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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영(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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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 최준영
Choi Jun-yeong
파일:external/www.hanyang.ac.kr/people_img02.gif
출생 1967년 12월 24일 ([age(1967-12-24)]세)
전라남도 목포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75cm, 62kg
학력 한양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신문방송학 86[1] / 학사[2])
데뷔 가수 | 1991년 최영 1집
프로듀서 | 1994년 1집
취미 골프, 스크래치

1. 개요2. 생애3. 작곡 활동4. 작품 특징5. 여담6. 대표곡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작곡가.

2. 생애

중학교 3학년 때 '푸른별'이란 4인조 그룹을 결성한 것이 음악과의 첫 만남이었다. 쿨 재즈 음악을 좋아했던 그는 기타리스트와 보컬로 활동하고 작곡까지 한 대중음악의 영재였으며, 군복무 시절 군가를 작곡할 만큼 끼를 보인 그는 '웨이브'란 헤비메탈 밴드를 조직해 대학가요제, 강변가요제 등에 나갔다.

이후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21세 때인 1987년부터 서울 시내 다운타운에서 디스크 자키로 데뷔하여 활동하다가, 1991년 최영이라는 예명으로 솔로 앨범을 발매하였다. 작사가 강은경에게도 데뷔작이었던 '사랑은 쉬운 게 아닌 걸!'이 타이틀이었던 앨범. 하지만 흥행에는 완전히 실패하고 잊혀졌다. 1992년 그의 음악적인 재능에 놀란 어느 제작자가 그에게 음반을 한번 내보자는 제의를 한 덕분에 윤시내나미의 콜라보레이션 기념 음반에 '그대 떠나버리면'이라는 곡을 써 주어 작곡가로 데뷔하는 행운을 얻었다.[3] 이듬해 1993년 보컬 그룹 "자유시간" 출신의 가수 최선원의 솔로 가수 데뷔 음반에 '슬퍼지려 하기 전에'라는 팝 발라드 곡을 써 주며 본격적으로 가요계에 첫발을 내디뎠다.[4]

3. 작곡 활동

프로듀서의 개념이 생소했던 시절부터 데이비드 포스터와 같은 유명한 프로듀서가 되겠다고 다짐을 한 그는 1994년에 혼성그룹 쿨의 데뷔 앨범의 프로듀싱을 직접하며 꿈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가려 노력하게 된다. 그가 작사 작곡한 타이틀 곡 '너이길 원했던 이유'는 여느 댄스곡과는 달리 힙합 사운드에 현악기, 클래식 악기를 가미하고 클래식 음악인 아다지오를 노래 중간부에 삽입하는 새로운 시도를 펼치며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5]

이듬해 함께 고생했던 지난날의 정으로 쿨의 2집 앨범에 새로 작곡한 '작은 기다림'과 최선원에게 써 준 바 있는 팝 발라드 곡 '슬퍼지려 하기 전에'라는 곡을 댄스 스타일로 편곡해서 선사했다. 이 곡들은 쿨이 정상에 오르고 난 후 쿨의 초창기 명곡으로 다시금 관심을 얻어 재평가받았으며, 특히 '슬퍼지려 하기 전에'의 경우 2002년 DJ들이 뽑은 역대 최고의 댄스곡으로 선정되었다.

1995년 혼성그룹 룰라의 2집 '날개 잃은 천사'를 프로듀싱 하여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이듬해인 1996년 김창환과 결별한 김건모와 손을잡고 제작한 4집 '스피드'가 또 한번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그에게 '대박 제조기'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다. 이후에도 그룹 디바의 명곡인 '왜불러', 핑클의 1집 수록곡인 '루비', 채정안의 무정, 컨츄리꼬꼬의 '일심', '오!가니'를 작곡해서 히트시켰으며, 이정현, 코요태, 한스밴드의 1집, 2집을 프로듀싱해서 인기궤도에 올려놓는 등 가요계의 미다스 손으로 불리며 2000년에 서울가요대상 최고 프로듀서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얻었다. 특히 1999년 서울가요대상 신인상 수상자인 코요태, 채정안, 이정현, 이상민박근태가 프로듀싱한 샾을 제외한 모든 그룹이 다 그가 작곡한 곡으로 수상했다.

1999년부터는 예당엔터테인먼트의 레이블 개념으로 제이엔터컴(J-Enter.com)이라는 기획사를 독자적으로 설립하여 앨범 프로듀싱에만 그치지 않고 신인 가수들을 직접 육성하는 방향으로 행보를 넓히게 되어 왁스, 자두, 리쌍, 미나, 키스 등의 걸출한 신예 가수들을 발굴, 육성하여 이들을 인기 궤도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자신이 운영하던 소속사의 방침에 어긋나는 바람에[6] 3인조 여성 그룹 키스가 1년도 안 되어 공중분해된 흑역사가 있다. 다만 이와 별개로 키스의 '여자이니까'란 곡은 당시 꽤 히트를 쳤으며 지금들어도 전혀 이질감이 들지않는 수작으로 슬픈 내용의 뮤직비디오도 많이 알려져 있다. 또한 키스는 미나가 불러서 히트를 친 '전화 받어'의 원곡자다.

2000년대 중반에는 예당엔터테인먼트의 부사장으로 스카웃되어 작곡 활동보다 영화와 매니지먼트 사업쪽에 집중하는 듯하며, 2008년에는 영화 미인도를 제작하며 영화제작자이자 영화음악 연출가로 데뷔했다.

2009년~2012년에는 트로피엔터테인먼트의 대표로 알리, 안다미로의 프로듀싱을 하고 걸그룹 치치를 제작했으나 흥행에는 실패하고 2017년에는 엠퍼러 엔터테인먼트 코리아에서 그룹에이트와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를 공동제작 하기도 하였다.

4. 작품 특징

흔히 댄스곡 히트 메이커로 유명하지만, 사실 장르의 범위가 아주 넓다. 당장 임재범의 비상이나 왁스의 화장을 고치고, 쿨의 작은 기다림 처럼 감성적인 발라드 히트곡이 많다. 또한 한스밴드의 오락실, 자두의 김밥, 왁스의 지하철을 타고 등 발라드 외적인 측면에서 봐도 상당히 다양한 분위기의 곡이 존재한다.

슬퍼지려 하기전에, '실연'처럼 진지한 댄스곡부터 '일심', '오!가니'처럼 유머러스하고 가벼운 댄스곡에도 소질이 있다.

나이트 음악을 추구하던 주영훈이나 특유의 중독적인 트로트 느낌을 결합한 윤일상과 달리 대놓고 신나는 곡보다는 의외로 반주는 신나면서도 보컬과 가사는 서정적이고 차분한 경우가 많다. 특히 대표적인 히트곡인 '순정' 역시 반주가 매우 빠르고 신지의 고음이 워낙 강해서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클라이막스에서 일명 빵 터뜨리는 후렴구를 쓰기보단 오히려 다소 절제된 느낌을 통해 후렴구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편이다. 그래서 이러한 부분이 신나면서도 슬픈 묘한 감성을 불러일으킨다는 평가가 있다. 다만 이런 특징 때문에 강한 전주에 비해 보컬 부분이 밋밋하고 힘빠진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존재한다. 그래서 보컬이 매우 특이하고 강렬한 이정현의 곡의 경우 이러한 밋밋함이 잘 드러나지 않는 편이다.[7]

DJ 경력이 있어서인지 곡 중간에 종종 스크래치 사운드가 들어간다. 댄스곡에서는 샘플링 사운드가 많이 쓰인다.

초창기에는 다소 실험적인 곡 구조를 쓰기도 했다. '너 이길 원했던 이유'에서는 보컬 중간에 랩이 나오는 것이 아닌 초반부에 랩이 계속 이어지고 후반부는 계속 보컬 파트로 이루어져 있도록 구성했으며 클래식 아다지오를 삽입하기도 했다.

프로듀싱 감각도 남다르다. 다른 프로듀서는 어느정도 실력이 밖으로 드러나있는 아티스트를 원석에서 보석으로 재련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면, 그는 내적의 잠재력과 실력을 꿰뚫어보고 직접 채굴을 하고 흙을 털어내어 보석으로 만들어낸다.

5. 여담

6. 대표곡



[1] #[2] 1992년 졸업[3] 1994년 3월에서야 발매되었다. 이 노래는 훗날 2000년에 가수 '차호석'이 '내 안의 눈물'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부르게 되었는데, 오히려 이 노래가 더 잘 알려지게 되었다.[4] 이 노래 역시 쿨이 1996년에 동명의 곡으로 리메이크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5] 사실 이후 곡들에 비하면 흥행 자체는 덜하기는 했지만 가요톱10에서는 10위 권 안에 들 정도로 선전했다.[6] 당시 소속사에서 멤버들에게 연애 금지 조항을 걸었는데 멤버들이 몰래 연애를 하다 들켜서 데뷔 직후에 해체됐다고 키스 멤버들이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에서 밝혔다.[7] 어떤 측면에서는 반주가 비교적 단순하고 보컬과 후렴구가 강한 주영훈 작품과는 반대라고 볼 수 있다.[8] 원로급인 이선희에서 아이돌그룹에 락커, 심지어 '유진박'까지 끼워넣은 70여명이 참가했다.[9] 김정민, 엄정화, 조성모, 포지션, 이승환, 임창정, 룰라, 김현정, 신효범, 신승훈, 이선희, 핑클, 박지윤, H.O.T, 젝스키스, 김건모, 김종서, 김경호, 이정현, 이승철, UP[10] 최준영과 정진향 공동작사, 최준영과 임기훈 공동작곡으로 되어 있다.[11] Bandido 측에서는 최준영의 요청으로 홈페이지에 작곡자 정보를 바로잡는 선에서 표절을 인정하긴 했으나 별다른 보상없이 마무리 지었다.[A] 'Money'와 '오빠' 두 곡 모두 원곡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한국식 테크노 댄스 편곡과 오리지널 멜로디를 넣은 구간이 있다.[A] [14] 임재범과 공동 작곡.[15] 2집부터 '자두'에서 'The Jadu'로 팀명이 바뀌었다.[16] 원래는 탁재훈이 1995년에 낸 솔로 앨범에 실린 곡.[17] IMF 당시 유명가수들이 잔뜩 모여서, IMF 극복노래 비슷하게 만든 곡이다. We Are the World와 비슷한 프로젝트 곡 개념으로 보면 되고, 실제로 노래 부른 형태도 비슷하다. Now & New라는 것도 그 가수들 집단에 대한 이름.[18] 2021년 리메이크에도 참여했다.[19] 2007년 역시 통일을 기원하는 형태로 만들어진 프로젝트 곡. 관련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