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거 2 등의 주포로 사용된 88mm 71구경장 대전차포에 대한 내용은 PaK 43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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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cm FlugabwehrKanone 18/36/37/41 |
[Clearfix]
1. 개요
FlaK 36 운용 영상 |
"사막의 여우 에르빈 롬멜과 그의 아프리카 군단의 손에 들린 비장의 카드는? 바로 죽음의 88이었죠!"
- 히스토리 채널, 밀리터리 Q&A
- 히스토리 채널, 밀리터리 Q&A
"88mm 포는 모든 전장을 지배합니다. 명실상부한 사막의 여왕[1]이죠."
- 내셔널 지오그래픽, '전쟁의 대가들 - 엘 알라메인 전투, 롬멜 vs 몽고메리 편
- 내셔널 지오그래픽, '전쟁의 대가들 - 엘 알라메인 전투, 롬멜 vs 몽고메리 편
Die 8,8-cm-Flugabwehrkanone(독일어), 8,8-cm-FlaK 18/36/37, FlaK 88, 독일의 크루프(Krupp) 사와 스웨덴의 보포스 사에 의해 탄생한 제2차 세계 대전을 통틀어 가장 유명한 대공포이자 대전차포이다. 대공포지만 특별한 개조 없이 포신의 각도를 조절하기만 하면 대전차포,[2] 야포로도 사용이 가능한 만능포였다.
명칭의 경우 독일군은 아흐트-아흐트(Acht-Acht, Acht-Achter, 8-8)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미군이나 영국군은 에이티 에잇(eighty eight, 88)이라고 불렀다.
표제어가 8,8-cm-FlaK인 것은 같은 미터법 사용국가이지만 프랑스군이 mm를 쓴데 비해 독일군은 cm를 썼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국을 제외한 유럽에서는 소수점으로 쉼표를 쓰며 사실 ISO-31-0 표준도 쉼표를 더 권장한다. [3]
2. 제원
FlaK 37 ※ 8,8cm FlaK 18, 36, 37 모델은 서로 부품 호환 및 혼성 편성이 가능하다.
FlaK 41
|
3. 형식
FlaK는 독일어 대공포(Flugabwehrkanone)의 약어로 배치시기에 따라 Flak 18, 36, 37, 41로 버전이 나뉜다.3.1. FlaK 18
8,8cm FlugabwehrKanone 18 |
그러나 해당 모델은 전시에 급개발한 물건이라 미흡한 점이 한두군데가 아니었으며, 덤으로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해 더 이상의 개발이 불가능했으므로 독일의 병기제조사인 크루프의 설계팀은 이 회사가 주주로 있던 스웨덴의 보포스 사와 공동으로 극비리에 신형의 대공포 개발에 나섰다. 이런 결과로 1928년 프로토타입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이 설계팀은 1931년에 독일로 돌아와 스웨덴에서 제작한 대공포의 발전형 개발을 추진했다. 당시 보포스 사에서 양산되어 영국 등에 수출된 대공포는 구경이 75mm였다. 그래서 크루프의 설계팀은 이를 모델로 하여 독일군의 표준구경인 8.8cm로 구경을 확대하고 양산에 적합하도록 개량을 실시했다. 이 개량을 실시한 모델이 FlaK 18이다.
18이란 번호를 붙인 이유는 대공포도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전까지 개발한 모델은 베르사유 조약상 새로 개발된 것이 아니라는 판정을 받아서 양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당 대공포는 사실상 프로토타입이 만들어진 1928년에 개발되었으므로 FlaK 28이라 할 수 있다.
3.2. FlaK 36
8,8cm FlugabwehrKanone 36 |
3.3. FlaK 37
8,8cm FlugabwehrKanone 37 |
3.4. FlaK 41
8,8cm FlugabwehrKanone 41[4] |
FlaK 41은 포가 전체를 개량하여 FlaK 36보다 높이를 낮추고 포신 길이를 74구경장까지 늘렸다가 최종적으로 72구경장으로 정하는 재설계를 통해서 이전보다 포 자체의 장포신화를 이뤄냈고, 탄약의 경우에도 더 길어진 88mm x 855R 강장약탄을 사용한 화력강화가 실현되었다. 때문에 FlaK 41부터는 새로운 세대의 모델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을 정도로 기존의 크루프제 대공포와는 달라졌으며, 이러한 이유로 크루프에서 제조한 FlaK 18, 36, 37와 달리 부품과 탄약이 호환되지 않는다. 즉 FlaK 41은 경쟁사에서 위의 물건들의 후속작으로 개발한 더 강력한 모델인 것을 제외하면 아예 이전의 8,8cm 대공포들과는 다른 물건인 셈이다.
대공포답지 않게 포가의 높이를 낮춘 이유는 대지상용으로도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크루프에서도 라인메탈의 FlaK 41과 경쟁하기 위해 8.8 cm Gerät 42을 개발했지만 결국 채택되지 못했다. 하지만 크루프는 이를 바탕으로 8,8cm PaK 43 대전차포를 개발하였다. 사실상 Gerät 42가 크루프의 8,8cm 대공포의 후속작인 셈이고, PaK 43는 여기에 영향을 받은 물건이다. 실제로 PaK 43와 FlaK 41은 다른 회사에서 개발한 물건인 것 치고는 스펙이 비슷한 편이다.
Versuchsflakwagen(VFW) fur 8.8cm FlaK 37 auf Sonderfahrgestell |
4. 파생형
막강한 위력 덕분에 8,8cm 대공포를 기반으로 하거나 탄자를 공유하는 육군 화포류도 제작되었다.4.1. 8,8cm KwK 36
8,8cm Kampfwagenkanone 36 |
5. 영향을 받은 화포
5.1. 8,8cm PaK 43 계열
8,8 cm Panzerabwehrkanone 43 |
6. 뭐든지 가능한 만능 대공포
지상 사격 모드 |
이동 대차에 올려놓은 모습 |
대공 사격 모드[5] |
당초 목적이 대공포였지만 대공사격은 물론 직접조준에 의한 대지사격, 거기에 간접조준을 통한 곡사까지 가능한 말 그대로의 만능포였다.[6]
개전 초기 육공군의 방공포병 장교들은 이 만능포의 성능을 깨달은 포병들이 이 포를 끌어가는 걸 탐탁찮게 생각했는데, 일단 거의 모든 방공포병이 헤르만 괴링의 공군소속이라 지휘권 문제도 있었고, 8.8cm 포를 사용하는 육군 포병대에서는 대공조준기를 들어내고 포방패를 붙이는 등 거의 마개조 수준으로 개수해서 운용했다는데 일단 이렇게 되면 장비를 복구하기 전까지는 대공사격은 이미 물건너간 상태가 되는데다가 막상 '빌려간' 뒤에는 이 대공포의 감칠맛나는 유용성 때문에 군단장이나 사단장 빽을 내세워 돌려주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크릭스마리네는 해군 내에 해안포와 대공포를 함께 운용하는 병과인 육상포병 병과가 있고 자체 방공망을 갖추고 있어 대공군 의존도가 낮았다.
물론 육군도 8,8cm 포를 가진 육군방공포병(Heeresflak)이 있긴 했지만 이들은 군단 직할대로 말이 방공포병이지 대공 조준기나 대공포탄용 신관 설정기도 없는 경우가 허다해서 사실상 대전차부대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이곳저곳 불끄러 다니기 바빠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았으며, 당시 독일군의 주력 대전차포인 3.7cm PaK 36 대전차포는 병사들 사이에서는 상냥한 대포, 육군의 도어 노커(Heeresanklopfgerät)라는 자조섞인 농담이 오갈 판국이었으니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는데, 후퇴하는 공군 방공포병대를 육군이나 무장친위대가 총으로 위협하여 강제로 대전차 전투에 동원한 경우가 허다했다.
유명한 티거 전차 에이스인 오토 카리우스의 말을 빌리자면 200m 거리 정도에서 티거의 8,8cm 고폭탄의 신관을 지연으로 설정하고 사격하면 T-34의 측면 장갑을 관통하고 내부 유폭으로 완파 가능하다고 하니 놀리긴 아까웠을 듯하다. 그래서인지 8,8cm용 대전차고폭탄인 Gr. 39의 경우에는 거의 만들어지지도, 사용되지도 않았다. 기본적인 철갑탄만 사용해도 100mm 이상은 껌으로 관통할 정도로 워낙 위력이 막강한지라 굳이 사용할 필요가 없었고, 전후에 밝혀지지만 일반적인 강선포로 대전차고폭탄을 쏘면 강선 효과 때문에 메탈제트가 흩어지므로 판처슈렉과는 달리 대전차고폭탄의 위력이 크게 떨어져서 고작 관통력이 최대 90mm에 불과하다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연합군중 공군이나 방공 관련 보직이 아닌 대다수는 종전될 때까지 8,8cm 포가 대전차포인 줄만 알았다고 한다.
7. 전성기
1940년 프랑스 침공에서 당시 기준으로 떡장갑을 발라서 기존의 PaK 36 등의 대전차포나 전차포의 사격을 거침없이 막아내던 프랑스군의 르노 B1 중전차와 영국군의 마틸다 II 보병전차를 가볍게 격파하며 황금기를 맞는다. 특히 아라스 전차전에서 롬멜의 7기갑사단을 기습하여 대전차포 방어선을 뚫고 들어온 영국군 기갑사단을 88mm 대공포대들이 저지한 것은 대표적인 프랑스 침공에서의 88mm 대공포의 대전차포로써의 공으로 유명하다. 또한 독일군은 대전차포 뿐만 아니라 야포로도 알차게 써먹었는데 대표적으로 5월 13일 뫼즈강을 도하하는 과정에서 프랑스 벙커의 강력한 저항에 막히자 당시 도하 선두부대였던 그로스도이칠란드 보병연대 병사들이 88mm 대공포를 끌고와 직사로 파괴해버렸다.이후 독일군은 틈만 나면 88mm 대공포를 야포로 써먹었는데 1941년 초 발칸 전역에서 독일군은 아예 88mm 대공포 운영 방공 부대들을 모아놓고 영국군 방어선에 사격을 가하기도 하였다. 88mm 대공포의 활약은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정점을 찍는데 1km가 넘는 거리에 있는 전차도 격파할 수 있었고, 1941년 6월 영국군의 배틀액스 작전 당시 동원되었던 A12 마틸다 II, 크루세이더 전차, 밸런타인 전차, A9 / 10 전차들을 모조리 격파시키면서 다시 한 번 그 명성을 떨쳤다. 특히 영국군 1개 전차대대를 박살낸 할파야 능선 전투는 유명하다. 할파야 능선에서의 처참한 패배로 배틀액스 작전 실시와 동시에 처칠에게 그토록 원하던 대규모 기갑전으로 롬멜의 북아프리카 군단을 박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한 웨이벌 장군을 절망하게 만들었다. 몽고메리가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반격에 성공하면서 독일군이 방어자 입장으로 바뀐 이후에도 88mm 대공포는 영국과 미국 기갑전력에게 사신으로 존재하였다.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패배한 이후 벌어진 이탈리아 전역에서도 88mm 대공포는 독일군의 강력한 대기갑대응 수단으로 존재하였고 연합군에게 강력한 출혈을 강요하였다.
또한 1941년부터 시작된 동부전선에서도 바르바로사 작전의 실패 직후 쳐들어오던 소련군의 T-34-76과 KV-1 중전차의 등장으로 독일군이 혼란에 빠진 시점에서 유일하게 적 전차를 격파할 수 있는 대전차 무기로 활용되었다. 이리하여 본업인 대공포보다는 제2차 세계 대전 최고의 대전차포로 그 이름을 날리게 된다. 종전 때까지 상대적으로 연합군과 소련군에 비해 대전차포 부족과 화력 열세에 시달렸던 독일군에게 판저파우스트와 함께 No.1 대전차포로 애용받으며 맹활약을 펼쳤다.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서부전선 전역이 다시 한번 열리게 되자 88mm 대공포는 다시 한번 맹활약을 하게 된다. 곳곳마다 매복한 88mm 대공포는 장거리에서 연합군 전차들을 저격하며 큰 피해를 입혔다. 가장 대표적인 전공으로 굿우드 작전 당시 캉 인근 카니 지역에 배치된 공군 방공포대의 활약이 있다. 1944년 7월 18일 21기갑사단 125기갑척탄연대는 어마어마한 영국군의 공습으로 통신망이 전부 끊어지고 반격에 나선 티거 전차들까지 야간 공습으로 큰 손실을 본 상황이었다. 이 틈을 타 영국군은 독일군 방어선 곳곳을 돌파했다. 여기서 영국군 기갑사단의 돌격을 단 4문의 88mm 대공포대가 저지하는 큰 공을 세우게 된다. 125 기갑척탄 연대장 폰 루크 중령은 육군의 지휘를 거부한 방공포대장을 자신이 협박해서 전투에 참여하게 하였다고 기록하였지만 해당 방공포대장은 보고서에 접근하는 영국군 전차부대에 자의적인 판단으로 대전차 작전을 실시했다고 기록하였다. 자의든 타의든 지상전에 참여하게된 단 4문의 88mm 대공포대는 카니 지역으로 돌격 중이던 영국군 제 11기갑사단 선두부대였던 2대대와 조우하였고 40여대의 영국군 전차를 격파, 손상을 입히며 격퇴시켜 독일군이 반격을 벌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벌어주기도 하였다.[7]
88mm 대공포에 관한 전설같은 일화가 하나 있다. 셔먼만으로 독일 중전차대대 이상의 놀라운 성과를 낸 것으로 유명한 크레이튼 에이브람스 휘하의 전차대대가 1944년 벌지 전투에서 바스토뉴 구원을 위해 급하게 기동하고 있을 때였다. 바스토뉴에 포위당한 연합군을 구하기 위해 출전한 에이브람스 대대는 독일 보병부대의 완강한 저항을 피해 크게 우회해서 지름길을 찾았는데, 하필이면 그 마을에 2문의 88mm 대공포가 주둔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차대대는 그야말로 피떡이 되도록 두드려 맞고, 달리 우회로도 없는 터라 천하의 에이브람스가 위기에 몰리는 지경이 되었는데... 놀랍게도 미군을 구원한 것은 격파된 전차에 승차하고 있던 18세의 보병 제임스 R. 헨드릭스 일병이었다. 진격이 막히자 답답하고 분한 마음에 상관의 만류를 뿌리치고 뛰쳐나가 대공포 뒤로 돌아가 호위하고 있던 독일 보병(다행히 소수였다)을 단신으로 전부 M3 기관단총을 난사하며 제압하고 대공포병들을 항복시킨 것. 이런 영화에나 나올 법한 업적을 인정받아 헨드릭스 일병은 어린 나이에 명예 훈장을 수여받게 된다. 에이브람스가 이 곳을 돌파하는 데 실패해서 제 101공수사단과의 접촉이 늦어졌다면 독일의 바스토뉴 함락도 무리는 아니었을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었는데,[8] 단 2문의 대공포가 전쟁의 흐름을 바꿀 뻔했던 것이다.
대전차 위력이 막강했기 때문에 일찍부터 차량에 탑재하려는 노력이 있었으며 결과가 6호 전차 티거다. 다만 위에서 언급하였듯, 티거 2 전차와 엘레판트, 나스호른, 야크트판터에 탑재된 KwK 43(PaK 43)는 더 긴(71구경장) 별개의 화포다.
Duka-88 |
이렇게 대공포, 대전차포, 대함용등 육해공군 통틀어 사용됐기 때문에 독일군 사이에서는 '전능하신 포'라고 불렸다.[10] 아이러니한 것은 독일이 1차대전 후 차후의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여러 목적에 골고루 사용이 가능한 만능포를 만들기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했지만 결국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 실패했다는 점이다. 정작 전쟁이 시작되고 아무 대포나 급하게 사용해 본 결과 이미 8,8cm 대공포란 이름의 만능포가 만들어진 지 오래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다만 유보트에 탑재된 8.8cm 포는 구경만 같을 뿐 완전히 다른 물건으로 심지어 탄약 호환도 안된다. 88mm 문서 참조.
본업인 대공포로서도 잘 쓰였다. 생산량의 8할에 가까운 수가 서부에 배정되어 전략폭격을 막는데 쓰였다.
8.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말까지 통용될 정도의 위력을 가진 견인포였고 독일군이 전쟁에서 밀리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항상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던 상태였고, 연합군도 주력전차 셔먼 등을 정통으로 맞으면 한방 컷을 내는 위협적인 병기 였기에 보병부대가 최우선적으로 파괴할 목표로 선정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엄청난 숫자의 8,8cm가 폭격이나 포격, 습격 등으로 운용인원들이 쓸려나가거나 파괴되었다. 여기에 더해서 여러 용도로 혹사당하기 일쑤라서 포신수명인 1,500발을 한참 넘겨서 사격하는 바람에 포신마모로 더 이상 사용이 불가능해서 폐기처분된 수량도 상당했다. 이에 더해서 영국군은 3.7인치, 미군은 90mm, 소련군은 85mm가 대구경 대공포의 구경인데 반해 8,8cm는 구경이 독일군 고유의 독자적인 물건인데다가 대구경 대공포가 더 이상 폭격기를 잡기 어려워졌음이 확인되었으며 대전차포/전차포로도 연합군은 8,8cm보다 더 강력한 90mm, 120mm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종전 후에는 더 이상 공식적으로는 현역으로 사용되지 않았다.[11]그래도 각 형식을 모두 합치면 2만문이 넘는 상당한 양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연합군의 전쟁 관련 박물관에 보통 1문 정도는 상태가 메롱하더라도 전시되어 있으며 2010년 12월 일본에서는 법적 문제로 인해 발사기능을 제외한 모든 기능이 살아 있는 포 1문이 개인 소장품으로 있다. 발사기능의 경우 어디서 포탄을 조달해와도 사용하지 못하도록 포신의 포구를 내부에 철심을 박은 후 용접해서 막고 주퇴기를 두쪽으로 강제절단하는 등의 조치가 철저히 취해진 물건이므로 말 그대로 장식품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장식품화된 8,8cm 대공포라도 일본 내부에 이런 물건이 있는 것을 신기해하는 밀리터리 매니아가 많았다.
이는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은 지리적으로 다른 추축국과 매우 멀리 떨어져 있는 관계로 티거 전차 같은 것은 5대를 구입해놓고 일본으로 운반하지 못해서 사용하지 못했으며, 8,8cm 대공포도 정식으로 독일에서 수입하지는 못하고 국부군이 독일에서 원조받은 것을[12] 몇 문 노획한 것에 그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스님의 수집품이었는데 아내의 타박에 못 이겨[13] 모형회사 카이요도 사장한테 넘어갔는데 사장은 8,8cm 킷을 만들려고 이 포를 샀지만 그 직후에 홍콩 모형회사 드래곤에서 선수를 치면서 최초의 8,8cm 킷을 내려던 계획은 물거품되었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보면 직접적으로 건들지 못하게 틀어막는 박물관이 아니고 대부분의 기능이 다 살아있는 개인수집품이기 때문에 8,8cm를 지금까지 소유하고 있었다면 8,8cm를 보기위해서 밀리터리 동호인들이 몰려올 것이 분명하다.
독일에서도 2015년 7월에 한 독일 수집가(당시 78세)가 개인 수집품으로 가지고 있던 8,8cm 대공포를 독일 정부에 압류당했다. #1 #2 더욱 놀라운건 이 사람이 판터 전차[14]와 어뢰, V1 로켓까지 있었다.[15] 2021년 현재까지도 8,8cm FlaK을 비롯한 압류된 무기들을 놓고 주인과 독일 검찰의 법적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해당 무기들의 작동 여부가 무기 주인의 독일 전쟁무기법 위반 여부를 가리기 때문. #
핀란드군도 1943~1944년에 90문을 독일에서 구입했는데 핀란드군은 8,8cm 대공포를 정말로 대공 목적으로만 사용했다. 이들은 1977년까지 핀란드군 현역 대공포로 사용되었다.
9. 특징
스탈린그라드에서 촬영된 루프트바페 방공포병 부사관과 그의 대공포[16] |
대전 당시 운용 영상 |
게다가 간접사격시도 명중률이 높아서 에르빈 롬멜 장군은 고각만 잘 조절하면 2km 이내의 적을 거의 정확하게 맞출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에 더해서 운송 중 긴급 시에는 이동대차를 분리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긴급사격이 가능했기 때문에 견인포치고는 다양하게 운용이 가능했다.
8,8cm는 이동대차가 앞뒤로 1개씩 붙기 때문에 멀리서 보거나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마치 트럭 차대에 대포가 올려진 자주포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고, 워낙 모양이 다른 견인포보다 특이하기 때문에 뭔가 특별하다는 느낌을 받기 딱 좋게 생겼다.
다만 원래 쓰임새가 대공용이었던지라 포 몸체의 높이가 높고 견인포의 한계를 넘을 수 없기 때문에 기동성이 떨어진다. 이후 FlaK 41에 이르러서야 높이가 낮아지고, 대공사격과 대지사격시 좀 더 편리하게 여러 곳이 바뀌었지만 본질적으로 견인포인데다가 워낙 크기가 크며 위력 강화를 위해 중량이 늘고 포신도 더욱 길어진 장포신이라 실제 전투에서는 포 자체의 강력한 위력 증가에도 불구하고 그렇게까지 큰 차이를 보이지 못했으며, 워낙 연합군의 공군전력이 압도적이라 전차나 자주포에 탑재된 물건을 제외한 다수의 FlaK 41은 적의 지상군이 코 앞까지 밀려와서 긴급사격하기 전까지는 주로 대공사격이나 곡사포격에만 전념해야 했다.
대공포로서의 성능은 평범했다. 당시의 각국 대공포와 비교했을때 해당 구경과 비슷한 대공포중에서는 부앙각 좀 더 있고 사거리가 더 긴 것을 제외한다면 평균 수준. 사실 동시대 동구경대의 대공포들은 사격통제장치가 우월하지 않는 이상 낼 수 있는 퍼포먼스는 거기서 거기다. 이 당시의 대구경 대공포란 것이 적 항공기의 고도/속도를 계산한 다음 포탄을 쏘았을 때 항공기 근처에 도달할 시간을 계산하여 그 근처에서 포탄이 터지도록 하는 방법을 썼는데, 이 계산 자체가 틀릴 소지도 많고(나중에는 레이더로 측정하기도 했지만 보통은 사람이 간단한 도구들을 가지고 직접 항공기를 보며 계산해야 했다. 갈래에 따라 아날로그 컴퓨터를 통해 포들에게 계산값을 전달해 특정 목표지에 집중사격하도록 한 것도 있다) 대공포 사격이 시작되면 폭격기들이 방향/고도를 계속 바꿔가며 비행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맞추기도 어려웠다. 요격은 폭격기가 고도를 더 높일수록 어려워지는데, 포탄의 도달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폭격기대열의 움직임에 맞추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대구경 대공포로 폭격기 1대를 잡으려면 포탄만 3,000발(다른 대구경 대공포와 합한 숫자)이상이 필요하며, 그 비용이면 Bf109 전투기 3대를 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와버리자 "그럴거면 동부전선에 대전차포로 줘버려라!"라고 히틀러가 불같이 화내기도 했다. 게다가 전쟁 말기에 이를수록 본토 도시의 대공사격 같은 상대적으로 부차적인 임무에는 숙련병을 배치하지 않고 현지의 노인, 여성, 소년병, 연합군이나 소련군 포로 등의 비숙련 병력을 배치했기 때문에 오히려 탄 소비가 많아졌다.
하지만 폭격기 입장에서도 이 대구경 대공포에 잘못 걸리면 한 방에 훅갈 수 있기 때문에 저고도는 되도록이면 피해야하고, 화망을 피하기위해 계속 고도/방향을 바꿔야 하다 보니 폭격 명중률이 떨어지며 대열이 흐트러질 수 있었다. GPS도 없었을 시절에 저러한 불규칙한 기동은 꽤나 성가셨을 것이다. 화망을 구성해 적을 혼란시키고 폭격을 방해하며, 활동영역을 줄여버리는 것만으로도 대구경 대공포는 그 역할을 다하는 셈이다. 그리고 제대로 걸렸다 하면 전차도 한 방에 고철덩어리로 만들어주는 위력 앞에 폭격기는 종류를 불문하고 바로 박살난다. 한 번은 미 육군 폭격기 편대가 슈바인푸르트 공습 당시 회피비행을 잘못하여 이 대공포탄 화망에 제대로 걸려서 순식간에 40기가 넘는 엄청난 피해를 입기도 했다. 여기에 놀라서 미 육군은 당분간 제대로 폭격임무를 수행하지 못했을 정도다.
다만 폭격기 승무원들이 남긴 수기 등을 보면 '어쩌다 재수없으면 걸리는 것' 정도의 인식이었던 듯하다. 그렇다고 폭격기 승무원들이 이 놈을 안 무서워했던 건 아니다. 오히려 포탄이 어떻게 날아올지 몰라서 더 무서웠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필름에서는 8,8cm에 직격당한 폭격기들이 그야말로 산산조각나 추락하는 장면이 선명하게 찍혀있으며, 이런 경우 피격당하는 순간 공중분해되거나, 살아남더라도 손상된 기체의 격렬한 회전 등의 이유로 인해 낙하산을 펴고 탈출할 수 없으므로[20] 역시 추락사하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폭격기 승무원들에게 공포를 심어주는 데는 충분했다. 공포라는 것이 원래 주변에 전염되기 시작하면 막아내기 힘들어서, 한두 대가 박살나면 주변에 있는 모든 폭격기 승무원들은 비명을 질러대며, 기장은 급히 비행고도를 수정하는 작업을 해야했다. 게다가 편대에 명중탄이 났다는 것은 대공사수들이 대공사격 제원을 어느 정도 산출했다는 것이므로 추가 명중탄에 의한 피해를 줄이려면 편대의 비행고도 수정은 필수적이다. 독일도 어쩌다 수준이 아니라 폭격기를 아예 박살내버릴 생각으로 독일판 VT신관을 개발하려고 했지만 이미 생산시설과 자금이 초토화된 시점이었다.
10. 한계점
물론 장점만 있는 무기는 드물고 8,8cm 대공포도 예외는 아니다.- 상당한 중량 - 본래 높은 상공을 날아다니는 중폭격기 대응용으로 만든 대공포인지라 강력한 포탄을 빠르게 속사해야 하므로 매우 튼튼할 필요가 있어서 포 자체의 중량부터 매우 무겁다. 당장 FlaK 36의 기본적인 본체만 5톤이며, 포차와 포방패를 포함하면 약 7.5톤에 육박한다. 게다가 개량형인 FlaK 41의 경우 위력은 더 강화되었지만 본체만 8톤이고, 포차와 포방패를 포함하면 약 11.2톤이다.
문제는 이 중량을 독일군에서 감당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당장 포를 견인할 포차도 수량이 얼마 안되는 18톤 포차를 쓰거나, 여러대의 포차를 연결해야 하며, 포를 방열할 때도 많은 수의 인원이 요구된다. 덤으로 중량물이기 때문에 방열시간도 많이 필요한 편이며, 튼튼한 지반이 필요하다. 따라서 설치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적의 습격을 당할 경우, 신속히 대응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명성과는 달리 쉽게 당하기 쉬우며, 몰려오는 적을 상대로 무거운 대포를 긴급방열하다가 쓸려나가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소련군과 연합군은 독일군을 공격할 때 88mm 대공포 최우선 공격 대상으로 잡아놓았기 때문에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는 습격을 받으면 그냥 고철 신세가 되기 일상이 었다
- 거대한 크기 - 역시 대공포이기 때문에 빠르게 움직이는 항공기를 추적하기 위해 장포신을 360도 회전가능하고, 포각도 90도까지 잡을 수 있다. 이는 장점이기도 하지만, 이 기능을 넣기 위해 포가도 거대해지고, 포다리도 십자형이 되는 등 포 자체의 부피가 커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특히 높이면에서는 FlaK 36이 약 2.5미터, 개량을 통해 높이를 낮춘 FlaK 41이 2.3미터다.
덕분에 매복을 하려고 해도 쉽게 숨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며, 포신의 회전과 부양을 위해 많은 공간이 필요하므로 포 1문당 필요한 공간도 커지며, 주변에 사격을 방해하는 지형물을 까다롭게 가리게 된다. 그래서 제대로 된 진지구축에 시간이 크게 소모된다. 그렇다고 이런 과정을 소홀하게 하면 적에게 잘 들킬 뿐더러 측면으로 선회하는 적을 상대로 진지변환없이 포신만 고속회전해서 즉시 대응하거나, 넓은 지원사격 지원범위를 가진다는 장점을 사용할 수 없게 되므로 울며 겨자먹기로 진지구축을 해야 한다.
- 비싼 가격 - 고성능과 속사성을 유지하기 위해 가격도 일반적인 견인포보다는 비싸다. 물론 33,600RM(제국마르크)라는 생산비용 자체는 성능을 생각한다면 비싸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이 대포를 운영하려면 제대로 된 대형견인차량과 다수의 포병이 필요하므로 이런 비용까지 감안한다면 당시의 독일이 좋다고 마구 찍어내기에는 큰 부담이 될 정도의 가격이다. 실제로 앞서 언급했듯이 부품 공급도 달려서 포신의 마모로 인해 자동퇴역하는 8,8cm 대공포의 숫자도 상당했다.
- 생각보다 좋은 PaK 40 - 잘 알려진건 아니지만 일부 병사들은 고폭탄 화력을 제외하면 PaK 40의 화력도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더 선호한 경우(위에서 언급한 높이 문제도 겹쳤다고 한다)도 있다고 한다. 물론 8,8이 약한게 아니라 연합군의 중전차들이 장갑수준을 8,8의 관통력에 맞추다보니 PaK 40으로 못잡는건 8.8cm 56구경장으로도 못잡게 된 것이다.
왜 인기도와 성능만을 봤을 때 대전차포 생산라인을 죄다 당대 최고의 만능포였던 8,8cm 대공포관련 생산라인으로 교체하지 않았는가 의문이 들 수 있는데, 8,8cm Flak은 무게에서 보듯 8톤 이상을 수송할 수 있는 트럭이 있어야만 운용이 가능한 반면 pak40은 1.5톤 트럭만 있으면 되며, 밀덕들이 무시하는 pak 38도 중형전차 측면은 간단히 뚫는데다 우마로 수송 가능하고 급한 경우 사람이 견인할 수 도 있어 아무리 만능이여도 하나로는 모든 상황을 커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거기다 본업은 대공화기였으며, 당장 독일은 20mm 기관포로 구성된 저고도 대공화기는 걱정이 없었지만 이 8.8cm 대공포 외에는 고고도 대공화기가 없는 것과 다름 없는 상태였다.
11. 실전
12. 운용국
* 나치독일-티거,대공전차 등으로 만능포처럼 굴렀다13. 미디어
자세한 내용은 8\ 문서 참고하십시오.14. 모형
14.1. 프라모델
14.1.1. 타미야 모형
FlaK 36/37 |
14.1.2. 보더 모델
FlaK 36 |
[1] 이 별명은 영국군의 마틸다 II 보병전차에 붙은 별명이기도 하다.[2] 대표적으로 6호 전차 티거의 전차포가 이 대공포를 개조해 만든 물건이다.[3] 그리고 유럽 대륙에서는 천 단위마다 쉼표가 아니라 마침표를 찍는다. 예를 들면, 1백2십3만4천5백6십7점89 라는 숫자를 표시할 때 (특히 수표나 전표에 돈 액수를 표기할 때), 한국이나 영미일에서는 1,234,567.89 라고 표기하지만 유럽대륙에서는 반대로 1.234.567,89라고 표기한다. 88mm를 8,8 cm라고 표기하는 독일식 표기법은 여기서 나온 것이다.[4] 좌측에 있는 것은 12,8cm FlaK 40 Zwilling. 월드 오브 탱크의 바펜트레거형 E-100의 포탑 모티브가 된 2연장 대공포이다.[5] 지상 모드에서는 있던 큼지막한 포방패가 없어진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6] 대공포에서 대전차포로 바뀐 경우는 몇 있다. 미국의 경우 90mm 대전차포와 M103 전차와 컨커러 전차의 120mm 포.[7] 다만 해당 전투에서 영국군 11기갑사단 2대대에게 공격을 가한 독일군은 88mm 대공포대만 있던 것은 아니고 소수의 Pak 43과 돌격포도 가세했었다.[8] 논란의 소지가 있는데, 제 101공수사단이 전력이 건재했고 사기도 높기는 했지만 보급이 굉장히 부족했으므로 독일군의 다음 공세를 버텨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실제로도 이전 공세에서 사단 본부가 함락당할 뻔했던 것을 독일의 판단 착오로 간신히 막아내기도 했다.[9] 루프트바페는 엄청난 맷집의 연합군 폭격기를 부족한 전력으로 상대해야 했기 때문에 위력이 좋고 사거리가 긴 3,7cm, 5,0cm 등의 대구경포의 항공기 무장화에 집착했다.[10] 《나는 탁상 위의 전략은 믿지 않는다》, KODEF 안보 총서, 플래닛미디어.[11] 다만 예외적으로 핀란드 수출분이 1977년까지 핀란드군에 의해 운용되기는 했다.[12] 총 20문의 FlaK 18이 중국에 원조된 기록이 있다.[13] 왜 스님에게 아내가 있냐, 하는 사람이 있을 텐데 일본 불교의 승려는 결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도 대다수 종단은 결혼할 수 없지만 태고종처럼 결혼을 허용하는 종단이 일부 있다.[14] 주변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 사람은 30년 전에 시내에서 이 판터 전차를 몰고 다닌 적도 있다고 한다.[15] 사실 8,8cm FlaK을 포함한, 이 사람의 무기들은 다른 사건을 조사하다가 우연히 같이 발견된 것들이었다. 바로 요제프 토락의 두 마리의 말 청동상 밀매 사건이었는데, 해당 무기 주인이 세 명의 용의자 중 하나이다 보니 압수수색 과정에서 발견된 것. 문제의 말 청동상은 다른 용의자 집에서 발견되었다. 이 쪽도 알베르트 슈페어가 설계한 신 총통 관저를 장식했던 유명한 조각상이었고, 베를린 공방전으로 인해 파괴된 것으로 알려졌던 점에서 못지 않게 충격적인 발견이었다. 2015년 발견 당시 해외 언론들에서 대서특필했던 사건이었지만,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큰 주목을 못 받았다. 해당 사건 수사에 크게 기여했던 네덜란드 미술 탐정 아르뛰어 브란트의 <히틀러의 사라진 보물>이 국내에 번역되었다. 실제로 책에서도 이 대공포의 압류 당시 사진, 1978년 폭설 당시 판터 전차로 제설하는 것을 본 주민의 증언이 나온다. #[16] 항공기보다 다른 것(전차 및 특화점)이 더 많은 킬 마크 때문인지 한때 88mm 에이스라는 제목으로 돌아다녔다. 양산품 주제에 은근히 유명한 모양인지 운송 도중에 찍힌 사진도 있다. #[17] 즉, 3초당 1발이다.[18] T-34-85의 주포가 이 포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19] 구경이 같지만 이 문서가 설명하는 대상과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고 크릭스마리네가 사용한 88mm를 참고한 물건이다.[20] 이때는 사출좌석 같은 물건이 아직 없던 시절이다. 그나마 전투기 같으면 초인적인 힘으로 캐노피를 열고 뛰어내릴 수 있지만, 폭격기는 탈출하려면 폭탄창 열고 뛰어내리거나 창문으로 나가서 뛰어내려야 했다. 즉 탈출이 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