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浦項 大聖寺 所藏 金銅如來坐像. 15세기 중엽쯤에 제작한, 높이 9.5 cm인 소형 금동여래좌상. 훗날 임진왜란 때 활약한 고승 사명대사 유정(惟政 1544-1610)이 호신불로 지니고 다녔다고 하여 나름대로 유명하다. 현재 경상북도 포항시 대성사(大聖寺)에서 소장하고, 2009년 경상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409호로 지정되었다.2. 내용
이 불상을 언제 제작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양식으로 미루어 보아 15세기 중엽으로 추정한다. 조선 세조 11년(1465)에 세조가 명하여 고성 거진읍 냉천리 건봉사에서 세조의 원당(願堂)으로서 왕의 위패를 봉안하는 어실각(御室閣)을 건립하였다. 이 불상이 원래 건봉사 낙서암에 안치되었으므로, 아마도 어실각을 건립할 즈음에 함께 제작하지 않았나 추측한다. 높이 9.5 cm로 크기는 작지만 고려 말에 유입된 티베트 불교 양식을 따랐음이 독특하다.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사명대사는 건봉사에서 승병을 준비했는데, 건봉사 낙서암에 있던 이 불상을 호신불로 모며 임진왜란 내내 지니고 다녔다고 전한다.[1]
2007년 9월 민간에 공개되었다.SBS 대구방송 보도 불상 복장 안에서 선조 17년(1584)에 쓴 발원장이 나왔는데, 여기에는 사명대사의 친필 수기가 있었다. 사명대사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부터 이 불상을 중히 여긴 듯하다. 1900년대쯤에 건봉사에서 사라져 소재가 불분명했고 1912년 조선총독부가 찍은 유리원판 사진으로만 남아 있었다. 2006년부터 문화재청과 불교계가 사라진 불교문화재를 찾는 과정에서 거의 100년 만에 발견된 것이다. 대성사 주지 운붕(雲鵬) 스님이 1990년대에 스승으로부터 전해받아 대성사에 모셨다가 다시 세상에 알려졌다.2007년 매일신문 기사 도대체 100년 간 어디를 어떻게 떠돌아다니다가 운붕 스님의 손에까지 들어갔는지 모를 일이다.
불상 자체는 고려 시대 말에 몽골을 통해 유입된 티베트 불교 양식으로 만들어 고려 - 조선으로 계승되는 한국의 불상 양식 연구에서 중요한 자료가 된다. 또한 조선 세조 시기의 흥불 정책에 대해 알아볼 수 있다. 현재 보물 지정을 신청한 상태이다.
3. 외부 링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포항 대성사 소장 금동여래좌상
- 문화재청 홈페이지 : 포항 대성사 소장 금동여래좌상 (浦項 大聖寺 所藏 金銅如來坐像)
- 매일신문 : '사명대사 호신불' 대성사 금동여래좌상 보물지정 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