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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0 19:49:11

은수자



1. 개요
1.1. 논란
2. 역사3. 생활 방식4. 다른 종교5. 기타6. 관련 문서7. 출신 인물

한 명의 수도자는 도시 전체보다 더 가치가 있다.[1]

1. 개요

은수자(hermits)란 그리스도교에서 속세를 떠나 은둔하며 고행과 기도 등으로 사는 수도자를 뜻한다. 과거 천년 전만 해도 그리스도교에서 은수자 생활은 보편적이었으나, 현재는 정교회 계통을 제외하면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즉, 주로 오리엔트 정교회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 등 전통이 남아 있는 종파들에 이런 은수자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 가톨릭에서는 트라피스트회의 일부 수도자[2] 정도만 은수생활을 하며 나머지 수도회는 모조리 공동생활이다.[3] 이렇듯이, 초대교회의 전통을 중시하는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등에선 아직도 은수자 계급이 존재하지만 그 외 종파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사막교부 시대에는 "독수도승"과 "회수도승"으로 수도승의 유형이 나뉘었는데, 그 중 "독수도승"에 가깝다고 볼 수 있으나, 사실 사막교부시절에도 완전한 은둔 생활을 하는 수도승은 거의 드물었다고 한다.

1.1. 논란

은수자의 생활이 과연 그리스도교적인가에 대한 논란은 주로 비그리스도인들이나 근본주의 개신교에서 제기되는 문제이다. 가톨릭이나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 등 전통의 보존이 이어지는 교파들에서 이러한 논란을 제기하는 신자들이 거의 없다.

이러한 은수생활이 정녕 이단적이고 비그리스도교적이었다면, 보편교회에서 사막교부들의 영성이나 수많은 거룩한 은수자들의 영성은 홀대받아야 마땅했을 것이다. 성서를 보면, 성령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광야로 부르시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탈출기에서의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로 부르심을 받았고, 세례자 요한역시 광야에서 살았다. 예수 그리스도 역시도 유다 광야에서 사탄의 유혹을 받으셨으며, 호세아 2장 16절을 보면 광야를 향한 부르심이 명백히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열왕기상을 보면, 오바드야엘리야에게 성령께서 당신을 알지 못하는 곳으로 데려가시면 어떡하냐고 하소연하는 구절 또한 있다. 즉, 은수생활이 그리스도교와 상관 없는 영성인 것은 전혀 아니며, 이들의 생활은 신학자사제가 아닌 복음적 삶을 향한 특권적 여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에게는 세상이 가치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광야동굴과 땅굴을 헤메고 다녔습니다"[4]

상기의 히브리서 구절에서도 나와 있듯이, 성령의 이끄심과 부르심을 통해서 광야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약간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요한 묵시록 12장 14절에서도 하느님께서 교회를 광야로 내모시는 장면이 등장한다. 또한 그 유명한 마태오 복음서 19장 12절의 말씀도 하느님을 위한 금욕가들과 수도자들을 뜻하는 구절이다.

2. 역사

성 안토니우스암모니우스, 마카리우스, 파울루스같은 사막교부들이 은수자의 기원이라고 볼 수 있다. 중세에는 아우구스티노회프란치스코회 같은 탁발수도회들에도 은수자들이 존재했다.[5] 12세기에 창설된 카르투시오회 역시 반은수 수도회다. 은수자 제도는 대략 3세기경 시작되어 로마 제국이 분열될 때까지 그 인기가 정점에 달했다가 이후 가톨릭 교회에서 교황의 카리스마가 수도자들을 장악한 뒤로는 점점 사그라들어 대략 개신교 발흥 전후의 시점으로 가톨릭에선 대부분 사라졌다.[6] 정확히 말하면 서방 가톨릭은 동방 정교회보다는 은수생활을 하는 경우가 드물었으나 11세기와 13~14세기 무렵 재부흥했다.

시토회카르투시오회등이 이 시기의 요구에 의해 창설되었다. 상대적으로 서로마 제국 멸망 전후 세대의 보편교회 전통이 자잘한 부분까지 잘 보존되어 있는 정교회오리엔트 정교회에는 은수자 문화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정교회의 수도자는 은수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톨릭보다 수도자의 은수 생활을 더 높게 쳐 준다. 은수자는 세례자 요한의 전통을 계승하며 사막 교부들의 삶을 재현하는 이들이다. 3세기 경, 안토니우스, 마카리우스, 암모니우스, 파코미우스 등의 사막 교부들은 이집트에서 광야로 도피했던 요한의 삶을 답습하기 위해 노력했다. 사막 교부들에 관한 기록들을 보면, 이들은 극도로 내핍적인 생활을 추구하며 극기와 고행의 삶을 실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식사도 하루에 두덩이만 먹을 정도로 매우 절제하였으며, 주로 노동과 기도로 생활을 영위해 나갔다. 노동은 바구니 제작 같은 손노동이 대다수였다.

3. 생활 방식

사막교부들 중 은수생활을 했던 이들은 외딴 동굴 같은 곳에서 홀로 수도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이렇게 완전히 홀로 독수생활을 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고 대다수는 공동생활을 했다.실제로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을 보면, 사막 한가운데에서 완전한 독수생활을 하다가 유골로 발견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며, 에티오피아에서는 현재도 아주 외딴 지역에서 은수자 바히타위의 시신이나 백골이 발견되곤 한다고 한다. 미국 트라피스트회의 경우 소속된 일부 신부들이 외딴 산속 오두막 등에서 홀로 은둔 수도생활을 한다. 카르투시오회는 완전 은수생활이 아니고 반은수 생활이지만 한국에 존재하는 남자 수도회 중에는 유일한 은둔 수도회다.[7]

사막교부시절의 수도승들은 거의 하루종일 밤낮을 기도로 보냈기 때문에 딱히 성무일도의 구분을 두지는 않았다. 또한, 60년간 여성을 쳐다보지 않거나, 여성의 발자국까지도 지워버리는 등, 다소 극단적인 금욕생활을 하는 금욕가도 존재했었다. 즉, 사실상 대다수는 은수자의 부락을 만들어서 은수자끼리 함께 생활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다만, 사막교부의 금언집을 보면, 아주 외딴 지역에서 은수자의 유골이 가끔 발견되기도 했다고 하니, 완전히 속세를 떠난 경우가 아예 없지는 않았던 것 같다.

동방정교회아토스역시 은수자계급이 존재한다. 애초에 정교회는 아직도 은둔 생활을 하는 수도자가 존재하며, 수도생활 역시 가톨릭보다 정교회가 훨씬 가혹하고 고행을 많이 하는 편이다.아토스 산 정상에는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완전히 속세를 떠나 자연 속에서 사는 은둔 수도자가 최대 12명 까지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도 있는지는 불명이다.

4. 다른 종교

5. 기타

6. 관련 문서

7. 출신 인물


[1] 정교회 천사의 말.[2] 미국 트라피스트회를 다룬 다큐를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3] 카르투시오회도 공동생활이다.[4] 히브리서 11장 38절[5] 당연히 현재 이들 수도회엔 은수자가 없다.[6]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7] 개신교수도원인 충주봉쇄수도원 제외[8] 가끔씩 혼자서 혹은 손님들과 함께 찾아가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고 한다.[9] 대한민국 개신교 유일의 봉쇄수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