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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유(태조 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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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홍유의 모습[1]

1. 개요2. 캐스팅3. 극중 행적

[clearfix]

1. 개요

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의 등장인물. 배우송용태.

2. 캐스팅

배우 송용태가 연기했다.

여담으로 그는 이 드라마 이후인 2003년 KBS 드라마 <무인시대>에서는 이소응 역할로 나오는데 이소응은 잘 알려진 것처럼 오병수박희에서 젊고 하급 무관이던 석린[2]과 붙었다가 실컷 얻어터지고, 한뢰에게 뺨을 맞는 등 모욕을 당하면서 무신정변의 불씨를 당기는 인물이다. 강대한 무력을 자랑하던 홍유가 200년 후에는 젊은 무장인 석린에게 얻어맞고 문신에게 노인 학대를 당하는 노장으로 등장한 것. 아이러니하게도 홍유에게 썰린 청주 호족 선장을 연기했던 배우 김명국은 <무인시대>에서 채원을 연기하는데 채원이 이소응을 단 1번의 칼싸움으로 제압하는 장면이 나왔다. 2014년 KBS 드라마 <정도전>에서는 배극렴을 맡아 고려와 조선왕조의 개국공신을 모두 연기하게 되었다. 그리고 <태종 이방원>에서는 고려의 수호신으로 여겨지던 최영을 연기하여 고려와 이래저래 인연이 있다.

3. 극중 행적

명주성주 김순식의 휘하 장수로서 등장하였는데 거칠고 불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유금필에 가려서 눈에 띄지 않을 뿐이지 극 중 홍유의 무력도 상당한 수준으로 나온다. 고려 건국 후 선장 형제의 난에서 임춘길의 부하로 위장하고 적진에 잠입하여 결국 선장 형제를 둘 다 베어버리기도 하고 유금필과 맞먹는 무력을 지닌 것으로 추정되는 수달에게 혼이 난 것[3] 외에는 전투에서 실책을 저지르거나 패배하는 일이 없이 꾸준히 전과를 올렸다. 고창 전투 당시 홍유와 배현경이 후방에서 나타나 백제군의 퇴로를 끊어버리자 견훤마저도 "저들은 홍유와 배현경이다. 전투에서 많이 봤다. 어허... 이거 일이 점점 꼬이는구나."라며 불안해했을 정도이다. 무력 못지 않게 지략도 뛰어나 계략으로 승리를 이끌어내는 모습도 자주 보이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고려 건국 이후 청주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할 때 자청해서 선두로 진입. 선장 형제를 농락하고 그들의 목을 베었다.

고려 건국 이후에는 왕건의 지나친 총애를 받는 유금필을 견제하기 시작하며 고창 전투 이후 왕건이 유금필만 특별히 많이 칭찬할 때 옆에서 배현경과 더불어 못마땅하는 기색을 드러내 보이는 것으로 갈등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 조정 회의에서 왕식렴도읍을 옮기자는 말을 꺼냈을 때 유금필이 격렬히 반대하고 이를 본 홍유는 "당장 옮기자는 것도 아닌데 왜 그리 과민 반응이냐"며 유금필을 정면으로 까면서 둘의 갈등이 표면화되는데 이 사건으로 왕식렴도 유금필에게 불만을 품는다. 그 후 평양에서 오랑캐 부족장들이 왕건 대신 유금필에게 만세를 외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왕건은 오랑캐들이 모르고 한 일이라 전혀 신경쓰지 않았지만[4] 옆에 있던 왕식렴이 "감히 신하가 황제 대신 만세를 받을 수 있느냐. 이건 반역죄가 아니고 무엇이냐"라고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그동안 유금필을 고깝게 여겨왔던 홍유와 배현경도 이 때다 싶어 왕식렴에 가세하여 유금필을 헐뜯고 고려 조정이 분열될 위기까지 간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유금필이 귀양을 가게 되는데 홍유와 왕식렴은 뭔가 일이 자기들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느끼고 불안해한다. 자신들은 삭탈관직만 원했지만 왕건은 굳이 유배형이라는 초강수를 두었으며 유배 장소가 황도 바로 아래인 곡도(오늘날 백령도)라는 점도 이상했다. 왕건(정확히 말하면 최응)이 노린 점이 바로 이것으로 이 사건을 통해 신료들에게 무언의 경고를 보냄과 동시에 취약 지구인 곡도를 보강하려는 신의 한 수를 두었다.[5] 유금필이 유배를 떠난 후 왕건은 왕식렴과 홍유를 술자리에 부르고[6] 불안한 마음에 잔뜩 얼어있던 두 사람에게 꾸중을 하는가 싶더니 왕건이 갑자기 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이 일은 황제인 나의 잘못이 가장 크다"며 용서를 구하자 이에 홍유와 왕식렴은 눈물을 쏟으며 깊이 반성한다. 유금필이 황제 전용의 예법인 만세를 받았다는 것을 문제삼은 두 사람이었으나 그들은 도리어 황제의 절을 받음으로써 몇 배나 더 큰 참회와 반성을 되돌려 받게 되었다. 실로 왕건 특유의 외유내강형 인품이 잘 드러난 명장면.
왕건 : 사실 죄라면 황제인 이 사람이 받아야 했습니다. 경들의 마음을 보다 더 헤아리고 살펴서 잘 정리하고 경영하여 가는 것이 황제가 할 일이올시다. 짐이 실수를 한 것이올시다. (중략) 내가 금필 아우를 대신하여 두 분께 죄를 청하겠소이다. 다 용서하시구려. 그리고 이 사람의 절을 받으시구려. (제174화 중)

물론 이 둘은 개인적인 욕심이 아니라 공적인 이유로 그렇게 한 것이기 때문에 왕건에게 문책을 당하지는 않았고 왕건 역시 무릎을 꿇기 전 "자네들이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에 그렇게 했음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결국 잘못을 깊이 뉘우친 그들은 이전과는 정반대로 유금필의 유배를 풀어줄 것을 적극적으로 청하고 유금필과도 화해하면서 사건은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7] 역사적 사실이 아니기는 하지만 유금필과의 껄끄러웠던 관계가 반영된 작가의 창작으로 보인다. 이후 고려의 장수로서 활약하면서 태조 왕건의 마지막 전투인 일리천 전투에서는 후백제의 김총과 맞붙어 몇 합만에 김총의 무기를 날려버린 후 김총의 목에 칼을 겨누며 웃는 등 김총을 사로잡는 활약을 보여준다. 황산전투 막바지에는 왕건에게 기병으로 쓸고내려가 끝을 내자는 제안을 했으나 왕건은 이미 이긴전투라며 목숨도 다 소중한 것이라며 기다려보자고 했다. 삼한을 통일한 왕건이 개선할 때 뒤에서 같이 따라오는 인물 중 클로징에서 복지겸과 함께 얼굴을 드러냈다.

여담으로 신숭겸 사후, 등장 하는 모든 장수들 중 유일하게 언월도를 주 무기(정확히는 왕건의 역성혁명 전후로 언월도를 사용했다.)로 사용하는 캐릭터가 되는데, 혼자서만 검이 아닌 다른 유니크한 무기를 휘두르면서 웬만한 백제 장수들을 크게 압도하는 모습이 노장의 간지가 느껴진다는 평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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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래 오프닝 3기에서의 박술희, 신숭겸, 홍유. 맨 오른쪽 인물이 바로 배우 송용태가 맡은 홍유이다. 뒤이어 등장한 오프닝 4기에서는 신숭겸이 전사한 이후라 홍유가 신숭겸의 자리를 대신했고 염상이 홍유의 자리를 대신하였다. 본래 유금필신숭겸, 박술희의형제로 나오고 홍유는 배현경과 쌍으로 엮이는 일이 많음에도 오프닝의 사진을 교체하지 않고 기존 인물들을 그대로 두고 추가된 인물들만 한꺼번에 모아서 붙였기 때문에 이러한 장면들이 연출되었다.[2] 석린 역을 맡았던 장순국 또한 <태조 왕건>에서 왕건의 집사인 장수장 역을 맡았고, 거기에 무술 감독 출신이다.[3] 제59회 1차 나주 전투 당시 산성에 틀어박혀 있던 수달을 끌어내기 위해 홍유가 수달을 도발한다. 수달은 도발에 말려들기는 했지만 문제는 수달이 세기 말 무력 괴수였다는 것이었다. 홍유 역시 무력이 상당함에도 수달과의 결투에서 쉽게 발리고 수로 바닥에서 데굴데굴 굴러야만 했다. 수달이 홍유를 가지고 노느라고 시간을 끌지만 않았더라면 홍유의 인생은 여기서 끝장날 뻔했다.[4] 왕건도 신하 시절에 똑같은 일을 겪었다. 궁예를 비롯해 여러 지방 세력가들이 참석한 팔관회 자리에서 그간 송악 성주에게 하례를 올리는 관례가 있었던 외국 상인들이 죄다 왕건에게 달려가 인사하고 선물을 건넸던 것. 하지만 왕식렴이 급히 나와 그간의 관례에 대해 설명하고 용서를 빌며 궁예에게 다시 인사를 시켰는데 이 시절에는 개념 군주이고 왕건을 신임하는 궁예도 그간의 관례에 대해 알고 있었던지라 관대하게 넘어갔다.[5] 이후에 후백제 신검의 군대가 고려 황도를 급습하여 실컷 유린하고 곡도로 쳐들어갔다가 유금필에게 대패한다.[6] 배현경은 제외했지만 배현경 본인도 홍유와 왕식렴이 불려간 것에 대해 자신도 어쩌면 황제에게 같은 꾸중을 들었을 거라고 보았다.[7] 이 일로 인해 홍유는 유금필의 의제인 박술희와도 껄끄러운 관계가 되지만 훗날 홍유가 술자리를 마련해 박술희에게도 사과하고 박술희도 이를 받아들이면서 다시 관계를 회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