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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민(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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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시즌 스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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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임홍현 · 2 구재승 · 3 이준석 · 5 구교철 · 6 임은수 · 7 김경환
VC
· 8 이창민
9 김민규 · 10 [[조주영(축구선수)|조주영
C
]] · 11 이강욱 · 13 김민수 · 14 김정빈 · 15 이주호 · 16 손우성 · 17 조성지
18 최진혁 · 19 장효강 · 20 이상용 · 21 이태희 · 22 오화랑 · 23 강재우 · 24 김시창 · 26 강영종
29 김민창 · 36 김언빈 · 66 김이근 · 77 정은찬 · 78 이호인 · 99 이시창
VC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송재규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송홍섭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성국
* 본 문서는 간소화한 것입니다. 스쿼드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 타 구단으로 임대한 선수는 제외했습니다.

이창민의 역임 직책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0 2%, #f58026 2%, #f58026 24%, transparent 26%, transparent 74%, #f58026 76%, #f58026 98%, #000 98%), linear-gradient(to bottom, transparent 6%, #f58026 6%), linear-gradient(135deg, #f58026 16%, #000 18%, #f58026 20%, #000 22%, #f58026 24%, #000 26%, #f58026 28%, #000 30%, #f58026 32%, #000 34%, #f58026 36%, #000 38%, #f58026 40%, #000 42%, #f58026 44%, #000 46%, #f58026 48%, #000 50%, #f58026 52%, #000 54%, #f58026 56%, #000 58%, #f58026 60%, #000 62%, #f58026 64%, #000 66%, #f58026 68%, #000 70%, #f58026 72%, #000 74%, #f58026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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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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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2대 3대 4대 5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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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민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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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시민축구단 No. 8
이창민
李昌珉 | Lee Chang-Min
<colbgcolor=#125170><colcolor=#fff> 출생 1994년 1월 20일 ([age(1994-01-20)]세)[1]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신상리[2]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79cm, 77kg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3]
주발 오른발
학력 사동초[4] - 장평중 - 부경고 - 중앙대
프로 입단 2014년 부천 FC 1995
소속 부천 FC 1995 (2014~2015)
경남 FC (2014 / 임대)
전남 드래곤즈 (2015 / 임대)
제주 유나이티드 FC (2016~)
거제시민축구단 (2023~ / 사회 복무)
국가대표 7경기 1골 (대한민국 / 2017~2018)
가족 부모님, 아내, (2020년생)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기록5. 플레이 스타일6. 논란 및 사건 사고
6.1. 과속, 중앙선침범 3명 교통사상사건
6.1.1. 집행유예 기간 등록 논란
7.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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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2. 클럽 경력

2.1. 프로 데뷔 이전

경상북도 경산시에서 출생하여 진량읍 부림초등학교에서 축구를 3학년까지 하다 경산 사동초등학교로 전학을 가서 축구를 계속 시작하고 2004, 2005년 경상북도 교육감기 대회 연속 준우승에 공헌했으며 6학년 때이자 팀 창단 3년 만인 2006년 제 9회 대한축구협회장기 전국 유소년 축구대회 저학년부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사동초등학교를 거쳐 부산 장평중학교에 진학하였고, 2010년에는 부경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청소년 국가대표로 활약하였다. 이후 중앙대학교에 진학해 1학년을 마치고, 프로 입단을 결정했다. 데뷔를 경남 FC에서 했기에, 자신의 고등학교, 대학교 4년 선배이자 같은 포지션 우상인 윤빛가람과 똑같은 행보를 걷게 됐다.

2.2. 부천 FC 1995경남 FC

파일:이창민(축구선수) 14시즌.jpg
2014 시즌 개막을 앞두고 여러 프로 팀들의 관심을 받던 중 부천 FC 1995에 자유 계약으로 입단하였다. 연령별 대표팀을 두루 거친 전도유망한 엘리트의 영입에 부천 팬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하였으나, 입단 직후 경남 FC로 임대 이적하였다. 사실상 경남으로 임대가기 위해 부천에 입단한 것.

경남 입단 당시 부경고-중앙대 1년 선배인 우주성과 입단 동기가 됐다. 등번호 14번을 달았다.

고교 시절 총감독으로 연이 있던 이차만 감독의 지도아래 중원 사령관으로 활약하며 32경기 2골 3어시스트를 기록하고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두 경기에 모두 출장하는 등 주전으로 뛰었으나, 팀이 강등된 후 부천으로 임대 복귀했다.

2.3. 전남 드래곤즈

파일:이창민(축구선수) 15시즌.png
2015년에는 전남 드래곤즈로 다시 임대되었다.

4월 26일 홈에서 열린 선두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경기에서 멀티골을 기록, 2대 1 승리에 공헌하여 전북의 리그 22경기 무패행진을 무너뜨리는 등 꾸준히 활약하며 최종적으로 21경기 2골 2도움을 기록하였다.

2.4. 제주 유나이티드 FC

도움닫기를 거의 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탄탄한 하체 근력을 활용해 강력한 중거리슈팅을 구사. 전매특허인 양발을 가리지 않는 중거리포를 비롯해 동료의 발 아래로 떨어뜨리는 정확한 패스와 상대의 거친 압박을 풀어내는 능력이 맞물리면서 K리그 정상급 미드필더로 도약.
제주 유나이티드 FC 공식 홈페이지 소개글

2016 시즌을 앞두고 제주 유나이티드로 완전 이적했다. 등번호는 14번.

2.4.1. 2016 시즌

파일:이창민(축구선수) 16시즌.jpg
2016년 4월 2일 경기 전북 원정에서 이재성과 볼경합을 벌이는 이창민

제주에서도 주전 미드필더로 꾸준히 출전하고 있다.

다만 부천 팬들은 이창민의 이러한 행보를 매우 싫어하는 편인데, 이창민은 비록 원 소속 팀은 부천이었으나 부천에서는 단 한 경기도 뛴 적이 없으며, K리그 클래식 소속 구단에서만 임대 선수 신분으로 경기를 뛰었기 때문이다. 즉, 이창민은 부천에는 별 감정이 없었고 부천을 K리그 클래식으로 진출하기 위한 발판으로만 생각했다는 얘기가 되는지라 부천 팬덤 내에서는 이창민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 못한 편이다. 게다가 새로 이적한 팀부천 팬들에게 상처를 안겨 준 바로 그 팀이라는 점까지 생각하면 더욱 기분이 나쁠 듯.[5]

2016년 10월 2일 친정 팀 전남 드래곤즈와의 경기에서 대포알 중거리 슛으로 선제골을 넣었고, 완델손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1골 1도움을 기록하였다.

2016년 10월 15일 스플릿 1라운드에서 33경기 무패 행진을 이어 가던 전북 현대 모터스 원정에서 안현범에게 그림 같은 킬패스를 찔러 주어 도움을 기록하며 3-2 승리에 기여했다.#

송진형이 알 샤르자로 이적하면서 조성환 감독은 과감히 그를 송진형의 후계자로 선택했고, 덕분에 제주는 리그 3위를 확정하면서 5년 만에 AFC 챔피언스 리그 출전을 확정지었다.

리그 21경기 2득점 3도움을 기록했다.

2.4.2. 2017 시즌

파일:이창민(축구선수) 17시즌.jpg
2017 AFC 챔피언스리그 감바 오사카 원정에서 멀티골을 넣어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첫 골을 넣고 산책 세리머니를 했으며, 두 번째 골은 본인의 트레이드 마크인 환상적인 중거리 슛으로 터뜨렸다.

또한 AFC 챔피언스리그 5차전에서 최용수 감독이 이끌던 장쑤 쑤닝 원정에서도 중거리슛으로 결승골을 터뜨렸다. #

2017년에도 주전 미드필더로 꾸준히 출장하고 있었으나, 여름 이적 시장에서 알 와흐다 FC로 이적할 수도 있다는 소식이 있다. 알 와흐다 측에서 임창우를 대체할 아시아 쿼터로 이창민을 눈여겨 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적설이 보도된 지 일주일이 지나도 이적이 완료됐다는 소식도, 결렬됐다는 소식도 없었는데 UAE 언론이 이유를 공개했다. UAE 언론 '알 바얀'은 알 와흐다 FC의 라우렌틴 레게캄프 신임 감독이 이창민의 영입을 확정 짓기 전에 현재 계약 기간이 남아 있는 임창우의 기량을 먼저 체크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창민이 이적할 경우 현재 아시아 쿼터 자리를 점하고 있는 임창우는 팀을 떠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이번 보도에 따르면 레게캄프 감독은 오는 22일 개막하는 '2017 아랍 클럽 선수권대회'를 통해 임창우의 몸 상태를 점검한 후 그의 거취를 최종적으로 확정할 예정이다. 대회는 알 와흐다가 결승전에 진출할 경우 8월 6일에 종료된다. 만약 임창우를 잔류시키는 것으로 가닥을 잡는다면 이창민 영입은 포기할 공산이 크다. 그때까지 제주와 이창민이 마냥 알 와흐다 측의 최종 응답을 기다려줄 것인지부터도 미지수다.

이적 시장 마감까지 많은 시간이 남아 있는 알 와흐다는 급할 것이 없지만 2017 시즌 여름 이적 시장에서 핵심 선수들의 이적설 및 진짜 이적이 많기 때문에 가슴을 졸이고 있는 제주 팬들의 속만 타들어 가고 있었으나, 결국 알 와흐다에서 임창우를 잔류시키기로 결정하면서 이창민의 이적설은 일단락되었다.#

팀에 잔류가 확정된 후 치러진 8월 19일 친정팀 전남 드래곤즈와의 홈경기에서 두골을 넣으며 팀의 대승을 이끌었다. 한 경기 2득점은 K리그 커리어 첫 기록이다.

11월 19일 FC 서울과의 리그 최종전 원정 경기에서 윤빛가람의 어시스트를 받아 득점에 성공하며 동점골을 기록했다.

리그 26경기 5득점 3도움, ACL 8경기 3득점 1도움, FA컵 1경기에 출전하며 팀의 7년 만에 리그 준우승을 이끌었다. 시즌 후 EAFF E-1 풋볼 챔피언십 명단에도 소집되는 등, 국가대표급 선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4.3. 2018 시즌

파일:이창민(축구선수) 18시즌.jpg
2017 시즌 종료 후 문창진이 있는 알 아흘리 클럽으로 이적할 뻔 했으나, 이창민 영입을 두고 구단과 감독 사이에 의견 충돌이 생기면서 이적이 무산되었다.#[6]

2018년 9월 말부터는 경기에 출전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처음에는 이적설 등 여러 소문이 돌았지만, 이후 본인이 인스타그램에서 부상 때문이라고 밝혔다.

결국 10월 1일 올라온 기사를 통해 부상이 사실로 확정, 사실상 시즌 아웃되고 말았다. 제주 입장에서도 큰 타격인데, 지난 시즌 K리그 베스트 11에도 선정될 정도로 비중이 큰 선수인 데다가 하필 부상 시점이 정규 리그 2경기를 앞두고 생긴 악재라 상위 스플릿 진출 여부까지 걱정하게 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마지막 정규 라운드에서 울산이 강원을 잡고, 제주가 서울을 이기면서 5시즌 연속 상위 스플릿 진출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리그 23경기 3골 6어시스트를 기록하며 K리그 기준 본인의 한 시즌 최다 공격포인트를 기록한 시즌이 됐다. ACL에선 5경기 2골, FA컵 1경기에 출전했다.

이창민은 부상에 이어 후술할 교통사고에 연루되면서 2018 시즌은 본인에게 있어 최악의 시즌으로 남게 되었다.

2.4.4. 2019 시즌

파일:이창민(축구선수) 2019시즌.jpg
2019 K리그 1 개막전 인천 유나이티드 원정에서 전반 35분 환상적인 궤적의 중거리 슛으로 선제골을 기록했다. 2019 시즌 제주의 1호 골. 다만 사망사고 때문에 세레모니는 하지 않았다. 이 외에도 여러 차례 날카로운 슈팅으로 인천의 골문을 위협하며 이 날 가장 좋은 활약을 펼쳤다.#

4라운드 울산 현대전에서 팀이 선제골을 허용한 지 3분 만에 김호남의 크로스를 이마에 정확하게 맞히며 헤딩 골을 기록했고 후반 25분에는 날카로운 프리킥으로 골대를 맞혔다. 그러나 팀은 1-2로 패배했다.#

12라운드 전북 현대 모터스전에서 전반 32분 권순형의 킬패스를 받아 문전 앞에서 김민혁을 제치고 골키퍼와 수비수 사이로 반대쪽의 찌아구에게 절묘한 패스를 찔러 주어 동점골을 어시스트하면서 간만에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다.# 이뿐만 아니라 본인의 장기인 위협적인 중거리 슛을 여러 번 시도했으나 후반전에 송범근 골키퍼가 야신 모드를 켜 버리면서 아쉽게 득점은 실패했고, 1-3으로 졌다. 이 날 찌아구와 더불어 제대로 된 활약을 했던 몇 안 되는 선수였다.

16라운드 상주 상무전에서 1-4로 지고 있던 후반 26분 문전 앞 혼전 상황에서 김경재가 걷어낸 공을 잡아 만회골을 기록했다.#

17라운드 성남 FC전에서 0-1로 뒤진 후반 29분 김성주의 패스를 받아 시원한 중거리 슛으로 골문 구석을 찌르며 동점골을 기록했다. 2경기 연속 골. 그러나 팀은 김현성의 결승골로 아쉽게 패배했다.#

23라운드 전북 현대 원정경기에서 선발 출장하여 나름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선두 전북을 상대로 팀의 승점 1점 획득에 공헌하였다.

그러나 24라운드 울산 현대 홈경기에서 팀은 골키퍼 오승훈의 부진과 아울려서 충격적인 0대 5 대참패를 당했다. 이창민은 자신의 장기인 중거리 슛을 몇번 시도해 봤지만 빗나가는 등, 전제척으로 봤을 때 인상적인 모습은 딱히 보여주지 못했고, 그저 평균치에서 무난한 수준을 보여줬다 싶은 정도였다. 물론 이날 팀 전체가 멘탈이며 조직력이 총체적 붕괴 수준이었던 만큼 이창민만의 잘못으로 보기는 어려웠다.[7]

2019 시즌 이창민은 프리킥과 코너킥 전담을 도맡아 하는 등 점차 소속팀 제주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30라운드 홈에서 열린 성남전에서는 주장 완장을 차고 팀의 3대 0 완승에 공헌하였다. 36라운드 인천전 리드 상황에서 쐐기골을 기록해 팀의 희망을 살렸다. 하지만 결국 37라운드 팀이 2대 4로 역전패가 굳어진 상황에서 경기 종료 직전 성급한 파울[8]로 인해 퇴장을 당하고 말았다...#

리그 32경기 5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본인의 한 시즌 리그 최다 득점 타이를 기록했으나 팀도 최하위 강등이 확정되면서 이창민에게 있어 2019년 역시 최악의 해로 남게 되고 말았다.

2.4.5. 2020 시즌

팀의 새 주장으로 선임됐다. 새로 합류한 김영욱에게 14번을 양보하고 8번으로 등번호를 옮겼다.

K리그2 3라운드 대전 하나 시티즌과의 경기에서 상대 선수인 박진섭에게 태클을 걸어 경고를 받았지만 VAR 판독 결과 레드 카드로 나왔고 퇴장을 당하며 제주 전력에 비상이 걸리고 말았다.

FA컵 2라운드 송월 FC와의 경기에서 어시스트를 하나 기록했다. 7라운드 아산전에서 멋진 중거리 발리슛으로 추가골을 기록했다.

8라운드 경남전에서 공민현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했다. 9라운드 안양전에서 상대가 클리어링 한 공을 완벽한 발리슛으로 연결하며 동점골을 기록했다.

11라운드 서울 이랜드전에서 페널티킥을 멋지게 마무리하며 결승골을 기록했다. 15라운드 수원전에서 완벽한 코너킥 크로스로 김오규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했다.

22라운드 안양전에서 말도 안되는 프리킥 슈팅으로 쐐기골을 기록했다. 리그 우승 6점짜리 승부를 놓고 겨루는 수원FC전에서 팀의 승리에 쐐기를 박는 킬패스를 찔러주면서 팀의 승리에 공헌, 이후 치러진 서울 이랜드 전에서도 승리하면서 팀은 1년만에 1부리그로 승격하였다. 리그 24경기 4골 2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주장으로서 우승 트로피를 가장 먼저 들어올렸다.

리그 2 24경기 4득점 2도움, FA컵 3경기 1도움을 기록했다.

2.4.6. 2021 시즌

팀과 함께 다시 K리그1으로 복귀했고, 두 시즌 연속 주장으로 선임됐다.

그러나, 3월 김천 상무 FC가 하반기 신병 선발을 없앨 것이라는 루머가 돌아 급하게 상무에 지원하며 올 시즌 팀을 떠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상무가 하반기에 신병 모집할 예정으로 알려져 지원을 철회해 4월 발표된 1차 합격자 명단에 누락됐다.

이창민은 리그 13라운드 전북 현대 모터스 원정에서 전반 추가시간에 골키퍼를 맞고 튀어나와 정우재에게 선제골을 기록하게 도운 중거리 슈팅을 만들어냈다. 다만 송범근 골키퍼의 키핑미스때문에 어시스트로 기록되진 않았다.

리그 14라운드 수원 FC 전에서는 팀이 0:3으로 끌려가던 도중 후반 추가시간에 극적인 추격골을 넣어 영패를 면하는데 기여했다.

리그 21라운드 강원 FC 전에서 후반 40분까지 두 골 차이로 앞서던 팀이 후반 막판 5분 동안 두 골을 내주며 충격의 무승부를 기록하다. 최근 9경기 연속 무승의 늪에 빠졌으며, 최하위 광주 FC와 승점이 단 5점밖에 차이나지 않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경기가 끝난 직후 주장직을 내려놓게 됐다.

8월 29일의 리그 28라운드 FC 서울 전에서는 제르소가 좌측면에서 넘겨준 공을 한 번 트래핑 이후 그대로 강력한 중거리 슈팅으로 마무리했고, 이것이 먼 쪽 포스트에 빨랫줄같이 빠져들어가며 선제골을 만들었고 이창민의 이 득점 한 방으로 제주는 1:0 승리했다.

리그 29라운드 인천 유나이티드 원정에서는 1:1로 비기고 있던 후반 추가시간 4분에 수비수 6명을 뚫고 지나가는 강력한 슈팅이 극장골로 연결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7월까지는 팀과 함께 부진에 빠지며 주장직을 내려놓는 등 여러 부침을 겪었지만, 주장직을 내려놓은 후 8월부터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고 있으며 팀도 10월까지 단 2패만을 기록하는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32라운드 기준으로 5위에 올려놓으며 사실상의 파이널 A 진출을 유력하게 했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9월 EA 이달의 선수상 후보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다.

10월 20일 업로드된 유튜버 볼만찬 기자들의 시즌 MVP와 베스트 11을 꼽는 영상에서 양 기자가 뽑은 시즌 베스트 11 미드필더 부문과 MVP 후보 3인에 모두 포함되는 등, 경기장 안팎으로 기량이 만개했음을 인정 받는 분위기이다. 입대 직전 시즌을 커리어 하이 시즌으로 만들고 있다.


10월 31일의 파이널 라운드 첫 경기이자 리그 34라운드 대구 FC 전에서는 36분에 이창근의 골킥부터 시작해 제르소-정우재-조성준으로 이어지는 빠른 역습과정에서 마지막에 공을 받아 박스 안 1:1 찬스에서 간결한 슈팅으로 골을 성공시키며 팀의 0-5 대승에 기여했다. 주중 김천 상무 지원 체력 검사 도중 햄스트링 부상을 당해 35라운드 수원 삼성 블루윙즈 원정 경기에서 결장했다. 그러나, 부상 정도가 심해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다.

2021시즌의 성적을 인정받아 2021 K리그1 베스트 11 MF 부문 후보 중 1명으로 선정되었다. 2021시즌 제주에서의 기록은 리그와 FA컵을 포함해 도합 35경기 출전 4골 2도움.

12월 7일, K리그 1 대상 시상식에서 시즌 베스트 11에 선정되지 못하며 아쉬움을 삼켰다. 또한, 같은 날 발표된 김천 상무 FC 3기 최종 합격 명단에 들지 못했다. 상무 테스트 중 당한 부상으로 결국 최종 탈락한 듯 보인다. 따라서, 내년에 제주에 잔류를 하던지 아니면 공익으로 가야 할 지도 모른다. 여러모로 불행한 날이 됐다.

시즌이 끝나고 여러썰에 의하면 사회복무요원으로 K4리그팀으로 이적할 가능성이 높다고한다.

2022년 1월 5일 스포츠조선 볼만찬기자들에 의하면 이번시즌[9] 끝나고 군에 입대한다고 한다. 병무청에서도 이야기가 나오면서 사실상 2022시즌 제주는 K리그1최고 미드필더들을 보유하게 되었다.

2.4.7. 2022 시즌

2021시즌이 끝나고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를 해야했으나 병무청에서 1년 더 연기가 나오면서 제주는 2022시즌 이창민, 최영준, 윤빛가람으로 구성된 K리그 최고미드필더 3명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 후 계속 선발출전하며 좋은 활약을 선보이면서 12R 수원 FC와의 원정경기에서 후반전 91분 쐐기골이자 시즌 첫골을 기록하여 팀은 3 : 1 역전승하였다.

2.4.8. 2023 시즌

시즌 개막 이후인 4월이나 6월 중으로 영장이 나올 예정이며 사회복무요원으로 K4리그 거제시민축구단에서 병역을 수행하기로 했다.#

2라운드 대구전까지 모두 풀타임을 소화했다. 대구전 이후 종아리 부상을 당해 약 6주 간 결장했다.

FA컵 3라운드 창원시청 원정 경기에 선발 출전하며 복귀전을 치렀고 선제골에 관여하는 등 좋은 모습으로 다음 라운드 진출에 기여했다. 이후 리그 경기에 복귀해 구자철, 김봉수 등과 호흡을 맞추며 매경기 풀타임 소화하고 있다.

13라운드 수원 FC 원정 풀타임을 소화하며 제주 소속 리그 200경기 출전 대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2023년 6월 12일부터 사회복무요원으로 입대하게 되면서 K4리그 거제시민축구단 소속으로 뛰게 되었다. 제주로서는 당분간 이창민의 공백을 매꿔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소집해제 예정일은 2025년 3월 11일.

2.4.9. 거제시민축구단 (사회복무)

첫시즌에 등번호는 8번을 달았다.

2023 시즌에는 제주에서 겪던 종아리 부상으로 인해 많은 경기에 나서진 못했음에도 K4리그 6경기 3득점 2도움으로 자신의 클래스를 보여줬다.

3. 국가대표 경력

U-17을 시작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 왔는데, 2013년 FIFA U-20 월드컵 대표팀으로 선발되었을 때는 이창민 시프트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절대적인 입지를 자랑했다. 당시 대한민국을 8강까지 이끌고 간 주역 중 하나이며, 전 경기에 풀타임 출전하는 등 청소년 대표팀에서는 핵심 자원으로 활약하였다.

2014년 5월에는 이광종 감독이 이끄는 U-21 대표팀의 툴롱컵 명단에 포함되었는데, 이 대회에서도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벼락 같은 중거리 슛으로 득점에 성공, 1-0 승리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후로는 2015년 동아시안컵 예비 명단에 발탁된 적이 있었으나 최종 명단에는 들지 못했다.

파일:이창민(축구선수) 올림픽대표.jpg

1년 후에는 신태용호2016 리우 올림픽 최종 명단에 발탁되어 브라질 땅을 밟기도 했다.

파일:2017 동아시안컵 한국대표팀.jpg
이후 2017년 EAFF E-1 챔피언십 명단에도 승선하며 A매치 데뷔에 성공했고(15번이 이창민), 팀이 우승을 확정지으며 이창민 본인도 생애 첫 우승컵을 안을 수 있게 되었다.

2018년 3월 A매치 명단에 포함되었고, 북아일랜드전에서 후반 22분 교체 투입되어 경기를 뛰었고 폴란드전에도 후반 35분 교체 투입되어 후반 40분 본인의 장기인 멋진 중거리 슛으로 A매치 데뷔골을 넣었다. 그러나 두 경기 모두 각각 1-2, 2-3으로 아쉽게 패배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예비 명단 35인에 들기는 했지만 아쉽게 28인 명단에는 들지 못했다.[10] 최철순과 함께 많은 축구팬들이 월드컵 최종명단 미발탁에 큰 아쉬움을 나타내었다. 일각에서 평가하기로는, 이창민의 주포지션인 공격형 미드필더이재성이라는 보다 더 확실한 카드가 있고, 월드컵이라는 무대에 대한민국은 약체로써 참가하는 것이므로, 후보로써도 클래식한 공미보다는 문선민이승우에 초첨을 맞추어 빠른 역습과 역동적인 축구를 지향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태용호에서 선보인 4-4-2 혹은 4-3-3 포메이션 상으로는 전술상 이창민이 뛸만한 자리가 없는 만큼 미발탁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하지만 후술할 사건사고로 인해 다시 태극마크를 달기는 어려워 보인다. 중원사령관이라는, 현재 국가대표팀에 꼭 필요한 유형의 선수임을 감안하더라도 해당건의 심각성을 생각해보면 대표팀 재승선은 힘들 듯.

4. 기록

4.1. 리그

시즌 출전 득점 도움
2014 32 2 3
2015 21 2 2
2016 21 2 3
2017 26 5 3
2018 23 3 6
2019 32 5 1
2020 24 4 2
2021 34 4 2
2022 31 3 4
종합 246 30 23
제주 유나이티드 FC
2017 K리그 클래식 준우승
2020 K리그2 우승

4.2. AFC 챔피언스리그

시즌 출전 득점 도움
2017 8 3 1
2018 5 2 0
종합 13 5 1

4.3. 국가대표

대회명 횟수 해당시즌
EAFF E-1 풋볼 챔피언십 우승 1회 2017

연령 출전 득점
U-17 3 0
U-20 12 0
U-23 24 4
성인 7 1
종합 46 5

5. 플레이 스타일


중원의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이자, 미드필더로서의 모든 능력을 다 갖췄지만 동시에 발휘하는 빈도를 높여야 하는 선수. 모든 선수가 공수를 겸비해야 하는 현대 축구의 흐름에 잘 맞는 선수다.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를 모두 소화할 수 있고, 모든 포지션에 필요한 능력을 고루 갖추고 있다. 스피드가 빠른 편은 아니지만 무게 중심이 낮고 몸이 탄탄해 기본적인 몸싸움 능력이 좋다. 공을 몰고 다닐 수 있는 드리블, 양발에서 모두 나가는 패스 역시 강점이며, 경기를 조율하는 능력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특징적인 장점은 바로 '중거리 골의 달인'이라는 점이다. 중거리 슛 하나만 놓고 보면 가히 EPL에서도 먹힐 정도이다. 물론 당연하겠지만 이것 또한 꾸준한 훈련으로 인해 얻은 값진 결과물이다. 영상에 나온 대로 이창민은 꾸준한 개인 훈련을 통해 나날이 중거리 슛 실력을 끌어올리고 있으며, 워낙 의지가 강했던 덕분에 동료들이 그에게 축구 또라이라는 별명을 붙여줄 정도이다.

전술 지능 역시 큰 장점이다. 상황에 따라 자신이 해야 하는 플레이를 기민하게 판단한다. 다양한 능력을 겸비할 만큼 돌파를 할지, 킥을 할지, 짧은 패스로 풀어 나갈지 빠르게 판단한다. 수비 시에도 지능적인 위치 선정이 돋보인다.

이창민의 장점이 잘 발휘된 2017년 제주 유나이티드에서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3-4-1-2 포메이션은 1 자리에 있는 선수가 적절하게 수비에 가담해 주지 않을 경우 후방의 7명이 제대로 수비 조직을 갖추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이창민은 전문 공격형 미드필더의 공격력에다 뛰어난 수비 가담 능력을 동시에 보여 줬다. 이스코와 비교하는 기사가 나기도 했는데, 순식간에 수비 조직에 가담하는 성실성과 지능이 비슷하다.

단점은 모든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도저도 아닌 플레이를 하는 경기가 생긴다는 점. 본인은 자신감에 차서 의사결정이 빠르고 정확하게 이뤄지는 경기는 잘 풀리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공을 끌게 된다고 밝힌 바 있다. 컨디션이 나쁜 날에는 팀의 공격 템포를 잡아먹는 역효과를 낸다.

6. 논란 및 사건 사고

6.1. 과속, 중앙선침범 3명 교통사상사건


제주미디어 기사 네이버 기사

2018년 11월 5일 오후 8시 48분 호근동 태평로 프라이빗리조트와 삼매봉 백년초박물관 사이에서 이창민이 몰던 SUV 랜드로버와 이모(51)씨가 몰던 모닝이 충돌, 이 사고로 모닝에 함께 타고 있던 홍모(68)씨가 크게 다쳐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으며 랜드로버 차량에는 이창민 외에도 1명이 더 타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창민은 가벼운 부상을 입고 병원에 이송되었다.

사건 발생 초기, 소속팀인 제주 유나이티드 측은 국내 모 언론과의 통화에서 "대외협력업무 담당자가 출장 중이어서 현재로서는 어떤 답도 줄 수 없다"고 밝혔다.

경찰은 외돌개 입구에서 서귀포여고 방면으로 향하던 이창민 선수의 차량이 커브를 도는 과정에서 중앙선을 침범하며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이창민이 사고를 낸 구체적 경위를 조사하고자 블랙박스 영상을 조사할 예정이며, 이와 함께 현재 병원 치료중인 이창민이 퇴원하면 입건해 수사를 벌인다는 방침이다. 다만 본인 신분과 사는 곳이 확실하기 때문에 현재 입건은 되지 않은 상황으로 경찰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소속팀 해명에 의하면, "본인이 직접 경찰에 신고한 뒤, 곧바로 음주운전 검사를 받았지만 음주를 하지 않았음이 밝혀졌으며, 실제로 이창민은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신 뒤 다시 숙소로 들어가는 중이었다"고 밝혔다. 따라서 현재까지 나온 사고 원인을 종합해보면, 음주운전은 아니지만 이창민 선수의 차가 중앙선을 침범해서 이런 사고가 일어난 것은 맞는 것으로 보이며, 사고 또한 숙소로 들어가는 도중에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기사에 따르면 사고가 있었던 서귀포시 태평로 해당 구간이 실제로 시야확보가 어려워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는 구역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한다. 현지인들의 말에 따르면, 이 구간이 좌회전 커브 시 사고 발생 빈도가 높아 운전 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지역이지만, 관광객들이나 외지인들은 잘 몰라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는 것으로 전해졌다고 한다.이창민, ‘고의’없었다지만...안전의식 개선부터 시켜야[11]

따라서 일단 경찰은 사고를 낸 원인을 이창민의 단순 운전미숙인 것으로 보고 있으며, 어두운 길목에서 큰 커브길을 돌다 일어난 사고로 파악하였다. 다만 본인 과실로 인한 사망사고가 일어남으로 인해 "이창민의 운전미숙은 순식간에 ‘실수’가 아닌, ‘범죄’로 남게 됐다"는 기사도 나옴에 따라, 국대 및 소속팀 퇴출 가능성까지 제기될 만큼 앞으로의 선수 생활에 있어서도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사건 몇 달이 넘도록 추가적인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유가족들이 이창민 선수의 진심이 보여서 합의해줬고 미래가 밝은 선수이니 잘못을 딛고 일어서길 바란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한다. 하지만 20km 이상의 과속과 중앙선 침범은 음주운전과 함께 대표적인 12대 중과실로 꼽히는 중범죄들이다. 즉 사망사고가 아니고 상대가 단순히 일주일 안에 낫는 찰과상만 입었더라도 공소권이 있으며, 반의사불벌죄가 아니므로 합의해도 양형에만 영향이 있을 뿐 유죄 인정 시 처벌은 받는다. 어차피 본 과실을 저지른 후 사고까지 냈으면 끝이라는 소리.

K리그 개막 미디어데이에 참여한 조성환 감독이 많이 반성하고 있으며 차량도 처분했고, 유족도 이창민의 진심을 보아 합의를 했다는 근황을 알렸다.#[12]

하지만 2019년 4월 25일 사고 당시 시속 30km 제한 구간에서 100km대로 과속운전하였다는 것이 뒤늦게 드러났다. 이로 인해 검찰은 과속, 중앙선 침범 등의 교통사고특례법위반 혐의를 적용, 이창민을 불구속 기소 처리한 뒤 재판으로 넘겼다. 이 사실이 보도되자 여론은 급격히 악화된 상황이다.[13]

2019년 8월 8일 제주지법은 교통사고특례법 위반(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창민에게 금고형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창민 본인도 항소를 하지 않아서 형이 확정되었다. 이로서 완전한 흑역사 확정. 기사 재판부는 “피고인이 제한속도를 초과하고 중앙선을 침범해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하였으며, “다만 초범이고 피해자들과 합의한 점을 참작했다”고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물론 2021년에 형이 실효되지만 공인 신분으로 사고를 친 탓에 실효의 의미가 없는 상황.

이에 대해 대부분의 팬들은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은 물론 비난을 크게 하고 있는 상황이다.[14][15]

구단 측도 방출이나 출장 정지 등의 징계를 내리지 않고 제식구 감싸기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그대로 팀에서 뛰게 했다는 점에서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6.1.1. 집행유예 기간 등록 논란

2023년에 병역 문제로 석현준이 귀국 후 K4리그전주시민축구단에 입단하는 듯 했으나, 집행유예를 받은 선수는 KFA 산하 리그에 등록이 불가능하다는 규정으로 인해 등록했다가 취소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인해 축구팬들 사이에서 새로운 의문점이 생기는데, 저런 규정이 있다면 집행유예를 받은 이창민은 어떻게 계속해서 경기를 뛴 것이냐는 것, 그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다가 석현준으로 인해 행정 체계에서 아마추어 수준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 약 2년이 지나서야 밝혀진 것이다. 만약 석현준으로 인해 저 규정이 주목되지 않았다면 어쩌면 영원히 밝혀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후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제주는 이 문제로 연맹에 문의를 하긴 했는데, 연맹에서 문제 없다는 대답을 받았다는 듯, 이게 사실이면 연맹이 기본적인 규정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아마추어 행정의 극치를 보여주는 사건이 따로 없는 것이다. 결국 제주는 의도야 어쨌든 무려 약 2년간 부정행위를 저지른 꼴이 되었고, 워낙 기간이 길어 이걸 전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도 애매한 상황이다.

당장 이들은 K리그2 우승을 차지해 21년에 K리그1에 승격한 팀인지라, 최악의 경우 K리그2 우승 자격 박탈과 징계성 강등까지 당할 수 있는 상황.[16]사망 사고를 일으키고 아무 문제없이 선수 생활을 이어간다는 점에 충격을 받은 네티즌들도 꽤 많은 편이다.[17]

공식적으로는 어필시효 만료라서 기록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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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여담



[1] 2006년에 초등학교 6학년이라고 되어 있고, 고등학교를 2010년에 입학했다는 내용이 있는데다 중앙대 13학번이다. 빠른생일 적용은 하지 않은 것으로 추측된다.[2] 출처[3] 공격형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도 가능하다.[4] 경산부림초에서 전학[5] 다만 감독이 안 쓰겠다고 임대 보낸 쌩 신인의 선수가 자기 맘대로 하기 어렵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창민 입장에서도 정 붙이긴 어려웠을 것이다.[6] 다른 기사에서는 이창민이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해외에서 모험을 하는 것보다는 국내에서 안정적으로 출전하는 쪽을 택해 이적이 무산됐다는 내용을 개진하기도 했다.[7] 팀에 새로 막 들어온 임상협은 딱히 보여준 것 없이 후반 초반에 교체 아웃됐고, 윤일록은 무리하게 단독 드리블을 수차례 시도하다가 빼앗기기 일쑤였다. 교체 투입된 마그노와 이동수도 팀의 반전을 이끌어 줄 기대와는 달리 마땅한 임팩트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특히나 가장 부진했던 선수는 이적한지 얼마안됐고 친정팀을 상대한 골키퍼 오승훈이었는데, 물론 수비진의 실책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5실점이나 나왔다는 점에서 골키퍼도 책임을 완전히 피하기는 어려웠다.[8] 다만 단순 경고 누적인지는 알 수 없다. 해설진도 볼을 뺏긴 이후의 보복성 태클로 판단했을 정도였고, 이미 첫 태클로 경고성 행위를 한 이후에 백태클을 했기 때문에 경고누적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다이렉트 퇴장이 유력했다.[9] 2022시즌[10] 35인 - 28인 - 23인 순으로 거른다.[11] 운전자들의 안전의식 개선을 요구하는 기사다. 기사에 의하면 중앙선 침범 단속 건수 및 교통사고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고 통계로 나와 있다.[12] 피해 유가족들을 직접 찾아가서 무릎까지 꿇으며 반성했다고 한다.[13] 음주운전이 아니라고 밝혀졌기 때문에 맨정신으로 100km를 밟았다는 뜻이 되는것이다.[14] FC 서울전의 경우 수호신에서 "살인자"라고 야유를 날렸다. 하지만 훗날 FC서울 선수중에서도 비슷한 사건을 일으킨 선수가 탄생하고 말았다.[15] 일부 네티즌들은 이 사건 때문에 이창민을 ‘부웅끼익쾅신’이나 브레이크조차 밟지 않았으니 ‘부웅쾅신’ 등의 멸칭으로 부르기도 한다.[16] 또한 20시즌에 K리그2에서 뛴 팀들도 피해를 본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이창민이 그해 리그 베스트 일레븐까지 뽑힐 정도로 맹활약했는데도 아무 문제 없던 것을 감안하면 규정을 몰랐다는 말은 어불성설에 불과하다는 말도 있지만, 상대 팀 입장에선 핵심 미드필더가 부정선수로 뛰고 있는데 문제를 안 삼을 이유가 없으므로 저 의견이 어불성설에 더 가깝다. 당시 코로나 때문에 리그가 중단되네 마네 하는 시점이었던 것은 이해되긴 하지만, 규정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며 이는 핑계가 될 수 없다.[17] 살인 사건이라고 잘못 쓰는 사람들이 있는데, 살인이란 고의 혹은 미필적 고의로 사람을 죽이는 것을 살인이라고 하기에 이는 살인 사건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