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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유발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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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이승엽에게 밀린 선수들3. 이승엽에게 기록을 허용한 경우4. 기타 피해자(?)

1. 개요

이승엽의 경우 유독 매스컴과 팬들의 관심이 뜨거운 선수다 보니 상대적으로 이승엽에게 기록을 허용한 선수가 지나치게 과장돼서 부풀려지거나, 반대로 이승엽 때문에 기록을 폄하당하는 등 본의 아니게 피해자가 생기게 되었다. 이하는 그 피해자 명단. 특히 그중에는 양준혁이 있다.

2. 이승엽에게 밀린 선수들

3. 이승엽에게 기록을 허용한 경우

현재 감독에서는 한 분이나 계신다.

4. 기타 피해자(?)



[1] 힘 좋은 출루머신이라는 양준혁의 플레이스타일은 스타성에서 심각한 피해를 보기 쉽다. 비슷한 유형의 선수로는 조이 보토김태균이 있는데, 이들이 좋은 타자라는 건 누구나 동의하지만 실력을 스타성이 따라가지 못한다.[2] 93양준혁(212.0)>96양준혁(207.0)>02이승엽(198.5)>99이승엽(191.8)[3] 2003년 한정이면 비율로 이승엽보다 뛰어난 게 맞지만 현대 시절 전체로는 누적이든 비율이든 이승엽보다는 아래.[4] 오죽했으면 2003년, 이승엽과 라이벌 구도를 유지하며 대부분의 기록에서 무쌍을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KBO 올스타전에 팬 투표로 못뽑혀 감독 추천 선수로 참가하는 굴욕을 겪었었다. 정작 이승엽도 팬 투표순위에선 양준혁에게 밀렸다. 다만 이 경우는 해태-LG팬들의 표가 양준혁에게 갔을 가능성이 높다.[5] 사실 지금의 심정수에 대한 평가도 현역 시절보다 오히려 은퇴 이후에 더 좋아졌다고 봐야 한다. 현역 시절에는 이승엽에 묻혔다가 오히려 은퇴하면서 당시의 기록들이 재발굴 되고 재평가 되었기 때문.[6] 오죽하면 은퇴 직전 도박 사건이 터졌을 때 심정수가 범인이 아니라고 스스로 밝히기 전까지 해명기사를 제대로 쓰는 기자조차 없었다.[7] 사실 1, 2위 기록이 모두 이승엽의 03년도 56호, 99년도 54호라 개인으로 따지면 2위.[8] 03심정수 (OPS:1.197 WAR:10.19 wrc+:210.7), 03 이승엽 (OPS:1.127 WAR:8.39 wrc+:191.2), 02이승엽 (OPS:1.125 WAR:8.96 wrc+:198.5), 99이승엽 (OPS:1.190 WAR:8.91 wrc+:191.8)[9] 이종범은 선천적인 왼손잡이다. 알만한 야구팬들은 이종범이 당구를 칠때 보면 알 수 있다.[10] 포지션이 다르다고 해서 통산 성적으로 이대호를 구자욱보다 못한 선수라고 보는 이는 없지 않은가? 물론 구자욱은 젊으므로 누적 성적을 만들 수 있지만 이종범은 이미 은퇴했으니 선수 시절의 기록으로 평가해야 한다.[11] 해당 경기 전체를 놓고 보면 홈런 맞은 게 딱히 굴욕이라고 하기도 힘든 게 이정민은 홈런을 맞을 당시 베테랑이기는커녕, 프로 2년차 대졸 신인에 불과한 25살 된 어린 선수였을 뿐이다. 거기다가 하필이면 이날 이정민은 프로 데뷔 첫 승을 거뒀었다. 때문에 첫 승이라는 소중한 기록은 묻혀버린 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축하 대신 이승엽의 들러리로 한동안 언론매체에 의해 격하당해야 했다는 점은 그야말로 비극이라 볼 수밖에.[12] 그리고 그 다음해 '불알타' 사건 때문에 역대급 임팩트로 그 이미지가 되어 너무 주목이 되어서 타자 김문호와의 관계만 한국 야구팬들에게 각인이 되는 바람에, 이승엽과의 관계는 전혀 언급이 없는 수준이 되었다. 사실 그 해 윤희상이 부상으로 1년간 선수 생활을 못 하게 된 건 불알타 사건이 아니라 그로부터 한달 뒤 송광민의 타구를 손에 맞아서 손뼈가 부러진 비극 때문이었는데, 야구팬들은 심지어 그 시즌 아웃을 불알타 사건 때문인 것으로 잘못 기억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불알타 사건은 검진 후 치명적 부상(전치 2주)이 아니었던 것으로 밝혀졌고, 오히려 운동선수에게 손뼈가 부숴지는 부상이 실제 1년만 쉰게 다행일만큼, 잘못하면 선수생활을 접을만큼 훨씬 심각한 것임에도 윤희상 문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건 큰 주목이 안 되고, 몇 년째 그 사건만 계속 주목 된다.[13] 포크볼을 던졌는데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14] 이승엽(동명이인) 문서에는 없지만, 국민타자 이승엽이 한창 맹활약했던 2000년 당시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동작구 갑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던 동명이인 이승엽이 있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자택이 있는 상도동을 끼고 있는 이 선거구에서 이승엽 후보는 당시만 해도 상도동계의 좌장이던 한나라당 서청원 후보와 개표 내내 엎치락뒤치락하다가 단 146표(0.16%) 차로 낙선했다. 하지만 이 선거에서는 전설의 문세표가 있어서 이승엽 후보는 별 주목을 못 받았다.[15] 출처 : 위키백과 가와카미 겐신 항목[16] 게다가, 한신의 홈구장인 한신 고시엔 구장은 일본 야구의 성지라 불리는 곳이다. 다만 400호는 도쿄돔에서 허용했고 허용투수는 완투패했다. 참고로 이승엽과 같은팀 선발투수는 전직 메이저리거인 우에하라 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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