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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0 22:05:27

에드워드 노튼

에드워드 노튼의 주요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역대 골든 글로브 시상식
파일:goldenglobe.png
남우조연상 - 영화
제53회
(1996년)
제54회
(1997년)
제55회
(1998년)
브래드 피트
(12 몽키즈)
에드워드 노튼
(프라이멀 피어)
버트 레이놀즈
(부기 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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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74828e><colcolor=#fff> 에드워드 노튼
Edward Norton
파일:Edwrdnrtn.jpg
본명 에드워드 해리슨 노튼
Edward Harrison Norton
출생 1969년 8월 18일 ([age(1969-08-18)]세)
미국 매사추세츠 보스턴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직업 배우, 프로듀서, 환경 운동가
신체 183cm
학력 와일드 레이크 하이스쿨 (졸업) (-1987년)
예일 대학교 (역사학 / 학사) (1987-1991년)
배우자 쇼나 로버트슨(2012년~현재)
자녀 아들 아틀라스(2013년생)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배우로서3. 연기력4. 자선 활동 및 환경 운동5. 출연6. 여담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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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 출신의 배우.

아버지는 환경 변호사이며 전 지미 카터 정부 연방 검사를 역임했고, 어머니는 재단의 대표 이사이며 영어 교사였으며, 본인은 예일대 역사학과를 졸업한 엘리트 집안 출신이다. 게다가 외할아버지인 제임스 라우즈는 The Rouse Company(메릴랜드 주 콜롬비아 도시 개발, 볼티모어의 내항 개발, 노퍽의 물가 축제 시장 개발, 보스턴의 퀸시 마켓 개발)의 설립자, 빈민 구제 사업을 하는 비영리 기관인 Enterprise Community Partners의 공동 설립자이며 도시 계획가이다.

2. 배우로서

예일 대학교 졸업 후, 에드워드는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 외할아버지가 설립한 엔터프라이즈 재단(현 엔터프라이즈 커뮤니티 파트너스)에서 애널리스트로 활동했다. 이 재단은 가난한 저소득층을 위해 헌신하는 조직으로 당시의 경험 덕분에 노튼은 간단한 일본어 회화를 할 수 있다. 일본 방문 당시 기자회견에서 일본어로 말하는 노튼

이후, 뉴욕으로 돌아와 에드워드 올비의 희곡들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설립된 뉴욕의 비영리 극단인 'Signature Theatre'# 소속의 배우로 활동했고, 2014년 7월 극단의 이사회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어려보이고 선한 인상이지만 초기에 맡은 배역들은 흉악성을 내포하거나 다중 인격을 가진 캐릭터가 많은 편이다. 연기 스펙트럼이 매우 넓고 장르를 넘나들며 맡은 배역마다 동화되기 때문에, 에드워드 노튼이 연기한 배역마다 같은 사람인지 인식하기 어렵다.

그리고 노튼은 작품을 완성하는 데 있어 완벽주의자이며 작가주의적인 성향이 강하다. 작품과 배역에 대한 이해와 분석이 매우 뛰어나고, 영화 홍보 때마다 양질의 인터뷰를 하기로 알려져 있으며 본인의 비중이나 배역에 관계없이 오로지 작품의 완성도와 예술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영화에 출연한다. 영화 예술에 대한 철학이 확고하기 때문에 자주 작품을 하지 않고 작품 사이의 공백이 다소 긴 편이다. 데뷔 초창기를 제외하고 작품 수가 적고 보통 공백이 길다. 개인적인 친분에 의한 카메오 출연을 종종 하는 편이다. 여러 다큐멘터리에서 내레이션도 했다.

27세 때 오디션에서 2000:1의 경쟁을 뚫고 《프라이멀 피어》의 애런 역으로 충격적인 데뷔를 했다. 에드워드는 동부 메릴랜드 출신인데, 프라이멀 피어에서 에드워드가 연기한 애런 스탠필드는 켄터키가 고향이라고 하며 본인이 영화 《광부의 딸》을 보며 준비한 남부 사투리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게다가 애런 역은 원래 더듬거린다는 설정이 없었는데 노튼이 캐릭터에 새롭게 부여해 캐스팅 디렉터의 혼을 빼놓았다. 에드워드 노튼은 데뷔작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신들린 연기를 보여줘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각종 시상식에서 수상을 하게 된다.

에드워드 노튼은 이 데뷔작으로 1997년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을 수상했고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게 되었다. 데뷔와 동시에 노튼은 자신의 우상인 더스틴 호프먼, 로버트 드 니로에 비견되며, 이 세대의 최고의 배우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이후, 더스틴 호프먼은 학부모 진로 멘토링을 위해 딸의 고등학교에서 에드워드 올비의 동물원 이야기를 읽을 때, 에드워드 노튼에게 부탁해서 둘이 함께 연기하기도 했다.

에드워드는 《프라이멀 피어》를 촬영하던 당시, 우디 앨런 감독의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의 오디션에 합격하여 이후에 촬영했다. 그런데 우디 앨런 감독이 촬영 전까지 뮤지컬 영화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아 배우들이 당황했다고 한다(...)

연이어 밀로스 포먼 감독의 《래리 플린트》에서 래리 플린트의 젊은 변호사인 알렌 아이작맨 역을 맡았다. 이후, 노튼은 《아메리칸 히스토리 X》에 출연하여 대단한 흉악성을 지닌 캐릭터[1]를 연기해 1999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원래 마른 체구인 에드워드 노튼은 《아메리칸 히스토리 X》의 네오나치 데릭 빈야드 역을 위해 3개월간 근육량만 30파운드(약 14kg)를 늘려 촬영을 했다. 이어 브래드 피트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파이트 클럽》을 촬영해야 했기 때문에, 《파이트 클럽》에서의 불면증에 시달리는 무기력한 자동차 회사의 리콜 심사관인 나레이터 역을 연기하기 위해 단기간에 다시 원래의 체중으로 복귀하다 못해 체중을 더 줄였다. 파이트 클럽으로 평론가들에게 브래드 피트와 함께 큰 호평을 받았다.

에드워드 노튼은 2002년 스파이크 리 감독의 《25시》에서 마약 밀매로 7년의 수감 생활을 하게 된 몬티 브로건 역을 맡아 교도소 입소 전날의 분노와 불안, 회한에 찬 복잡한 내면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25시》에서 거울을 마주 보고 세상에 대한 분노를 쏟아 내는 독백 장면이 인상적이다.

에드워드 노튼은 영화 데뷔 이후에 딱 한 번 오프브로드웨이 무대인 랜포드 윌슨의 희곡 'Burn This(2002)'에 출연했는데 이 무대에서의 연기로 2003년 오프브로드웨이 연극상인 오비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에드워드 노튼은 작가주의적이고 연기와 영화 예술에 대한 철학이 확고하여 상업적인 블록버스터를 기피하는 편이지만 《인크레더블 헐크》 원작에 대한 애착으로 주연을 맡았다. 이후 마블사와의 협상 결렬로 결국 《어벤져스》에서 헐크의 인간 형태인 브루스 배너 역은 마크 러팔로에게 넘어갔다. 카더라 통신에 의하면 노튼이 완벽주의자답게 《인크레더블 헐크》 프로덕션 당시 만족스러운 작품이 나오지 않아 까다롭게 굴었고 거대 스튜디오 중에서도 프로덕션 통제를 원하고 스튜디오의 개입이 많은 마블과 결국 창조적인 예술 활동에 대한 견해 차이로 갈라섰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본인이 배역에 얽매이기 싫어서 거절했다라고 해명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헐크라는 캐릭터 특성상 제작 과정에서 굳이 맨얼굴이 많이 나올 필요가 없기 때문에 노튼 본인이 원하였던 헐크와는 꽤 거리가 있어졌다. 그래서 자신의 역할에 회의감을 느꼈고[2] 이후 본인의 친구였던 마크 러팔로를 추천하였다고 한다. 러팔로는 이미 영화 한 편을 촬영한 노튼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역을 맡지 않겠다고 하였으나 노튼이 배역을 양보하면서 다음 마블 영화부터 계속 헐크 역을 맡게 되었다.

또한 《프라이멀 피어》를 찍을 당시 파라마운트 영화사와 영화 세 편을 찍기로 계약을 했는데, 파라마운트에서 제안했던 작품들마다 퀄리티가 낮아 퇴짜를 놓았다고 한다. 파라마운트 측에서 계약 이행 강요를 하며 소송을 하려고 하니 결국 찍게 된 영화가 《이탈리안 잡》이다. 영화 프로모션을 보이콧하여 참가하지 않았기에 《인크레더블 헐크》와 같은 이 두 사례로 작품의 완성도가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홍보 의욕을 놓는다는 얘기가 있다. 하지만 이 두 영화를 제외하고는, 에드워드 노튼은 영화 홍보에 매우 적극적이며 양질의 인터뷰를 많이 해왔다.

파이트 클럽》 DVD 코멘터리를 들어보면 알 수 있지만 노튼은 연기와 영화에 대한 철학이 굉장히 확고한 데다 까다로운 사람이다. 코멘터리 도중 대놓고 《파이트 클럽》을 깐 평론가들 실명을 거론하면서 까기도 했으며, 같이 코멘터리를 한 브래드 피트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우주원숭이가 뭐냐고 하자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고 까기도 한다(!)

《파이트 클럽》은 컬트 역작의 명성을 얻으며 엄청난 DVD 판매고를 올리며, 2009년 Spike Guys' Choice Awards에서 Guy Movie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데, 수상 소감에서 데이비드 핀처 감독, 에드워드 노튼, 브래드 피트가 파이트 클럽 개봉 당시 《파이트 클럽》을 깐 평론가들의 평을 읊으며 풍자적인 태도를 보이는 게 인상적이다. 실제로 데이비드 핀처 감독은 《파이트 클럽》 DVD 케이스의 내부에 《파이트 클럽》을 깠던 리뷰들을 모두 싣기도 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2005년작 《킹덤 오브 헤븐》에서는 나병에 걸린 예루살렘의 국왕 '보두앵 4세'로 열연했다. 보두앵 4세는 나병 환자였기 때문에 극중에서는 가면을 쓰고 다니는 설정이어서 얼굴이 공개되지 않았다. 자세히 보면 가면을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가 주변 피부는 나병 환자처럼 붉게 부패한 분장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망한 후에야 여동생 시빌라에 의해 가면이 벗겨져서 얼굴이 딱 한 번 나오지만 이때도 나병으로 문드러진 끔찍한 모습만 나왔다. 노튼의 전체 출연 분량은 20분 남짓인데 감독판이 194분이고 극장판이 144분임을 감안하면 비중은 매우 적은 편.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보여줬다.

처음엔 리들리 스콧 감독으로부터 "기 드 뤼지냥" 역으로 제의를 받았으나 노튼 본인이 보두앵 4세를 원해서 로비까지 했다는 소문이 있다. 게다가 내내 가면을 쓰고 나오는 데다[3] 비중도 적었기 때문에 관객에게 궁금증을 유발하고 싶다는 이유로 크레딧을 원하지 않았다. 따라서 개봉 당시 극장판에서는 보두앵 4세의 배우가 공개되지 않았으나 감독판에서 크레딧이 주어졌다.

2006년 노튼이 주연한 《일루셔니스트》는 예산이 많은 영화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북미 박스오피스의 정상을 차지하고 세계적으로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 이후 노튼은 《페인티드 베일》에서 나오미 와츠가 분한 키티 페인의 남편, 세균학자이며 의사인 월터 페인 역으로 섬세한 내면 연기를 보였다.

《페인티드 베일》은 서머셋 몸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했지만 키티 페인과 월터 페인의 관계와 심리를 조명하여 각색되었다. 실제 원작 소설보다 영화에서 이 부부의 관계가 섬세하게 그려졌다. 《페인티드 베일》은 워너 인디펜던트 픽처스가 배급한 독립 영화로, 노튼과 와츠가 함께 제작을 맡았다. 와츠의 역인 키티 페인의 불륜 상대 역을 와츠의 남편인 리에브 슈라이버가 연기했다. 《페인티드 베일》의 신경쇠약 직전인 부부를 연기한 노튼과 와츠는 《버드맨》에서는 연인으로 등장했다.

2012년 웨스 앤더슨 감독의 칸 영화제 첫 출품작이며 개막작이자 황금 종려상 후보였던 《문라이즈 킹덤》에서 칠칠맞지 못하지만 사려 깊은 노총각 보이스카우트 대장 워드 역을 연기해 좋은 평가를 받았고 영화 또한 크게 흥행을 했다.

노튼은 웨스 앤더슨 감독의 사단으로, 이어 2014년에는 베를린 영화제의 개막작이며 은곰상-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헨켈스 경위 역을 연기했다. 그리고 연이어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작품이며 2015년 아카데미 작품상, 촬영상, 감독상, 각본상을 수상한 《버드맨》에서 평론가들이 사랑하는 뛰어난 천재 배우지만 제멋대로 행동하는 마이크 샤이너를 열연하여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에 또 다시 후보로 올랐다. 이로써 노튼은 아카데미에 지금까지 세 번 노미네이트되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과 《버드맨》은 각종 시상식을 휩쓸었다. 2015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과 《버드맨》 모두 각각 9개 부문에서 최다 노미네이트되었고, 각각 4개 부문에서 최다 수상한 주요 작품들이었다. 거의 서로 상을 나눠 가져가게 된 셈.

2015년 골든글로브에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작품상(코미디/뮤지컬)을 수상했고 《버드맨》은 각본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SAG Awards(미국 배우 조합상)에서 노튼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앙상블 캐스트상, 《버드맨》으로 남우조연상, 앙상블 캐스트상, 홀로 총 3개 부문이나 노미네이트되는 기염을 토했다.

두 작품 모두 각종 시상식을 리드했던 주요 작품들이라 앙상블 캐스트상은 두 작품 모두 유력했는데, 노튼이 중복 노미네이트되고 《버드맨》이 앙상블 캐스트상을 수상하면서 스스로를 물리치게 된 셈이다.(한편, 중부 오하이오 비평가 협회 시상식에서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앙상블상을 수상하고 《버드맨》은 2위에 올랐다.) 노튼은 시상식을 리드하는 두 작품에 출연을 했기 때문에 각종 시상식에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버드맨》의 자료 화면마다 나오며 최다 등장했다.

노튼은 배우로서도 많은 존경과 선망을 받고 있는데 제작자나 각본가로서도 의욕적인 활동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도 종종 각본가와 대화를 나누어 아이디어를 나누기도 한다고 한다. 노튼은 2000년 로맨스 코미디 영화인 《키핑 더 페이스》로 영화감독 데뷔를 했으며, 벤 스틸러와 함께 공동 주연을 맡았다. 《키핑 더 페이스》에서 밀로스 포먼 감독이 하벨 역으로 등장했다.

노튼은 《키핑 더 페이스》의 엔딩 크레딧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바친다는 메시지를 남겼는데, 노튼의 어머니는 1997년 뇌종양으로 사망했다.[4] 이 작품의 각본을 쓴 스튜어트 블럼버그는 노튼과 예일 대학교 동기이며, 졸업 이후 노튼이 연기를 시작할 당시 맨해튼에서 룸메이트로 지냈다.

노튼은 블럼버그와 《키핑 더 페이스》 이후, 작은 영화사인 'Class 5 films'을 설립했다. 그 이후 본인이 출연하는 소규모의 영화에서 종종 제작을 맡기도 했으며 여러 편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노튼과 Class 5 films, 에이미 라이스는 HBO에서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의 2008년 초 민주당 경선부터 2008년 11월 대통령 선거일까지의 당선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필름인 《By the People: The Election of Barack Obama》를 제작하여 2009년 8월에 발표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에미상 논픽션 부문 최우수 편집상을 수상했고, 논픽션 부문 최우수 감독상과 최우수 논픽션 특별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다.

2019년 여름, 텔룰라이드 영화제에서 자신의 오랜 숙원이었던 프로젝트, 《마더리스 브루클린》를 공개했다. 1998년, 《아메리칸 히스토리 X》를 찍은 후 노튼 본인이 동명의 소설 판권을 구입한 뒤 주연과 제작을 맡기로 되어있었던 작품이다. 이후 프로젝트에 어울리는 감독을 찾지 못하다가 주변의 응원에 힘입어 자신이 직접 연출까지 맡게 되었으나, 이후 어른의 사정으로 프로젝트가 끊임없이 밀리다가 2018년에 들어서야 겨우 촬영에 들어가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영화는 평론가들 사이에선 그럭저럭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박스오피스에선 참패했다.

3. 연기력

그의 광기 어린 연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영상

4. 자선 활동 및 환경 운동

노튼은 환경 운동가와 자선가로서 많은 환경 보호 활동과 자선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다양한 환경 운동과 재생 가능 에너지 프로젝트에 대한 지지 및 홍보 활동을 해오고 있다. 그리고 조슈아 데이비드와 로버트 해먼드가 뉴욕 도심의 버려진 고가 철도의 철거를 막고 하늘공원으로 만들기 위해 설립한 비영리 단체인 '하이라인의 친구들'의 이사회에서 일하고 있다.

2001년 뉴요커 잡지에 실린 하이라인의 친구들에 대한 글을 읽고 노튼은 데이비드와 해먼드에게 연락해 하이라인 공원 완공을 위해 활동하기 시작했다. 노튼은 ‘하이라인의 친구들’ 모금회장을 맡아 모금회는 4,400만 달러(477억 원)의 기금을 조성했다.

이는 전체 공사비인 1억 5,200달러의 29%에 이르는 액수였다. 하이라인 공원은 2009년에 완공되었다. 30년 동안 버려졌던 맨해튼 중심부의 고가 철도가 허드슨 강과 도심을 조망할 수 있는 하늘공원이 되어 뉴욕의 관광 명소로 거듭났다. 이들의 이야기는 2011년 책으로 출판되었고[5] 2014년 한국어 번역판도 나왔다.[6]

또한 노튼은 재단의 녹색 커뮤니티 계획을 운영하기도 했으며, 태양광 에너지 기업인 BP Solar와의 협력을 통해, 공인이 태양광 설비를 설치할 때마다 BP가 저소득층 가정에 태양광 설비를 기부하도록 하는 Solar Neighbors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여러 환경 다큐의 내레이션을 하기도 했으며, 마사이족 황무지 보전 신탁(Maasai Wilderness Conservation Trust)의 미국 지사장이다. 2009년 11월 1일에 뉴욕시에서 마라톤에 참가하여 노튼과 그의 팀은 100만 달러 이상의 기금을 조성했다. 그리고 아프리카 야생동물 기구를 지원하기 위해 "Say No" 캠페인의 일환으로, 코끼리 상아를 사들이는 위험에 대한 대중 인식 제고를 위한 광고에 출연했다. 노튼은 국제보전협회(Conservation International)의 이사회에서 일하고 있으며, 2010년에 반기문 총장에 의해 UN의 biodiversity 친선대사로 임명되었다.#

데뷔 이전부터 노튼은 저소득층을 위한 저가 주택 보급을 위해 활동하고 있으며, 2000년부터 메릴랜드주 콜롬비아에 기반을 둔 가용 주택의 비영리 개발 단체인 엔터프라이즈 커뮤니티 파트너스#의 이사회의 회원이다. 저소득층의 삶의 질을 개선시키기 위한 활동 등을 위해 기부를 하거나 기금 조성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어 자선 활동을 통한 기금 조성을 돕기 위한 소셜 네트워킹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사이트인 Crowdrise를 공동으로 설립했다. 2012년 5월, 자선 행사 Soccer Aid의 '영국 vs 나머지 세계' 축구 경기에 동료 배우들과 함께 참가했고, 이 행사는 유니세프 영국을 위한 400만 파운드의 기금을 조성했다. 이 외에도 노튼은 무수한 자선 활동과 환경 보호 활동을 하고 있다.

에드워드는 총 26개의 자선 구호 단체들에게 기부를 하고 있는 배우이다. #

5. 출연

6. 여담

7. 둘러보기

역대 골든 글로브 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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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우조연상 - 영화
제53회
(1996년)
제5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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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노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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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기 나이트)


[1] 백인 우월주의자로 자기 아버지가 물려준 아끼는 차를 훔치려는 흑인을 살해하고는 경찰에 체포되어 연행되는 장면에서의 연기를 별다른 대사도 없이 눈빛과 몸짓으로만 표현하는데 소름 끼칠 정도로 엄청난 연기력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인종차별을 비판하려고 만든 영화인데, 인종차별주의자 캐릭터가 너무 멋지게 나와서 인종차별주의자들에게 자주 인용되곤 한다는 것(...)[2]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거의 10년째 아이언맨을 찍고 있지만 백만장자,바람둥이,천재 과학자,공개적으로 활동하는 히어로란 특성상 맨몸에 맨얼굴의 장면도 많고 여차하면 헬멧만 접어서 언제든 얼굴을 노출 가능한데다, 특유의 헬멧 안의 얼굴이 HUD와 함께 나오는 구도 또한 있기 때문에 배우의 연기가 가해지지 않고 CG로만 만들어진 헐크처럼 괴리감을 느낄 여지가 없다.[3] 딱 한 번 가면이 벗겨지기는 하는데 이때는 특수 분장을 한 상태였다. 즉, 맨얼굴은 한 번도 안 나왔다.[4] 이 시기는 노튼이 프라이멀 피어로 무시무시한 데뷔를 치른 후 평단의 호평을 받을 시기였다.[5] 《High Line : the inside story of New York City's park in the sky》 ISBN: 978-0374532994[6] 《하이라인 스토리 : 뉴욕 도심의 버려진 고가 철도를 하늘공원으로 만든 두 남자 이야기》 ISBN: 9791156755036[7] Apple TV+ 오리지널 드라마.[8] 사실 코트니 러브도 워낙 막장 사생활과 마약 사용 이력으로 악명 높아서 그렇지, 의외의 지적인 면모를 갖춘 아티스트이긴 하다. 비록 중퇴했지만 아일랜드 최고의 명문대인 트리니티 컬리지에서 신학을 배운 전적이 있다. 의 노래 가사 상당수도 꽤 심오하고 철학적인 내용이 많다.[9] 하지만 헤어지고 나서 러브의 똘끼는 원상복귀했다. 노튼과 사귀었던 시기가 러브의 평판이 가장 좋았던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