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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애시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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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11년 6월 22일 |
전라남도 광주군 부동방면 금계리 (現 광주광역시 동구 금동) | |
사망 | 1993년 12월 14일 (향년 82세) |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2가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가족 | 아버지 장원용, 어머니 최예언 오빠 장재성 |
서훈 | 대통령표창 수훈 건국훈장 애족장 수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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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2. 생애
1911년 6월 22일 전라남도 광주군 부동방면 금계리(現 광주광역시 동구 금동)에서 아버지 장원용과 어머니 최예언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광주학생항일운동의 지도적 인물이었던 장재성의 여동생으로,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1928년 11월에 동교생 장경례, 박옥련, 남협협, 고순례(高順禮), 이금자(李錦子) 등과 함께 광주사범학교 뒷산에 모여 조국의 독립과 여성해방을 목적으로 하는 소녀회(少女會)를 조직했다. 그녀는 박계남, 박채희, 박현숙(朴賢淑), 김금연(金錦 ) 및 김귀선(金貴善) 등을 동지로 포섭하고 자신의 집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월례회를 개최했으며, 매월 1회 월례연구회를 통해 항일의식을 고취시켰다.소녀회는 1929년 6월에 결성된 독서회중앙본부와도 연락을 갖고 활동했다. 독서회중앙본부가 서회원의 친목단결 및 재정활동 지원을 위해 학생소비조합을 조직할 때 각 학교 독서회 및 학생들로부터 자본금을 출자하게 했는데 이때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는 소녀회가 주동이 되어 자본금 30원을 출자했다. 이후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항일운동이 발발하자, 장매성은 소녀회를 주도해 가두시위를 벌이다가 부상당한 학생들을 치료하고 식수를 공급했으며, 일본 경찰의 진압에 맞서기 위한 돌멩이를 운반하는 등 남학생들의 시위를 도왔다.
이러한 활동이 발각되면서 동지들과 함께 체포된 그녀는 1930년 10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집행유예 5년을 언도받았고 학교로부터 퇴학당했다. 8.15 해방 후 서울시 중구 필동2가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93년 12월 1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8년 장매성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