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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에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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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2001a><colcolor=#feefd0> 홈에버
HOMEVER
파일:홈에버 로고.svg
기업명 정식: ㈜이랜드리테일[1]
영어: E-Land Retail Co., Ltd.
국가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설립일 1994년 3월 8일[2]
2006년 9월 27일[3]
해산일 2008년 5월 14일
주소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 992-47 7층[4]
모기업 이랜드그룹
대표이사 오상흔
전신 한국까르푸 (1994. 3. 8.~2006. 9. 27.)
후신 홈플러스 (2008. 5. 14.~현재)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웹 아카이브)[5]

1. 개요2. 역사
2.1. 매각2.2. 영업 당시
3. 역대 임원4. 지점5. TV 광고6. 여담7. 출처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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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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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 Home Forever
홈에버는 까르푸의 새이름입니다.
이랜드그룹한국까르푸를 인수하여 영업했던 할인점 브랜드. 법인명은 ㈜이랜드리테일[6]이었다.

2. 역사

파일:홈에버 계산점 전경.jpg
홈에버 계산점.[7]

2006년 9월 이랜드그룹한국까르푸를 인수하여[8] 운영한 할인점[9]이었으나, 2008년 말 홈플러스에 매각되어 브랜드가 사라졌고, 운영법인이던 이랜드리테일은 '홈플러스테스코'로 바꿨다가 2011년부터 홈플러스스토어즈로 바꾼 후 홈플러스가 테스코의 곁을 떠난 2019년 홈플러스에 합병됐다.

지난 날의 까르푸의 안 좋은 인상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해온 듯 했지만, 애석하게도 표면적으로 등장한 것은 없었다(…). 인수 당시 이랜드 측은 기존 직원 전원의 고용보장을 약속했으나, 2007년 6월 15일에 사측이 2년 이상 된 비정규직 중 일부만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나머지를 용역으로 돌린 탓에 노동자들은 격하게 분노했다. 같은 시기 비정규직보호법이 시행을 앞둔 터라 논란의 쟁점이 됐다.

이에 따라 6월 30일부터 노동자들이 홈에버와 뉴코아 등 총 12개 점포를 점거해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농성 기간 동안 3번이나 협상이 있었으나 전부 결렬됐고, 오히려 회사는 구사대용역깡패들을 동원해 매장 출입문을 봉쇄하는 등으로 강경 대응했으며 7월 13일에는 연대 시도를 하려던 김종철민주노동당 당원 6명이 경찰에 의해 가로막힌 채 다음날 새벽에 연행됐다. 동월 19일 최종 협상이 결렬되자 다음날 경찰병력이 투입돼 물대포와 방패로 강제 해산시켰고, 김경욱 노조위원장을 비롯해 홍윤경 사무국장, 정병원 전 뉴코아 노조위원장 등이 구속 기소됐다. 이랜드 측은 이 파업으로 130여억원의 손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이 파업에서 이랜드그룹 회장 박성수가 “성경에는 노조가 없으니 하지 말라!” 같은 망언까지 하면서 언론에다 크게 보도되자, 노조에서는 성경에는 비정규직도 없다! 라고 반격하면서 박성수는 전국적으로 개망신을 당했다. 이런 일이 크게 보도되면서 진보단체/언론, 개신교 진보-보수단체 막론하고[10] 사탄의 헛소리나 다름없다고 박성수를 독사의 새끼 마냥 깠을 정도였다.

다만, 의류, 전자 등 매장 입점 상인들은 민주노총 때문에 장사 안 된다고 해서 부정적으로 바라봤고, 파업이 진행되는 매장마다 맞불 시위를 하는가 하면 8월 23일에는 여의도 민주노총 앞까지 와서 썩은 음식물 등을 뿌리며 시위했다. 한겨레 기사에 따르면 회사 편을 드는 입점 상인들은 뉴코아 등과 계약을 맺은 임차인들이라고 전했다.

사태 당시 한겨레를 뺀 대다수 주요 언론들은 노동자에 대해 대체로 침묵하거나 비판적으로 봤다. 월간조선은 이랜드 사태를 민주노총의 선동 탓이라고 주장했으며, 문화일보도 막말 현수막을 지적하면서 해당 파업을 언급했다.[11] 이러한 대립 속에 이랜드그룹의 이미지는 점차 약해졌다.

다만 10월 22일에 서울서부지방법원은 김경욱 노조위원장 등 관련자 3명에 대해 비정규직의 사회문제화를 고려해 징역 10개월 및 집행유예 등을 선고했고, 2008년 5월 홈플러스가 홈에버를 인수하고 난 뒤 11월에야 노사 협상이 타결되어 이 문제는 해결됐으나, 협상 과정에서 노조 간부 12명이 퇴사한다는 조건이 달리면서 '반쪽짜리 성과'라는 견해가 있었다.[12]

반면 파업 당시 연대했던 김종철 등 6명은 벌금으로 약식기소됐다가 재판을 시작해 2008년 11월 서울서부지법 1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가, 검찰의 항소로 2009년 6월 동 법원 형사항소11부에서 벌금 50만원형을 선고하면서 또 상고했다. 그해 9월 헌법재판소가 집시법의 야간 옥외집회 금지 조항을 위헌으로 판결했긴 하나 대법원은 이 사건을 항소심으로 돌렸고, 2014년 서울서부지법 형사항소1부가 김종철 등의 손을 들어줬다.

사실상 이랜드그룹은 까르푸를 인수하여 홈에버로 바꾼 이후부터 매각할 때까지 노조와 싸움만 한 셈이었다. 게다가 프랑스 식의 널찍한 매장들은 이랜드그룹이 손을 대면서 매대 간격이 좁아지는 등 롯데마트를 연상시키는 조잡함이 더해졌다. 그나마 야채 코너가 전보다 조금이나마 늘어난게 다행으로 보일 지경.

2.1. 매각

홈에버홈플러스가 됩니다.[13]
결국 2008년 5월 14일 홈에버 출범 1년 8개월 만에 홈에버를 홈플러스에 다시 매각했다. 이랜드그룹새로운 사업에 투자하기 위해 홈에버 매각을 결정했다는 입장이지만 이랜드가 까르푸를 잘 못 먹고서 노조와의 갈등을 겪은 것은 물론 박성수 회장의 망언과 파행 운영으로 인해 손해를 보아 사실상 회사를 버린거나 마찬가지이다. 이랜드가 까르푸를 인수하면서 프랑스 본사에 준 인수 금액이 1조 7500억원이었고 삼성테스코가 홈에버를 인수하면서 준 인수 금액이 2조 3천억원이니 금전적으로는 이득을 본 셈이 맞기는 하다.[14]

동년 11월까지는 홈에버 간판을 그대로 유지했다. 하지만 모기업이 이랜드에서 삼성테스코로 바뀌었기 때문에 사실상 홈플러스의 멀티에 가까운 형태로 운영된 셈이었다.[15] 12월부터 홈에버 전 점포를 대상으로 본격적인 리모델링을 시작했으며 홈플러스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칠곡IC점[16]상주점[17]당시 대표이사가 수익성이 없는 점포라고 판단하여 홈플러스로 개점되기도 전에 먼저 폐점되었다. 상주점 공간은 현재 상주종합버스터미널 소유이지만 칠곡IC점 같은 경우에는 신전뮤지엄으로 전환되기 전까지 재산권이 홈플러스에 있었다. 그렇기에 취득세, 등기비용, 전기세, 수돗세 등 전부 홈플러스가 부담하였다고 한다.

까르푸에서 홈에버로 전환할 때는 점포를 폐쇄하여 마개조 수준으로 리모델링을 한 뒤 새로 개점을 하였으나, 홈에버에서 홈플러스로 전환할 때는 따로 폐쇄를 하지 않고 영업은 그대로 하면서 일부분만 홈플러스식으로 바꾸었다. # 본래 없던 탑시계가 생긴 것이 대표적.

법인은 이랜드리테일에서 홈플러스테스코를 거쳐 홈플러스스토어즈라는 별도의 자회사로 운영했었다가 2019년 10월 경 홈플러스 법인으로 완전 통합되었다.

기존 홈플러스 매장은 영수증의 점포명 왼쪽에 "홈플러스" ○○점으로 출력되고 홈에버였던 매장은 "홈플러스스토어즈" ○○점으로 출력되어 기존 홈플러스 점포와 홈에버 출신 점포를 구분을 할 수 있었으나 위에 후술되었다시피 현재는 법인이 통합되어 지금은 어떤 매장을 가도 ''홈플러스'' ○○점으로 나온다.

2.2. 영업 당시

종종 일반인과 함께 광고를 촬영해서 특정 물품이 싸다는 식으로 홍보한게 전부, 이마저도 2008년 여름 홈에버 마감전을 끝으로 면목점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홈플러스로 리모델링되면서 흑역사가 되었다. 광고모델은 김희애였다. 또 까르푸의 피를 이어받아 매장의 시원시원한 구조적 디자인이 이어졌으나 홈에버와 홈플러스를 거치며 굉장히 조잡해졌다. 심지어 OK캐쉬백과 제휴하여 쿠폰 수거대를 운영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룹 계열인 이랜드월드 외식BU(현 이랜드이츠)의 패밀리 레스토랑 체인점 애슐리를 각 지점 내에 입점시키기도 했다.

3. 역대 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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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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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을
참고하십시오.

5. TV 광고


[19]









6. 여담

7. 출처

8. 관련 문서


[1] 홈에버를 운영하던 이랜드리테일현재의 이랜드리테일과는 다른 회사이다. 구 이랜드리테일은 한국까르푸 법인의 이름만 이랜드리테일로 바꾼 것이고 지금의 이랜드리테일은 이랜드월드의 유통부문을 인적분할하여 새로 설립한 회사이다.[2] 등기상 설립일자. 기존 한국까르푸 법인 그대로 이랜드리테일로 사명만 바꾼거라 등기상 설립일자는 이 날짜로 등록되어 있었다.[3] 브랜드 출범일자.[4] 현재의 홈플러스 시흥점이다. 홈플러스로 변경된 이후 본사 자리에는 마벨리에 뷔페가 입점한 상태이다.[5] 한국까르푸이랜드그룹에 매각되면서 한국까르푸 도메인은 이곳으로 접속되게 설정해놓았고, 2008년 홈플러스에 매각되면서 홈에버 도메인은 홈플러스로 접속되었다.[6] 한국까르푸 법인을 그대로 놔두고 이름만 변경했다. 현재의 이랜드리테일과는 다른 회사로, 지금의 이랜드리테일은 이랜드월드의 유통부문을 인적분할하여 새로 설립한 회사이다.[7] 2008년 홈플러스에 매각하여 현재는 홈플러스 계산점으로 리모델링되었다. 해당 사진은 홈플러스가 홈에버를 인수한 직후에 촬영되었다.[8] 한국까르푸에 먼저 눈독을 들인 회사가 롯데쇼핑이었으나, 이랜드에게 인수전에서 패했다.[9] 참고로 이랜드는 옛 뉴코아에서 운영했던 킴스클럽을 인수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까르푸를 인수하면서 기존 까르푸의 명칭을 킴스클럽으로 바꾸지 않은걸 보면 컨셉을 킴스클럽과 달리 운영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사실 이 시기 되면 킴스클럽 자체 매장이 대부분 매각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뉴코아 아울렛 식품 매장 정도의 컨셉으로 바뀐 상황이었다.[10] 농담이 아니라, 이딴 헛소리를 받아 들인 게 아니라 오히려 또라이라고 깠다.[11] 물론 문화일보가 상당히 보수적인 논조를 가진 신문이며, 대기업(현대중공업) 산하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12] 국내에서 노사갈등이 심각하게 벌어지는 경우, 특히 장기분규 사업장들은 이런 식으로 타결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노조가 강경하게 반발하면서 대치 국면이 오래 지속되면, 회사측에서 일단 노조측 요구를 수용하는 대신에 노조 핵심 간부들의 퇴사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3~4년 뒤에 보면 핵심 간부들이 빠진 노조는 회사 측의 집요한 회유와 방해로 무력화되고 노사 간의 합의는 휴지조각이 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특히 인수합병 과정에서 고용유지 조건의 경우 설사 노사간에 자율합의가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이를 회피할 수 있는 다양한 꼼수들이 있기 때문에 더더욱 문제가 많다.[13] 위 홈에버 계산점 사진에서 볼 수 있는 문구.[14] 물론 이랜드그룹 자체는 가진 현금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까르푸 측에 30%만 현금으로 인수금액을 주고 나머지 70%는 빚으로 때워버렸는데 매년 이자가 650억원에 달해서 이랜드그룹의 재무구조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그래서 공식 매각 가격은 2조 3천억원이었지만, 이랜드가 받은 현금은 1조원이었고, 나머지 1조 3천억원은 이랜드 측이 까르푸에 줘야 할 인수금 잔금 및 부채를 합산한 금액이었다.[15] 이때부터 이랜드 PB상품은 진열되지 않았으며 홈플러스 PB상품들만 진열되기 시작했다.[16] 본래는 동아백화점 계열의 회원제 창고형 할인점인 델타클럽이었으나, 2005년 까르푸에게 매각한 것을 거쳐 홈에버가 되었다. 이후 홈플러스에 인수되었으나, 칠곡3지구 거동교 옆에 넘사벽급의 홈플러스 칠곡점이 있어서 당연히 중복 상권에 따른 폐지. 공교롭게도 이 매장을 처음 오픈한 동아백화점은 나중에 이랜드로 인수되었다. 2019년 7월 대구에 본사를 두고 있는 떡볶이 프랜차이즈 기업 ㈜신전푸드시스에서 세계 최초의 ‘떡볶이 박물관’인 ‘신전뮤지엄’을 조성했다.[17] 상주점은 까르푸를 거치지 않은 홈에버로 시작한 첫 점포였다.[18]모던하우스 대표이사.[19] 내레이션은 아마추어 성우인 박나연이 맡았다.[유도사인] 파일:홈에버 유도사인.jpg[쇼핑카트] 파일:까르푸-홈에버-홈플러스 쇼핑카트.jpg[계단] 파일:홈에버 계단 층 표시.jpg[23] 이건 사실 까르푸에서 유래된 건데, 홈에버가 사실상 까르푸 핏줄을 이어받아서 운영한 기업이었다보니 까르푸만의 특색들을 대부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물론 홈플러스에 넘어간 뒤로는 이런 까르푸만의 특색들은 모두 사라졌다.[24] 비구매 고객전용 출구에만 도난방지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입구엔 보안요원이 지키고 있었다.[25] 강지웅 MBC플러스 대표가 당시 취재 PD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