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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민주화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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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과
1.1. 2011년 1월1.2. 2011년 2월1.3. 2011년 3월1.4. 2011년 4월1.5. 2011년 5월~8월1.6. 2011년 9월 이후1.7. 2011년 11월 이후

1. 경과

1.1. 2011년 1월

1월 18일 시위 첫 발생. 큰 규모의 시위. 최소 12명 사망.[1] 예멘은 인구의 절반이 하루 2달러로 살아가고 남북 예멘 분리 운동에 알카에다 세력이 발호하고 시아파 반군과 내전을 하는 등 워낙 총체적인 난국을 겪는 국가라 요구사항은 대통령의 즉각 퇴진이었다. 문제는 야권이 이미 정권에 연립 형태로 참여하고 있어서 구심점이 없다는 것. 시위는 대학생 중심이라 강한 구심점이 되지 않고 있다.

이전부터 계속되던 시위는 1월 27일 수도 사나에서 사나 대학교의 대학생 1만 명을 포함하여 16000여 명이 시위를 하면서 규모가 커졌다. 2월 3일 분노의 날 시위에는 2만 5천 명이 시위에 참여하였다. 이후의 시위는 사나 대학교를 중심으로 열리고 있다.

1.2. 2011년 2월

2월 2일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은 다음 선거(2013년)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11일, 무바라크의 사임을 축하하는 시위가 열렸고 다시 시위가 연이어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12일, 수도 사나에서 4000명 이상의 시위대가 모여서 '무바라크 다음은 알리다', '이집트 다음은 예멘이다' 를 외쳤다. 5천여 명의 경찰+친정부 조직이 시위대와 충돌한 것으로 알려졌다.

13일, 사나에서 약 천여 명의 시위대가 대통령궁으로 향하다가 경찰의 저지로 충돌하였다.

14일,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수천 명의 시위대는 친정부 시위대와 부딪쳤고 경찰이 몽둥이로 진압하는 과정에서 많은 부상자와 23명의 체포자가 나왔다. 시위는 아덴과 다른 도시에서도 열리고 있다.

15일, 사나에서 3000여 명의 시위대가 반대 시위를 했으며 2000여 명의 사복 경찰이 포함된 친정부 시위대가 테이저건을 사용하여 공격을 가했다.

16일, 아덴에서 500여 명의 시위대가 정권 퇴진을 외치며 시위를 했고 경찰은 총격을 가하여 두 명이 숨졌다.

17일, 사나에서 시위는 계속 이어졌고 친정부 시위대와의 투석전이 있었다.

18일, 만여 명 규모의 큰 시위가 열렸다. 사나에서는 대통령궁으로 행진하다가 경찰의 저지에 충돌이 일어났고 남서부 도시인 타이즈에서는 반정부 시위대에 수류탄 피습이 일어나 2명이 숨졌다. 아덴에서 밤까지 이어진 시위 도중 경찰의 사격으로 한 명의 시위대가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20일, 살레 대통령은 야권에 대화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21일, 시위는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살레 대통령은 임기전 퇴임을 거부했다. 야권은 반발하면서 대화 제안을 거부했다.

22일, 친정부 시위대가 반정부 시위대를 공격해 2명이 숨지고 여러 명이 부상당했다.

24일, 시위 진압에 항의하여 여당 인사 7명이 사퇴했으며 살레 대통령도 위기를 느꼈는지 경찰과 군 병력에게 시위대가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서 대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25일, 예멘 전국에서 약 18만 명이 반정부 시위에 참여하였다.

27일, 예멘에서 가장 세력이 강한 하쉬드 부족과 하킬 부족의 주요 지도자들이 시위대를 지지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28일, 수도 사나에서 수만 명이 살레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고 있다. 야권 7개 정파의 연합체인 공동회합당은 시위 동참을 선언하고 3월 1일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그동안의 관망 자세를 벗어남으로서 정권 운명이 갈릴 가능성이 커졌다. 현재 살레 대통령이 소속된 부족에서조차 두 명의 지도자가 시위대에 합류해 있는 상황이다. 살레 대통령은 연립 정권을 제시했지만 거부당했다.

1.3. 2011년 3월

3월 들어서면서 살레 대통령은 다시 강경 진압을 운운하였으며 미국이 민주화 시위 후 벌이고 있는 중동 정책에 대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중동 대통령인 줄 아느냐!" 며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나 시위대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살레 대통령은 3월 2일 2011년 연말에 퇴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시위대는 이 제안을 거부하고 즉각 하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7일 살레 대통령은 하야할 의사가 없다고 밝혀 시위대의 저항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그러면서 "반정부 세력들은 모두 이스라엘과 미국의 지령을 받은 것들" 이라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말도 안되는 비난을 했다.

그러나 8일 수도 사나에서 교도소와 대학교, 거리를 가리지 않고 다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면서 상황은 살레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흘러가고 있다. 이 날 170명이 사망.

10일, 살레 대통령이 올해 안에 대통령 권력 분할과 새로운 선거 등의 내용을 담은 헌법 개정을 할 것이라고 발표했으나 야당에서는 이것만으로는 국민들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며 조치가 너무 늦었다고 말하며 협상을 거부했다.

18일, 사나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45명의 반정부 시위자들이 정부군/ 경찰들에게 목숨을 잃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에타브(etab)라는 소녀는 시위 도중 살레의 정부군에게 목숨을 잃은 아버지(45명의 시위자 중 한 명이었다) 소식을 알게 되면서 시위현장에 나타나면서 살레는 저의 아버지를 살해했습니다. 살레는 물러가라라고 외치면서 눈물을 흘렸고 이 영상이 예멘 전역에 알려지면서 예멘을 울리기도 했다. 이 일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더욱 더 예멘 민중들의 가센 항쟁이 일어났다.

21일, 최측근인 아흐리만 소장까지 등을 돌리면서 궁지에 몰린 살레 대통령은 연내 퇴진과 선거 실시를 수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시위대와 야당이 이를 받아들일지가 관건일 듯.

25일,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이 날 친정부 시위자들이 총과 칼로 무장(!)하고 반정부 시위대에게 돌진했으나 경찰의 제지로 무산되었다고 한다.

28일, 예멘 남부 아비안주의 무기 공장이 갑자기 폭발해 100여 명이 사망했다. 원인은 담배 꽁초로 보이며 이 지역은 예멘의 혼란을 틈타 알 카에다가 27일에 잠시 점령했던 곳이였다. 한편 살레 대통령은 2012년 1월에 퇴진하겠다고 공언했으나 예멘의 혼란이 심해지고 있다면서 이를 안정시키기 위해 2013년까지 집권할 것이라고 밝혔다. 듀크 뉴켐 포에버도 아니고

1.4. 2011년 4월

4월이 되어서도 시위는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며 총격전까지 벌어지고 있어 사실상 여기도 준 내전 상태가 되어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슬슬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도 예멘에 군사적 개입을 해야 하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긴 한데 예멘의 복잡한 국내 상황도 그렇고 미국이 경제가 엉망인 것도 그렇고 개입할 가능성은 현재로써는 거의 없다. 4월 19일 집권 여당 인사들도 살레 대통령에 반발해 탈당을 선언했고 일부는 아예 새로운 당을 창당하기까지 했다. 현재도 예멘에서는 시위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다. 계속 되는 유혈 사태와 정국의 혼란을 보다 못한 걸프 협력 기구(GCC)가 살레 대통령의 평화적 퇴임과 그 대가로 본인과 가족들에게 면책권을 주는 중재안을 내놓았고 살레 대통령이 23일 이 제안을 수용해 한 달 내에 퇴임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정권 교체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물론 시위대는 살레 대통령 일가가 심판을 받아야 한다면서 계속 시위를 벌일 것이라고 밝혀 정국이 가라앉으려면 더 시간이 필요할 듯 하다.

1.5. 2011년 5월~8월

그리고 정국의 불안으로 예멘의 혼란은 가속되어 5월 들어서는 사실상 준 내전 상태가 되어 정부군과 반기를 든 부족 군대와의 전투가 벌어진다. 이 와중에 6월 4일 대통령궁에 반정부군의 포격이 떨어져 살레 대통령이 부상당했고 살레 대통령은 자신은 무사하며 반정부군에 대한 응징을 천명했으나 6월 6일 수술 문제로 비행기를 타고 예멘을 떠나 사우디로 가버렸다. 본인은 그냥 수술 문제이며 수술만 끝나면 돌아올 것이라고 했으나 지금 상황으로 보아선 돌아오기 어려워보이므로 사실상 축출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는 상황. 단적인 예로 살레 대통령이 출국하자 정부군과 반정부군이 휴전을 선언했다.

6월 29일 아부 바크르 알-키르비 예멘 외무장관은 이날 사우디를 방문한 직후 살레 대통령이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의 성명과 걸프 협력 기구(GCC)의 퇴진 중재안에 따라 예멘 정부와 대통령 권한 대행이 야권과 대화에 나설 것을 지시했다고 전했다. 앞서 유엔 안보리는 예멘 여야에 포괄적인 정치적 대화를 촉구했으며 GCC는 살레 대통령의 조기 퇴진과 사법 처리 면제를 골자로 한 중재안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야권은 대통령의 시간 끌기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6월 30일 현재 살레 대통령의 부상이 생각보다 심각해 보인다. 대통령 권한 대행인 하디 부통령은 현재 살레의 부상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살레의 귀국 날짜가 언제가 될 지 장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는 종전에 살레 대통령의 건강이 양호하다는 주장을 철회한 것이므로 대통령의 부상이 생각보다 심각함을 인정한 셈. 또한 국제 인권 단체들은 예멘 정부의 유혈 사태 진압으로 350여명이 넘는 반정부 시위자들이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살레 대통령의 부상에 대해서 몇 마디 더 언급하자면 사실 포격 당일 입은 부상이 너무 컸기 때문에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은 전부터 나오고 있었다. 측근들은 크게 다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다 나으면 귀국한다고 호언장담한다지만 사우디 관계자들이 흘린 말에 의하면 '귀국은커녕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신의 기적임' 이라고 할 정도로 큰 부상이라고 한다. 실제로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살레 대통령은 수술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예 의식이 없는 혼수상태이다(...)

7월 들어서 최고 권력자가 사라진 예멘은 무장 단체와 반군들의 충돌로 혼란 상태이다. 정부는 이미 모든 통제력을 상실한 것이 확실해 보이기 때문. 남부에서는 예멘 알 카에다가 세력을 키우기 시작하면서 미국이 무인기를 동원해 공습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야권에서는 과도정부위원회를 만들어 시위대의 소리를 하나로 모아 대변하는 기구를 만드는 움직임을 취하고 있다. 물론 예멘 정부는 불쾌감을 숨기지 않는 중.

1.6. 2011년 9월 이후

9월 23일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난 살레 대통령이 다시 예멘으로 귀국했다. 반정부 운동은 사그라질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있고 알 카에다도 남부에서 날뛰는 상황이라 자칫하다가는 제2의 소말리아화가 우려되고 있다(...)

2011년 10월 7일 노벨위원회가 라이베리아의 엘런 존슨 설리프 대통령과 평화 운동가 리버 보위, 그리고 예멘의 반정부 운동을 이끄는 타와쿨 카르만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하였다. 특기할 만한 점은 3명이 모두 여성이라는 점과 아프리카, 아랍권과 같은 인권 사각지대 출신, 운동가 출신이라는 것이다.

10월 9일 살레 대통령이 또 권력을 내놓고 수일 내에 퇴진하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국민들은 살레가 시위 기간 내내 거짓말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니라서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 다수.

살레의 통제하에 들어간 지방이나 세력만으로는 반정부 세력을 누를 수 없는 게 분명해진 지금 시점에선 아랍권은 물론 살레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던 아프리카 연합도 슬슬 탈출 전략을 권하는 모양새다. 리비아에서 카다피 레이드가 성공한 이후에는 점점 더 노골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25일 정부군과 반정부군이 잠정 휴전에 들어갔다.

1.7. 2011년 11월 이후

계속 되는 정국의 혼란 속에 11월 24일(현지 시각 23일) 살레 대통령이 AU의 중재안을 받아들여 서명하면서 공식적으로 예멘의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살레 대통령은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는 90일 동안까지만 임시로 대통령직을 유지하지만 30일 이내에 부통령에게 모든 권한을 넘겨주게 된다. 그동안의 물러나겠다라는 발표와는 달리 국제 기구의 중재안에 의한 것이라 무게감도 다른 하야 발표라 이젠 진짜로 정권이 교체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시위대는 중재안에 포함된 살레의 학살 등의 책임에 대한 면책 특권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반드시 국민의 심판을 받게 하겠다는 입장이라 아직은 좀 더 지켜봐야 할 듯 하다.

2012년 1월 29일 살레 대통령이 지병 치료를 위하여 미국에 가자 미국에선 그런 독재자를 왜 미국이 치료해주냐며 반발이 거세다. 퇴진을 밝혔음에도 미국은 일단은 예멘 대통령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하긴 친미 정책을 하던 독재자이니까...

2012년 2월 21일, 투표를 통해 살레의 독재는 끝나고 공식적으로 물러나고 압드라보 하디가 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2012년 2월 27일 결국 미국으로 망명했다. 이로써 튀니지 - 이집트 - 리비아에 이어 4번째로 혁명이 성공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끝이 아니라 시작의 끝일 뿐이었으니... 이후의 전개는 예멘 내전 항목으로.

한편 살레 본인도 권좌에서 왜 물러나지 않으려 했는가를 고작 실각 6년 후 죽음으로 입증하게 된다. 예멘으로 귀국해 지지자를 모으고 줄타기를 계속 하다가 후티에게 찍혀서 2017년 12월 지지자들과 함께 사살되었다.
[1] Press TV 17일 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