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계(상)
2. 회계 관련 병과
主計회계 중에서 예산관리 등을 뜻하는 옛 일본어로 카즈에(かずへ) 또는 카조에(かぞへ). 한자어 자체는 전한의 임시 벼슬에서 유래됐다. 지금도 규모가 큰 일본 기업은 경리부 내에 경리과와 주계과를 따로 놓는 회사가 많고 재무성의 예산업무를 수행하는 부서 이름도 주계국일 정도로 아직도 쓰는 단어다.
옛 일본 제국 해군에서 병과 명칭으로 썼으며, 보급(피복), 재정(경리), 행정 등을 담당했다. 상징색은 흰색이었다. 일본 육군에서도 주계란 용어가 쓰이긴 했으나, 병과명은 치중과라 썼다.
해군의 주계과 장교들은 대부분이 군항 인근 도시지역 육상근무를 하고, 육군과 달리 일본 밖을 벗어나는 일이 별로 없었다. 승함시 주 업무는 함교에서 전투일지를 작성하고 보전하는 것이었다. 대개 장교는 배가 침몰할 경우 솔선수범을 이유로 퇴함 순위가 낮다. 그러나 주계사관과 군의관만은 함에서 전투일지, 천황의 사진, 기타 중요 서류와 의료 용품을 지참하고 다른 승조원들보다 우선 퇴함할 권한이 있었다. 배를 탈 일이 적고 배를 타더라도 일이 편하며 배가 침몰하더라도 생존률이 높았으므로 인기가 있었다.
대한민국 해군에서는 주계학교를 두었으나 1960년 해군기술행정학교로 개명했다. 일본군 영향을 크게 받은 해병대에도 이 용어가 정착했다. 대한민국 해병대는 조리병을 주계병이라 불렀으나 2012년 1월부터 '조리병'으로 용어를 통일했다.
시미즈 이치로(凊水一郞)편 「초급 작전 급양 백제(初級作戰給養百題)(육군 주계단 기사발행부)(동 부서의 「육군 주계단 기사(陸軍主計団記事)」 제378호 부록으로 간행)는 교관이 경리학교의 장교교육을 위해 1941년 간행한 책이다. 이 책의 제1장 총설에는 사단규모의 부대가 작전할 때, 경리장교가 담당해야 하는 작전 급양업무 (‘작전경리근무’) 중 ‘기타’에는 “1. 주보개설, 2. 위안소 설치, 위문단 초치, 연예회개최, 3. 휼병품 (恤兵品) 보급 및 분배, 4. 상인(商人) 감시”라는 내용이 있다[1].
2.1. 해군경리학교
海軍經理學校일본 해군의 주계과 사관학교. 1874년 회계학사로 출발했으며 1945년 폐쇄됐다. 당시에 대학, 고등상업학교[2] 졸업자이거나 고등문관시험[3] 합격자들이 단기현역장교제도를 통해 많이 지원했다[4]. 일본 해군측이 고등교육을 받은 이들을 사회의 지식의 유입되여 군행정이 원활하게 될것을 기대했고, 당초 예상보다 우수한 해군장교로 활동했다는 평가가 있다. 반면, 군경험이 없는 일반인을 장교로 임관시켜, 군기의 혼란을 초래했다는 평가 역시 존재했다. 일본 해군이 이들을 엘리트 이상으로 대우해줬다는 증언이 남아있는데[5], 이로써 해군에 대한 호의를 가지게 하고, 이들이 전역하고 사회에 나왔을때, 해군의 정책과 인사에 대한 호의를 기대했고 그게 성공적이었다는 평가가 있다. 비슷하게, 대한민국 해군도 초임 장교는 해사가 아닌 OCS 출신이 대다수였고, 이들이 나중에 정치인, 교수, 고위공직자, 언론인, 문인 등이 되어 모군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는 얘기가 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총리가 이 학교를 수료하고 주계 사관으로 복무했고 종전 후 주계과 소좌로 전역했다. 그밖에 정치인 하토야마 이치로[6], 전 일본은행총재 스미타 사토시[7] 등 해군 주계사관 출신들이 전후, 사회 유력인사로 해군으로부터 받았던 우대를 기억하고 영향력을 끼쳐 현재의 해상자위대가 현재의 규모를 가지게 한 것이라 평가하고 있다.
2.2. 서브컬처
- 디아호, 성계군의 계급 제도 - 성계 시리즈.
- 하레카제/주계과 - 하이 스쿨 플릿에 등장하는 주계 담당 조직.
[1] 일본군 위안소 업자의 지위와 역할에 관한 연구 - 한국여성정책연구원.[2] 현 히토츠바시대학, 고베대학, 오사카시립대학, 요코하마국립대학 등.[3] 고위관료가 되는 한국의 행정고시와 동일[4] 당시에 단기현역장교제도로 군복무기간은 2년으로 짧은 편이었다. 다만, 전시에는 전역이 연기되고 예비역도 소집된다. 진흙탕과 같은 육군에 비하면 해군장교로 복무를 압도적으로 선호하여 우수인재들이 몰려들었다[5] 심지어 비행과 예비학생 장교의 경우에는 해군병학교 졸업생이 후순위 신분이었을 정도였다. 일본육군사관학교의 엄격한 서열주의와 비교하면 상식외의 대우이다.[6] 일본 민주당 출신의 총리를 역임했던 하토야마 유키오의 아버지[7] 대장성 관료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