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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2-19 03:54:31

인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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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사무소
인보리
전읍리 차리 활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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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서면
인보리
仁甫里 | Inbo-ri
<colbgcolor=#009a44><colcolor=#ffffff> 광역자치단체 울산광역시
기초자치단체 울주군
읍면 두서면
하위 행정구역 3행정리 8반
면적 9.34㎢
인구 556명[1]
인구밀도 59.53명/㎢

仁甫里

1. 개요2. 역사3. 유적지
3.1. 인보리지석묘군3.2. 285번지 집자리3.3. 기타 유적지
4. 주요 시설5. 교통
5.1. 버스

[clearfix]

1. 개요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서면에 속하는 법정리로, 두서면의 면소재지이다. 마을 이름인 '인보'는 본디 명칭인 '너부'의 차자표기로, 조선시대에 언양-경주를 왕래하다 잠깐 쉬다 가는 역로(驛路) 중 하나였던 잉포역(너부역, 仍甫驛)이 이곳에 소재했다.

지리적 형상을 살펴보자면 동서 횡방향으로 길게 뻗어 서편은 백운산 자락의 임야, 경사지이고 동편에 농경지와 규모가 있는 취락지구가 형성돼 있다. 북쪽으로 내와리전읍리, 남쪽으로 서하리, 서쪽으로 상북면 소호리, 동쪽으로 두동면 삼정리와 접한다. 내와리 방면으로 이어진 깊은 골짜기에 있는 마을을 선필마을이라 하고 다시 상선필, 중선필, 하선필로 나눈다. 면사무소가 있는 큰 마을은 본래 노동과 노서라는 두 마을로 구성돼 있었는데, 마을이 확장하면서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 한편 전읍리와 마주보고 있는 곳의 마을을 신전마을, 혹은 섶밭골이라 따로 칭한다. 섶밭골 마을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실제 주소지가 인보리라고 해도 전읍리의 인구로 집계된다. 이를 반영해 인보리에는 신전 지역을 관할하는 행정리(통)가 존재하지 않고 노동·노서·선필 3개 행정리가 있을 뿐이다.

신전마을 쪽에 두광중학교가 있고 노서마을에는 두서초등학교가 소재한다. 울주생활문화센터 등의 두서면 주요 복지시설, 편의시설도 상당수가 인보리 관내에 있다.

2. 역사

인보리는 지질적으로 활성단층인 양산단층이 지나는 구간이므로 과거 종종 큰 지진이 발생하던 곳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2025년 2월 6일 발표한 연구 자료에 의하면 BP 7만 년~5만 년에 한 차례, 그리고 BP 2만9천 년에 또 한 차례의 주요한 고지진이 양산단층의 인보리 구간에서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

역사 시대에서 인보리는 주로 역원제(驛院制)와 관련된 교통의 요지로 언급되는 곳이다. 여기서 역원이란 마치 현대의 철도역이나 버스 정거장처럼 도보나 말 등의 교통 수단을 이용하다 잠깐 쉬었다 가는 곳을 의미한다. 신라의 소지 마립간이 각 지방에 우역(郵驛)을 설치한 이래 이런 종류의 장소들은 각자의 이름이 붙어 체계적으로 관리돼 왔고, 현 인보리에 있었던 것은 '너부역', 혹은 차자하여 '잉파역'(仍巴驛) 또는 '잉포역'이라 불렀다. 잉파역에 대한 기록은 고려시대 문헌에 나타나곤 했는데, 나말여초 옛 금성 부근이 '망국의 도읍지'란 특성상 확장하지 못했음을 감안하면 신라시대에도 동일 위치에 역원이 있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실제로 삼국사기 권37 잡지6에 나타난 '태문역'(兌門驛)이 잉파역을 말하는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다만 삼국사기를 집필한 고려 인물 김부식도 태문역이 어디인지 도통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삼국에서 이름만 있고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곳"(三國有名未詳地分) 목록에 태문역을 넣어 두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조선 후기 편찬된 동문선에 고려 명종 때 문인 김극기(金克己)가 지은 시 〈잉불역(仍弗驛)〉이 실려 있는데, 곧 잉파역을 말한다. 다음은 시 내용.
기나긴 산밑에 / 悠悠山下路
말 가는 대로 가며 서늘한 날씨에 시를 읊네 / 信轡詠涼天
물에는 꺼끄러기 물고 있는 게가 있고 / 水有含芒蟹
숲속엔 잎에 가리운 매미가 없구나 / 林無翳葉蟬
시냇물 소리는 맑아서 빗소리 같고 / 溪聲清似雨
들 기운은 담담하기 연기 같구나 / 野氣淡如煙
밤 되자 외로운 주막에 들어가니 / 入夜投孤店
촌 사람 아직도 잠 안 들어 있구나 / 村夫尙未眠
그 뒤 조선시대에는 잉파역을 그대로 존치하되 '잉포역' 내지 '잉보역'(仍甫驛)이라고 했다. 당시는 외남면(두북면)이 내남면과 함께 남면에 속해 경주부에 포함되던 시절이라,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경주부 남쪽 55리에 있는 잉보역'으로 소개하고 있다.

1954년 촬영된 항공사진에 따르면 인보로와 같은 선형의 남북간 도로가 그 이전부터 길게 이어져 있어 남쪽의 언양과 북쪽 활천·봉계 방면으로 왕래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1970년대, 80년대를 거치면서 경부고속도로반구대로 같은 신작로가 마을 동쪽으로 개통되고, 2009년 경에는 선필마을로 접근할 수 있는 왕복 2차로의 선필로가 개통되었다.

3. 유적지

3.1. 인보리지석묘군

인보리 산37-7번지에 위치한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으로, 1995년 창원대학교 박물관의 지표 조사 도중 발견되었다. 울산광역시 기념물로, 문화재 지정번호 폐지 이전에는 제26호에 해당했다. 총 2기의 개석식 고인돌로 구성되나 본래 더 많았을 것으로 짐작한다.

3.2. 285번지 집자리

2002년~2004년 반구대로 확장공사를 위해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에서 발굴조사한 유적. 2013년 9월 울주군청에서 두서면 행정복지센터 건립을 추진할 때 다시 발굴조사되었다.

첫 조사 때에는 집자리 2기를 포함해 소수의 청동기시대 및 삼국시대 유구가 드러났고, 두 번째 조사 때 청동기시대 유구 2기와 삼국시대 유구 14기로 확장되었다. 삼국시대 유구 중 8동은 기둥을 박아넣어 높게 지은 집의 집터인 굴립주건물지인데, 상부는 모두 유실된 상태였으나 평면 구조로 추정해 볼 때 방형 혹은 장방형의 형상이다. 특히 가장 면적이 넓은 건물지의 경우 기둥의 흔적(주혈)이 내측과 외측에 각각 4주씩, 즉 2중 구조로 되어 있는 점이 특이사항으로 언급되었다. 보고서에서는 모든 건물지 내에서 화덕 등 주거용 시설이 확인되지 않은 점을 들어 작물 창고용으로 추정하였다.

한편 두 번째 조사에서 출토된 토기는 3기의 수혈에서 출토된 총 6점으로, 그 중 역사적 양식 변화가 크고 민감했던 굽다리 접시(고배)의 형태를 참조하면 6세기 중후반의 것으로 추정 가능하다.

3.3. 기타 유적지

4. 주요 시설

5. 교통

5.1. 버스



[1] 2024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