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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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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e8b57><colcolor=#ece5b6>
북송 제6대 황제
신종 성황제 | 神宗 聖皇帝
파일:Shenzong.jpg
출생 1048년 5월 25일
북송 동경 개봉부 복왕 사저
(現 허난성 카이펑시 구러우구)
즉위 1067년 1월 25일
북송 동경 개봉부 변경 황궁
(現 허난성 카이펑시 구러우구)
사망 1085년 4월 1일 (향년 37세)
북송 동경 개봉부 변경 황궁
(現 허난성 카이펑시 구러우구)
능묘 영유릉(永裕陵)
재위기간 북송 황태자
1067년 1월 10일 ~ 1067년 1월 25일
제6대 황제
1067년 1월 25일 ~ 1085년 4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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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e8b57><colcolor=#ece5b6> 성씨 조(趙)
중침(仲鍼) → 욱(頊)
부모 부황 영종
모후 선인성렬황후
형제자매 4남 4녀 중 장남
배우자 흠성헌숙황후, 흠성황후, 흠자황후
자녀 14남 10녀
작호 광국공(光國公) → 회양군왕(淮陽郡王) → 영왕(潁王)
묘호 신종(神宗)
존호 소천헌고문무인효황제
(紹天憲古文武仁孝皇帝)
시호 소천법고운덕건공영문열무흠인성효황제
(紹天法古運德建功英文烈武欽仁聖孝皇帝)
연호 희녕(熙寧, 1068년 ~ 1077년)
원풍(元豊, 1078년 ~ 1085년)[1]
절일 동천절(同天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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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2.1. 황제 즉위 전2.2. 재위 기간
3. 대외 방면
3.1. 서하3.2. 베트남
4. 평가5. 가족 관계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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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송의 제 6대 황제. 묘호는 신종(神宗), 시호는 소천법고운덕건공영문열무흠인성효황제(紹天法古運德建功英文烈武欽仁聖孝皇帝). 휘는 조욱(趙頊). 전대 황제인 송영종선인성렬황후 고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2. 생애

2.1. 황제 즉위 전

1048년 5월 25일(음력 4월 10일), 복안 의왕궁에서 복왕 조윤양의 13번째 아들인 조종실[2]과 인종의 계후인 자성광헌황후의 조카[3]이자 고준보의 딸인 고도도[4]의 사이에서 적장자로 태어났다. 초명은 중침(仲针)이었다. 인종 가우(嘉佑) 8년(1063년)에 광국공(光国公)에 봉해졌고 아버지인 조종실[5]이 인종의 뒤를 이어 북송의 제5대 황제 영종이 되고 난 뒤, 치평(治平) 원년(1064년)에 회양군왕(淮陽郡王), 영왕(潁王)에 봉해졌다. 치평 3년(1066년) 황태자가 되었고 휘를 욱으로 바꿨다. 1년 후 아버지 영종이 붕어하자 즉위하였다.

2.2. 재위 기간

당시 북송은 평화로운 듯 하면서도 여러 가지 모순에 빠져 있었는데, 가장 시급한 문제는 서하요나라에 바치는 막대한 세폐, 관료의 증가로 인해 발생한 관료제 유지 비용 증가, 황실의 비용 증가, 군사비 지출 증가 등으로 인한 재정 적자였다. 이러한 재정 적자는 자연스레 농민들을 압박했고, 농민들은 지나친 세금을 견디지 못하거나 대지주들에게 부당한 방법으로 땅을 빼앗기며 유랑민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20살의 젊은 나이에 즉위한 신종은 이러한 송나라 내부 사정과 북방 민족에 억눌리고 있는 송의 현실을 타파하고 싶어했다.[6]. 특히 그는 당태종처럼 송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싶어 했다. 이를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군사력을 키워야 했다. 그러나 군사력을 키우는데 있어 가장 큰 문제는 국고였다. 당시 북송의 국고 부족 현상은 사마광의 지적처럼 진종 무렵부터 시작돼 시간이 지날수록 지나친 재정 낭비로 심화되고 있었다. 따라서 신종의 뜻대로 되기 위해선 재정 확보를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 당시 조정의 중신들이던 한유, 사마광 등은 긴축정책과 함께 신중론을 주장하며 젊은 황제가 구상하던 급진적인 개혁을 반대했다. 이에 신종은 개혁의 적임자를 찾았고 왕안석을 추천받아 파격적으로 한림학사로 임명하고, 그를 중앙으로 불러들이게 된다.[7]

신종의 절대적인 믿음과 지원 아래 왕안석은 여혜경, 소철 등을 새로 꾸려진 개혁 기구에 배치했고, 세수 파악을 위해 유이 등을 조사단에 넣어 전국 각지로 파견했다. [8]

이후 왕안석은 부국 강병을 목표로 신법을 실시했다. 그 신법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왕안석의 주도 아래 진행된 신법은 그의 구상대로만 된다면 당시 북송의 농민과 소상인들을 보호하고 대지주, 대상인, 고리대금업자들의 횡포를 막아 세수를 증대시키고 군사력을 강화하려는, 그 당시 북송에 꼭 필요한 개혁안이었다.

신종은 왕안석의 개혁안을 입안받고 난 뒤, 처음에는 열렬히 지지하였다. 따라서 왕안석은 이런 신종의 지지를 등에 업고 자신을 따르던 관료들과 함께 전격적이고 빠르게 개혁안을 실시해 나갔다. 그러나 당장 자신들의 이익이 줄어드는 것을 두고보지 않았던 대지주, 대상인, 고리 대금 업자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여기에 더해 이들 계층에 해당되었던 대다수의 사대부들도 신법을 반대하는 '구법파(구법당)’을 결성했다. 그 구법파의 대표적인 인물이 사마광이었다.

사마광과 왕안석은 서로 정치적으로 반대되는 입장에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서로의 학문적 식견과 개인적 능력을 인정하고 서로를 존경하고 있었다. 사마광과 왕안석이 살아있을 때에는 합리적인 토론과 논의가 이루어졌지만, 사마광이 집권 후 8개월만에 병사하면서 그들의 사후 신법파와 구법파의 대결은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었고 신법을 무기삼아 반대파 숙청이 끊임없이 벌어졌다. 참고로 철종 초 재집권한 사마광이 신법의 대안을 구상하고 있었다는 지적도 있긴하나, 그가 얼마 안가 사망해 8개월동안 진행한 것은 고작 신법을 혁파하는 정도였다. 더해서 신•구법당파의 대립은 왕안석, 여혜경, 한강, 증포, 장돈 등 강남 출신 관료들과 기존의 화북 출신 관료들간의 갈등의 모습까지 띄게 되면서 진종, 인종 연간 급격히 발전한 강남 일대와 기존의 화북 일대 사이의 대결 양상까지 띄게 되었다.

구법파와 신법파의 대립이 극심해지고 있던 신종 7년(1074년), 하북에서 큰 가뭄이 들자 구법파에서는 이 가뭄을 "신법에 대한 하늘의 노여움"이라고 주장하며 왕안석의 퇴진 운동을 벌였다[13]. 더해서 원래부터 아들 신종의 개혁 정책을 반대해왔던 선인성렬황후까지 나서서 왕안석의 퇴진을 주장하자 결국 신종은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왕안석을 지방으로 좌천시키기에 이른다.

왕안석이 좌천되고 난 이후부터 지극히 권세와 개인적 영달을 구하기 위해 합류한 인사들이 많았던 신법당파는 구심점을 잃고 서서히 분열했다. 그러다가 왕안석이 다시 복귀했지만 이 무렵부터는 구법당 신료들의 공세뿐만 아니라 왕안석의 보복을 두려워한 여혜경 등 일부 신법당 사람들이 앞장서 왕안석을 다시 탄핵했다. 이미 2년 전, 동생 왕안국을 잃었고 얼마 전에는 과거 급제 후 그 재능을 인정받고 있던 아들 왕방마저 33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까닭에 왕안석은 믿었던 친구, 측근들의 배신까지 겹치자[14] 낙향 후 은둔생활을 선택했다. 이후 왕안석은 금릉에서 자신이 주도한 신법들이 신종 사후 선인태후와 사마광 등 구법당에 의해 폐기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며 쓸쓸히 사망했다.

왕안석 실각 이후에도 조정 내에서는 여혜경, 한강 등을 중심으로 여전히 신법이 추진되고 있었지만, 신종이 1085년 젊은 나이에 사망하고[15] 어린 철종이 즉위하면서 신종의 모후 선인태후 고씨와 새로 재상이 된 사마광에 의해 신법은 완전 폐기조치됐다.

신종은 죽은 뒤 영유릉에 안장되었고, 신종의 뒤는 불과 9세 밖에 되지 않은 장남 연안군왕 조후가 이었다. 이때 신종은 병석에 있었기에 대신들이 먼저 후계건저회의를 건의했고 신종과 선인성렬황후의 허락을 얻었다. 이후 선인성렬황후와 대신들의 회의를 거쳐 신종의 아들 연안군왕이 황태자로 책봉된 뒤, 얼마안가 신종이 죽자 제위를 이었다. 철종의 나이가 어렸던 까닭에 신종의 어머니 선인성렬황후가 수렴청정을 맡았고 사마광이 선인성렬황후에 의해 재상이 되었지만 왕안석과 사마광 모두 그 다음해(1086년) 잇달아 죽고 달라진 분위기 속에서 구법당파와 신법당파 사이의 당쟁은 격화되었다.

연경을 회복하는 자는 왕으로 봉하겠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16]

신종 재위 기간 동안이던 1078년에 송나라와 고려는 84년만에 재수교했는데, 이때 고려의 국왕은 문종이었다.

3. 대외 방면

3.1. 서하

신종은 요와 서하가 북송을 노리는 상황을 극복하려고 했다. 당시 요나라는 강대하여 힘든 상황이었다. 경력의 화의 이후에도 북송과 서하는 소규모 분쟁이 있었는데, 충악[17]이 1067년 조정의 허가도 없이 서하의 수주를 공격하여 탈취하자, 서하군의 반격으로 많은 군대가 죽었던 것이 그것이다.[18] 1068년에는 왕소평융책[19] 3편을 올려 여러 소국으로 분열된 티베트를 정벌할 것을 주장하였는데, 왕안석과 신종은 이에 적극 찬성하였고, 왕소는 1071년부터 1073년까지 왕안석의 지지 하에 유용가가 이끄는 토번 부족을 귀순시킨 뒤 토번군을 무찌르고 하황 일대[20]로 영토를 확장했다.[21] 이후 1081년 서하의 황제 이병상이 태후 양씨와 양을매 등에게 감금되는 등 서하에 내분이 일어나 본격적으로 서하를 침공했는데, 이헌[22]과 충악[23] 등을 필두로 진군하여 처음에는 제대로 진행되는 듯했다. 그러나 각 장수들 간에 단합이 되지 않았고, 보급 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24][25][26] 이에 서하군의 역공을 받아 대패하였다.(오로벌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에도 서하를 정벌하려 시도하였는데, 이번에는 여러 개의 진로로 나누어 공격하는 대신 한 곳에서 진격하기로 하였다. 영락성을 수축하고자 했으나 충악의 반대에도 불구하고[27] 심괄, 서희의 주도 하에 영락성을 쌓아 서하를 방어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서하군의 공격을 받아 북송군이 패하고 서희는 난전 중 전사하고 말았다.(영락성 전투)[28][29] 신종은 서하가 여전히 꺾기 어렵다는 상대인 걸 깨닫고 신료들 앞에서 통곡하고 만다.[30] 참고로, 신법당의 실각 이후 구법당이 집권하자 구법당은 토번에 하황을 넘겨주었고, 이후 시간이 흘러 채경왕후에게 하황을 탈환하라는 명을 내렸으나, 토번과 서하가 결탁하는 등 토번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휘종 시기 동관과 왕후가 신법당 실각 이후 구법당이 토번에 넘겨주었던 하황을 수복하고 청당[31][32] 지역으로 북송 영토를 확장한 데 이어, 황두회흘까지 정복함으로써 농우도호부를 설립하게 된다.

3.2. 베트남

1075년, 재상 왕안석은 대월을 토벌할 준비를 하였고 이를 눈치챈 리트엉끼엣은 10만의 병력을 이끌고 송나라 국경으로 쳐들어가서 선제 공격을 감행하여 40일간의 교전 끝에 승리한다. 송나라 측은 당시 대월(베트남)의 적수인 참파와 크메르 제국을 끌어들였다. 이에 리트엉끼엣은 강바닥 아래에 함정을 설치하여 1000명 이상의 침공군을 몰살시켰고, 결국 지친 대월과 송은 화평조약으로 합의를 보면서 전쟁을 종결짓는다.(송월희녕전쟁 참고)

4. 평가

파일:북송 신종.jpg
왕안석의 사람됨은 고집스럽고 자신하여, 조종의 뜻을 알고 유계(幽薊)와 영무(靈武)를 삼켰지만 여러 번 전쟁에서 패배하였고, 신종은 분연히 장차 여러 날의 치욕을 설욕하고자 했지만, 적당한 바가 아직 없었고, 결국 편견과 정도를 벗어난 학문이 일어나 그것을 탔다. 청묘법(靑苗法)·보갑법(保甲法)·균수법(均輸法)·시역법(市易法)·수리법(水利法)이 이미 제정되었지만, 천하는 흉흉하고 소동이 벌어지며, 통곡하고 눈물을 흘리는 자들이 끊임없이 나왔다. 신종은 끝내 깨닫지 못하였고, 바야흐로 단연히 원로들을 쫓아냈으며, 간언하는 신하들을 물리쳤으니, 그 행하는 바에 의심이 없었다. 끝내 조종의 좋은 법과 아름다운 뜻은 퇴보하였고 거의 다하기에 이르렀다. 이때부터 간사하게 남에게 아첨하는 이들이 나날이 나아갔고, 인심이 나날이 떠나갔으며, 화란이 나날이 일어났다. 안타깝구나!
송사의 논찬
결과적으로 신종 대의 개혁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오히려 내재되어 있던 갈등이 잘 정비된 관료제 속에서 격화된 당쟁으로 연결되었다.[33] 또 추진된 정책들이 좌초되면서 사회 모순은 심해져만 가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평가받는다. 즉, 그의 묘호인 신종에서 드러나듯 ‘개혁을 추진했지만 미완으로 끝이 나고, 재위 기간 동안 칭송할 업적도 애매해서 뚜렷한 특징을 잡기에도 애매한 황제’ 라고 평가받고 있다.

당장 신종 생전 희녕변법 추진 과정에서 조정은 찬반 논쟁으로 당쟁이 벌어졌고, 타협점이 사라질수록 당쟁은 커져만 갔다. 그리고 당쟁 속에서 신•구법당 관료들이 탄핵되고 지방으로 좌천되는 일이 빈번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신종 본인도 지치고 동력을 상실해갔으며 설상가상 신종이 젊은 나이에 승하하게 되었다.

신법 추진 후 현실에서도 문제가 여기저기 터져나왔다. 특히 인종 말부터 줄어드는 세수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추진한 개혁이 모순만 심화시키고 신법 중 일부를 악용한 관리들의 등장[34]으로 이전에는 없던 탄핵과 숙청, 부정부패마저 만들어버렸다. 또 신법의 미숙함으로 재정 적자 폭은 완화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오히려 세수는 점점 줄어들었고[35] 민생은 피폐해졌으며 군사력은 나날이 약해져 갔다. 따라서 신종 사후 송나라는 각종 모순들이 터지고 당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약해진 군사력을 가지고, 쇠퇴하는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등장한 금나라을 상대해야 했다.

이런 까닭에 신종이 죽은 뒤, 어린 철종을 대신해 선인성렬황후가 수렴청정을 할 때 정권을 잡은 구법당파(원우당파)는 신종이 추진했던 신법 조치들을 즉시 폐기했다[36]. 그러나 사마광이 재상이 된 지 8개월만에 죽으면서 제대로 된 후속책이 나오지도 못했고, 선인성렬황후가 죽고 철종이 친정을 시작하면서 다시금 장돈 등 과거 왕안석과 신법을 추진해 온 원칙론적인 신법당파들이 돌아오면서 당쟁은 심화되고 타협점을 찾기 힘들어졌다. 할머니 사후 친정을 하게 된 철종 역시 아버지가 추진했던 신법을 다시 펼치려 했지만 이마저도 불과 25세의 나이에 철종이 요절하면서 미완의 개혁으로 끝나버렸고, 철종의 짦은 친정기 동안 원우당인 사건, 맹황후 폐출 사건 등이 벌어지면서 신•구법당 감정의 골은 깊어지게 되었다.

이후 흠성헌숙황후 상씨와 증포, 채변 등의 결정으로 가장 황제감이 아닌 휘종이 즉위한 이후의 송나라는 철종 연간보다 당쟁이 더 심해졌다. 특히 철종이 자신의 생각을 펼치기도 전에 갑자기 죽고 난 뒤, 제왕 교육도 받지 못한 휘종 대신 섭정을 맡은 상태후의 조치들은 말그대로 미봉책에 가까웠고, 이마저도 알맹이 없는 과거 회귀적인 성격이 강했다.[37] 더해서 수렴청정을 하던 상태후는 철종의 섭정을 했던 시어머니 고태후처럼 안목이 뛰어나거나 유능한 인물도 아니었고 휘종이 올바른 제왕이 될 시간도 벌어주지 못하며 1년여만에 사망했다. 당연히 재목도 아니었고 준비도 안 된 휘종이 친정을 하고 난 뒤, 그의 총애를 받은 채경에 의해 신법을 무기삼아 다시 원우당파 사건이 터지게 된다. 이때 상태후에 의해 복권된 맹황후가 다시 폐출되고 각지에 원우당비가 설치되면서 과거의 명신들까지 당쟁에 포함시키는 등 철종 친정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당쟁의 규모는 커지게 된다. 특히 휘종의 총애를 받으며 권력을 쥐게 된 채경은 집권 이후 꾸준히 구법당, 신법당에 상관없이 자신과 그 무리를 따르지 않으면 모조리 쫓아냈다.

이렇게 채경이 중심이 된 간신들이 신법을 무기삼아 정적들을 내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휘종은 채경이 탄핵되더라도 다시 복직시켰으며 여전히 정치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아울러 휘종을 포함한 황실의 사치, 그 측근들의 부정부패 등이 맞물리면서 신종, 철종때 애써 줄여놓은 재정 적자는 다시 늘어났고, 채경 등은 이를 메꾸기 위해서 신법을 가렴주구의 수단으로 사용해 무리하게 수탈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이런 까닭에 각지에서는 송강의 난, 방랍의 난 등의 민란이 일어났고, 각종 사회적 모순들이 더 심화되었다. 또 외교적으로 요나라와 금나라 사이에서 어설픈 전략 등을 펼치다가 이마저도 실패하면서 발생한 비극이 정강의 변이었다.

5. 가족 관계

황후는 송나라 몰락의 진정한 원흉[38] 흠성헌숙황후 상씨[39]이다. 황후에게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후계자가 된 철종과 휘종의 생모가 각각 황후로 추존되었다. 철종의 생모 주덕비(朱德妃)는 흠성황후[40](欽成皇后 : 1052년 ~ 1102년)로 추존되었고, 휘종의 생모 진미인(陳美人)은 흠자황후(欽慈皇后 : 1054년 ~ 1085년)[41]로 추존되었다.

신종은 철종휘종을 포함하여 14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철종, 휘종, 오왕 조필, 연왕 조우, 초왕 조사, 월왕 조시를 제외한 8명의 아들들은 모두 요절하였다.

6. 둘러보기

송사(宋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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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질 · 왕부 · 위인포 석수신 · 왕심기 · 고회덕 · 한중윤 · 장령탁 · 나언괴 · 왕언승
251권 「한령곤등전(韓令坤等傳)」 252권 「왕경등전(王景等傳)」
한령곤 · 모용연쇠 · 부언경 왕경 · 왕안 · 곽종의 · 이홍신 · 무행덕 · 양승신 · 후장
253권 「절덕의등전(折德扆等傳)」 254권 「후익등전(侯益等傳)」
절덕의 · 풍계업 · 왕승업 · 이계주 · 손행우 후익 · 장종은 · 호언가 · 설회양 · 조찬 · 이계훈 · 약원복 · 조조
255권 「곽숭등전(郭崇等傳)」
곽숭 · 양정장 · 송악 · 상공 · 왕언초 · 장영덕 · 왕전빈 · 강연택 · 왕계도 · 고언휘
256권 「조보전(趙普傳)」 257권 「오정조등전(吳廷祚等傳)」 258권 「조빈등전(曹彬等傳)」
조보(趙普) 오정조 · 이숭구 · 왕인첨 · 초소보 · 이처운 조빈(曹彬) · 반미 · 이초
259권 「장미등전(張美等傳)」
장미 · 곽수문 · 윤숭가 · 유정양 · 원계충 · 최언진 · 장정한 · 황보계명 · 장경
260권 「조한등전(曹翰等傳)」
조한 · 양사 · 당진(黨進) · 이한경 · 유우(劉遇) · 이회충 · 미신 · 전중진 · 유정한 · 최한
261권 「이경등전(李瓊等傳)」
이경(李瓊) · 곽경 · 진승소 · 이만초 · 백중찬 · 왕인호 · 진사양 · 초계훈 · 유중진 · 원언 · 기정훈 · 장탁 · 이만전 · 전경함 · 왕휘
262권 「이곡등전(李穀等傳)」
이곡 · 잠거윤 · 두정고 · 이도(李濤) · 왕역간 · 조상교 · 장석 · 장주 · 변귀당 · 유온수 · 유도 · 변광범 · 유재(劉載) · 정우(程羽)
263권 「장소등전(張昭等傳)」 264권 「설거정등전(薛居正等傳)」
장소(張昭) · 두의(竇儀) · 여여경 · 유희고 · 석희재 · 이목 설거정 · 심륜 · 노다손 · 송기 · 송웅
265권 「이방등전(李昉等傳)」 266권 「전약수등전(錢若水等傳)」
이방(李昉) · 여몽정 · 장제현 · 가황중 전약수 · 소역간 · 곽지 · 이지 · 신중보 · 왕면 · 온중기 · 왕화기
267권 「장굉등전(張宏等傳)」 268권 「시우석등전(柴禹錫等傳)」
장굉 · 조창언 · 진서 · 유식(劉式) · 유창언 · 장계 · 이유청 시우석 · 장손 · 양수일 · 조용 · 주영 · 왕계영 · 왕현
269권 「도곡등전(陶穀等傳)」
도곡 · 호몽 · 왕저 · 왕우(王祐) · 양소검 · 어숭량 · 장담 · 고석
270권 「안간등전(顏衎等傳)」
안간 · 극가구 · 조봉 · 소요 · 고방 · 풍찬 · 변후 · 왕명 · 허중선 · 양극양 · 단사공 · 후척 · 이부(李符) · 위비 · 동추
271권 「마영종등전(馬令琮等傳)」
마영종 · 두한휘 · 장정한 · 오건유 · 채심정 · 주광 · 장훈 · 석희 · 장장영 · 육만우 · 해휘 · 이도(李韜) · 왕진경 · 곽정위 · 조연진 · 보초
272권 「양업등전(楊業等傳)」
양업 · 형한유 · 조광실 · 장휘 · 사초
273권 「이진경등전(李進卿等傳)」
이진경 · 양미 · 하계균 · 이한초 · 곽진(郭進) ,우사진, · 이겸부 · 요내빈 · 동준회 · 하유충 · 마인우
274권 「왕찬등전(王贊等傳)」
왕찬 · 장보속 · 조빈(趙玭) · 노회충 · 왕계훈 · 정덕유 · 장연통 · 양형 · 사규 · 전흠조 · 후지 · 왕문실 · 적수소 · 왕신(王侁) · 유심경
275권 「유복등전(劉福等傳)」
유복 · 안수충 · 공수정 · 담연미 · 원달 · 상사덕 · 윤계륜 · 설초 ,정한 조도, · 곽밀 ,부사양 이빈(李斌), · 전인랑 · 유겸
276권 「유보훈등전(劉保勳等傳)」
유보훈 · 등중정 · 유반 · 공승공 · 송당 · 원곽 · 번지고 ,곽재, · 장병(臧丙) · 서휴복 · 장관 · 진종신 · 장평 · 왕계승 · 윤헌 · 왕빈(王賓) · 안충
277권 「장감등전(張鑒等傳)」
장감(張鑒) · 요탄 · 삭상 · 송태초 · 노지한 · 정문보 · 왕자여 · 유종 · 변곤 · 허양 · 배장 · 우면 ,장적, · 난숭길 · 원봉길 · 한국화 · 하몽 · 신지례
278권 「마전의등전(馬全義等傳)」
마전의 · 뇌덕양 · 왕초(王超)
279권 「왕계충등전(王繼忠等傳)」
왕계충 · 부잠 · 대흥 · 왕한충 · 왕능 · 장응 · 위능 · 진흥 · 허균 · 장진 · 이중귀 · 호연찬 · 유용 · 경전빈 · 주인미
280권 「전소빈등전(田紹斌等傳)」
전소빈 · 왕영 · 양경(楊瓊) · 전수준 · 서흥 · 왕고 · 이중회 · 백수소 · 장사윤 · 이기 · 왕연범
281권 「여단등전(呂端等傳)」 282권 「이항등전(李沆等傳)」 283권 「왕흠약등전(王欽若等傳)」
여단 · 필사안 · 구준 이항 · 왕단 · 상민중 왕흠약 · 임특 · 정위 · 하송
284권 「진요좌등전(陳堯佐等傳)」 285권 「진집중등전(陳執中等傳)」 286권 「노종도등전(魯宗道等傳)」
진요좌 · 송상 진집중 · 유항 · 가창조 · 양적 · 풍증 노종도 · 설규 · 왕서(王曙) · 채제
287권 「양려등전(楊礪等傳)」 288권 「임중정등전(任中正等傳)」
양려 · 송식 · 양사종 · 이창령 · 조안인 · 진팽년 임중정 · 주기 · 정림 · 강준 · 범옹 · 조진(趙稹) · 임포 · 고약눌 · 손면
289권 「고경등전(髙瓊等傳)」 290권 「조이용등전(曹利用等傳)」
고경 · 범정소 · 갈패 조이용 ,손계엄, · 장기(張耆) · 양숭훈 · 하수은 · 적청 ,장옥 손절, · 곽규
291권 「오육등전(吳育等傳)」
오육 · 송수 · 이약곡 · 왕박문 · 왕종
292권 「이자등전(李諮等傳)」
이자 · 정감 · 하후교 · 성도(盛度) · 정도 · 장관 · 정전 · 명호 · 왕요신 · 손변 · 전황
293권 「전석등전(田錫等傳)」
전석 · 왕우칭 · 장영(張詠) · 왕박문 · 왕종
294권 「장우석등전(掌禹錫等傳)」
장우석 · 소신 · 왕수(王洙) · 서언 · 류식 · 섭관경 · 풍원 · 조사민 · 장석 · 장규 · 양안국
295권 「윤수등전(尹洙等傳)」
윤수 · 손보 · 사강 · 엽청신 · 양찰
296권 「한비등전(韓丕等傳)」
한비 · 사항 · 장무직 · 양호 · 양휘지 · 여문중 · 왕저 · 여우지 · 반신수 · 두호
297권 「공도보등전(孔道輔等傳)」
공도보 · 국영 · 유수 · 조수고 · 곽권 · 단소련
298권 「팽승등전(彭乘等傳)」
팽승 · 혜영 · 매지 · 사마지 · 이급 · 연숙 · 장당 · 유기(劉夔) · 마량 · 진희량
299권 「적비등전(狄棐等傳)」
적비 · 낭간 · 손조덕 · 장약곡 · 석양휴 · 조사형 · 이수 · 장동 · 이사형 · 이부(李溥) · 호칙 · 설안 · 허원 · 종리근 · 손충 · 최역 · 전유 · 시창언
300권 「양해등전(楊偕等傳)」
양해 · 왕연(王沿) · 두기 · 양전(楊畋) · 주담 · 서적(徐的) · 요중손 · 진태소 ,마심 두증, · 이허기 · 장부 · 유헌경 · 진종역 · 양대아
301권 「변숙등전(邊肅等傳)」
변숙 · 매순 · 마원방 · 설전 · 구감 · 양일엄 · 이행간 · 장빈 · 진염 · 이유 · 장병(張秉) · 장택행 · 정향 · 곽진(郭稹) · 조하(趙賀) · 고적(高覿) · 원항 · 서기 · 장지 · 제곽 · 정양
302권 「왕진등전(王臻等傳)」
왕진 · 어주순 · 가암 · 이경(李京) · 여경초 · 오급 · 범사도 · 이현(李絢) · 하중립 · 심막
303권 「장온지등전(張昷之等傳)」
장온지 · 위관 · 등종량 · 이방(李防) · 조상 · 당숙 · 장술 · 황진(黃震) · 호순지 · 진관(陳貫) · 범상 · 전경
304권 「주위등전(周渭等傳)」
주위 · 양정(梁鼎) · 범정사 · 유사도 · 왕제 · 방해 · 조영숙 · 유원유 · 양고 · 조급 · 유식(劉湜) · 왕빈(王彬) · 중간
305권 「양억등전(楊億等傳)」 306권 「사필등전(謝泌等傳)」
양억 · 조형 · 유균 · 설앙 사필 · 손하 · 주태부 · 척륜 · 장거화 · 악황목 · 시성무
307권 「교유악등전(喬維岳等傳)」
교유악 · 왕척 · 장옹 · 동엄 · 위정식 · 노염 · 송단 · 능책 · 양담 · 진세경 · 이약졸 · 진지미
308권 「상관정등전(上官正等傳)」
상관정 · 노빈 · 주심옥 · 배제 · 이계선 · 장단 · 장후 · 장길
309권 「왕연덕등전(王延德等傳)」
왕연덕 · 상연신 · 정덕현 · 우연덕 · 위진(魏震) · 장질 · 양윤공 · 진희 · 사덕권 · 염일신 · 근회덕
310권 「이적등전(李迪等傳)」 311권 「안수등전(晏殊等傳)」
이적 · 왕증 · 장지백 · 두연 안수 · 방적 · 왕수(王隨) · 장득상 · 여이간 · 장사손
312권 「한기등전(韓琦等傳)」 313권 「부필등전(富弼等傳)」 314권 「범중엄등전(范仲淹等傳)」
한기 · 증공량 · 진승지 · 오충 · 왕규 부필 · 문언박 범중엄 · 범순인
315권 「한억전(韓億傳)」 316권 「포증등전(包拯等傳)」 317권 「소항등전(邵亢等傳)」
한억 포증 · 오규 · 조변 · 당개 소항 · 풍경 · 전유연
318권 「장방평등전(張方平等傳)」 319권 「구양수등전(歐陽修等傳)」 320권 「채양등전(蔡襄等傳)」
장방평 · 왕공진 · 장변 · 조개(趙槩) · 호숙 구양수 · 유창(劉敞) · 증공 채양 · 여진 · 왕소(王素) · 여정 · 팽사영 · 장존
321권 「정해등전(鄭獬等傳)」
정해 · 진양(陳襄) · 전공보 · 손수 · 풍직 · 여회 · 유술 · 유기(劉琦) · 전의 · 정협
322권 「하담등전(何郯等傳)」
하담(何郯) · 오중복 · 진천 · 왕렵 · 손사공 · 주맹양 · 제회 · 양회 · 유상 · 주경(朱京)
323권 「울소민등전(蔚昭敏等傳)」
울소민 · 고화 · 주미 · 염수공 · 맹원 · 유겸 · 조진(趙振) · 장충 · 범각 · 마회덕 · 안준 · 상보
324권 「석보등전(石普等傳)」 325권 「유평등전(劉平等傳)」
석보 · 장자 · 허회덕 · 이윤칙 · 장항 · 유문질 · 조자 유평 · 임복 · 왕규 · 무영 · 상역 · 경부 · 왕중보
326권 「경태등전(景泰等傳)」
경태 · 왕신(王信) · 장해 · 장충 · 곽은 · 장절(張岊) · 장군평 · 사방 · 노감 · 이위 · 왕과 · 곽자 · 전민 · 시기서 · 강덕여 · 장소원
327권 「왕안석등전(王安石等傳)」
왕안석 · 왕안례 · 왕안국
328권 「이청신등전(李淸臣等傳)」
이청신 · 안도 · 장조(張璪) · 포종맹 · 황리 · 채정(蔡挺) · 왕소(王韶) · 설향 · 장절(章楶)
329권 「상질등전(常秩等傳)」
상질 · 등관 · 이정(李定) · 서단 · 건주보 · 서탁 · 왕광연 · 왕도 · 왕자소 · 하정신 · 진역
330권 「임전등전(任顓等傳)」
임전 · 이참 · 곽신창 · 부구 · 장경헌 · 두변 · 장괴 · 손유 · 허준 · 노사종 · 전상선 · 두순 · 두상 · 사린 · 왕종망 · 왕길보
331권 「손장경등전(孫長卿等傳)」
손장경 · 주항 · 이중사 · 나증 · 마중보 · 왕거경 · 손구 · 장선 · 소심 · 마종선 · 심구 · 이대림 · 여하경 · 조무택 · 정사맹 · 장문 ,진순유 악경 유몽, · 묘시중 · 한지 · 초건중 · 장힐 · 노혁
332권 「등원발등전(滕元發等傳)」
등원발 · 이사중 · 육선 · 조설 · 손로 · 유사웅 · 목연
333권 「양좌등전(楊佐等傳)」
양좌 · 이태(李兌) · 심립 · 장섬 · 장도 · 유충 · 유근 · 염순 · 갈궁 · 장전 · 영인 · 이재 · 요환 · 주경(朱景) · 이종 · 주수륭 · 노사굉 · 단후 · 양중원 · 여양굉 · 반숙
334권 「등원발등전(滕元發等傳)」
서희 ,이직(李稷), · 고영능 · 심기(沈起) · 유이 · 웅본 · 소주 · 도필 · 임광
335권 「충세형전(种世衡傳)」 336권 「사마광등전(司馬光等傳)」 337권 「범진전(范鎭傳)」
충세형 사마광 · 여공저 범진
338권 「소식전(蘇軾傳)」 339권 「소철전(蘇轍傳)」 340권 「여대방등전(呂大防等傳)」
소식 소철 여대방 · 유지 · 소송
341권 「왕존등전(王存等傳)」 342권 「양도등전(梁燾等傳)」
왕존 · 손고(孫固) · 조첨 · 부요유 양도 · 왕암수 · 정옹 · 손영
343권 「원강등전(元絳等傳)」 344권 「손각등전(孫覺等傳)」
원강 · 허장 · 등윤보 · 임희 · 장지기 · 육전 · 오거후 · 온익 손각 · 이상(李常) · 공문중 · 이주 · 선우신 · 고림 · 이지순 · 왕적 · 마묵
345권 「유안세등전(劉安世等傳)」
유안세 · 추호 ,전주 왕회(王回) 증탄, · 진관(陳瓘) · 임백우
346권 「진차승등전(陳次升等傳)」
진차승 · 진사석 · 팽여려 · 여도 · 장정견 · 공결 · 손악 · 진헌 · 강공망 · 진우 · 상안민
347권 「손고등전(孫鼛等傳)」
손고(孫鼛) · 오시 · 이소기 · 오사례 · 왕한지 · 황렴 · 주복 · 장순민 · 성도(盛陶) · 장형 · 안복 · 손승 · 한천 · 공정신 · 정목 · 석단 · 교집중
348권 「부즙등전(傅楫等傳)」
부즙 · 심기(沈畸) ,소복, · 서적(徐勣) · 장여명 · 황보광 · 석공필 ,장극공, · 모주 · 홍언승 · 종전 · 도절부 · 모잠 · 왕조도 · 장장 · 조휼
349권 「학질등전(郝質等傳)」
학질 · 가규 · 두순경 · 유창조 · 노정 · 연달 · 요시 · 양수 · 유순경 · 송수약
350권 「묘수등전(苗授等傳)」
묘수 · 왕군만 · 장수약 · 왕문욱 · 주영청 · 유소능 · 왕광조 · 이호 · 화빈 · 유중무 · 곡진 · 유격 · 곽성 · 가암 · 장정(張整) · 장온 · 왕은 · 양응순 · 조륭
351권 「조정지등전(趙挺之等傳)」
조정지 · 장상영 · 유정부 · 하집중 · 정거중 · 안요신 · 장강국 · 주악 · 유규 · 임터 · 관사인 · 후몽
352권 「당각등전(唐恪等傳)」
당각 · 이방언 ,여심 설앙 오민 왕안중 왕양 조야 조보(曹輔) 경남중 왕우(王㝢),
353권 「하율등전(何㮚等傳)」
하율 · 손부 · 진과정 · 장숙야 · 섭창 · 장각(張閣) · 장근(張近) · 정근 · 우문창령 · 허기 · 정지소 · 공원 · 최공도 · 포유
354권 「심수등전(沈銖等傳)」
심수 · 노창형 · 사문관 · 육온 · 황식 · 요우 · 누이 · 심적중 · 이백종 · 왕해 · 하상 · 엽조흡 · 시언 · 최단우 · 유율 · 채의
355권 「가역등전(賈易等傳)」
가역 · 동돈일 · 상관균 · 내지소 · 엽도 · 양외 · 최태부 · 양급 · 여가문 · 이남공 · 동필 · 우책 · 곽지장
356권 「유증등전(劉拯等傳)」
유증 · 전휼 · 석예 · 좌부 · 허돈인 · 오집중 · 오재 · 유병 · 송교년 · 강연명 · 채거후 · 유사명 · 장정(蔣靜) · 가위절 · 최언 · 장근(張根) · 임량 · 주상
357권 「하관등전(何灌等傳)」 358·359권 「이강전(李綱傳)」
하관 · 이희정 · 왕운 · 담세적 · 매집례 · 정진(程振) · 유연경 이강
360권 「종택등전(宗澤等傳)」 361권 「장준전(張浚傳)」
종택 · 조정(趙鼎) 장준(張浚)
362권 「주승비등전(朱勝非等傳)」 363권 「이광등전(李光等傳)」
주승비 · 여이호 · 범종윤 · 범치허 · 여호문 이광 · 허한 · 허경형 · 장각(張愨) · 장소(張所) · 진화 · 장유(蔣猷)
364권 「한세충전(韓世忠傳)」 365권 「악비전(岳飛傳)」 366권 「유기등전(劉錡等傳)」
한세충 악비 유기(劉錡) · 오개 · 오린
367권 「이현충등전(李顯忠等傳)」 368권 「왕덕등전(王德等傳)」
이현충 · 양존중 · 곽호(郭浩) · 양정(楊政) 왕덕 · 왕언 · 위승 · 장헌 · 양재흥 · 우고 · 호굉휴
369권 「장준등전(張俊等傳)」 370권 「왕우직등전(王友直等傳)」
장준(張俊) · 장종안 · 유광세 · 왕연(王淵) · 해원 · 곡단 왕우직 · 이보 · 성민 · 조밀 · 유자우 · 여지 · 호세장 · 정강중
371권 「백시중등전(白時中等傳)」
백시중 · 서처인 · 풍해 · 왕륜(王倫) · 우문허중 · 탕사퇴
372권 「주탁등전(朱倬等傳)」
주탁 · 왕륜(王綸) · 윤색 · 왕지망 · 서부 · 심여구 · 적여문 · 왕서(王庶) · 신병
373권 「주변등전(朱弁等傳)」 374권 「장구성등전(張九成等傳)」
주변 · 정망지 · 장소(張邵) · 홍호 장구성 · 호전 · 요강 · 이태(李迨) · 조개(趙開)
375권 「등숙등전(鄧肅等傳)」 376권 「상동등전(常同等傳)」
등숙 · 이병 · 등강 · 장수 · 부직유 · 풍강국 상동 · 장치원 · 설휘언 · 진연 · 위강 · 반량귀 · 여본중
377권 「상자인등전(向子諲等傳)」
상자인 · 진규(陳規) · 이릉 · 노지원 · 이구(李璆) · 이박 · 왕상 · 왕의 · 진각
378권 「위부민등전(衞膚敏等傳)」
위부민 · 유각 · 호순척 · 심해 · 유일지 · 호교수 · 기숭례
379권 「장의등전(章誼等傳)」
장의 · 한초주 · 진공보 · 장학 · 호송년 · 조훈(曹勛) · 이직(李稙) · 한공예
380권 「하주등전(何鑄等傳)」
하주 · 왕차옹 · 범동 · 양원 · 누소 · 구룡여연 · 설필 · 나여즙 · 소진
381권 「범여규등전(范如圭等傳)」
범여규 · 오표신 · 왕거정 · 안돈복 · 황귀년 · 정우(程瑀) · 장천 · 홍의 · 조규(趙逵)
382권 「장도등전(張燾等傳)」 383권 「진준경등전(陳俊卿等傳)」
장도 · 황중 · 손도부 · 증기 · 구도 · 이미손 진준경 · 우윤문 · 신차응
384권 「진강백등전(陳康伯等傳)」 385권 「갈필등전(葛邲等傳)」
진강백 · 양극가 · 왕철 · 엽의문 · 장패 · 엽옹 · 엽형 갈필 · 전단례 · 위기 · 주규 · 시사점 · 소수 · 공무량
386권 「유공등전(劉珙等傳)」 387권 「황흡등전(黃洽等傳)」
유공 · 왕린 · 황조순 · 왕대보 · 금안절 · 왕강중 · 이언영 · 범성대 황흡 · 왕응진 · 왕십붕 · 오패 · 진량한 · 두신로
388권 「주집고등전(周執羔等傳)」 389권 「우무등전(尤袤等傳)」
주집고 · 왕희여 · 진양우 · 이호 · 진탁 · 호기 · 당문약 · 이도(李燾) 우무 · 사악 · 안사로 · 원추 · 이춘 · 유의봉 · 장효상
390권 「이형등전(李衡等傳)」
이형 · 왕자중 · 가원 · 장강 · 장대경 · 채광 · 막몽 · 주종 · 유장 · 심작빈
391권 「주필대등전(周必大等傳)」 392권 「조여우전(趙汝愚傳)」
주필대 · 유정 · 호진신 조여우
393권 「팽귀년등전(彭龜年等傳)」
팽귀년 · 황상 · 나점 · 황도 ,주남, 임대중 · 진규(陳騤) · 황보 · 첨체인
394권 「호굉등전(胡紘等傳)」
호굉 · 하담(何澹) · 임율 · 고문호 · 진자강 · 정병 · 경당 · 사심보 · 허급지 · 양여가
395권 「누약등전(樓鑰等傳)」
누약 · 이대성 · 임희이 · 서응룡 · 장하 · 왕원 · 왕질 · 육유 · 방신유 · 왕남
396권 「사호등전(史浩等傳)」 397권 「서의등전(徐誼等傳)」
사호 · 왕회(王淮) · 조웅 · 권방언 · 정송 · 진겸 · 장암 서의 · 오렵 · 항안세 · 설숙사 · 유갑 · 양보 · 유광조
398권 「여단례등전(余端禮等傳)」 399권 「정각등전(鄭瑴等傳)」
여단례 · 이벽 · 구화 · 예사 · 우문소절 · 이번(李蘩) 정각 · 왕정수 · 구여 · 고등 · 누인량 · 송여위
400권 「왕신등전(王信等傳)」
왕신(王信) · 왕대유 · 원섭 · 오유승 · 유중홍 · 이상(李祥) · 왕개 · 송덕지 · 양대전
401권 「신기질등전(辛棄疾等傳)」 402권 「진민등전(陳敏等傳)」
신기질 · 하이 · 유재(劉宰) · 류약 · 시중행 · 이맹전 진민 · 장조(張詔) · 필재우 · 안병 · 양거원 · 이호의
403권 「조방등전(趙方等傳)」 404권 「왕약해등전(汪若海等傳)」
조방 · 가섭 · 호재흥 · 맹종정 · 장위 왕약해 · 장운 · 류약 · 이순신 · 손봉길 · 장영(章穎) · 상비경 · 유영 · 서방헌
405권 「이종면등전(李宗勉等傳)」 406권 「최여지등전(崔與之等傳)」 407권 「두범등전(杜範等傳)」
이종면 · 원보 · 유불 · 왕안거 최여지 · 홍자기 · 허혁 · 진거인 · 유한필 두범 · 양간 · 전시 · 장복 · 여오
408권 「오창예등전(呉昌裔等傳)」 409권 「고정자등전(高定子等傳)」 410권 「누기등전(婁機等傳)」
오창예 · 왕강 · 진복 · 왕정 고정자 · 고사득 · 장충서 · 당린 누기 · 심환 · 조언약 · 범응령 · 서경손
411권 「탕숙등전(湯璹等傳)」 412권 「맹공등전(孟珙等傳)」
탕숙 · 장중진 · 모자재 · 주비손 · 구양수도 맹공 · 두고 · 왕등 · 양섬 · 장유효 · 진함
413권 「조여담등전(趙汝談等傳)」 414권 「사미원등전(史彌遠等傳)」
조여담 · 조여당 · 조희관 · 조언눌 · 조선상 · 조여환 · 조필원 사미원 · 정청지 · 사숭지 · 동괴 · 엽몽정 · 마정란
415권 「부백성등전(傅伯成等傳)」
부백성 · 갈홍 · 증삼복 · 황주약 · 원소 · 위진(危稹) · 정공허 · 나필원 · 왕수(王遂)
416권 「오연등전(吳淵等傳)」
오연 · 여개 · 왕입신 · 상사벽 · 호영 · 냉응징 · 조숙원 · 왕만 · 마광조
417권 「교행간등전(喬行簡等傳)」 418권 「오잠등전(呉潛等傳)」
교행간 · 범종 · 유사 · 조규(趙葵) · 사방숙 오잠 · 정원봉 · 강만리 · 왕약 · 장감(章鑑) · 진의중 · 문천상
419권 「선증등전(宣繒等傳)」
선증 · 설극 · 진귀의 · 증종룡 · 정성지 · 이명복 · 추응룡 · 여천석 · 허응룡 · 임략 · 서영수 · 별지걸 · 유백정 · 김연 · 이성전 · 진위 · 최복
420권 「왕백대등전(王伯大等傳)」
왕백대 · 정채 · 응요 · 서청수 · 이증백 · 왕야 · 채항 · 장반 · 마천기 · 주습 · 요호신 · 대경가 · 피룡영 · 심염
421권 「양동등전(楊棟等傳)」
양동 · 요희득 · 포회 · 상정 · 진종례 · 상무 · 가현옹 · 이정지
422권 「임훈등전(林勳等傳)」
임훈 · 유재소 · 허흔 · 응맹명 · 증삼빙 · 서교 · 도정 · 정필 · 우대년 · 진중미 · 양성대 · 이지효
423권 「오영등전(吳泳等傳)」
오영(吳泳) · 서범 · 이소 · 왕매 · 사미공 · 진훈 · 조여주 · 이대동 · 황순 · 양대이
424권 「육지지등전(陸持之等傳)」
육지지 · 서록경 · 조봉룡 · 조여등 · 손몽관 · 홍천석 · 황사옹 · 서원걸 · 손자수 · 이백옥
425권 「유응룡등전(劉應龍等傳)」
유응룡 · 반방 · 홍근 · 조경위 · 풍거비 · 서림 · 서종인 · 위소덕 · 진개 · 양문중 · 사방득
426권 「순리전(循吏傳)」
진정 · 장륜 · 소엽 · 최립 · 노유개 · 장일 · 오준로 · 조상관 · 고부 · 정사맹 · 한진경 · 엽강직
427·428·429·430권 「도학전(道學傳)」
주돈이 · 정호 · 정이 · 장재 · 소옹 · 유현 · 이유 · 사량좌 · 유초 · 장역 · 소병 · 윤돈 · 양시 · 나종언 · 이동 · 주희 · 장식 · 황간 · 이번(李燔) · 장흡 · 진순 · 이방자 · 황호
431·432·433·434·435·436·437·438권 「유학전(儒學傳)」
섭숭의 · 형병 · 손기 · 왕소소 · 공유 · 공의 · 최송 · 윤졸 · 전민 · 신문열 · 이각 · 최이정 · 이지재 · 호탄 · 가동 · 유안(劉顔) · 고변 · 손복 · 석개 · 호원 · 유희수 · 임개 · 이구(李覯) · 하섭 · 왕회(王回) · 주요경 · 왕당 · 진양(陳暘) · 소백온 · 유저 · 홍흥조 · 고항 · 정대창 · 임지기 · 임광조 · 양만리 · 유자휘 · 여조겸 · 채원정 · 육구령 · 육구연 · 설계선 · 진부량 · 엽적 · 대계 · 채유학 · 양태지 · 범충 · 주진 · 호안국 · 진량 · 정초 · 이도전 · 정형 · 유청지 · 진덕수 · 위료옹 · 요덕명 · 탕한 · 하기 · 왕백 · 서몽신 · 이심전 · 엽미도 · 왕응린 · 황진(黃進)
439·440·441·442·443·444·445권 「문원전(文苑傳)」
송백 · 양주한 · 주앙 · 조린기 · 정기 · 곽욱 · 마응 · 화현 · 풍길 · 고적(高頔) · 이도(李度) · 한부 · 국상 · 송준 · 류개 · 하후가정 · 나처약 · 안덕유 · 전희 · 진충 · 오숙 · 황이간 · 서현 · 구중정 · 증치요 · 조간 · 요현 · 이건중 · 홍담 · 노진 · 최준도 · 진월 · 목수 · 석연년 · 소관 · 소순흠 · 윤원 · 황항 · 황감 · 양파 · 안태초 · 곽충서 · 매요신 · 강휴복 · 소순 · 장망지 · 왕봉 · 손당경 · 당경 · 문동 · 양걸 · 하주 · 유경 · 포유 · 황백사 · 황정견 · 조보지 · 진관(秦觀) · 장뢰 · 진사도 · 이치 · 유서 · 왕무구 · 채조 · 이격비 · 여남공 · 곽상정 · 미패 · 유선 · 예도 · 이공린 · 주방언 · 주장문 · 유엄 · 진여의 · 왕조 · 엽몽득 · 정구 · 장얼 · 한구 · 주돈유 · 갈승중 · 웅극 · 장즉지
446·447·448·449·450·451·452·453·454·455권 「충의전(忠義傳)」
강보예 · 마수 · 동원형 · 조근 · 소함 · 진전서 · 첨량신 · 이약수 · 유겹 · 부찰 · 양진 · 장극전 · 장확 · 주소 · 사항 · 손익(孫翊) · 곽안국 · 이연 · 이막 · 서규 · 진구 · 조불시 · 조령성 · 당중 · 서휘언 · 상자소 · 양방예 · 증고 · 유급 · 정양 · 여유성 · 곽영 · 한호 · 구양순 · 장충보 · 이언선 · 조립 · 왕충식 · 당기 · 이진 · 진구도 · 최종 · 임충지 · 등무실 · 위행가 · 염진 · 조사가 · 역청 · 호빈 · 범왕 · 마준 · 양진중 · 고가 · 조우문 · 진인 · 허표손 · 진륭지 · 왕익 · 이성지 · 진원규 · 장순 · 범천순 · 우부 · 변거의 · 진소 · 윤옥 · 이불 · 윤곡 · 조묘발 · 당진(唐震) · 조여석 · 조회 · 조양순 · 강재 · 마기 · 밀우 · 장세걸 · 육수부 · 서응표 · 진문룡 · 등득우 · 장각(張珏) · 고민 · 경사충 · 왕기 · 장흥조 · 곽호(郭滸) · 오혁 · 이익 · 조사륭 · 진쉬 · 황우 · 학중련 · 유유보 · 우호 · 위언명 · 유사영 · 적흥 · 주필 · 공즙 · 이긍 · 능당좌 · 양수중 · 강예 · 곽선 · 사마몽구 · 임공재 · 황개 · 손익(孫益) · 왕선 · 오초재 · 이성대 · 도거인 · 고영년 · 국사복 · 손소원 · 증효서 · 조백진 · 왕사언 · 설경 · 손휘 · 송창조 · 이정(李政) · 강수 · 유선 · 굴견 · 정담 · 요흥 · 장기(張玘) · 왕공 · 유태 · 손봉 · 유화원 · 호당로 · 왕주 · 유안(劉晏) · 정진(鄭振) · 맹언경 · 고담 · 연만부 · 설양현 · 당민구 · 왕사도 · 조시상 · 조희계 · 유자천 · 여문신 · 종계옥 · 경세안 · 정보 · 미립 · 후핍 · 왕효충 · 고응송 · 장선옹 · 황신 · 진달 · 소뇌룡 · 추붕 · 유사소 · 진동 · 구양철 · 마신 · 여조검 · 양굉중 · 화악 · 등약수 · 진보 · 모겸지 · 서도명
456권 「효우전(孝友傳)」
이린 · 서승규 · 유효충 · 여승 · 나거통 · 제득일 · 이한징 · 형신류 · 허조 · 호중요 · 진긍 · 홍문무 · 역연경 · 동도명 · 곽종 · 고흔 · 주태 · 성상 · 진사도 · 방강 · 방천우 · 유빈 · 번경온 · 영서민 · 기위 · 하보지 · 이빈(李玭) · 후의 · 왕광제 · 강백 · 구승순 · 상진 · 두의(杜誼) · 요종명 · 등중화 · 모안여 · 이방(李訪) · 주수창 · 후가 · 신적중 · 학인 · 지점 · 등종고 · 심선 · 소경문 · 태형 · 앙흔 · 조백심 · 팽유 · 모순 · 양경(楊慶) · 진종 · 곽의 · 신세녕 · 구여령 · 왕주(王珠) · 안후 · 장백위 · 채정(蔡定) · 정기
457·458·459권 「은일·탁행전(隱逸卓行傳)」
척동문 · 진단 · 충방 · 만적 · 이독 · 위야 · 형돈 · 임보 · 고역 · 서복 · 공민 · 하군 · 왕초(王樵) · 장유(張愈) · 황희 · 주계명 · 대연 · 진열 · 손모 · 유역 · 강잠 · 연서 · 장찰 · 유여상 · 양효본 · 등고보 · 우문지소 · 오영(吳瑛) · 송강어옹 · 두생 · 순창선인 · 남안옹 · 장여 · 서중행 · 소운경 · 초정 · 왕충민 · 유면지 · 호헌 · 곽옹 · 유우(劉愚) · 위섬지 · 안세통 · 유정식 · 소곡 · 서적(徐積) · 증숙경 · 유영일
460권 「열녀전(列女傳)」
주아 · 학절아 · 진당전 · 여양자 · 동팔나 · 한희맹 · 모석석
461·462권 「방기전(方伎傳)」
조수기 · 왕처눌 · 묘훈 · 마소 · 초지란 · 한현부 · 사서 · 주극명 · 유한 · 왕회은 · 조자화 · 풍문지 · 홍온 · 소징은 · 정소미 · 조자연 · 하란서진 · 시통현 · 견서진 · 초연 · 지언 · 회병 · 허희 · 방안시 · 전을 · 지연 · 곽천신 · 위한진 · 왕노지 · 왕자석 · 임령소 · 황보탄 · 왕극명 · 사의도인 · 손수영
463·464·465권 「외척전(外戚傳)」
두심기 · 하령도 · 왕계훈 · 유지신 · 유문유 · 유미 · 곽숭인 · 양경종 · 부유충 · 시종경 · 장요좌 · 왕이영 · 이소량 · 이용화 · 이준욱 · 조일 · 고준유 · 상전범 · 장돈례 · 임택 · 맹충후 · 위연 · 전침 · 형환 · 반영사 · 오익 · 이도(李道) · 정흥예 · 양차산
466·467·468·469권 「환자전(宦者傳)」
두신보 · 왕인예 · 왕계은 · 이신복 · 유승계 · 염승한 · 진한 · 주회정 · 장귀숭 · 장계능 · 위소흠 · 석지옹 · 등수은 · 양수진 · 한수영 · 남계종 · 장유길 · 감소길 · 노수근 · 왕수규 · 이헌 · 장무칙 · 송용신 · 왕중정 · 이순거 · 석득일 · 양종길 · 유유간 · 이상(李祥) · 진연 · 풍세녕 · 이계화 · 고거간 · 정방 · 소이섭 · 뇌윤공 · 염문응 · 임수충 · 동관 · 양사성 · 양전(楊戩) · 소성장 · 남규 · 풍익 · 마거위 · 진원 · 감변 · 왕덕겸 · 관례 · 동송신
470권 「영행전(佞幸傳)」
미덕초 · 후막진리용 · 조찬 · 왕보 · 주면 · 왕계선 · 증적 · 장설 · 왕변 · 강특립
471·472·473·474권 「간신전(姦臣傳)」
채확 · 형서 · 여혜경 · 장돈 · 증포 · 안돈 · 채경 · 조양사 · 장각(張覺) · 곽약사 · 황잠선 · 왕백언 · 진회 · 묵기설 · 한탁주 · 정대전 · 가사도
475·476·477권 「반신전(叛臣傳)」
장방창 · 유예 · 묘부 · 두충 · 오희 · 이전
478권 「남당세가(南唐世家)」 479권 「서촉세가(西蜀世家)」 480권 「오월세가(吳越世家)」
이경(李景) 맹창 전홍숙
481권 「남한세가(南漢世家)」 482권 「북한세가(北漢世家)」 483권 「호남·형남·장천·진세가(湖南荊南漳泉陳世家)」
유창(劉鋹) 유계원 주행봉 · 고보융 · 유종효 · 진홍진
484권 「주3신전(周三臣傳)」
한통 · 이균 · 이중진
485·486·487·488·489·490·491·492권 「외국전(外國傳)」
서하 · 고려 · 교지(정조전여조이조진조) · 대리 · 점성 · 진랍 · 포감 · 막려 · 삼불제 · 도파 · 발니 · 주련 · 단미류 · 천축국 · 우전 · 고창 · 회골 · 대식국 · 층단국 · 구차 · 사주 · 불름국 · 유구국 · 정안국 · 발해 · 일본 · 당항 · 토번
493·494·495·496권 「만이전(蠻夷傳)」
계동만 · 매산동만 · 성주만 · 휘주만 · 남단주만 · 무수주만 · 황원주만 · 여동만 · 환주만 · 서남이 · 여주만 · 공부천 · 풍파마 · 보새만 · 미강만 · 동만 · 석문부 · 남광만 · 보패만 · 무주박 · 유주만 · 검주만 · 시주만 · 고주만 · 육수만 · 준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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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호에서 유래한 원풍천자(元豊天子)라는 별칭이 있다.[2] 송 인종의 양자로 입적했으며 송 태종의 손자.뒤의 송 영종으로 즉위했으며 나중에 조서로 개휘했다.[3] 신종의 어머니 선인성렬황후 고씨의 이모가 인종의 부인인 자성 광헌 황후이다.[4] 선인성렬황후 고씨의 아명[5] 인종의 양자이자 황태자가 된 후 휘를 조서로 개휘했다.[6] 사실 이런 문제 인식을 위해 인종 경력연간에 범중엄 중심으로 개혁을 단행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개혁은 1년만에 실패로 끝났다. 이후 인종의 뒤를 이은 신종의 아버지 영종도 이 부분 문제 해결 의지를 가지고 있었기에 이 부분을 조정에서 논의했다. 하지만 영종은 병약하여 이를 실행하려던 찰나에 붕어했다.[7] 신종은 왕안석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그에게 자신이 당 태종같은 정치를 하길 원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때 왕안석은 신종에게 요순의 정치를 본받으라고 지적하면서 쉬운 길이 있는데 왜 요순의 정치를 따르지 않느냐고 했다.[8] 왕안석이 직접 꾸린 조사단은 전국 각지를 돌면서 그동안 개간된 땅들과 징수대상에 없던 농지들을 찾아내 실제 성과를 얻었고 이때 얻은 자료들을 토대로 이전 세수보다 몇배나 많이 국고를 채울 수 있었다. 또한 조세 운반 과정에서 새로이 상어방이 형성되고 중간 상인들이 성장하는 성과도 얻었다, 그러나 조사단들이 전국을 돌면서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사리사욕을 채웠기에 정작 농민들은 이들을 파견한 왕안석을 손가락질하고 비난했다.[9] 사실 청묘법은 산서 등 일부 변경에서 극히 일부 시행되고 있었고 성과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 까닭에 왕안석은 청묘법을 처음 신종에게 입안하면서, 하북 등에서 먼저 시범 운영을 하고 이후 전국적 시행을 건의해 밀어붙였다. 그러나 청묘법 시행에 필요한 비용들을 모두 농민들에게 전가하고 자금 대출이 필요없는 농가까지 억지로 빌리게 하는 등의(삼정의 문란 시기 환곡의 문제와도 비슷하다.) 문제가 계속 터지자 하북 농민들이 당시 하북 사람들에게 공평정대한 판결로 명망높던 한기에게 “제발 청묘라는 법 좀 없애주십시오. 저 법때문에 못 살겠습니다”라고 집단항의하는 지경에 이르렸다. 이후 한기는 백성들의 호소를 듣고 하북일대를 돌면서 진상 조사를 했는데 백성들의 아우성 이상으로 문제가 많자 상소를 올려 청묘법 폐기를 주장했다. 조정에서 한기의 상소문을 보고받고 상소를 읽은 신종은 몹시 놀라 “과연 한기는 충신입니다”라는 말을 한 뒤, 취지와 달리 백성들을 가렴주구하는 청묘법을 없애라고 했다. 이때 신종의 명을 들은 왕안석은 신종 앞에서 한기를 상홍양에 빗대 신종과 한기를 모두 비난했고, 퇴궐 후에도 분을 참지 못했다고 한다.[10] 왕안석 주도의 신법(희녕변법) 당시부터 가장 논란이 컸던 것이 바로 청묘법이었다. 취지와 달리 소상인, 소작농 등의 삶은 더욱 더 어려워지고 이 제도를 악용해서 부정부패와 농민수탈이 더 심해져서 당시 조정에서는 ‘청묘법은 말 그대로 부정부패를 조장하며 백성들을 수탈하는 정책이다’라는 말이 끊이지 않았다. 따라서 신종이 죽고 철종이 즉위하면서 선인성렬황후가 수렴청정을 할 당시 사마광은 가장 폐단이 큰 청묘법부터 즉시 폐기조치했다. 취지는 좋았지만 결함을 제대로 해결하지 않은 셈[11] 이전까지의 송나라는 용병제였다.[12] 송나라의 고질적인 약점인 기마부대 양성을 위해서 추진된 보마법의 발상은 좋았다. 하지만 엄연히 농사에 쓰이는 말과 전쟁에서 쓰이는 말이 다르다는 것을 고려해볼때 여기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는 주장이 많다.[13] 당시 왕안석은 구법당 사람들로부터 전한 무제 시대 균수법, 평준법, 염철법, 술의 전매제 등을 만들어 실행에 옮긴 상홍양에 비유되어 비난받고 있었다.[14] 왕안석이 정치적으로 위기에 몰렸을 때 그가 신법당 내부에서도 공격을 받은 이유 중 하나는 어느 누구도 꺾지 못한 그의 외고집과 실패한 정책임에도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한 성격 때문이었다.[15] 1083년 서하와의 전쟁에서 패한 데 대한 울분으로 사망했다.[16] 이후 송 휘종 시기 환관 동관이 연경을 공략하나 요군에 연전연패하자, 금에 원군을 요청한다. 이후 연경을 되찾자, 동관은 요, 금에 나라 망신을 다 시켰음에도, 광양군왕으로 봉해진다.[17] 충세형의 아들로, 아버지의 연줄로 인해 청간성을 지키고 있었다. 충가군의 일원. 충악이라고 읽는 경우도 있고 종악이라고 읽는 경우도 있다.[18] 송 조정은 수주를 포기해야 한다고 했고 송 신종도 이에 동의했으나, 곽규의 반대로 무산된다.[19] 서하를 정복하기 위해서는 하주와 황주 이 2개의 주를 탈취해야 한다는 내용이다.[20] 오늘날 칭하이 성 일대. 황하와 황수가 교차하는 지점이다.[21] 그러나 왕안석의 신법이 폐단이 많자, 왕소도 실각하게 되고 왕소는 1081년 사망.[22] 이헌은 난주를 수복했다.[23] 충악은 10일치의 군량만 있으면 된다고 하고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였다.[24] 다른 군대는 다 영주로 집결하였으나, 난주를 수복한 이헌의 군대만이 오지 않았다. 하필이면 지휘관 중 하나인 이헌이 환관이었다.[25] 서하의 청야전술로 인해, 굶어죽는 북송군이 많았다.[26] 당시 유창조는 고준유의 통제를 받았는데, 유창조의 군대가 용맹하게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고준유는 이를 시기하였고 공성병기가 부족한데도 계속 싸우라고 독촉하였으며 서하군은 이를 틈타 황하의 제방을 무너트려 북송군을 궤멸시켰다.[27] 영락성은 오직 산에만 의존하고 있었던 데다가 수원도 부족했기 때문이다.[28] 여기서 심괄은 서하의 원군에 가로막혀 수덕을 지키고 있었다. 또한 충악은 이 때 서하군의 침공을 받고 있는 영락성을 관망하였고, 얼마 뒤 병사하고 말았다.[29] 서하군이 수원을 끊자 북송군은 말똥을 갈아 즙을 마실 정도로 열악해졌다.[30] 그러나 서하도 경제적 손실이 만만치 않았다.[31] 오늘날 칭하이 성 시닝 시 일대. 북송군이 청당 지역을 수복하여 이 곳에 서녕주가 설치되었다.[32] 왕후는 1106년 사망.[33] 송나라의 관료제는 태종과 진종 연간에 정비되었고 신종 연간에 꽃을 피웠다고 평가받는다.[34] 신법을 도구로 삼아 반대파를 구법당으로 몰고 권세를 쥔 대표적인 인물은 여혜경과 휘종대의 권신이자 대표적인 간신 채경이 있다.[35] 선인성렬황후 수렴청정 시기와 철종의 친정기를 합친 철종 연간에는 재정 적자가 완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 뒤를 이은 휘종 연간이었는데, 황제와 황실의 사치, 채경, 동관 등을 중심으로 하는 조정의 잇단 실정 등이 맞물리면서 신종, 선인성렬황후, 철종이 안정화시켜 놓은 국고가 바닥이 나게 되었다.[36] 선인성렬황후와 사마광 등 노신들이 이런 조치를 내린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신법의 좋은 취지와 달리 제도가 악용되고 토목사업이 생기는 등 부작용이 더 컸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법이 시행된 이후 농민들이 부역에 동원되고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는 유랑민들이 증가했다. 더해서 세금 수취 과정에서도 각종 부정부패들이 생겨나 왕안석의 생각과 달리 신법의 방향성이 왜곡되는 부작용들이 제도 여기저기에서 발생했다. 그런 까닭에 선인태후와 사마광은 신법을 급격하더라도 당장 폐기해 민생을 안정시키려고 했다.[37] 이때 상태후의 조치들을 보면 죽은 친딸 주국장공주 개칭, 폐후가 된 맹황후 복위, 원우당파 복권, 한충언과 증포의 재상 기용 등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조치 중 신•구법당간의 당쟁을 막고자 단행한 한충언, 증포 기용은 오히려 갈등 끝에 증포가 한충언을 쫓아내고 집권한 뒤 증포 중심으로 조정이 운영되다가 증포의 추천으로 복귀한 채경이 집권하는 일련의 결과를 낳았다. 또 철종이 쫓아낸 맹황후를 복권시킨 조치는 상태후 사후 다시금 원우당인 사건이 일어나는 데 또 다른 빌미가 되고 만다. 따라서 상태후의 조치들과 그녀의 짦은 수렴청정은 당쟁을 완화시키지 못했으며 결과적으로 북송의 몰락을 가속화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38] 철종이 갑자기 요절하게 되자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주덕비와의 관계, 당쟁에서의 이해관계, 원래부터 단왕 조길을 유독 총애한 사심 등을 고려해서 신종의 아들 중 가장 황제라는 자리와는 자질상 거리가 먼 휘종을 후계자로 선정했다.[39] 일부 서적, 번역 게시물에서는 향씨, 향태후라고 오역되지만 向가 ‘향할 향, 성씨 상’이므로 상씨, 상태후가 맞다. 그녀의 증조부인 상민중 역시 오역되어 일부 서적 등에서 종종 향민중으로 언급되고 있다.[40] 원래는 최걸의 딸이었는데, 가난해서 주사안에게 딸을 팔았고 나중에 주사안이 궁궐에 궁녀로 입궁시켰다[41] 신종이 죽자 신종의 묘를 지키며 곡기를 끊어 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