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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 압둘라 2세 | |
지리 | 사해 · 요르단강 | |
민족 | 요르단인 |
<colbgcolor=#cf0921><colcolor=#fff> 하심 가문 الهاشميون | |
창립일 | 1908년 11월 |
창립자 | 후세인 빈 알리 |
現 당주 | 압둘라 2세 |
국가 | 헤자즈 왕국 시리아 아랍 왕국 이라크 왕국 요르단 왕국 |
종교 | 시아파 (자이드파)[참고] → 수니파 |
계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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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현대 요르단의 왕가이다. 과거에는 헤자즈 왕국, 시리아 아랍 왕국, 이라크 왕국의 왕가이기도 하였다. 이슬람의 선지자 무함마드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가문명의 유래는 무함마드의 증조부의 이름인 '하심'. 다만 무함마드의 증조부 씨족인 '하심 씨족(بنو هاشم, Banu Hashim)'과 현대에 일컬어지는 하심 가문(الهاشميون, Hashemites)은 서로 다르다. 하심 씨족은 하심의 자손들 전반을 포함하지만, 하심 가문은 메카 아미르 작위를 세습하였던 무함마드의 혈통만을, 더 좁게는 아랍 반란을 일으켜 이라크와 요르단의 건국시조가 된 후세인 빈 알리 (샤리프 후세인)의 후손들만으로 한정된다.2. 역사
- 히자즈
- 메카 샤리프: 이집트-시리아를 통치한 제국에 종속되었다.
- 헤자즈 왕국: 제1차 세계 대전을 틈타 영국의 지원으로 독립한 샤리프 후세인의 왕조. 사우드 왕국에게 멸망하며 단명한다.
- 레반트
- 메소포타미아
- 동남아시아
2.1. 초기
파티마와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의 장남이자 무함마드의 손자로 하산 이븐 알리가 있다. 그리고 하산의 후손들은 '샤리프(شريف, Sharif)'라고도 불린다.초기에 히자즈 지역의 샤리프들은 큰 활동 없이 조용히 지냈다. 그러다 급진주의 분파인 까라미타파(قرامطة, Qarmatians)가 메카의 카바에서 검은 돌을 훔치는 사건이 발생하자, 아바스 왕조의 속국인 이흐시드 왕조 측은 이에 메카를 수호할 필요성을 느끼고 964년 즈음 샤리프들 중에서 메카의 아미르를 임명하여 히자즈 지역을 지키게 하였다. 메카와 히자즈를 지배하는 샤리프 아미르를 '메카의 샤리프(شريف مكة, Sharif of Mecca)'라고도 한다.
메카 아미르 작위는 파티마 왕조 시대에도 존속하였다. 1012년 당시 메카 아미르였던 아부 알 푸투흐 알 하산(أبو الفتوح الحسن, Abu'l-Futuh al-Hasan)은 파티마 왕조에 대항해 칼리파를 자칭하기도 했으나 그의 동맹 세력이 등을 돌리자 다시 파티마 왕조에 충성하였다. 한편, 남아라비아에서는 파티마 왕조의 영향을 받아 시아파의 분파 이스마일파를 받아들인 술라이흐 왕조(بَنُو صُلَيْح, Sulayhid dynasty)가 1062년 오늘날의 예멘 지역을 정복하고 더 나아가 북쪽 히자즈 지역까지 점령하였는데, 이로부터 한동안 메카 아미르들은 이들에 의해 선출되었다.
초기 메카 샤리프의 분파 씨족 계보 | |
술라이만 씨족(Sulaymanids) | |
하와심 씨족(Hawashim) | |
자파르 씨족(Ja'farids) | |
카타다흐 씨족(Qatadids) |
1201년 아이유브 왕조 통치하에 카타다흐 이븐 이드리스(قتادة بن إدريس, Qatadah ibn Idris)가 메카 아미르로 임명된 이래 메카 샤리프 작위는 그의 후손 핏줄인 카타다흐 씨족(Qatadids)으로 계속 세습되어왔고, 현대 하심 가문은 이들을 직계 조상으로 둔다. 메카 샤리프들은 본래 자이드파 시아파였으나, 맘루크 왕조의 통치와 오스만 제국의 지배 초기 무렵 수니파로 개종하였다.[참고]
하심 가문의 계보도 |
1405년에는 필리핀을 중심으로 한 술루 지역 군주의 사위가 된 후세인 이븐 알리의 14대손 샤리프 울 하심(Sharif ul-Hashim)이 장인의 군주위를 계승한 후 술탄을 칭하여 술루 술탄국을 개창하였다.
2.2. 오스만 제국
1517년 오스만 제국이 맘루크 왕조를 정복한 이래 히자즈 지역 역시 오스만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당시 메카 아미르였던 바라카트 2세(بركات الثاني, Barakat II)는 오스만 황제가 칼리파임을 받아들이며 종주권을 인정하였고, 오스만 역시 메카 아미르가 히자즈를 다스리는 것을 용인하였다.이후 히자즈의 행정구역으로 '제다 성(ایالت حبش, Eyālet-i Ḥabeş)'이 세워졌다. 또한 오스만 정부는 메카 아미르를 직접 임명하여 계승권에 영향을 행사하였는데, 항상 카타다흐 씨족 인물 중에서 선출하는 것은 변함없었다. 그리고 히자즈 지역의 통치권은 메카 아미르와 이집트 총독, 제다 총독이 같이 쥐었다.
1795년 제다 성 |
그러다가 1750년대 아라비아 반도에 와하브파 세력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결국 1803년 와하브파 사우드 가문 출신의 압둘아지즈 빈 무함마드(عبد العزيز بن محمد, Abdul-Aziz bin Muhammad)가 메카를 공격하였고, 당시 메카 아미르였던 갈리브 이븐 무사이드(غالب بن مساعد, Ghalib ibn Musa'id)는 제다로 피난하였지만 그곳 역시 포위당하였다. 갈리브는 메카로 돌려보내져 사우드의 봉신이 되었다.
히자즈를 다른 세력에게 빼앗긴 오스만 측은 이집트 총독 메흐메드 알리를 불러 다시 히자즈를 되찾게 하였다. 1813년 무하마드 알리가 와하비 세력을 물리치고 히자즈를 되찾아오는데, 자기만의 아랍 국가를 세우겠다는 야망을 품은 그는 메카 아미르를 자기가 선출하여 히자즈 지역의 패권을 쥐려 하였다. 이를 위하여 그는 카타다흐 씨족을 '자이드 씨족(ذوي زيد, Dhawu Zayd)'과 '아운 씨족(ذوي عون, Dhawu Awn)'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자이드 씨족인 갈리브를 폐위시키고 아운 씨족인 무함마드 이븐 아브드 알 무인(محمد بن عبد المعين بن عون, Muhammad ibn Abd al-Mu'in)을 등용하였다. 이렇게 씨족을 나눔으로써 무하마드 알리는 메카 아미르들을 더 수월하게 조종할 수 있었다.
1840년 런던 조약(Convention of London)으로 무하마드 알리가 히자즈에서 권력을 잃고 이 지역은 다시 오스만 제국의 통치하에 들어왔다. 오스만은 다시 자이드 씨족을 등용하였다. 그리고 1872년 히자즈의 행정구역을 개편하여 '제다 성(ایالت حبش, Eyālet-i Ḥabeş)'을 '헤자즈 주(ولايت حجاز, Vilâyet-i Hijaz)'로 바꾸었다. 총독이 제다에서 메카에 직접 거주하면서 히자즈의 권력은 아미르와 총독이 양분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이 둘 사이에 종종 충돌이 있었다.
19세기 동안 히자즈의 주요 도시였던 메카, 메디나, 제다에는 대부분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등지의 비아랍권 무슬림들이 거주하고 있어 다국적인 분위기를 띠었다.
1856년 무함마드 이븐 아브드 알 무인이 메카 아미르로 재위하면서 다시 아운 씨족이 집권하였다. 그리고 그의 손자인 샤리프 후세인으로 이어졌고, 훗날 후세인은 아랍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1900년 헤자즈 주 |
2.3. 아랍 반란과 현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은 중동 지역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열강으로, 중동에 관련된 3개의 협상을 진행했다.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이 부진해지자 영국은 당시 메카 샤리프였던 후세인에게 접근하였고, 아랍 지역에서 오스만 제국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킨다면 전후 그 대가로 통일 아랍 국가를 세워주겠다고 약속하였다. 이것을 '후세인 맥마흔 서한(McMahon–Hussein Correspondence)'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한편으로 프랑스 제3공화국과 전후 아랍 지역을 둘이 잘 나누어 갖자는 '사이크스-피코 협정(Sykes–Picot Agreement)'을 체결했다. 즉 영국은 후세인과의 협상을 진행할 때 실제로 그에게 아랍 지역을 맡길 생각이 없었다. 또한 영국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고자 전후 중동 지역에 유대인의 나라를 세워 주겠다는 '밸푸어 선언'까지 발표했다.어쨌든 후세인은 영국에 동조하여 연합군 편에 서서 오스만 제국에 반란을 일으키고 헤자즈 왕국을 세웠다. 그러나 전후 약속된 아랍 국가 건설은 빈말이 되었고, 영국과 프랑스는 레반트 지역을 차지해버렸다. 하심 가문 측에서는 시리아 아랍 왕국을 세우고 후세인의 삼남인 파이살 1세를 국왕으로 추대했지만, 그저 미승인국가로 남았고, 건국 4개월 만에 프랑스에 항복하여 없어졌다. 중동 전역에 걸친 통일 아랍 국가의 꿈이 깨지고, 요르단과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영국의 영향 아래 각각 후세인의 차남인 압둘라는 트란스요르단의, 삼남이자 이전 시리아 국왕이었던 파이살 1세는 이라크 왕국의 국왕이 되었다.
터키의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칼리파제를 폐지하자 메카에 머물던 수호자 후세인은 자기를 칼리파라고 선언했으나 오히려 그것을 계기로 반대파들의 공격을 받아 망명해야 했다. 이후 장남 알리가 헤자즈 국왕 자리를 이어받았지만, 혼란을 이용해 압둘아지즈 이븐 사우드의 네지드 술탄국이 쳐들어와 알리를 쫓아냈다. 쫓겨난 알리는 동생 파이살이 있던 이라크로 탈출했고, 헤자즈 왕국을 합병한 네지드 왕국은 이후 아라비아 반도 대부분을 석권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오늘날의 사우디아라비아.
나세르의 아랍 연합 공화국 구상에 자극을 받아, 1958년 한때 요르단과 이라크의 하심 왕국들끼리 '아랍 연방'이라는 연합을 구성하기로 하고, 이라크의 파이살 2세를 연방의 원수로 추대하기로 했다. 그러나 반년 만에 이라크에서 압둘카림 카심의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 국왕 파이살 2세를 포함한 파이살 1세의 후손들을 학살해버렸고, 이라크로 망명했던 후세인의 장남 알리의 아들 압둘일라(عبد الإله, 'Abd al-Ilah)[3]도 살해하였다. 후세인의 4남인 제이드는 당시 영국 주재 이라크 대사로 런던에 나가 있어서 화를 면하였고 현재 이라크 하심 가문의 수장이 되었다.
3. 역대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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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여담
현 요르단 디나르 지폐에 후세인 빈 알리를 포함하여 역대 하심 가문 요르단 군주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1디나르 : 후세인 빈 알리
- 5디나르 : 압둘라 1세
- 10디나르 : 탈랄 1세
- 20디나르 : 후세인 1세
- 50디나르 : 압둘라 2세
5. 참고 문헌
- Kamal S. Salibi (1998-12-15). The Modern History of Jordan. I.B.Tauris. pp. 53–55. ISBN 978-1-86064-331-6.
- Randall Baker (1979). King Husain and the Kingdom of Hejaz. The Oleander Press. ISBN 978-0-900891-4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