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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7 21:33:15

제2차 티아마트 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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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티아마트 회전
Second Battle of Tiamat · 第二次ティアマト会戦
날짜
우주력 745년, 제국력 436년 표준력 12월 4일 ~ 12월 11일
장소
티아마트 성역
교전 당사자파일:Goldenbaum-Dynasty.png 은하제국 골덴바움 왕조 파일:Goldenbaum-Dynasty.png 파일:560px-Flag_of_the_Free_Planets_Alliance.svg.png 자유행성동맹 파일:560px-Flag_of_the_Free_Planets_Alliance.svg.png
지휘관 치텐
빌헬름 폰 뮈켄베르거
하우저 폰 슈타이어마르크
카이트
칼텐보른†
슐리터†
코젤
브루스 애쉬비
알프레드 로자스
프레드릭 재스퍼
월리스 워릭
팡 추링
비토리오 디 베르티니
존 드링커 코프
킹스턴
병력 은하제국군
함정 55,000~56,000척
장병 6,300,000~6,500,000명[1]
자유행성동맹군
제4, 제5, 제8, 제9, 제11함대
함정 불명, 장병 불명,(원작),
함정 48,000척, 장병 3,636,000명,(OVA),
피해 규모 장성 60명 이상 전사 불명
결과
자유행성동맹군의 승리[2]
은하제국, 이제르론 요새 건설
730년 마피아 해체
1. 개요2. 전투 전 양군의 사정
2.1. 동맹군의 사정2.2. 제국군의 사정
3. 전개
3.1. 개전3.2. 동맹군의 위기3.3. 애쉬비의 역습3.4. 애쉬비의 죽음3.5. 종전
4. 영향
4.1. 자유행성동맹군4.2. 은하제국군
5. 그 외의 이야기
은하영웅전설 외전 <나선미궁>의 에피소드
엘 파실 전투 제2차 티아마트 회전 에코니아 포로수용소 사건
역대 티아마트 회전
제1차 티아마트 회전 제2차 티아마트 회전 제3차 티아마트 회전

1. 개요


은하영웅전설의 전투. 우주력 745년, 제국력 436년 12월 4일에 시작되어 12월 11일에 마감한 은하제국자유행성동맹 사이의 대규모 회전으로 본편 기준으로는 과거의 이야기이다. 본편에서는 "브루스 애쉬비전쟁 영웅과 그런 전투가 있었지." 정도로 간단하게 언급하는 것에 그치지만 외전 5권 <나선미궁>에서는 본격적으로 다뤄진다. 형식은 양 웬리가 애쉬비와 관련된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만난 알프레드 로자스를 통해 구술로 듣는 것이지만 작중에서는 전투 당시의 상황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기이하게도 제2차 티아마트 회전은 격렬한 양 국의 전쟁에서도 규모가 거대한 전투였으나 전투가 일어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인류 역사에 기록된 이 엄청난 전투가 벌어지게 된 원인은 단지 어떠한 전략적 목표도 없이 이미 정례화된 제국과 동맹의 무력충돌 중 하나였을 뿐이고,[3] 단지 애쉬비의 천재성과 그의 드라마틱한 생애가 맞물려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며 유명해진 것이다.

또한 전투의 승패가 갈린 이유가 후대까지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전투이기도 하다. 패배한 쪽이 무언가 큰 실책을 저지르지 않았으나 승리한 쪽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거듭한 끝에 승리를 거두었기에 훗날 군사학자들의 머리를 싸매게 하는 일도 있었다. 특히 후술할 '군무성이 눈물을 흘릴 40분'은 그냥 애쉬비가 제국군을 마구 난도질함 정도로만 결론짓고 넘어간다.

2. 전투 전 양군의 사정

2.1. 동맹군의 사정

당대 자유행성동맹군은 '730년 마피아'로 대변되는 브루스 애쉬비를 중심으로 하는 우주력 730년의 사관학교 졸업생 동기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730년 마피아가 군 중추를 장악한 이후, 동맹군은 숱한 승리를 거두어 거의 불패의 명성을 쌓아가던 중이었는데 이런 탓에 되려 다음과 같은 비판이 빗발치기도 했다.
"이것은 회전이 아니다. 730 마피아의 군사 피크닉이다. 수많은 병사를 잃고 그들이 무훈을 과시할 뿐이 아닌가. 국가 내부에 군부가 존재하고, 나아가 그 속에 사적인 집단이 있다는 것은 군벌화의 우려가 있다."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외전 5권 <나선미궁>, 김완, 이타카(2011), p.64.

물론 730년 마피아의 눈부신 공훈을 보고 열광하는 동맹 시민들이 대다수였고, 이런 비판은 주로 730년 마피아의 정계 진출을 두려워하는 동맹 정치가 사이에서 주로 생성되곤 했다. 특히 쇼맨십이 뛰어난 애쉬비가 자신의 무훈과 명성을 바탕으로 정치계로 진출한다면 정적이 될 정치가들은 여러모로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애쉬비 본인이 출전을 앞두고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하여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이 전투에 이기면 다음에는 원수지. 하지만 그러면 나에게는 더 이상 올라갈 계단이 없어지겠군. 링 파오나 유수프 토패롤의 전철을 밟고 싶진 않은데."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외전 5권 <나선미궁>, 김완, 이타카(2011), p.64.

링 파오나 유수프 토패롤은 멸망에 몰린 조국을 구원한 동맹의 전쟁영웅이었으나 이들이 루돌프 폰 골덴바움의 전철을 밟는 것을 우려한 동맹 정치가들에 의해 실권을 빼앗기고 명예직을 전전해야했다. 애쉬비는 사실상 토사구팽을 당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에서 한 발언이었겠으나 정치가들의 불안감을 조성하는 위험한 발언이기도 했다. [5]

아무튼 당시 자유행성동맹군은 최고 전성기의 위치로 유능하고 숙련된 지휘관, 실전경험이 충만하고 잘 훈련된 장병들, 강력하고 숫자도 충족된 함대를 포함하여 도저히 패배할 수가 없는 요소들이 빼곡하게 집결되어있었다.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니고 유능한 지휘관들이 모인 동맹군 수뇌부의 당시 분위기는 그야말로 최악을 달리고 있었다. 우주함대 사령장관이자 730년 마피아의 리더이던 브루스 애쉬비는 온화하게 동료들을 다독인다 보다는 다소 권위적으로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명령에 합리적인 이유가 덧붙여져 불만이 덜 했으나 제2차 티아마트 회전을 앞둔 작전 회의에서 아무런 근거도 설명도 없이 단지 내 명령을 그대로 따르라는 심히 고압적인 지시가 휘하 함대에 하달되었다.

각 함대 사령관은 중장 계급의 군부 중진이자 730년 마피아의 일원으로써 승전을 이끌어낸 유능한 인물들. 애쉬비가 일방적으로 억누르기에는 이들의 경험이나 직책, 그리고 자부심이 강했다. 결국 코프 중장이 분개하여 애쉬비와 격렬한 논쟁이 벌어진 끝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회의장을 박차고 나서는 일까지 벌어진다.
"자네는 변했어, 애쉬비. 아니면 내가 사람을 보는 눈이 없었거나."

다른 동료들이 나서 코프를 설득해 회의가 다시 열리기는 성공했으나, 코프는 회의 내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애쉬비는 애쉬비대로 마치 코프가 자리에 없는 사람인 양 행동해버린다. 더구나 베르티니 중장은 출격 직전 자신이 키우던 열대어의 수족관 수온 조절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열대어들이 모두 폐사하는 일로 아내와 말다툼을 벌이고, 나중가서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으나 그때는 이미 함대가 하이네센을 떠난 이후였기에 마음이 불편해져 회의에 참석해서도 별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각 주요 지휘관들에 의해 불온한 분위기가 조성되자, 이내 휘하 장병들은 이렇게 해서 제대로 전투를 치를 수 있겠냐며 큰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특히 이 시기 제국-동맹 전쟁이 100여년 째 이어지고 있던 터라 전쟁 초기 민주공화제를 수호하겠다는 장병들의 의지나 신념이 옅어지고 있던 터라 동맹군은 전투 이전부터 상당히 흔들리고 있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2.2. 제국군의 사정

은하제국군은 총 630만 내지 650만, 함정수는 5만 5천 척에서 5만 6천 척을 동원하였다. 다만 이는 동맹군 자료에 의한 수치이므로 다소 오차가 있을 것이란 언급이 있다. 총사령관은 애쉬비보다 20년이나 연장자인 우주함대 사령장관 치텐 원수였고 그 외 제국군에서도 일급 지휘관들이 줄줄이 참여한 대규모 원정군이었다.

제국군도 동맹군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강군을 일구어냈다. 애쉬비에게 줄곧 패배하기는 했으나 제국함대 전체에 치명상을 입을 정도의 패배는 없었고 400여년에 걸쳐 일구어낸 강력한 함대와 오랜 기간 군대에 몸 담으며 반란이나 동맹군과의 전쟁으로 경험을 착착 쌓은 연륜있는 지휘관들이 자리잡음으로써 제국군도 동맹군과 비교하여 전혀 밀리지 않는 전력을 동원할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는데 애쉬비는 전투가 끝난 후에 제국군을 상대로 심각한 어그로를 끄는 묘한 버릇이 있었다는 점이고, 이 전투에 참여한 지휘관들 대부분 애쉬비에게 최소한 직간접적으로 한 번 이상 농락당한 적이 있는 인물들이란 점이었다. 당연히 어그로에 휘말린 지휘관들은 애쉬비에게 도발당한 상태였고 개인적인 복수심에 불타는 상태였다. 게다가 군무상서 켈트링 원수가 회전을 앞두고 애쉬비를 저주하며 분사했을 정도였으니 다른 장군들의 분위기는 굳이 안 봐도 비디오 수준. 특히 치텐 원수를 보좌하는 빌헬름 폰 뮈켄베르거 중장은 켈트링 원수의 임종을 지켜보며 유조까지 받은 상태라 "적도의 장수 애쉬비의 목을 베어 군무상서의 원한을 풀어드려야 한다. 결코 목숨을 아끼지 마라!"라며 병사들을 독려할 정도로 복수심에 불타고 있었다.

사실 이런 분위기는 애쉬비의 탁월한 도발 능력이 한 몫하긴 했으나 전통있는 무인 귀족측이 자리잡은 은하제국 지휘관들의 특징이기도 했다. 이런 제국군 지휘부에 짙게 깔린 타도 애쉬비 분위기에 그나마 제국군 내에서도 개념 박힌 지휘관이었던 하우저 폰 슈타이어마르크 중장은 제국군의 결함에 대해 비판했다.
『제국군의 고급장교는 전장을 개인의 무훈을 세우는 곳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아군과의 협조성이 부족하고, 병사에 대한 애정도 적다. 우려해야 한다.』

또한 그는 뮈켄베르거의 발언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마치 사전(私戰)을 선동하는 것 같지 않은가. 애쉬비라는 적도의 장수 하나만 쓰러뜨리면 그만이라니, 제국군의 권위를 의심받을 것이다."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외전 5권 <나선미궁>, 김완, 이타카(2011), p.68.

이렇다보니 총합 약 10만척에 달하는 제국군과 동맹군 모두 애쉬비 단 한 사람에게 신경이 집중된 기묘한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른바 동맹군은 "애쉬비가 무너지면 우리 모두 X망"이라는 생각, 제국군에서는 "저 X같은 애쉬비의 목을 따고 결판을 내겠다!"란 생각으로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3. 전개

3.1. 개전

우주력 745년 12월 5일 09시 50분, 양측의 일제사격으로 제2차 티아마트 회전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일제사격은 거리가 멀어 효과가 없었지만, 두 번째 일제사격부터 포격의 효과가 나타났다.

일제사격을 주고받은 브루스 애쉬비비토리오 디 베르티니의 제9함대와 존 드링커 코프의 제11함대에 전진하여 적의 중앙과 우익 사이를 돌파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 지시에 베르티니는 불안해했고 코프는 불만을 품었으나 명령을 수행했고, 약 2만 척에 달하는 동맹군 우주함정들이 돌진을 시작했다. 제국군은 육박하는 동맹군에 맞서 포격을 집중시키려 했지만 그랬다가는 동맹군 주력에 퍼부을 포화가 감소했기에 고민에 빠졌다.

코프 중장의 11함대는 대열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제국군 바로 앞까지 진출했으나 베르티니 중장의 9함대는 제국군의 포화를 뒤집어써 전진속도가 느려졌다. 그 때문에 코프는 빠르게 진격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고립되어 적의 포화를 정면으로 받게 되었다. 그러자 애쉬비 "제11함대는 모조리 술꾼,drinker,이 되고 말았군. 머리 꼭대기부터 냉수를 들이부어 취기를 깨워 줘라."라고 중얼거리며 월리스 워릭 중장의 제5함대에 11함대를 지원하라고 명령했다.

애쉬비의 지휘는 대체로 주어진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특이한 통찰력을 발휘하여 제국군의 기본 전술을 꿰뚫어보고 더 나아가 절묘한 타이밍을 포착하여 제국군의 의도를 좌절시키는 스타일이었다. 12월 5일의 전투에서도 이 능력을 발휘하여 위기를 모면한 것이었지만 사실 이는 전략가적 식견으로 보기는 어려웠는데, 실제 전장 이외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시야가 좁고 처리능력이 부족한 점이 있었다. 그리고 이것를 커버하는 것이 애쉬비의 만렙 찍은 전술적 능력이었다.

12월 6일 14시 30분, 제국군 빌헬름 폰 뮈켄베르거 중장이 기함 '쿠르마르크'를 전진시켰다가 11함대의 집중포화를 맞아 전사했다.[6] 뮈켄베르거 중장은 제2차 티아마트 회전에서 가장 먼저 전사한 장성급 장교가 되었고 뮈켄베르거 함대의 지휘체계는 붕괴했다. 그 틈을 타 11함대는 4.2광초 후퇴하여 아군과 연계를 회복했다.

그때 적극적으로 공세에 나서겠다고 마음먹은 제5함대가 공격을 시작했다. 5함대는 급속 전진하여 제국군의 왼쪽 전방으로 튀어나와 반원을 그리면서 제국군의 일각을 쳐 함렬을 분단하고자 했다. 그러나 5함대가 2시 방향으로 반원을 그리며 전진하자 하우저 폰 슈타이어마르크 중장이 지휘하는 제국군의 별동대도 마찬가지로 튀어나와 함께 원운동을 하며 8시 방향에서 5함대를 공격했다. 그래서 5함대는 후방에서 제국군 별동대의 맹공을 받았다.

이 무렵 슈타이어마르크는 전황 전체를 분석하여 동맹군 전선이 특이하다는 점을 발견하였다. 당시 제국군은 동맹군을 양분한 다음 배후를 차단하고 섬멸하려는 작전에 따라 행동하고 있었는데, 동맹군이 이를 간파하고 부대 재배치 및 이동을 통해 주력부대를 모아 전력을 굳히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에 즉시 사령부에 보고서를 작성하였고 정보가 누설되는 것을 막기 위해 연락선을 이용하여 전달하려 하였으나 이 셔틀이 격침된 아군 순양함 잔해와 충돌하는 바람에 전달되지 못했다. OVA에서는 연락 셔틀이 파괴되었다는 보고에 혀를 찬 슈타이어마르크였는데 참모가 "다른 셔틀을 계속 보낼까요?" 라고 말하자 "아니, 이제 시간도 없다. 이제와서 보내도 작전 변경하자면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 그저, 치텐 사령관이 이걸 알아차리고 대비하길 바랄 수밖에."라는 말을 한다.[7]

3.2. 동맹군의 위기

12월 7일 18시쯤 되자 동맹군 우주함대 사령부의 내부분열은 극한에 다다랐다. 코프는 작전회의에 참석해도 입을 열지 않았으며 애쉬비도 코프를 무시했고 워릭은 "우리가 무슨 바지사장이냐!"란 식의 불만을 터트렸다.

한편 애쉬비는 팡 추링 중장의 제8함대 중 함정 3,000척을 총사령부 직속으로 옮기라고 명령했는데 팡 추링은 여기서 3천 척이나 차출했다가는 우리 함대의 전선을 유지할 수 없다고 난색을 표했다. 그러자 애쉬비는 3천 척이 없으면 전군이 붕괴되는데 그럼 네가 책임 질거냐고 반박했고 팡은 책임문제는 둘째치고 왜 그런 명령을 내리는지 물었다. 그러자 애쉬비는 "설명을 안 하면 모르나? 나랑 몇 년을 알고 지냈는데!"라고 화를 냈고 팡은 굴복하여 3천 척을 총사령부로 차출했다.

내부에서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어도 동맹군은 일선에선 잘 싸우고 있었다. '행진곡' 프레드릭 재스퍼의 제4함대는 15분간의 접근전을 벌여 제국군의 밀집대형을 달군 나이프로 치즈를 자르듯이[8] 깨끗하게 잘라냈다. 이에 제국군은 돌출하는 동맹군을 좌우협공을 가하여 상황을 모면하려 하였으나 워릭이 병렬전진하여 압박하는 바람에 6광초 후퇴했다.

이 무렵 전황은 각 지역에서 아군이 이기고 있는지 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혼돈상태에서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프레드릭 재스퍼의 제4함대와 워릭의 제5함대의 연계작전으로 제국군 카이트 함대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제국군 카이트 중장은 의식불명의 중상을 입었고 부사령관 파르크비츠 소장이 전사해 지휘체계가 무너졌다. 이때 동맹군이 전면추격에 나섰다면 전황을 단숨에 결판 낼 수 있었으나 5함대가 입은 피해도 막심하여 추격을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전투는 20시간 동안 소강상태에 접어들었고 양쪽 모두 수색과 보급에 전념하였다. 다만 양쪽 모두 필사적으로 적의 위치를 탐색한 것에 비해서는 큰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이 무렵 애쉬비는 팡에게 그랬던 것처럼 각 함대에서 차출한 전력으로 혼성부대를 통합 편성한 다음 결전부대를 구성하여 새로운 주력을 내세우고 있었다.[9] 그리고 이 작업이 마무리되자 이들을 통솔하여 다시 전장으로 이동을 시작하였다. 이때 보여준 지휘솜씨는 애쉬비의 능력을 높게 평가하는 요소이며 동시에 후세의 역사가들을 아연실색케 했다.

12월 8일부터 10일까지 전투가 벌어졌으나 동맹군과 제국군 모두 누가 이기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고착상태에 빠졌다. 제국군 주력은 시계방향으로 우회하려 했고 동맹군 주력은 이를 따라가며 가장 효과적인 시점에서 급속 전진하여 측면공격을 하고자 했다. 결국 먼저 격발한 쪽은 제국군이었다.

제국군 칼텐보른 중장은 급속 전진하여 속도와 화력으로 동맹군을 무너뜨리고자 했다. 이 맹공으로 칼텐보른 함대는 동맹군의 포화를 견뎌내며 F4공점을 점거했으나 그곳에서 공세종말점에 다다랐다. 그 손간 동맹군 제4함대가 반격에 나섰고 막대한 화력을 쏟아부어 칼텐보른 중장은 기함과 함께 우주먼지로 만들었다. 그러나 슈타이어마르크 중장이 나서 제4함대의 역습을 저지했다.

제국군은 부대를 40개의 소집단으로 나누어 매우 유기적인 원호와 반전후퇴를 반복하여 동맹군의 공세로부터 피해를 받지 않고 이탈하는 듯 했다. 그러나 측면에서 8함대의 측면공격이 쇄도했다. 고속순양함의 집단돌격과 일방적인 세로 방향 공격에 제국군은 함정 2,000여척을 잃고 패주했다.

3.3. 애쉬비의 역습

16시 40분, 제국군 주력부대는 겨우 5함대와 8함대 배후로 돌아가 맹공을 퍼부었다. 이때 전력비는 거의 2대 1이었으며, 동맹군은 사력을 다해 제국군의 맹공을 막아내고 있었다. 동맹군이 밀릴 무렵 제4함대가 나타나 제국군에 측면공격을 퍼부었지만 도리어 제국군의 거센 반격으로 공중분해될 뻔했다. 제국군은 전투에서 우세를 점해갔으며 우회운동에 성공한다면 동맹군과 동맹 본국의 연결을 차단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불과 30초 뒤, 애쉬비가 이끄는 주력부대가 나타나 상황이 반전된다.

18시 10분, 브루스 애쉬비가 이끄는 동맹군 주력부대가 나타나 제국군에 역습을 가했다. 애쉬비는 제국군 왼쪽 측면을 급진하면서 도중에 방향을 바꾸고 비스듬히 제국군의 중앙을 돌파하여 단숨에 제국군을 무너뜨렸다. 제국군은 앞뒤로 협공당하는 꼴이 되어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호전된 전황에 다소 느긋해진 애쉬비는 갑자기 함흥차사가 된 베르티니의 소식을 물어보았는데, 로자스는 소장 중의 최고 선임자인 카퍼필드 제독으로부터 입전된 베르티니의 전사소식을 전달했다. 제9함대가 제국군의 집중포화를 받을 때 순양함 2척이 어떻게든 기함을 지키기 위해 총알받이를 자처했지만 오히려 군함들이 밀집한 꼴이 되었고, 베르티니는 순양함 2척의 폭발에 휘말린 기함이 터져나갈 때 전사했다. 부고를 들은 애쉬비는 "그래. 베르티니 자식이 나보다 한발 먼저 원수 자리에 올랐군."이란 발언과 함께 9함대의 후퇴와 재편성을 명령하였다.[10]

동맹군에 뜻하지 않은 1급 지휘관의 손실이 있었지만 그것을 불평할 수 없을 정도로 제국군은 그보다 더한 손실을 입고 있었다. 애쉬비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불과 40분 동안의 교전 동안 제국군은 그야말로 1급 지휘관의 떼죽음을 목격했다. 40분 동안 무려 60명의 장군이 전사하였는데 여기에는 슐리터 대장, 코젤 대장 등 역전의 명장들도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 이 전황은 군무성이 눈물을 흘릴 40분이라는 단 한 줄의 문장으로 요악될 수 있다. 제국군은 이 40분간 잃은 손실을 회복하느라 1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애쉬비의 맹공을 받은 제국군은 저항했으나 이길 수는 없었다. 제국군에서 보기 드물게 평민 출신으로 대장까지 오른 코젤 제독은 풍부한 경험에서 우러난 전술과 과감한 반격으로 단시간 동맹군의 맹공을 막았으나 12월 11일 18시 27분, 재스퍼 제독의 제4함대와 워릭 제독의 제5함대가 가혹한 연계공격을 코젤 함대에 퍼부었다. 졸지에 양면전선을 강요당한 코젤 함대는 함렬이 무너지며 처절하게 녹아내렸다. 18시 36분, 코젤 대장의 기함 '디아리움'이 동맹군의 포격에 꿰뚫려 대파당했으며 코젤 제독이 전사했다. 그로부터 2분 뒤 18시 38분 400만 km 떨어진 곳에서 슐리터 대장이 전사했다.

'디아리움'을 무력화시킨 동맹군은 적함에 육박하여 항복을 권유했다. 이때 디아리움 함교에 있던 24명 중 코젤 대장을 비롯해 10명이 사망하고 11명이 중상을 입었으며 3명이 경상을 입었다. 중상을 입은 정보주임참모 슈퇴켈 소장은 정보참모 크리스토프 폰 쾨펜힐러 대령에게 항복을 지시했다. 쾨펜힐러는 명을 받들어 동맹군에 항복하여 포로가 되었다.

3.4. 애쉬비의 죽음

12월 11일 18시 50분, 전투는 동맹군의 승리로 결판 났다. 제국군은 애쉬비가 친 함정 속에서 질서를 잃고 어떻게든 도망치기에 바빴다. 일부 함정이 반격을 가하고 있었지만 이들 모두 제대로 대항하기도 전에 동맹군의 포화에 소멸되어가고 있었다. 그나마 슈타이어마르크 중장이 질서를 유지하면서 제국군의 전선이탈을 엄호하고 있었으나 중과부적이었기에 곧 저항을 단념하고 패주하기 시작하였다. 이때가 18시 52분이었다.

애쉬비의 기함 하드럭은 이때 3척의 순양함과 6척의 구축함의 호위를 받으며 추격의 선두에 서 있었다. 고립된 제국군의 산발적인 포격이 있었지만 동맹군의 우세인 상황에서 부질없는 저항에 불과하였다. 고립된 적함이 포격을 가하자 호위하던 순양함 1척이 기함에서 약간 떨어져 포격을 가했는데, 그 순간 어디서 날아온 유탄이 전함 하드럭의 함체를 강타하였다. 12월 11일 19시 07분의 일이었다.

날아든 포탄은 전함 '하드럭'의 3개 층을 꿰뚫고 함교를 박살 냈다. 함교에 생긴 구멍으로 함교요원 앳킨스 대위와 스퍼리어 소위가 빨려나갔으며, 작전참모 히스 소령은 주변이 엉망이 된 와중에도 우뚝 서 있는 애쉬비의 모습을 목격했다. 그러나 15초 뒤 다시 폭발이 일어났으며 애쉬비는 어디선가 날아온 거대한 세라믹 파편에 베여 중상을 입었다. 히스 소령은 애쉬비가 쓰러진 직후 "흥, 요즘 전투는 여자와 마찬가지로 질이 나빠졌군."이라고 누가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그 말을 한 사람이 브루스 애쉬비인지, 이때 부상을 입고 30분 후에 죽은 작전주임참모 페르난데스 소장인지는 목소리가 너무 닮아 분간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다음에 한 말은 분명 애쉬비가 한 말이었다.
"이봐, 로자스. 미안하지만 군의관을 좀 불러주게. 이대로 상처를 내버려둔다면 사람들이 내 시커먼 속을 다 알 거 아냐."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외전 5권 <나선미궁>, 김완, 이타카(2011), p.81.
부상당한 로자스 중장이 군의관을 호출하자 군의관이 급히 뛰어왔으나 이미 애쉬비는 사망한 뒤였다. 사망 시각은 우주력 745년 12월 11일 19시 09분, 사인은 출혈성 쇼크였다.

3.5. 종전

한편 재스퍼는 자신들이 이겼음을 실감하지 못했다. 그때 애쉬비의 부고가 도착했고, 동맹군은 마치 패배자처럼 침묵을 지키면서 본국으로 철군했다. 애쉬비의 장례는 우주력 746년 1월 4일 성대한 국장으로 치러졌으며 1계급 특진하여 원수에 추서되었다. 애쉬비가 원수가 되었을 때 그의 나이는 36세. 동맹군 최연소 원수로 다곤 성역 회전을 승리를 이끈 '다곤의 영웅' 링 파오 원수와 유수프 토패롤 원수를 뛰어넘는 기록이었으며, 반세기 뒤 '불패의 마술사' 양 웬리 제독이 32세의 나이로 원수에 서임될 때까지 깨지지 않았다.

군 수뇌부는 애쉬비의 명성을 불후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가벼운 정치적 배려를 했는데, 통상 전사자는 2계급 특진이 관례임에도 베르티니는 1계급 추서에 그쳐 대장에 추서되었다. 베르티니가 원수가 된 것은 전사한 날부터 6년 뒤인 우주력 751년이었다.[11]

반면 제국군은 완패했지만 애쉬비의 전사소식에 크게 기뻐하였다. 어떤 제독은 그래도 수십만 이상 단위였을 휘하 모든 병사들에게 샴페인 축배를 돌리다가 결국 50만 제국마르크나 빚을 지기도 하였고,[12] 대신(大神) 오딘의 이름을 부르면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인물들도 있었다.

오직 슈타이어마르크만이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조의를 표하였지만 곧 동료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았고 결국 이것이 원인이 되어 출세길이 막혔다. 이후 슈타이어마르크는 계급이 상급대장에 그치면서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제국 원수 진급은 물론 제국군 3대 장관의 직책도 맡지 못했다.[13]

4. 영향

4.1. 자유행성동맹군

애쉬비의 전사와 함께 구심점이 사라진 '730년 마피아'는 완전히 해체되었다. 애쉬비와 베르티니를 제외한 다른 구성원들은 살아남았기에 동맹군에 남아 차례로 최고위직에 오르내리며 명성을 누렸으나 다시는 뭉치지 못해 '730년 마피아' 시기만큼의 압도적인 영향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대승을 거두었음에도 대(對)제국 전선에서 여전히 제국군이 먼저 침공하고 동맹군이 이에 반격을 가하는 구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4.2. 은하제국군

일명 제국 군무성이 피눈물을 흘린 40분. 동맹군이 제국군을 몰아세운 약 40여분 동안 은하제국군은 무려 60명이 넘어가는 장성들이 목숨을 잃었다. 단순 수치만으로 대략 3개 함대를 구성할 지휘관들의 '머리'가 사라져버린 셈.[14]

더구나 60명의 장성급 장교가 전사하는 와중에 이들을 보좌하던 영관급 장교나 위관급 장교들이 무사할 리는 없으니 이들까지 포함하면 제국군은 단 40분만에 수 백 혹은 수 천 단위의 장교들이 모조리 소멸했다고 보아도 좋다. 심지어 이 수치는 빌헬름 폰 뮈켄베르거 중장, 칼텐보른 중장, 파르크비츠 소장, 슈퇴켈 소장 등 40분 이전의 사상자와 전투 중 동맹군에 붙잡힌 포로들을 포함하지 않은 수치이다. 전투 전체로 보면 제국군 장교단의 피해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다.[15]

결과적으로 은하제국군은 제2차 티아마트 회전에서 참패했고, 참패도 모자라서 못해도 4개 혹은 5개 함대를 편성할 수 있는 장교단 인력을 모조리 잃어버린 셈이다. 여기에 비견될 패배는 훗날 자유행성동맹군이 제국령 침공작전암릿처 회전에서 입은 패배 정도밖에 없다.[16] 제국군은 이 40분 사이 입은 손실을 복구하는데 최소 10년의 세월을 필요로 했다.[17]

이로 인해 은하제국은 대(對)동맹 전략을 전면적으로 수정하게 된다. 등뼈가 부러진 군 지휘부를 되살리는 동안, 약화된 제국군은 1세기 전 슈테판 폰 바르트바펠 후작이 제안한 거점 건설안을 되살려 이제르론 회랑에 요새 행성을 건설함으로써 동맹 측의 제국령 침입 기도를 차단하였을 뿐만 아니라 동맹을 침공한 교두보를 확보했다. 제2차 티아마트 회전으로 말미암은 동맹과 제국의 대치는 양 웬리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이 활약하게 되는 은영전 본편에까지 이어지게 된다.

5. 그 외의 이야기

본편에서는 이미 과거의 이야기이지만 다곤 성역 회전처럼 아주 먼 과거의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에 당시 참전자들이 여럿 등장한다. 물론 당시의 주요인물들은 대부분 고인이 된 상태였지만 그 당시 10대 후반 ~ 20대 전반이었던 말단에 불과한 인물들이 다수 생존해 있다. 외전 5권 <나선미궁>의 등장인물로 한정 지을 경우 주요인물로는 그 때까지 생존해 있었던 '730년 마피아'의 마지막 생존자 알프레드 로자스 장군이 있었으며, 에코니아 포로수용소의 소장이었던 버나비 코스테아 대령[18] 수용소 근무 당시 양의 당번병으로 배속되었던 창 타오 일병이 있다. 더불어 제국군 참전자이면서 동시에 동맹군의 포로로 잡혀서 그때까지 송환을 거부하고 에코니아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어 있었던 크리스토프 폰 쾨펜힐러 대령도 있었다.

본편까지 확대하면 알렉산드르 뷰코크 원수가 당시 중사 계급을 달고 참전한 인물이다. 그는 월리스 워릭 중장의 제5함대 소속 전함 샤 압바스의 B04 포탑에서 포술담당으로 근무하고 있었으며, 그가 남긴 체험기는 동맹군 공식 전쟁사에 수록되었다.

외전 <나선미궁> 시점에서 양 웬리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이들을 합쳐서 당시 사관이었던 인물 20명 하사관 20명 병사 35명이 현재 군에 재적하고 있다고 한다.

본편에서는 프리드리히 4세, 뮈켄베르거, 메르카츠, 리히텐라데, 도슨, 시톨레, 뷰코크가 이 전투에 앞서 태어난 인물이며 특히 리히텐라데는 이 때 무려 24세였다.

쾨펜힐러 대령의 경우에는 포로수용소에서 있는 동안 각종 자료를 연구하여 마르틴 오토 폰 지크마이스터 대장과 크리스토프 폰 미켈젠 대장의 관계, 그들이 구축한 은하제국 내의 거대 스파이망, 이들과 브루스 애쉬비 간의 관계에 대한 개연성 있는 결론을 내놓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 결과를 대외적으로 발표하기 전에 유명을 달리하여 최종적인 정리작업은 양이 떠맡게 되었다. 다만 양은 이것이 쾨펜힐러의 저작물이기에 자신의 이름으로 공표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결국 이 자료들은 참고할 만한 자료로 인정되어 기록보관소에서 봉인처리되었다.


[1] 제2차 티아마트 회전은 동맹군측 기록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라서 병력 규모는 추정치다.[2] 다만 전략적으로는 은하제국군의 승리로 볼 여지도 있다. 말같잖은 얘기 같지만 어차피 대다수 제국군은 여기서 애쉬비를 쓰러뜨리는 것만이 관심사였다. 후술하듯 승리를 거둔 자유행성동맹군은 패배한 것처럼 우울한 분위기였고 반대로 패배한 제국군은 외려 승리한듯 기뻐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3] 다만 이 얼마 전에 애쉬비가 올해 안으로 제국군과 대규모 회전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걸 보면 적어도 동맹군 측에는 시기는 언제인지 몰라도 이 정도의 대규모 회전이 있을줄은 인지한 모양이다.[4] 4,5,8,9,11 함대가 참여하지만 애쉬비와 로자스가 지휘하는 함대가 하나 더 있다. 킹스턴 중장은 동맹 편제에 포함되어 있기는 하나 실제 전투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아마 후방 근거지에서 보급을 담당하거나 하이네센에 남아있었다고 추측된다.[5] 애쉬비는 본인을 포함하여 '730년 마피아'을 정치 세력으로 바꿀 생각은 없었으나, 당시 동맹 정치가 사이에는 군권을 장악하고 있는 '730년 마피아'가 언제든지 정계진출이나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장악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감돌고 있었다.[6] 당시 뮈켄베르거 중장에게는 일곱 살 난 아들인 그레고르 폰 뮈켄베르거가 있었는데, 훗날 이 아이도 역시 군인이 되어 제국군 원수가 된다. 그가 군인이 된 것은 집안내력일 수도 있지만, 아버지의 전사가 그에게 심리적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닌가 싶다.[7] 그런데 이상한 것은 OVA에서는 연락 셔틀이 파괴된 것은 5화이고 6화에 슈타이어마르크는 수뇌부 회의에 참석해서 치텐 원수와 대면하는데 이 때 보고서를 전달하거나 회의에서 안건으로 발표하는 등의 수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 원작에서는 이런 내용이 없다.[8] 실제 동맹군 전사에 기록된 문구.[9] 헌데 문제는 저 혼성부대를 편성하기 위해 각 함대 사령관들과 충돌을 벌였다. 특히 팡 추링에게는 3000척이나 뜯어갔는데 전 병력의 30%나 뜯어내려는 모습에 팡 추링은 그러면 전선을 유지할 수 없다고 반대해서 애쉬비가 겨우 설득해내어 받아냈다.[10] 허나 아이러니하게도 먼저 원수가 되는건 애쉬비였다. 본인이 전사한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 동맹에서 일부러 베르티니를 진급시키지 않았다. 원칙상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2계급 추서가 원칙이라 베르티니는 원수 추서가 확정적이었지만 애쉬비를 원수로 만들면서 일부러 베르티니는 대장으로만 추서하고 6년이 지나고서야 원수로 추서했다.[11] 시기를 보면 알겠지만 베르티니가 살아있었다면 40대이다. 명백히 꼼수인 셈.[12] 이게 얼마나 많은 액수냐면 그 사치스런 프리드리히 4세의 대공 시절 졌던 빚의 총액이 54만 제국마르크다. 아무리 프리드리히 4세가 헤펐어도 한번에 그렇게나 많은 돈을 빚지기도 어려울텐데 이 사람은 그걸 해낸거다(...) 하급 공무원이던 키르히아이스의 아버지가 4만 제국마르크가 연봉이라고 하니 우리나라 물가로 대충 맞춰자면 6억원 이상을 술값으로 날린 셈이다.[13] 후일 제3차 티아마트 회전에서 라인하르트는 이 때의 예시를 들어 뷰코크에게 축전을 보내지 않았다.[14] 작중에서 수십 년이 지난 시점에서 리하르트 폰 그림멜스하우젠 함대의 지휘부 구성이 묘사될 때, 제국군의 1개 함대는 중장 1명 / 소장 4명 / 준장 17명으로 구성되었다고 언급된다.[15] 제국군이 손실 복구에 10년 이상이 걸린 이유가 이것이다. 단순히 장성 60명'만' 몰살당했다면 그만큼 내부에서 승진을 통해 충원하면 그만이지만 두 자릿수의 장성도 모자라 서너자리의 영관, 위관까지 같이 날아가니 차세대를 이끌 인재까지 다 죽어버려 복구에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16] 사실 하나 더 있다. 바로 다곤 성역 회전. 여기서 제국군은 90%의 병력이 몰살당했는데 병사들만 골라죽였을 리 없으니 장교단의 피해 또한 극심했을 것이다.[17] 그나마 양적 회복이 이정도라는 의미일 것이다. 전시상황인 제국의 특성상 장교의 수요는 늘상 많을 수밖에 없기에 갑자기 장교들이 줄어들었다고 해서 일정한 질을 유지하기 위해 충원속도를 늦출 순 없기 때문. 즉 질적 하락을 다소 감수하더라도 양적 충원이 먼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유능한 인재단이 없지는 않았는지 6년 후 벌어진 팔란티아 회전에서 730년 마피아의 일원이자 당시 동맹군 우주함대 부사령장관인 코프를 전사시킨다.[18] 당시 프레드릭 재스퍼 휘하에 소속된 채 참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