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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73473D><colcolor=#ffffff> 왼쪽부터 막심 | 키스 플린트† | 리암 하울렛 | |||||
현 멤버 | <colbgcolor=#fff,#191919>리암 하울렛 (Liam Howlett) 막심 (Maxim)MC[1] | ||||
전 멤버 | 샤키 (Sharky) 리로이 쏜힐 (Leeroy Thornhill) 키스 플린트 (Keith Flint)[2] |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
활동 | 1990년 ~ 현재 | ||||
장르 | 빅 비트 | 드럼 앤 베이스 | 테크노 | 브레이크비트 | ||||
소속 | Take Me To The Hospital[3] | XL Recordings | ||||
링크 | (공식 웹사이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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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리암 하울렛을 주축으로 결성된 잉글랜드 에식스주 출신의 일렉트로니카 그룹으로 일렉트로닉 음악과 얼터너티브 락, 펑크 등 다양한 락 음악 장르를 처음으로 융합해 빅 비트라는 새로운 장르를 창조해냈으며 케미컬 브라더스, 팻보이 슬림 등과 함께 장르를 이끌어온 주역으로 현재까지 2번의 그래미 어워드 후보 지명과 함께 총 2500만 장 이상의 앨범 판매기록[4]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팀 이름은 리암이 처음으로 구입한 moog사의 신디사이저인 Moog Prodigy에서 따왔다.약 30년이 넘는 활동기간 동안 일렉트로닉 장르에 오랫동안 몸 담아온 지금까지 드럼 앤 베이스 등의 비교적 마이너 쪽에 속하는 일렉트로니카 장르를 구사하면서 페스티벌 라인업에 헤드라이너로 이름을 올리는 몇 안되는 그룹이기도 하다. 또한 총 7개의 스튜디오 앨범을 제작하면서 음악적 호불호가 존재하긴 했었어도 과거의 강렬한 스타일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어 지금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신디사이저를 이용하는 기본적인 라이브형 일렉트로닉 음악보다는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를 기반으로 한 얼터너티브 록, 인더스트리얼, 힙합, 테크노, 드럼 앤 베이스 등의 강렬하고 묵직한 음악 위주의 하드코어 일렉트로니카 음악 스타일을 구사한다. 공연 또한 락 밴드처럼 쉴 틈이 없을 정도로 정신없이 뛰노는 분위기라서 슬램팟이 엄청나게 나온다. 덕분에 그 팬층도 일렉트로니카의 팬 층뿐만 아니라, 다양한 음악의 팬 층, 특히 락 음악의 팬 층에게 큰 인기를 누리곤하며 실제로 락 장르 음악의 페스티벌에 라인업으로 이름을 올려 공연하는 것이 일상이다.
다른 밴드들과 다르게 댄서라는 개념이 있는 그룹인데 마이크로 관중의 호응을 끌어올리거나 휘어잡아 공연 내 분위기를 책임지는 MC 역할과 별개로 스테이지 내에서 MC만큼은 아니지만 적절하게 추임새를 넣거나 음악에 몸을 맡긴 것처럼 춤을 춰서 공연의 열기나 슬램을 더 크게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결성 초기에는 리엄 혼자서 디제잉이나 라이브를 하고 샤키, 리로이, 키스 3명이 댄서 역할을 했었으며 밴드셋을 대동하고 사방이 DJ 장비로 싸인 채 디제잉에 열중하는 리암과, 관중석으로 뛰어 내려와 미친듯이 활보하며 막심을 보조하는 키스, 그리고 메인 댄서답게 쉴새없이 관객들의 호응을 독려했던 리로이와 막심의 조합은 당시 하드코어 밴드를 방불케 할 정도로 격렬하고 아드레날린이 끓어 넘치기로 유명했다. 이후 샤키, 리로이가 차례차례 탈퇴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3명의 멤버로 활동할 때는 키스 혼자서 댄서와 리드보컬을 담당하게 되었다.[5]
2. 활동
레이브가 유행하던 1980년대 후반에 에식스에서 레이브 DJ로 활동하던 리암을 만난 키스와 리로이가 그의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그에게 그룹을 결성하자고 제안하였고 이에 리엄 하울렛이 동의를 하면서 프로디지가 결성되었고 이후 라이브에서 MC가 필요하다 생각되어 레게MC로 활동하던 막심이 그룹에 합류하게 되었다.데뷔 초창기에도 레이브씬의 흐름을 타고 1집 Experience와 2집 Music for the Jilted Generation이 연달아 대성공을 거뒀으나 1997년, 이른바 게명반으로 일컫는 3집 The Fat of the Land가 정말 어마어마할 정도로 흥행을 일으키게 되었다. 특히 싱글로 1996년에 먼저 공개된 'firestarter\'와 'breathe\'는 일렉트로닉 음악과 락 장르의 융합을 처음으로 시도한 기념비적인 음악으로 평가받았으며[6] 앨범의 개별 항목에도 나와있듯이 이 앨범 하나로 팝 성향이 들어가지 않은 단일 일렉트로니카 장르 음반 중 역대 최다 음반 판매량인 1000만 장을 기록할 정도로 전세계적인 열풍을 일으켰고 평단에서도 만점에 가까운 평가를 받았는데 97년도에 존재했던 음악 시상식의 모든 상을 다 쓸어간 것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90년대를 대표하는 음반으로까지 불릴 정도로 압도적인 극찬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로 몇년간 침체기를 걷게 되는데 5년만에 내놓은 싱글과 리암의 솔로앨범 격으로 내놓았던 'Baby's Got Temper'과 'The Dirtchamber Sessions Volume One'이 당시에 연달아 실패하게 되었고[7] 2004년 4집 Always Outnumbered, Never Outgunned를 통해 기존의 박력 있는 스타일에서 노이즈와 디스토션이 들어간 스타일로 변화를 주게 되었는데 이 작품이 상업적으로는 성공은 했으나 음악 자체적으로는 호불호가 크게 갈렸다. 특히 3집 이후로 7년만에 나왔던 앨범이라 지나치게 늦게 나오기도 했고 위의 싱글이 실패한 뒤 7년 동안 아무것도 하질 않아 리암을 제외한 멤버들이 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8]
그러나 멤버 3명이 다시 뭉쳐 의기투합해 만든 2009년에 발매한 5집 'Invaders Must Die'가 예전의 프로디지 스타일로 돌아와 예전만큼의 명성을 다시 부활하게 되었다. 그동안의 침체기에 빠졌던 프로디지를 제대로 다시 부활시킨 앨범이다.
2015년 3월 30일에 오랜만의 새 정규 앨범인 'The Day is My Enemy'를 발매했다! 리드 싱글인 'Nasty'를 필두로 공개되었으며 전반적으로 전작인 Invader Must Die와 비슷한 스타일이다. 물론 평도 전작보다 조금 더 좋아진 편이다. 이어 2015년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내한이 확정되었다. 내한 공연 셋리스트도 월드 투어 셋리스트랑 일치하였고, 미친듯한 사운드를 뿜어주어서 관객들이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로 미친 공연을 해주셨다. 또한 키스 플린트는 몬스터 음료회사에서 주최한 팬 사인회를 열어주기도 하였다.
2018년 11월 2일, 7번째 앨범 'No Tourists'를 발매했으며 전작만큼은 아니지만 무난한 평을 받았다.
2019년 3월 4일, 키스 플린트가 자신의 저택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이에 따라 2019년에 예정되어 있던 7집 앨범 활동과 그와 관련된 모든 공연을 전면 취소했다. 공식 웹사이트도 고인을 추모하고자 키스의 사망을 애도하는 글만 남긴 채 잠시 폐쇄되기도 했었다. 조사가 진행된 이후 검시관 측은 충동적인 행동으로 사망했다고 판단하여 "자살이라고 보기도 사고사라고 보기도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다.
키스의 죽음이 알려진 직후 스크릴렉스, 슬립낫, 제이슨 케이, 듀란 듀란, 카사비안, 사이프러스 힐, 푸 파이터스, 폴 스탠리, 케미컬 브라더스, 디지 라스칼, 게리 뉴먼, Chase & Status, 아젤리아 뱅크스, 지미 페이지, 브라이언 메이[9], 제임스 블런트[10], 리암 갤러거[11] 등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수 많은 동료 아티스트들이 애도를 표했다. 특히 키스는 강하고 터프한 외모와 함께 공격적이고 똘끼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는 무대 페르소나와 달리, 실제로 매우 상냥하고 친절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많은 아티스트들 또한 열정적인 무대매너와 함께 예의바른 인품을 가진 인물이었다며 크게 슬퍼하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독설가 존 라이든조차 멋진 친구였다고 말할 정도. 장례식 때는 운구차의 뒤를 따르는 수많은 팬들은 프로디지의 주옥같은 명곡을 틀고 춤추면서 그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장례식 이후 잠시 밴드 활동을 멈췄으나 같은 해 8월 리암 하울렛이 작업 재개를 선언했다.
3. 디스코그래피
3.1. 스튜디오 앨범
- Experience (1992.09.28.)
- Music for the Jilted Generation (1994.07.04.)
- The Fat of the Land (1997.06.30.)
- Always Outnumbered, Never Outgunned (2004.10.20.)
- Invaders Must Die (2009.09.23.)
- The Day Is My Enemy (2015.03.27.)
- No Tourists (2018.11.02.)
3.2. 라이브 앨범
- World's on Fire (2011.05.23.)
3.3. 컴필레이션 앨범
- Their Law: The Singles 1990-2005 (2005.11.07.)
3.4. 믹스테이프
- Dirtchamber Sessions Volume One (1999.09.22.)
- Back to Mine (2006.01.30.)
4. 여담
- 내한을 한다면 지구가 멸망한다고 장난삼아 불렸던 다프트 펑크, 라디오헤드, U2, 콜드플레이[12]보다는 이미지가 덜하지만 마찬가지로 첫 내한이 성사되는데 우여곡절도 많고 굉장히 오래 걸렸다. 첫 내한이 확정된 1999년 트라이포트 페스티벌에선 유래없는 폭우로 인해 스케줄이 취소되었으며 9년 이후, 2008년 섬머 브리즈에 참가하기로 결정되면서 주목을 끌었으나 펜타포트와 ETP에 밀려 티켓이 500장도 안 팔리면서 페스티벌 자체가 취소되어 내한이 또 무산되었다.[13] 때문에 일렉트로니카 팬들에게는 거의 다프트 펑크만큼이나 오기 힘든 그룹으로 불렸었으나 삼고초려 끝에 2009년 Global Gathering Korea에 첫째날 헤드라이너로 출연했다. 이후 2015년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셋째날 헤드라이너로 다시 내한해서 빡시게 놀고 다들 만족했...으나 KBS에서 중계한 실황에서는 무려 통편집되고 존재조차 언급되지 않았다(...).
음악 자체가 헤비한 면이 있기 때문인지 공연 중에 실려간 사람이 꽤 되었으며 내한 당시에 무대에 설치된 26대의 우퍼가 적다고 2배로 늘려달라고 주문해 음향 관계자들이 엄청 고생했다는 일화가 있다. 하지만 덕분에 사운드가 완전 다이나믹하게 뽑혀서 사람들이 더 흥분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고.이때를 기억하고 2010년에 간 사람들은 하나같이 사운드에 실망했다.
- 같은 드럼 앤 베이스를 구사하는 펜듈럼과 매우 친한 사이이며 리암이 펜듈럼 3집 앨범에 피쳐링 참여하기도 했다. 반대로 펜듈럼 쪽에서는 Voodoo People을 리믹스해서 발매하기도 했는데 이 곡도 원곡만큼이나 어마어마한 흥행을 일으켰다.
- 일본의 밴드인 Crossfaith가 정규 2집의 일본판 보너스 트랙으로 프로디지의 악곡 중 하나인 OMEN을 커버하기도 했다.#[14]
- 러시아에서의 인기가 정말 많으며 프로디지 공식 영상에선 러시아 댓글을 굉장히 많이 볼 수 있다.
- 1997년 마돈나가 프로디지에게 새 앨범을 같이 제작하자고 제안한 적이 있는데, 프로디지가 거절했다. 당시 MTV 기사를 보면 리엄 하울렛은 "말도 안 된다. 우리의 음악을 상업화하고 싶지 않다. 마돈나에게 곡을 주는 것은 영혼을 악마에게 팔아넘기는 것과 같다."라고 하고 있는데, 재밌는 것은 이때 프로디지의 미국 내 음반사는 당시 마돈나가 수장이던 매버릭 레코드였다는 점이다. 이것만 보면 프로디지가 매우 오만해보일 수 있지만, 마돈나가 오늘날에야 레전드로 인정받지 97년 당시 마돈나의 이미지는 상업적인 팝 스타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프로디지의 입장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마돈나는 1년 후 새로운 프로듀서인 윌리엄 오빗을 발굴하여 제작한 음반 Ray Of Light를 통해 음악성을 인정받았다.
[1] 본명은 키스 앤드류 팔머(Keith Andrew Palmer).[2] 밴드가 결성된 이래로 단 한번의 탈퇴 없이 왕성한 활동을 하다 2019년 3월 4일 자택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이 되었다.[3] 본인들이 세운 레이블. 이름은 동명의 곡 제목에서 따왔다.[4] 앨범 판매량에 있어서는 하드코어 일렉트로닉 아티스트 중에서 가장 높은 판매량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는 스포티파이, 유튜브 등의 스트리밍 기록도 하나의 세일즈 레코드로 기록이 되기에 지금의 추산 방식과 그대로 비교하기엔 힘드나, 당시 레이브 문화가 영국 내에서도 많은 제재를 받았던 상황임을 생각하면 앨범이나 싱글 판매만으로 이 정도 기록이 나온 것은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 것에 가깝다.[5] 특히 키스의 역할이 다른 2명보다 비중이 컸는데 초기에는 MC를 전부 막심이 전담했었다가 우연찮게 공연 중 마이크를 들고 공연했던 키스가 프론트맨의 자질이 있다는 것을 느껴 준MC 격으로 비중을 늘려 공연을 하게 되었다.[6] 특히 이 두 곡은 절대 서로 융합할 수 없을 거라고 여기며 장르간 서로를 바라보는 분위기도 굉장히 험악했던 90년대 후반 당시에 충격과 동시에 새로운 길을 제시했었기 때문에 어떤 곡보다도 시사하는 바가 훨씬 크다.[7] 다만 지금은 이 앨범이 90년대의 음악적 환경과 분위기를 반영하여 리암의 음악적 능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렸인 수작으로 재평가되었다.[8] 실제 4집 앨범에 공식적으로 막심과 키스가 관여한 기록이 없어서 사실상 리암의 2번째 솔로 앨범으로 봐야한다.[9] 우연히 페스티벌 백스테이지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하드코어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라 본인들을 싫어할거라 생각했지만 먼저 다가와 본인이 얼마나 퀸을 좋아하고 그들의 음악이 얼마나 인생을 바꿨는지 얘기를 나눴지만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라 매우 안타깝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10] 노골적으로 자신을 지독하게 싫어했던 노엘 갤러거, 데이먼 알반, 폴 웰러 등과 다르게 Q매거진이 주최하는 Q어워즈 자리에서 먼저 다가와 포옹을 하고 성공을 빌어준 만남이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 되어 매우 슬프다고 밝혔다.[11] 2019년 글라스톤베리 페스티벌 공연 마지막에 그를 기리는 뜻으로 Champagne Supernova를 불렀다. #[12] 이들 중에서 다프트 펑크만 2021년 2월 22일 해체를 발표하면서 유일하게 내한을 하지 못한 아티스트가 되었다.[13] 심지어 더 이전인 2004년에는 전 멤버였던 리로이의 내한조차도 취소되었었다.[14] 참고로 보컬인 코이에 켄타의 발언에 따르면 Crossfaith는 프로디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