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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축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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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유나이티드 FC No. 13
VC
정운
鄭澐 | Chung Woon
<colbgcolor=#e1002a><colcolor=#fff> 출생 1989년 6월 30일 ([age(1989-06-30)]세)
울산광역시 중구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신체 180cm, 77kg
포지션 레프트백, 센터백[1]
주발 왼발
학력 학성초등학교 (졸업)
울산현대중학교 (졸업)
현대고등학교 (졸업)
명지대학교 (학사)
프로 입단 2012년 울산 현대
소속 울산 현대 (2012)
NK 이스트라 1961 (2013~2014)
RNK 스플리트 (2015)
제주 유나이티드 FC (2016~)
김포시민축구단 (2018~2020 / 군 복무)
등번호 13
가족 아내, 2명
병역 대한민국 육군 상근예비역 병장 만기전역[2]


[clearfix]

1. 개요

제주 유나이티드 소속의 대한민국 축구선수.

2. 선수 경력

2.1. 울산 현대

울산에서 나고 자라 울산 현대의 유스 팀인 울산현대중학교, 울산현대고등학교 출신으로 2008년 K리그 드래프트에서 우선 지명을 받고 명지대학교에 진학하였다가 2012년에 콜업되며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하지만 당시 울산은 철퇴축구 돌풍으로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한 아시아 최강 팀이었다.

명지대 시절 U리그 정상급 윙어였으나 울산에는 이근호, 마라냥, 김승용, 하피냐 등 K리그에서도 정상급 2선 스쿼드를 자랑했다. 게다가 정운이 볼 수 있는 좌측 풀백 역시 국가대표 최재수가 있었고, 최재수가 떠난 뒤에도 전문 선수가 아닌 김영삼이나 강민수가 주전으로 뛰는 등 1군에서 정운의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본인의 인터뷰에 따르면 R리그에서조차도 후반 막판에 교체로 출전할 정도의 입지였다고.

2012 시즌이 끝나고 구단으로부터 "관계를 정리하자"는 말과 함께 상호 합의 하에 계약을 해지했고, 충주 험멜 입단 테스트를 봤지만 1차에서 탈락해 모교인 명지대학교에서 훈련했다.

2.2. NK 이스트라 1961

대학교에서 운동을 하며 테스트 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고, 마침 내 친구 중 동유럽 2부리그 팀으로 테스트를 보러 다니는 친구가 있어서 그 친구한테 에이전트를 소개해줄 수 있냐고 물었고, 그렇게 크로아티아 에이전트와 접촉이 되었는데 에이전트가 가능하면 빨리 크로아티아로 들어오라고 연락을 해오면서 무작정 비행기 티켓을 끊고 크로아티아로 가게 되었고, 감독에게 좋은 인상을 보이며 바로 계약했다.

적응을 완료한 후 팀의 주전 레프트백으로 완전히 자리잡았고 2013년부터 2014년까지 이스트라에서 54경기 1골을 기록했다.

또한 크로아티아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등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활약을 인정받아 크로아티아 최고 명문으로 꼽히는 GNK 디나모 자그레브가 감독이 직접 전화를 걸어 러브콜을 보내는 등 이적이 거의 성사될 뻔 했으나, 자그레브와 이적 논의를 하며 마음이 급해지면서 부상이 완치되지도 않았는데 복귀를 해 경기를 뛰다가 또 햄스트링이 찢어지는 상황을 맞게 되면서 2013~2014 시즌 마지막 6경기를 쉬게 되면서 이적이 무산됐다고 한다.

자그레브 이외에도 크로아티아의 HNK 리예카와 이탈리아 세리에A의 아탈란타, 그리스의 파나시나이코스 등도 러브콜을 보냈는데, 문제는 소속 팀 관계자들이나 이적 논의를 했던 유럽 구단들이 한국의 징병제를 이해하지 못했고, 정운은 소속 팀 관계자들에게 “빨리 팀을 옮기고 싶다. 다른 팀에서 짧게 활약을 하고 군대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 사람들은 “전혀 문제없다. 우리가 군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고 말을 했다고 한다.[3]

정운이 설명을 해도 이해를 하지 못했고, 결국 리예카와는 이적료 논의를 하다가 협상이 끝났으며, 파나시나이코스는 구단주가 정운 에이전트에게 직접 연락을 해왔지만 이후에 갑자기 파나시나이코스가 재정 문제가 불거지며 이적이 무산됐다.

아탈란타는 정운을 영입하기 위해 공식 오퍼를 보냈으며, 아탈란타 디렉터와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눴으며, 아탈란타가 나와 5년 계약을 원했지만 정운은 “2년 정도 뛰고 군대를 가야 한다”라고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정운의 에이전트가 크로아티아 사람이다 보니 한국의 군대 문제를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했던 탓에 중간에서 조율을 완벽히 해주지 못하면서 아쉽게 계약이 성사되지는 못했다고 한다.[4]

2.3. RNK 스플리트

2015년에는 RNK 스플리트로 이적하여 21경기 출장을 기록했다. 이러한 활약들에 힘입어 크로아티아 현지에서는 정운의 귀화를 추진하여 크로아티아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하자는 의견이 쏟아져 나왔고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득점왕 출신인 다보르 슈케르 크로아티아 축구협회 회장 또한 “이런 선수가 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가 아닌지 모르겠다” 라며 의문을 표하기도 했을 정도였으나, 대한민국 국민으로 병역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정운은 귀국을 선택했다.[5]

2.4. 제주 유나이티드 FC

파일:external/t1.daumcdn.net/20160307055849056uzcs.jpg

K리그 데뷔하러 갑니다.

귀화 얘기를 뒤로 하고 정운은 병역을 수행하기 위해 2016년에 귀국, 2016년 입대한 정다훤의 공백을 메꾸려던 제주 유나이티드에 입단했다.

원래는 군 입대 전까지 최대한 외국에서 뛸 계획이었으며, 한국에서 원하는 팀이 있으면 가고 만약 그렇지 않으면 지금도 좋으니 크로아티아에 더 있다가 한국으로 가자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K리그 몇 팀에서 내게 연락이 왔고, 고민을 하다가 정운의 스타일과 제주 색깔이 맞을 것 같아 제주를 선택했다고 한다.

2.4.1. 2016 시즌

등번호 13번을 달았다.

이 시기에 슈틸리케호의 주축 왼쪽 풀백들이었던 김진수, 박주호, 윤석영 등이 대부분 부진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정운을 국가대표팀에 발탁해보자는 의견도 자주 나올 정도로 맹활약했다.

K리그 시상식에서 2016 K리그 클래식 베스트 일레븐에서 경쟁자 박원재김치우를 제치고 당당히 리그 베스트 XI 왼쪽 풀백 자리를 차지했다. 즉 K리그에 데뷔한 지 1년 만에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는 얘기인데, 철저히 후보 신세였던 울산 시절과 비교한다면 그야말로 괄목상대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울산 현대에서 1경기도 뛰지 못했던 정운에게는 사실상 제주가 K리그의 첫 시작인 셈이다. 크로아티아에서만 잘 했던 선수가 아니었음을 보여주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시즌에 임한 정운은 2016 시즌 K리그 클래식 32경기 1골 5도움을 기록하며 핵심 풀백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골과 도움은 본인이 목표로 잡았던 2골 6도움을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그에 매우 근접한 수치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기도 하다. 거기에 조성환 감독 또한 정운을 가장 꾸준한 페이스를 유지하는 선수라 평한 것으로 보아 K리그에서도 인정받는 선수로 거듭났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2.4.2. 2017 시즌

2017년에도 여전히 엄청난 활약을 보여 줬다. 5월 6일 상주 상무전에서 35m 프리킥 골과, 5월 9일 챔피언스리그 감바 오사카전에서 보여준 순간 침투 이후 트래핑, 그리고 이어진 오른발 슛 선제골로 그야말로 폼이 절정에 올랐다는걸 보여며 2년 연속으로 팀의 주전 레프트백으로 뛰었다.

맹활약을 선보이며 리그 30경기에서 1득점 3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7년 만에 리그 준우승에 기여했다.

2.4.3. 김포시민축구단

2018년 5월 20일 상주 상무와의 원정 경기를 끝으로 6월 11일 육군훈련소에 입소, 5주 간의 기초군사훈련을 거쳐 상근예비역으로 복무를 한다고 밝혔다.[6]#

경기 감각 유지를 위해 K3리그 소속 팀인 김포시민축구단에 입단했다고 한다. 김포에서도 제주에서 달던 13번을 달았다.

2019시즌 개막전 평택시민축구단과의 경기에 선발 출전 하여 후반 추가시간에 팀의 결승골이었던 페널티킥을 얻어내는 등 좋은 활약을 펼치며 팀의 3대2 승리를 이끌었다.

2.4.4. 2020 시즌

2020년 2월 1일 전역 이후 원소속팀인 제주 유나이티드로 복귀하였다. 2월 2일 태국 치앙라이 동계 전지훈련에 합류한다. 입대 전 달았던 등번호 13번을 계속 달게 됐다.

2020시즌 23라운드 안산전에서 페널티킥으로 팀의 패배를 막는 득점을 기록했고, 24라운드 경남전에서 팀의 1위를 수성하는 헤더 결승골을 기록했다.

20시즌 출전기록은 25경기 2골 1도움. 팀의 K리그2 우승을 이끌었고, 2020 K리그2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됐다.

2.4.5. 2021 시즌

1부 리그 복귀 후 첫 시즌으로, K리그1 3라운드 포항 스틸러스 전에서 엄청난 중거리 슛으로 팀의 선제골이자 결승골을 뽑아내며 팀의 승리와 자신의 K리그1 통산 100경기 출장을 자축했다.


스리백에서 김오규, 권한진, 김경재 등과 함께 호흡을 맞췄고, 주전 왼쪽 스토퍼를 맡아 주전 왼쪽 윙백인 정우재와 좋은 호흡을 보였다. 풀백 출신으로서 오버래핑 뿐만 아니라, 왼발로 하는 빌드업도 수월한 모습을 보였고, 빠른 발로 수비진의 후방을 잘 보호했다.

2021시즌 제주에서의 기록은 리그와 FA컵을 포함해 도합 35경기 출전 1골 2도움.

2.4.6. 2022 시즌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시즌 초반부터 주전 좌측 스토퍼로 나서는 스리백의 일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5월 8일 김천과의 홈경기에서 전반 막판 크로스를 올려 주민규의 선취골을 어시스트하며 시즌 첫 번째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다.

이어진 12라운드 수원FC 원정경기에서 후반 막판 헤더 경합으로 김주공의 득점을 어시스트하며 2경기 연속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5월 25일 FC 서울과의 FA컵 4라운드 원정경기에서 주민규의 선취골을 어시스트했다. 하지만 팀의 패배를 막지 못했다.

6월 21 대구 원정에서 후반 중반 부상으로 교체 아웃됐고, 약 한 달간 결장했다.

7월 휴식기 이후 복귀했는데, 기존 주장단인 김오규최영준 대신 주장 완장을 달고 경기에 나서고 있다. 지난 시즌처럼 제주 내부에서 여름 휴식기에 주장이 변경된 것으로 확인된다.

2022시즌 제주에서의 기록은 리그와 FA컵을 포함해 도합 32경기 출전 0골 2도움.

2.4.7. 2023 시즌

시즌을 앞두고 최영준에게 주장직을 인계하며 반 년 만에 주장직에서 내려왔다. 대신, 구자철, 김오규, 김동준, 안현범과 함께 공동 부주장에 선임되며 2년 연속 주장단에 임명됐다.

3라운드까지 모든 경기에서 풀타임을 소화했다.

4라운드 FC 서울와의 홈경기에서 전반 30분 경 나상호와 경합 도중 햄스트링에 이상이 생겨 부상으로 교체 아웃됐다. 이후 팀은 동점골까지 잘따라갔지만 후반전 95분 역전골을 내주며 2 : 1 역전패하였다.

10라운드 대전 하나 시티즌과의 원정경기에서 33분 세트피스 때 헤이스의 크로스를 머리로 집어넣어 팀의 두번째 골을 만들어내며 팀의 3 : 0 승리에 기여했다.

여름에 2016년 제주 입단 동기들인 이창민이 사회복무로, 안현범이 전북으로 이적하며 제주 선수단 중 가장 오래 팀에 머물고 있는 선수가 됐다.

35라운드 강원 FC와의 원정경기에서 후반전 97분 극장동점골을 만들어내며 팀의 1:1 무승부를 거두었다. 골을 넣고 엠블럼 세레머니를 하며 민심이 폭주했다 어떤 분과 다르게 레전드 확정이다

2.4.8. 2024 시즌


시즌 초반 제주 구단 인스타와 언팔 사건이 있어 이적설이 터지기도 했으나 이는 단순 해프닝으로 일단락됐다. 이와 별개로, 시즌 초반 부상으로 인해 출전하지 못하고 있다.

9라운드 울산 HD FC 원정경기에서 왼쪽 풀백으로 풀타임을 소화하며 복귀전을 치렀고 이후 꾸준히 선발 출전하고 있다. 포백을 사용하는 김학범 체제에선 최근 몇 년간 보던 센터백이 아닌 본 포지션인 왼쪽 풀백으로 나서고 있다.


18라운드 울산 HD FC 홈경기에서 K리그1 통산 200경기 출장을 기록했다. 200경기에 대한 인터뷰 자리에서 제주에서 은퇴하는 게 자신의 축구 인생 마지막 꿈이라고 밝히며 제주 팬들에게 감동을 안겨줬다. #

24라운드 강원 FC 원정경기에서 이상헌의 슛이 굴절되며 자책골을 넣었다.

2024시즌 제주에서의 기록은 리그와 코리아컵을 합쳐 24경기 출전 0득점 1도움.

12월 2일 제주하고 재계약 한다는 단독보도가 나왔다. 현재 세부 조율중이라고 한다. #

12월 24일 제주 구단은 2년 재계약에 공식발표했다.

3. 플레이 스타일

공격수 출신이라는 점을 잘 살린 터프한 플레이가 특징이다. 소위 말하는 공격형 풀백으로 불리는 선수. 크로아티아에서 체격이 좋은 유럽 선수들과 자주 부딪혀온 경험 덕분인지 몸싸움을 활용한 수비 경합도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킥능력도 좋아서 정확한 왼발 크로스를 많이 올리며, 왼발 프리킥도 많이 처리한다. 위 영상은 K리그 역사상 손에 꼽을 수 있는, 역대급의 먼 거리 프리킥(35m) 득점 장면이다.

한창 제주 유나이티드가 K리그1에서 상위권에 위치해있을때, 축구팬들은 정운을 국가대표팀 왼쪽 수비수로 선발해볼만 하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많이 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국가대표팀에는 한 번도 승선하지 못했다.

4. 여담

파일:FB_IMG_1554466111364.jpg

[1] 본래 윙어였으나 프로 데뷔 후 풀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했고, 2020시즌부터는 쓰리백의 왼쪽 스토퍼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2] #[3] 실제로 10대 후반~20대 초반의 나이에 해외로 진출한 한국 국적의 스포츠 선수들이 고충이다. 징병제의 존재 자체도 변수지만 한국의 징병제도를 해외팀들이 아예 이해를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서 선수의 발목을 잡았다. 최근에는 한국 선수들의 해외진출도 이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한국이란 나라자체도 유명해지다 보니 징병제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이해를 하는 편이라고 한다.[4] 설령 에이전트가 한국의 병역을 이해했어도 조율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의 병무청은 병역을 미이행한 남성에 대한 추적에 대해서는 CIA, 인터폴을 뺨치며, 입대에 관해서는 몇몇 명확한 예외사항을 제외하고는 타협이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다.병무청을 설득할 수 있으면 적어도 그 사람한텐 설득 못 할 인물, 단체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5] 만약이란건 없다만 진짜 귀화해서 대표팀에 뽑혔으면 월드컵 토너먼트에 진출할 수도 있었다.[6] 예비군을 담당하는 일이 주 업무로서, 자대는 장기본동대 동사무소에 있는 예비군 중대라고 한다. 주로 예비군 통지서를 예비군 선배들에게 돌리고 전화 업무를 하는 등 일을 한다. 선배들이 전화를 걸어오면 예비군 훈련에 대해 설명도 해야 한다. 일과가 끝나면 저녁에는 소속팀인 김포시민축구단 선수들과 훈련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