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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19-05-08 00:20:10

MBC 창작동요제

1. 개요2. 역대 대상 수상 곡들3. 대상 이외 역대 수상 곡들4. 논란
4.1. 노을의 작곡자 논란
5. 역대 사회자6. 기타7. 같이 보기

1. 개요

1983년부터 2010년까지 개최되었던 대한민국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동요제. 또 유튜브에서 사용자가 업로드 해놓은 2~9회, 20~21회 전체 영상을 볼 수 있다.[1] 그리고 창작동요제 CD에 수록된 원곡들도 찾아보면 많이 올라와 있으니 참고.

명실상부한 최고의 동요제으며 새싹들이다, 네잎클로버, 아빠! 힘내세요[2] 아기염소 등 유명한 동요가 많이 발굴되었다.

진행 방식은 해당곡의 악보와 곡을 녹음한 CD를 보내 본선 진출자를 가리고[3] 어린이날5월 5일에 TV와 라디오로 방송되는 생방송으로 최종 결선을 치루는 방식이다.[4] 특이한 점은 MBC TV로 생중계되지만 주최자는 라디오 제작국이라는 것이었다.[5] 28년 동안 400여 곡들이 배출되고 수상곡 중 20여 곡이 교과서에도 실렸다.

하지만 90년대 중후반부터 의상이 지나치게 화려해지고 입상에만 치중한 곡들의 속출하면서 수상곡의 인지도가 급격히 낮아지기 시작했다. 입상에 치중한 곡이란 음역대가 높고 길이가 긴 가곡 형태의 곡들이나 혹은 곡 중간에 박자가 갑자기 바뀌는 곡, 즉 노래가 어렵고 가창자의 가창력이나 기교가 크게 강조되는 곡들. 다르게 말하면 어른들이 듣기엔 좋으나 곡에서 순수한 동심이 느껴지지 않고 정작 어린이들이 따라부르기 지루하고 너무 어려운 곡이다. MBC 창작가요제냐 이에 따른 대회의 어린이경연장화가 문제가 되기 시작했고, 2000년대 들어서는 어린이의 방송계 진출 수단으로까지 변질되었다.

1997년부터 대중성 있는 동요도 잘 나오지 않아 초기 창작동요제의 명성이 퇴색되었다. 심지어 2003년을 기점으로 인터넷 플래시 동요(흔히 말하는 엽기송)의 유행으로 인해 창작동요제 출신 동요가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최대 피해자 21회 게다가 그나마 성공한 곡인 '함께 걸어 좋은 길'과 '참 좋은 말' 마저도 대중적 인지도는 높지 않다. 또 방송사와 기업체의 협찬이 줄어들었다. 1997년 외환 위기의 여파로 경기가 어려워져 제작비 지원도 줄어들었고, 오랫동안 제작비의 일부를 협찬하던 국내 아동복 시장이 사양길을 걸으면서 기업체의 협찬도 줄어든 게 컸다.

결국 시청률도 매우 저조해지는 등의 이유로 2010년 제28회를 마지막으로 잠정중단되면서 사실상 종영되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2부로 나눠져서 진행되었고 방송시간도 2시간 가량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1부로 줄어들었고 참가자 수도 줄더니 결국 마지막회 직전인 27회에는 방송분량이 1시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현재는 울산MBC에서 개최하는 서덕출 창작동요제[6]를 전국에 방송하고 있다. 그밖에 어린이 동요제로 창작국악동요제와 초록동요제가 있는데, 창작국악동요제는 국립국악원이 주관하는 대회이고 초록동요제는 어린이(와 가족)의 노래 실력을 겨루는 대회로서 창작동요의 경연장이 아니므로 둘 다 MBC 창작동요제와는 성격이 다르다.

서덕출 창작동요제 또한 MBC 창작동요제가 중단되기 전부터 개최되었으므로 MBC 창작동요제를 더 이상 개최하지 않으면서 서덕출 창작동요제를 전국으로 방송하는 것은 MBC 창작동요제의 역사를 이어가는 의미라기보다는 기존 대회의 공백을 메꾸는 것에 가깝다. 이에 비해, KBS창작동요대회는 KBS창작동요대회(1989~1993)가 없어진 뒤에 KBS부산 창작동요대회(1994~2003)가 시작했고 KBS부산방송총국이 더 이상 창작동요대회를 개최하지 않게 되면서 다시 서울에서 개최(2004~)하기 시작했으므로, 대회 주체가 서울 → 부산 → 서울로 옮겼을 뿐 연속된 행사라고 볼 수 있다.

2. 역대 대상[7] 수상 곡들

제1회 1983년 새싹들이다 작사,작곡:제주 북국민학교 좌승원[8] 노래:이수지 금영노래방 번호가 4444다(...) 번호가 동심 파괴 이수지 어린이가 말하길, 당시엔 대상을 탈거라곤 생각도 못했다고.[9] 후에 이 곡의 작곡가인 좌승원 교사는 창작동요제 심사위원으로 심사를 보기도 했다.
제2회 1984년 노을 한국인이 좋아하는 애창동요 1위로 뽑히기도 했다. 후에 작곡자가 '최현규'로 정정되었다. 당시 가창자 권진숙은 이후 이화여대 졸업 후 지명컨설팅의 대표로 활동.
제3회 1985년 즐거운 소풍길 남자 참가자가 한 명도 없었다.
제4회 1986년 종이접기 신부로니[10] 어린이 가창.
제5회 1987년 고향길 최초로 중창팀이 대상을 받았다.
제6회 1988년 이슬 여학생 5명에 남학생 1명으로 구성된 팀이 불렀고, 최초로 남학생이 대상을 수상한 대회이다. 5회 대회까지는 초등학교 교사 만 참가했다가 이 때부터 초중고 교사까지로 참가범위가 넓어졌다.
제7회 1989년 연날리기 작사는 어머니가, 작곡은 아버지가 했고, 노래는 아들이 불렀다. 한지웅 어린이는 서울예대 음대를 졸업, 현재 미디음악쪽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작사, 작곡자인 권연순, 한수성 부부는 후에 '아빠! 힘내세요'로 유명해졌다.
제8회 1990년 원래 출전하려던 가창자가 감기에 걸려 출전이 어려워지는 바람에 대회 2주 전 가창자가 바뀌었고, 동요치고는 꽤 난이도가 있는 노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회에서 이 노래를 불러 대상을 수상한 전혜윤 어린이는 실로 절륜한 가창력을 보여주었다.
제9회 1991년 하늘나라 동화 당시 가창자 국은선 어린이는 이후 서울대 졸업 후 성악가(소프라노)로 활동.
제10회 1992년 부채춤 당시 가창자 신델라 어린이도 이후 서울대 졸업 후 성악가(소프라노)로 활동.
제11회 1993년 봄비 대상 수상곡 가운데 유일하게 작곡자가 중학교 교사이다.
제12회 1994년 나의 친구 아버지가 작곡을 했고 아들이 노래를 불렀다. 박종진 어린이는 경희대 졸업 후 현재 합창단에서 테너로 활동. 7회 대상곡과 비슷한 케이스. 참가자격이 초중고 교사로 제한되었음에도 주최측의 실수로 일반인 참가자가 작곡한 노래가 본선에 올랐다가 뒤늦게 출전을 취소하는 바람에 평소보다 한 팀이 빠진 14팀으로만 결선이 치뤄졌다. 이를 계기로 13회 대회부터는 작곡자의 참가자격이 완전 폐지되었다. 그리고 본선 출전을 못했던 어린이는 다음 해에 예쁜 아기곰을 불러 복수를 성공했다.
제13회 1995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 당시 국민학교 6학년 정예경 어린이가 직접 작곡한 곡으로 대상을 수상하여 큰 화제가 되었다. 이후 서울대 졸업 후 뮤지컬 음악감독으로 활동. 참고로 정예경 어린이는 이전의 11, 12회 대회에 담당교사의 곡으로 출전하였으나 그 당시에는 수상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예쁜 아기곰을 부르고 장려상을 받은 안지현 어린이 역시 소프라노로 활동중이다.
제14회 1996년 네잎클로버 작곡자 박영신은 12회 때 본선에 올랐다가 바로 위에서 언급한 참가자격 문제로 출전하지 못했다.
제15회 1997년 반딧불
제16회 1998년 오솔길
제17회 1999년 우리 풀꽃 후에 표절 논란이 있었다.당시 기사
제18회 2000년 우리집은 동물원 가창자들의 나이가 상당히 어려보인다... 특히 남자 가창자들. 뭐 어차피 4년 뒤에 1학년 단독 가창자가 등장하고 7년 뒤엔 1학년이 대상까지 탄다. 이 중 남자 어린이 한 명은 다리를 다쳐서 목발을 짚고 나왔다.
제19회 2001년 바람 이 노래의 가창자는 연변 조선족으로, 17회 대회 때 축하공연 팀이었던 연변tv 꽃봉우리 합창단으로 출연해 '노을'을 부른 후 현장에서 동요 관계자의 눈에 띄게 된다. 이로 인해 작곡가 정동수를 소개받고 그의 곡으로 18회와 19회 대회에 출전하게 된다. 작곡자 정동수는 15회 반딧불에 이어 대상을 2번 탄 작곡자가 되었으며, 당시 상금을 모두 가창자에게 장학금으로 쓰라고 주었다고 한다.
제20회 2002년 풍금소리 노랫소리 이 노래의 가창자인 이규임 어린이는 부산KBS, 초록동요제를 모두 석권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다. 부산예고를 거쳐 이화여대 성악과 진학.
제21회 2003년 초생달 이 노래의 가창자인 조연정 어린이 역시 부산KBS, 초록동요제를 모두 석권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다. 숙명여대 성악과 진학.
제22회 2004년 맷돌 당시 여론이 좋지 못했다. 들어보면 알지만, 이 노래는 가사도 곡도 그렇고 동요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가창자는 KBS 2기 첫 대회에서 '꿈이 크는 책가방'이란 곡으로 또 대상을 받게 되는데, 이 노래는 평범한 동요 스타일이다(...)
제23회 2005년 함께 걸어 좋은 길 전년도 대회에 대한 비판과 그 전 수상곡들의 부진을 의식했는지 입선된 곡들과 수상곡들의 스타일이 많이 달라졌다.
제24회 2006년 그날을 위해 무려 금강산에서 진행한 대회. 전년도 함께 걸어 좋은 길을 부른 합창단 멤버였던 가창자는 이 대회에서는 듀엣으로 출전해 2년 연속으로 대상을 수상했다. 다른 한 명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 다른 가창자의 무대 옆에서 도우미(백댄서) 역할을 했었다. 20회 '봄친구' 무대에서도 모습을 볼 수있다. 개구리 복장을 한 소년 뒤에 있다.
제25회 2007년 참 좋은 말 이 노래의 가창자인 강윤 어린이는 당시 초등학교 1학년생으로, MBC 창작동요제 역사상 최연소 대상 수상자이다.[11] 여담으로 대회 진행에 있어서는 욕을 참 많이 먹었다. 동방신기슈퍼주니어가 축하무대에 선다고 홍보하는 바람에 현장 관객들은 이들의 팬이 대부분이었으며, 가수들이 오지 않자 전부 나가버려 관객석은 텅텅 비게 된다(...) 그 외에도 1000인의 합창단 등 외적인 것에만 신경을 많이 써서 정작 동요제 참가팀은 역대 최소인 9팀 밖에 되지 않았고, 참가자 홀대 논란까지 일었다.
제26회 2008년 어느 봄날
제27회 2009년 아빠 사랑해요
제28회 2010년 왜 이렇게 덥지?

3. 대상 이외 역대 수상 곡들

대상 수상곡들 말고도 찾아보면 좋은 곡들이 많이 있다. 대표적으로 1986년 4회 대회의 '숲속을 걸어요', 1989년 7회 대회의 '아이들은', 1990년 8회 대회의 '봄바람 등을 타고', 1991년 9회 대회에서 금상과 인기상을 동시에 수상한 '아기염소'가 매우 유명하며, 동 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한 '윷놀이' 역시 좋은 평을 받았다. 1994년 12회 대회의 '꿀벌의 여행'과 1995년 13회 대회에서 장려상을 수상한 '예쁜 아기곰'과 동 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시골 여행' 역시 잘 알려진 곡. 이듬해 1996년 14회 대회의 '아기다람쥐 또미'도 유명한 곡이다. 또한, 1987년 5회 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섬마을', 1997년 15회 대회에서 입선조차 하지 못한 '아빠 힘내세요' 등 숨은 명곡들이 많이 있다. 자세한 정보는 링크를 참조할 것.

4. 논란

4.1. 노을의 작곡자 논란

1984년 제2회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노을'의 작곡가는 당시 초등학교 교사였던 안호철 선생이 작곡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당시 아마추어 작곡가였던 최현규가 작곡을 한것으로 밝혀졌다.

최현규는 군 복무 중에 노래 '노을'의 일부를 작곡해 뒀다가, 제대한 후에 곡을 완성하였다. 그 후 MBC 창작동요제에 곡을 출품하려 했으나 당시 대회의 작곡자로서의 참가 자격은 현직 초등학교 교사로만 제한되어 있었고, 최현규는 이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할 수 없이 당시 경기 평택 성동국민학교 교사였던 안호철의 이름을 빌려 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곡이 아무도 예상치 못한 대상을 받았고, 그후 현재까지도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동요 순위 1위에 꼽힐 만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큰 사랑을 받게 되었다.[12] 그 때문인지, 동요제가 끝나면 곧바로 작곡가의 이름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던 안호철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나도 작곡가의 이름을 돌려주지 않았다.[13] 결국 1998년, 평택 안일여자고등학교[14] 교장직을 지낸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의 신귀복 부회장이 이 사실을 전해듣고는 안호철, 최현규와 3자 대면 자리를 주선 하게 되고, 그 자리에서 안호철은 자신이 '노을'의 작곡가가 아님을 분명히 밝혔으며, 작곡자 명의를 돌려줄테니 최현규에게 그해 가을까지 기다리라고 말한것으로 알려졌다. 최현규는 그 약속을 믿고 기다렸는데, 안호철은 이후 목사 안수를 받고 교회 목사가 되었으며, 2년이 더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없이 잠적을 하였다. 이에 원 작곡자 최현규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게되어, 결국 신귀복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이름으로 '노을' 곡에 대한 저작권 등록을 마쳤다고 한다.

5. 역대 사회자

6. 기타

대상 수상자들 중에선 남학생 가창자에 비해 여학생 가창자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다. 대회가 28회까지 진행되는 동안 남학생 단독으로 대상을 수상한 것은 7회, 12회, 17회 대회 등 단 3개 대회에 불과하며, 남학생이 대상 수상 팀에 포함된 경우까지 늘려도 총 7개 대회 뿐이다.

탤런트 박시연이 초등학교 4학년이던 제7회 대회에 출전한 적이 있다. 이 대회에서 '봄마중' 이라는 곡을 불렀으나 수상은 하지 못했다. 영상

20주년 기념으로 열린 제20회 창작동요제에서는 과거 대상 수상자인 1회 대회의 이수지, 7회 대회의 한지웅, 8회 대회의 전혜윤, 9회 대회의 국은선이 성장하여 성인이 된 모습으로 특별출연했고, 이들은 당시 수상했던 곡을 그대로 불러 시청자들의 향수를 자아냈다.

22회에 나왔던 곡인 '그림속 풍경'을 부르는 학생의 짤방이 유명하다. 원본 패러디1 패러디2[18]

7. 같이 보기


[1] 삭제되었다. 여기로 가십시오.[2] 1997년 대회에서 입선된 노래. 그 당시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다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수많은 아버지들이 어려움을 겪던 과정에서 아버지들을 응원하던 노래로 서서히 알려졌다. 그러다 2004년 모 카드회사 광고 음악으로 사용되면서 자연스레 명곡이 되지만 표절 논란을 겪은 적도 있으며, 성차별 논란에 휘말리기도 한 나름 우여곡절이 많은 노래기도 하다.[3] 2004년 22회 부터는 3차 실연심사도 거쳐야 했다.[4] 84년 2회는 5월 4일에, 2002년 20회는 5월 3일에 방송. 83년 1회, 2006년 24회, 2007년 25회, 2009년 27회는 사전녹화 후 어린이날 당일 방송.[5] 이는 MBC 강변가요제도 마찬가지. 그래서 대학가요제와 달리 MBC 라디오를 통해서 동시 방송되었다.[6] 울산 출신의 동요 작사가인 '서덕출'의 이름을 땄다.[7] 3회까지는 최우수상이었으나, 제4회부터 대상으로 변경되었다.[8] 교감, 교장을 거쳐 제주국제교육정보원장 역임 후 정년퇴임[9] 자기 딸이 자신이 불렀던 노래를 부르면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고 후에 인터뷰했다.[10] 이름이 한국사람 이름 치고는 독특한데, '모두가 부러워하는 사람이 되어라'는 의미에서 이렇게 지은 것이라고 한다.[11] 그 다음 주 음악중심에도 출연했다. 2017년 현재 부산예고 재학 중이며, 2015년에는 서덕출 창작동요제에, 2016년에는 위키드에 잠시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12] '새싹들이다'가 초등학교에서 많이 불린 것에 비해 대외적으로는 제1회 대회의 대상 수상곡이라는 정도의 위상 뿐인 반면, 노을은 일반인들도 많이 불렀다.[13] 안호철은 1996년에 제14회 MBC창작동요제에서 제2회 대회 대상 수상곡의 작곡자 자격으로 심사위원까지 했으니, 작곡자의 이름을 돌려주기 어려웠을 것이다. 더군다나 제2회 대회에서 대상과 함께 받은 교육부 장관상을 근거로 서울로 전근까지 한 상태였다. 작곡자의 이름을 돌려주는 것은 수상자격도 반납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서울로 전근한 근거까지 사라지는 것이 된다.[14] 현 경기물류고등학교.[15] 전 MBC 아나운서. 지금은 정년 퇴직하셨다.[16] 조카가 이 분이시다.[17] MBC 아나운서.[18] 몇몇 커뮤니티에서는 이 사진을 가지고 각종 짤방을 만들어냈지만, 이런 행동은 일반인, 더구나 연예인도 아닌 사람의 외모를 비하하는 것으로 비쳐 명예훼손이 될 수 있으니 충분히 자제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