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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5 20:13:01

페기 립튼

페기 립튼의 주요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역대 골든 글로브 시상식
파일:goldenglobe.png
여우주연상 - 드라마 시리즈 부문
제27회
(1970년)
제28회
(1971년)
제29회
(1972년)
린다 크리스털
(하이 차파랄)
페기 립튼
(더 모드 스쿼드)
패트리샤 닐
(홈커밍: 크리스마스 스토리)

}}}||
<colbgcolor=#424B48><colcolor=#fff> 페기 립튼
Peggy Lipton
파일:GettyImages-93673357.webp
이름 마가렛 앤 립튼
Margaret Ann Lipton
출생 1946년 8월 30일
미국 뉴욕 주 뉴욕 시
사망 2019년 5월 11일 (향년 72세)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직업 배우, 모델, 가수
활동 1964년 ~ 2017년
신체 172cm
배우자 퀸시 존스 (1972년 결혼 / 1990년 이혼)
자녀 장녀 키다다 존스
차녀 라시다 존스

1. 개요2. 생애
2.1. 데뷔부터 은퇴까지2.2. 연예계 복귀2.3. 사망
3. 출연 작품
3.1. TV3.2. 영화
4. 여담5. 관련 문서6.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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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Peggy-Lipton-dead-at-72.jpg

미국배우, 모델, 가수.

2. 생애

2.1. 데뷔부터 은퇴까지

페기 립튼은 1946년 8월 30일에 뉴욕시에서 태어났다. 집안은 러시아계 유대인 혈통의 부유한 중산층 가정이었으며, 아버지는 하버드 대학교 출신의 대기업 소속 변호사였고, 어머니는 아일랜드 출신의 예술가였다. 부모의 양육 방식은 굉장히 엄격했다고 한다. 그리고 2004년 립튼은 공동으로 집필한 회고록 〈Breathing Out〉에 어린 시절 삼촌에게 성적 학대를 받았다고 적기도 했다. 이 영향으로 말더듬[1]에 걸렸으며, 병적이고 우울한 성향의 신경질적이고 내성적인 아이로 자랐다고 밝혔다.
파일:peggy-lipton.jpg
모델 활동 당시의 모습

립튼은 15세에 모델 활동을 시작했다. 초기에 모델 일을 도운 사람은 아버지였고, 다소 열정적이었던 어머니는 딸에게 연기 수업을 받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립튼은 집을 떠나 독립했으며, 아일린 포드의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어 본격적으로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립튼은 여러 패션잡지에서 다양한 화보를 찍으며 성공적인 모델 커리어를 쌓았으며, 1964년에는 유니버설 픽처스와 계약을 맺었다. 1965년 19세에 시트콤 〈존 포사이스 쇼〉에 출연해 배우로 데뷔했으며, 〈아내는 요술쟁이〉, 〈버지니아인〉, 〈인베이더스〉, 〈The F.B.I.〉, 〈앨프리드 히치콕 극장〉, 〈미스터 노박〉 같은 196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TV 프로그램에 조연이나 단역으로 출연해 인지도를 쌓았다.

1967년 3월에는 디즈니 영화 〈모스비의 마로더스〉에 주연으로 출연했으며, 이듬해에는 형사 드라마 〈더 모드 스쿼드〉의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당시 세 명의 비밀경찰 중 한 명인 히피 형사 줄리 반스 역을 연기해 많은 인기를 얻었다. 〈더 모드 스쿼드〉는 베트남 전쟁, 아동 학대, 경찰의 잔혹성, 인종 차별, 학생 시위, 마약과 같은 이전에 금기시됐던 문제를 다루어서 당시 기준으로는 굉장히 혁신적인 드라마였다. 방영 당시 립튼은 1960년대 반문화의 쿨함을 전형적으로 보여주었다. 또한 작품의 엄청난 성공으로 인해 당대의 핫한 잇 걸(It girl)이자 패션 아이콘 중 한 명으로 유명해졌다. # 특히 허리까지 내려오는 금발 머리와 미니스커트나팔바지로 상징되는 1970년대 스타일을 자연스럽게 소화해냈다.
파일:12lipton-refer-superJumbo-v4.jpg
더 모드 스쿼드 출연 당시의 모습

립튼은 〈더 모드 스쿼드〉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아 1971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TV 드라마 부분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에미상에서 4년 연속 TV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또한 인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인 1960년대 후반에는 가수 경력을 시작했다. 1968년에 데뷔 앨범으로 셀프 타이틀 음반을 발표했으며, 싱어송라이터 로라 니로의 〈Stoney End〉와 도노반의 〈Wear Your Love Like Heaven〉를 커버해 미국과 캐나다 싱글 차트에 진입하는 등 어느정도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이러한 성공이 립튼에게 많은 부담감을 안겨주었다고 한다. 언론의 엄청난 관심에 불편함을 느낀 립튼은 점점 더 위축되고 자신감이 없어졌다. 후일 인터뷰에서 "제가 TV 시리즈를 시작했을 때, 저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저는 18살이었고 불안정했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명성이 저를 집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저는 매우 편집증적이었습니다. 저는 밖에 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언론과 어떻게 편하게 지낼 수 있을지 몰랐습니다. 저는 매우 어렸습니다. 저는 정말 어려웠습니다. #
페기 립튼은 〈더 모드 스쿼드〉가 종영한 1973년에 후일 마이클 잭슨의 프로듀서로 유명해지는 재즈 아티스트 퀸시 존스와 약혼을 맺었으며, 이듬해에 존스와 결혼을 했다. 존스와 결혼한 이후에는 사실상 배우 활동을 은퇴했으며, 이로 인해 짧았던 전성기에 마침표를 찍었다. 결혼 당시 존스는 아내 립튼에게 연기 경력을 포기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후 립튼은 전업 주부가 되어 두 딸을 키우는 데 집중했다. 1979년 〈더 모드 스쿼드〉의 리유니언 TV 영화 〈리턴 오브 모드 스쿼드〉의 주연을 맡은 것을 제외하면 80년대 후반까지 배우 경력이 오랫동안 중단되었다.

2.2. 연예계 복귀

1986년 페기 립튼은 남편 퀸시 존스와 별거했으며, 1990년에 이혼했다. 존스와 별거한 이후에는 배우 활동을 다시 복귀해 TV 영화 〈Addicted to His Love〉에 출연했다. 복귀 인터뷰에서 립튼은 "저는 절대 자신감이 없었어요. 전혀요. 가장 알기 어려운 것은 당신 자신의 가치이고, 저는 제 가치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데 수년이 걸렸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 1989년에는 액션 스릴러 영화 〈킨지테〉에서 찰스 브론슨의 상대역으로 출연해 공동 주연을 맡았다.
파일:01_TPB_LoveLetter_PeggyLipton_FEATURE.jpg
트윈 픽스 출연 당시의 모습
저는 데이비드 린치의 사무실로 불려갔을 때 그를 만났습니다. 저는 도착했고 그와 그의 공동 작가이자 프로듀서인 마크 프로스트는 제 사진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큰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저는 그들이 캐릭터를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저와 잘 어울렸습니다. 저는 흥분했습니다. 저는 대본을 읽었고 매우 흥미로웠어요. 저는 파일럿을 찍었고 제 내면의 느낌은 순수한 흥분이었습니다. 저는 노마가 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
1990년 4월에는 영화 감독 데이비드 린치와 각본가 마크 프로스트가 제작한 컬트 미스터리 드라마 〈트윈 픽스〉의 메인 캐릭터 중 한 명인 노마 제닝스 역으로 출연했다. 립튼은 이 드라마의 배역을 따내기 위해 오디션을 봤는데, 데이비드 린치가 그 자리에서 바로 그녀를 캐스팅했다고 한다. 립튼은 다정하고 친절한 카페 주인 노마를 연기해 다시 한번 대중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또한 드라마의 높은 평가와 흥행으로 인해 이 작품은 립튼의 또 다른 대표작이 되었다. 립튼은 자신의 출연작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트윈 픽스〉를 꼽기도 했다. # 1992년에는 〈트윈 픽스 극장판〉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트윈 픽스〉 출연 이후에는 꾸준히 연기 활동을 했으며, 많은 드라마나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했다. 대표적으로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영화 〈포스트맨 (1997)〉, 코미디 드라마 〈파퓰러 (2000)〉, 액선 드라마 〈앨리어스 (2004)〉, 드라마 〈크래쉬 (2009)〉 등의 조연으로 출연했다. 다만, 2000년대부터 암 투병을 했기 때문에 많은 작품을 찍지 못했다. 그리고 2004년에는 자신의 인생과 전 남편 퀸시 존스와의 결혼 생활에 대해 쓴 회고록 〈Breathing Out〉을 출판했다.

2017년에는 26년 만에 방영한 〈트윈 픽스 시즌 3(리턴)〉에 노마 제닝스 역으로 다시 출연했으며, 딸 라시다 존스가 주연으로 출연한 시트콤 〈앤지 트라이베카〉에 조연으로도 출연했다.[2] 그리고 같은 해에 유작이자 마지막 영화 출연작인 〈베일리 어게인〉에 출연했다.

2.3. 사망

2019년 5월 11일, 향년 72세의 나이에 대장암 투병 중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페기 립튼은 2004년에 대장암 진단을 받았으며, 계속해서 투병중이었다고 한다. 립튼의 사망은 딸 키다다 존스와 라시다 존스에 의해 발표되었다. 립튼의 딸들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성명문을 보냈다.
그녀는 딸, 조카들과 함께 평화롭게 여행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그녀와 함께 보낸 모든 순간이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우리의 모든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페기는 이 세상과 저 세상 모두에서 항상 우리의 빛의 등불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 입니다. 페기는 항상 우리의 일부가 될 것입니다.

립튼의 전 남편 퀸시 존스는 SNS에 추도문을 올렸다.
페기 립튼을 잃은 슬픔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전혀 없습니다. 14년 동안 함께한 내 아내. 우리는 수많은 아름다운 추억을 공유했고, 가장 중요한 것은 두 명의 놀라운 딸 파이(키다)와 둔키(라시다)를 공유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걸어온 길에 상관없이, 저는 사랑은 영원하다고 매우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저와 제 가족에게 보여준 사랑에 대해 모두 감사드립니다.

트윈 픽스의 감독 데이비드 린치추도문을 올렸다.
우리가 일을 했을 때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정말 친절하고, 배려심이 많고, 사랑이 많은 사람인 그녀는 더블 R 식당의 완벽한 노마였습니다. 노마와 셸리의 관계를 보면 페기에 대한 제 생각을 볼 수 있습니다. 그저 사랑과 배려로 가득 차 있을 뿐입니다. 정말 아름다운 영혼과 얼굴과 존재입니다. 그녀는 함께 일하기에 환상적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런 경험을 합니다, 갑자기, 누군가가 사라졌을 때, 여러분은 그저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그들을 방문하고 그들과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지만, 너무 늦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페기에 대해 느끼는 방식입니다. 저는 그녀가 미친 듯이 그립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녀는 떠났습니다. 그것은 단지 아름다운 기억입니다.

3. 출연 작품

3.1. TV

<rowcolor=#ffffff> 연도 작품 배역
1965 존 포사이스 쇼
(The John Forsythe Show)
조앤나
아내는 요술쟁이
(Bewitched)
비서
앨프리드 히치콕 극장
(The Alfred Hitchcock Hour)
메리 윈터스
미스터 노박
(Mr. Novak)
셀마
1966 버지니아인
(The Virginian)
덜시 콜비
1967 디즈니랜드
(Disneyland)
오랄리 프렌티스
밥 호프 크라이슬러 극장 공연
(Bob Hope Presents the Chrysler Theatre)
The F.B.I. 박물관의 소녀
서부로 가는 길
(The Road West)
제니 그리머
인베이더스
(The Invaders)
브라이드
1968~1973 더 모드 스쿼드
(The Mod Squad)
줄리 반스
1979 리턴 오브 모드 스쿼드
(The Return of the Mod Squad)
1988 그의 사랑에 중독되다
(Addicted to His Love)
어시스턴트 DA
1990 히치하이커
(The Hitchhiker)
헬렌
1990~1991 트윈 픽스
(Twin Peaks)
노마 제닝스
1992 시크릿
(Secrets)
올리비아 오웬스
1993 앙헬 폭포
(Angel Falls)
해들리 라슨
1994 거미와 파리
(The Spider and the Fly)
헬렌 스트라우드
치명적 언약
(Deadly Vows)
낸시 웨스턴
윙스
(Wings)
미스 로리 젠킨스
1996 저스티스 포 애니: 모먼트 오브 트루스 무비
(Justice for Annie: A Moment of Truth Movie)
캐롤 밀스
2000 70년대
(The 70s)
글로리아 스타이넘
파퓰러
(Popular)
켈리 포스터
2004 앨리어스
(Alias)
올리비아 리드
2005 컷츠
(Cuts)
마샤
2007 계약 규칙
(Rules of Engagement)
페이
2009 크래쉬
(Crash)
수지
2012 하우스 오브 라이즈
(House of Lies)
피비 반 데르 후벤
2014 사이크
(Psych)
스칼렛 존스
2016~2017 앤지 트라이베카
(Angie Tribeca)
페기 트리베카
2017 트윈 픽스
(Twin Peaks)
노마 제닝스
클로즈
(Claws)
페기 립튼
데어즈... 조니!
(There's... Johnny!)
에블린 그린필드

3.2. 영화

<rowcolor=#ffffff> 연도 작품 배역
1967 모스비의 마로더스
(Mosby's Marauders)
오랄리 프렌티스
1968 블루
(Blue)
로리 크레이머
1988 워 파티
(War Party)
텔레비전 특파원
퍼플 피플 이스터
(Purple People Eater)
어머니
1989 킨지테
(Kinjite: Forbidden Subjects)
캐슬린 크로우
1990 위험한 유혹
(Fatal Charm)
제인 심즈
1991 트루 아이덴티티
(True Identity)
리타
1992 트윈 픽스
(Twin Peaks: Fire Walk with Me)
노마 제닝스
1997 포스트맨
(The Postman)
엘렌 마치
2000 인턴
(The Intern)
록산느 로셰
러브 셀레모니
(Skipped Parts)
로라벨 피어스
2001 잭팟
(Jackpot)
재니스
2010 로마에서 생긴 일
(When in Rome)
프리실라
2014 트윈 픽스: 미싱 피시즈
(Twin Peaks: The Missing Pieces)
노마 제닝스
2017 베일리 어게인
(A Dog's Purpose)
성인 한나

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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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시 존스와 페기 립튼
페기 립튼: 가족을 꾸리고 남편과 두 딸을 사랑하는 것보다 제가 상상할 수 있는 더 좋은 것은 없었습니다. 저는 퀸시를 보자마자 그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백인과 흑인의 결혼이라는 측면에서 그 시대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항상 우리 주변에 있었습니다. 1974년 큰 딸이 3개월이었을 때, 그는 두 개의 뇌졸중을 앓았는데 거의 죽을 뻔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결혼을 했습니다. 저는 히피였고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저는 우리가 가까워지고 서로에게 헌신적이라는 것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행복하게도 그는 완전히 회복했고 우리는 또 다른 아기를 가졌습니다. 이 때는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때였습니다. #
퀸시 존스와 결혼한 이후, 페기 립튼은 연기 활동을 그만둘 정도로 가정에 헌신했다. 백인흑인의 결혼이었기 때문에 립튼의 어머니를 포함하여 인종차별적인 반대에 직면하기도 했다고 한다. # 이후 1980년대에 퀸시 존스가 일벌레처럼 숨가쁘게 일에만 매달려서 가정에 소홀하자 부부의 관계는 서먹해졌다. 이 둘은 1986년에 별거했고, 1990년에 이혼을 발표했다. 양 당사자가 우호적인 방식으로 이혼에 이르렀다는 것 외에는 이 문제에 대해 자세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립튼과 존스는 이혼한 이후에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파일:Webp.net-resizeimage-2-8.jpg}}} ||
페기 립튼과 딸들

5. 관련 문서

6. 외부 링크



[1] 모델 활동을 하기 위해 집을 떠나고 혼자서 운동을 하다보니 말더듬 증상은 사라졌다고 밝혔다.[2] 라시다 존스가 연기한 캐릭터의 엄마 역으로 출연했다.[3] 1960~70년대의 대중 음악계의 거물급 프로듀서. 이 사람의 대표작은 캐롤 킹의 Tapest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