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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신검의 모습[오프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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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으이그으으으으으!!!!!
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의 등장인물. 담당 배우는 이풍운, 윤동원[2](유년기)→이광기(청년기~중년기).당시 예능 등에서 코믹한 이미지로만 나왔던 이광기의 정극 연기를 볼 수 있지만 동시에 중, 후반부 개그 캐릭터로서의 일면도 엿볼 수 있다. 명대사라기보단 말버릇으로는 일이 잘 안 풀릴 때 하는 '으이구!!!', '이 일을 어이할꼬...!'와 견훤에게 갈굼당할 때 하는 '아아버님!' 등이 있는데, 신검이란 캐릭터가 일을 말아먹고 견훤에게 갈굼당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보니 저 세 대사가 한 번에 튀어나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한 중견 연기자인 지금보다 앳된 이광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2. 극중 행적
견훤의 장남으로 견훤이 서남해에 파견된 도중 상주에 들렀을 때 왕후 박씨와 함께 첫등장[3]. 이후에는 그냥 아역으로만 뒤에 간간이 나오다 견훤이 간만에 아자개를 찾아갔을 때, 자신의 큰아들이라고 가장 먼저 소개한 게 다였다. 처음에는 나름대로 기대를 받았던 듯 했지만 대야성 공략에 실패한 것을 기점으로 견훤으로부터 끊임없이 질책받게 되고[4], 이후에도 실패만 거듭하다가 자연히 이복동생인 금강과 계속 비교당하는 처지로 굴러 떨어진다. 오죽하면 견훤의 명대사 중 하나가 '이게 무슨 소리야?! 또 졌어!! 이젠 아예 전멸을 했다고!'일 정도. 특히 두 번째 대야성 공략에서는 신검 형제들을 구하려다 추허조가 전사를 하자, 견훤은 제대로 화가 난 나머지 장수들과 병사들이 보는 앞에서 '너네들보다 몇 배 몇십 배 더 소중한 아우였다' 라는 말과 함께 신검 형제들에게 채찍질을 했고,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태자들을 끌고 가 목을 베라는 명[5]을 내리기까지 했다.견훤은 신검의 능력을 못미더워했지만, 그래도 경험을 쌓을 기회를 주고 자신감을 높여줄 겸 해서 능환과 박영규, 능애와 정예병 5천을 주고 벽진군을 공격하게 했다. 벽진군은 1천밖에 안 되는 병력이 주둔한 작은 고을이었으나 그곳의 성주 이총언과 그 군사들은 항복을 거부하고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6] 이총언은 기습을 가하여 후백제군을 궤멸시켰고, 단 한 번의 전투로 신검 휘하에 싸울 수 있는 병력은 500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이 어이없는 보고에 분노한 견훤은 남은 병력만으로 반드시 벽진군을 함락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신검이 이번 전투로 경험을 쌓고 고난을 뚫고 갈 의지를 갖추게 하려고 일부러 전투를 독촉한 것이었다. 독이 오른 신검은 남은 병력으로 공세를 펼쳤으나 이총언은 신검을 잡고자 일부러 성문을 열었고, 이상함을 느낀 능환은 함부로 진군하지 말 것을 간언했지만 신검은 그를 무시하고 진군했다가 또다시 매복에 걸리면서 전멸을 당하고 견훤은 이 보고[7]를 받고 분노한 뒤 완산주로 돌아오게 된다. 그 후는 당연히 신나는 갈굼타임.
그가 패한 전투들이 완전히 방심하다[8][9] 김락과 신라군의 협공으로 대야성을 내어준 것을 제외하면 유금필이나 신라 백전노장들[10] 같은 견훤도 어찌하지 못한 강자들을 상대한 것이었고, 조물성 전투 이후 능환, 능애를 거느리고 신라 영토를 쳤을 때는 순탄하게 진군할 수 있었으며, 최승우의 도움을 받았다지만 개경(그 전까지는 송악이라고 불렸다.) 기습전에서 유금필에게 패하기 전까지는 잘 싸운 것을 보면 장수로서 어느 정도의 능력은 갖춘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늘 마지막에 과욕을 부려서 전부 말아먹거나, 견훤이 아끼는 장수를 전사하게 만들거나[11], 장수끼리의 1대 1 대결에서 불문율을 깨 군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등[12] 난세에 창업군주의 뒤를 잇기에는 어딘가 못미더운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렇듯 과욕을 부린 것은 대야성 전투에서 패한 이후 아버지에게 계속 질책만 받는데다 매번 승승장구하던 금강과 비교당하면서 압박과 초조함을 계속 느낀 것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강의 공적이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물론 신검의 공이 평가절하당한 적도 많았는데, 삼년산성 전투에서 별동대를 맡은 금강이 전투를 벌이지 않고 상주 지역 호족들의 항복을 받아내자 견훤은 "싸우지 않고 이긴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니 정말 잘했다"며 크게 칭찬했지만 같은 때 직접 본대를 이끌고 왕건과 맞닥뜨려 대승을 거둔 신검을 처음에는 기뻐했으나 백제군이 점령한 삼년산성을 양검과 용검의 실수로 유금필에게 일시적으로 빼앗긴 것과[13] 왕건을 놓친 일로 오히려 더 큰 책망을 받았다.[14]
그뿐만 아니라 신검이 문소성 일대로 군사를 이끌고 가서 아예 싸움 없이 호족들의 항복을 받았다는 보고를 받자 잘했다고 칭찬하면서도 "하지만 별 싸움도 없이 성을 얻었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발언을 하기도 하는것도 모자라서 "그건 후백제의 위상때문이지 꼭 신검 때문이라고만 할 수가 없고 거긴(문소성 일대) 누가가든 마찬가지고 금강이 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는 말까지 하며 애써 신검의 공적을 깎아내렸다. 물론 후백제 내에선 신검보단 견훤의 영향력이 지대했고 신검은 기껏해야 태자에 불과했기에 그들이 신검 때문에 항복한게 아닌건 맞지만 굳이 저렇게까지 깎아낼 필요성은 적다. 또한 조물성 전투에서는 신검이 나가 공적을 세우자 칭찬하면서도 "(금강이는 후방에 두고)너무 지만 설친다"는 뉘앙스로 말해놓고 정작 금강이 선봉에 서서 눈을 다치자 "형이란 놈들은 뭐하고 막내를 앞세웠냐"(...)며 말바꾸기를 시전하기까지 하는 등, 쭉 보고 있으면 불쌍의 극치. 예성강 기습전 직전에는 능환과의 술자리에서 '나는 철이 든 이후 단 하루도 '맑은 머리'를 가져본 적이 없소이다. 늘 눈치나 보면서 어떻게 하면 혼이 나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아버님 마음에 들 수 있을까. 그렇게 살아왔지요.' 라고 하기도 했다.
다만 견훤도 신검을 미워한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강하게 단련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으며 종종 최승우에게 이런 마음을 털어놓기도 했고, 웬만한 큰 일에는 신검을 보내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신검은 좀처럼 눈에 차지 않는 모습만 보이는데다 금강이 조금씩 더 나은 모습을 보이니 그만큼 신검은 답답하고 금강은 기특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감정적인 문제로 인해 백제에 결정적 타격을 준 원인이 된 고창 전투에서 견훤과 금강을 죽게 하기 위해 일부러 핑계를 대며[15] 원래 예정되어 있던 협공을 포기하여 백제군이 대패하게 만드는 일까지 저질렀다. 물론 이 내용은 후백제의 후계자 문제를 부각시키기 위한 드라마의 각색이지만[16]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견훤도 금강도 살아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들은 신검은 아우 양검과 용검에게 아버지를 마중 가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자... 가서 또 욕도 듣고, 매도 맞자꾸나!'(...)
당연히 고창 전투 이후 견훤의 마음은 더더욱 금강에게 기울어졌으나,능환의 간곡한 부탁을 받은 최승우의 간곡한 청으로 결국 신검에게 최후의 기회를 주기로 한다. 예성강 전투의 개경 공략전에 대한 지휘권을 맡기면서, 이 작전에 성공해 고려 왕의 목을 가져올 수 있다면 옥좌를 넘겨주겠으되 실패한다면 너의 모든 권리는 금강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그러니까 황제는 금강에게 물려주겠다고 한 것이다. 이 때 견훤은 신검에게 '아무리 그래도 자식인 너를 내가 미워할 리가 있겠느냐' 라며 애정어린 말을 해 주었고, 정말 오랜만에 '부자지간의 정' 이라는 것을 느낀 신검은 감동한 나머지 울먹이기까지 하며 작전 성공에 대한 의욕을 더욱 불태운다.
이때 견훤의 대사는 다음과 같다.
너는 나의 아들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미워하는 이유 중에는 그 근본에 부자 간의 정이 있기 때문이야. 아느냐? 내가 너를 미워한다고? 아니다... 미워한 것은 네가 아니라, 바로 너의 허약함과 부족함 때문이었어. 내가 너를 그 동안 때리고 채찍질한 것은 너의 그 많은 단점들을 덜어주기 위함이었어...
이 애비는 지금도 너를 사랑한다. 네 그 많은 증오를 이번 전투에다 불태워 보거라. 그리고 진정으로 이 나라의 태자로서 거듭나거라. 그리고 보이거라! 내게 보이거라! 그리하여 볼 것을 내게 보인다면... 나는 약속대로 너에게 이 옥좌를 줄 것이다. 다음 보위에 관한 일을 종지부를 찍을 것이야! 알겠느냐 신검아. 이 애비의... 약속이다!
이 애비는 지금도 너를 사랑한다. 네 그 많은 증오를 이번 전투에다 불태워 보거라. 그리고 진정으로 이 나라의 태자로서 거듭나거라. 그리고 보이거라! 내게 보이거라! 그리하여 볼 것을 내게 보인다면... 나는 약속대로 너에게 이 옥좌를 줄 것이다. 다음 보위에 관한 일을 종지부를 찍을 것이야! 알겠느냐 신검아. 이 애비의... 약속이다!
40여 평생 처음으로 아버지의 정을 느낀 아들은 복받쳐 오르는 감정으로 아버지에게 다음과 같이 답한다.
예, 아바마마. 참으로 그 동안 미욱하고 어리석었사옵니다. 이처럼 큰 기회를 주시고, 자식으로서 자애하여 주시니 눈물이 날 것 같사옵니다. 반드시... 아바마마의 크신 자애함을 갚겠사옵니다.
참으로 오늘의 이 자리가 소자에게는 크고도 너무나 의미가 깊은 자리이옵니다. 반드시... 아버님의 뜻을 이루겠사옵니다. 참으로...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참으로 오늘의 이 자리가 소자에게는 크고도 너무나 의미가 깊은 자리이옵니다. 반드시... 아버님의 뜻을 이루겠사옵니다. 참으로...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이후 신검이 이끄는 백제군은 예성강 기습전으로 고려의 수군을 궤멸시켰고, 고려의 황궁에 침입하는 데 성공한다. 비록 왕건은 때마침 서경에 올라가 있었기 때문에 그의 목을 취할 수는 없었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전과였다. 하지만 신검은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또다시 과욕을 부리고 마는데, 애술과 양검,용검의 제안에 따라 유금필이 유배를 가 있는 곡도를 치기로 한 것. 최승우는 물론 신덕, 종훈 등 다른 장수들이 반대했건만 신검은 '이미 고려 수군은 전멸했는데 천하의 유금필이라고 해도 별 도리가 있겠느냐' 라며 밀어붙였는데, 유금필은 이미 곡도에서 여진족 군사들을 매복시킨 채 전투 준비를 마친 뒤었다. 결국 50척이 넘는 백제군의 함대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던 유금필의 소수 정예부대에게 절반 가까이 박살이 나고 말았고 기껏 세워놓은 전과도 크게 깎아먹게 된다. 만약 곡도를 안치고 그대로 완산주로 복귀했다면 왕건의 목은 가져오지 못했으니 황제 자리 까지야 몰라도 크게 칭찬 받거나 황제 자리에 좀더 가까워 질수 있는 찬스였는데 신검 자신이 그 기회를 스스로 날려 먹은 셈이다.[17]
어떻게 보면 이 작전은 신검이 왕이 되었을 때 어떠한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를 미리 확인할 수 있게 해 준다고 볼 수 있는데,[18] 백제 최고의 지략가 최승우를 책사로 이끌고 나온데다 아버지로부터 생전 처음으로 응원을 받았고 옥좌를 넘겨준다는 막강한 동기 부여를 받았음에도 또 이 꼴이 나고 말았으니 후삼국시대의 패자로는 안 될 인물이라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었을 뿐이었다.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실보다 득이 큰 작전이었기에 어느 정도의 전공은 인정받았고, 왕위 계승에 대한 희망은 이어갈 수 있었다.그동안엔 패전하고 돌아와 견훤에게 질책을 당할 때마다 신검은 우물쭈물하며 기죽어 있거나 이런저런 핑계를 대는 등 부족한 모습을 보였으나 이번에는 견훤의 평가가 끝나자마자 자신의 과실을 인정하면서 당당한 목소리로 용서를 빌었고, 견훤도 이러한 모습에 만족스러운 듯 전처럼 호되게 꾸짖지 않고 패배에서 교훈을 배우라는 덕담을 한 후 운주성 전투에서 보다 더 성장한 모습을 보이고 자격을 입증하라며 다시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운주성 전투의 결과는 신검에게 치명타가 되고 만다. 견훤의 눈 앞에서 전과를 올려 후사 결정에 쐐기를 박아야겠다는 생각 때문에,등창과 감기로 인해 고생하고 사흘씩이나 깨어나질 못하는등 사경을 헤매고 있던 견훤을 억지로 전장에 데리고 갔던 것. 하지만 전투는 전투대로 말아먹고 이전까지 나락으로 떨어지기 직전이었던 아버지의 신망도 완전히 잃고 말았다.비록 이 전투는 견훤이 어느정도는 강행한 것이긴 하다만 이미 운주성으로 출전하기 전부터 견훤의 몸상태는 영 좋지 않았고 겨울을 날 준비까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는등 상태가 엉망이었기에 최승우 금강 등은 회군을 거듭 주장했으나 신검은 이미 옥좌에 눈이 멀어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아버지 견훤의 상태는 신경쓰지도 않고 억지로라도 전투를 강행한 것이었고 당연히 고려군에게 참패하고 만다.
이후 겨우 백제로 돌아온 견훤은 신검과 형제들을 불러 후계 문제에 대해선 좀 더 생각을 해봐야 겠다며 운을 떼는데, 이에 신검은 약조를 지키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견훤을 속으로 격하게 원망한다. 다만 견훤이 신검에게 약조한 것은 신검이 왕건의 목을 가져오든지 황제의 재목임을 증명할 실적을 낼 경우 옥좌를 물려주겠다는 것이지 승전만 하면 무조건 물려준다고 약속한게 아니었다. 그러나 신검 자신은 그만한 공적을 세웠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실제 성과는 영 밋밋했다. 개경 공략전에선 아무것도 한것도 없이 전적으로 최승우의 전략에 숟가락만 얹은 것인 데다 왕건이 개경에 없어 잡지 못했고, 그 와중에 최승우 등이 말리는데도 굳이 유금필을 공격하려다 함대가 개박살이 나서 최대한 높게 쳐줘도 절반의 전과만 올렸다. 그리고 이를 만회할 운주 전투는 전세를 제대로 읽지 못한 채 돌아가자는 최승우 박영규 금강 김총의 주장을 듣지 않고 욕심을 부리다가 참패했다. 즉 객관적으로 보면 신검 자신이 약조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채 견훤은 챙기지도 못하고 실망스러운 모습만 연달아 보여준 것이지만, 이미 황제 자리에 눈이 먼 신검의 머리 속은 견훤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했다. 더구나 그 과정에서 오로지 전투만 고집하며 병든 견훤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건 물론, 전투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개박살 나버렸다. 반면에 막내인 금강은 시종일관 견훤의 건강을 염려했고 자신들은 겨울 준비가 별로 되어있지 못하니 이번 전투는 어렵다는 걸 파악하여 철군을 주장했다. 견훤의 마음이 신검이 아닌 금강에게로 기우는 건 당연했다.
견훤이 신검을 포기한 것은 단순히 신검이 전투에 패배했기 때문인 것만은 아니었다. 물론 견훤 본인이 출진하겠다 고집을 부려 출정하긴 했으나, 한편으로는 아버지를 걱정하여 회군을 주장하긴 커녕 전투에서 공을 세우는 것에만 급급한 세 아들에게 은근히 실망했고 반대로 파진찬 금강 박영규를 높게 평가 했다. 게다가 운주 근처에 이르러 맹추위가 몰아치자 그 고집 센 견훤마저도 자존심을 꺾고 철군을 명령하는데, 왕위 계승에 필사적이었던 신검은 계속 진군할 것을 요청한다. 최승우와 박영규, 김총, 금강이 견훤의 건강을 염려하는 것은 물론이요, 견훤의 건강과 맹추위 때문에 군사들의 사기와 상태도 좋지 않으니 나중에 다시 싸우자는 의견을 내놓은 것과 대조적이었다. 신검은 그와중에도 정신을 못 차리고선 장수들과 돌아오는 길에 견훤을 구하기 위한 전투였고 희생이었으니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결코 실패한 전쟁은 아니라고 하는데, 애초에 이 위기 자체가 신검의 트롤링으로 벌어진것이고 신검이 파진찬, 금강 등의 말을 듣고 회군을 결정 했으면 이런 위기가 발생할일이 없었다는걸 생각하면 병주고 약주는 것만도 못한 수준.
결국 견훤은 생각 끝에 왕위를 금강에게 물려줄 결심을 굳힌다. 이후 견훤은 최승우의 조언을 받아들여 신검의 아우인 양검과 용검을 지방 도독으로 임명하여 신검과의 연결 고리를 끊으려 했고, 신검은 지방 순행이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수도 완산주에서 추방하도록 명했다. 그런데 사실 최승우의 진짜 조언은 신검 형제를 불러들여 불문곡직 목을 베고 신료들은 한명 한명 다독거리라는 청을 했지만 비록 못마땅하긴 했어도 견훤의 자식인만큼 당연히 이 조언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에 차선책으로 낸 것이 지방으로 보내라는 것과 가능하면 지방에 보낸후에 목을 베어버리고 서두르지말고 신료들 한명 한명을 다독거리라는 것이엇다. 그러나 견훤이 등창과 나이 때문에 오늘내일 하던 지경이라 여유 있게 한명 한명 다독거릴 시간도 없었고 자식들을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기에 최승우는 견훤이 목을 베라는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과, 그로써 후백제가 멸망할 것임을 알고 자신 역시 얼마 남지 않은 천수를 누리지 못할 것을 직감하여 주변을 정리한다. 그리고 최승우의 우려대로 위기에 몰린 신검은 마지막까지 갈등하다가 결국 이찬 능환을 비롯한 신료들이 권하는 대로 쿠데타를 일으켜 견훤을 몰아내고 말았다.
비록 그 동안의 실적이 부족하기는 했지만 일단 장자인데다 여러 전투에 참여해왔기 때문에, 두 아우를 비롯한 중신들의 대다수는 신검을 지지하고 있었다. 즉 신검은 인맥 면에서는 꽤 탄탄한 입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견훤은 말년으로 갈수록 신검을 후계자로 결정할 것을 요청하는 신료들과 갈등을 빚고 있었는데, 결국 이러한 점을 무시하고 지지 기반이 취약한 금강을 후계자로 정하는 실책을 저질렀다. 금강의 후견인으로 임명된 사람은 박영규와 최승우였는데 최승우야 원래 중립에 가까웠고[19] 박영규 역시 중립이었으나 신검의 편을 든 적도있었고 나중에 가서 신검으로는 고려를 이길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견훤의 뜻에 동참한 거라 제대로 된 금강의 지지 세력은 사실상 전무했다. 견훤은 기존에 군부를 통솔하던 신덕과 나라의 공무정사를 담당하던 능환의 권력을 줄인 후에 최종적으로는 숙청하려 했으며 박영규와 최승우에게 군부의 통솔권과 능환의 권력을 부여하여 금강의 세력 기반으로 삼고자 했으나, 장기간 군부를 장악했던 신덕의 영향력이 남은 바람에 박영규의 실권은 아직까지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나마 김총이나 애술은 견훤에게 무조건 충성을 다하는지라[20] 그의 뜻을 받아들여 금강을 지지할 수 있는 인물들이었지만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있었기에 쿠데타 당시 너무도 쉽게 잡혀버려 별 도움은 되지 못했다.여기에 견훤이 오늘 내일 하며 와병 중이었던데다 금강도 곧 황제가 된다는 생각으로 방심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검의 쿠데타는 너무나도 간단히 성공할 수 있었다.
그래도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 작은아버지인 능애를 보내는 한편, 왕사인 경보 대사의 금산사 방문을 허락하는 등 갖은 노력을 다 했지만, 결국 견훤은 금산사를 탈출해 고려로의 귀부를 선택했다.[21] 그리고 조정에서는 금강보다 신검 쪽의 지지 세력이 월등히 많았으나 견훤의 존재감은 신검파와 금강파의 대립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견훤 자신이 작중의 표현을 빌리자면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호걸이었던 데다 말년의 궁예와 달리 폭군은 결코 아니었고[22] 좀 거칠어서 그렇지,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는 개념인이었기에 후백제라는 국가보다는 견훤 개인에게 충성을 바치는 이들이 많았던 것..이를 보여준 좋은 예가 견훤이 망명길에 유금필의 전함에 올랐다가 후백제의 전함과 대치한 것이었는데, 분명한 신검파인 상귀를 제외한 휘하 부장들과 병사들은 견훤을 보고 동요하기 시작하더니 모두 전의를 잃고 견훤에게 길을 내주었다.
결국 쿠데타에 성공하기는 했으나 기반이 불안하다고 느낀 신검은 몇 개월이 지나서야 견훤이 겨우 고려로 도망친 이후 비로소 정식으로 왕위에 올라 고려군과의 마지막 일전을 준비함으로서 태조 왕건의 진 최종보스가 된다. 하지만 일리천 전투가 개전되자마자 그런 신검의 결의를 단숨에 무너트린 장본인이 있었으니 바로 아버지 견훤이었다. 일흔의 나이에 등창 말기까지 겹치며 서 있는 것도 버거웠지만 오로지 자식들과 예전 구신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왕건에게 몇 번이고 간청하여 기어이 고려군 선봉에 선 견훤에 의해 백제군은 제대로 싸우기도 전에 사기를 잃고 와해되었으며, 선봉에 나섰던 장군 애술과 김총이 포로로 잡히고 상귀 등이 전사하는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고려는 황산으로 후퇴하는 후백제군의 경로를 파악하여 미리 매복을 했고, 결국 이 전투를 끝으로 후백제는 멸망하고 말았다.[23][24]
그렇게 항복하여 신검을 따라 종군한 제장들이자 쿠데타의 주역들인 능환, 능애, 파달 등이 처형됐고[25], 살아남은 삼형제에 대한 처분과 후일 어찌 됐는지에 대한 나레이션이 순차적으로 나온다. 양검과 용검은 유배를 갔으나 얼마 안 지나 유배지에서 처형됐고 신검은 남의 권유에 의해 왕위 찬탈을 한 것이므로 두 동생보다는 죄가 가볍다 하여 왕건이 용서해주고 벼슬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26]. 하지만 그 이후 신검에 관한 기록은 전혀 없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끝까지 고려에 대항한 만큼 천수를 다했을 것으로는 보지 않는 견해가 우세하며 본작에서도 이 설을 채용했다[27]. 신검이 처형되는 장면을 지나가듯이 보여주면서, 나레이션으로 망국 후의 행적에 대해 설명하는 식으로 처리한다[28]. 한편 신검이 처형되는 장면은 드라마에서 마지막에 나오는 장면은 아니지만 가장 마지막에 촬영한 장면이다. 마지막회 종료 후 이어 방송된 제작 다큐멘터리는 이 장면을 찍은 후 제작,촬영진이 샴페인을 터뜨리며 200화 대장정의 끝을 자축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3. 평가
비록 최종적으로 아버지에게는 죽을 때까지 미덥지 못한 자식이라고 미움 받았고 실제로도 그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외 주변 사람들에게는 꽤 인망이 두터운 것으로 묘사된다.[29] 전투에 참전할 때마다 거하게 말아 먹고 황제인 견훤이 대놓고 싫어하는데도 불구하고 주변 신료들이 일만 터졌다 하면 그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 한 증거. 이는 신검 본인이 비록 무능력하고 부자지간에 독은 올랐을지언정 사람들끼리의 정과 도의에 제법 신경을 쓰는 묘사가 여러 번 등장하고, 엄하고 무서운 아버지를 둔 영향인지는 몰라도 주변 사람들의 청은 웬만하면 다 들어주고 인간적으로 잘 지내고자 노력했기 때문이다.[30][31] 심지어 예성강 기습전에서 애술의 고집을 받아들여 곡도에서 졸전을 벌이거나, 파달이 경계를 소홀히 하여 견훤이 고려로 탈출하는 일이 벌어졌음에도 그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거나 처벌하지 않았다.문제는 묘사상 병졸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겠다고 보초고 뭐고 제쳐놓고 술잔치를 벌이기도 하고, 부하들이 쓸데없이 고집부리는 것까지 오냐오냐해 주다가 그간의 전과를 다 말아먹는다는 것. 거기다 결정적인 순간에 최승우나 능환 등 책사들이나 지장들이 간언하는 것은 잘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반대로 끝이 뻔히 보이는 청탁은 그냥 받아주는 대단한 판단능력도 가지고 있으니, 하는 일마다 잘 될 리가 없었다.
한편 이러한 모습을 옹호하는 시선도 있는데, 견훤에게 혼나는 것이 거의 일상이 되다시피 한 입장에서는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리기가 매일반이었고 역사적으로 자수성가형 군주나 명군을 부모로 둔 후계자들은 '나는 부모와 다르다' 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32] 또 '책사들이나 지장들' 이라는 사람들이 거의 다 견훤이 키우고 발탁한 경우들이라서, 자신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과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에 이들의 조언을 무의식적으로 밀쳐 왔다는 것. 그러나 전투상의 결과는 매번 '신검이가 또 졌어?!' 였을 뿐이다.
거기에 신검이 보인 무리수 역시 생길 수밖에 없었다고 보이는데, 견훤이 신검을 전투[33]에 보내놓고는 파진찬 최승우조차 힘든 싸움이라고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신검에게 무조건 승리를 강요하는 경우도 있는가 하면, 어떻게든 공을 세웠다고 볼 수 있는 상황[34]에서 조차 계속 견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혼만 나니 인정받기 위해 더 무리수를 두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무리수로 인해 패배를 거두게 되고, 결국 앞의 공이 다 사라진 채 인정받지 못하게 되니 더욱 조급해져서 악순환만 이어지게 된 것이다. 대표적으로 예성강 전투에서 송악의 황궁까지 진입했으나 무리해서 곡도에 있는 유금필을 치려다 패배하면서 다시금 그 공을 깎아먹게 되고 다음 번에 공을 세우면 인정해주겠다는 아버지의 말에 결국 운주성 전투까지 무리하려다 아예 파국이 나 버리고 만 것이다.
한편으로는 후반부에는 신검을 옹호하는 신하들을 답답해하고 신검을 박대하고 견훤의 행동이 이해가 갈 수도 있는데, 전반부의 신검은 그저 '아버지의 능력을 못 물려받고 무능한 후계자'정도의 위치지만, 고창 전투를 기점으로 후반부 그야말로 답이 없는 내부의 적 수준이 되는데, 그럼에도 신검이 인망을 잃는 대상은 견훤의 사위인 박영규 정도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금강이 다른 장수들과 사적으로 친분을 쌓은 일이 별로 없다지만 딱히 장수들을 막 대한다거나 해서 원한을 산다는 묘사는 전혀 없었고 장수로서 유능한 모습은 물론 덕장의 모습도 많이 보여주는데, 그에 비래 신검의 행동은 거의 역적에 가까울 정도로 막나가는데도(특히 고창 전투,운주성 전투) 여전히 신검 타령만 하는 신하들의 모습이 전혀 설득력이 없기 때문이다.금강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신검을 오래 봐서 정이 들었을 법한 능환은 그렇다고 쳐도, 상귀나 신덕 같은 2세대 장수들이 이런 신검의 개노답스러운 모습을 보면서도[35] 견훤보단 신검에게 더 충성을 하는 모습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질 않는 수준이다. 아무리 장자 우선주의가 존재하던 시대라곤 하지만 정말 해도해도 너무한 수준. 실제 역사에서 한 견신검의 정변이 어떤 성격이었나는 불명이나, 드라마 작중에서 견신검의 정변은 거의 실제 역사의 계유정난만큼이나 명분이 없는 반역이었으니만큼, 드라마상의 묘사처럼 신료 대부분이 신검 편인 것보다는, 차라리 상귀같은 대다수의 장수들이[36] 박영규처럼 고창이나 운주 전투를 기점으로 신검에게 질려버린 나머지 신검에게서 돌아서나, 능환과 신덕을 비롯한 소수 신검파 장수들이 조정이 방심한 틈을 타서 기습적으로 뒤통수 쳐 난을 성공시키는 계유정난식 정변으로 묘사를 하는 것이 더 개연성이 높았을 것이다.
신검의 입장에서 한 쿠테타 묘사가 호불호가 있는데 사실 고금을 통틀어 왕좌를 받지 못한 장자의 운명은 죽음 뿐이었음을 잊지 말자. 살고 싶다. 그것보다 더 확실한 명분이 있을까? 또한 태조 왕건 187화에서 견훤은 능환과 능애는 외딴 섬으로 쫓아내 위리안치시키고, 신덕등 다른 장수들은 효수하라 칙령을 내리는 장면이 있는데, 그럼 신검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그냥 앉아 죽으란 이야기인가? 다시 한번 태조 왕건 187화를 보면 알 수 있다. 금강의 어머니 승평부인 고씨가 황위에 오른 뒤 금강에게 가장 먼저 뭘 하라고 하는가?? 신검 3형제를 아예 없애라고 말하지 않는가?
혜종(고려) 문서에 나와있다시피, 왕건은 장남을 후계자로 세웠다. 왕건은 29명의 부인과 혼인을 맺었고 그로 인해 낳은 왕자가 25명이나 된다. 그 중 혜종보다 더 총명하고 더 뛰어난 왕재(王才)를 지닌 아들이 없었을까?,무리한 서경천도를 시도한 정종은 논외로 치더라도 그 다음으로 왕위에 오른 광종은 노비안검법과 과거제를 실시하는등 왕재가 확실히 뛰어난 인물이었다. 다만 혜종 역시 단지 장자라는 이유만으로 왕이 된 것은 아니었다. 혜종도 후삼국 통일전쟁 최후의 전투 일리천 전투에서 선봉장으로 나서서 후삼국통일을 이뤄낸 공적이 있다. 한마디로 전쟁영웅이었던 것 전쟁영웅이 왕이 된 사례는 한국사만 보더라도 영류왕, 광해군이 있다. 왜 원소가 허망하게 망했는가, 관도대전에서 패했을 망정, 적벽대전에서 패하고도 다시 일어난 조조처럼 원소도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한반도보다 더 큰 드넓은 관중 평야가 그의 것이었다. 원가가 패망한 것은 관도전의 패배 때문이 아니라 아들들의 내전 때문이었다. 너무도 쉽게 형주를 빼앗긴 유표 역시 마찬가지다.
연개소문의 고구려는 5천년 중국사 영웅이라 일컬어지는 당태종을 무릎꿇린 저력의 나라였다. 연개소문은 장남 연남생을 후계로 세웠지만 세 아들에게 비슷한 크기의 권력을 나눠주는 바람에 아들들 사이에 내전이 벌어지고 연남생은 결국 당나라로 도망쳤다. 우리야 연남생을 매국노 호부견자라고 욕하지만 막상 연남생과 같은 상황이 된다면 어찌할까?? 그냥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까? 괜히 가후가 조조에게 원소와 유표의 고사를 들은 게 아니다.
다만 신검이 살기위해 쿠데타를 할수밖에 없었던건 어느정도 이해가 가는 면도 있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드라마상 금강은 그렇다치고 아버지인 견훤까지 사실상 죽도록 방치한 것과 신검은 지도자로써의 능력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라 아버지인 견훤이 신검대신 금강을 후계자로 정할만한 이유가 충분 했고,금강은 처음에는 형들과 잘지내려고 거듭 노력했으나 형들의 증오와 박대로 질린 나머지 형들과 척을 지게 된 것이라 형제간 불화의 원인은 신검 형제에게 있었고 그런 와중에도 견훤은 형들에게 잘해주라고 부탁한 것과 금강은 노력해 보겠다고 대답하는 등 금강이 자기의 어머니 말도 그렇고 정말 형제들을 죽일 가능성은 적었기 때문에 시청자들에겐 이와 같은 명분이 잘 와닿지 않은 것도 있다.
드라마의 후반부쯤 가면 신검의 또다른 단점이 드러나는데, 발전이 없고 군주로서 책임감도 그다지 없다는 것이다.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끝까지 같은 유형의 실수와 실패를 반복한다는 점에서 패배로부터 교훈을 얻고 발전하는 면모가 전혀 없었음을 알 수 있고, 차기 군주로서 무언가 제대로 책임지고 나서는 모습도 보여주지 못했다. 벽진군 전투만 해도 첫 전투에서 매복에 걸려 대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에서도 무리하게 진군했다가 또다시 매복에 걸리고 말았다. 심지어 두번째 전투에선 책사 능환이 적의 계략을 의심하여 신검을 만류하였으나, 신검은 그대로 군사들을 밀어붙였고 또다시 매복에 당하고 만다. 신검 생애의 큰 기회였던 예성강 기습전에서도 마찬가지로, 무리하게 곡도까지 갔다가 유금필의 매복에 걸려 패했다. 특히나 이 부분은 변호가 안 되는 게, 곡도로 향하던 도중 '너무도 운이 없었소이다. 늘 하는 일마다 잘 되다가, 끝에 가서 엉망이 되고는 했지요. 그러나, 이번 전과는 내가 생각해도 그 동안 백제가 싸워 왔던 전투 중 최고일 것이올시다.' 라는 대사를 쳤기 때문이다. 본인의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아닌데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였다.
책임감이 없다는 것은 견훤의 모습과 비교해보면 확연히 드러나는데, 견훤은 실책을 저지르면 신하들 앞에서 내 책임이라고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고 신하의 잘못도 자신이 뒤집어쓰고 다독여주는 모습을 보였다. 가령 신검의 책임이 가장 큰 운주성 전투에서도 신하들 앞에서는 신검 탓을 조금도 하지 않고 다 자신의 잘못으로 돌렸다. 물론 이런 것은 정치적 발언에 불과하다고도 할 수 있겠으나, 신검은 자신이 하지 않은 잘못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모습을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다. 대표적인 예시가 김락이 이끄는 고려군,신라 지원군의 기습에 대야성을 내어주고 도망 나와서 한 대사인데, 병사들에게 술을 나누어준 것이 패인이라는 생각은 눈꼽만큼도 하지 않고 '이게 다 술 때문이야!' 라는 대사를 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최후의 전투인 일리천 전투에서마저 견훤의 깜짝 등장과 그때 백제군의 흔들린 기강에 그걸 놓치지 않고 공격을 이어간 진군에 예봉이 꺾이자 '애술 장군이 선봉을 잘못 선 것이오!' 라고 일갈하며 끝끝내 마지막까지 남 탓을 멈추지 않았다. 또한 '내 군사/수군'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자신이 실패한 것만 한탄할 뿐 장졸들의 안위를 염려하는 모습도 보여준 적이 없다고 해도 좋을 지경인데, 이는 신검이 대야성 전투에서 패하고 물러났을 때 '내가 보물처럼 아끼는 백성들' 을 잔뜩 죽였다며 질책하는 견훤과 좋은 대비를 이룬다. 다만 책임감이 없어 보이는 것도 견훤이 잘못 키운 탓이 크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바로 아버지에게 혼날거란 걱정밖에 안 드니까 자기 걱정하느라 바쁜 와중에 군사들과 백성들 걱정할 마음의 여유가 있을리가 없다.
다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똑같은 함정에 빠진다는 점은 작가 필력의 한계 및 드라마 연출에서 비롯된 것도 있는데, 이 드라마에서 장수의 지휘는 간단하게만 묘사될 뿐이고, 전투도 공성전 아니면 야간 매복전만 묘사될 뿐이다. 때문에 '지휘능력이 모자란다=대놓고 함정에 빠진다'가 되면서 졸지에 신검은 똑같은 실수만 반복하는 바보가 되고 말았다. 사실 극중에서 나온 대부분의 행적들과 전과들만 봐도 조물성 전투 초반과 예성강 전투 초반 빼고는 거의 승리하는 장면들이 사실상 전무하며[37] 일단 총사로 나서기만 했다 하면 주로 십중팔구 패배셔틀이 되어 대부분 고려군의 승점자판기 신세만 되고 만다. 양국 태자간의 대결이었던 조물성 전투는 처음엔 이겼으나 다음판엔 져서 금강이 눈깔을 잃어 사실상 무승부였고, 예성강 때는 어찌저찌 너무 운좋게 송악 궁궐까지 쳐들어 가는 데는 성공했지만 바로 다음엔 유배 간 유금필이 이끈 남은 여진족,어부들에게 탈탈 쳐발렸다. 그나마 왕건을 위기에 몰아넣은 삼년산성 전투 또한 그의 일방적 승리까진 아니었다.
외교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도 단점으로 꼽을 수 있다. 특히 벽진군 전투와 고창 전투 때 이러한 면모가 부각되는데, 이 때 신검은 벽진을 다스리는 이총언과 고창 세력과 싸우기 전 투항을 요구하면서 '무조건 항복하라. 아니면 모조리 죽일 것이다' 라는 강압적이고 무례한 편지를 보내 상대가 백제에 완전히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특히 벽진 전투 때 이총언은 고려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으면서도 고려에 귀부할 생각까지는 굳히지 못한 상태였는데 신검이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며 무례한 서신을 보내자 분노하여[38] 백제 사신을 쫓아내고 결사항전을 하며 결국 후백제군을 대패시켰다. 고창 전투 때도 고창은 이미 고려 쪽으로 거의 마음을 굳힌[39] 상태였지만, 신검의 무례한 편지에 분노하며 한층 더 적의를 불태웠다. 필요하다면 적국인 고려에게도 기본적인 예의를 갖출 줄 알았던 아버지 견훤과 비교해도, 외교 능력이 떨어졌던 것.
요약하자면 걸물까지는 못 되더라도 평범한 수준이었겠으나, 황소고집 + 부하의 현명한 제안은 거부하면서 패배의 지름길로 가는 제안은 귀신같이 받아들이는 판단 능력 + 이복동생인 금강에 대한 열등감 + 아버지 견훤에 대한 억하심정 + 성급한 판단 등으로 모든 것을 말아먹은 셈이다. 다만 드라마 상의 신검은 군사 지휘관으로서는 낙제점이고 의도적으로 아버지가 죽도록 지원도 가지 않는 등 자식으로썬 금강보다 한참을 못미치지만 , 인덕은 무난한지라 만약 평화로운 시기에 태어났거나 견훤 대에서 후백제 주도의 통일이 성사됐더라면 왕위를 물려받아도 큰 문제가 없었을 인물이다. 또는 유능한 장군들에게 군사를 맡기고 자신은 내치에 전념했다면 나았을 것이다. 딱히 신검의 계파도 아니고 신검 능력의 한계도 잘 알고 있던 최승우 또한 신검이 왕위를 물려받는 게 차라리 금강이 물려받는 것보단 나을 거라고 견훤에게 필사적으로 설득을 시도했었다.[40]
4. 기타
드라마에서는 부친 견훤과의 관계가 끝끝내 회복되지 못했지만, 드라마가 방영할 당시 나왔던 소설에서는 견훤이 죽기 직전 꿈에서 신검이 양검과 용검과 함께 나타나 그저 아버지의 따뜻한 한 마디가 듣고 싶었다며 자신들이 그렇게나 미웠냐고 섭섭함을 토해내자 견훤이 뉘우치며 숨을 거두는 걸로 간접적인 화해를 묘사한다. 그나마 드라마판에서도 삼형제를 죽이라고 재촉하면서도 양검과 용검이 목숨을 구걸하자 그래도 백제의 태자들인데 비굴하게 그럴 수 있냐고 꾸짖거나 등창이 악화되어 임종을 맞을 때 삼형제가 어떻게 됐냐는 견훤의 질문에 임종을 지켜주던 고려 문신들이 견훤의 바람처럼 죽었다고 하자 잠시 착잡한 표정을 짓는 등 자식들에게 그래도 아버지로서의 마음이 남아 있었음을 암시시켜준다.한 가지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삼년산성에서 유금필에게 패배하고 성을 빼앗겨 신검의 본진으로 도망 온 용검과 양검은 신검에게 퇴각을 종용한다(164화). 그러잖아도 신검 자신은 중요한 전선을 금강에게 내어준 대신 왕건의 본대를 공격할 기회를 잡았고 실제로도 본대를 궤멸시켰는데도 정작 왕건을 잡지 못해 심기가 불편한 상황인데, 동생들이 겁에 질려 도망가자며 한심한 꼴을 보이자 뚜껑이 열렸는지 "너희들이 그러고도 태자들이냐! 못난 놈들!"이라며 소리를 지르며 동생들을 총채로 때린다. 그런데 그 모습이 패전하고 돌아온 신검을 두들겨 패는 견훤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실망스런 모습을 보여주는 두 동생 때문에 혈압이 올라 "으이구 못난 놈들!" 하고 책망하는 모습까지 판박이. 나중에(166화) 양검이 형에게 직접 "그러고 보면 형님도 아버님의 급한 성정을 많이 닮지 않으셨습니까?" 라고 하자 신검도 "하긴 그 피가 어디로 가겠느냐?" 하면서 체념한 듯한 모습을 보인다. 이런 아버지를 닮은 언행과 행동은 중장년으로 나이를 먹어갈수록 점점 짙어지는데[41], 배우 이광기가 의도적으로 견훤 역의 서인석의 연기를 적극적으로 모사한 것이고, 시청자들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고 한다. 이광기가 견훤과 신검의 캐릭터 설정과 인간관계를 제대로 이해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현실에서도 자식들은 부모의 부정적인 모습에 반발하면서도 은근히 이를 닮아가는 경우가 많으니 나름 현실적인 고증인 셈이다.
이환경 작가가 극본을 담당한 또 다른 대표작인 전전작 용의 눈물에서 묘사된 제1차 왕자의 난과 본작에서 이방원, 신검의 반란은 같으면서도 다른 점이 뚜렷한데, 양쪽 모두 일개 장수였던 이성계/견훤이 스스로 나라를 건국해 보위에 올라 그 이름을 떨치나 말년 후계자 문제로 인한 갈등이 폭발하여 형들이 아우의 후계자 자리를 빼앗고 살해한 뒤 아버지이자 개국군주를 몰아낸 뒤 고립시켜버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면 차이점은 견훤은 적국이던 고려로 망명하여 신검에게 복수의 칼날을 들이밀고 자신의 나라를 스스로 멸망시켰으나, 이성계는 그저 울분만 터트릴 상황에 자신이 망명할 다른 국가가 딱히 없어져 왕위를 차남 정종에게 줘버리고 이곳저곳 다니다가 이방원이 여러 위기를 넘기며 제2차 왕자의 난 후 세자가 되고 왕이 되자 함흥차사를 거쳐 결국 마지막으로 조사의의 군사를 빌려 국내 지역에서 난을 일으키지만, 복수에는 실패했다. 또한 신검은 견훤이 탈출하고 얼마 가지도 못해 왕건에게 패망하며 마땅한 업적도 남기지 못하고 아버지와도 영원히 화해하지 못하나, 이방원은 태종으로 확실히 살아남아 정권을 잡고 조선의 기틀을 마련하며 여러 업적을 세워 조선 초의 전성기를 이끌고 이후 아버지와도 극적으로 화해하였다.
사료에서 신검을 비롯한 양검과 용검 삼형제의 가족이 언급되지 않아서인지 신검은 50대에 접어들고 끝날 때까지 이들 삼형제의 배우자나 자녀가 전혀 안 나왔다. 덕분에 지천명이 될 때까지 그저 왕위에만 집착한 모태솔로 장남처럼 보이기도 한다[42]. 물론 사료에만 누락되었을뿐 실존 인물들은 각자 가족이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신검 역을 맡은 이광기에게는 배우로서의 인생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이었는데, 30줄이 넘은 때인 2001년 KBS 연기대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함으로써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무명 배우라는 딱지를 떼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20년 10월 15일부터 KBS Drama Classic에서 태조 왕건 200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무료 스트리밍 1회차를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10월 21일 오전 11시 45분 경에 신검 역을 맡았던 배우 이광기가 직접 댓글을 남겼다. 당시 스트리밍에는 신검이 송악을 기습하여 휘젓던 에피소드가 나오고 있었는데, 이때 날씨가 무척 추워 고생했다고... 유튜브 채널에 있는 신검의 반란 파트에서도 직접 덧글로 추위 때문에 대사가 제대로 안 나왔다고 밝혔다. 공식 다큐멘터리 영상에서도 해상전을 찍을 때 제작진이 던져주는 불덩어리 앞에서 실감나게 연기하느라 고생한 이광기의 모습이 나온다.
해당 배역을 연기한 이광기는 벽진 이씨인데, 그 벽진 이씨의 시조 이총언을 공격했다가 고려군에 개박살나는 에피소드 촬영으로 인해 문중 어르신들이 꾸중했다는 설이 있다.
5. 관련 문서
[오프닝] 오프닝에서의 금강과 신검, 오른쪽 인물이 바로 배우 이광기가 맡은 신검이다. 독기어린 표정을 등을 보이며 금강에게서 숨기는 신검의 모습이 훗날에 대한 복선처럼 여겨지게 만든다.[2] 젊은이의 양지(드라마)에서 어린 소매치기 대풍, 은실이에서 은실이의 이복오빠 영학 역을 맡았다.[3] 이 당시는 아직 어린 아이였다. 직후 박씨가 둘째를 임신했다자 견훤이 기뻐하며 무조건 아들을 낳으라며, 이름을 미리 양검으로 지어놓고 '큰 놈은 신검이, 작은 놈은 양검이고. 검검검! 이 얼마나 강한 이름이에요?' 라고 아주 한 잔 맛잇게 얻어 먹고 오리라 말한 걸로 보아 이때는 자녀가 신검밖에 없던 모양. 허나 그냥 박씨 옆에만 있게 나와서 비중은 없었다. 다만 설정 오류인지 견훤이 상주에서 처자식을 데리고 갔을 때, 신검이 7살이라고 했는데 이후에 동생이 생겼고, 누이가 15살에 박영규한테 시집 갔으며 이후에 신검이 대야성 전투에 참전했는데, 작중엔 정작 동생들과 나이차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동생인 양검과 무예 대련을 할 정도.[4] 사실은 화살을 맞고 말에서 떨어진 추허조가 신검을 지키기 위해 먼저 후퇴하라하여 간 것뿐이었지만 이걸 몰랐던 견훤이 대야성에서의 첫 전투에서부터 지고도 돌아왔다는 이유로 채찍으로 머리를 수없이 맞은데다 죽음까지 강요당했다. 이것이 기점이 되어 신검은 아버지께 공을 세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앞서 유리한 전투를 그르치는 경우가 잦아진다. 또한 견훤의 행동은 부하들과 여론 관리에는 적절했는지는 몰라도 자식 교육면에서 그리 좋지 못했다. 신검의 과오를 질책하는 것은 좋은데, 문제는 이것이 21세기 현재의 관점으로 보면 충분히 아동 학대로 비춰질 정도로 혹독한데다 이후로도 계속 신검을 질책하기만 하고 아버지로서 정을 보여주지 않었다. 그러다보니 신검은 발전하기는커녕, 아버지를 두려워하고 증오하게 되었다.[5] 김유신도 아들 김원술이 전투에서 지고도 살아 돌아오자 의절과 동시에 문무왕에게 아들을 죽이게 해 달라고 청원했다. 공교롭게도 태조 왕건의 견훤과 삼국기의 김유신 역을 맡은 배우는 똑같이 서인석이다.[6] 심지어 항복을 권하러 온 신검의 사자에게 아자개의 일을 들먹이며 문전박대해서 신검을 자극했다. 이를 들은 신검은 '할아버지의 잘못이 아버님께 돌아가고 있다'며 분개한다. 또 한편으로는 자신도 아자개와 견훤의 반목을 옆에서 늘 봐왔기 때문에 '저들이 하는 말이 틀린 것도 아니라서 뭐라 할말이 없다'고 자조하기도 한다.[7] 여기서 나온 장면이 트위치 영상 도네이션으로 유명한 또 졌어?! 이젠 아예 전멸을 했다고?! 장면이다.[8] 측근들과 술을 마시는 것으로 모자라 병사들에게까지 술과 안주를 지급했다가 기습에 당해 그 대야성을 잃어버렸다. 적이 금강이 지키는 용주를 먼저 공략할 거라 생각한데다가 견훤의 깃발을 꽂아 놓았으니 함부로 공격하지 못할 거라 예상했다고는 하지만, 보초병들까지 창을 팽개치고 병나발을 부는 꼴을 방치했다는 데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다. 대야성이 백제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았다면 더더욱 그랬으면 안되었다.[9] 대야성은 견훤이 무려 19년간 3번이나 공격한 끝에 나이 54살에 겨우 얻은 성이였다.[10] 작중 견훤은 3차례 대야성을 공격하는데 첫 번째는 김효종, 두 번째는 계강을 비롯한 신라의 노장들에게 수천의 병사를 잃고 격퇴당하고 그들이 너무 늙어 전장에 나오지 못하고 애술과 안과 밖으로 협공한 세 번째에야 성공한다.[11] 대야성을 두 번째로 공략할 때 전공을 세웠으나 무리한 추격으로 복병을 만나 추허조가 전사했다. 당시 추허조 역을 맡았던 강재일과 견훤 역의 서인석 사이에 마찰이 있었던지라 실제 역사에서보다 훨씬 일찍 전사하는 것으로 처리되었는데, 극중에서는 견훤과 신검의 관계가 더 악화되는 장치로 활용되었다.[12] 박술희와 애술이 일기토를 벌이는데 애술이 밀리는 기색을 보이자 부달과 소달을 보내 3대 1로 공격하게 한다. 그러자 유금필이 달려나와 부달과 소달을 눈 깜짝할 새에 베어버렸고, 사기가 완전히 떨어진 백제군은 참패했다. 한편 부달과 소달 역시 추허조처럼 실제 역사에서보다 일찍 전사한 셈이 되는데, 역사 기록에서 이들의 이름은 일리천 전투 당시 능환 등과 함께 항복했다고 나오는 것이 유일하기 때문.[13] 왕건의 주력이 궤멸하면서 삼년산성을 지킨다는 게 의미가 없어지자 유금필이 철수해 다시 백제군이 되찾았다.[14] 그러나 견훤 본인도 공산전투에서 왕건을 놓친 적이 있었고, 적어도 본대를 이끈 신검은 자신의 책임하에서는 큰 성공을 거뒀다. 양검과 용검의 실책도 신검의 승리 덕에 충분히 만회가 되었기에 이는 명백히 견훤의 불공평한 처사였다.[15] 물론 전 백제군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유금필이 앞을 가로막고 있어 예정된 시각을 지키기는 힘들기는 했지만, 이를 구실로 합류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게다가 유금필은 신검의 군대를 막은 뒤 박술희에게 군사 일부를 주어 수비를 맡기고 견훤의 본대를 향해 이동하여, 신검의 보고를 무색하게 만들어 버렸다.[16] 견훤의 말에 따르면 '그나마 아들이니까 가만 놔 둔 거지 그놈은 군법을 적용해서 죄를 물을 수도 있었다' 지만 군령을 적용하면 장남이고 뭐고 즉결 처형감이다. 드라마의 각색이니까 그렇지, 실제로 이랬다면 신검의 지지세력이 크게 축소되거나 아예 소멸될 수도 있는 일이다.[17] 근데 사실 이건 왕건이 평양 즉 서경에 있는 바람에 왕건 대신 유금필이라도 잡겠다는 지푸라기 잡는격으로 곡도를 무리하게 공격해버린 바람에 유금필에게 대차게 말아먹은것이다.어찌되었든 황제의 보위를 오를 기회를 자기 스스로 말아먹었으니 결국 견훤은 보위를 금강에게 주는걸로 완전히 기울리게 된다.[18] 고려 황궁을 장악한 뒤 왕건의 옥좌에 실제로 앉아보기까지 한다. 착잡한 심경으로 '이 자리에 앉기가 이렇게도 힘이 든단 말인가.' 하고 탄식하는 대사가 백미.[19] 신검이 쿠데타를 일으키기 얼마 전에는 금강과 독대를 청해서 황제가 되려는 뜻을 접으라고 권했을 정도였다.[20] 특히 애술 같은 경우 정변으로 잠시 하옥되었을 때 "이건 반역이다!" 라고 발언하는 등, 유금필에게 복수할 기회를 주겠다(...)는 신검의 설득을 받아들이기 전까지 정변을 영 마땅찮게 생각하고 있는 상태였다.[21] 금산사를 탈출하기 전에 영순이 금산사를 방문해 신검의 즉위를 허락해달라고 하자 견훤은 "니들 알아서 해라"라고 짧게 말했고 신검은 이것을 허락으로 받아들였으나, 견훤의 탈출 소식을 듣고 나서야 '어차피 망할 나라, 네가 삶아먹든 볶아먹든 내 알 바 아니다'라는 뜻이었음을 뒤늦게 알아챘다.[22] 서라벌을 함부로 약탈한 것과 더불어 경애왕을 자결시킨 것이 신라 호족들이 견훤에게 등을 돌리게 만드는등 치명적인 자충수가 되었지만 이건 의자왕의 한을 풀어 주려는 의도와 더불어 외부에서 저지른 일이지,적어도 연산군이나 동탁처럼 내부에서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었고 서라벌 약탈에서도 군사들의 행동을 승리자의 특권이라 한 태도라 딱히 백성들을 괴롭힌 적은 없었고 오히려 백제 백성을 사랑하는 성군의 모습을 보여주었다.[23] 신검을 포함한 지휘부 장수들은 자신들이 황산벌까지 쫓겨왔음을 알자 한탄하는데, 수백년 전 신라의 김유신을 맞아 항전하다 전사한 계백 마지막 전투가 바로 이곳 황산벌이었다. 백제는 두 번이나 황산벌에서 멸망하는 얄궂은 운명을 맞이한 것이다. 이쯤에서 더 이상 백제군에게 싸울 의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24] 이때 후백제 병력은 일리천 전투까지는 6만명이었지만 일리천에서 어이없게 패배한 바람에 5만명이나 남게 되었고, 황산으로 퇴각할 때 2만명의 병력들이 탈영하여 후백제의 병력은 3만이 되었고 이미 사기가 완전히 꺾여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전투를 할수 없는 사태까지 이르게 되었다.[25] 신덕 역시 대본상에는 처형당하나 신덕을 연기한 배우 임병기(당시 임진일)이 촬영 중 낙마사고를 당하여 마지막 장면을 촬영하지 못해 슬쩍 증발해버렸다. 그래서 본래 유언으로 '놔라 이놈들아! 내 발로 가겠다.'는 말만 할 예정이던 파달이 신덕의 대본상 유언인 '죽는 건 억울하지 않소이다. 다만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하는 것이 억울할 따름이오.'까지 하였다.[26] 당시에 왕건이 이런 결론을 내렸다면 그 이유는 아마 두 가지인데, 견훤을 견제하기 위함이거나 후백제의 민심을 다스리기 위한 것이다.[27] 보통 귀부한 왕의 경우 본인이 과거에 지배하던 지역을 식읍으로 주거나 그게 아니라면 높은 벼슬을 주게된다. 당장 경순왕이 항복 후 경주시로 개명되는 서라벌에 대한 자치권과 식읍을 그대로 받았으며, 수십년 간 왕건과 싸워온 라이벌 견훤도 귀순 후 양주시를 식읍으로 받았는데 신검은 두 사람과 대조적으로 항복했다는 기록을 마지막으로 식읍은 고사하고 무언가 벼슬을 받았다거 하는 것 같은 이후 기록이 신기할 정도로 없다. 일리천 전투 후 얼마 안 지나 병사한 견훤, 뒤탈없이 항복한 경순왕과 달리 신검은 위험분자 여지가 다분하니 기록말살형까지 겸해 숙청했을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28] 생략된 대본에는 능환, 능애 등이 처형되고 신검 형제가 끌려간 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왕건이 박술희에게 명령을 내려 잠시 생각을 잘못한데다 상부 어른의 원한을 달래드려야 하니 모조리 제거하라고 명령하는 장면이 있다. 하지만 왕이 자신이 방금 전에 내린 명령을 바로 번복하는 건 워낙에 가벼워 보이고 생각없이 사는 듯한 인상이라 왕건의 제왕으로서의 위엄을 일순간에 손상시킬 수 있기에 대본이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 본래 왕들은 번복할 사항이 있을 때는 시간적 뜸을 들인 후에 왕의 뜻을 아는 몇몇을 동원해 관료들이 공론을 모으게 하고 왕이 이걸 못이기는 척 받아주는 형식으로 처리해 명령번복으로 인한 위엄의 손상을 막았다.[29] 금강과는 다르게 신검과 양검 등은 견훤만 따르며 전장을 참가하는 것이 아닌 독자적으로도 전장을 많이 오고갔다. 신검만의 과오로 전쟁의 패배를 많이 겪기도 했지만, 다른 장수들이 보기엔 사지를 함께 넘나드는 신검의 모습이 나름 나쁘진 않다는 부분일 수도 있다. 금강 역시 눈을 잃어가는 등 치열한 전투는 많았지만, 대다수는 견훤이 함께하는 친정인만큼 장수들이 태자와의 인망을 깊게 이어나가긴 어려운 편이었다.[30] 고창 전투의 패배 이후 군부의 핵심 장수들과 편을 나눠 격구 시합을 한 것이 대표적[31] 나레이션 상으론 그저 연이은 전투에서의 실패와 이로 인한 아버지 견훤의 질책으로 인해 맺힌 가슴 속의 응어리를 풀기 위함이라고 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신검의 정치적 입지가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후백제 내부정치의 상징적인 장면이다.[32] 이는 오늘날로 따지면 세계구급으로 유명한 운동선수 부모를 둔 자식이 부모와 같은 운동을 하면서 '부모님의 명성에 먹칠하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에 휩싸이기 쉬운 것과 비슷하다.[33] 벽진군 공성전[34] 1차 조물성 전투[35] 심지어 왕위 욕심에 눈이 멀어 고집을 부리고 가질 않는 신검에게 암묵적으로 동의를 한 것도 아니다. 양검과 용검을 제외하고는 "그래도 먼 길로라도 가야죠"라는 입장이었다. 신검이 총사의 권한이라는 명목으로 모조리 묵살을 시켜버렸을 뿐.[36] 사실 상귀는 신덕과는 달리 역적이라는 역사상의 근거가 딱히 없다.[37] 이외에도 삼년산성 전투 초반에 매복으로 왕건이 이끄는 고려군을 궤멸시키고 왕건을 잡을 뻔한 전과를 올린 적도 있다. 다만, 이후 양검과 용검의 실수로 유금필에게 삼년산성을 빼앗겨버리는 바람에 신검의 화가 단단히 치밀어 오른다.[38] 백제는 '태자' 신검이 무례한 편지를 보내며 항복을 강요했는데, 이후 고려에서는 '황제' 왕건이 정중하게 귀부를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고, 백제를 상대하기 위한 지원에 후한 벼슬까지 약속하였다. 이러니 당연히 고려 편을 들 수 밖에.[39] 고창 지역 호족들은 신라계라는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견훤이 경애왕을 죽이고 왕비에게도 몹쓸 짓을 한 것 때문에 백제를 '패륜의 무리'라 부르며 경멸했다.[40] 두 사람의 능력 여부 이전에 금강에게 물려주는 걸 강요할 시엔 무조건 쿠데타가 일어나서 더 빠르고 확실하게 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굳이 금강에게 물려줄거면 신검 3형제를 죽이고 물려주라고 견훤에게 권했지만 그것도 들어주지 않았고.[41] 참고로 견훤 역의 서인석 역시 최종화 이전 후반부(송악 공략전 ~ 신검의 쿠테타,탈출)에 이르러선 배우 김성겸이 연기한 아자개를 묘사한 듯한 다소 코믹한 연기톤을 보여주었다.[42] 심지어 신검의 즉위식에서도 신검이 옥좌를 향해 걸어갈 때 바로 옆에서 같이 걷는 게 부인 역의 엑스트라가 아니라 두 아우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