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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1 12:45:25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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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경기 외적인 부분
2.1. 4강 드립2.2. 화제의 아디다스 막장 광고2.3. 일본 언론의 설레발
3. 2010 동아시아 대회4. 평가전5. 본선 결과
5.1.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5.1.1. 조별리그 1경기: vs 카메룬5.1.2. 조별리그 2경기: vs 네덜란드5.1.3. 조별리그 3경기: vs 덴마크
5.2. 16강: vs 파라과이
6. 대회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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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당시 화제(?)의 팀 중 하나인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일본의 여정을 기록한 페이지. 이 문서는 월드컵 전과 후가 다르다는 게 특징이다. 월드컵 전에는 문서 내에 포함시키기에 일본의 병신짓이 워낙 많아서 따로 문서를 개설하게 됐지만 본선에서 뚜껑을 열어보니 그야말로 감동적인 대서사시가 될... 뻔했던 것. 16강전에서 수면제 축구만 안했더라면...

조별리그 마지막에서 덴마크를 발라버릴 때까지만 해도 그들의 4강 장담이 단순한 장담만으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물론 그 내면을 보면 대체로 쉬운 상대이거나, 쉬운 상대가 되어버린 상대를 만난 것이라 대진운이 좋았던 것 뿐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그래도 평가전에서 이보다 더 막장일 수 없는 모습을 보여주다. 원정 첫승, 첫 원정 16강, 월드컵 9위[1]를 이루어낸 그 업적만큼은 분명하다.

2. 경기 외적인 부분

2.1. 4강 드립

최종 예선 시작부터 오카다 감독은 "일본은 월드컵 4강이 목표"라고 선언했다. 물론 한국을 비롯한 해외의 언론 및 네티즌들은 헛소리라고 비웃었지만, 오카다의 허풍은 예선 통과 후에도 계속 됐다. 그리고 일본 언론은 한국도 했는데 우리라고 못할 이유가 있느냐며 언론플레이를 시작했다.

이에 대해서는 일본 축구팬들조차도 무모하다거나 이해할 수 없다는 비판이 대세였다. 꿈이 큰 것은 좋지만 축구 강국들도 그런 목표를 잡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끼는데 일본이 그러는 것을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또 차라리 우승을 목표로 하던가 아니면 조별예선 통과를 목표로 하는 게 보통이지 어중간하게 4강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 이상하다는 의견도 많은 공감을 얻었다.

사실 일본의 4강 드립은 2006년 독일 월드컵지쿠 감독 때부터 나온 것이라 그리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물론 그 이유는...

2.2. 화제의 아디다스 막장 광고

월드컵 직전 출정식을 겸한 한국과의 평가전을 앞두고 일본 아디다스 홈페이지에서 공개한 플래시 애니메이션 광고. 축구 경기에서 일본대표팀이 붉은 유니폼을 입은 팀에 맞서는데, 초반에는 2:0으로 끌려가지만 나중에 분발해 3:2로 역전한다는 내용이다. 무슨 소림축구, 이나즈마 일레븐마냥 강슛으로 상대 골키퍼를 날려버린다. 그러나 실제 경기 결과는 일본의 0:2 패배로, 이 광고는 한국이 2점을 내는 것만 맞췄다.

상대팀은 붉은 유니폼과 아시아 최강이라는 언급, 대한축구협회의 심볼인 백호가 등장하는 것이나[2] 한국과의 평가전을 앞둔 시기 등을 생각하면 어딜 봐도 한국을 묘사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묘사가 흉악한 악마같은 모습이라 한국에서 논란이 되었다. 국민일보 직접 감상해보자. Adidas Japan Dream

당시 한국 축구대표팀의 후원사가 나이키라 한국을 꺾는 일본을 통해 나이키를 꺾는 아디다스를 그려내고 싶었던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한국인들 입장에서는 불쾌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결국 일본 아디다스는 한국 아디다스의 항의를 받고 해당광고를 내렸다.

그런데 이 광고와 같은 스코어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6년 후에 현실이 되었다.

2.3. 일본 언론의 설레발

여러가지 언론 플레이가 있었지만, 대표적인 것으로, 한국에서의 이승우 띄워주기처럼 당시 일본에서도 한창 주목받고 있던 떠오르는 신성 혼다 케이스케 띄워주기가 있었다.

당시 혼다는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전에서 프리메라 리가에서 나름 잘나가는 세비야 FC를 상대로 어시스트와 프리킥 골을 기록하며 소속팀인 CSKA 모스크바를 8강에 올려놓는데에 큰 공헌을 하였다. 이에 일본 언론은 나카무라 슌스케 이상의 천재가 나타났다며 설레발을 치기 시작. 다음 8강의 상대팀인 인테르는 혼다를 두려워해야한다, 혼다를 중심으로 우리는 4강에 진출 할 수 있다 같은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러나 그 혼다의 모스크바는 상대가 챔스 우승팀인 인테르라고는 해도 풋볼매니저야신본좌 이고르 아킨페프의 선방에 의지해 겨우겨우 버티다가 싱겁게 깨졌다. 그 와중에 혼다는 일본 언론의 장밋빛 전망과는 달리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을 뿐이었다. 당시 상대가 인테르이긴 했지만 그 이후로도 혼다의 상태가 영 아니었기에 그에게 골을 먹은 세비야만 바보취급 받는 상황이...

한편 알 카에다가 E조의 네덜란드덴마크의 경기를 테러 대상으로 지목했다는 말이 들려오자, 같은 조의 카메룬과 일본도 테러에 말려들 위험을 경계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에 한 일본 언론사는 오카다 재팬이 보이지 않는 위협과 싸우게 됐다. 일본이 상대하는 E조에 카메룬, 네덜란드, 덴마크 뿐만 아니라 알 카에다라는 보이지 않는 적까지 더해졌다고 했다. 아이뉴스 24 물론 그런 일은 없었다.

3. 2010 동아시아 대회

한국은 중국 쇼크허정무가 잘리길 기원했고, 일본도 마찬가지로 오카다 타케시 감독이 잘리길 염원하던 단두대 매치. 결과는 한국의 3:1 승리였다.

한국은 승리에 기뻐하면서도 허정무가 계속 유임된다는 것에 아쉬워해야 했고, 일본 축구팬은 패배에 실망하면서도 오카다를 자를 수 있겠다며 환호성을 질렀지만, 결과는 허정무, 오카다 둘 다 잘리지 않고 그대로 국가대표 감독으로 남았다. 그 오카다가 우리 오카다였어야 해!

4. 평가전


결국 일본은 연습 경기 포함 5 차례의 경기에서 1무 4패, 1득점 6실점, 그중 3실점은 자살골이라는 암담한 기록을 남기고 월드컵에 임하게 된다. 당연히 일본 축구팬은 물론이고 그 누구도 일본의 성적이 좋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5. 본선 결과

내가 무릎을 꿇었던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경기일시는 동경 표준시(서울 시간대와 같음)를 기준으로 표기하였다. 괄호 안은 전반전 점수.
경기일시 경기장소 라운드 상대국 점수 승패
6.14 (월) 23:00 프리 스테이트 조별리그 1 카메룬 1-0 (1-0)
6.19 (토) 20:30 모세스 아비다 조별리그 2 네덜란드 0-1(0-0)
6.25 (금) 03:30 로얄 바포켕 조별리그 3 덴마크 3-1 (2-0)
6.29 (화) 23:00 로프터스 퍼스펠트 16강전 파라과이 0-0 (0-0) (PK 3-5 패)

5.1.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본선 전까지는 미드필더인 혼다 케이스케를 원톱으로 세운다느니, 크로스를 어떻게든 올려서 상대가 어떻게든 자책골 넣게한다! 등의 괴이한 전술을 구상하여 과연 기행의 일본인다운 기행축구를 보여줄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기행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강력한 압박과 수비축구의 진수를 보여 줬다는 평.

한국이 그리스를 상대로 완벽한 승리를 거머쥐자, 오카다 감독은 한국이 하니 우리도 할 수 있다면서 언플을 또 시전했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것은 그저 언플만이 아니었고, 일본의 전력은 오카다 감독의 장담대로, 상상 이상으로 탄탄했다.

조별예선 두 경기를 치른 시점에서 성적은 1승 1패. 덴마크보다 골득실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덴마크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비기기만 해도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 나이지리아 전을 반드시 이겨야만 안전하게 16강에 진출할 수 있는 한국보다 훨씬 유리한 상황이었는데다 덴마크를 3:1로 쳐바르고 16강에 진출함으로써 그야말로 화룡점정을 이룬다.

5.1.1. 조별리그 1경기: vs 카메룬

카메룬은 사무엘 에투, 베누아 아수에코토와 같은 유럽파를 중심으로 팀을 꾸려 높은 볼 점유율을 보이며 경기를 이끌어 나갔지만, 스피드가 아닌 피지컬로 밀어붙이는 방향을 택했다. 그러나 미드필더에서부터 계속되는 일본의 압박에 고전하며 효율적인 공격을 하지 못했다. 일본은 카메룬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으며 역습을 펼쳐 반격했지만 경기는 꽤나 지루했고 미드필드 진영에서의 지루한 공방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전반 37분 일본의 혼다 케이스케가 좋은 퍼스트 터치를 이용해 선제골을 기록한다.

후반들어 똥줄이 탄 카메룬은 만회골을 위해 매서운 공격을 보여주며 일본을 몰아붙였다. 전반보다는 공격이 유기적이고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나, 일본은 카메룬 선수가 공을 가지고 달려들 때마다 협력수비로 공을 빼앗는 등, 효과적으로 수비.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만 가고, 양 팀은 골 포스트를 한번씩 맞추며[4] 득점에 실패했다. 카메룬은 시간이 흘러갈수록 동점골 욕심에 뻥축구를 구사하기 시작하며 스스로 무너졌다.

결국 일본이 1:0 승리를 거두면서 월드컵 원정 첫승 및 사상 첫 본선 1차전 승리를 기록.
카메룬 선수들의 손발이 잘 안 맞았고 후반에는 스스로 무너진 측면도 있으나, 일본은 평가전과는 달리 유기적인 협력수비로 카메룬을 미드필드 진영에서부터 압박하고 특유의 패스 플레이로 공격을 풀어 나갔다. 후반에는 영혼의 10백과 첫 원정 승리를 굳히기 위한 침대축구도 보여줬다.

본선 3전 전패, 냉큼 지고 얼른 돌아오라는 등의 평가를 받았던 오카다호는 이로서 최소한의 까임방지권을 획득하게 된다.

5.1.2. 조별리그 2경기: vs 네덜란드

카메룬 전 승리로 달아오른 일본은 승리의 주역인 혼다를 첼시 FC에 보내자는 둥, 오카다 감독의 수비축구인 오카나치오[5] 앞세우면 네덜란드도 우습지 않다는 둥, 온갖 설레발을 떨어댔다. 반면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은 일본은 5:0으로 이겨야 한다라며 봐줄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결국 경기결과는 네덜란드의 1-0 승리. 골을 기록한 선수는 베슬리 스네이더.

전반은 네덜란드가 공을 돌리며 경기를 주도한 가운데 일본은 미드필드 진영에서부터 강한 압박을 하며 역습을 노렸다. 네덜란드는 반 더 바르트, 스네이더, 로빈 반 페르시, 카윗 등을 앞세워 공격을 전개했으나 일본은 나름 효과적으로 잘 수비했고, 결국 전반은 0-0으로 마무리.

후반에도 전반과 비슷한 양상으로 경기가 진행되다 후반 8분 베슬리 스네이더의 중거리슛이 골키퍼의 손을 맞고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 이후 일본은 동점골을 노리며 나카무라 슌스케를 교체 투입하는 등 분위기 반전을 노렸다. 네덜란드 또한 공격수들을 교체해주며 추가골을 위한 집념을 보였고, 특히 스네이더와 교체되어 들어온 염발 이브라힘 아펠라이는 후반 40분과 후반 44분 연속하여 결정적인 골찬스를 만들어 냈으나 추가골을 넣는 데에는 실패했다. 일본도 경기 막판에는 툴리오를 타겟맨으로 이용하기 위해 페널티박스 가까이 전진시키는 등(!) 공격에 몰두했고, 경기 종료 직전에는 결정적인 기회를 맞았으나 오카자키 신지가 찬 슛이 아깝게 크로스바를 넘어가며 결국 네덜란드가 승리한다.

카메룬과의 경기에서도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평을 받지 못한 일본이지만, 이번 경기는 네덜란드를 맞이하여 피지컬을 바탕으로 한 압박축구로 좋은 경기력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9년 9월에 있었던 네덜란드와의 평가전(당시 0-3 패배)을 바탕으로 많은 준비를 해온 듯. 네덜란드의 날카로운 창을 담당했던 아르연 로번이 부상으로 결장했다 하더라도[6], 유럽 빅 리그에서도 톱 클래스의 선수들로 구성된 네덜란드의 공격진을 상대로 일본은 한 골 밖에 실점하지 않았다. 또한 네덜란드를 강하게 압박하면서 공격을 끊어내고 도리어 역습을 펼치며 네덜란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장면도 간간히 연출했다. 이틀 전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압박이 실종되며 공격 한 번 제대로 못해보고, 수비진은 아르헨티나의 공격수들에게 완벽하게 유린당한 한국에 비하면 매우 견고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평가전에서 여러 이슈를 만들어냈던 툴리오의 활약이 돋보인 경기였다. 수비에서도 전혀 실수가 없었고, 상대 장신 공격수들을 상대로 제공권에서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통곡의 벽 포스를 뿜어냈다. 경기 막판에는 최전방으로 올라가 결정적인 찬스를 만들어내는데도 공헌. 이런 활약으로 인해 여러 언론매체에서 일본선수 중 가장 높은 평점을 받았다.

하지만 이번 경기에서도 일본의 공격수 부재로 인한 어설픈 마무리는 여전했다. 경기 막판에는 뻥축구를 구사하기 위해 꼭 필요한 키 큰 공격수가 없어서 중앙수비수인 툴리오를 상대 페널티박스 진영 가까이까지 올렸고, 마지막의 천금같은 찬스를 오카자키 신지가 날려먹는 등 아쉬운 장면들이 여러 번 연출되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이어져 온 공격수 부재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결국 그 문제에 또 발목을 잡힌 것이다. 그러나 그런 평가에 반박하듯 3경기에서는 아예 딴판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5.1.3. 조별리그 3경기: vs 덴마크

일본은 조별리그 3차전에서 덴마크와 싸우게 되었다. 덴마크는 그 동안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까지 3번 진출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적이 없을 정도로 강팀이었다. 게다가 토마손, 롬메달 등 스타 플레이어들도 즐비한 제법 무서운 팀이었다. 하지만 이런 덴마크에게도 약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매너리즘. 당시 덴마크의 감독이었던 모르텐 올센이 너무 오랫동안 팀을 맡았던 탓에 팀 전체가 매너리즘에 빠진 상태였고, 게다가 한일 월드컵 이후로는 세대교체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바람에 30줄이 넘은 늙은 선수들이 여전히 주전으로 활동할 정도로 노쇠화 상태였고, 그 때문에 팀 자체도 유로컵에서도 생각보다 일찍 탈락하거나 본선 진출에 실패하고[7], 2006 FIFA 월드컵 독일도 본선 진출에 아예 실패해 버리는 등 꽤 흔들리는 상태였다. 게다가 2차전까지 마친 결과 무재배만 해도 16강에 가는 일본과 달리 덴마크는 무재배도 절대로 안 되고 반드시 이겨야만 16강에 가는 등 일본에 비해 꽤 불리한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양 팀이 맞붙게 되었는데, 경기 내용은 전반 17분, 골문 우측 35m 거리에서 날린 혼날두 혼다의 무회전 프리킥이 절묘하게 골문 구석을 찌르며 선취득점에 성공. 뒤이어 전반 30분, 페널티 아크 정면에서 얻어낸 프리킥을 엔도가 멋진 감아차기로 득점하며 스코어가 2:0까지 벌어졌다. 반드시 이겨야만 16강 진출이 가능한 덴마크는 3골을 넣어야 한다는 부담 탓인지 템포를 올리며 공격적인 전술을 구사했으나, 염발 욘 달 토마손의 골 결정력 부족과 나카자와, 툴리오 듀오의 탄탄한 방어로 골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덴마크는 후반 36분에 얻은 페널티킥 기회에 욘 달 토마손이 키커로 나서 골키퍼 손에 맞고 튀어나온 볼을 다시 차 넣으며 겨우 한 골을 만회했다. 난 PK 따위는 넣지 않아! 필드골을 넣을 뿐이지! 하지만 달려들며 골을 넣은 후 골키퍼를 뛰어넘으며 착지하는 과정에서 허벅지 근육이 올라오는 바람에 진짜 염발이 되어 제대로 못 뛰었다. 덴마크는 이 때 교체 카드 3명을 모두 썼기 때문에 교체도 불가능했고, 결국 마지막 10여분 간 큰 전력 손실이 있었다. 어차피 원래 염발이라 손실이 크지는 않았을 듯.

일본은 오히려 후반 42분, 혼다가 문전 왼쪽에서 개인기로 수비수 2명을 제친 뒤 오카자키에게 어시스트했고, 오카자키가 침착하게 골문으로 집어넣으며 쐐기골까지 기록했다. 덕분에 오카다 감독은 일본에서 확실하게 까임방지권을 얻은 모양이다. 까던 사람들이 도박묵시록 카이지의 철판 사죄를 하고 있다는 듯.

볼 점유율 58%(덴마크) : 42%(일본), 슈팅 수 19 : 15 등 덴마크가 더 많은 공격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유효슈팅은 7 : 10으로 일본이 더 많았다. 덴마크는 골 결정력 부재에 공격적인 전술로 인한 수비 불안으로 무너졌고, 일본은 전반부터 예술적인 프리킥 두 방으로 일찌감치 승부를 갈랐을 뿐더러 덴마크의 파상공세를 안정적인 수비로 잘 막아내며 대한민국과 더불어 첫 원정 16강의 쾌거를 이뤄냈다. 한편 이리하여 덴마크는 사상 최초로 조별리그에서 광탈하는 수모를 겪고야 말았다.

이렇게 일본이 16강에 진출하면서 그 영향으로 한국의 16강 진출로 인한 감동이 반감되고 되려 일본보다 성적이 좋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더불어 한국에서 축구계의 16강 진출에 따른 병역혜택요구 논란도 사라졌다.

일본이 다른 대회에 비해 당시에는 조편성 운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으나, 그나마 대진 순서가 일본에게 어느정도 행운이었다고 볼 수 있다. 만약은 없다지만 본선 직전까지도 평가전에서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자국내에서도 기대감이 떨어졌던 최악의 분위기에서 덴마크나 네덜란드를 첫 상대로 만났다면 일본의 전체적인 흐름과 결과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 덴마크도 유럽 내에서 알아주는 강팀이지만 마지막 경기에서 반드시 이겨야 하는 입장에서 일본과 만나다 보니 오히려 일본에게 빈틈을 많이 노출했으니 그게 광탈의 또다른 원인이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E조에서 그나마 전력이 떨어지고 돌풍을 일으키며 8강에 갔던 90년 대회 이후 무기력한 모습만 보여주던, 그리고 일본에게는 다소 약했던 카메룬을 첫 상대로 만난 것이 일본에게는 한숨 돌리며 분위기를 전환시킬 수 있었던 계기가 된 셈이다.

5.2. 16강: vs 파라과이

일본은 2라운드인 16강전에서 F조 1위인 파라과이와 맞붙게 된다. 파라과이도 딱히 공격력이 뛰어난 모습을 보인 팀이 아니라서 일본에서는 상대하기 쉬울 것이라는 긍정적인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양팀의 실로 좌절스런 골 결정력에 의해 이번 대회에서 가장 지루한 최악의 졸전이 되어버렸다. 차범근 해설도 16강에서 이렇게 지루한 게임은 처음이에요라고 일본과 파라과이를 디스했으며 나중에는 90분 동안 수비 조직력이 좋다고 계속 칭찬만 하기는 어렵거든요라고까지 했다. 경기 자체보다는 차범근의 분데스리가 시절 썰이나 배성재 캐스터의 개그같은 게 더 재미있었다. 외국 언론에서는 경기 후 이 경기를 그냥 없는 경기 취급해버리기도. 어느 정도였는지는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16강 문서에서 일본 vs 파라과이 전 참고.
승부차기
순번 파라과이 키커 결과 일본 키커
1 바레토 엔도
2 바리오스 하세베
3 리베로스 노골 고마노
4 발데스 혼다
5 카르도소
합계 5 3
결국 이 경기는 전후반과 연장전을 0:0으로 날려먹고 승부차기까지 가서 승부가 결정되었다. 승부차기에서 일본의 3번째 킥커인 고마노 유이치의 슈팅이 너무 높게 나가는 바람에 크로스바를 맞고 홈런이 되어서 역시 야구강국은 달라 파라과이가 8강에 진출하게 된다. 하지만 이래서야 파라과이가 남미인지가 의심스러울 지경. 브라질 월드컵 예선에서 꼴찌로 광탈한 것은 당연한 결과.

이에 흥분한 네티즌들이 PK를 실축한 고마노고만호라는 이름으로 귀화시키려고 아고라에서 서명 중이라카더라. 파라과이는 졸지에 한국의 형제국이 되었고 네티즌들은 파라과이 대사관으로 성지순례를 하였다. 그리고 진짜 '고만호'라는 이름을 가진 한국인의 싸이가 갑자기 성지화되었다. 투데이가 4000을 돌파했다.

참고로 고마노는 2007 아시안컵에도 출전했으며 그 때는 8강전 vs 호주, 3위 결정전 vs 한국의 두 번의 승부차기에서 모두 성공했다. 대신 호주전에선 다카하라 나오히로가 못 넣는 바람에 5번째 키커까지 모두 차야 했고 한국전에선 하뉴 나오다케가 못 넣어서 4위에 그치고 말았다. 어째 일본은 승부차기만 하면 꼭 한 명씩은 못 넣더라...

어느 네티즌은 귀축 일본이 120분간 전세계를 능욕했다며 제네바 협약에 의거 유엔에 제소해야 한다며 깠다. 여러모로 지루했던 이날의 관전 포인트는 후반전 종반과 연장전, 승부차기때 갑자기 커진 부부젤라 소리. 연장전에 들어서자 휘슬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에 차범근 해설위원은 관중들도 잘 좀 하라는 거 같다고 말하고, 남의 나라 경기여서 그런지 몰라도 너무 타오르지 않는다며 디스를 걸어댔다. 나중에는 16강 경기는 항상 박진감이 넘쳤는데 이번 경기는 좀... 하면서 말을 아꼈다.

이 경기는 TBS 테레비에서도 중계를 한지라 방송 스케쥴이 겹치는 케이온!은 방영시간이 1시간 반 가량 뒤로 밀려 2시 50분경부터 방영됐다. 헌데 이렇게 방영 시간이 지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졸전으로 더럽혀진 눈을 씻어내기 위해서 평소보다 배 이상 높은 고시청률을 기록하며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갱신했다고. 니가타 현에서는 케이온 시청률이 무려 48%를 기록했다. 아마 심야애니로서는 전무후무한 기록일 것으로 보인다.[8] 역시 월드컵 버프는 위대하다. 참고로 일본 vs 파라과이 전의 시청률은 53.6%였다고.

일본이 8강에 갈 경우 TBS에서는 8강 기념 특집 프로그램이 예정돼 있었고 케이온은 결방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고마노의 실축으로 인해 케이온은 무사히 방영되었다. 일본 네티즌들은 케이온을 보기 위해 고마노가 일부러 실책을 한게 아니냐?라면서 까기도 했다. 아무래도 고마노가 케이온빠였나 보다. 물론 케이온빠들에게는 영웅.

한편 TBS는 경기 종료 후 고마노 선수의 가족과 인터뷰를 벌이며 거의 반강제적인 대국민 사과를 끌어내 여론의 빈축을 샀다.

아무튼 워낙 오 마이 아이! 스러운 경기였던지라 우리나라의 16강전을 디스하던 네티즌들은 "그래도 16강전만 놓고 보면 우리가 더 잘했던 것이었구나."하고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되었고 심지어 농담조로 저 둘 중 하나와 붙었으면 대한민국이 이겼을지도 모른다는 소리까지 나왔다고. 게시판은 온통 국내 팬들의 아이고 배야 ▀█▄█● 아이고 배야 ▀█▄█●로 도배가 되었다. 그리고... 일본이 8강을 갔으면 자동적으로 평생까임권을 수여받았을 허정무 감독과 국대 일동도 어쨌든 한시름 놓게 되었다. 그러나 최종성적 순위는 일본이 2002년과 똑같이 월드컵 9위를 기록하였다.

6. 대회 이후

대회 이전 평가전에서 보여준 실망스러운 모습과는 달리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성과를 보여주었고, 최종전도 결과적으로는 분패인지라 일본내에서는 축하와 격려의 분위기가 형성됐다.

차세대 에이스로 기대를 모았던 혼다 케이스케는 충분히 그 몫을 해주었고, 좋지 않은 의미로 주목받던 다나카 마르쿠스 툴리오도 본선에서는 투지 넘치는 모습을 보이며 활약한지라 좋은 평을 받았다. 특히 단 한골만을 실점하는 인상적인 골장악력을 보인 골키퍼 가와시마 에이지는 숨은 영웅으로 평가되고 있는 중.

반면 한 때 일본 대표팀의 에이스였던 나카무라 슌스케는 출전기회를 거의 잡지 못하고 벤치만 데우는 모습을 보이며 다소 조롱거리가 되기도. 심지어 6월 24일은 나카무라 슌스케의 생일이었지만, 25일에 있었던 덴마크전조차 단 1분도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다.


[1] 2002월드컵 9위에 이어 두번째 월드컵 9위[2] 영상에서는 유니폼에 맞춰 붉은 호랑이로 표시되지만 일본축구협회를 상징하는 삼족오 역시 검은색이 아니라 유니폼에 맞춰 파란색으로 묘사되고 있는 걸 보면 저 붉은 호랑이는 대한축구협회의 상징인 백호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3] 비디치, 콜라코프, 수보티치, 이바노비치 등 4백만해도 전부 유럽의 빅리거들이다.[4] 단, 일본이 골 포스트 맞힌 상황은 오프사이드.[5] 보면 알겠지만 오카다 + 카테나치오.[6] 결국 로번은 조별리그 3차전이었던 카메룬 전부터 출장하기 시작했다.[7] UEFA 유로 2004에서는 좋은 스쿼드를 가지고도 8강에 그쳤고, UEFA 유로 2008은 아예 본선 진출에 실패하였다.[8] 방영화는 13화「残暑見舞い!」 (늦더위!)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