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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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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bordercolor=#c68a12,#43454d><tablebgcolor=#fff,#1c1d1f><bgcolor=#c68a12,#010101><tablealign=center><-2> 판소리 열두 마당 ||
전하는 다섯 마당 수궁가 · 심청가 · 적벽가 · 춘향가 · 흥부가
사라진 일곱 마당 가짜신선타령 · 강릉매화타령 · 무숙이타령 · 배비장타령 · 변강쇠타령 · 옹고집타령 · 장끼타령

<colbgcolor=#f1f1f1,#27292d> 심청전
沈淸傳
조수황 명창과 추지훈 고수의 《심청가》 中 <심청 인당수 빠지는 대목>
작자 미상
배경 송나라조선
시점 전지적 작가 시점
갈래 판소리계 소설, 설화
주제 유교적 효(孝), 불교의 윤회사상

1. 개요2. 줄거리3. 등장인물4. 배경 변화5. 탐구
5.1. 뺑덕 어멈5.2. 비평5.3. 그 외
6. 미디어 믹스
6.1. 영화6.2. 각색판
7. 심청전이 모티브가 된 작품8. 기타

[clearfix]

1. 개요



沈淸傳

한국의 고전소설이자 판소리계 소설로, 맹인인 아버지 심학규(심 봉사)의 눈을 띄우기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효녀 심청의 이야기를 다룬다.

작자는 미상이지만 남북국시대 신라거타지 설화와 효녀 지은 설화가 심청전 스토리의 모태로 추정되고 있으며, 전라남도 지방의 홍장 설화와도 관련성이 엿보이고 있다. 참고로 위 신라의 두 설화는 모두 897년을 배경으로 한다.[1]

2. 줄거리

황해도 황주목의 마을 도화촌 출신인 심청맹인 심학규를 아버지로 두고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여의고 눈이 보이지 않아 일을 할 수 없는 아버지의 젖동냥으로 가난하게 자란 후 동냥과 각종 품팔이들을 하면서 홀로 아버지를 극진히 모시며 살아갔다.

어느 날 심봉사가 밤이 늦도록 귀가하지 않는 딸을 찾기 위해 집 밖으로 나왔는데 길을 지나가다가 실수로 개천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몽운사라는 사찰의 화주승이라는 지나가던 승려가 구해주고 그 중에게 부처님에게 공영하면 눈을 뜰 수 있다는 말에 넘어가 절에 공양미 300석을 바치겠다고 약속했다.
그 소식을 안 심청은 중국(첫 원전 기준에선 송나라)과 조선을 오고 가면서 장사를 하던 상인들이 물살이 심해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인당수 해역에[2] 용왕님을 달래기 위한 인신공양으로 바칠 사람을 찾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인당수로 몸을 던졌다.

그 전 날 일이 참으로 비극적인데, 심학규가 본인의 딸이 인당수에 몸을 던지게 될 줄도 모르고 본인이 어젯밤 좋은 꿈을 꿨다면서 혹시 딸에게 황후라도 되는 거 아니냐고 기뻐하는데, 사실은 불길한 꿈이었던지라 심청은 속으로는 울먹이면서 "꿈이 참 좋습니다."라고 일부러 안심시켰다. 물론 심학규는 나중에 이웃집 아주머니인 귀덕어멈이 밝혀주는 진실을 듣고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지게 된다는 걸 알고는 대성통곡. 얼마나 애처로운지 장승상댁 부인[3]그뿐 아니라, 뱃사공과 황주목 도화동의 마을 주민들도 안타까움에 그저 하나같이 눈물들만 적실 뿐이었다.

그 뒤, 심청의 효심에 감복한 하늘은 용왕에게 물에 빠진 심청을 구하라는 명을 내렸고 심청은 용궁에서 며칠 동안 호의호식을 누리며 꿈에 그리던 어머니와 다시 만나며 행복한 한때를 보낸다. 이후 어머니와 작별하고 용왕이 마련해준 연꽃배를 타고 다시 지상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물 바깥에서 심청을 구해준 황제를 만나 황후가 되고 맹인잔치를 벌여 그리워하던 아버지를 찾게 되었으며, 심봉사는 딸과 재회한 기쁨에 눈을 번쩍 떴다. 이에 심봉사뿐만 아니라 다른 동료 맹인들도 모두 눈을 번쩍 떴다.

잔치 이후, 심봉사는 딸과 재회하고 눈도 뜨고 황제를 사위로 두었으니 부원군이 되었고 자신을 도와준 맹인 여인[4][5][6]과 재혼하여 자식들도 두었으며 친구들과 팔도유람을 하면서 여생을 행복하게 보냈다.

황주목의 도화촌도 황후를 키워준 마을이었기 때문에 황제의 명으로 주민들에게도 포상을 내렸고 마을엔 효자 효녀들이 많이 나왔다는 내용으로 끝.

3. 등장인물

4. 배경 변화

원전에서의 무대는 조선이 아니라 송나라였다. "송나라 원풍(북송 신종때의 연호) 말년 황주 도화동이란 곳에 양반의 후예로 행실이 훌륭한 심학규라는 봉사가 곽 씨 부인과 살고 있었다"...가 첫 머리. 등장하는 지명들도 중국 남경 일대의 지명인데, 명나라인 판본도 있다. 즉, 굳이 반도에서 대륙을 넘나드는 스케일이 아니라, 그냥 중원에서 시작해서 중원에서 끝난 것이다. 심 봉사를 대륙까지 오게 한 셈이 된 부분은 구전 중 변형으로 생겨난 옥의 티 정도로 볼 수 있다. 심청을 사가는 상인들은 난징의 상인들이다. 어쨌든 현재 알려진 판은 조선 후기에서 개화기 무렵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판에서 더 희한하게 된 점은 분명 최소 조선 시대 중기로 추정되며 청나라 상인들까지 등장했는데, 결말에서 도달하는 중국명나라, 송나라 같은 중국이라는 점이다. 사실 굳이 시간을 넘거나 조선에서 강남까지 언제 가냐 하는 계산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심청의 효심이 보답받는 눈 뜬 아버지와 재회하고 황후가 되면서 도달하는 결말 자체가 일종의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이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를 증오하며 요순시대를 꿈꾸던 당시 민초들의 의식이 자연스레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다만 심청전보다 확실히 오래된 신라 설화인 거타지효녀 지은 설화에서 심청전의 뼈대가 되는 스토리가 보이고, 이들의 배경은 한반도이기 때문에 소설 자체는 한국 설화에서 유래했지만 중세로 넘어오면서 그 배경을 중국으로 설정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 다른 고전소설 구운몽도 배경이 중국 당나라지만, 원형인 조신의 꿈은 한국이 배경이다. 이는 당시 인식이 현실 역사와 소설의 구분이 분명치 않은데다, 소설에 대한 폄하가 많았던 시기라 대놓고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인 '가짜 역사'를 이미 널리 알려진 한반도의 역사 속에 끼워넣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배경을 머나먼 중국으로 설정해 추상적으로 넘어가려고 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근대 개화기 판본부터는 배경이 조선에서 시작해서 조선으로 끝나도록 수정되어서 나오는 경우가 대다수다. 심청의 고향 황주는 황해도 황주목으로 수정되고, 인당수는 황해도 지방 최서단의 장산곶 앞바다, 백령도 북쪽 해역이다. 원래 거타지 설화의 배경도 바로 이 일대이다. 장산곶 일대 해역은 한반도에서 가장 유속이 빠른 곶 중 하나로 워낙 물살이 거세 황해도에서 거둔 세곡을 한양으로 운반하던 조운선이 침몰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는데[8] 역설적으로 심청전 설화가 어느 정도 사실에 기반했다는 반증이 된 셈이다.

중국 황제는 조선의 왕으로 수정되는 게 대다수. 물론 극적인 내용을 위해 이 부분만 수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 판본도 상당히 널리 퍼져서 실제로 백령도에 심청의 넋을 모신 심청각이 있을 정도이다. 어린이용 동화에서는 사실 조선이라는 명칭도 잘 등장 안 한다. 동화 버전에서는 그냥 배경은 옛날이고 조선 왕은 옛날 어느 임금님으로 바뀌고 끝.

배경이 중국 송나라 또는 명나라인 판본 중에는 심 봉사의 이름이 심학규가 아니라 심현으로 나오는 판본이 있는데, 여기서는 심청의 신분이 진짜 선녀로 나온다.

심청의 아버지는 원래 옥황상제를 모시던 천상의 관리, 어머니는 선녀였는데, 둘이 눈이 맞았다가 지상으로 추방되는 벌을 받아 인간이 되었고, 그래서 둘 사이에 태어난 심청도 본래 선녀라는 것. 여기서는 심청이 용궁에 가자, 용왕과 함께 다시 선녀로 복귀한 심청의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고, 심청은 어머니와 함께 한참을 천계에 가서 노닐다가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는 옥황상제의 결정으로 인간 세상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나온다.

5. 탐구

5.1. 뺑덕 어멈

중간에 심학규를 등쳐먹으려는 약간 개그성 섞인 악녀로 뺑덕 어멈이란 여자가 등장하는데, 소설에는 추녀로 묘사되지만, 현대 기준으로는 미녀라는 이야기도 있다[9]. 황월영이 실은 남만계 미녀 아니었을까 하는 설과 비슷한 맥락이다.

재미있는 것은 뺑덕 어멈이 나중에 심봉사의 을 들고 쨀 때 같이 도망갔던 남자황봉사, 즉 심봉사와 같은 맹인이라는 것이다. 참고로 전라도 지역에서 전래된 이야기 중 하나에서는 왕궁의 봉사 잔치에 간 봉사들이 단체로 두 눈을 다 뜨는데 그 와중에 황 봉사는 전과가 있어서 그런지 '한쪽 눈만' 뜬다. 뺑덕 어멈은 일부 판본에선 생략되는 경우가 있으며, 경우에 따라 뺑덕 어멈이 벌 받는 장면이 들어간다.

5.2. 비평

주인공 심청은 부모를 위해 목숨까지 바친다는 점에서 효녀의 대명사로 여겨지지만 현대적인 관점에서는 정말 효녀라고 볼 수 있느냐는 의문 제기와 비판이 상당하며 토론 주제 등으로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심청이 자기를 희생해서 공양미 300석을 받고 아버지 눈이 뜬다고 그게 과연 아버지를 위한 일일까?; 라는 논의다. 사실 이는 현대뿐만 아니라 옛부터 불효로 여겨지던 일이었는데 몸이 불편함에도 심청을 아끼며 키워낸 아버지인 심 봉사가 아무리 자기 눈이 떠진다 한들 딸이 자기를 위한답시고 죽으면 평생 겪을 비극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10]

인간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는 것을 효라고 미화한다는 비판도 존재하며 심 봉사도 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생각 없이 빚을 지는 바람에 자식을 죽음으로 내몬 게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 더불어 조선시대에선 유교의 영향으로 숭유억불을 기반으로 하여 괴력난신과 인신공양 자체를 타파하는 성향이 강해졌기 때문에 조선시대 판본에 대해선 심청의 행동은 유교사회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다.

하지만 심봉사 건은 반박이 있는데, 사실 고전소설에 등장하는 '무능력한 가장' 역할 중에서 심 봉사는 현대적인 관점으로 봐도 그나마 착한 인물이다. 경제 활동도 불가능한 홀아비였음에도 심청을 키워냈고, 심청이 살아 있을 적엔 재혼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심청은 여타 고전소설 여주인공들처럼 계모에게 시달리는 일도 없었으며, 후처나 의 사탕발림에 속아 딸이나 정실부인을 내치는 가장들도 그리 중한 처벌을 받지 않는 고전소설 세계관 내에서 심 봉사는 딸에게 해를 끼치는 일도 하지 않았다.

공양미 삼백 석 건을 덥썩 문 게 과실이긴 하지만, 이것마저도 심청에겐 숨기려고 했고, 후에 인신공양 건도 심청 혼자 자처한 거고, 심 봉사는 차라리 같이 죽자며 울며 불며 말렸다. 애당초 심학규가 심청을 데리러 온 뱃사람들을 상대로 대놓고 "사람을 산제물로 바치는 개같은 풍속이 어디 있냐"는 식으로 일갈하는 판본도 있는 마당이니, 인신공양에 대한 도덕적 해이라는 주장은 트집에 가깝다.

주인공 심청은 공양미 300석을 부처님에게 바치면 아버지의 눈을 띄이게 할 수 있다고 믿어 자신을 인당수의 제물로 바쳤지만, 사실 처음부터 자신이 죽어도 아빠의 눈이 띄이지 않을 걸 알고 있었다는 말도 있다. 심청이가 황후가 된 후의 전개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는데, 심청이는 아버지를 찾기 위해 봉사들만을 초대하는 잔치를 열었다. 만약 진짜로 아버지가 눈을 떴다고 믿었다면 홀아비나 중년 이상의 남성들만을 초대하는 잔치를 열어야지, 봉사들만을 초대하는 잔치를 연 건 말 그대로 심청이는 자신이 인당수에 빠져 공양미 300석을 바친 후에도 아빠가 여전히 장님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 거라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이런 설은 고전 문학을 현대인의 시각으로 너무 과대평가했기에 벌어진 오류라는 주장도 있다. 무슨 말인고 하니, 고전 문학은 개연성이나 인과관계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거나, 앞뒤 관계가 맞지 않는 경우가 매우 자주 일어나는데, 심청이가 봉사들만 초정한 것도 일종의 설정 오류라는 것이다. 정상적으로는 심청이가 아버지가 실제 눈을 떴는지 아닌지 알 수 없어야 맞지만 독자들은 심봉사가 눈을 뜨지 못한 걸 안다. 그래서 일단은 독자들이 심 봉사가 봉사인 걸 아니까 심청이도 아버지가 눈을 뜨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유 없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요새처럼 소설이나 이야기에 심혈을 기울이는 시대에도 이런 식의 독자는 알지만 작중 인물이 알 수 없는 사실을 작중 인물도 자연스럽게 아는 경우가 자주 생기는데, 심청전에서 심청이 아버지가 눈을 떴는지 아닌지를 알지 못하는 게 맞음에도 그냥 독자들이 심 봉사가 봉사인 걸 아니까 심청이도 별 이유 없이 알고 있는 걸로 설정했다는 것이다. 만약 진짜로 심청이가 정상적으로 작중 아버지가 모종의 이유로 눈을 뜨지 못했다는 걸 알았더라면 이에 대한 심리 묘사나 이유가 나와야 하는데, 그런 거 없이 심 봉사 = 봉사니까 봉사들만 초정하자 이렇게 귀결되는 걸로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현대인들도 위에처럼 자세히 작품을 파고들어야 심청이가 심봉사가 눈을 떴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냥 지나치기 쉬운 모순인데 과거 구전으로 전해지던 이야기에서 이런 치밀한 복선이 깔려 있었다고 믿기는 어렵긴 하다.

그래서 현대에 나온 몇몇 동화 판본에서는 황제/국왕이 황주 고을에 심청의 아버지를 모셔오라고 지시를 했더니 고을 수령이 '심학규는 뺑덕어멈에게 속아 전 재산을 탕진하고 어디론가 떠나 종적을 알수 없습니다.'라고 보고를 올려서 심봉사가 눈을 못 뜬 것을 심청이 알게 되고, 심봉사의 종적을 알 수 없으니 전국 봉사들을 다 모으는 것으로 개연성 있게 수정되기도 한다.

5.3. 그 외

심학규의 눈 상태는 현대 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백내장이라고 한다. 링크

공양미 300석의 가치를 심청전의 배경인 조선시대의 가치로 따지면 초가집 50채를 살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는 SBS <대한민국 국민고시> 14회에서 언급되었다. 현대로 본다면 의 가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약 1억 가량은 되니, 지금으로 해도 심청이가 인당수에 몸을 던질 수밖에 없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을 거다. 일단 쌀 1석은 무게로 쳐서 160kg가량, 성인 남성 1명의 1년치 양식으로 여겨졌으므로, 이는 300명의 1년치 양식에 해당하는 양이다. 쌀의 가치가 현재보다 훨씬 높았고 쌀값(즉 식량 구매 비용)이 생활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던 당시 상황까지 생각한다면 성인 남성 2백~3백 명의 1년치 생활비라고 봐도 큰 문제는 없는데, 이 관점을 현대에 대입해보면, 1억이 문제가 아니라, 10억 이상에 이를 수도 있는 무시무시한 금액이다.

현대 한국의 농촌에서 일반적인 수준의 땅을 가진 농민들으로부터 국가가 수매하는 쌀 물량이 농가당 800kg(5석) 포대로 10~20개, 50~100석 안팎이다. 이처럼 공양미 300석은 어지간한 대농이 아니면 농업기술 수준이 발달한 지금도 생산하기 어려운 물량인데 하물며 조선시대에는...

6. 미디어 믹스

6.1.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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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각색판

같은 판소리계 소설인 춘향전과 함께 창극, 오페라, 뮤지컬 등 여러 형태의 음악극으로 각색되고 있다.

오페라로는 1972년윤이상이 하랄트 쿤츠의 독일어 대본으로 뮌헨 올림픽 조직 위원회의 예술 행사를 위해 작곡한 것과 1978년에 김자경 오페라단의 위촉으로 김동진이 작곡한 것이 있다.

뮤지컬로는 심청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창작뮤지컬 <블루 블라인드>라는 작품이 있다. 이 작품에 배우 박해미, 박상면, 이태원, 우지원 등의 기라성같은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고 2023년에 의정부, 성남 등의 지역에서 공연했다. 기사에 따르면 2024년 미국 뉴욕에 진출 예정으로 세계적으로 우리나라 전통 소재의 신개념 뮤지컬을 글로벌 팬들에게 선보이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고 한다.

현대에 소설로 각색된 판으로는 1978년 발표된 최인훈의 희곡 '달아 달아 밝은 달아'가 있다. 여기서 심청은 청나라에 몸 파는 여자로 팔려갔다가 조선인 김서방과 사랑에 빠져 조선으로 돌아오지만 도중에 왜구의 습격을 받는다. 이후 왜구들의 노리개로 살다가 겨우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아이들에게 미쳤다고 손가락질 받는 눈 먼 노파가 된다. 당시 효녀 심청을 '갈보'로 비하했다고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실제로 초연 당시 관객들이 공연 도중에 열받아서 손가락질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최인훈 씨는 이에 대해 딸이 등 떠밀려 제물이 된다는 것이 민족의 아름다운 유물로 생각되지 않았다며 자신의 결정에 따라[11] 집안을 위해 몸을 파는 것이 오늘날에 비춰서도 오히려 현실적이지 않느냐라며 반박했다. 그리고 연극이란 동시대인들과 호흡하는 것이라며 단칼에 비난을 잘라 버렸다.

KBS에서 1980년대 후반 《TV 문학관》을 통해 이 희곡을 드라마화해서 방송하려고 했는데, 결국 대본 심의부터 논란이 일어나던 끝에 촬영 다 해서 완성을 해놓고도 미방분으로 묻혀,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야 편집을 많이 해서 내놓았다. 그래서 결말이 원작과 다르게 상당히 애매하다.

유니버설 발레단에서 1986년 처음으로 심청을 발레로 공연했다.

1990년대 말~2000년대 초에 유행했던 사오정 시리즈에서는 삼장법사가 귀가 나쁜 사오정에게 부처님께 공양미 300석을 바치면 귀가 잘 들리게 된다고 했는데 사오정이 그 말마저 잘못 알아듣고 고양이 300마리를 절에 시주했다는 유머가 있다.

2003년에 단행본화된 황석영의 소설 '심청'도 '달아 달아 밝은 달아'와 마찬가지로 심청이는 노인과 잠자리를 함께 하며 양기를 북돋워주는 동녀로 팔려간다. 허나 소설의 묘사는 야설 수준으로 매우 노골적이다. 궁금하신 분은 직접 읽어보시길 바란다. 근데 사실 노인과 소녀가 같이 잠을 자서 소녀가 노인의 양기를 북돋와준다는 게 뭘 의미하겠는지는 명백하지 않은가? 단, 이 부분은 좀 오해가 있는데... 당시 배경에서 '잠자리에서 노인의 양기를 북돋워주는 동녀'란 꼭 노인과 섹스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동녀를 들이는 노인 중에는 말 그대로 늙어서 안 서는 노인도 적지 않았고, 이런 경우 말 그대로 노인과 끌어안고 잠만 잔다거나 한의학(또는 중의학)에 도교로부터 파생된 요상한 신비주의적 처방 따위를 시행해주는 경우도 많았다.[12][13] 어쨌든 심청은 난징과 대만 찍고 자그마치 싱가포르까지 갔다가[14] 류큐 왕국에서 왕족과 혼인했다가 류큐가 망해가면서 일본으로, 마지막이 되어서야 조선으로 돌아온다.

어쨌든 심청은 난징과 대만 찍고 자그마치 싱가포르까지 간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19세기 중반 즈음. 결국 류큐 왕국에서 왕족과 혼인했다가 류큐가 망해가면서 일본으로, 마지막이 되어서야 조선으로 돌아온다.

2002년 MBC에서 기획한 마당놀이인 '심봉사 심봤다'는 심청전의 후일담을 그리고 있다. 인간계의 왕후가 아니라 용궁의 비가 된 심청은 심학규를 용궁으로 데려와 눈을 뜨게 했지만, 심학규는 딸의 위세를 믿고 점점 교만하게 굴었다. 심학규는 중년의 애환을 극복하고자 잠자고 있던 물개 장군의 해구신을 몰래 잘라 먹었다. 졸지에 고자가 된 물개 장군이 용왕에게 범인을 잡아달라 읍소하면서 심학규 부녀는 용궁에서 쫓겨나게 되었으며 덤으로 심청의 눈을 심봉사 대신 멀게 했다. 육지로 쫓겨난 그는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며 심청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이번에는 자신이 인당수에 몸을 던진 뒤 용궁에서 다시 눈을 뜬 심청과 재회해서 행복하게 사는 거로 끝. 심청 역은 판소리 가수 김정민이, 심학규 역은 이덕화가, 용왕 역은 최종원이 맡아 열연했다.

2022년 한인 하버드대생 줄리아 류가 LG gram 360의 지원을 받아 심청전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7. 심청전이 모티브가 된 작품

8. 기타

완판본에서는 맹인 잔치 마지막 날까지 아버지가 나타나지 않자, "몽운사 부처님이 영험하여 그동안에 눈을 떠서 천지만물을 보시어 맹인 축에서 빠지셨는가"라며 걱정을 한다. 혹은 또 다르게 몹쓸 일을 당해 죽었거나 아니면 정말로 눈이 떠져서 안 왔는지도 생각한다. 물론 이렇게 생각한 직후에 심학규가 등장.

이후 심학규가 눈을 뜨기까지가 참 눈물겨운데 심청이 심학규를 보고 아버지임을 알고는 "아버지!" 라고 부르지만 심학규는 "대체 누가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냐"고 하는데 그러자 심청이 "아직도 눈을 못 떴냐"며 절규했다. 하지만 심학규는 여전히 자기 앞에 있는 게 딸인 심청인 줄 모르고 "내겐 자식이 없고 있긴 했으나 몹쓸 아비 때문에 인당수에 빠져 죽었다. 자식 팔아 먹은 내가 살아 뭣하겠냐. 어서 목을 끊어 달라."고 했다. 이에 또 심청이 절규를 하는데 그러자 심학규가 정말 앞에 있는 게 심청인가 싶어 하면서 "내가 눈이 있어야 보지, 어디 내 딸 좀 보자"라고 울부짖으며 통곡하는 순간 눈이 떠진다.

원전에서도 "아버지 눈을 띄우기 위해서" 인당수에 뛰어들었다는 묘사보다는 그저 아버지가 생각없이 승낙한 공양미 삼백석 빚값 갚으려고 뛰어들었다는 뉘앙스가 강하다. 눈을 띄운다는 소리에 승낙했는데 돌아와 생각해보니 실제로 지불할 능력은 없고, 부처님을 속인 죄까지 될까 걱정하고 있었다.

판본에 따라서는 공양미 삼백 석 이야기를 한 스님이 심 봉사가 "공양미를 바치겠다"고 호언장담하자 그의 누추한 행색을 보고는 '부처님께 약속하고 안 지키면 앉은뱅이 된다'고 겁주는 경우도 있다. 심 봉사가 그 자리에서는 객기를 부려 끝까지 약속을 했지만, 집에 돌아와 제정신이 들고서는 앉은뱅이 되겠다며 안절부절 못했다. 이 때문에 심청이 아버지의 심상찮은 모습을 보고 추궁(?)한 끝에 공양미 삼백 석 바치기로 한 약속에 대해 알게 되었다.

1990년 초반에 독일에서 각색하여 뮤지컬로 만든 바 있는데 독일인 극작가도 용왕이 심청에게 '너 아버지 여태 맹인' 이라고 알려주는 게 나오는 걸로 각색했다고 한다.

심청이는 사실 기황후였다고 하는 설(?)도 대학에서의 강의 중 교수와 학생의 문답 형식 이야기로 커뮤니티, SNS 등지에서 떠돈 적이 있다. 그런데 사실은 웃긴대학 유저가 지어낸 산다이바나시(3가지 제시어로 만든 이야기)라고 한다. 링크

전라남도 곡성군에서는 심청전의 원류가 곡성이라며 군 홈페이지에 심청 캐릭터를 상징물로 올려놨다. 이는 곡성 관음사에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홍장 설화'에 기반한 것인데, 1729년(영조 5년) 관음사에서 목판으로 간행된 '옥과현 성덕산 관음사사적(玉果縣 聖德山 觀音寺事蹟)'[18]에 따르면 옛날옛적 대흥(大興) 땅[19]에 원량(元良)이라는 장님이 살고 있었다. 그는 나이가 늦도록 장가를 가지 못하다가 늦장가를 들어 백제 고이왕 11년(274년), 홍장(洪莊)이라는 딸을 낳는다. 그런데 아내는 딸을 낳은 뒤 곧 요절하고 말았고, 원량은 젖동냥을 하며 홍장을 지극정성으로 키운다. 홍장은 성장한 뒤 효심이 지극하여 갖은 일을 무릅쓰고 아버지를 봉양하였는데, 어느 날 홍법사(弘法寺)의 성공(性空)이라는 스님이 원량의 집을 방문하여 시주를 요청하나 원량은 가난하여 할 수 없다고 답한다. 이에 공양도 못 하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여 안색이 좋지 않았던 아버지를 본 홍장이 자초지종을 물어보고, 이야기를 들은 홍장은 평소에도 불심이 깊어 관세음보살께 매일 아버지의 눈이 뜨이게 해달라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그날 밤은 공양을 못 한 아쉬움까지 담아 기도를 한다. 다음날 오후, 모르는 사람들이 원량의 집에 찾아오는데, 그들은 서진 혜제(서진)의 황후가 세상을 떠났는데, 실의에 빠진 황제가 꿈에 나타난 신인(神人)의 뜻에 따라 새 황후가 될 사람을 찾기 위해 자신들을 백제에 파견했고,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여기까지 왔다고 답하였다. 하늘의 뜻이라 여긴 원량 부녀는 그들이 가져온 예물을 성공에게 시주하고 홍장은 혜제의 황후가 되기 위해 떠난다. 황후가 된 홍장은 혜제의 총애를 받으며 계속해서 아버지의 눈이 뜨이게 해달라고 관세음보살께 기도를 드린다. 그리고 불상과 나한상 등을 만들어 배에 실어서 백제로 보냈는데, 홍장이 보낸 배는 감로사(甘露寺)[20], 금강사(金剛寺), 경천사(敬天寺) 등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또 훗날 홍장은 다시 관음상을 주조한 뒤 금박을 한 돌배에 실어 보냈고, 이 배는 낙안포(樂安浦)[21]에 도달하였는데, 사람이 없는 배를 조사하기 위해 병사들이 다가가자 배가 저절로 움직여 떠나가 버렸다. 또한 홍장이 태어난 지 10년째가 되던 해의 어느 날 옥과(玉果)[22]에 살던 어느 부부의 집에 딸이 태어난다. 그 부부는 원래 혼인한지 10년이 되도록 아이가 없었는데, 딸을 낳기 전 해에 꿈에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딸을 낳게 될 것이며 딸의 이름을 성덕(聖德)이라 짓도록 하라 하였다. 16세가 된 성덕은 바닷가를 거닐다가 사람도 없는데 저절로 다가오는 배를 보았다. 배 안을 살펴보니 관음상이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놀란 성덕은 부모님과 함께 관음상을 모시기 위한 땅을 찾으러 다니기로 한다. 당시 성덕 가족은 관음상을 직접 갖고 모실 땅을 찾아다녔는데, 도중에 쉬었던 곳마다 정자를 세웠고, 대취정, 연봉정, 샘정, 미타정, 율목정, 불휴정, 흥복정, 현정, 삽정, 구일정, 운교정 등이 그것이라 한다. 그러다 지금의 전라남도 곡성군 오산면 선세리에 이르니 갑자기 관음상이 무거워져서 더는 옮길 수 없었고, 그래서 그 곳이야말로 관음상을 모실 곳이라 여긴 성덕 가족은 그 자리에서 관음사를 창건하고 관음상을 봉안하였다. 이렇게 관음사를 창건한 해가 백제 분서왕 3년(300년)이었다 한다. 성덕은 이후 관음사 자리에 움막을 짓고 기도를 매일 드렸는데 산 아래에 살던 사람들이 같이 기도를 드렸더니 모두가 성취되는 기적이 있었다. 이러한 소문이 퍼지면서 전국 방방곡곡에서 사람들이 찾아왔고 성덕을 관음사의 개산조(開山祖)로 하여 그녀의 이름을 따 주산(主山)의 이름도 성덕산(聖德山)이라 하였다 한다. 한편 원량은 딸을 서진에 보낸 후 매일 눈물을 흘리다 어느날 홀연히 눈을 떴고 95세까지 장수하며 편안하게 살았다고 한다.

참고로 판본에 따라 혜제의 황후가 아닌 호족 회계공(會稽公)의 아내가 되었다고도 한다. 물론 이는 설화에 불과하긴 하지만 실제로 건너갔다 해도 당시의 역사적배경으로 볼 때 해피엔딩으로 끝났을 확률은 낮다. 또한 혜제는 경도의 지적장애 혹은 경계선 지능이었을 것으로 확실시되는 인물이기도 하며, 죽었다는 그의 첫 황후는 그 유명한 혜황후 가씨, 즉 가남풍이 된다(...). 죽었다는 황후의 모델로는 정실은 아니지만 가남풍보다 더 먼저 죽은 후궁인 사구가 그럴듯하긴 한데, 바로 그 가남풍이 죽인 인물인지라 사망했을 무렵에는 황실도 이미 심히 막장인 상황이었고, 곧 반란이 일어나 가남풍도 같은 해(300년)에 바로 죽는다.
[1]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문제가 있다. 심청전의 원형인 심청 설화로부터 전해진 고전소설 심청전은 판소리계 소설이 아닌 문장체 소설로, 현존하는 걸로는 경판24장본, 한남서림본 등이 있다. 따라서, 심청전의 판소리계 소설인 완판본 계열을 다루게 될 때는 문장체 소설 심청전으로부터 판소리 심청가가 나타났고 그 심청가가 다시 판소리계 소설 심청전의 원류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욱 적절할 것이다.[2] 위치는 북한의 장산곶 앞에 있는 바다라고 한다.[3] 심청을 양녀로 들이고 싶어한 승상의 본처. 아들만 넷이라고 한다.[4] 점술을 업으로 하며 살아 왔으며 자신과 심학규가 혼인할 것을 예지몽으로 알았고 그가 딸과 재회할 것도 심학규가 꾼 예지몽을 통해 알려주었다. 다른 판본에선 귀덕어멈과 결혼한다.[5] 참고로 이 시점에선 눈을 떴다.[6] 이 과정이 실로 흠좀무한데 꿈에서 해와 달이 바다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해와 달은 사람의 눈과 같은데 바다로 떨어졌으니 내 신랑 역시 맹인이겠구나'라고 예견했다는 것. 심학규가 딸 심청과 재회할 것도 전날 심학규가 '가죽으로 만든 북소리가 들리고 꽃잎이 떨어지면서 자신이 덩실덩실 춤을 춘' 꿈을 꿨는데 그녀가 '북소리는 큰 잔치에 초대받아 가게 될 것', 그리고 꽃잎이 떨어지는 것은 그리워하던 사람(여기서는 딸 심청)과 만나게 되는 것' 그리고 기쁨에 겨워 춤을 추게 될 것이란 해석을 해 줬다. 그러나 심학규는 별로 크게 마음에 두지 않았다.[7] 태몽을 꾼 곽씨 부인은 아들이기를 바랬으나 심학규가 아들을 두어 잘못해서 조상에 욕을 끼치게 하느니 딸을 두어 곱게 기르는게 더 낫다고 설득한다.[8] 천안함 피격 사건도 이 근처에서 발생했었다. 구조•인양 작업에 애를 먹을 정도로 유속이 빨랐던 점을 생각해 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9] 상술된 외모 묘사를 잘 조합하면 은근히 안젤리나 졸리와 비슷하다. 검은 피부에 왕방울 같은 눈, 튀어나온 광대뼈에 볼은 움푹 들어가고 입은 크고 입술은 썰어 놓으면 한 접시는 나올 판이라고 신명나게 조롱한다.[10]1박 2일 시즌 1》에서 은지원이 이 논리로 작가와 토론배틀을 벌이기도 했다. 그 정신으로 열심히 살 생각을 해야지 왜 죽을 생각을 해요...![11] 이것도 100% 자기 결정이라고 할 수는 없다.[12] 애초에 도교 신비주의에서는 남성이 사정하면 '양기를 잃는다' 고 여겼다는 것도 생각하자.[13] 그렇다고 무슨 플라토닉한 관계는 당연히 아니고 어쨌든 성착취의 피해자가 되는 내용이다. 하술할 그녀의 심청 작가도 트위터에서 이에 대해 비판한 적이 있다.# 뭐 링크를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진짜로 각잡고 분석해가며 "비판"이라고 부를 만한 뭔가를 한 건 아니고, "현실적으로는 이게 개연성이 있겠지만 나는 차마 그러고 싶지 않다"는 일종의 희망찬가라고 할 수 있다.[14]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19세기 중반 즈음이다.[15] 리메이크 전에는 동화책을 얻기 위해 공양미 삼백석을 구해야 하는 퀘스트를 줬었는데 이 공양미는 아랫마을 위의 탑에서 서식하는 몬스터를 잡아야 하나 얻었는데 아이템이 안 나올 때도 있어 최소 300마리를 잡아야하는 노가다였다.[16] 던전의 원 주인은 마룡 카이저투스였지만 500년 전, 베르키스에게 한방에 끔살당했다.[17] 새 주인이 된 베르키스가 워낙 귀차니스트이다보니 던전 관리를 잘 안 해서 다들 500년 동안 굉장히 힘들게 살고 있었다. 현재까지 나온 마수들은 만티코어, 리빙 아머, 가고일, 살라만더 등. (사실 말만 마수지 소설 장르가 라이트노벨이다보니 다들 귀엽게 나온다.) 던전은 서양 판타지 풍이지만 청이가 조선 사람이다보니 베르키스를 용왕님이라 부르고 만티코어는 대호님, 리빙아머는 갑옷님, 가고일은 석상님, 살라만더는 석척님이라 부른다.[18] 이 사적은 백매자(白梅子)선사가 관음사의 장로 우한자(優閑子)에게 들은 관음사의 창건 유래 및 원통전을 해체복원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상량문 기록 등을 합쳐 정리한 기록이라 한다.[19]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 다만 설화의 배경과 상당히 괴리된 곳이기도 하고 현대에도 곡성이나 인근 지역에 '대흥마을'이 여러 곳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와전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20] 설화의 배경상 전라남도 순천시에 위치한 송광사의 감로암(甘露庵)을 가리키는 것 같다.[21] 현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22] 현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