 몇십년을 근무했던 직장이라 퇴직금도 당시 기준으로 억대 금액으로 받은데다 그와 별개의 위로금도 받고서 퇴사했기에 받을 건 다 받고 나간 셈이니 손해는 아니다. 그 후 얼마 안가 한일은행이 부도가 났음을 생각하면 정년까지 버티다 은행 부도로 인해 해고를 당했다면 이런 혜택들도 전부 없었을테니 성동일 입장에선 가장 좋은 상황에서 나빠지기 전에 잘 빠진 것.

그러나 퇴임식이 너무 조촐해서 동룡의 가게에서 좀 더 제대로 된 퇴임식을 가졌다. 끝까지 가장으로써 최선을 다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19화의 진 주인공이라는 평이 많다.

2.20. 20화

덕선에게 바둑을 가르치려 기원에 데리고 가던 도중 덕선이 소독차를 보고 따라가는 바람에 택이를 대신 데려갔는데, 택이가 제법 소질을 보이니 제2의 조훈현으로 키우라고 무성에게 권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이 사실을 잊어버린 듯.

보라의 결혼 전날 다른 식구들이 집을 비우면서 보라와 둘이 남았는데, 점심 때가 되자 어설프나마 볶음밥을 만들어준다. 정봉이 엄청 많은 볶음밥을 만들었을 때 덕선의 말에 의하면 가장 쉬운 음식으로 우리 아버지도 만든다라고 했다. 평소 보라에게 잘 보여주지 못한 부정을 표현한다. 보라가 결혼식할 때 신으라고 사준 구두를 닦고 또 닦으며 애지중지한다. 그리고 보라가 사이즈 맞냐고 물어보니까 딱 맞는다고 하면서 고맙다고 한다. 보라는 싼 거라며 막 신으라고 한다. 그러나 보라를 데리고 식장에 들어가기 전 동일을 살피던 덕선은 신발이 큰 것을 보고 자신의 백에서 휴지를 꺼내 신발이 벗겨지지 않게 공간에 넣어준다. 예식이 끝날 무렵 신랑 신부가 부모님한테 인사 드릴 때 보라는 그것을 보고 펑펑 운다.

결혼식이 끝나고 가족사진을 촬영하던 중, 사진기사가 촬영하려는 것을 급하게 막고는 쌍문동 사람들을 전부 불러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성동일에게는 쌍문동 식구들이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던 것. 어떻게 보면 이 장면이 이 드라마를 가장 잘 표현한다.

이후 얼굴 마주보고 대화를 나누기를 어려워하는 부녀 사이라 보라에게 편지를 써 몰래 가방에 넣어둔다. 그리고 보라가 말로는 못하겠어서 편지로 썼다면 준 것을 결혼식장 한켠에서 혼자 보면서 눈물을 삼킨다. 이번 화에서 가장 명장면을 뽑으라면 바로 이 장면이라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쌍문동 식구들 중 제일 마지막으로 떠나 판교로 이사갔다.[54]

3. 기타



[1] 20화, 2016년 1월 시점에 선우가 곧 생신이 아니냐고 보라에게 묻는 걸로 보아 생일은 1월 말에서 2월 초쯤 되는 빠른 생일로 추정.[2] 응답 시리즈가 본명을 배역 이름으로 자주 사용하는 전통을 따랐다.[3] 2회에서 덕선의 할머니가 광주에서 제일 좋다는 상고 나왔다고 언급.[4] 1998년 한국상업은행과 합병되어 한빛은행이 출범하고, 다시 한빛은행이 평화은행을 합병하면서 지금의 우리은행이 되었다.[5] 응답하라 1997응답하라 1994에서 쭉 이어온 야구단 코치 전통이 깨졌다.[6] 11회에서 업무가 밝혀졌는데, 감사부에서 직원들의 사기,횡령을 찾아내는 것으로 내부 감찰을 한다. 18화에서 횡령한 직원을 잡으러 긴급 출동하는 장면이 나오는 걸로 봐서는 감사부가 맞는 듯.[7] 응답하라 1997에서도 딸은 성송주, 성시원으로 두 명이 있다. 하지만 큰 딸이 젊은 나이에 사고로 요절해서...[8] 가격대로 보아 당시 유행하던 전집류나 백과사전류였을 가능성이 높다.[9] 여담으로 이 점에서 80년대 은행원이란 설정이 묘하게 현실성을 갖는다. 1980년대 고성장시대 금융권 종사자들은 "여의도에 지나다니는 개도 십만원짜리 수표 물고 다닌다"고 할 정도로 호황기의 수혜를 받았는데, 성동일의 경우에는 빚 보증을 섰는데도 불구하고 집안이 아예 쫄딱 망하지는 않았다. 물론 이들 금융맨들은 1997년 IMF 사태 당시 제일 먼저 쓸려나갔...지만 성동일 나이 설정상으로는 당시 처음 도입되던 명예퇴직 때 퇴직금이라도 챙겨나왔을 가능성이 높으니 해피엔딩이 될 거라는 전망이 많았고, 그 바로 아래 세대 직장인들은 명퇴가 아니라 아예 정리해고 칼바람을 맞았다[10] 아내와 친구들이 같이 있는 거 보고 연탄을 걷어차기도 하고 언니랑 엄마 기다린다고 월드콘 사달라는 딸한테 투게더 사가지고 배고프다며 들어가려다가 아줌마들 집 앞에 모여있단 말에 투게더로 배 채우자며 다시 주저앉는 등[11] 집에 자식들이 늦게 들어온다고 좋겠다는 아줌마들에겐 불평을 하면서도 일화에겐 은근히 임자 먼저 씻으라고 말했다..[12] 참고로 일산신도시가 본격적으로 뜨기 시작한 시점은 90년대 초중반 이후다. 즉, 신도시 개발 발표 직전에 땅을 사 두었으면 계획 발표 때 집값 상승의 수혜자가 되었을 것이고, 그 후에도 보유했다면 또 한 번 집값 상승의 수혜자가 되었을텐데 두 번의 기회를 한방에 놓친 것이다.[13] 작중 성동일의 예언이 펠레의 저주마냥 틀리기는 하지만, 이 부분은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현직 은행원 신분임을 감안하면 일종의 어장관리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다. 또한, 주식은 대박이 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쪽박이 날 수도 있으나(실제로 응사에서 시티폰에 1억을 투자하였다가 날린 적이 있다.) 은행 예금은 이자가 꼬박꼬박 나온다.거기에 추천한 상품이 무려 이자율 17% 짜리이니... 기성세대들이 지금까지도 주식투자를 벌레보듯 기피하고 예금과 적금을 맹신하는 이유기도 하다. 자기들 젊을 때는 무위험으로 연 10%이상의 이자를 받았으니...[14] 그 당시에는 허허벌판이었고, 드라마 상에서도 이삿짐 직원이 “농사지으러 가시냐”라고 하고 성동일은 ‘당했다’ 하는 표정을 짓지만, 10여년 후 알다시피....[15] 할머니의 말에 따르면 미국에서 세탁소를 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 세탁소는 아시안 이민 초기부터 아시아인들이 많이 하는 업종이다. 오죽하면 오리엔탈리즘 연구에도 인용될 정도. 경제적인 이유로 이민했고 거기서 척박하게 살고 있으리라는 사연이 예상된다.[16] 전라도 지방에서는 흔히 ""을 "성"으로 발음하는데 사투리 색이 더 강해지면 승이 되기도 한다.[17] 이 관련 유튜브 영상 댓글 중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댓글이 '어른들도 그저 아이들이 자란 인간이다. 까 보면 결국엔 누군가의 아이일 뿐이야.'와 '저런 게 어른이라면 나는 어른이 될 자신이 없다.'라는 말이다.[18] 이 장면은 국내 모든 영상물들 중 가장 슬픈 씬으로 얘기가 나올 정도로 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실제로도 사람 인생이라는 게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반드시 오는 것이니까. 늦은 뒤 후회하지 말고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떠오른다.[19] 왕따나 그런 게 아니라 친한 사이에서 서슴없이 말하는 걸 보고 더 충격을 먹은 듯 하다. 본인의 입장에서는, 자식들에게 뭐 하나 제대로 못해줬다는 사실에 더 괴로웠을 것이다.[20] 악법도 법이다의 패러디[21] 당시 방영되던 코미디 프로그램 '쇼! 비디오자키'의 코너인 쓰리랑 부부의 순악질 여사(김미화)가 키우던 강아지의 이름이다. 극 중 남편인 김한국의 이름을 따서 지었고 가끔 그 강아지를 붙잡고 넋두리를 늘어놓기도 했다. 그리고 그 영향인지 정환이네 개 이름 역시 행국이다.[22] 물론 택이 대국을 대패했기 때문에 미역국 먹자고 한 일화의 실수로 볼 수 있지만..[23] 용돈으로준 금액은 88년 당시 금액의 5000원으로 88년도 직장인들의 8시간 근무기준 하루 평균 일급이 3900원이었다. 즉 자신의 하루치 일급보다 더 큰 돈을 용돈으로 준것.[24] 담당배우 성동일의 나이면 4.19 혁명 당시 고등학생으로 대학생과 더불어 혁명을 이끈 세대이기 때문에 시위를 하는 학생에게서 과거의 자신을 보았을 수도 있다.[25] 이에 대해서는 나중의 행적과 더불어 경찰이 보라를 찾고 있을 상황이라 밖으로 나가면 체포될 것을 우려해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니었냐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시위에 적극 참여했으면 100% 얼굴이 찍혔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26] 게다가 동일의 성장기엔 연좌제가 시퍼렇게 살아있었다. 사범대를 갔으니 어쨌거나 선생이 되어야 할 보라 본인은 물론이거니와, 애먼 덕선과 노을 앞길까지도 막힐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눈앞이 깜깜해지는 게 당연. 실제로도 동일은 보라를 윽박지를 때 '네가 잡혀가면 우리 집안은 끝이다'라는 점을 강조했지 '데모는 해서는 안 되는 범죄 행위다'라고는 하지 않았다.[27] 게다가 극 중 성동일은 광주의 영향권인 전남 곡성 출신으로,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영향으로 인해 80년대 호남 사람들에게 비슷한 정서가 있었다는 점에서 학생 운동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면을 해석해볼 수 있다. 보라의 학생 운동에 역정내는 것 역시 호남 출신으로서 5.18의 영향으로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이 남의 일이 아니라 동네 누구누구, 아는 사람 누구누구의 일이었을테니 딸이 학생 운동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가 가장 큰 극 중 인물은 성동일이었을 것이다.[28] 대부분의 부모님들의 인식은 위험하다이지, 잘못된 일을 한다가 아니었다. 당장 극 중 성동일의 나이면 4.19 혁명 당시 고등학생으로 대학생과 더불어 혁명을 이끈 세대고, 성동일은 대학을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동세대 대학생들은 65년 한일 수교 반대 시위 등 반독재 투쟁 전면에 나서는 등 이들 역시 소시적에 한 가락한 세대이기도 하다. 학생 운동이 점점 지지를 잃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초반부터이며 90년대 후반부터는 연세대 사태 이후 지지기반을 완전히 잃어버린다.[29] 택이 중국에서 가져온 고량주 마오타이.[30] 문제는 작중에서 범인이 나오는 장면에서 동일의 눈이 부어있다는 거...이 말은 이번 화에서만 6만원을 내리 훔쳤다는 말이다... 노을이에게 주는 용돈은 다 여기서 나오나 보다.[31] 덕선이는 자기 아빠가 한일은행 검사부라고 하내는데, 실제로 극중에서 하는 일을 보면 '검'사부가 아니라 사부로 보인다. 덕선의 좋지 못한 두뇌(...)를 표현하는 부분일 수도 있다.[32] 이 장면 한정 시청자들은 김윤석이 아닌 그가 타짜의 아귀를 연기했어도 엄청났을 거라며 감탄했다.[33] 늦은 저녁에 웬일로 삼남매가 같이 들어왔다며 놀란다. 하지만 덕선과 노을이 배고프다고 하자 된장찌개에 김치, 계란 후라이까지 차려줬지만 찬밥밖에 없어서 라면을 끓여 먹는다고 투정을 부렸고 보라는 내일 입고 갈 옷을 멋대로 빨았다고 신경질을 내자 여태까지 가만히 이를 노려보기만 했던 동일은 결국 손에 들고 있던 신문을 집어 던지며 터지고 만다.[34] 염병 첨병들 해쌌네! 이 반찬이 어디가 어때서! 못된 것들 같으니라고... 노을이 이자식아 인제부터 니가 따뜻한 밥 해처먹고! 덕선이 너는 이년아 니가 라면 끓여 처먹고! 보라 너는 니 빨래 니가 해서 처입어! 으디 다 큰년! 어! 대학까지 댕기는 년 엄마가 일일이 해서 입힌대! 못된 것들 같으니라고...[35] 이후 일화가 자리를 뜨자 '예라이 나쁜 놈의 시끼들아. 느그 엄마가 천년만년... 느그들 옆에 있을 줄 아냐? 응? 느그 엄마 불쌍하도 않애? 있을 때 좀 잘 좀 해라 좀. 제발 좀 철들 좀 들고. 새끼들...'이라며 다시 조곤조곤 화를 내며 일화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넌지시 알린다.[36] 산삼주가 맞긴 맞았는데 엄청 큰 술통에 작고 가느다란 산삼이 달랑 한 개 들어있었다.[37] 집 안에 물건을 고치려다가 더 고장낸 일.[38] 일본으로 향한 비행기의 추락 사고로 인해 택의 생사 여부가 걸린 일.[39] 도종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을 읽으며 오열 중이었는데 불치병에 걸려 세상을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며 쓴 시다.[40] 몇 화 전에 성동일이 거의 다 갚았다고 한 적이 있어 빚을 진 당사자인 친구가 갚아야 했던 돈은 그리 크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빚을(금전적인 것과 마음의 것 모두) 갚겠다고 했으니... 어쨌든 월급을 100% 받지 못하던 고생은 끝이 난 것.[41] 하지만 TV가 아닌 실제 세상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0%에 가깝다. 이 장면을 보고 보증에 대한 마음의 벽을 낮추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보증 문서 참고.[42] 지금 유재석이 어떤 위치인지 생각해보자.[43] 그 때 그 주식들에 투자했다면 지금 쯤이면 수십억원으로 불어났을 것이다. 기사 참조.[44] 물론 성동일의 시각에서는 이런 예상을 충분히 할만도 했는데 그 배경은 태평양 돌핀스의 처참한 역사에 있다. 태평양의 전신 삼미 슈퍼스타즈청보 핀토스는 1982년 원년 이후 단 한 번도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 적이 없었고 창단 첫 해인 1988년에도 꼴찌를 맡아놨던 만년 꼴찌 팀이었다. 그러나 1989년 프로야구에서는 박정현, 최창호, 정명원 신인 트로이카를 앞세워 3위를 기록했고 준플레이오프에서는 당대 강호였던 삼성 라이온즈까지 격파하며 구단 역사상 최고의 시즌을 보낸다. 물론 플레이오프에서 해태 타이거즈에게 3:0으로 발리며 광탈하고 만다.[45] 예언하는 족족 틀리는 설정은 응답하라 시리즈 내내 똑같다. 응답하라 1997에서는 대형 타자 유망주였던 추신수이대호를 투수로 키우라고 말한 바 있고 응답하라 1994에서는 서울 쌍둥이가 1994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후 앞으로 서울 쌍둥이 독주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예언했지만 물거품이 됐고 2002년 월드컵 16강전 승패 내기에서는 꿋꿋하게 이탈리아의 승리를 예견했다가 탈탈 털렸다.[46] 응팔에 나오는 인물들의 부모님, 그리고 현실의 부모님 모두 똑같겠지만 말이다.[47] 밥을 먹다가 코피를 흘렸다. 어쩌면 앞으로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48] 해체 이후 한빛은행이라는 이름으로 개칭되어 3년 동안 지속되었다가 2002년 5월 현재의 우리은행으로 변경되었다.[49] 18화 전체가 바쁜 아이들의 잠든 모습이나 뒤통수밖에 볼 틈이 없게 된 부모들이 아이들 잠든 모습이나마 애틋하게 바라보는 내용이 많았다.[50] 19화의 부제이자, 가족을 위해 헌신한 성동일, 그리고 지금 살아가고 있는 모든 부모님들에게.[51] 고졸 행원 채용으로 입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실적이 대단하지 않는 이상 대졸채용자에 비해 승진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을 게 당연한 일.[52] 만약 성동일이 계속 재직했다면 부도 후 합병과정에서 정리해고 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명예퇴직의 경우 퇴직금 외에도 일정량의 위로금을 받을 수 있기에 정리해고에 비해 모양도 좀 더 낫고 금전적으로도 유리하다.[53] 아직 대학생인 노을의 학비가 남긴 했지만 음악 쪽으로 진로를 확실하게 잡았기에 앞날에 그렇게 큰 걱정은 없는 편.[54] 작중 묘사 + 용달차 기사의 '거기 논밭밖에 없는데?'라는 언급을 보면 성씨 일가가 판교로 이사한 것은 본격적인 신도시 개발이 이뤄지기 이전으로 보인다. 사실 애초에 김씨 집안과 성씨네가 판교로 간 건 재테크 목적이 아니라 편안하게 교외에서 귀농 비슷하게 노후를 보내려고 간 것이라 땅값 쌀 때 들어간 거라 큰 상관은 없을 듯. 판교가 거품붕괴로 한번 폭락을 겪기는 했으나, 두 집안 모두 '전원주택' 짓고 살려고 평수도 크게 사가지고 갔다고 하니(작중 평당 100만원으로 언급됨), 2002년 9월 4일에 정부의 판교신도시 개발이 발표되고 난 뒤 판교신도시 입주가 끝난 지금쯤 김성균의 가족은 1988년 당시를 능가하는 엄청난 떼부자가 되었을 것이고, 성동일의 가족 역시 1988년 시절 가난한 지하방 생활에서 완전히 탈피한 엄청난 부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55] 응답하라 1997에서는 성송주를 먼저 보냈고, 응답하라 1994에서는 아들 성태훈을 먼저 보냈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427
, 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427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