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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fff><colbgcolor=#0065bd> 잉글랜드 왕국 헨리 1세의 왕비 스코틀랜드의 마틸다 Matilda of Scotland | ||
이름 | 스코틀랜드 게일어 | Máel Muire (마엘 무이레) |
영어 | Matilda of Scotland (스코틀랜드의 마틸다) | |
출생 | 1080년 | |
사망 | 1118년 5월 1일 (향년 37~38세) | |
잉글랜드 왕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궁전 | ||
배우자 | 헨리 1세 (1110년 결혼) | |
자녀 | 마틸다, 윌리엄 애설링 | |
아버지 | 말 콜룸 3세 | |
어머니 | 웨식스의 마거릿 | |
형제 | 에드워드, 에드먼드, 에설래드, 에드가르, 알락산더르 1세, 메리[1], 다비드 1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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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코틀랜드 국왕 말 콜룸 3세와 웨식스의 마거릿의 딸이자 잉글랜드 국왕 헨리 1세의 첫 번째 왕비. 헨리 1세와의 사이에서 동명이인인 딸 마틸다와 아들 윌리엄 애설링을 낳았고 이중 마틸다의 장남인 외손자 헨리 2세가 무정부시대를 거쳐 잉글랜드 국왕으로 즉위하면서 이후 잉글랜드의 모든 왕조는 스코틀랜드의 마틸다의 후손이다.2. 생애
스코틀랜드의 왕 말 콜룸 3세와 웨식스의 마거릿의 딸로 태어났다. 정말 이름은 에디스였으나 잉글랜드로 시집가면서 마틸다로 개명했다. 마틸다는 잉글랜드 왕비의 이름으로 흔히 쓰이던 이름이었으며 참회왕 에드워드의 왕비였던 에디스 왕비와 구분하기 위함이었다.마틸다는 1100년 11월 11일 잉글랜드의 왕 헨리 1세와 결혼했다. 이 결혼은 정략적인 목적을 가진 것으로, 헨리 1세는 마틸다와의 결혼을 통해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관계를 강화하고 자신의 왕위를 안정시키고자 했다. 스코틀랜드의 마틸다는 잉글랜드의 왕비로서 자선 활동과 종교적 후원에 힘썼다.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구호 활동을 펼쳤으며, 수도원과 교회를 지원하는 데에도 적극적이었다. 또한 남편 헨리 1세의 정치적 조언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후 1118년 5월 1일 웨스트민스터에서 사망했으며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되었다. 헨리 1세와의 사이에서 동명이인인 딸 마틸다와 아들 윌리엄 애설링을 낳았으며 이 둘은 헨리 1세의 유일무이한 적자녀들이었다.[2] 그러나 윌리엄 애설링은 어머니인 스코틀랜드의 마틸다가 사망한지 2년 6개월만인 1120년 11월 25일 블랑슈네프호 침몰 사고로 사망하고 딸 마틸다가 잉글랜드의 유력한 왕위계승자가 되었다. 헨리 1세는 마틸다의 사후 루뱅의 아델리자와 재혼하여 어떻게든 다시 적자를 낳아보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자, 적녀 마틸다를 후계자로 지명하고 원할한 왕위계승을 위해 앙주 백작 조프루아 5세와 결혼시키면서[3] 지지세력을 결집시켰다. 그러나 여왕 즉위에 반발한 잉글랜드 귀족들이 헨리 1세의 외조카 에티엔 드 블루아를 내세우면서 왕위 계승 분쟁이 발생했고 결국 무정부시대가 일어났다.
3. 평가
잉글랜드의 왕비로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녀는 자선 활동과 종교적 후원을 통해 백성들의 삶을 개선하고자 노력했으며, 남편의 정치적 조언자로서도 활약했다. 또한, 그녀는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관계를 강화하는 데에도 기여했다.[1] 불로뉴 백작 외스타슈 3세의 아내이자 불로뉴 여백작 마틸드의 어머니.[2] 헨리 1세는 두번째 왕비 루뱅의 아델리자에게서 자식을 얻지 못했고 마틸다와 윌리엄 애설링 이외의 다른 자녀들은 모두 사생아였다.[3] 헨리 1세의 딸 마틸다에겐 재혼이었다. 마틸다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5세와 결혼했다가 자녀없이 사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