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3-04-21 05:17:17

영종

송영종에서 넘어옴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인천경제자유구역의 개발구역에 대한 내용은 영종국제도시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 묘호
1.1. 英宗1.2. 寧宗
2. 永宗
2.1. 지명()2.2. 신라의 인물

1. 묘호

동아시아의 군주들이 사후에 받는 묘호 중에 하나이다.

2020년 SBS의 금토드라마 더 킹 : 영원의 군주에서는 소현세자가 요절하지 않고 장수하여 이 묘호를 받았다는 세계관이다. 그러나 한자로 표기되지 않아서 아래 중 어느 묘호를 쓴 것인지는 불명.

1.1. 英宗

성명 묘호 시호 재위기간 비고
왕창(王淐) 고려영종
(高麗英宗)
□□대왕
(□□大王)
1269 비정통, 실제 사용되진 않음.
고려사절요 기록.
고려사엔 영종은 시호라고 되어있음.
이금(李昑) 조선영종
(朝鮮英宗)[1][2]
지행순덕영모의열장의홍륜광인돈희
체천건극성공신화대성광운개
태기영요명순철건건곤녕
익문선무희경현효대왕
(至行純德英謨毅烈章義弘倫光仁敦禧
體天建極聖功神化大成廣運開
泰基永堯明舜哲乾健坤寧
翼文宣武熙敬顯孝大王)[3]
1724~1776 21대 왕
조서(趙曙) 영종
(宋英宗)
체건응력융공성덕헌문숙무예성선효황제
(體乾應歷隆功盛德憲文肅武睿聖宣孝皇帝)
1063~1067 5대 황제
보르지긴 시디발라
(孛兒只斤 碩德八剌)
영종
(元英宗)
예성문효황제
(睿聖文孝皇帝)
1320~1323 5대 황제
주기진(朱祁鎭) 영종
(明英宗)
법천입도인명성경소문헌무지덕광효예황제
(法天立道仁明誠敬昭文憲武至德廣孝睿皇帝)
1435~1449
1457~1464
6, 8대 황제
단지렴(段智廉) 대리영종
(大理英宗)
형천황제
(亨天皇帝)
1200~1204 19대 황제
이천조(李天祚) 영종
(李英宗)
체천순도예문신무순인현의휘
모성지어민육물군령비응대명지효황제
(體天順道睿文神武純仁顯義徽
謀聖智御民育物群靈丕應大眀至孝皇帝)
1138~1175 6대 황제
진전(陳烇) 영종
(陳英宗)
응천광운현문예무흠명인효황제
(應天廣運顯文睿武欽明仁孝皇帝)
1293~1314 4대 황제
여유방(黎維邦) 영종
(黎英宗)
준황제
(峻皇帝)
1558~1571 15대 황제
완복태(阮福溙) 영종
(阮英宗)
효의황제
(孝義皇帝)
1687~1691 5대 왕

1.2. 寧宗

성명 묘호 시호 재위기간 비고
조확(趙擴) 영종(宋寧宗) 법천비도순덕무공인문철무성예공효황제
(法天備道純德茂功仁文哲武聖睿恭孝皇帝)
1168~1224 13대 황제
보르지긴 린칠반
(孛兒只斤 懿璘質班)
영종(元寧宗) 충성사효황제(沖聖嗣孝皇帝) 1332 10대 황제

2. 永宗

한자만 놓고 보면 묘호로 쓰였을 법 하지만 묘호 사용례는 없다.

2.1. 지명()

경기만에 위치한 . 영종도 문서 참조.

2.2. 신라의 인물

신라의 외척이자 효성왕 시대의 반역자.

효성왕 4년인 740년, 8월에 파진찬 영종(永宗)이 반역을 꾀하다가 죽임을 당했다.

이보다 앞서 영종의 딸이 효성왕의 후궁으로 들어왔는데, 왕이 그를 몹시 사랑하여 은총이 날로 더하자 왕비가 이를 질투하여 집안 사람들과 모의하여 그녀를 죽였다. 딸을 잃은 영종은 왕비 세력을 원망하다가 이로 인해 반역을 일으킨 것이다.


[1] 조선의 제21대 왕 영조의 원래 묘호. 원래 영종이었다가 고종 때인 1890년에 고쳤다(대한제국 선포 이전). 영조가 종에서 조로 승격된 사유는 영조가 선대왕 경종의 왕세자가 아닌 왕세제로써 보위에 올라 왕위계승에 있어 그 유파가 달라진 것과 같기에 새로운 계통을 연 것과 마찬가지로 하여금 조로 승격된 것이다. 조선왕조의 특성상 부자간의 정상적인 승계가 아닌 경우에 이런 경우가 있었다. 예외의 경우로 태종이 있었는데 태종의 경우 태조에게 승계받은 것으로 인정되어 종으로 섬겨지게 되었는데 덕분에 중간에 걸쳐있던 정종은 후세에 정종으로 추숭되기 이전까지 공정왕으로 왕호만으로 섬겨지게 되었다.[2] 앞의 의견에 더하여서 흥선대원군의 아들인 고종은 순조의 아들인 문조/효명세자에게 양자로 입적되어 왕위를 계승하였으나, 장조/사도세자의 서자인 은신군의 曾孫이다. 이에 따라서 親養 모두의 高祖인 사도세자의 父이자 정식 조선의 국왕이였던 영조는 고종의 정통성면에서 반드시 追崇되어야 할 중요한 인물이였다.[3] 이후 고종 때 지행순덕영모의열장의홍륜광인돈희체천건극성공신화대성광운개태기영요명순철건건곤녕배명수통경력홍휴중화융도숙장창훈정문선무희경현효대왕(至行純德英謨毅烈章義弘倫光仁敦禧體天建極聖功神化大成廣運開泰基永堯明舜哲乾健坤寧配命垂統景曆洪休中和隆道肅莊彰勳正文宣武熙敬顯孝大王)로 바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