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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4 17:08:27

조씨고아

趙氏孤兒

1. 개요2. 등장인물3. 줄거리
3.1. 재앙의 씨앗
3.1.1. 조씨(趙氏)의 리즈시절3.1.2. 불길한 조짐3.1.3. 덕 없는 군주3.1.4. 폭군은 결국 이렇게 되는 법
3.2. 비극의 꽃
3.2.1. 찜찜한 뒷처리3.2.2. 악당 등장3.2.3. 고아의 탄생3.2.4. 의리의 전설
3.3. 복수의 열매
3.3.1. 점괘의 결과3.3.2. 의리남의 마지막
4. 진짜로 있었던 이야기일까?
4.1. 지나치게 자세한 내용4.2. 사기 자체의 기록과 충돌4.3. 다른 사료의 내용과 모순
5. 미디어믹스
5.1. 연극5.2. 영화5.3. 무용극5.4. 만화5.5. 기타

1. 개요

원나라 시대의 잡극 작가인 기군상(紀君詳)이 사마천의 사기 조세가에 쓰인 조무의 일화를 재구성한 소설. 정식 명칭은 원보원조씨고아(寃報寃趙氏孤兒)이다. 작중 시대 배경은 진(晉) 경공(景公) 3년(기원전 597년)부터 17년(기원전 583년)까지이다.

2. 등장인물

3. 줄거리

3.1. 재앙의 씨앗

3.1.1. 조씨(趙氏)의 리즈시절

주인공 조무의 집안인 조씨는 그 증조부 조최가 19년 동안 춘추오패진문공(晉文公)의 방랑생활을 보필한 공 덕택에 진나라에서도 손꼽히는 권세가로써 기틀을 다져, 그의 아들 조돈의 시기에는 명실상부한 진나라 최고 실세로 자리잡게 되었다.

3.1.2. 불길한 조짐

조돈이 그의 아버지 조최의 작위를 세습한지 겨우 2년이 지났을 무렵, 진양공(晉襄公)[1]이 훙서(逝)했다. 태자 이고(夷皐)가 너무 어려 다른 이를 세우려고 하였으나[2]
太子母 日夜啼泣 頓首 謂 趙盾 曰 "先君何罪 釋其適子而更求君?"
태자 이고의 모친이 밤낮으로 통곡을 하다가 조돈을 찾아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돌아가신 선군께서 무슨 죄가 있다고 그의 적자(適子)를 버리고 다른 사람을 찾는단 말입니까?" [3]

이런 뗑깡하소연을 버티질 못하고 어린 태자를 세우니, 바로 진영공(晉靈公)[4]이다. [5]

3.1.3. 덕 없는 군주

어머니의 눈물 덕택에 즉위한 태자 이고. 뭐,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으로 할아버지 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자기 아버지 정도의 능력을 보여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런거 없다
十四年, 靈公 壯 侈 厚斂以彫牆 從臺上彈人 觀其避丸也.
영공 14년(기원전 607년) 영공이 장성하여 사치가 심하여 백성들의 고혈을 짜서 궁궐의 모든 담장에 그림을 그려 채색을 하고 다시 궁궐의 높은 대에 올라 탄궁(彈弓)으로 궁궐 밖에 난 길로 지나가는 백성들을 쏘아 맞히고는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즐겼다.이거 어디서 본 듯한 장면이다.

宰夫 胹 熊蹯 不熟 靈公 怒 殺宰夫 使婦人持其屍出棄之
또한 궁궐의 요리사가 삶은 곰발바닥이 아니 익자 영공이 성이 나서 요리사를 죽이고 아내로 하여금 그 송장을 수습해서 나가 버리게 했다.

過朝 趙盾·隨會前數諫 不聽 已又見死人手 二人前諫. 隨會先諫 不聽
(요리사의 아내가 송장을 안고) 조정을 지나다. 조돈과 수회가 여러 번에 걸쳐 영공에게 간했으나 영공은 무시했다. 그날 두 사람은 조당에 나왔다가 요리사의 아내가 들고 나가던 송장에서 튀어나온 손을 보게 되었다. 호러 두 사람이 영공의 앞으로 나아가 우선 수회가 먼저 영공에게 간했으나 영공은 듣지 않았다.[6]

3.1.4. 폭군은 결국 이렇게 되는 법

저런 막장인증을 성공리에 마친 영공, 급기야 자기 앞에서 간언하는 신하도 꼴 보기 싫었는지 좀 조용히 하라는 의미에서 자객을 보낸다.
靈公患之 使鉏麑刺趙盾
영공이 조돈을 두려워하여[7] 서예(鉏麑)를 시켜 조돈을 암살하도록 하였다.

하지만 이 서예라는 사람.
殺忠臣 棄君命 罪一也
충신을 죽이거나 군주의 명령을 어긴다면 죄를 짓는 일이다[8]

라며, 조돈의 집 앞 나무에 머리를 부딪혀 죽었다.

물론, 영공은 두번째 시도도 준비했다. 술자리에 초대해 취한 틈을 타 죽여버리려고 했으나, 요리사 시매명(示眛明)[9]이 술을 조금만 먹도록 권해, 겨우 석 잔만 마시고 일어나는 통에 병사를 부를 타이밍을 놓쳐 실패.

여기서 좌절하지 않고, 바로 맹견[10]을 풀어 끔살을 유도했으나, 앞서 나온 요리사 시매명이 맨손으로 개를 잡아버렸다.

이제야 눈치를 챈 조돈, 한마디 남긴다.
棄人用狗 雖猛何爲!
사람을 죽이려고 개를 풀어놓다니 어찌하여 이렇게 사납나!

그 사이, 영공은 조돈을 잡으려고 병사를 풀었으나, 시매명의 활약으로 목숨을 건져 달아났다.[11]

그리고 이 소식을 들은 조돈의 아우 조천(趙穿)이 막장 제후를 시해해서, 조돈은 복귀할 수 있었다.[12]

3.2. 비극의 꽃

3.2.1. 찜찜한 뒷처리

이렇듯 대사건을 겪고 복귀한 조돈.
君子 譏 盾 "爲正卿 亡不出境 反不討賊." 故 太史 書 曰 '趙盾弑其君.'
군자가[13] 조돈을 비판하니 "정경(正卿)이[14] 되어서 나라 밖으로 아니 달아나서는 돌아와 시해한 역적을 아니 처벌했다"[15] 그래서 태사(太史) 동호(董狐)가 사서에 이렇게 썼다. "조돈이 그 임금을 시해했다."[16]
이렇듯 찜찜한 뒷마무리가 조돈 사후 집안의 멸문을 불러오게 된다.

3.2.2. 악당 등장

성공 원년(기원전 606년) 조씨를 공족으로 삼다.(成公 元年 賜 趙氏 爲 公族)[17]
사기』, 「진세가(晉世家)」
경공 즉위 초에 조돈이 졸하고, 그의 아들 조삭(趙朔)이 세습하였다.[18] 이때만 해도 조씨 가문의 권세는 군주와 인척[19]관계를 맺으며 하늘 높은줄 몰랐으나

사구(司寇)[20] 도안고(屠岸賈)의 움직임으로 조씨의 권세에 비극의 꽃이 피어난다.

그가 사람들을 불러모아 말하기를
盾 雖 不知 猶爲賊首 以臣弑君 子孫在朝 何以懲罪 請誅之
조돈이 비록 (영공의 시해를) 몰랐어도 오히려 그는 역적의 수괴다. 신하로서 임금을 시해했건만 자손이 조정에 있으니 어찌 다른 죄인들을 벌 줄 수 있겠는가? 그들을 죽이자고 청한다.[21]

조씨 식객이었던 한궐(韓厥)이 변호한다.
靈公遇賊 趙盾在外. 吾 先君 以爲無罪 故不誅. 今 諸君 將誅其後 是 非先君之意.
영공이 시해될 적에 조돈은 밖에 있었습니다. 우리의 옛 임금께서 조돈이 무죄라 하여 아니 죽였습니다. 이제 제군이 바야흐로 그 후손을 죽이면 이것은 옛 임금의 뜻이 아닙니다.

하지만, 도안고는 무시한다. 일이 난감하게 되어 가고 있음에 조삭을 찾아가 몸을 피하도록 권해보지만.
子 必 不絶 趙祀 朔死不恨
당신이 반드시 조씨의 제사가 아니 끊기게 하면 삭은 죽어도 한이 없소.

한궐은 이 말을 듣고 병을 핑계로 칩거한다. 그리고, 도안고는 조씨 일문이 살던 하궁(下宮)을 공격하여 조씨를 멸문한다.[22] 그러나 임신 중이던 조삭의 아내는 성공의 누이, 즉 공주 신분이었기 때문에 차마 죽이지 못한다. 그 대신 도안고는 조삭의 아내를 자기 집안에 감금했다가 출산하면 아이를 죽일 생각을 한다.

3.2.3. 고아의 탄생

그런 학살의 와중에도 조삭의 처[23]는 난리통에서도 건강한 사내아이를 낳았고, 공주가 조씨 집안의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들은 도안고는 군사를 풀어 궁을 수색했다.

절체절명의 상황. 공주는 아이를 다리 사이에 끼고뭐?!! 기도하기를
趙宗滅乎 若号 即不滅 若無声
조씨 종족들을 멸족시키려면 네가 울고, 멸족되지 않으려면 울지 말아라!애를 협박하는 어머니의 패기

신기하게도 겁에 질린애는 울지 않았고, 당장의 위험은 넘기게 되었으나, 그런 요행이 계속 되기를 바랄 수는 없는 일 이었다. 그 때...

3.2.4. 의리의 전설

조씨 집안의 식객이었던 공손저구(公孫杵臼)와 조삭의 친구인 정영(程嬰)이 등장한다.

원래 저 두 사람은 조씨 일가가 멸문지화를 당할 때 자결하려 하였으나, 조씨의 혈육이 공주의 뱃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는 아들이면 자신들이 기르기 위하여 살아있기로 했다.[24]

정영이 공주가 아이를 출산했고, 도안고가 궁을 수색했으나 찾지 못하였음을 공손저구에게 말하자.
公孫杵臼曰 立孤與死孰難
공손저구 : 고아를 맡아 기르는 일과 지금 죽는 일 중 어느 편이 쉽다고 생각하시오?

程嬰曰 死易 立孤難耳
정영 : 죽는 것은 쉬운 일이고, 고아를 맡아 기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오.

公孫杵臼曰 趙氏先君遇子厚 子彊為其難者 吾為其易者 請先死
공손저구 : 그대는 조씨들의 선대로부터 두터운 은혜를 입었으니, 있는 힘을 다해 어려운 일을 맡아주고 나는 쉬운 일을 맡아 먼저 죽겠소.

이렇게 해서 공손저구는 화려하게 수 놓은 강보에 싸인 다른 사람의 아이[25]를 업고 산 속에 들어가 숨어있기로 하고, 정영은 군사들에게
嬰不肖, 不能立趙孤. 誰能與我千金, 吾告趙氏孤処
이 정영이 불초하여 조씨의 일점 혈육을 기를 능력이 없습니다. 내가 만일 조씨의 고아가 있는 곳을 알려준다면 누가 능히 나에게 천금을 주겠소?

그렇게, 정영이 군사들을 대동하고 공손저구가 숨은 곳으로 왔다. 그 모습을 본 공손저구는 정영에게 화내는 척을 하면서 군사들에게 애원한다.
小人哉程嬰 昔下宮之難不能死 與我謀匿趙氏孤児 今又売我 縦不能立 而忍売之乎
정영 소인배 놈아! 옛날 조씨들의 하궁(下宮)에서 변을 당할 때 같이 죽지 않고 나와 함께 모의하여 조씨의 고아를 몰래 숨겨 기르기로 해 놓고 오늘 다시 돈에 욕심이 나서 나를 팔았구나! 아무리 네가 조씨 고아를 부양할 능력이 없어서라고 하지만 어찌 네가 돈에 눈이 멀어 나를 팔아먹을 수 있단 말이냐?

天乎天乎 趙氏孤児何罪 請活之 独殺杵臼可也
하늘이여, 하늘이여! 조씨 고아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여러 장군들께 부탁하건대, 제발 어린아이만은 살려 주시고 이 저구의 목숨만 가져가시면 안 되겠습니까?

물론, 들어줄 리 만무한 일이었다. 가짜 조씨고아인 아이와 공손저구는 죽게 되었으나, 그들의 연극은 대성공하여 진짜 조씨고아는 정영이 숨겨 기르게 된다.

3.3. 복수의 열매

3.3.1. 점괘의 결과

진 경공 17년(기원전 583년) 몸에 병이 나 점을 쳐 본 결과 대업(大業)[26]의 후손[27] 이 잘못되어 하늘이 재앙을 내린 탓이라는 점괘가 나왔다.

이를 한궐(그렇다. 조삭과 약속한 바로 그 사람)에게 상의한 바
今吾君独滅趙宗, 国人哀之, 故見亀策. 唯君図之
오늘날 주공께서 조씨 종족들을 멸족시켜 국인들이 그것을 애통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인한 징조가 귀갑(龜甲)[28]과 시초(蓍草)[29] 점에 나타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공께서는 이를 헤아리십시오.

이 말을 들은 경공은 치료를 위해서 조씨 고아, 즉 조무(趙武)를 궁에 몰래 들여놓은 후, 병문안을 하러 온 귀족들을 병사들로 협박, 조무 앞에서 조씨 멸족 일을 실토하게 만들었다.
昔下宮之難 屠岸賈為之 矯以君命 并命群臣 非然 孰敢作難 微君之疾 群臣固且請立趙後 今君有命 群臣之願也
옛날 하궁의 난은 모두 도안고가 시켜서 한 일입니다. 도안고는 군주의 명이라고 사칭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난에 가담하도록 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찌 감히 우리가 난을 일으킬 수 있었겠습니까? 비록 주군께서 그 일로 해서 병이 나지 않았더라도, 저희들은 원래 조씨들의 후손을 다시 세우기 위해 주청을 드리려고 하던 참이었습니다. 오늘 주군께서 명을 내리시니, 그것은 저희들이 바라던 바입니다.우디르급 태세전환

이렇게 된 이상 역적으로 찍힌 도안고는 조씨 일문에게 했던 것과 같이 멸문의 복수를 당하고, 조씨집안의 재산은 모두 돌려받게 된다.

3.3.2. 의리남의 마지막

조무가 관례(冠禮)를 행한 후, 정영이 조무에게
昔下宮之難 皆能死 我非不能死 我思立趙氏之後 今趙武既立 為成人 复故位 我将下報趙宣孟與公孫杵臼
옛날 하궁의 난 때 나와 저구는 같이 따라 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때 죽지 않은 이유는, 조씨들의 후사를 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늘 당신이 성인이 되어 다시 조씨들의 후사를 잇고 옛날 조씨들의 작위를 찾게 되었으니, 나는 이제 지하에 가서 조선맹(趙宣孟)[30]과 공손저구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되겠습니다.

조무는 머리를 조아리면서 눈물로 만류해 보지만
武願苦筋骨以報子至死 而子忍去我死乎
조무 : 제가 이 몸을 바쳐 그대의 은혜에 보답하려고 하는데, 어찌 나를 버리고 죽으려고 하십니까?

不可 彼以我為能成事 故先我死 今我不報 是以我事為不成
정영 :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공손저구는 내가 능히 일을 맡아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보다 먼저 죽었습니다. 지금 가서 알리지 않는다면 이는 내가 일을 성공하지 못한것과 같습니다.

한 후 자살한다.

조무는 정영을 위해 상복을 입고 3년상을 치렀다.

4. 진짜로 있었던 이야기일까?

이 이야기의 실제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아래는 그 근거.

4.1. 지나치게 자세한 내용

사마천의 사기를 보면 공통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사실로서의 역사라고 보기에는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다. 위의 이야기 중에서 예를 들어 본다면, 아이를 다리 사이에 숨기고 했다는 말은 과연 누가 기록으로 남겼으며, 사기를 편찬할 때 어떻게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것이다.[31] 이런 디테일한 부분까지 태클 거는 것이 너무하다 싶으면, 조씨 집안의 멸문을 대하는 진 경공의 태도를 본다면 어떨까?

자기가 다스리는 나라의 손꼽히는 귀족집안이 군사력에 의하여 깡그리 멸족했는데도 십년 넘는 기간동안 도안고가 무단으로 군사력을 동원하였다는 것을 몰랐을까? 후에 조무 앞에서 고백하는 귀족들의 말 또한 웃기기는 마찬가지. 왕이 몰랐는데, 왕에게 주청해서 조씨 일문을 다시 세우겠다니? 이건 자청해서 자신들이 죽을 자리를 찾겠다는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다.

4.2. 사기 자체의 기록과 충돌

조씨고아와 관련된 이야기는 조세가(趙世家)와 진세가(晉世家) 양쪽 기록을 대조해보면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 조세가 같은 경우 위에 나와있는 조씨고아 이야기의 대부분이 수록되어 있는 반면, 진세가의 경우. 조씨 일문의 멸문과 그 복귀는 조씨 일문의 멸문시기인 경공 3년 기록에는 전혀 나와있지 않고, 오로지 경공 17년 기록에만 나와있다. 문제는
十七年 誅趙同 趙括 族滅之 韓厥曰 趙衰 趙盾之功豈可忘乎 柰何絶祀 乃复令趙庶子武為趙後 复與之邑
경공 17년 조동, 조괄 형제를 죽이고 조씨들 종족들을 멸했다. 한궐이 말했다. "조최, 조돈이 세운 공을 망각하고 어찌 그들의 후사를 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조씨들의 유복자인 조무(趙武)를 후계자로 삼은 후에 조씨들의 봉지를 돌려주었다.

이 기록만 놓고 보면 그냥 17년에 뜬금없이 조씨 일문을 그 유복자만 남겨두고 죽여버린 것이 된다. 뭐, 결과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그 과정도 그렇고, 시기적으로도 마치 17년에 양 사건[32]이 일어난 것 처럼 묘사되고 있어, 차라리 진세가와 조세가의 편찬자가 별개의 인물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어차피 다른 기록에 나와있으니, 굳이 중복설명이 필요 없이 간소하게 적었다고 해도, 조씨 집안의 멸문시점인 경공 3년 기록에는 초나라와 전쟁한 이야기만 길게 나와있을 뿐. 조씨의 조도 찾을 수 없다.

4.3. 다른 사료의 내용과 모순

1차 사료라고 할 수 있는 춘추좌씨전에도 조씨집안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사기의 기록이 막장드라마라면, 좌씨전의 이야기는 그냥 막장

노(魯)나라 성공(成公) 4년(기원전 587년)[33] 기사는 이런 내용으로 끝난다.
晉趙嬰通于趙莊姬
진나라의 조영[34]은 조돈의 아들 조삭의 아내인 조장희와 간통하였다.[35]

쉽게 말해, 조카며느리랑 검열삭제를 했다는 뜻이다. 물론, 이런 개 같은 상황을 부끄러워 한 그의 형제들[36]이 그를 제(齊)나라로 추방시켰는데, 추방되기 전에 말하길
我在故欒氏不作 我亡吾二昆其憂哉 且人各有能 有不能 舍我 何害
제가 있기 때문에 난씨[37]가 난을 일으키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떠나면 우리 두 형제도 우환을 당할 것이에요. 또 사람에게는 제각기 잘하는 것과 잘못하는 것이 있는 법이죠. 저를 진나라에 둔다고 해서 무슨 해가 있겠습니까.

형제들은 이 개잡놈의 말을 쌩까고 추방시켰다.

하지만, 그들은 조카며느리의 존재를 간과했다.
晉趙莊姬爲趙嬰之亡故 譖之于晉侯曰 原屛將爲亂 欒郤爲徵
진나라의 조장희는 자기와 간통하던 조영이 제나라로 달아나 버렸기 때문에 진후에게 참언하기를 "조원과 조병은 장차 난을 일으킬 것입니다. 난씨[38]와 극씨가 그것을 입증하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六月晉討趙同趙括 武從姬氏畜于公宮
그래서 6월에 진나라에서는 조동과 조괄을 토벌하였다. 나이 어린 조무는 어머니 장희를 따라서 공궁에서 길러지게 되었다.[39]

즉, 애인이 추방되어 열받은 과부의 복수극

후에 한궐의 주청으로 조씨가문의 가산은 조무가 승계하게 되는 것은 동일하지만. 그 과정이 그냥 막장

이러한 근거로 인하여 실제의 사건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5. 미디어믹스

5.1. 연극

원작과 같은 작가가 쓴 희곡 버전 <조씨고아대보구(趙氏孤兒大報仇, 조씨고아는 원수를 크게 갚다)>도 있다. 현존하는 판본은 <원간잡극삼십종본(元干雜劇三十種本)>, <원곡선본(元曲選本)>, <신준고금명극뢰강집(新䥴古今名劇酹江集)> 등 3종이 있는데 각 판본에 따라 내용과 절 수가 조금씩 차이가 난다. 그 중 원곡선본은 모두 5절(折, 극의 마디. 현대 연극의 막과 비슷한 개념)로 이루어져 있으며 곡(曲)과 백(白, 대사)이 비교적 완정(完整)해 가장 중요한 판본으로 간주되고 있다.

대표적인 중국 희곡 연구가 왕국유는 <송원희곡사(宋元戱曲史)>에서 이 극을 <두아원(竇娥寃))>과 함께 비극성이 강한 작품으로 보았으며, "세계의 대비극에 열거해도 조금도 손색이 없다"고 극찬했다. 그만큼 이 작품은 원나라 대 이후로도 전기(傳奇) <팔의기(八義記)>, 경극 <수고구고(搜孤救孤)> 로 개편되어 현대까지도 상연되고 있다.

또한 중국 작품 중 19세기 이전 유럽에 영향을 준 유일한 작품으로, 18세기 초 프랑스에서 최초로 번역되고 이후에도 여러 국가에서 번역 및 개작되어 무대에 올려졌다. 조제프 앙리 마리 드 프레마르(1666~1736)가 '중국 이야기(Description de la Chine)'라는 제목으로 프랑스어로 번역해 서방에 전파했고, 장 바티스트 뒤 알드(1674~1743)가 이를 편찬했다. 독자들의 반응이 커서 영어판, 독일어판, 러시아어판도 계속 출간되었으며, 유럽 여러 나라의 극단에서도 이 극을 개작한 연극이 공연되었다. 영국에서는 엘리자 헤이우드의 <중국 고아(The Orphan of China)>(1741)와 아서 머피(1727~1805)의 <중국 고아>(1758), 이탈리아에서는 메타스타시오(1698~1805)의 <중국 영웅(Eroe China)>(1784)과 볼테르의 <중국 고아(L'orphelin de la Chie)>(1755) 등이 있다.

수많은 개작 가운데 볼테르의 중국 고아는 18세기 프랑스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중국 문화에 대한 관심을 한층 더 고조시켰으며, 18세기 프랑스 희곡 문학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당대 유명한 작가이자 철학가인 볼테르는 이 작품을 걸작이라 칭하며 '당대 유럽의 어떤 작품보다 출중하다'고 격찬했다.

국내에서도 희곡이 번역되어 출간되었으며, 공연도 여러 차례 되었는데 가장 최근에는 국립극단에서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이란 제목으로 공연했다. 영화 버전과 줄거리가 유사하다.

5.2. 영화

천카이거가 감독해서 2010년 영화로 나왔다.
공손저구의 캐릭터가 정영의 부인에게 옮겨가고, 도안고는 정영의 부인이 데리고 있던 정영의 아기를 조씨 집안의 아이로 생각해 죽이면서 정영의 부인까지 같이 죽여버렸다.[40] 그리고 사기 조세가에는 조무의 어머니인 공주[41]가 죽었다는 말이 없는데 영화에서는 공주와 한궐이 영화 초반에 사망하면서 앞부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정영이 기르는 조씨고아가 장성할 때까지의 내용이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한다.[42]
대담하게도 정영이 조무(조씨고아)가 자기 아이인 것마냥 도안고에게 데려가 제 아이의 양부가 되어 주십사 요청한다. 도안고는 정영의 아내가 안고 있던 조씨 집안의 아이[43]를 죽이는 게 목적이었지만 정영의 아내까지 죽인 건 변명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정영이 자기 아내를 죽인 자신에게 찾아와 아이의 양부가 되어달라고 요청하는 상황이 도안고에게 꺼림칙할 법도 했지만, 도안고는 받아들이고 두 사람이 조무를 키운다. 장성한 조무가 진실[44]을 알게된 뒤 한동안 방황하다가 마음을 다잡고 한궐은 영화 초반에 죽어버렸고 왕실은 등장하지도 않고 직접 도안고에게 복수한다. 마지막엔 일생의 복수를 마친 정영이 부인을 떠올리면서 죽는 걸로 끝.

국내에선 천하영웅이라는 제목으로 2013년 개봉했는데, 영화 내용과 상관없는 제목, 국내 인지도 때문인지 초반에 죽는 판빙빙을 주인공인 것 마냥 내세운 포스터 때문에 평이 좋지 않았다.

5.3. 무용극

중국가극무극단(中國歌劇舞劇團, 中国歌剧舞剧院)에서 영화 버전의 내용으로 만든 무용극.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고, 1부는 정영이 조무를 안고 도안고를 찾아가는 장면에서 끝나고, 조무의 어린 시절을 생략한 채로 2부는 장성한 조무가 등장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국내에선 백석엔터테인먼트 주최로 2019년 5월 22일과 23일 이틀 동안 서울 양재동 더케이아트홀에서 공연.

5.4. 만화

맹꽁이 서당 등 조선 시대의 야사를 다룬 만화로 유명한 윤승운이 조씨고아를 조선 광해군 시절 계축옥사김제남 집안에서 일어난 일로 각색해서 그렸다. 위의 영화보다 훨씬 전에 나온 작품. 다만, 각색 자체를 윤승운이 직접 했다기보다는 그 이전부터 널리 알려진 이야기를 만화로 옮긴 듯.
사기 조세가에선 '다른 사람의 아이'라고만 되어있는 것을 중국드라마 '조씨고아'에서는 공손저구가 정영의 아이와 함께 죽고 정영이 조씨고아를 기르는 걸로 각색했는데, 윤승운의 만화에서는 공손저구에 해당하는 인물이 자신의 아이와 함께 죽고 정영에 해당하는 인물은 조씨고아에 해당하는 김제남의 손자를 몰래 기르는 걸로 나왔다.

5.5. 기타

18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도 조씨고아를 번안하여 '중국의 고아(L'Orphelin de la Chine)'라는 희곡 작품을 쓴 적이 있었는데, 여기에 '고려(Corée)'가 등장한다. 희곡에는 중국이 칭기즈칸의 타타르(몽골)에 의해 점령되자, 중국인 주인공들이 고려의 지원군을 기다려 중국 황자를 고려로 피신시키려 한다는 내용이 등장하는데, 작품에 실제로 고려인 역이 등장하지는 않으며 작품 정황상 칭기즈칸의 군대에 패퇴한 것으로 묘사된다. 원작에는 고려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아(원작의 배경대로 하자면 고려 대신 고조선이 있을 시기이다) 고려의 등장은 볼테르의 완전한 창작인바, 볼테르가 대체 어디서 고려에 대한 이야기를 주워듣고 작품에 썼는지는 불명.

[1] 조최와 같이 고생한 진문공의 아들.[2] 조돈이 조최를 대신하여 나라의 정사를 맡은지 두 해에 진양공이 졸했는데 태자 이고가 어려서 돈은 나라에 어려움이 많으리라 여겨 양공의 아우 옹을 세우고자 했는데 옹은 그때 진나라에 있어서 사절로 하여금 그를 맞이하려고 하였다.(趙盾 代成季 任國政 二年而 晉襄公卒 太子 夷皐 年少 盾爲國多難 欲立 襄公 弟 雍 雍 時 在秦 使使迎之) 『사기』, 「진세가(晉世家)」[3]사기』, 「조세가(趙世家)」[4] 시법 항목에 나와있다시피 령(靈)은 나라를 개막장으로 만든 놈에게 주는 폄시(貶諡)다.[5] 사기 진세가(晉世家)의 기록은 더 자세하다.
태자의 어미 목영이 밤낮으로 태자를 안고 조정에서 울며 외쳤다. "선군께서는 무슨 죄냐? 긔 후계자는 또 무슨 죄냐? 적자를 버리고 밖에서 임금을 구하면 바야흐로 이를 어떻게 하려는 거냐?" 조정을 나와 (세자를) 안고서 조돈이 머무르는 바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기를 "선군께서 이 아들을 받들면서 아들을 경에게 맡기면서 말씀하시기를 '이 아들이 재능이 있으면 내가 그 감사를 받으리오, 재능이 없으면 내가 자네를 원망하겠다.'고 하였는데 군이 졸했으나 말씀은 오히려 귓가에 쟁쟁한데 그를 버리면 어떡합니까?"(太子 母 繆嬴 日夜 抱太子 以號泣於朝 曰 "先君何罪? 其嗣亦何罪? 舍適而外求君 將安置此?" 出朝 則抱以 適趙盾所 頓首 曰 "先君 奉此子 而 屬之子 曰 '此子 材 吾受其賜 不材 吾怨子.' 今 君 卒 言猶在耳 而棄之 若何?")
[6] 사기』, 「진세가(晉世家)」[7] 조세가의 이 대목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전체적으로 사마천의 조씨고아 사건에 대한 서술은 조씨 집안에 대하여 우호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으나, 이 기사는 임금이 권신(權臣)을 두려워 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확실히, 영공 즉위시 보여주었던 정치적 영향력은 이후에도 줄어들지 않았다. 『사기』, 「조세가(趙世家)」에서 영공이 즉위하고 조돈이 더욱 나라의 정사를 멋대로 했다는(靈公 旣立 趙盾 益専國政) 구절은 그가 자란 임금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신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8] 사기』, 「진세가(晉世家)」[9] 과거 그가 궁에 들어가기 전 뽕나무 아래에서 굶어죽을 뻔한 것을 조돈이 살려주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은혜를 갚은 것이다. 정작 조돈은 그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10] 그 맹견의 이름은 오(獒)라고 기록되어 있다.[11] 그 때까지 그 요리사가 자기가 밥을 준 뽕나무 아래 그 사람인 걸 몰랐다고 한다.[12] 돈의 맏아우 장군 조천이 복숭아 위안헤서 영공을 습격해서 죽이고 조돈을 맞이했다.(盾 昆弟 將軍 趙穿 襲殺 靈公 於 桃園 而 迎趙盾) 그때까지 조돈은 진나라를 안 떠났다고 한다. 동호직필이라는 고사가 이 사건에서 나왔다. 또 훙서한 곳을 보아 대비를 못하고 놀다가 시해되었을 가능성이 크다.[13] 여기서 군자란 간부로 새기면 된다.[14] 정경은 뒷날의 상서나 판서나 오늘날의 장관에 해당한다.[15] 벌주기는 커녕 조천으로 하여금 양공의 아우 흑둔(黑臀)을 주(周)나라에서 모셔오게 해서 옹립하니 그가 성공(成公)이다.[16] 여기서 유래한 고사성어가 동호직필(董狐直筆)이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역사로서 기록해야 하는 사관의 숙명을 의미한다.[17] 여기서 공족은 공족대부(公族大夫)의 줄임말로 종친을 가르치는 벼슬로 종친이 맡아야 하는데 진공(晉公)은 희성(姬姓)이고 조씨(趙氏)는 영성(嬴姓)이라 임용 자격이 없다. 권세가 있어서 이리 된 거다.[18] 확실한 몰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시기상 경공 즉위 초로 추정된다.[19] 조삭의 부인이 경공의 고모.[20] 공자노나라에서 맡은 벼슬로 뒷날의 형부상서(刑部尙書)나 형조판서에 해당한다.[21] 원래 도안고는 조천이 시해한 영공의 총신(寵臣)이었다. 경공 즉위 후 사구가 되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아 단순히 죽은 주군에 대한 복수심이 아니라, 즉위 초 왕권강화를 위한 정치적인 술책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22] 사기 조세가
不請而擅與諸将攻趙氏於下宮 殺趙朔 趙同 趙括 趙嬰斉 皆滅其族
도안고는 군주에게 주청하지도 않고 자기 멋대로 여러 종족들의 장수들과 함께 조씨들이 살던 하궁(下宮)을 공격하여 조삭(趙朔), 조동(趙同), 조괄(趙括), 조영제(趙嬰齊) 등을 포함하여 조씨 종족들을 모조리 죽였다.

주군에게 청하지도 않고 군사를 일으켰다면 반역이다. 군주의 묵인이 있었거나, 군주의 동의가 없었어도 저렇게 군대를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조씨 일문의 권세를 견제하려는 타 귀족들의 이해관계가 일치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조씨고아는 역사적 진실보다 역사를 각색한 소설에 더 가깝기에 조씨 가문을 견제하려는 타 가문들이고 뭐고는 전부 개소리고 소설의 설정구멍이다. 다만 훗날 진나라가 군주는 뒷전이고 여러 씨족들이 권력을 독점하다가 정쟁 끝에 위, 한, 조나라로 갈라진 것을 보면 기본적으로 이들의 힘이 강력하긴 했던 것으로 보인다.
[23] 장희(莊姬), 진 경공의 고모[24] 사기 조세가
朔之婦有遺腹 若幸而男 吾奉之 即女也 吾徐死耳
조삭의 부인이 유복자를 임신하고 있소. 다행히 사내아이를 낳는다면 우리가 맡아야 길러야 하오. 그렇지 않고 여아를 낳는다면 우리가 그때 가서 죽는다 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오.
[25] 우리나라에도 방영된 중국드라마 '조씨고아'와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에서는 정영의 아이로 나온다. 극적인 비장미를 돋보이기 위한 조치일 뿐, 사기 조세가에는 他人嬰児라고만 나온다.[26] 오제(五帝) 중의 한 사람인 전욱(顓頊)의 후손으로 진(秦)의 선조 중 한명이다.[27] 사기 조세가
趙氏之先, 與秦共祖
조씨의 선조는 진(秦)과 같은 조상이다.
[28] 거북의 등껍데기. 이것을 태워 갈라지는 모습을 보고 점을 쳤다. 균열(裂)이라는 말이 바로 여기에서 유래했다. 거북의 등에 있는 무늬처럼 갈라져 터졌다는 뜻.[29] 점을 칠때 사용하는 풀. 후대에는 대나무를 깎아 사용했다.[30] 조돈.[31] 물론, 이것은 사마천의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사기의 기록에는 사마천이 돌아다니면서 들은 이야기도 많이 포함되어있기에 문학적인 성격이 강하고 사실이라기엔 의심스러운 설화들이 종종 보이곤 한다.[32] 조씨 일문의 몰살과 조무의 승계.[33] 춘추는 기본적으로 노나라의 역사서이다. 당연히 노나라 군주의 재위기간이 기준이 된다.[34] 조돈의 이복형제.[35] 이때는 이미 조삭이 죽은 후이다.[36] 조원(趙原), 조병(趙屛). 조원이 조동이고 조병이 조괄이다.[37] 진나라의 귀족으로 권세를 누렸다.[38] 조영이 추방되기 전에 말한 난씨가 바로 이들이다.[39] 노나라 성공 8년(기원전 583년).[40] 조씨 집안의 아이로 위장했지만, 자기 아이이니 죽이려는 걸 필사적으로 말리는 것이 당연하다. 이로써 원전에서 정영의 친구와 자식을 죽인 원수였던 도안고는, 영화에서는 추가로 부인의 원수이기도 하다.[41] 판빙빙이 분했다.[42] 이 때문에 포스터에 나온 판빙빙을 보려고 영화관에 갔다가 판빙빙이 영화 초반에 사망하는 바람에 낚였다고 화를 낸 관객이 많았다.[43] 사실은 정영의 아이[44] 자신을 키워준 양아버지가 알고 보니 자기 집안을 멸문한 원수인 데다가, 친아버지라고 생각했던 인물도 사실은 자신을 복수의 도구에 이용하려고 키웠을 뿐이고 거기에 그 복수를 극대화하기 위해 원수의 양아들로 삼기까지 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