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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24 22:28:18

연화(태조 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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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연화의 모습[청소년기][오프닝2기]

1. 개요2. 극중 행적
2.1. 왕건과의 연정2.2. 궁예와의 갈등2.3. 비극적인 최후2.4. 죽음이 미친 파급 효과
3. 평가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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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의 등장인물로, 실제 역사상 궁예의 부인이었던 강비이다. 궁예의 아내였던 강비의 이름은 기록에 나와 있지 않지만 116화 나레이션에서 연화라는 극중 이름을 붙였다는 설명이 등장한다.[3] 드라마에서는 김혜리[4]가 연기했고 이정후[5]가 아역을 맡았다. 또한 왕건과 강비의 사랑 이야기 역시 철원 지역의 설화에서 전해 내려오는 왕건과 강비의 정혼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내레이션을 통해 밝히고 있다.

2. 극중 행적

2.1. 왕건과의 연정

드라마에서는 신천의 부유한 호족 강 장자의 딸이자 왕건의 약혼자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궁예가 송악에 입성했을 때 왕건의 아버지인 왕륭이 강 장자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던 것도 있어 혼사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종간에게 왕후 후보자로 추천받아 왕건과 파혼하고 궁예의 왕비로 입궁하게 된다.

극중에서 그녀는 어린시절에 왕건과 정혼한 사이였으며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나온다.[6] 하지만 왕건의 아버지 왕륭은 아들이 장차 새 나라를 세우게 될 거라 굳게 믿고, 그녀가 왕후감은 아니라고 보고서[7] 차일피일 혼사를 미루는 방법으로 두 사람의 정혼을 깼다. 그 과정에서 관상에 밝은 것으로 나온 종간은 그녀를 보고 귀인의 상이라고 여겼다. 게다가 왕건을 보고 궁예와 상극이 될 것임을 알면서 왕씨 일족의 세력을 꺾어 두려고 부단히도 노력했는데 그 과정에서 왕건과 정혼만 했을 뿐 혼인은 성사되지 않았음을 알고는 그녀를 왕후로 천거했던 것이다.

비록 왕건을 사랑했고 마음에도 없는 왕후 자리에 올랐지만 그래도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자 궁예를 남편이자 임금으로서 정성을 다해 내조하였다. 자신의 딸이 왕후라는 점을 이용해 권력의 단맛에 취해가는 아버지 강 장자를 나무라며 자제할 것을 당부하는 등 개념인의 모습을 보인다.[8] 하지만 궁예가 후계자 교육을 명분으로 태어난 지 얼마 안되는 쌍둥이 아들을 자신과 떼어 놓고는 만나는 것마저 제한하자 미향과 자신의 처지를 겹쳐 보며 절망하기도 한다[9].

2.2. 궁예와의 갈등

결국 중, 후반부부터 점차 광기에 물들어 가는 비정한 궁예의 모습에 실망하게 되었고 결정적으로 아버지인 강 장자가 108화 아지태의 역모 사건에 휘말려 결국 처형당하자 이에 궁예와의 사이는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일로를 걷게 된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왕건과의 정혼 사실이 아지태에 의해 들통나면서 자신과 왕건 사이를 의심하는 궁예와의 갈등이 더욱 커진 건 덤. 아지태는 처형당하기 직전에 정혼 사실을 폭로하는 동시에 왜 강장자가 궁예를 몰아내고 태자들을 보위에 올릴려고 했는지 잘 생각해보라는 유언을 남겼는데 궁예는 이를 두 태자가 사실은 자신의 자식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고,[10] 점차 의처증이 심해진다. 물론 강 장자가 태자를 보위에 올리려고 한 것은 단지 자신이 황제의 외할아버지가 되어 권력을 쥐고 싶어서였을 뿐이고, 작중 강비가 왕건을 사모하긴 했지만 강비나 왕건 모두 바람을 피울 인물이 절대 아닌 관계로 이러한 의심은 그냥 궁예의 헛된 망상일 뿐이었다. 강비 역시 강 장자의 죽음 이후 궁예가 자신은 물론 아들들까지 죽일 것이라는 불안감을 가지기 시작한다.

110화에서 강장자의 죽음 직후 어머니 백씨마저 실의에 빠져 식음전폐를 한 끝에 결국 목을 매어 스스로 목숨을 끊자 눈이 뒤집힌 강비는 "이게 다 그 미치광이 때문이다! 저 미치광이! 폐하도 아니고 미륵도 아닌 저 미치광이가!"라고 분통을 터뜨리며 궁예에게 가서 폭언을 퍼붓는다.

당시 백씨 부인의 자살 소식을 전해들은 궁예도 "왜.. 왜? 왜 죽었단 말인가? 하긴, 살다보면 그러고 싶을 때도 있지. 아니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허망하게 스스로 목숨을 끊어?"라며 당혹스러워한다. 그 직후 살기등등한 얼굴을 한 채 자신을 찾아온 황후를 보곤 웃으며 반긴다. 원래 이 드라마에서 궁예가 목석인 면이 있긴 하지만 그건 이전까지 승려로서 세속적인 삶을 살지 않아서였고, 멀쩡하던 시절에는 고통받는 백성들의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 하거나, 특정 상황에서 슬픔을 표현하는 등, 감정이 아예 메마른 건 아니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궁예는 폭군으로 타락했기에 타인의 감정에 교감하는 능력이 완전히 망가진 상태였다. 강비는 폐하께서 왜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지 않았냐, 그러니까 주위에서 대역을 할 생각을 하는 거 아니냐며 궁예의 면전에서 대놓고 궁예를 비난했고, 당시 강비가 셋째를 가졌기에 태교에 전념하라고 궁예가 말하자 궁예에게 독설을 퍼붓는다.
그래도 아이 생각은 하시옵니까? 저주스럽사옵니다. 이러실 수는 없사옵니다! 폐하는 미륵이 아니시옵니다! 인간의 탈을 쓴 저승야차시옵니다! 지옥에 사는 야차폐하보단 나을 것이옵니다!

그러자 궁예는 대노한 나머지 적반하장으로 백씨 부인의 장례식에 물자를 지원하려던 명령을 거두어들이는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한다[11]. 부군인 궁예에 대한 증오심과 부모님이 자신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것에 대한 절망감에 빠진 강비는 궁예는 가망이 없다고 결론내렸고, 두 태자라도 구하고자 어머니의 장례에 문상을 온 왕건에게 대담하게도 "궁예를 몰아내고 옥좌에 오르라"[12]역성혁명을 권하고 왕건은 놀라서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얼마 후 113화에서 강비는 막내아들을 낳았는데, 이때 궁예는 의심병이 심해져 강 장자의 양자를 역모죄로 체포했고 놀란 강비는 진통을 겪는다. 마침 궁예가 찾아오자 강비는 어느 황제가 처가의 씨를 말리느냐며 다시 궁예에게 독설을 퍼부었다.[13]
연화: "죄라고 하셨사옵니까? 무슨 죄이옵니까? 신첩은 지금 이렇게 폐하의 아이를 또 낳고 있사옵니다. 도대체 폐하께서는 사람이시옵니까, 짐승이시옵니까?"
궁예: "뭐라?"
연화: "나로 하여금 아이를 낳게 하시면서 한편으로는 의심의 병이 가득하여 처갓집을 몰살하는 황제도 있사옵니까?"
궁예: "이런, 이런... 죄가 있으면 받아야지요!"
연화: "내 아우를 풀어주소서. 아무리 사람이 미워도 남의 집 대를 끊는 법은 없사옵니다."
궁예: "죄인의 집안에서는 역적이 나오는 법이오. 대를 이어봤자 나라에 아무 도움이 안되는 것이오. 황후도 그 아이를 낳게 되면 죄를 묻게 될 것이오. 나를 밀어내고 왕건 아우를 옥좌에 앉으라 하였다지? 왜 그런 말을 하였소?"
연화: "저로 하여금 그렇게 만드신 분이 누구시옵니까?"
궁예: "이보시오, 황후. 나는 황후가 이 세상 누구보다도 정결하고 참으로 순수한 사람으로 알고 살았소이다. 허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게요."
연화: "폐하는 불쌍하신 분이시옵니다!"
궁예: "불쌍하다고? 내가?"
연화: "폐하께서는 평생을 사람을 믿지 못하고 사셨습니다. 여인의 지극한 정이 무엇인지, 가족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십니다. 오로지 야망만 갖고 살아 오셨습니다. 그러니, 어찌 불쌍하다 아니 할 수 있겠습니까? 신첩은 그 옛날 죽은 북원부인의 일을 기억하옵니다. 그 가엾은 여인은 어찌 죽었습니까? 그 북원부인이 죽을 때 신첩도 그때 이미 제명에 죽지 못하리라는 것을 보았사옵니다."
(회상으로 불타죽는 북원부인 미향이 잠시 등장한다)

강비는 내게 관심법을 써 보라고 비꼬다가 지금도 왕건을 사모한다고 말하며, 왕건까지도 죽이려 하느냐며 독설을 계속했다. 궁예는 황후는 제국을 위해 죽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연화는 궁예를 거짓 미륵이라고 말했다.
궁예: "(중략)그리고, 그 내 아이,[14] 내 아이나 잘 낳으시구려. 내 아이 말이야."
연화: "어찌 폐하의 아이라고만 하시옵니까? 신첩의 아이이기도 하옵니다."
궁예: "그 아이는 내 아이야!"
연화: "폐하께서는 아무 것도 주장하실 수 없사옵니다. 사람 사는 법을 모르시는 분께서 어찌 아이는 그렇게 욕심을 내시옵니까?"
궁예: "내가... 내가 사람 사는 법을 모른다?"
연화: "인간이기를 포기한 악마가 그것을 어찌 알겠사옵니까?"
궁예: "악마라..? 악마라..? 더 이상 얘기해 봐야 아니되겠구먼. 역시 길이 보이지를 않아. 길이 없어."
(궁예는 연화를 노려보다가 자리를 뜬다. 궁예가 떠난 직후 연화가 진통을 겪는 와중에 소리를 지른다)
연화: "악마다! 황제가 아니라 악마야! 악마!!!!!"

궁예는 위의 두 아들도 죽일 것으로 결심을 굳혔는지 새로 낳은 막내라도 자신의 뒤를 이을 아들로 제대로 키우겠다며 '순백(純白)'이라는 이름을 짓고 아이를 빼앗아 간다. 강비는 셋째의 이름이 순백이라면 먼저 낳은 두 아들은 순백하지 않다는 것이냐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아이는 역성혁명 후 한 궁녀가 몰래 숨어서 길렀는데 왕건에게 발견된다. 주위사람들은 후환을 없애야 한다고 충고하지만 왕건은 아이의 목숨을 살려주고 따로 기르게 해서 나중에 고려에서 관직에까지 올랐다고 한다.

2.3. 비극적인 최후

이에 강비는 이제 나라에 희망이 없다며 좌절한다. 혹시나 진짜로 역성혁명이 벌어진다면 왕건은 몰라도 왕건의 심복들과 대신들이 강비와 두 태자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을 것임이 뻔한데도 차라리 왕건에게 목숨을 맡기는게 더 안전할 것이다라는 생각을 할 정도라면 이 때의 강비의 멘탈이 얼마나 심각하게 붕괴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여기서 이 대화를 엿들은 궁인(극중에서는 내원의 수하인 내군장군 은부가 정보수집과 감시를 위해 심어둔 정보원으로 등장)이 은부에게 다 일러바치는 바람에 역모죄로 국문을 당하게 되고 사이가 악화되던 궁예에 의해 결국 두 태자와 함께 죽음을 당하게 된다. 국문장에서 처형되기 직전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궁예에게 폭언이지만 바른 말을 하고[15] 왕건에게는 자기 때문에 안 좋은 일에 말려든 것에 대한 용서를 구한다. 이 때 강비의 대사가 참 애잔하다.
연화: "왕 장군, 인연이 없는 분에게 너무도 많은 짐을 드리고 가는 것 같습니다. 용서를 구한다면 장군께 구하고 싶습니다. 저 때문에 너무도 많은 곤란을 겪고 계십니다. 만약에 훗날 구천에서 다시 뵐 수 있으면 그 때 다시 죄를 빌겠습니다. 그리고 못다한 말씀을 다 드리겠습니다. 먼저 가옵니다, 장군. 내내 행복하소서."
왕건: "황후마마, 용서를 구하시오소서. 폐하께 용서를 구하시오소서, 황후마마. 그리하시오소서, 황후마마."

왕건은 다시 신료들과 함께 무릎까지 꿇으면서 궁예에게 제발 강비를 죽이지 말아달라고 간청하지만[16] 이미 강비를 죽이기로 결심을 굳힌 궁예는 화를 내면서 관심법을 운운하며 다시 소란을 피우는 자들은 그 자리에서 즉시 죄를 물어 죽일 것이라고 엄포를 놓게 되고 이에 왕건을 비롯한 신료들은 강비를 살려달라는 간청을 더는 하지 못하게 된다.[17]

궁예는 역사 기록과 거의 유사하게 강비를 불에 달군 법봉으로 지져 처형하도록 명령을 내린다. 물론 TV에서 방영하기에는 너무 잔인한 장면이라 그대로 보여줄 수는 없기에, 처형을 집행할 때 강비 주변을 가림막으로 가리며, 지지는 소리가 들리고 피어오르는 연기, 강비의 비명 소리만 들려오는 식으로 처리한다. 그리고 처형이 끝난 후 가림막을 치운 장면에서 가랑이 부분이 불에 그을려 있는 것으로 암시를 준다. 그리고 나레이션으로 강비가 간통죄를 뒤집어 썼다고 설명한다. 굳이 그런 충격적인 방법으로 처형한 것은 "더러운 것은 모두 태워서 없애야 한다"는 이유. 그나마 궁예는 강비가 비명소리를 내지르자 안절부절하고 망설이며 안타까운 듯한 표정을 짓는다.

드라마에서는 이 때 강비가 옛날에 왕건이 줬던 목걸이를 손에 꼭 쥐고 죽는 것으로 연출해서 여전히 왕건을 사모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강비는 처형 직전에 "폐하, 고슴도치도 제 자식들은 아낀다 하였사옵니다. 이 몸은 이미 갈 길을 택하였습니다만, 태자들은 폐하의 아드님이시오! 태자들은 죽이지 않으시리라 믿사옵니다."라는 말을 남기며 두 아들만은 살아남기를 바랐지만, 불행히도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던 궁예에게는 겉으로는 "그건 내가 할 일이다."라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두 아들 역시 강비와 똑같은 죄인으로 취급할 뿐이었고 강비가 처형된 직후 그 두 아들에게도 역시 인정사정없이 처형할 것을 지시한다. 그리하여 두 아들 역시 내원 병사가 휘두른 법봉에 맞아 어머니의 뒤를 따르게 되었다.

시체는 산속에 아무렇게나 버려지는데 형미 대사는 처형이 진행될 때 허월과 만나 마지막으로 곡차를 마시면서 '수도에서 마군이 새끼 한마리가 제 처자식을 도륙내고 있다.'며 궁예의 막장짓을 대놓고 깠다. 그리고 나라의 황후와 태자가 살해되고 그 시신이 산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걸 안타깝게 여겨 이후 비오는 날 밤에 강비와 태자들의 시신을 찾아 발견하고 강비가 죽어서도 목걸이는 꼭 쥐고 있는 걸 본 형미 대사는 혀를 차면서 "모진 세상 떠나면서 목걸이를 뭐가 그리 소중하다고 꼭 쥐고 계실꼬?"라며 안타까워한 뒤 목걸이도 같이 수습해서 장례를 치르게 했는데 철원의 백성들이 이 장례 행렬을 따라 끝없이 늘어섰다는 보고를 받은 종간은 민심이 완전히 떠났음을 확인하게 되자 대경실색해 군사를 동원해 군중을 해산시키고 상여를 탈취한 뒤 형미 대사를 잡아들인다. 이 일로 결국 형미 대사도 궁예한테 덜미를 잡혀 초파일날에 처형당한다.[18][19] 그리고 황후전의 상궁, 내관들은 모조리 끌려가 관노가 되었다. 그나마 강 장자의 양아들은 궁예에게 어떤 위협도 줄 수 없다 여겼는지 최소한의 양심이었는지 몰라도 방면되어 무사히 목숨만 건지게 되었다.

2.4. 죽음이 미친 파급 효과

연화. 이는 극중 이름이다. 실록에는 그녀의 이름이 '강씨'라고만 되어 있다. 신천 출신으로서, 지역적 범주로 보면 송악의 왕건과는 아주 가까운 패서 지역 사람이다.
그녀가 죽은 것은 실제로는 서기 915년, 단기로는 3248년의 일이다. 그러나 극의 흐름을 원활히 운영하기 위하여 집약적으로 이야기를 묶어놓은 것이다.
황후 강씨가 죽을 때의 모습을 삼국사기 궁예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적어놓고 있다.
황후 강씨가 궁예 왕이 그릇된 일을 많이 하는지라 정색을 하고 간하자, 왕이 미워해 말하기를 네가 다른 사람과 간통을 하니 웬일이냐 라고 하였다. 이를 강씨가 부인하자, 왕은 내가 신통력으로 다 보았다 라고 하면서 뜨거운 불로 쇠방망이를 달구어 죽였다. 그리고 드디어는 그 화가 두 아들에게까지 미쳤다 라고 되어있다.
그러나, 학계 일각에서는 황후 강씨가 궁예왕의 전제 정권에 대립하다가 해를 입지 않았을까 하는 시각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즉, 황후를 앞세운 패서 지역의 호족들이 궁예왕과 맞서다가 해를 입은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20]
어쨌든 황후는 그렇게 죽었다. 또한, 왕건과 황후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것은 철원 지역에서 내려오는 짤막한 민담 설화에 의존한 것이었음도 아울러 밝혀둔다.
연화 사후 나레이션

강비의 최후는 사실상 미쳐버린 궁예의 괴뢰국이 되어버린 태봉의 마지막 대들보이자 양심선이 무너진것을 상징하게 되었다.

이후 환선길의 집에서 환선길과 부인이 대화를 하는데 환선길의 부인은 강비가 처형당한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깔깔 웃는다.[21] 듣고 있던 환선길은 "그게 뭐가 우습냐"고 한 소리 한 다음에 궁예가 너무 심했다고 한탄한다. 물론 환선길은 궁예의 최측근 중 한 사람이다보니 "그래도 황제께서 명령한 것이니 당연히 따라야지" 정도의 태도를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런 환선길조차 궁예가 너무 심했다고 한탄했을 정도이니 그를 제외한 나머지 장수들과 신료들이 받은 충격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전쟁터에서 산전수전 다 겪었을 베테랑 장수들마저도 강비가 처형당하는 장면에서는 그 끔찍한 광경을 차마 똑바로 볼 수가 없어 얼굴을 찡그리거나 아예 고개를 돌렸다.[22] 심지어 궁예의 최측근 종간조차도 궁예가 강비를 무자비하게 처형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아서 "우리가 잘못 생각하였네. 이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네. 폐하께서는 실성하셨네. 병이 나으신 것이 아니야. 더해지셨어. 만인이 보는 앞에서 황후마마를 그렇게 죽이시다니... 어떻게... 어떻게 그렇게... 실성을 하지 않고서는..."라고 말하며 앞으로 벌어질 사태에 대한 두려움을 나타냈으며 궁예에게 강비의 행동을 고하여 이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인[23] 은부 역시 "그렇사옵니다. 차마 입에 담기는 어렵사옵니다만은 어떻게 20여 년을 함께 살아온 황후마마를..."이라고 말하면서 제대로 충격을 받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 종간은 강비를 죽이는 것을 별로 좋게 보지는 않고[24] 차라리 멀리 보내는 유배 수준으로 끝내고 궁예는 국정에만 전념하는 것이 좋다 간언한 적이 있기는 했지만 강비보다는 이번 기회에 왕건을 죽이는 것에 더욱 중점을 두었다. 한마디로 궁예의 최측근인 종간과 은부마저도 설마 궁예가 가족들까지 이렇게 끔찍한 방법으로 죽이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거기다 정작 주 목적이었던 왕건은 궁예가 불문에 붙여버리면서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은데다가 예전에 석총이 왕건에게 간자를 건네준 일 역시 궁예가 불문에 붙여버렸으니[25] 종간과 은부 입장에서는 손해만 잔뜩 보게 된 것이었다. 전부 제쳐두더라도 자기 부인과 심지어 핏줄인 아들마저 죽이는 미치광이가 한방울 섞이지 않은 본인들을 살려둔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이에 신하들의 마음이 완전히 돌아서는 계기가 되었다.

궁예 딴에는 실추된 황실의 권위를 바로 세우고 국가의 법은 위아래를 가리지 않는다는걸 보여줄려고 했고 개인적으론 자신을 옭아맸던 모든것을 끊고 초심으로 돌아가기위해 부인과 자식들을 끔찍하게 죽인 것이겠지만 다른 이들은 이 광경을 보고 나서는 결국 "황제가 정말로 완전히 미쳤구나"라는 결론을 내린다. 또한 이 사건은 장수들로 하여금 "저 미치광이에게 복종해봤자 어차피 저 미치광이가 다 때려죽일 것이다"라는 인식을 가지게 만들었다. 궁예가 강비와 두 아들들을 처형한 이후 왕건의 4기장인 홍유, 배현경, 신숭겸, 복지겸 등이 모인 자리에서 복지겸이 탄식하며 "이제 더는 아니되겠소이다. 공들도 보셨겠지만 낮에 있었던 국문은 국문이 아니라 들의 광란의 장이었소이다. 황제는 희망이 없소이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이들이 이 광경을 보고 느꼈을 감정이 어땠는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심지어 그전까진 자기 가신들이 궁예에 대해 안좋은 말을 하면 그들을 나무래 왔던 왕건조차도 이 일 이후에는 신하가 임금을 저버릴 수 없다는 원론적인 말만 할뿐 그들이 궁예를 비판하는 것 자체는 딱히 막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돌아서 버렸다. 오래 전부터 궁예는 비현실적인 북벌을 한다면서 백성들과 호족들을 착취했고 그에 대한 불만은 공포정치와 잔혹한 형벌로 억눌렀으며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경우 본보기로 사람을 마치 벌레 죽이듯이 때려 죽이며 나중에 가서는 자기 맘대로 막 때려 죽이고 불태워 죽인지라(그 유명한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는가가 대표적) 수많은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황후와 태자들까지 끔찍하게 처형당했으며 태봉국 실세이자 궁예가 가장 총애하며 태봉국 장수들의 신망을 얻은 왕건이 하마터면 그 공포정치의 희생양이 될 뻔하였다.[26]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자 태봉국의 신료들은 "아무리 궁예에게 복종해봤자 결과는 목숨을 보존하기는 커녕 오히려 법봉에 맞아죽는 것일 뿐"이라는 생각까지 하기에 이른다. 이는 결국 4기장인 홍유, 배현경, 신숭겸, 복지겸의 혁명 모의로 이어지게 된다. 궁예는 강비의 처형으로 껄끄러운건 다 털어내고 새로운 시작을 하려고 했지만 그래봤자 그 내용이라는게 역시나 비현실적인 북벌 및 신라 정복 정책이었고 이후 왕건과 4기장들이 궁예를 몰아내면서 새로운 국가인 고려가 세워지게 된다.[27]

3. 평가

작중 행적이나 캐릭터 성격으로 볼 때 상당히 이상적인 부인이다. 미인인데다가 강단있으면서 성격이 굳건하고 선하며, 거기다 현명해서 많은 이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또한 미향이나 왕건의 부인들에게도 투기를 부리기는커녕 오히려 더 챙겨주려고 했으며, 본인의 위치를 자각하고 있기에 필요이상으로 나랏일에 관여하려 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완전체에 속하다고 볼 수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원하지 않는 황후가 되면서 인생이 꼬여버린 불행한 인물이다.

황후로서의 인생을 요약하자면, 사랑하는 이와 이어지지 못한 것은 둘째치더라도 남편이 된 사람은 전혀 정을 주지 않는 인물이며 자식들은 낳자마자 궁예에게 빼앗겨 강비 자신이 키우지를 못했다. 게다가 이후 궁예의 실정으로 인해 황도 상황은 말그대로 생지옥에 강비가 행사나 국문에 나설때마다 궁예가 광기를 일으켜 온갖 살육이 벌어졌다. 연화가 무언가 해보려고 해도 아녀자라는 입장상 정치에 관여할 수 없기에 궁예에게 간언하며 나름대로 노력해보지만 궁예의 광기는 더더욱 심해진다. 이런 상태가 수십년 지속되면서 갈수록 심해지고 부모까지 비명횡사해버리니 정신줄을 놓아버릴만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궁예에게 폭언을 하고, 대놓고 왕건에게 반란을 종용하는 등[28] 궁예와 크게 척을 지고 말았고 결국 본인뿐만 아니라 자식들마저 궁예의 광기에 희생되고 만다.

4. 기타

이 배역에는 강수연, 김지수, 김혜선 등이 물망에 올랐으나 모두 고사하여 김혜리가 천신만고 끝에 낙점되었지만 용의 눈물, 왕과 비에 이어 KBS 1TV 대하사극에 3연속으로 투입시킨 이유로 비난을 받았다.[29] 작중에서는 작가가 지은 '연화'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는데, 역사를 모르는 사람이 보면 처형 직전까지 연화가 본명인 줄 착각하기 좋도록 연화라는 이름으로 밀고 간다. 그러다가 처형되는 장면의 나레이션에서 '원래 사료에서는 왕후 강씨라고만 나오는데 진흙 속에 피어나는 한 송이 연꽃의 이미지와 비슷해 보여서 연화라는 극중 이름을 지었다'고 밝힌다. 사실 본명이 기록에 남지 않은 인물을 매체에서 등장시킬 때는 적당한 이름을 창작해 붙여주는 일이 흔하다. 이름도 없이 극을 진행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기 때문이다.[30]

강비 역을 맡은 김혜리태조 왕건 촬영을 전후하여 음주운전 사고를 3번이나 일으키면서 궁예의 관심법이 옳았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사실 실제 역사에서 강비가 처형당한 연도는 915년이고 궁예가 왕건을 의심한 후 축출당한 연도는 918년이긴 하지만 나레이션으로 극의 흐름을 위해 집약적으로 묘사했다는 설명이 나온다.

강비에 대한 국문이 시작하는 장면에 불멸의 크리넥스스러운 일이 하나 있다. 궁예가 강비와 태자들을 국문때 죄인들의 자리로 끌어내라 하자 신료들의 얼굴이 비추는데 이때 잘 들어보면 무전기 수신음이 들린다.

[청소년기] 청소년기. 배우는 이정후. 자세한 것은 후술.[오프닝2기] 궁예가 타락함에 따라 상황이 막장이 되는 것을 반영하 듯 1기와 달리 표정이 굳어있다.[3] 실제로 이 드라마에서는 강비 외에도 극중에 등장한 왕건의 세 정실 왕후인 신혜왕후 유씨(박상아 분), 장화왕후 오씨(염정아 분), 신명순성왕후 유씨(전미선 분)에게 각각 부용, 도영, 수인이라는 극중 이름을 붙여주었다.[4] 똑같이 후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1969년작 천년호의 2003년 리메이크작에서 진성여왕을 연기했다.[5] 이 이름으로 문서가 개설되어 있는 야구선수와는 동명이인인 여배우였고 2016년에 암으로 사망했다. 1996년 KBS 주말연속극 첫사랑 1회에서 초등학생 이효경 역을 맡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첫사랑의 이효경, 태조 왕건의 연화 모두 각 드라마에서 최수종이 분했던 성찬혁, 왕건과의 첫사랑이 모두 이루어지지 못했다.[6] 극중 초반, 십대 청소년 시절부터 두 사람이 알콩달콩 콩깍지를 쓴 장면이 나왔다.[7] 정확히 말하자면 연화 자체는 문제가 없는데 강비의 아버지 강 장자가 왕건의 대업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즉 호족 왕건의 장인으로는 괜찮지만 황제 왕건의 장인으로는 인물됨이 떨어진다고 여겼던 것. 그리고 이후 강 장자의 행보와 끝내 맞이한 비참한 말로를 보면 앞선 왕륭의 예측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고 할 수 있다.[8] 여담으로 강장자 역을 맡은 김성옥은 과거 용의 눈물에서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 맞서 왕과 사직을 지키려다 실패하고 죽는 최영 장군 역으로 카리스마 넘치는 열연을 선보였다. 그에 비해 태조 왕건에서의 강장자는 생각이 얕고 가벼우면서도 욕심이 많고 귀가 얇아 더 큰 권력을 원하며 나중에 아지태와 손을 잡고 역모를 하려던 소인배적인 모습을 보인다. 사실 강 장자의 부인 역시 그저 권력만 탐하는 소시민에 지나지 않았는데, 궁예석총을 때려죽일 때 쯤에는 더욱 설쳐댔다간 자신들도 역시 끔찍한 일을 당할 거라는 것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다. 사리판단이 그리 밝지 못한 부인조차 그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강 장자는 그 수준의 분별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판단력이 흐린 인물이었고, 결국 이는 가문의 비극으로 이어지게 된다.[9] 답답함에 대한 염증 정도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으며, 실제로 극중에서 연화가 아버지 강 장자에게 아들을 마음대로 만날 수도 없는 걸 알고는 있느냐고 한탄하며 "이게 사람 사는 것이냐" 라고 하기에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다만 미향과 연화가 가깝게 지냈다는 것, 연화가 미향이 친척의 죽음과 아들을 빼앗긴 것에 대한 절망감으로 실성해 가는 것을 똑똑히 지켜보았다는 것, 처형당할 즈음에 "북원 부인(미향)을 보고 나도 어떻게 죽겠구나 하는 걸 직감했다" 라고 내뱉는 것 등을 보면 단순한 답답함은 절대 아니다.[10] 궁예가 강비와 두 아들을 국문을 하면서 궁예가 강비에게 다른 남자를 사모하지 않았냐는 호통을 치는데, 왕건과 강비가 정혼한 적이 있었음을 감안하면 궁예가 강비에게서 얻은 두 태자에 대해 강비가 궁예 자신 몰래 왕건과 사통해서 낳은 혼외자식으로 의심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11] 그것도, 연화에게 대고 쏘아붙인 게 아니라 바로 옆에 있던 최응에게 지시한 것이긴 하지만 연화가 대전을 채 나서기도 전에 지시해 버렸다.[12] 자매품: "지금 폐하의 눈이 왜 외눈박이가 되었습니까? 신라의 왕자가 아니었습니까? 서자로 태어나 도망치다가 한쪽 눈을 잃은 것이 아닙니까? 고구려의 후예를 자처하는 이 나라가 왜 신라의 왕자를 받들어야 합니까?"[13] 훗날 궁예를 연기한 김영철은 드라마 대왕 세종에서 태종 이방원 역을 맡아서 처가를 열심히 숙청한다(...). 당시에는 당연히 상상도 못했겠지만 2021년 시점으로 본다면 훌륭한 배우 개그.[14] 여기서 궁예가 '우리 아이'가 아니라 '내 아이'라는 표현을 썼다는 자체가 자식을 자신의 소유물로밖에 여기지 않는다는 증거이다. 그러면서 정작 왕건이 혁명을 일으켰을 때는 그 막내아들을 황궁 어딘가에 두고 피신했다.[15] 아예 폐하는 세달사에서 승려로 평생을 살아야 했다는 말까지 내뱉었다. 강비 입장에서는 궁예가 세상에 나옴으로서 결국 자신과 가문까지 파멸하게 만들었으니 저런 말을 할 법하다.[16] 이때 신료들이 다같이 나서서 간청한건 상당히 의미가 있는데 그동안 궁예의 공포정치에 두려움에 떨며 바짝 엎드려있던 이들이 이 정도로 나섰다는 것은 그만큼 궁예의 행동이 도를 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더 나아가 신료들의 여론도 궁예를 완전히 떠났다는 것을 의미한다.[17] 야인시대에서 김두한이 개코에게 자결하라 말하자 동료들 및 부하들이 간청할 때 말리는 순간 개코와 함께 죽이겠다고 말한 장면과 비슷하다.[18] 사실 궁예가 형미 대사를 즉시 처형하라고 명령했으나, 내원 종간이 때가 좋지 않기에 처형을 시키더라도 나중에 시키자고 만류하자 궁예는 투덜대면서 부처의 제자들이 잘못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자며 초파일을 기해 처형하라고 명령한다. 그런데 석총이나 아지태 등 다른 사람들이 철퇴나 법봉에 맞아 처형되는 것과는 달리 의외로 형미 대사는 그냥 참수로 처형되었는데, 이후 165화에서 호족들의 배신으로 화가난 왕건이 철퇴를 들었을 때도 칼을 쓰는 것은 그나마 시체를 온전하게 보전해주는 처형법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당대의 명망높은 고승이기에 철퇴를 쓰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19] 사월 초파일 즉 부처님오신날은 한국뿐 아니라 동아시아 전세계 불교권 국가에서 최고의 축일로 여기는 대명절인데 이런 날에 승려를 죽이자고 말하는 것에서 궁예가 얼마나 맛이 가도 단단히 갔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허월 대사는 종간에게 형미 대사가 죽는 순간이 바로 이 나라무너지는 신호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고 형미 대사가 처형된 후 얼마 못 가 그 나라는 결국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20] 반란으로 인하여 왕위에 오른 왕건은 최대한 몰아낸 왕인 궁예를 깎아내리고 나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본인의 반란을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궁예를 폄하한 이 역사는 승자의 입장에서 썼음을 고려한 학계의 다른 의견이 나오는 것. 하지만 진실은 우선 실록을 기준으로 해야 할 것이다.[21] 환선길의 부인은 왕건이 궁예를 몰아내고 새로 정권을 세우자 환선길에게 반란을 부추겼고, 결국 집안 전체가 멸문하게 만드는 아둔한 인물이기도 하다.[22] 베테랑 장수들조차 자신들이 죽인 것은 적군이었고 그마저도 전투 중에 승리를 위해 혹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죽였던 것이다. 본래 장수이기에 성격이 다소 호전적이었기는 해도 최소한 투항하거나 더 이상 싸울 수 없는 생포한 적군은 살려주는 자비를 베푸는 인간적인 면모도 있지 궁예처럼 아무 감정없이 사람을 마구 죽이는 사이코패스는 결코 아닌 이들인데 자신들의 이라는 사람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신의 아내를 불에 달군 법봉으로 지져 죽이는 모습을 좋아할 리가 없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실제로 국문장에서 문무백관 모두가 황후의 목숨만은 살려줄 것을 간청하였으나 궁예가 관심법을 운운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며 소란을 피우면 죽이겠다고 엄포를 놓았다.[23] 그의 의도는 강비를 죽이려고 궁예에게 그 사실을 고한 것이 아니라 강비의 말을 들은 왕건을 죽이려고 궁예에게 고한 것이다. 물론 역모 발언이 드러난 시점부터 처벌은 불가피한데다 자신의 주군에게 폭언을 하고 역모성 발언까지 했던 강비가 그의 입장에서 좋게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정상적인 판단력을 가진 그의 생각에는 "그래도 한 나라의 국모이자 20년 동안 황제를 보필해 왔는데 설마 잔혹하게 처형하시지는 않겠지."라고 생각하고 궁예에게 고한 것이었다. 허나 궁예는 이미 정상이 아니었던데다 궁예가 가진 강비에 대한 의심, 여기에 강비의 팩트폭력에 가까운 폭언으로 사이가 이미 벌어질 대로 벌어진 시점. 역모 발언이 전달되어 버린 결과는 결국 비극으로 이어졌다.[24] 물론 강비를 동정해서라기보다는 강비의 처형으로 인해 백성들의 여론이 악화되는 것을 우려한 것.[25] 임춘길도우를 이용하여 그 때 허월이 같이 있었다는 사실까지 밝혀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 사건 내막을 완전히 알아낼 수 있었으나 결국 사건이 불문에 붙여지면서 잊혀져버린다.[26] 궁예 본인은 왕건에게 '내가 그리 한 건 하도 주변에서 너를 질시하니까 극약 처방을 내려 더 이상 뒷말이 나오지 않게 보호한거다. 정말 죽이려고 했으면 그냥 죽였다.'고 해명하며 진짜 왕건을 죽일 생각이 없다고 알려주나 다른 사람들은 그 말을 듣지도 못했고 들었어도 어찌 다 믿겠는가. 그리고 궁예가 살려주려고 한 건 오로지 왕건 한명이었다.[27] 사실 신라 정복은 북벌에 집착하기 이전에 집중했다면 모를까 북벌 때문에 국력 다 날려먹은 뒤라서 아무리 신라가 일개 지방국가로 전락한들 순순히 당할 리도 없을 뿐더러 견훤의 백제가 그냥 팝콘 먹으며 구경하겠는가.[28] 현실적으로 왕건이 궁예를 몰아내고 역성혁명을 성공했더라면 황후인 연화나 태자들 역시 쫓아내면 쫓아냈지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나마 궁예 손에 죽지 않고 목숨을 건졌을 터이며, 왕건 자신도 극중 설정상 선인이고 옛정까지 감안해 적당한 곳에서 지내게 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왕건은 궁예를 살려주려고 했지만 궁예 스스로 죽음을 택했고, 훗날 경순왕이 사직을 바치며 항복하자 경주시로 개명하는 서라벌의 자치를 그대로 주고 왕실 사위로 받아줬다. 물론 신검 형제는 패륜을 저질렀고, 끝까지 고려에 저항한 데다 나중에 위험한 인물이 될 가능성이 높으니 살려 둘 수 없었다.[29] 해당 작품에서 후반부 국대부인 역으로 잠시 나왔던 임채원(당시 임경옥)은 그 후속작인 제국의 아침에서 초선, 무인시대에서 부용 역, 대조영에서 어홍을 맡아 KBS 1TV 대하사극에 4연속으로 투입됐다.[30] 비슷한 사례로 이 작품에 등장했던 왕건의 세 부인인 신혜왕후 유씨의 극중 이름인 '부용', 장화왕후 오씨의 극중 이름인 '도영', 신명순성왕후의 극중 이름인 '수인' 등이 있다. 또 다른 작품의 사례를 들면 기황후(드라마)기승냥이나 삼국지 매체들의 견희, 여령기, 장성채, 손상향, 황월영, 관은병 등이 있다. 모두 실존 인물이지만 기록에는 성씨만 남아있는 인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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