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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21 08:48:13

평장사

중서시랑평장사에서 넘어옴
1. 개요2. 구성과 연혁3. 역임 인물


平章事

1. 개요

고려 중서문하성의 정2품직으로 재추에 해당한다.

2. 구성과 연혁

고려시대, 특히 성종당나라의 관제를 수용하면서 중서부, 문하부의 평장사직도 함께 들어왔다. 고려의 내사문하성은 단일 기관이었으므로 내사시랑평장사, 문하시랑평장사는 동일 기관 소속이었다. 처음에는 내사시랑평장사가 상위직이었으나 이후 문하시랑평장사가 상위직이 되었다. 문종 때 내사성을 중서성으로 개칭하면서 중서시랑평장사로 개칭하였고, 문하시랑평장사, 중서시랑평장사, 문하평장사, 중서평장사의 정원을 각 1인으로 하되 품계는 정2품으로 하였다.

엄밀히 말해 평장사가 4명으로 구성된 것은 아니었고, 정원은 들쭉날쭉해서 여러 사람이 같은 평장사직에 오르는 경우도 있었다. 문하평장사, 중서평장사는 따로 임명되지 않고 '동중서문하평장사'라고 해서 문하시랑평장사 또는 중서시랑평장사가 겸직할 수 있었다. 겸직시 명칭은 문하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 중서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였고, 약칭으로 문하시랑 동평장사, 중서시랑 동평장사라고도 하였다.

평장사는 중서문하성 내에서 수상문하시중 다음가는 아상(亞相)이었다. 재신(宰臣)으로서 각부의 판사 등을 겸직했고, 도병마사(도평의사사)와 같은 재추회의에서 국가의 중대사를 논의했다.

평장사는 고려 후기에 여러 번 개칭되는데, 1275년 충렬왕이 중서문하성을 도첨의사사로 고치면서 찬성사(첨의시랑찬성사, 첨의찬성사)로 고쳤고, 1298년 충선왕이 재상이 너무 많다며 찬성사직을 전부 폐지했다가 다시 복원하였다. 1308년부터 잠시 중호(中護)로 개칭하고 정원을 3명 둔 적도 있었다. 공민왕 때 다시 평장사로 고쳤다가, 이후 평장정사(平章政事),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등으로 개칭하였다.

조선 건국 후 의정부 찬성사로 이어졌다가 좌·우 찬성으로 바뀌었다.

3. 역임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