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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18-12-26 01:13:57

스파키 앤더슨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px-Sparky_Anderson.jpg
이름 조지 리 '스파키' 앤더슨 (George Lee "Sparky" Anderson)
생몰년도 1934년 2월 22일 ~ 2010년 11월 4일
국적 미국
출신지 사우스다코타
포지션 2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53년
소속팀 필라델피아 필리스 (1959)
지도자 경력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코치 (1969)
신시내티 레즈 감독 (1970~1978)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감독 (1979~1995)
파일:MLB_logo.png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external/baseballhall.org/Anderson%20Sparky%20Plaque_NBL_0.png
스파키 앤더슨
헌액 연도 2000년
헌액 방식 베테랑 위원회(Veteran's Committee) 선정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영구결번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2 3 5 6
타이 콥 찰리 게링거 앨런 트래멀 행크 그린버그 알 칼라인
11 16 23 42 47
스파키 앤더슨 할 뉴하우저 윌리 호튼 재키 로빈슨 잭 모리스
※ 모든 MLB 팀이 등번호을 쓰기 시작한 건 타이 콥이 은퇴한 뒤인 1937년부터다. 대신 코메리카 파크 왼쪽 담장에 그의 이름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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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내티 레즈의 영구결번
{{{#!folding [ 펼치기 · 접기 ] 1 5 8 10 11 13
프레드 허친슨 자니 벤치 조 모건 스파키 앤더슨 배리 라킨 데이브 콘셉시온
14 18 20 24 42
피트 로즈 테드 클루스제프스키 프랭크 로빈슨 토니 페레즈 재키 로빈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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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커리어

1. 개요

겸손하고 인간적이면서 끝없는 낙관적인 성격과 그리고 야구에 대한 마르지 않는 지식으로 선수들에게 늘 존경받고 보석처럼 여겨지던 감독.[1]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신시내티 레즈디트로이트 타이거즈 감독을 맡았던 전설적인 명 감독. 본명은 조지 리 앤더슨(George Lee Anderson) 인데, 사람들은 늘 그를 스파키라고 불렀다. 참고로 스파키의 뜻은 생기발랄한, 재기넘치는 인데, 그의 명예의 전당 동판에 새겨진 내용을 참고한다면 그 의미가 살아난다. 선수들에게 친근했고, 동시에 선수들이 제 기량을 발휘하도록 이끌어주는 타입의 감독.

2. 커리어

명 선수 출신은 아니다. 선수 시절에는 그냥 보통의 선수, 아니 그 이하의 선수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브루클린 다저스와 계약한 뒤, 이리저리 트레이드되며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다가 1959년 필라델피아 필리스 소속으로 데뷔 첫 시즌을 맞았다. 이 해 시즌을 풀타임 2루수로 뛰었는데, 타율/출루율/장타율 전부 2/2/2 라인(...)이었던 데다가 타율은 고작 .218(...)이었고 홈런은 아예 0개(...) 게다가 주루마저도 도루성공률이 절반도 안될 정도로 성적이 좋지 못했고, 결국 데뷔 시즌 이후론 계속 마이너리그에만 머무르다가 선수로서는 재능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 은퇴를 선언, 지도자의 길로 걸어간다.

감독으로서의 스파키는 엄청난 명장이자 명감독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30대 초반부터 마이너리그 감독 생활을 하면서 혈기가 넘쳐서 심판과 싸우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고. 하지만 이런 마이너리그의 경험을 겪으면서, 또 자신이 그리 뛰어나지 않은 선수였기 때문에 선수들에 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마침내 1970년 36세의 나이로 신시내티 레즈의 감독에 임명되면서 화려한 성공 시대를 열었다. 어린 감독에게 처음 선수들은 텃세를 부렸지만, 곧 그의 유머 감각과 화술, 지도력에 의해 절대적으로 따르기 시작한다. 가장 유명한 일화가 조 모건휴스턴 애스트로스시절 내야 플라이를 치고 걸어가자[2], 경기 후에 스파키 앤더슨이 "자네는 야구에서 가장 해서는 안 되는 플레이를 했다."고 충고했고, 1971년 모건이 신시내티에 합류하면서 절대적으로 앤더슨을 따른 것이 대표적인 일화.

신시내티의 감독으로 1970년대 신시내티 레즈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빅 레드 머신을 이끌며 1975년과 1976년 두 차례 월드시리즈 우승에 성공했다. 1978년 2시즌 연속 2위에 그쳤다는 이유로 해임되자 바로 디트로이트 타이거즈가 그를 모셔가서 1960년대의 영광 이후 흔들렸던 디트로이트에게 다시금 영광을 안겨주었다. 그 결과물이 1984 월드시리즈 우승. 이 우승으로 인해 그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양대리그(내셔널리그, 아메리칸리그) 월드시리즈 우승[3]을 경험한 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감독 통산 2194승을 기록역대 감독 최다승 6위에 랭크되어 있다.

감독직에서는 1995년 은퇴했는데, 사실 더 뛰고 싶었지만 선수 파업 과정에서 선수들 편을 들어서 구단주들에게 찍혔다는 설이 유력하다.[4]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업적은 너무나 대단하기 대문에 2000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010년 11월 4일, 타계했다.

자세한 정보는 여기

[1] 명예의 전당 동판에 새겨진 스파키 앤더슨에 관한 소개.[2] 당시 조 모건은 시즌 내내 휴스턴의 해리 워커 감독과의 갈등으로 인해 팀 내 분위기가 막장인 상황에서 고생 중이었다.[3] 2006년도에 토니 라루사가 2번째로 양대리그 월드시리즈 우승[4] 일본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90년대 내내 B클래스에서 헤매던 한신 타이거즈가 1990년대 말 영입을 시도했지만, 스파키의 가족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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