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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9 18:11:21

흥부전

흥보전에서 넘어옴

||<tablebordercolor=#c68a12,#43454d><tablebgcolor=#fff,#1c1d1f><bgcolor=#c68a12,#010101><tablealign=center><-2> 판소리 열두 마당 ||
전하는 다섯 마당 수궁가 · 심청가 · 적벽가 · 춘향가 · 흥부가
사라진 일곱 마당 가짜신선타령 · 강릉매화타령 · 무숙이타령 · 배비장타령 · 변강쇠타령 · 옹고집타령 · 장끼타령
<colbgcolor=#f1f1f1,#27292d> 흥보전
흥보傳
조통달 명창과 정화영 고수의 흥부가 中 <화초장타령>
작자 미상
기원 신라시대
시점 전지적 작가 시점
갈래 판소리계 소설, 우화, 풍자소설
주제 못된 형과 착한 아우, 권선징악

1. 개요2. 줄거리3. 등장인물4. 해설5. 흥보만보록의 발견6. 흥보만보록의 내용7. 유사한 타국의 전래 동화들8. 대중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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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춘향전 등과 함께 대표적인 판소리계 소설의 하나. 못된 형과 착한 아우를 아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권선징악 작품이다. 신라시대를 배경으로 한 방이 설화가 흥부전의 기원으로 여겨지고 있다. 형과 동생의 역할이 반대고 나쁜 쪽이 죽는다는 차이는 있지만 그 전개가 상당히 비슷하기 때문이다.[1]

후술하다시피 가장 이른 시기에 쓰인 흥부전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

2. 줄거리

옛날 어느 마을에 흥부놀부라는 형제가 살았다. 놀부와 흥부는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는 사이좋은 척 했으나,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못된 놀부는 부모님이 물려주신 재산을 자기가 전부 독차지하고는 착한 흥부를 돈 한푼 안 줘서 쫓아냈고, 흥부는 처와 스무 명이나 되는 자식들과 함께 찢어질 정도로 가난한 처지에 어떻게든 먹고살려고 별의별 힘든 날품팔이로 살아간다.

이 도중에 흥부가 놀부네 집에 식구들 먹일 쌀이라도 좀 얻어보러 갔다가 인심 사나운 놀부 아내에게 주걱으로 싸다귀를 맞고, 밥풀이라도 조금만 더 달라고 구걸하다가 풀이 죽어 되돌아왔다.

어느 봄날 흥부는 제비구렁이에게 공격당하는 것을 보고 구렁이를 쫓아냈는데, 그 과정에서 새끼 제비 한 마리가 둥지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흥부는 다리가 부러진 그 제비를 치료해주었다. 이듬해 봄, 제비가 박씨를 떨어뜨리자 흥부네는 그 박씨를 심었다. 박은 놀랄 정도로 거대하게 자랐으며, 흥부 가족은 먹을 것이 없어 박이라도 먹기 위해 박을 꺼내서 박을 탔다. 그러자 박 속에서 온갖 곡물과 금은보화, 고래등 같은 기와집도 나와서 흥부네는 순식간에 부자가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놀부는 흥부에게 그 비결을 듣고 더 큰 부자가 되기 위해 당장 본인네 집 처마에 둥지를 튼 제비를 보고 그 중에 한 마리를 잡아 일부러 강제로 다리를 부러뜨린 다음 다시 고쳐주었다. 이듬해 봄 제비가 박씨를 가져오자 놀부는 그것을 심어 박을 키워 탔는데, 박 속에서 나온 건 곡물과 금은보화가 아닌 거지패·도둑패·도깨비, 오물 등이 나와 재산을 도둑질하고 마구 두들겨 패고 거주하던 자택까지 파괴하면서 놀부 가족은 하루아침에 거지 신세가 되어 몰락하고 말았다. 그 후 착한 흥부네의 도움을 받게 되면서,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놀부가 개과천선하면서 흥부와 우애롭게 살았다.[2]

3. 등장인물

4. 해설

욕심 많은 형과 착한 동생이 대비를 이루고, 나쁜 형이 벌을 받고 착한 동생이 복을 받는다는 점이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권선징악의 교훈 외에도, 문제의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 남의 성공을 어설프게 흉내내면 오히려 실패할 수도 있다는 교훈도 있다.

많은 국사 선생님들은 근대 태동기의 부농과 빈농의 분화를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가르치기도 한다. 사실 흥부전을 근대 태동기 시대상을 보여주는 자료로 쓰는 게 아주 뜬금없는 접근은 아닌 게, 흥부네 가족들이 박으로 팔자를 편 뒤 이 쏟아지는 부를 어떻게 할까하면서 만담을 하는 부분에서 엽총을 언급하는 장면이 있다. 총은 임진왜란 후에 등장했기 때문. 일부 판본에선 흥부와 놀부 모두 신분은 양반이지만 두 형제의 부모가 형인 놀부에게만 재산을 다 물려줘서 흥부네 집이 가난한 거란 이유도 덧붙여져 있다.

또 다른 판본에서는 놀부의 박에서 나온 재앙 중에 죽은 양반의 혼령이 추노꾼 귀신들을 잔뜩 거느리고 나와서 ‘놀부 너의 4대조가 우리 집안 도망노비였으니 놀부 네가 나와 함께 저승으로 끌려 가겠느냐, 돈을 내고 속량 받겠느냐?’ 하고사가 있어, 당시 하층민 부자가 양전 처럼 돈으로 양반 신분을 사들인 것을 풍자하는 것으로 본다.

일각에서는 이 스토리를 재평가하기도 한다. 흥부는 먹여살리지도 못할 자식들을 책임감 없이 줄줄이 낳았으니 이는 분명한 잘못이며, 놀부는 그래도 본인이 노력해서 축적/유지해 온 재산인데 그걸 한큐에 잃어버렸으니 오히려 흥부를 감성팔이하는 악역, 놀부를 선역으로 보는 경우가 있다.

다만 이는 일종의 수정주의적(?)시각으로, 농경 사회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은 '원치 않아도' 피임 기술 미비 등의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많이 낳은 점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한 판본에서는 흥부의 자식을 두고 '원찮은', '무복한'이라는 언급이 등장할 정도다. 여기에 아이들을 두고 "늦되어서 부르는게 어메 아비 음식 이름, 아는 것이 밥뿐"이라며 전전긍긍하는 모습도 나오기도 한다. 흥부의 고난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로 묘사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 특히 인간의 기본 윤리로 여겨지던 삼강오륜이 공고하던 조선 사회에서는 아버지가 자식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은 삼강에 해당되는 '부위자강(아버지는 자식의 벼리(법도의 비유적 표현)가 되어야 한다.)', 오륜의 첫 덕목인 '부자유친(어버이와 자식 사이에는 친함이 있어야 한다.)'을 저버리는 가장 부도덕한 행위였기에 그런 책임을 다하지 않는 모습을 다루는 작품이 나올 수 없었다.

일단 문학에는 기본적으로 해석의 자유라는 게 있고 그것이야말로 문학의 무한한 가능성을 담보해 준다는 점에서 이런 역발상이 불가능한 건 아니긴 하다. 그러나 어떤 해석이든 우선은 작품 자체에 대한 정합적 이해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사실 이와 같은 해석은 적합한 해석이 아니다. 놀부 문서를 참고해 보면 알겠지만, 놀부의 재산은 동생 몫까지 빼앗은 부당한 상속의 결과이지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뤄낸 게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야 하고 흥부 역시 어쨌거나 처와 그 많은 자식들을 다 끝까지 먹여살렸다는 점에서, 다소 어수룩한 인물일 수는 있어도 악역이라고까지 할 수 있을는지는 의문.

한때 이러한 고전 문학 선악 비틀기는 기존 시선과 다른 '신선한' 시도였으나 이 또한 현재는 다소 식상한, 한물간 유행이긴 하다. 현대 소설의 입체적 인물이라면 모를까 애초에 작품 내에서 형상화될 때부터 절대 부정할 수 없는 전형적인 선악 인간형으로 설정되었는데 그걸 무리하게 뒤집는 건 억지 해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아예 작품을 다르게 재창조하여 인물을 형상화했다면 몰라도.

사실 놀부가 악역임은 흥부전 원문만 봐도 알 수 있는 점에서 위에 열거된 놀부 선역설은 원천봉쇄되게 마련이다. 당 장 첫 장부터 놀부의 심술보가 줄줄이 열거되는데, 똥 누는 놈 주저앉히기, 이 아픈 놈 뺨때리기, 초상난 데 춤추기, 장에 가면 억매흥정 등등 지금 시점에서 봐도 미친놈 같은(...) 묘사가 줄줄이 이어진다. 현재로 친다면 미친놈을 넘어서 진짜 살인 빼곤 웬만한 범죄들을 다 저지른 말 그대로 범죄자이다. 게다가 자기한테 그 막대한 부를 물려준 부모 제삿상에 음식 대신 음식 이름 써 놓은 종이 덜렁 올려놓고 절한다는 데서 그 시절 기준으로도 천륜을 저버린 패륜아 확정.

유튜브 채널 우물 밖의 개구리를 운영하는 외국 교수 마크 피터슨이 18세기 무렵의 저문학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 당시, 형제 균등 상속에서 장남 상속제로 바뀌면서, 형이 부모님의 재산을 다 가져가고, 동생은 재산을 물려받지 못해 가난해지는 것이 올바른 것이냐는 시각에서의 해석이다.

5. 흥보만보록의 발견

1833년에 쓴 흥부전의 한글필사본이 2017년 6월 27일에 발견되었다. 하버드가 소장 중인 지금까지의 가장 오래된 흥부전인 '흥보전'보다 20년이나 앞서있다. 해당 자료는 송준호 연세대 명예 교수가 소장하고 있던 자료로서, 책의 표지는 '박응교전'이며, 전체적인 내용도 흘려 쓴 한글로 적혀져있으나 현대의 사람들은 읽기 힘들어 번역과 해석이 필요한 한 권의 고서쯤으로 생각하고 자세히 보지 않다가, 최근 책장을 넘기다보니 중간 부분이 '흥보만보록'이라고 적혀져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연구가 진행되었다.

단순히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흥부전'이기도 하지만 가장 오래된 판소리 작품이며 기존 흥부전에서 막연하게 다뤄졌던 흥부 놀부의 출생 배경과 자세한 이야기 등이 적혀져 있어 세간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여태껏 흥부전의 배경은 남부 지방 쪽으로 생각하고 있던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특히 춘향뎐과 같이 남원으로 생각되고있던 흥부전의 본래 장소가 평양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를 발견했던 정병설 서울대 국문과 교수와 김동욱 박사는 '호남 지방이 판소리의 주도권을 지니게 되면서 배경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6. 흥보만보록의 내용

전체적인 줄거리는 비슷하며, 기존의 통설을 뒤엎은 내용 및 추가된 내용을 주로 정리했다.

덕수 장씨의 시조는 고려충렬왕 시대에 살았던 위구르 출신인 장순룡으로 알려져 있어, 흥보만보록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다만 같은 성씨라도 계파가 나뉘어 각 계파마다 시조가 있는 경우도 있다.[5]

흥부전의 시대적 배경은 조선 왕조때보다는 오히려 고려 왕조 시기일 가능성도 있다. 평민 집안의 남자가 부잣집 딸의 사위로 들어가는 모습으로 보아 신분을 넘어 남녀간의 연애가 비교적 자유로웠던 고려 시대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점, 장남인 놀부가 흥부에게 부모에 대한 모든 것을 떠넘기고 장남으로서 지녀야 할 부모에 대한 효를 놓아버리는 다소 유연한 사고를 지닌 모습이 엄격한 조선 유교 사회의 사상과는 차이가 있는 점, 자식을 여럿 낳을 동안 계속 처갓집에 붙어 내내 거주하는 점으로 보아, 사위가 1년 ~ 3년의 짧은 데릴 사위 생활을 하던 조선 시대와는 다소 차이가 있어 더욱 설득력이 생긴다. 흥부는 고려 시대 마지막 왕인 공양왕 때 비로소 시행된 무과 시험에 급제 했다고 하면 말이 된다.

농촌 사회는 노동력을 중시하나, 두 아들인 흥부와 놀부가 고향집을 두고도 모두 처갓집에 들어와 살아도 되었다면 그들의 집안은 농사를 짓지않는 가내 수공업이나 상업으로 살아갔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도 고려 후기엔 민간 수공업이나 상업이 번창했다.

등장인물들에 대한 자세한 서술이 담겨있으나, 스토리 중간에 여전히 제비 다리 사건과 같은 판타지가 섞여있다는 것에서 단순히 권선징악의 내용을 담은 민담이라기보단 덕수 장씨의 후손이 자신들의 시조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기 위해 실제 이야기에서 과장 조금 보태서 퍼뜨린듯한 신화적 성격이 강하다고 유추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자신의 선조를 드높이는 신화는 알에서 태어난 혁거세의 이야기와 같은 탄생 설화 등이 있다.

흥보만보록의 내용을 알고 육각수의 노래인 흥보가 기가 막혀를 들어보면 흥부가 부모를 모시기 위해 고향집에 가지않고 방황하는 패륜의 모습을 보여준다 카더라.

7. 유사한 타국의 전래 동화들

이에 그 보답으로 그녀는 곰으로부터 받은 항아리에서 나온 금화로 부자가 되었다. 그 뒤 부잣집 여주인이 마리카의 소식을 듣고 마리카가 자신의 집에서 탈출했을 때 그 집에 가지고 갔던 삼보다 더 값비싼 양털과 가위를 딸 이반카[7]에게 쥐어준 채 숲 속 곰의 집으로 보냈다. 그 뒤 곰의 집에 간 이반카는 친절하게 곰을 대했던 마리카와 달리 집주인인 곰에게 온갖 패악질을 저질렀고[8] 고집을 피우면서 곰으로부터 얻은 항아리를 집에서 열었을 때 항아리에서 튀어나온 벌떼의 공격을 받아 이반카 모녀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플룻은 흥부전과는 많이 다르긴 하나 다른 나라들의 동물이 등장하는 권선징악형 전래 동화들과 유사한 점이 있다. 단 일반적으로 조류가 등장하는 동양권의 민담과는 달리 해당 민담에서는 포유류인 이 등장한다.

8. 대중매체에서


[1] 이 방이 설화는 또다른 설화인 혹부리 영감의 초기 형태로도 추정되고 있다. 읽어보면 두 설화를 섞어놓은 듯한 내용임을 알 수 있다.[2] 판본에 따라선 흥부의 박에서는 양귀비가 나와서 흥부의 수청을 들어주고, 놀부의 박에서는 높은 관직의 벼슬아치가 튀어나와 놀부의 재산을 몰수해 가거나 삼국지장비가 나와서 흠씬 두들겨 패준다는 내용도 있다. 심지어 놀부는 죽는 내용도 존재한다.[3] 판본에 따라 부모와 함께 등장하거나, 안 나오기도 한다.[4] 기존의 흥부전에서는 형제의 성이 연씨 혹은 박씨로 알려져 있다.[5] 흔히 파시조라고 한다.[6] 프뢰벨의 세계 전래 동화 선집에서는 마리카와 이왕카라는 제목으로 나왔다.[7] 구전되는 옛이야기마다 달라서 부잣집 여주인과 이반카의 관계가 모녀가 아닌 이모와 조카로도 나오기도 한다.[8] 심지어 곰이 양털을 어떻게 얻느냐는 질문에 곰의 꼬리를 가위로 절단했다.[9] 초등학교 4학년 국어교과서에 수록됨[10] 보통은 12명이라고 나오는데 여기선 5명으로 줄었다. 여담으로 흥부가 연씨라는 설정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여기선 흥씨...그럼 놀부는??[11] 진행상 2명만 등장한다.[12] 이 박이 하도 거대해서 미리가 발차기로 부수는 미니 게임이 따로 나온다.[13] 집이 기왓집으로 바뀐 건 물론이고 아이들의 복장도 화려해진다.[14] 이 와중에 또 정신 못 차리고 다시 박을 타면 된다며 처음처럼 박씨가 떨어진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첫만남 때도 이러고 있었는데 수미상관 엔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