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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0년 KBS1 드라마 태조 왕건의 등장 인물로 연화[1]의 아버지. 배우 김성옥이 맡았다[2].2. 극중 행적
패서 지역인 신천의 부유한 호족 중 한 명으로 상인 출신인 만큼 중요한 무역항인 송악을 다스리는 왕씨 집안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서 송악 성주 왕륭의 아들 왕건과 자신의 딸 연화가 어렸을 때부터 혼인을 약속했다. 그러나 왕륭은 아들인 왕건이 황제가 될 운명이라 확신하고 있었고 연화에게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국구[3]가 되기에는 강 장자의 그릇이 너무도 작아 자식의 앞길을 가로막을 것을 염려해 혼사를 차일피일 미뤘다. 그렇게 세월만 보내던 차에 황비감을 물색하던 종간이 연화가 귀인의 상임을 알아보고 적극 그녀를 추천했고 딸인 연화 본인은 물론 아내 백씨마저 왕씨 가문과의 약조를 생각하자 했으나 강 장자는 황실의 외척이 될 생각에 한 눈이 팔려 국혼을 택한다. 왕건이 집안의 재산을 털어 송악에 황궁을 건축하고 궁예와 연화가 혼례를 올리자 왕건에게 과거에 대해 함구해둘 것을 부탁할 정도.황실의 외척으로 대접받게 되자 얼마간은 별 문제없이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그것도 잠시. 왕륭의 예상대로 그릇과 소견이 좁고 귀가 얇아 어리석은 모습을 계속 보여줬으며 연화가 태자들을 낳자 부귀영화가 오래 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연화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을 시작으로 대를 잇겠다며 양아들을 들여 대놓고 자랑하다가 연화와 궁예 모두에게 한 소리 듣게 된다. 거듭 무훈을 세우는 왕건을 시기하며 폄하하는 발언을 곧잘 해댔으며 아지태의 감언이설에 넘어간 궁예가 민생을 피폐하게 하자 신료들이 그를 염려하며 회의를 하는 자리에서 황명이면 무조건 따라야지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하다가 빈축을 사기도 했다. 급기야는 궁예가 독화살을 맞고 생사를 오락가락하는 상황에서 병부령 복지겸을 찾아가서 다음 황위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4] 아지태와 자주 만나며 태자를 황제 자리에 앉힌 후 자신이 섭정에 앉는 꿈을 꾸기에 이른다. 내원 종간과 내군장군 은부 휘하 내군의 감시의 눈이 곳곳에 번뜩이고 있는데다 궁예의 성미를 잘 아는 연화로부터 과욕을 부리지 말라는 당부를 여러 번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권력이 많아서 나쁠게 뭐냐며 막 나가는 행보를 거듭하는데 그러던 중 궁예가 도인의 기 치료로 기적적으로 살아나게 된다. 이에 종간은 그간 있었던 모든 신료들의 불미스런 움직임들을 보고하면서 살생부를 올리는데 그 중에는 강 장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강 장자를 노망난 늙은이로 취급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는 했지만 만약 궁예가 죽을 경우 위험 분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처단하려 했던 것.
이후 궁예는 독화살을 맞은 후유증으로 인해 수시로 통증을 느끼며 환각에 시달리는 병을 앓는다. 무리한 철원 천도와 북벌 준비로 민심은 최악으로 치닫고 아지태는 궁예로부터 많은 권한을 위임받음과 동시에 성과를 내지 못하면 처형을 당할 수 있다는 위협을 은연 중에 받게 된다. 이에 아지태는 왕건을 다음 황제로 포섭하려 했지만 왕건이 굳게 거절하자 차선책으로 강 장자를 역모에 끌어들인다. 아지태는 불시에 궁예를 시해하고 종간과 은부를 제거한 뒤 어린 태자를 보위에 앉힐 계획을 세웠고 강 장자는 자신이 섭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릴 망상에 젖는다.[5] 그러나 아지태의 수하인 입전과 신방이 궁예의 관심법을 두려워한 나머지 계획을 종간에게 밀고했고 결국 두 사람을 제외하고 역모와 관련된 자들이 전부 하옥되기에 이른다. 궁예는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아지태를 죽이기를 망설였기 때문에 시중으로 임명한 왕건에게 자신을 대신하여 사건을 심사하고 판결하라고 명했고 왕건은 핵심 인물인 아지태는 처형하되 역모에 가담한 다른 자들은 모두 살려보내는 관대한 평결을 내리며 강 장자 역시 3년간 근신하라는 처분을 받고 집에 돌아온다. 이 정도로 끝난 것을 다행이라고 여기는 아내와 달리 그는 왕건의 평결에 오히려 불만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이고 권력욕을 버리지 않으며 과욕을 부린 것에 대한 아내의 책망에도 "미친 황제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다"라고 적극적으로 합리화하며 큰소리를 친다.
하지만 궁예는 아지태가 죽기 전 마지막 발악으로 남기고 간 말[6] 때문에 점차 주위 사람들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관련자들에게 개별적으로 캐묻던 궁예는 강 장자에게도 최응을 보내 다시 질문을 던졌고, 결국 아지태 사건을 다시 친국하기로 결정한다.
잔 받으란 말이오!
궁예가 강장자를 하옥하기 직전에 강 장자한테 술을 한 잔 줄 때 고함을 지르며 한 말.
궁예가 강장자를 하옥하기 직전에 강 장자한테 술을 한 잔 줄 때 고함을 지르며 한 말.
궁예는 따로 강 장자를 불러 왕건으로부터 돌려받은 법봉까지 꺼내들며 정혼에 대해 묻고, 덜덜 떨며 잡아떼던 강 장자에게 궁예는 그래도 장인이라고 시간을 줄 테니 자백하여 목숨을 건지라고 경고한다. 그렇게 임춘길을 제외한 아지태 사건 당시 잡혀갔던 주모자들 모두가 하옥된다.
이 소식을 은부한테 들은 종간은 지금 잘못하고 있다며 우려했고 종간은 어떻게든 궁예의 정신병을 고치기 위해 백두산에서 내려온 도인을 불러 영초탕(靈草湯)을 지어 궁예한테 권하고 곧바로 영초탕을 마시고 3일 뒤에 깨어난 궁예는 병은 씻은 듯이 나은걸로 보이지만...[7] 이미 예전 궁예의 모습과는 180도 다르게 성격이 더 변해버린 상태였다. 물론 영초탕을 마시기 전에 나타났던 그 석총 및 아지태를 운운하며 칼을 휘두르고 날뛰는 등 정신줄을 놓은 듯한 행동이 확실히 사라지기는 했지만... 결국 아지태 사건을 다시 친국했고 강 장자는 앞서 궁예로부터 경고를 들었음에도 친국 현장에서 궁예가 관심법을 썼다고 했음에도 끝까지 억울하다고 잡아뗀다. 결국 옆에서 기전과 능달이 차례로 죽어나가고[8] 궁예가 다시 한 번 윽박지르자 그제서야 겁에 질려 자신도 역모에 가담했으며 태자들을 보위에 올리려 했음을 시인하지만 이미 때는 늦어있었다. 종간과 왕건은 그가 황후의 아버지이자 황제의 장인이기에 함부로 처형했다가는 관료들과 백성들이 크게 동요할 것이라는 이유로[9] 그를 살리려 간해 보았지만 궁예는 대역죄를 용서할 수 없다며 뜻을 굽히지 않고 그대로 처형시키라고 명령함으로써 결국 강 장자는 법봉에 맞아 숨을 거두게 된다.[10] 이전까지는 궁예의 실정과 광기를 보면서도 줄곧 그를 걱정하던 연화도 아버지가 처형당한 소식을 들은 직후부터는 내관이나 시녀들 앞에서 인간 백정이라거나 미치광이라거나 하는 폭언을 서슴지 않게 된다. 얼마 뒤 어머니 백씨도 상심하여 식음을 전폐한 끝에 결국 목을 매어 자결하자 부부 사이는 최악에까지 치달았으며 결국 연화는 궁예에게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왕건에게 역성혁명을 권하게 된다. 그런데 이것이 궁예의 귀에 들어가고 강 장자의 양자를 잡아다 조사하기 시작했고 그 소식을 들은 연화는 궁예한테 악마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그것이 결정타가 되어 결국 연화는 물론 두 태자까지 모조리 처형당하는 비극을 맞게 된다.[11] 물론 강 장자의 처형 이후에 갑자기 그리된 것은 아니었고 아지태가 죽기 전 발악으로 왕건과 연화의 옛 일을 들먹이자 시작된 의심으로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한 것이 강 장자의 처형으로 인해 급격히 가속화되었던 것이다. 즉, 애당초 강 장자가 보위에 집착해서 아지태의 역모에 가담하지 않았다면 어마어마한 나비효과를 부를 정도로 화를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역사와는 차이가 조금 있는데 태조 왕건 연화 사후 나레이션을 보면 궁예가 어느날 갑자기 황후를 보며 관심법을 운운하며 네가 다른 사내랑 간통을 하니 웬일이냐라고 하였다 한다. 다만 견훤도 그러했듯 제작진은 궁예를 영웅으로 표현했기에 실록에서처럼 처참하게 광인으로 만들지 않았고, 그래서 이 대목을 빼는 대신 연화가 죽음을 자처하는 대목으로 바꾼 것이다.
궁예는 이후 연화와 태자들의 국문을 마무리 지은 후 강 장자의 양아들을 방면했으며 이후 강 장자의 가문과 양아들이 어찌되었는지는 언급이 전혀 없지만 같은 작가가 집필했으며 설정 일부를 공유하는[12] 후속작 제국의 아침에서는 강기주라는 인물을 비롯한 신천 강씨 집안의 세력가들이 등장하므로 이를 통해 신천 강씨가 완전히 몰락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13][14]
3. 평가
그자는.. 신경 쓸 것 없어. 별거 아니야.
은부가 아지태와 강장자의 밀담을 보고하자 종간이 보인 반응.
은부가 아지태와 강장자의 밀담을 보고하자 종간이 보인 반응.
강 장자는 아니야.. 그 기회라는 것이 오면 황제를 하야시키고 태자를 올리면서 강 장자의 목숨을 거두어야 하겠지.
아지태가 모반을 꾀하며 강장자에 대해 내린 평.
아지태가 모반을 꾀하며 강장자에 대해 내린 평.
폐하, 신이 일찍이 아지태만을 처벌하고 다른 죄인들을 방면한 것은 그 사악함이 적었고 저들이 단순하며 어리석었기 때문이옵니다.
궁예가 강장자의 처형을 명하자 왕건이 변호하며 내린 평.
궁예가 강장자의 처형을 명하자 왕건이 변호하며 내린 평.
아버님께서 이 가문을 일으키시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셨지. 그러나, 본래 권력이라는 것은 그 바탕에 있는 사람에게만 쥐어지는 것이야. 아버님께서는 그것이 없으셨네.
연화가 강 장자의 양자에게
연화가 강 장자의 양자에게
극 초반부에 연화가 황후로서 궁에 들어가는 이야기가 나오는 시점부터 그의 인물됨이 부각되었는데 아내와 딸이 왕씨 가문과 정혼을 한 사실을 언급하며 국혼을 내켜하지 않는 와중에도 귀가 솔깃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경우는 그나마 왕륭이 강장자의 그릇이 작아 약속을 차일피일 미룬 것이기에 결과야 어찌됐든 도의상 강 장자 본인의 죄는 아니라 할 수 있으나 그래도 나름대로 딸의 처지를 걱정하는 아내 백씨나 왕건의 집까지 가서 농성을 한 딸 연화에 비하면 그릇이 좁은 모습을 보여준 것이었다. 왕륭은 강 장자를 "장사치로 살면 족할 인물"이라고 평한 적이 있었는데 그의 예상대로 권력을 갖게 되자 양아들을 들이거나 다른 관료들이 백성들의 어려움을 걱정할 때에 "그것들은 그냥 소모품"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궁예가 독화살을 맞고 사경을 헤맬 때 복지겸을 찾아가는 눈치 없는 모습도 보였고 아지태와 역모를 도모하는 등 계속해서 어그로를 끌어댔다. 왕륭뿐만 아니라 종간도 강 장자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했는데 그에 대한 보고를 듣고 "망령난 늙은이가 권력의 단맛을 더 보고 싶어서 그러는 거다", "가벼운 자다", "전혀 걱정할 바 아니다" 등 그를 대놓고 얕보는 모습을 보였다.
정치적 감각도 바닥을 기는 수준으로 왕건이 시중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시중 자리는 자신이 맡아야 한다"고 대뜸 큰소리를 치기도 했다. 궁예가 북벌을 무리하게 추진하게 된 뒤로는 다들 광치나나 시중 자리를 맡고 싶어하지 않았다는걸[15] 감안하면 정세를 읽는 눈은 물론 사리 판단도 얼마나 떨어지는지 알 수 있다. 이런 성격의 소유자였기에 아지태 같은 간신의 뜬 구름 잡는 헛소리에도 간단히 놀아났던 것인데 정작 아지태는 혁명에 성공한 뒤 강 장자를 해치울 계획도 미리 세워두고 있었다. 만약에 아지태의 난이 성공했다고 치더라도 아지태는 나라가 바뀌면 종간, 왕건, 강 장자를 가장 먼저 죽여야 할 사람 중 하나로 꼽았으니 어찌되었건 죽을 운명은 피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는 것.아지태에게 있어서 강 장자는 그저 쓰다 버릴 장기말에 불과했는데 문제는 능력과는 별개로 강 장자는 황후의 아버지이자 태자들의 할아버지인 사람이다. 그런 그를 죽이려고 한다면 황후인 연화나 궁예 대신 황제가 될 태자 그리고 대신들이 가만 있을리 없었다. 이는 혁명에 성공 했더라도 한바탕 피바람이 불것이라는 걸 그리고 그만큼 서로간의 신뢰도 없고 어설프기 짝이 없는 반란 이라는걸 의미한다.[16] 참고로 왕건도 그를 변호할 때 단순하고 어리석고 사악함이 적었다며 변호하기도 했다. 아내인 백씨는 궁예가 석총을 처형한 뒤에는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는 연화의 생각에 동의하고 "왕건 덕분에 남편이 목숨을 부지했다"며 반성하기도 했지만 강 장자는 전혀 반성의 기미를 보인 적이 없었고 오히려 자신을 구해준 왕건에 대해 "내게 무슨 억한심정이 있어서 3년씩이나 발을 묶게 하냐"며 괘씸하게 생각하기까지 했다.
난세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갈망 하나 때문에 본래부터 경박하고 옹졸한 성격이 무시무시한 궁예의 폭정 하에서도 어리석은 행보를 이어간 결과 역모로까지 치닫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는 정국 속에서 스스로가 절대 권력을 쥐고 있으면 안전하고 좋지 않겠냐"는 것이다. 궁예가 아지태 사건을 다시 조사하는 과정에서 감옥에 갇혔을 때 한 독백이나 유언이 그것을 잘 나타내 주며 이후 딸인 연화는 물론 아내 백씨도 그가 죽게 되자 그의 잘못을 아는 모습을 보인다. 연화도 강 장자가 처형당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아버님께서 얼마나 살고자 하셔서 그러셨을까"하고 일견 그를 이해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연화로부터 몇 번이고 과욕을 부리지 말라는 신신당부를 받았고 왕건으로부터 관대한 판결을 받아 반성을 할 기회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스스로의 행적을 돌아보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주변 인물들이 끊임없이 만류함에도 불구하고 만족을 모르고 분수에 맞지 않는 탐욕을 부렸다가 결국 이것이 화근이 되어 그 자신은 물론 일가가 모조리 몰락하는 신세로 전락해버렸다. 그의 지나친 두 태자들의 보위 집착은 보위는 커녕 자신의 딸인 황후와 두 태자들을 처형당하게 만들었다.
황제인 궁예를 사위로 삼았고 그 덕에 부귀영화를 누렸으면서도 그에게 감사하거나 타락해가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하거나 존중하는 모습을 일절 보여주지도 않았다. 결국 아지태만큼 사악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지략도 없는 탐욕에만 가득찬 속물이었다. 이미 자기 그릇에 걸맞지 않은 황실 외척이라는 권세를 갖고 있어서 차라리 가만히만 있어도 황제의 장인이라는 엄청난 위치 때문에 궁예는 그를 의심했거나 아지태가 왕건과 연화의 과거 정혼사실을 폭로했을지언정 결코 함부로 죽이지도 못했을 것이며 [17] 그 전에 궁예는 이미 강 장자가 가만히 두어봐야 자신에게 아무런 정치적 위협도 되지 않는 그저 소인배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기에 어쩌면 의심 자체를 안 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조급하게 과욕을 부려[18] "자연적으로 황제가 되는데 왜 급하게 억지로 올리려 했느냐"는 궁예의 의심을 사 역모라는 최악의 죄에 연루되었고 황제의 장인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죽음을 피하지 못하고 만 것이다. 여러모로 안타까우면서도 정말 어리석을 따름.
시청자의 평가는 물론 작중에서도 평가는 그야말로 '최악의 국구'로 요약할 수 있다. 아지태는 처음부터 강 장자를 쓰다 버릴 카드로 취급했고, 딸인 연화는 아버지에게 몇 번이나 충고를 했지만 들어먹지 않자 "그렇게 죽고 싶으십니까" "아버님은 물론 태자까지 다 죽이고 싶으십니까" 고 극언까지 퍼부으며 말리려 했으며, 정말 강 장자가 죽음의 위기에 몰리자 "다 자업자득이십니다"라며 뒷목을 잡았다. 종간도 강 장자를 살리려 하면서도 "강 장자가 보위를 운운한 대역죄는 지었습니다만~"라며 큰 죄를 지었다는 건 부인하지 못했고, 왕건의 책사인 태평마저도 강 장자 처형 이후 "폐하 입장에서 그냥 넘어 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고 하는 등[19] 작중에서 강 장자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거나 행동을 옹호해 준 사람은 그 자신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4. 어록
(제93화 중, 아지태와의 회합을 만류하는 강비에게)
"그저 조용히 두고만 보시오소서. 황후마마는 가만히만 계시면 되옵니다. 지금 폐하께서 어찌 되실지는 아무도 모르옵니다. 그 준비를 하고 있다 이런 말이옵니다. 저 독사 같은 내원에게 죽거나 아니면 폐하에게 죽거나... 우리는 잘못하면 그렇게 죽사옵니다. 눈치 없는 이 늙은이도 그것을 아옵니다. 그래서 살아보고자 발버둥치는 것이옵니다, 황후마마."
"그저 조용히 두고만 보시오소서. 황후마마는 가만히만 계시면 되옵니다. 지금 폐하께서 어찌 되실지는 아무도 모르옵니다. 그 준비를 하고 있다 이런 말이옵니다. 저 독사 같은 내원에게 죽거나 아니면 폐하에게 죽거나... 우리는 잘못하면 그렇게 죽사옵니다. 눈치 없는 이 늙은이도 그것을 아옵니다. 그래서 살아보고자 발버둥치는 것이옵니다, 황후마마."
(제103화 중, 아지태의 난에 연루되어 가택연금을 받은 뒤 자신의 부인에게)
"정책이 바뀌고, 권력의 향배가 바뀌면 언제 어떻게 죽을 지 모르는 것이 이 전국시대 벼슬아치들의 운명이오. 우리는 약자요. 장래를 좀 보장받으려고 뛰어다녔던 것이오. 그것이 무엇이 잘못 됐다는 말이오? 아지태의 말이 맞소이다. 미쳤소이다. 황제는 미쳤단 말이오. 그래서, 나도 살려고 뛰어다닌 것이야. 미친 황제에게 물리지 않으려고 말이오."
"정책이 바뀌고, 권력의 향배가 바뀌면 언제 어떻게 죽을 지 모르는 것이 이 전국시대 벼슬아치들의 운명이오. 우리는 약자요. 장래를 좀 보장받으려고 뛰어다녔던 것이오. 그것이 무엇이 잘못 됐다는 말이오? 아지태의 말이 맞소이다. 미쳤소이다. 황제는 미쳤단 말이오. 그래서, 나도 살려고 뛰어다닌 것이야. 미친 황제에게 물리지 않으려고 말이오."
(제108화 중, 처형당하기 직전 최후의 유언)
"이 난세에서 어떻게든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고 싶었사옵니다. 그것 뿐이옵니다, 폐하. 헤아려 주시오소서."[20]
"이 난세에서 어떻게든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고 싶었사옵니다. 그것 뿐이옵니다, 폐하. 헤아려 주시오소서."[20]
5. 기타
드라마에서는 강 장자라고만 나오지만 소설판에서는 이름이 강우순으로 설정되어 있다. 한편 훗날 왕건의 의형제가 되어 고려의 명장으로 활약하는 유금필은 원래 강 장자 집안의 가병들을 이끌던 장수였는데, 왕건이 송악에 황궁을 지을 때 도우면서 그의 인품에 감명을 받아 의형제가 된다. 강 장자도 유금필이 완전히 왕건의 사람이 된 것을 깨달았는지 궁예왕과 강비의 국혼이 치러진 직후에 "유 장사는 이제 사실상 자네 사람이 됐으니 잘 부탁한다" 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였다. 이후에도 딱히 유금필 관련으로 뭐라 이야기가 안 나온다[21]. 어떤 면에서는 유금필의 앞길을 의도치 않게 열어줬다.강 장자 역을 맡은 배우는 김성옥(1935~2022)으로, 용의 눈물에서는 최영 장군 역으로 열연한 바 있다. 제1화에서 위화도 회군이 벌어지다 보니 금방 퇴장하기는 했지만 본작에서와는 정반대로 간지 폭풍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선보였다. 제국의 아침에도 출연했는데 권신 왕식렴의 휘하에서 서경 건설을 실질적으로 지휘한 시중 권직 역을 맡았다. 건설에 동원된 인부들이 굶주림과 과로로 인해 쓰러짐에도 휴식을 주기는 커녕 되려 도구쯤으로 취급하고 굴리는 등 본작의 아지태처럼 인간성이 결여된 모습을 보이는데 비참한 최후를 맞게된 것 또한 비슷한 부분이다.[22]
[1] 강비의 이름은 기록이 없어서 드라마에서 편의상 연화라고 이름지었다.[2] 김성옥은 본작의 후속작인 제국의 아침에서 정종 대의 시중 권직 역을 맡았는데, 서경 공역을 사실상 총지휘하는 인물로 강 장자 시즌 2라고 보면 대충 설명이 되는 캐릭터다. 다만 권력에 대한 욕심이 없는 대신 "백성들은 소모품이다" 라는 강 장자의 망언을 실제로 행동으로 보여준다고 할 정도로 인부들을 험하게 부리는 모습을 보인다.[3] 왕 혹은 황제의 장인.[4] 복지겸은 보위 이야기가 나오자 기겁하는 반응을 보인다.[5] 그러나 아지태는 쿠데타에 성공하면 강 장자 역시 시해하려 했고 결국은 아지태와 강 장자 모두 궁예의 법봉에 맞아 숨을 거뒀다.[6] 왕건과 연화가 과거에 혼인을 약속한 사이였으며 강 장자가 목숨을 걸고 어린 태자들을 보위에 올리고자 했는데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라는 말이었는데 궁예는 두 태자가 친자식이 아닐 수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아지태도 그런 의도로 말하였다. 연화가 임신을 한 것은 황후가 되고 몇 년 뒤 궁예가 순행을 하던 중이었으니 태자들은 궁예의 자식이다. 강 장자는 섭정을 하며 권력을 쥐려고 하기 위함인데 궁예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의심할만한 사항이니 자업자득이다.[7] 도인의 경우 암살자로 오해한 궁예에 의해 참형을 당한다.[8] 궁예가 먼저 기전에게 강 장자가 역모를 꾸몄느냐고 묻자 기전은 아무 것도 모른다고 대답한다. 궁예는 그를 마군이라고 판정하면서 그 자리에서 법봉으로 처단하고 이에 능달이 겁을 먹은 나머지 강 장자가 아지태와 함께 역모를 꾸민 것을 보았다고 말하며 살려달라고 빌지만 궁예는 이미 면죄받을 기회를 놓쳤다면서 역시 법봉으로 처단한다.[9] 작중 흐름을 보면 강 장자가 처형당한 후 얼마 뒤에 강 장자의 부인이 자결함으로써 결국 강비와 궁예의 사이가 틀어져 강비와 두 태자들이 처형당하며 이후 산에 버려진 강비와 태자들의 시신을 형미대사가 거두어 장례를 치러주다 추포되어 처형당하는 연쇄 작용 끝에 결국 왕건의 역성혁명이 일어난다. 결론적으로 궁예가 강 장자를 처형한 것이 궁예 자신에게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자초한 셈이다.[10] 궁예가 강 장자를 처형시킨 이유는 그동안 무너진 황실의 권위를 세우고 사람들에게 대권의 '대'자도 꺼내지 말라는 경고를 하기 위해서였다. 종간의 언급처럼 강 장자는 인물됨이 가벼운 소인배이지만 황제의 장인인만큼 그를 죽인다는 것은 상징성이 큰 행동이었다. 종간은 득보다는 실이 많은 행동이었다고 평가했으나 강 장자의 죽음 자체는 굳이 죽일 필요까지는 없었다는 정도의 반응만 보였다. 이전에 살생부를 올렸을 때는 궁예의 병증이 심한 상태에서 무슨 짓을 할지 몰라서였지만 아지태라는 끈이 떨어진 이후에는 별 위협이 되지 못한만큼 이런 평을 내린 것. 그리고 강 장자의 죽음으로 인해 부인인 연화와의 관계가 완전히 파탄나고 말았다.[11] 이때 궁예는 연화의 처형을 막겠다면 그것을 죄로 간주하여 같이 처형하겠다고 관료들에게 경고했다.[12] 실제 역사에서는 의형제 그런 기록이 전혀 없는 박술희가 태조를 형님이라고 부른다거나, 정종이 자신의 내군 장군에게 궁예가 내군 장군(은부)에게 자신을 베어 달라고 부탁했다고 운운하거나 등.[13] 신천 강씨가 완전히 몰락하지 않았던 것과 태조 왕건 작중에서 강 장자의 가족을 제외한 다른 신천 강씨 구성원들이 어떻게 되었다는 언급이 없었던 것을 보면 태조 왕건 작중에서 강 장자와 그 가족들만 화를 입었을 뿐 다른 신천 강씨 구성원들은 화를 입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14] 후일 현종을 옹립한 강조, 조선 태조의 비인 신덕왕후 강씨 등이 모두 신천 강씨들이다.[15] 민생이 제대로 파탄나는 와중에 북벌의 성과조차 안 나올 것이 뻔한데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는 이유 하나로 책임을 고스란히 혼자서 떠 맡아야 했으니 관리들 입장에서는 전혀 달가운 자리가 아니다. 왕건의 숙부 왕평달은 광치나 자리를 이어받았을 때 이를 불편해하면서 전임 광치나인 박지윤은 속으로 기뻐할 것이라고 평하기도 했다.[16] 당장 궁예의 폭정이 정점에 달해 있던 시기에 대다수의 신료들의 지지를 받아 역성혁명을 일으킨 왕건도 즉위 직후 궁예를 지지하던 지방 호족의 적잖은 반란에 골머리를 썩혔는데, 아지태와 강장자의 계획이 설령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 후폭풍은 왕건보다 심하면 심하지 못하진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더군다나 아지태는 이미 수많은 중신들에게 북벌과 청주인 위주의 천거 등으로 공공의 적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17] 적어도 아지태 역모에 가담하지 않았으면 역모에 가담한 임춘길처럼 살아있을 것이고 궁예가 아지태 사건을 재친국을 할때 강 장자를 소환하지 않고 국문장에서 친국을 할때 강 장자를 따로 불러 기전과 능달만 강 장자가 보는 앞에서 처형하고 강 장자한테 절대로 부귀영화를 누리지 말라는 경고하는 겸 압박하는 정도로 끝냈을 것이다.[18] 왕건과 달리 궁예는 정실 황후가 딱 1명이었다. 먼저 혼인했던 북원부인 미향은 진작에 사망했고, 그 자식은 존재 자체가 증발한 반면 연화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슬하 태자는 쌍둥이 아들하고 강비가 처형당하기 직전에 낳은 순백을 포함해 총3명이라 침착하게 납짝 엎드려 때만 기다렸더라면 왕건이 역성혁명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무조건 다음 황제를 이어받을 수 있었을 것이고 설령 왕건이 역성혁명을 일으켜 새 나라를 세웠더라도 왕건이 워낙 대인배고 양가의 깊은 교류로 인한 인연과 연화와의 정 그리고 한때 정혼을 약속했던 사이였기 때문에라도 강 장자를 죽이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도 왕건이 아지태와 역모를 꾸미다 체포되어 국문을 받고 처벌을 기다리던 강 장자에게 관대한 처분을 내리고서 상기된 것처럼 '그냥 사람이 어리석어 꾀임에 넘어갔지 악한 건 아닙니다.'라고 변호해주기도 했다.[19] 이 때 태평은 궁예는 답이 없는 광인이라 규정하고 왕건이 그 뒤를 이어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강 장자 문제만큼은 궁예의 잘못보다 강 장자 잘못이 더 크다고 본 것. 이를 통해 강 장자는 누가봐도 최악의 인물이라는 평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20] 이 대목 직전까지 경망스럽고 호들갑스럽게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던 강 장자가 이 마지막 대사는 가벼운 기를 싹 거두고, 무겁고 진지하게 말했는데 강 장자가 어떻게든 살고 싶었다는 대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궁예가 이럼에도 대역죄는 용서가 안된다며 참형을 내리자 다시 원래의 경망스럽고 호들갑스러운 목소리로 돌아왔다.[21] 의도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기보다, 이 작품에서 전반적으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설정이다 싶으면 이미 분명히 언급이나 묘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예 없었던 것처럼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친분이 있는 것으로 언급되는 복지겸과 은부가 후고구려 건국 이후로는 서로 마주치는 장면이 한 번도 없다거나, 수달이 견훤과 의형제를 맺는 대목에서 막내로 언급되는 김총이 그 장면 이후로는 의형제 티를 전혀 내지 않는다거나 등등.[22] 하필 같은 배우가 바로 다음 작품에서 시중 역으로 나오다 보니 스트리밍 시청자 사이에서는 강장자가 권력을 잡았을 때의 미래라는 드립이 흥하고 있다. 다만 권직은 집정 왕식렴의 앞잡이 정도로 나오지, 최고 권력자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