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0-20 19:34:43

알키페


1. 개요2. 군신 아레스와 아글라우로스 2세 공주의 딸이자 반신
2.1. 행적
2.1.1. 아테네의 공주2.1.2. 할리로티오스강간미수2.1.3. 아레이오스 파고스 재판2.1.4. 아레스와 알킵페 부녀의 승리2.1.5. 해방
2.2. 의의 및 평가
3. 피사의 왕 오이노마오스의 딸4. 에우팔라모스의 딸

1. 개요

Ἀλκίππη[1] / Alcippe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알킵페라는 이름을 가진 세 명의 등장인물이 나온다. 어원은 '굉장한 여자'.

2. 군신 아레스와 아글라우로스 2세 공주의 딸이자 반신

군신 아레스와 순혈 인간이자 아테네의 공주인 아글라우로스(Ἄγλαυρος /Aglauros) 2세[2][3]에게서 태어난 세 자매 중 1명. 순혈 신과 순혈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만큼 이 쪽도 엄연한 반신(半神)이다.

족보를 따지자면 제우스헤라의 친손녀이자 아테나와 헤파이스토스, 헤베, 에일레이튀이아, 헤르세(Herse), 판드로소스(Pandrosus)의 조카가 된다. 또한 아버지인 아레스가 신계에서 손꼽히는 미남이었고 알킵페 본인도 후술하듯 망나니인 할리로티오스가 한눈에 반해 신부로 받아들이려 했던걸 보면 아버지를 닮아 미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후술하듯 그로신 최초의 (형사)재판인 '아레이오스 파고스 재판'의 중심 인물로 유명하며, 그 외에는 언급이 적다. 무소식이 희소식인 그로신 세계관을 고려하면 다행인 편.

2.1. 행적

2.1.1. 아테네의 공주

일치와 조화의 여신 하르모니아[4]아마조네스의 여왕 펜테실레이아, 힙폴뤼테, 멜라니페, 안티오페 네 자매[5]와 더불어 아레스의 딸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인물이다.

아레스는 (현대적 사고방식을 기준으로) 툭하면 사건사고를 저지르거나 얽히거나 하는 올림포스 12신 중에서도 최악의 망나니로 꼽힐만큼 포악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에 한해서는 순수한 일면을 가지고 있어 아내들에게는 물론 그녀들이 낳은 자식들에게도 헌신적이고 부성애를 쏟아주는 좋은 남편이자 아버지였다.[6] 알킵페도 그런 아레스의 딸답게 훌륭한 명마들, 화려한 장신구와 페플로스들을 선물받고 가족들의 애정 속에 아무 고민 없이 성장했다.

2.1.2. 할리로티오스강간미수

그렇게 무난하게 커 오던 어느 날, 아테네 교외에 있는 넓은 들판에서 혼자 꽃놀이를 즐기다가 아테네 근교를 돌아다니며 행패를 부리던 망나니 할리로티오스가 그녀에게 한눈에 반하게 된다. 할리로티오스는 가만히 숨어 있다가 튀어나와서 알킵페를 겁탈하려 시도했고, 당연히 기겁한 알킵페는 강간범에게 필사적으로 저항하려고 처절하게 몸부림쳤지만, 마찬가지로 반신인데다가 신체능력도 뛰어난 편이던 할리로티오스를 떨쳐내지 못하고 오히려 그녀의 반항에 할리로티오스가 더 강압적으로 그녀를 옭아맨다.[7]

그렇게 강제로 범해지기 전까지 몰리자 알킵페는 최후의 희망으로 아버지인 아레스에게 도와달라며 부르짖었고, 딸의 비명에 깜짝 놀란 아레스는 전쟁을 지원하던 것도 뒤로 한 채 전차를 몰고 전쟁터를 떠나 급하게 딸의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허겁지겁 달려가[8] 할리로티오스에게 붙들려 옷이 찢겨져 반라의 상태로 몸부림치는 알킵페를 보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자식사랑이 지극한 아레스 입장에선 딸이 웬 성범죄자에게 노려지는 모습이 좋게 보일 리 만무했고, 그 자리에서 딸을 구해내고 할리로티오스를 단 칼에 죽였다.[9]

그러나 할리로티오스는 포세이돈의 친아들이었는데 포세이돈은 할리로티오스의 평소 행실[10]은 생각도 않고 다짜고짜 자신의 아들을 살해했다는 것만으로 분노하여 아들을 죽인 살인 신이라고 아레스를 비방했고, 아레스 또한 그런 포세이돈의 뻔뻔한 모습에 치를 떨며 할리로티오스가 먼저 알킵페를 강간하려 했으니 자신은 딸을 지키기 위해 정당방위를 했을 뿐이라며 마찬가지로 포세이돈에게 분노를 드러냈다.

2.1.3. 아레이오스 파고스 재판

둘의 대립이 점차 치열해지게 되는 와중 이들이 극단적으로 관계가 틀어지기 전 중재에 나선 제우스아테나는 아테네 도심에 있는 언덕에서 재판을 열어 다른 신들의 의사에 따라 아레스의 유무죄 여부를 가리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고, 포세이돈아레스 양측 모두 이 중재안을 수용하면서 그리스 로마 신화 사상 최초의 신들의 재판이 열리게 된다.

판사이자 재판관 역할은 아레스의 아버지이자 신들의 왕인 제우스가 맡았고, 아레스의 변호사 역할은 이복 누나이자 지혜와 전쟁, 이성의 여신 아테나가 담당하게 되었다. 그 외에 아레스의 어머니이자 신들의 여왕 헤라, 이모 겸 고모들인 불씨와 화롯가의 여신 헤스티아, 곡물과 대지, 농업의 여신 데메테르, 아레스의 동복 여동생인 출산의 여신 에일레이튀이아와 청춘의 여신 헤베, 이복 여동생인 달과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 자신의 형수이면서 과거 불륜의 상대였던 연인 아프로디테, 아레스의 친형인 헤파이스토스와 이복 남동생들인 아폴론헤르메스 등의 많은 신들이 배심원으로 참여했다. 재판이 시작되자 원고로 참여한 포세이돈은 아들 할리로티오스를 죽인 이상 살인 혐의를 물어서 아레스의 올림포스 12신 지위를 박탈하고 올림포스의 12신이 되지 못하고 일반 하급 신에 머물렀던 다른 제우스의 자녀 신들인 무사이와 헤베, 에일레이튀이아, 브리토마르티스 등과 같이 일반 신으로 격하시킬 것을 제우스에게 요청했으며, 피고로 재판에 선 아레스는 자기 딸을 겁탈하려 든 할리로티오스는 악질 강간범이니만큼 성범죄에서 자신의 딸을 지키기 위해 한 명분 있는 행동이었다고 반론하며 아버지 제우스와 어머니 헤라, 이복누나 아테나에게 결백을 호소했다.

2.1.4. 아레스와 알킵페 부녀의 승리

당연하게도 재판 결과는 아레스와 알킵페 부녀의 승리로 끝났다. 포세이돈은 아레스가 거의 모든 신들에게 미움 받는 왕따라는 사실을 노리고 다른 신들이 망설임 없이 자신의 편을 들거나 혹은 아레스의 편을 드는 신이 적게 나와 근소한 차이로 자신이 승소할 거라는 자만에 부풀었지만, 이런 포세이돈의 오만을 비웃듯이 재판관과 변호사부터 배심원으로 재판에 참여한 모든 신들은 아레스를 적극적으로 변호하거나 그의 무죄에 힘을 실어줬고 그 결과 아레스는 압도적인 표결차로 승소할 수 있었다.

사실 재판에 참석한 신들 중 대다수, 특히 여신들은 이전부터 포세이돈의 강간과 패악질에 시달려온 피해자들이었다. 비단 포세이돈 뿐만 아니라 할리로티오스도 자발적으로 불경죄와 신성모독죄를 연달아 저지르는 희대의 악인이었기에[11] 본인의 승소를 자부한 포세이돈의 억측은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알킵페 사건으로만 한정해서 봐도 가만히 있는 처녀를 강간하려고 든 할리로티오스의 범죄가 아레스와 포세이돈 두 올림포스 신들 사이에서 일어난 분쟁의 근원이라는 사실이 명확했기에 아레스를 지지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할리로티오스에 의해 자신의 도시였던 아테네가 유린당한 최대 피해자였던 아테나[12]를 위시하여 헤라,[13] 헤베, 에일레이튀이아,[14] 아프로디테,[15] 아르테미스,[16][17] 헤스티아,[18] 데메테르[19]는 아레스와 포세이돈 양측 모두의 의견과 당시 상황을 모두 전해듣고 일말의 망설임 없이 아레스에게 표를 실어주었다. 한편 이 재판은 제우스가 양쪽의 의견을 모두 듣고 난 뒤 결론을 내리는데, 딸이 웬놈의 불한당에게 강간당하는 모습을 보아 딸을 지키기 위해 제우스 자신에게는 친손녀가 되는 알킵페를 겁탈하려던 조카 할리로티오스를 때려 죽인 아레스의 행동을 제우스는 정당하다고 판단했고,[20] 아레스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2.1.5. 해방

재판 후 알킵페에 대한 언급은 없어 자세한 부분은 알 수 없으나, 아무리 포세이돈이라도 친할아버지 제우스와 친할머니 헤라, 고모 아테나와 아르테미스, 에일레이튀이아, 헤베, 고모할머니 헤스티아와 데메테르 등을 포함한 다른 신들이 다수 참석한 공적인 자리에서 결정된 판결을 뒤엎을 수도 없을 테고 여러 일로 심신이 지친 만큼 당분간 할머니와 고모할머니들, 고모들의 위로를 받고 안정된 후 원래 살던 고향 아테네로 돌아가 천수를 누리며 살았을 것으로 보인다.

2.2. 의의 및 평가

강간불륜, 겁탈, 납치를 비롯한 성범죄가 굉장히 들끓고 남성우월주의가 극렬한 그리스 로마 신화 내에서 악랄하고 파렴치하기 짝이 없는 삼주신과 그 삼주신의 아들에게 2차 가해와 강간미수를 당하고, 억울하게 가해자로 찍혀 재판까지 치르게 된 대표적인 강간 피해자 여성 중 한 명이다. 다행히 그녀는 아버지이자 전쟁의 신 아레스를 비롯해 그의 승소에 만장일치로 뜻을 모은 올림포스의 모든 신들의 보호와 축복을 받아 진짜 가해자이자 원수인 할리로티오스를 엄벌하고 간신히 목숨을 구하고 행복한 결말을 누린 기념비적인 사례를 남기게 되었다.

또한 그리스 신화에서는 강간당한 피해자 여성의 불행을 외면하고 방관하거나 오히려 피해자가 제대로 자기 관리를 잘못했다고 2차 가해로 비난하거나 처벌하는 엉뚱하고 찝찝하기 짝이 없는 일화가 난무하며, 작품 내적으로도 그것에 대한 도덕적 비판이 전무하다시피했다. 그런 클리셰로 가득 찬 그리스 신화에서 최초의 성범죄 재판에서 당당하게 승리하고 모든 신들이 한 여성의 억울함과 자유를 위해 한 자리에 모여 일치단결하는 에피소드의 중심에 섰다는 점에서 존재감과 의의가 매우 크다.

3. 피사의 왕 오이노마오스의 딸

피사의 왕 오이노마오스의 딸이며 위의 알킵페의 친조카 격이 되는 인물. 아트레이드의 선조이자 펠롭스의 본처인 힙포다메이아 공주와는 자매지간.

놀랍게도 똑같은 아레스의 사생아 아들이자 배다른 숙부이기도 한 에베노스와 결혼을 하여 아름다운 딸 마르펫사를 낳았다. 이 마르펫사는 아폴론의 구애를 거절하고 자신과 함께 늙어 죽을 인간인 이다스를 남편감으로 택한 걸로 유명한데, 이다스는 아레스의 명마들을 지닌 에베노스와 전차 대결을 벌여 마르펫사를 대가로 데려가버렸고, 딸을 잃은 실의에 잠긴 에베노스는 자살하고 말았다.

4. 에우팔라모스의 딸

아테네의 왕 에레크테우스의 아들 에우팔라모스의 딸이자 그리스 신화 최고의 천재 장인 다이달로스의 어머니이다.
[1] 고대 그리스어 발음으로 영문자로 치환하면 Alkippe.[2] '아글라우로스'는 이슬이 맺힌 저녁 노을이라는 뜻이다. 아글라우로스 2세의 부모가 아테네의 왕 케크롭스 1세와 왕비인 아글라우로스 1세. 여담으로 케크롭스 1세가 바로 아테나와 포세이돈의 수호신 경쟁 속에서 아테나를 선택하고 그녀로부터 '아테네'라는 지명과 올리브나무를 하사받았다는 그 왕이다.[3] 신화에 따르면 아레스와는 서로 사랑을 싹틔우며 맺어진 관계였다고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최후는 아레스와는 그닥 관련없이 자매 중 1명인 헤르세와 같이 에릭토니오스가 담긴 광주리를 들여다보지 말라는 아테나의 명을 어기고 열어본 죄로 헤르세와 함께 추락사하는 비참한 결말을 맞이했다. 이 조언을 들은 관계자 중 판드로소스는 유일하게 끝까지 아테나의 명을 지켜 살아남았다. 그 외로는 축젯날 헤르세와 동침하기 위해 찾아온 남성이 헤르메스 신이라는 걸 알아보고 그에게 이 사실을 숨기는 대신 거래를 제안하는데, 감히 신에게 흥정하려한 점에 분노한 헤르메스가 저주를 내려 죽였다는 이야기도 있다.[4]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딸.[5] 아마조네스의 전 여왕이자 총사령관인 오트레레의 딸들.[6] 12신을 포함해 남신들 중 특히나 인간이나 님프 같은 하위종과 엮이면 원나잇으로 관계를 맺고 아이를 낳든 말든 신경 안 쓰는 경우가 흔하지만, 아레스는 여신은 물론 님프나 인간과 맺어질 때도 그들은 물론 그들의 자식까지 골고루 사랑했던 보기 드문 순애보였다. 심지어 자식이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하지 않고 모두 사랑하는, 당대에 보기 드문 면모도 가졌다.[7] 서영수가 담당한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신판에서는 아예 할리로티오스에게 뒤에서 덮쳐진 뒤 옷자락이 갈기갈기 찢겨져 가슴 윗부분이 드러나는 묘사가 나온다.[8] 올림포스 산의 신궁에서 쉬거나 아버지 제우스, 어머니 헤라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중에 딸의 비명을 듣고 현장으로 달려갔다는 전승도 있다.[9] 보통 칼로 베어 죽였다는 판본이 많지만,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홍은영의 그리스 로마 신화 등 국내의 어린이용 만화 그리스 신화 책들에선 주먹질로 죽인 것으로 나온다. 어느 쪽이든 그 자리에서 바로 죽여버린 건 확실하다.[10] 알킵페 강간 및 납치 미수는 약과로 보일 정도로 이전부터 도시 아테네에서 온갖 행패를 저지르고 다녔다.[11] 그 중 아테나가 가장 큰 피해자였다. 때문에 아테나가 알킵페 사건에서 사이가 나쁜 이복동생인 아레스의 변호사로 나서며, 그를 적극적으로 옹호하여 승소까지 받아낸 이유에 포세이돈과 할리로티오스 부자와의 악연이 한몫했다는 추측도 있다.[12] 아테나는 포세이돈과 폴리스인 아테네(아티카)의 수호신 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한 일화와 자신의 승리 이후로도 괘씸하다는 이유로 멋대로 포세이돈이 자신의 신전에서 대놓고 불륜을 하던 메두사를 괴물로 만들어버린 일과 트로이가 패망한 이후에 오디세우스의 귀향을 두고 대립하는 등 말 그대로 견원지간이나 다름없는 악연을 형성해왔다. 거기다 그 아들인 할리로티오스는 아버지 포세이돈의 졸렬하고 파렴치한 성격을 그대로 빼닮아 자신의 수호도시였던 아테네에 심어진 올리브나무들을 잔뜩 베어가고 여관과 식당에서 무전취식을 일삼고, 아테나를 섬기는 파르테논 신전에서 무녀와 신관들의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노상방뇨와 일방적인 무단 노숙 행위를 저지르는 등, 아테네의 시민들로부터 미운털이 찍히다 못해 온갖 미움과 원성, 비난을 받았고, 이들의 탄원을 듣고 오래 전부터 할리로티오스의 행태에 분노한 아테나는 마음 같아선 신벌을 집행하고 싶었지만, 또다시 포세이돈을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아 차마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하지만 평상시에도 사이가 매우 나빴던 앙숙이자 라이벌인 이복 남동생 아레스가 의도치 않게 할리로티오스를 죽이자 한번 받은 은혜는 반드시 되갚는 아테나도 이번만큼은 할리로티오스를 살해한 아레스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판결을 내리며 적극적으로 변호했다. 또한 알킵페는 자신의 성지 아테네의 왕이자 자신을 수호신으로 선택한 케크롭스의 손녀이자 아테네 왕실의 공주였고, 배다른 남동생의 아레스의 딸이었지만 조카와 고모 관계이기도 했기에 그녀를 변호해야 할 명분은 차고 넘쳤다. 여성의 순결을 중시하는 정의의 수호신으로서 알킵페의 신변 보호와 아레스의 무죄를 확실하게 보장했다.[13] 모든 신들의 여왕이자 결혼과 가정 윤리의 여신인 헤라는 자존심이 매우 강해 불륜으로 태어난 사생아와 내연남/내연녀들을 가혹하게 엄벌하지만, 남편 제우스의 악행들 때문에 불륜보다 강간죄를 더 큰 죄로 여긴다. 제우스 이상으로 동서이자 오촌 조카였던 암피트리테의 분노와 슬픔마저 외면한 채 수많은 여자들과 불륜을 피우거나 강간 행각을 벌이고, 작은언니 데메테르까지 겁탈하였고, 남편 제우스와 불륜을 저지른 티탄족 여신인 레토의 출산을 도왔던 친동생 겸 시숙인 포세이돈 역시 미워하고 있었으며, 몇몇 운 좋은 극소수를 빼면 제우스의 모든 사생아들을 핍박하지는 않았다. 또, 성격이 거칠고 포악한 친아들 아레스와 사이가 안 좋았지만 아레스가 자신의 말을 잘 듣고 가족들과 사이가 좋은 걸 좋게 보았기에 아레스가 올륌포스 12신에 등극할 수 있도록 뒤에서 도와주는 등, 결정적인 순간에 어머니로서 아들을 지원하는 모습도 보였다. 거기다 이번 재판 자체가 아레스의 12신 자격을 박탈하려는 포세이돈의 음모에 의한 것이기도 하거니와, 헤라는 딸을 둘이나 둔 어머니이기도 해서 강간 범죄에 굉장히 민감하게 나올 수밖에 없다. 트로이 전쟁 당시 그리스 군의 수호신으로서 트로이 편에 참전한 펜테실레이아 건과 그토록 증오하던 헤라클레스를 사랑하여 그의 딸까지 가지려 했던 힙폴뤼테 건만 빼면 아레스가 여러 여인들과 외도를 통해서 낳은 혼외자식들의 경우도 손녀, 손자가 된다는 이유로 보복하지 않았고, 페르세우스의 사례처럼 제우스의 혼외자식이라도 한번 마음에 드는 영웅이라면 평상시의 관례를 깨고 물심양면으로 후원해주는 경우도 이따금씩 있었다. 그리고 강간미수 사건의 피해자이자 자신의 친손녀이기도 한 알킵페를 불한당이자 아버지에 이은 강간마인 할리로티오스보다 더 우선시했다. 아예 공식 재판에서조차 객관적인 증거도 무시하고 아들을 맹목적으로 옹호하는 망언을 퍼붓는 포세이돈에게 냉철하게 반박하는 걸 넘어 진심어린 분노를 담은 맹렬한 비난을 퍼부었다.[14] 이 두 자매들은 아레스와 친남매들이었고 소녀, 처녀, 성인, 노년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모든 생리와 삶을 주관하는 어머니 헤라의 관할에 있는 여신이자 충직한 최측근들이라, 무언가를 최종 결정할 때는 아버지 제우스보다도 가정을 관장하는 어머니인 신들의 여왕 헤라의 입장을 최우선시했다. 힐리로티오스가 자행한 성폭행으로 인해 인생이 무너질 뻔한 조카 알킵페와 딸을 지키기 위해 손해도 각오하고 가해자 할리로티오스를 타살한 친오빠 아레스를 옹호했다.[15] 아프로디테 역시 아레스의 연인이면서 형수이기 전에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으로서 연약하고 무고한 여성을 강간이라는 극악무도한 범죄 수법으로 겁탈하려든 할리로티오스의 행태를 증오했고 일말의 망설임 없이 아레스를 변호했다.[16] 아르테미스 역시 아레스와 데메테르 못지않게 포세이돈에 의한 피해자들 중 한 명이었다. 사실 포세이돈은 헤라에게 보복을 당하던 어머니 레토가 아폴론, 아르테미스 쌍둥이를 무사히 순산할 수 있도록 델로스 섬으로 인도해 준 둘도 없는 은인이었다. 하지만 후일 장성하여 올림포스 12신이 된 이후에 아버지 포세이돈의 방조 아래 올륌포스 산을 침공한 오토스와 에피알테스 형제에 의해 결혼을 강요당하다 오빠 아폴론의 계책으로 오토스와 에피알테스 형제들을 어렵게 무찔러 순결을 지키는데 성공하는 등 사실상 포세이돈으로부터 뒤통수를 맞다시피했다. 같은 처녀신이자 이복언니였던 아테나 못지않게 포악하고 전쟁을 좋아하는 거친 이복오빠 아레스를 개인적으로 싫어했지만, 그 무엇보다도 '여성의 순결과 주체적인 자유와 삶'을 지고의 가치로 여기는 여신으로서 강간미수를 당한 피해자이자 자신의 조카인 알킵페와 딸을 지키기 위해 가해자 할리로티오스를 살해하고 재판정에 올라선 이복오빠 아레스를 옹호하였고, 오빠 역시 알킵페와 목숨과 자유, 순결을 지키기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17] 사실 아르테미스가 아레스를 적대한 배경에는 자신의 어머니인 레토를 핍박한 헤라의 아들인 점도 주효했다.[18] 상냥하고 자애로운 불과 화로, 가정의 수호신이자 올륌포스 최초의 처녀신인 헤스티아 역시 자매인 헤라와 조카이자 같은 순결의 여신인 아르테미스와 동일한 이유로 알킵페와 아레스의 손을 들어주었다.[19] 특히 데메테르는 배심원으로 참석한 여신들 중 포세이돈에 의한 최대의 피해자였고 아레스처럼 애지중지하는 딸 페르세포네하데스에게 납치혼당한 비극을 겪어봤기에 누구보다도 강간범에게 사랑하는 딸을 영영 잃을 뻔한 아레스의 심정에 가슴 깊이 공감했다. 또한 행방불명된 페르세포네를 찾기 위해 파업도 마다치 않고 온 세상을 돌아다니다가, 제우스와 하데스의 합작에 의해 딸을 잃은 피해자인 자신을 위로하기는커녕 추악한 욕정을 채우겠답시고 말의 모습으로 덮쳐든 포세이돈에게 강간당했고 그 과정에서 원치 않게 사생아 두 명(아리온과 데스포이나 남매)를 낳아버려 포세이돈을 향한 증오와 원한은 극에 달했다. 덕분에 재판은 데메테르에게 있어 크나큰 호재였으며,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이었던 포세이돈에게 통쾌하게 복수할 수 있는 가히 천재일우의 기회였다.[20] 아레스는 워낙에 난폭하고 성미가 급하여 부모인 제우스와 헤라 모두 경멸한 자식인데도 불구하고, 그래도 친아들이었던데다 공평하게 사실에 근거하여 판단을 내린 것이다. 제우스도 포세이돈과 다를 바 없이 수많은 여성들을 유혹해 불륜과 강간을 서슴지 않는 희대의 쓰레기인 데다 자기와 똑같이 강간을 저지르려 했다가 증오하는 아들에게 타살당한 조카 할리로티오스와 할리로티오스의 부친이자 형제인 포세이돈을 은근슬쩍 편들어주며 재판에서 억지로 포세이돈을 이기게 하여 패소한 아레스를 올림포스 12신의 대열에서 박탈해 계급을 일반 신으로 강등시킬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제우스는 같은 핏줄로 이어진 형제보다도 평소에도 그렇게도 미워하던 아들 아레스의 편을 들어주었다. 하늘과 땅을 통치하며 경쟁하는 삼주신 겸 신들의 왕으로서 포세이돈의 야망을 억제하려는 정치적 이해관계도 포함되어 있고, 신들의 여왕이자 정실부인인 헤라와 딸 아테나, 아르테미스, 에일레이튀이아, 헤베와 친누나 겸 처형인 헤스티아와 데메테르, 며느리 아프로디테 등 재판에 참여한 모든 여신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아레스의 딸을 겁탈하려다가 분개한 아레스에게 살해당한 조카 할리로티오스와 할리로티오스의 아버지이자 형인 포세이돈을 무턱대고 편 들었다간 그로 인해 발생하는 비판 여론을 혼자 감당할 리 만무했다. 단순히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떠나서 공정한 재판관의 시각으로 볼 때 이 사건은 명백하게 할리로티오스가 일방적으로 일으킨 성폭행 사건이라 아레스의 무죄로 결론 내리는 건 당연했던 것이다. 근데 이런 지극히 정당한 판결을 내리는 게 하필 그 할리로티오스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쓰레기 연쇄강간마인 제우스라는 점에서 더 두드러지고 어처구니없다는 시각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