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미국의 록 밴드 건즈 앤 로지스의 역사를 서술한 문서.2. 결성(8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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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00 AFD 발매 이전 언더그라운드 시절}}} |
1981년- 더프 맥케이건은[1] 베이스를 구하는 광고를 보고 슬래시와 스티븐 애들러를 만난다. 그들은 '로드 크루'라는 밴드를 시작한다.
또 액슬 로즈가 처음 LA에 왔을 때 인디애나 고향 친구 이지 스트래들린 빼고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액슬 로즈는 펑크 밴드를 하고 싶었으나 자신이 히피 같다는 이유로 쉽지 않았다고 한다.
{{{#000000 할리우드 로즈 시절[2][3]}}} |
1983년- 몇몇 밴드를 전전하던 액슬 로즈는 크리스 웨버와 함께 밴드 '로즈'를 결성한다. 그리고 마침 드럼에서 기타로 전향한 이지 스트래들린을 영입해 '할리우드 로즈'라고 이름을 바꾼다.
1984년- 5곡의 데모를 녹음하며 순항하던 밴드는 액슬 로즈와 크리스 웨버의 불화로 크리스 웨버가 탈퇴하고, 슬래시를 영입한다. 하지만 크리스 웨버의 탈퇴가 불만이었던 이지 스트래들린도 탈퇴를 한다.
이지 스트래들린은 '런던'에 가입하게 되는데, 미리 밴드에서 리듬 기타를 치고 있던 슬래시의 후임이였다. 얼마 후 드러머도 탈퇴하게 되는데, 이때 스티븐 애들러가 가입했고 그들의 첫 합주곡은 'Reckless Life'였다.[4] 하지만 밴드는 한두 번의 합주를 끝으로 해산한다. 이지 스트래들린은 액슬 로즈에게 트레이시 건즈를 소개해줬고 액슬 로즈는 L.A. 건즈에 가입했으나 드러머와 베이시스트의 불화로 밴드는 곧 해체된다. 슬래시는 포이즌의 오디션을 봤으나 탈락한다.
1984년- 액슬 로즈는 밴드를 구하느니 '할리우드 로즈'를 다시 결성하기로 했고, 크리스 웨버, 이지 스트래들린과 다시 함께 하기로 했다. 그러나 크리스 웨버가 곧 뉴욕으로 떠나게 되었고 공연 대타로 트레이시 건즈가 임시 가입한다.
1985년- 액슬 로즈와 트레이시 건즈는 그냥 밴드를 합치는 게 낫다고 판단하고, '건즈 앤 로지스'[5] 를 결성한다. 이때 멤버는 액슬 로즈 (보컬), 트레이시 건즈 (리드기타), 이지 스트래들린 (리듬기타), 올레 베이흐 (베이스), 롭 가드너 (드럼)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첫 공연이 끝난 후 올레 베이흐[6]가 해고되고 이지 스트래들린의 친구이자 이웃이었던 더프 맥케이건이 영입된다.
밴드는 라디오 인터뷰도 하고 데모도 만들었으나, 액슬 로즈와 트레이시 건즈[7][8]와의 불화가 일어났다.
지친 트레이시 건즈는 잠시 쉴 생각으로 잠수를 탔고, 며칠 후 이지 스트래들린에게 슬래시가 대신하기로 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한다. 슬래시는 더프 맥케이건이 데려왔는데, 알고 보니 전에 액슬 로즈와 이지 스트래들린과 잠시 함께했었다고.
곧 롭 가드너[9]도 탈퇴하고 역시 전 동료였던 스티븐 애들러가 영입된다.
그들은 기타 숍 뒤편의 한 칸짜리 전셋집에서 살았다. 4평이 조금 넘는 공간에서 노래를 만들고 합주를 하면서 숙식을 해결했다. 당연히 샤워 시설은 없었고, 그들은 그곳을 '헬 하우스'라고 불렀다. 침대로 쓸 선반을 만들기 위해 공사장 목재를 훔치기도 했고 비스킷과 와인으로 식사를 때우곤 했다.
또한 1986년도 쯤 인지도가 쌓이기 전까지는 머틀리 크루나 본 조비와 비슷하게 외모적으로 글램적인 성향이 짙었는데, '하노이 락스'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이지 스트래들린의 추천이었다고...[11][12]
밴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했던 돈은 공연 수익으로만 벌기 힘들어 멤버들은 사방으로 뛰며 정말 갖가지 생고생을 했다. 액슬 로즈는 전화기 판매원, 야간 매니저, UCLA 흡연 실험 등을 참여했고, 더프 맥케이건과 이지 스트래들린은 동유럽 출신의 사업가 밑에서 세일즈맨과 웨이터, 설거지 등을 했으며, 스티븐 애들러는 어디선가 먹을 거리를 구해오고, 슬래쉬는 가판대에서 신문을 팔면서 전화기를 하루종일 부여잡고 밴드의 공연 계약이나 프로모션을 하다가 짤리는 등 여러 일을 했었다.
건즈 앤 로지스의 멤버들과 친하게 지내던 여자들의 말에 따르면 '헬 하우스'에는 샤워 시설조차 없었기에 늘 자신들의 집에 들러 샤워를 하고 갔고, 입을 옷을 빌려줬다고 한다.
데뷔 앨범을 완성한 후에 나은 집으로 이사를 갔다. 2층 집이었는데, 마약상과 그루피, 주정뱅이들로 북적였다고 한다.
데뷔 앨범의 프로듀서로 키스의 보컬리스트 폴 스탠리가 거론되었으나, 레이블은 돈을 아끼기 위해 상대적으로 평범한 마이크 클링크[15]와 계약한다. 클링크는 밴드에게 어떤 음반을 좋아하냐고 물었고, 슬래시는 에어로스미스, 액슬 로즈는 메탈리카의 라이드 더 라이트닝을 언급했다.
드럼은 6일 만에 녹음되었으나, 보컬은 액슬 로즈가 가사 한 줄 한 줄 녹음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훨씬 더 긴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슬래시는 녹음 기간 동안 잭다니엘스와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워대고, 새벽 3시가 되면 술을 마시러 나가곤 했다고 한다. 앨범은 그들의 생활을 고스란히 담은 12곡의 자서전으로 완성되었다.
3. AFD, 미국에서의 성공(8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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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tite for Destruction~G N' R Lies 시기의 라인업[16] |
{{{#000000 1988년 Welcome To The Jungle 라이브[17]}}} |
사실 곧바로 빵 뜰 수 없었던 이유는 MTV가 건즈가 너무 선정적이고 위험하기 때문에 그들의 비디오를 단 하나라도 방송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가능성을 믿었던 톰 주토트의 도움으로 Welcome To The Jungle의 뮤비를 딱 한 번 방송했다가 폭발적인 관심을 받게 되었고, 이것은 건즈가 인기 밴드로 자리매김하는데 중요한 사건이 되었다. 더 자세한 것은 Appetite for Destruction 문서 참조.
{{{#000000 1989년 MTV 시상식 Sweet Child O' Mine의 'Best Heavy Metal Video' 부문 수상[18]}}} |
이 앨범은 다듬어지지 않은 듯한 스트레이트하고 거친 질감의 연주와 유려하고 서정적인 슬로우 템포 등 이질적인 요소가 기막히게 공존한다. 시원시원한 하드락/헤비메탈 트랙인 Welcome To The Jungle[20], Nightrain, Paradise City, 밝고 신선한 록 발라드 트랙 Sweet Child O' Mine[21] 등등 수많은 주옥같은 명곡이 가득하다. 리드 싱어 액슬 로즈의 잘생긴 외모나 멤버들 각기의 뚜렷한 캐릭터성과 스타성도 건즈의 인기의 또 다른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 앨범은 무려 147주간이나 빌보드 차트에 머물며 미국에서 1800만 장이 팔렸으며, 세계적으로 3300만 장이 팔렸다.
Sweet Child O' Mine의 히트로 인기가 최고조를 이루던 1988년 여름이 지나고 11월 밴드는 타블로이드 신문 표지 같은 커버를 가진 G N' R Lies 앨범을 발표한다. 이 앨범에는 A면에는 EP인 Live ?!'@Like A Suicide의 4곡이, B면에는 어쿠스틱 세션의 4곡이 실려있다. 주요 곡으로는 잔잔한 어쿠스틱 기타와 액슬 로즈의 몽환적인 보컬이 인상적인 Patience[22]과 에어로스미스의 곡을 리메이크한 Mama Kin이 있다. 미국에서 50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한다.
그러나 B면 수록곡인 One in a million에 제노포비아, 호모포비아, 인종차별 적인 가사가 수록되어, 비난을 면치 못했다.[23][24] [25]
One in a million은 액슬 로즈가 흑인 강도를 만나고 난 후에 쓰인 곡이다. 아마 Welcome To The Jungle 같은 의도로 쓰인 것 같다. 곡이 완성되자 스티븐 애들러는 액슬 로즈에게 "이런 미친! 이게 뭐야? 이거 꼭 해야 되겠어?"라고 물었고, 액슬 로즈는 "그래, 꼭 필요해. 내 느낌을 표현하고 싶거든."이라고 대답했다.
곡에서 말하는 바는 대충 이러하다. "내가 편하게 거닐던 거리가 언제 이렇게 돼버린 거지? 왜 무분별하게 물건을 강매하지? 왜 강도를 당해야 하지? 왜 불안해해야 하지? 왜 여길 자기들 나라처럼 만들지? 모두 그런 건 아니겠지. 원인 어 밀리언이겠지. 하지만 너무 심해. 내가 급진파? 인종차별자? 난 그냥 작은 동네 백인 꼬마일 뿐이야. 왜 종교를 강요하지? 난 그냥 전처럼 살고 싶어."[26][27] 어쨌든 이 곡은 2018년 발매된 리마스터링 앨범에선 제외되었다. 액슬 로즈는 지금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그 외에 여성 혐오적인 가사는 It's So Easy와 Back Off Bitch에 절절하게 있는데, 이 역시 같은 대답이었다. 그저 그 상황에 그 감정을 정확히 표현한 것뿐이라고.
또한 상당히 히트한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데뷔 앨범에 비교하면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도 있으나, 정규 앨범이 아닌 서비스 B 사이드 모음 같은 앨범이었다.
{{{#000000 1989년 롤링 스톤즈와의 'Salt of the Earth' 합동 공연[28]롤링 스톤즈와 합동 공연을 했다는 점에서 당시의 인기를 체감할 수 있다. 블루스 록에 기반한 사운드와 섹슈얼하고 퇴폐적인 분위기는 건즈가 롤링 스톤즈의 영향을 받은 점이다.]}}} |
4. UYI, 세계적인 성공과 분열(91~93)
90년대 초 Use Your Illusion 활동 시기 라인업[29] |
1990년 드러머를 밴드 Cult 출신의 맷 소럼으로 바꾸고[32] 키보디스트 디지 리드를 영입하며 Use Your Illusion을 준비한다. 밴드는 1, 2를 묶어 하나의 앨범 즉, 더블 앨범(CD 2장 / LP 4장)으로 발매하려고 했으나 게펜 레이블의 반대로 I, II 두 장의 앨범을 발매한다.[33][34]
1991년 9월 17일, Use Your Illusion 앨범이 발매되었다. 이 앨범들은 각각 700만장 씩 팔리며 흔히 이 때가 건즈 앤 로지스의 마지막 정점으로 여겨진다.
발라드 곡들이 인기가 많은 한국에선 밥 딜런의 곡을 리메이크한 Knockin' on Heaven's Door, 액슬 로즈의 애수 어린 보컬과 슬래시의 서정적이면서 강렬한 기타 솔로가 일품인 Don't Cry, 그리고 한편의 영화 같은 뮤직비디오가 특징적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은 November Rain같은 발라드 곡들이 큰 인기를 얻었다. 그로 인해 건즈 앤 로지스의 인지도가 크게 높아진다. 다른 주요 곡으로는 10분에 이르는 대곡이자 곡 내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액슬 로즈의 또 다른 대곡, Estranged와 Coma가 있다.
그렇다고 발라드 곡으로 채워진 앨범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 건즈 앤 로지스 기존의 색깔을 유지하면서 여러 다른 요소들을 수용한 헤비메탈 트랙 You Could Be Mine 같은 곡도 다수 존재한다. 자세한 곡 소개는 Use Your Illusion 앨범 항목 참조.
앨범이 발매하고 2개월 후, 91년 11월 7일. 투어 도중 밴드내 주요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인 이지 스트래들린이 갑작스럽게 탈퇴를 선언한다.[35]
탈퇴 사유는 연속되는 대규모 투어에 지쳤고, 상술한 것처럼 마약과 알코올 중독으로 막장이 되어가는 밴드 내 상황, 지각과 무대에서의 난동을 일삼는 등 제멋대로 굴던 액슬 로즈, 마지막으로 슬래쉬와의 음악 성향의 차이로 때문이다. 이지 스트래들린은 롤링 스톤스풍의 가벼운 로큰롤 사운드를 선호했고, 슬래시는 에어로스미스 풍의 기타히어로 스타일을 선호했다.[36][37][38]밴드는 급히 길비 클락을 영입하고 투어를 진행한다.[39]
{{{#000000 퀸과의 Bohemian Rhapsody 공연}}} |
투어 중간에 프레디 머큐리 추모 공연도 참여했는데, 건즈는 'Knockin' On Heaven's Door'[40]와 'Paradise City' 2곡을 부르고, 액슬 로즈는 엘튼 존과 함께 'Bohemian Rhapsody', 퀸과 'We Will Rock You'를, 슬래시는 Queen과 'Tie Your Mother Down'을 연주했다. 액슬 로즈는 평소 프레디 머큐리를 존경했기 때문에, 공연에 참여하게 된 것을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1993년 11월 23일 The Spaghetti Incident?을 발표. 이 앨범은 70~80년대의 전설적인 펑크, 글램 록, 하드 록 밴드나 당대의 그런지 밴드들의 곡들을 커버한 앨범으로 미스피츠, 뉴욕 돌즈, 이기 팝 앤 스투지스, 사운드가든 등의 곡들이 리메이크 되었고 100만 장 정도의 판매고를 기록한다. 명작들의 재해석이라는 점에서는 그럭저럭 의의가 있으나 투어 직후 거의 급조해낸 휴식기 앨범인 만큼 다른 앨범들에 비해 딱히 음악성에 공을 들인 앨범으로 평가받지는 못한다. 그렇게 전작들에 비해 형편없는 수익과 함께 밴드 내의 갈등이 더욱 더 커져 얼터너티브 록의 시대까지 살아남은 건즈 앤 로지스에는 사실상의 기나긴 공백기가 찾아왔다.
영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사운드트랙에 롤링 스톤즈의 커버 곡 Sympathy for the Devil로 참여했는데, 녹음 당시 액슬 로즈가 슬래시와의 상의 없이 독단적으로 자신의 친구(폴 휴즈)의 기타 플레이를 녹음하고 덧씌우고 발매했다. 이에 슬래시는 굉장히 자존심이 상했고 그 갈등은 심화되어 결국 슬래시의 탈퇴로 이어진다.[41]
슬래시가 이렇게 분노한 이유에는 밴드의 속 사정이 있는데, 그는 건즈 앤 로지스 활동 내내 기타 녹음에 대해서 예민했다. 이후 인터뷰와 자서전에서 이지 스트래들린에 대해 말하길, 그들의 데뷔 앨범인 Appetite for Destruction을 녹음할 때 이지 스트래들린이 제대로 연주를 하지 못할뿐더러 노래들을 망쳐 놓아서[42] 화가 났을뿐더러, 그와 함께 음악 작업을 할 때면 그가 항상 본인 마음대로 하려 하는 면을 굉장히 싫어했다고 밝혔다. 슬래시의 GN'R 탈퇴 이후, 어느 인터뷰에서 인터뷰 도중 이지 스트래들린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그는 손사래치며 이름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불쾌하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UYI 앨범을 작업할 때도 이지 스트래들린은 좀 더 심플하게 하길 원했고, 슬래시는 좀 더 화려하고 드러나는 플레이하길 원했다. 원하는 정도에는 부족했겠지만, 슬래시는 월등한 기타 지분을 가져갔고, 이지 스트래들린은 자신의 취향의 곡에 리드 보컬을 녹음한 3곡[43]을 갖게 된다. 이것으로 타협한 것 같다. 액슬 로즈는 슬래시를 지지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부클릿에서 Estranged에서의 솔로에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고, 이지 스트래들린 탈퇴 후 인터뷰에 이지 스트래들린이 너무 느슨하며, 데모 같은 느낌으로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고 했다.
어쨌든 슬래시 입장에서는 이게 스트레스이기는 했는지 이후의 행보를 보면 2010년대 재결성 이후에도 세컨드 기타리스트는 철저히 리듬 파트 플레이어를 두고 있다. 하지만 현재 명목상 세컨키타인 리처드 포르터스는 배킹과 동시에 이전 리듬 기타리스트들과 달리 공연에서 솔로파트 연주도 하고 슬래쉬와 잼도 한다. 이지 스트래들린의 인터뷰를 보면 어느 날 (2000년대 이후) 기타 숍을 갔는데 직원이 자신에게 슬래시의 사인이 들어간 시그네쳐 기타를 추천해주는 사건이 있었다며 웃으면서 얘기한 일이 있다.
그렇게 94년 초, 80년대 후반 전세계 팝시장과 록 씬을 주름잡던 건즈 앤 로지스는 멤버들간 불화로 사실상 해체 상태로 들어갔다. 93년도 남미 투어를 끝으로 길비 클락이 액슬의 독단으로 해고되고 멤버들간 골은 깊어졌으며 Sympathy For The Devil의 편곡 작업 또한 액슬과 슬래쉬는 서로 대리인을 통해 작업을 공유했다.[44] 액슬은 슬래쉬의 솔로 파트를 무단으로 수정하며 더욱 갈등을 심화시켰고 결국 96년도 슬래쉬와 더프의 정식 탈퇴선언으로 건즈 앤 로지스는 마무리를 맺었다.
슬래쉬는 당시 'Sympathy for the Devil'을 가리키며 "만약 균열 중인 밴드의 노래가 어떤식인지 알고싶다면 건즈가 커버한 Sympathy for the Devil을 들어보면 알 것이다."[45]라고 말했다.
5. 침묵과 라인업 변동(94~08)
이후 액슬 로즈와 다른 멤버들 간의 불화가 절정에 달하여 결국 밴드는 활동을 중단하고 액슬 로즈와 디지 리드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모두 탈퇴해 버린다.탈퇴 이후의 멤버들은 각자의 솔로 활동을 하고 슬래시는 Slash's Snakepit의 밴드로 두 장의 앨범을 발표한다.
그 후 더프 맥케이건, 맷 소럼 등의 멤버로 스톤 템플 파일러츠 출신의 보컬리스트 스캇 웨일랜드를 영입해 벨벳 리볼버를 결성한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해 스캇의 약물중독과 불성실함 등으로 트러블이 일어났고 2008년 결국 스캇 웨일랜드는 탈퇴한다.[46]
벨벳 리볼버가 새 멤버를 구하는 사이 슬래시는 사이프러스 힐이라든지 밴 헤일런의 전 보컬리스트 새미 헤이거 등등과 조인트해서 틈틈히 공연을 가지고 있으며 아담 램버트[47], 크리드 출신의 Scott Stapp, 페이스 노 모어 출신의 마이클 패튼, 퍼블릭 에너미의 Chuck D, 심지어 사운드가든의 크리스 코넬이나 RATM의 잭 드 라 로차, 레니 크래비츠 같은 사람들도 보컬로 영입하려 한다는 소문이 무성하지만 그 누구도 영입이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벨벳 리볼버 활동을 정리한 슬래시는 솔로 앨범을 1장, 그 후 Slash feat. Myles Kennedy and the Conspirators[48]라는 밴드로 앨범을 4장 발매했다.[49]
액슬 로즈는 밴드 '건즈 앤 로지스'의 이름을 사용할 법적 권리를 얻게 되고,[50] 완전히 새로운 라인업을 꾸려서 90년대 후반부터 건즈 앤 로지스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계속한다. 이 때부터의 건즈 앤 로지스를 예전과 구분하기 위해 뉴 건즈 앤 로지스라 부르는 경우가 많다. 액슬 로즈도 이를 부정하지는 않는지, 밴드의 엠블럼을 간단하게 "G N R"로 표기해놓고, 가운데의 N자를 크게 하여 "New"를 연상시키도록 하였다. 이 시기에 버킷 헤드가 건즈 앤 로지스에서 아주 잠깐 활동하다 2004년에 탈퇴하게 된다.
94년도부터 떡밥을 던져놓던 액슬 로즈는 1998년부터 새 앨범의 제작에 착수한다. 앨범의 제목은 Chinese Democracy라 해놓지만, 발매가 계속 미뤄지면서 신보 떡밥은 10년 이상 지속되게 된다.
6. 새로운 라인업과 새 앨범(08~13)
기타리스트 변동은 1999년 로빈 핑크 영입, 2000년 버킷헤드 영입으로 폴, 로빈, 버킷3기타 체제가 이루어진 이후 쭉 이어지다가 2004년 버킷헤드, 폴 토비아스가 탈퇴한 후로 범블풋, 리차드 포터스를 영입해. 앨범 발매까지 로빈, 범블풋, 리처드 체제가 이어졌다.2004년에는 그들의 히트곡을 모은 컴필레이션 앨범 Greatest Hits를 발매했다. 나쁘게 보면 추억팔이일 수도 있겠지만 전성기 시절 노래들을 빵빵하게 채워놓은 결과 미국내 600만장, 전세계 천만장 이상 판매되는 성과를 거둔다.
마침내 액슬 로즈의 건즈 앤 로지스는 2008년 11월 장장 15년 만의 앨범 Chinese Democracy 앨범을 발표하게 된다. 이 앨범은 잔류 멤버 디지 리드[51]와 슬래시 대타로 들어온 멤버 버킷헤드[52] 등등의 도움으로 제작되었으며 1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였다.
뉴건즈 시절 이지와 액슬
뉴건즈 시절 더프와 액슬
이지 스트래들린은 앨범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아직 친구랍시고 뉴 건즈 앤 로지스의 서포트도 맡아주고 어레인지도 도와줬다고 한다.-는 헛소문이다. 이지는 서포트도 어레인지도 앨범에는 일체 관여하지 않았다. 액슬은 멤버와 비멤버는 확실히 구분하고 하물며 조금이라도 참여했다면 차이니즈 앨범의 엄청난 크레딧을 보면 알 수 있듯 이름이 올라가는 것이 당연하다만, 없다. 이지가 도와준 쪽은 벨벳 리볼버이다. 정확히는 초반에 같이 작업을 하다가 벨벳에 합류를 안 했다. 하지만 같이 공연을 하기는 했었다. 물론 이지가 공연에 등장한 만큼 더프도 공연에 종종 참여했다. 다툼이 있던 슬래쉬와 소송까지 진행했던 애들러는 물론 제외. 그외 맷 소럼이나 길비 클락은 액슬에겐 정식 멤버가 아니었으니 제외(...).
앨범 발매가 듀크 뉴켐 포에버 마냥 15년을 끄니, 한때 "진짜로 중국이 민주화되면 나오겠네"라는 농담이 먹히기도 했다.
또한 닥터페퍼 사장이 2008년 안에 앨범이 나오면 전 미국인한테 닥터페퍼를 쏘겠다고 2008년 3월에 광고를 때렸다. 근데 2008년 11월에 나왔다.(...) 결국 회사 홈페이지에서 쿠폰을 주는 방법으로 닥터페퍼를 쐈으나, 홈페이지 폭주 관계로 발급이 제대로 안돼서 건즈 앤 로지스가 화났다고.(...)#
이 후 2007년경 나인 인치 네일스 활동으로 인한 로빈 핑크의 탈퇴와 함께 머틀리 크루, Sixx : AM 출신의 DJ 애쉬바가 영입되었다.
6.1. 첫 한국 공연
2009년 12월 13일.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내한 공연을 가졌다. 그러나 공연 당일 문자로 1시간 연기된다는 연락이 왔다.[53] 늦은 시작 시작만큼 종료시간은 빨라져서 다른 나라 공연보다 셋 리스트가 적게 연주되었다. 그리고 시작된 공연에 관객들은 지쳐있고 화나있었지만 액슬 로즈의 "너네는 내가 영원히 안 올 줄 알았지?" 한마디에 콘서트홀은 그야말로 아비규환.
공연은 당시 비난여론이 꽤 많았는데, 첫 번째로 공연 시작 시간이 당일 1시간 연기되었다. 티켓에 표기된 시작 시간은 7시였고, 공연 시작은 8시에 되었고, 오프닝 포함하여 최종적으로 건즈가 등장한 시각은 9시 30분이었다.
두 번째로 셋 리스트에 Chinese Democracy의 곡이 다수 포함되었다는 것. 새 앨범을 낸 밴드가 새 앨범에 있는 곡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팬들 대다수가 올드팬이었다.
세 번째로는 사운드가 엉망이었다. 이에 여러 설이 있는데, 당일 내한해서 리허설도 안 했다는 이야기.[54]
네 번째로 늦게 시작해 사운드가 후졌던 만큼 급하게 끝낸듯한 공연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다음의 일본 공연에서는 컨디션도 공연시간도 월등히 향상되었다.
여담으로 건즈 공연을 기획한 공연기획사 사장도 건즈의 열성팬이었지만 하도 크게 데인 이후로 다시는 이들을 부르고 싶지 않다고 했었다고.
6.2. 명예의 전당 헌액
2011년 9월.다음 해 로큰롤 명예의 전당[55] 후보로 올랐다. 한 해에 5에서 7팀, 개인을 뽑으므로 건즈 정도 전성기 포스와 인지도를 보여주었던 밴드가 물을 먹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같이 후보에 오른 밴드 중에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도 있다.
2011년 12월 7일.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이 확정됐다. 빌보드지에서 한 액슬 로즈의 인터뷰 중 "(클래식 라인업) 재결합 전에 나랑 슬래시 둘 중에 하난 죽을 거야."라 발언한 것과 헌액 직후 나온 원년 드러머 스티븐 애들러의 인터뷰로 보아 전성기 멤버가 모이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였고 예상대로 액슬 로즈는 명예의 전당 무대에 안 나왔다. 대신 얼터 브릿지의 보컬 마일즈 케네디가 보컬을 맡았다.[56]
그리고 액슬 로즈 외에도 이지 스트래들린도 쿨하게 거절했다. 기념 공연에는 리듬 기타로 길비 클락이 참여했는데, 헌액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그는 명예에 전당에 헌액되지 못했다. (일루션 앨범부터 참여한 맷 소럼과 디지 리드는 헌액)
7. 슬래시와 더프 맥케이건의 재합류(14~현재)
2014년 12월 25일 기준으로 현 멤버는 액슬 로즈 (보컬), 범블풋 (리드 기타), DJ 애쉬바 (리드 기타), 리차드 포터스 (리듬 기타), 타미 스팅슨 (베이스), 프랭크 페러 (드럼), 디지 리드 (키보드), 크리스 피트먼 (키보드)이다.2015년 8월 DJ애쉬바와 범블풋이 건즈를 탈퇴했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쯤, 더프 맥케이건과 슬래시가 액슬 로즈와 화해했다는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6년 Coachella 페스티벌 헤드 라이너로 건즈 앤 로지스가 서는데 더프 맥케이건, 슬래시, 액슬 로즈의 라인업으로 무대에 서는 것이 밝혀졌다. #
이지 스트래들린, 스티븐 애들러, 맷 소럼은 참여하지 않았는데, 이지 스트래들린은 재결성 합류 거부의 이유로 멤버 간의 공정한 수익 배분이 되지 않았음을 인터뷰에서 밝혔다.
현재 멤버구성은 클래식 멤버인 액슬 로즈, 슬래시, 더프 맥케이건과 일루전 멤버 키보디스트 디지 리드, 뉴건즈 시절에 들어온 리듬기타 리처드 포터스[57], 드러머 프랭크 페러 그리고 재결합하며 새로 영입한 홍일점 멤버이자 신시사이저/프로그래밍 멜리사 리즈로 구성되었다.
이후 계속된 공연에 액슬 로즈는 그간의 걱정을 날려버리는 듯! 호흡은 부족해도 전성기에 가까운
2016년 슬래쉬와의 23년 만의 무대.
이후 이 액슬 로즈 - 슬래시 - 더프 맥케이건 부분 재결성 라인업의 건즈는 액슬 로즈의 AC/DC 투어가 마무리된 6월 23일을 시작으로 2개월간의 북미 투어를 성공리에 마무리 지었다. 이 Not in This Lifetime 투어는 공연의 질과 흥행 모두 올해 최고의 투어 중 하나였다는 호평을 받는 중이며 업계의 리포트에 따르면 거의 전 공연이 매진되었다고 한다. 투어의 몇몇 공연에서는 클래식 라인업의 드러머였던 스티븐 애들러가 등장하여 한두 곡의 드럼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이지 스트래들린은 여전히 참여하지 않고 있다.
이제 나아질 일만 남은 것 같던 액슬 로즈의 보컬은 다시 최악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나이가 나이인지라 예전과 같은 보컬은 어렵겠지만 그것을 감안한다 해도 기본적인 음색이나 성량을 보면 동일 인물이 의심될 정도로 예전과는 너무나 대비된다. 전성기 시절부터 창법 자체가 목을 혹사시키는 창법이다 보니 나이가 적지 않은 지금의 목 건강 상태는 매우 좋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팬들은 악평 일색이며 심지어는 듣다 버티질 못해 전성기 시절의 라이브 영상을 다시 찾아 들을 정도이다. 여담으로는 대부분의 80년대 미국 메탈 그룹 음악의 보컬이 웬만한 일반인들은 범접하기 힘들 정도로 매우 고음이다 보니 그때의 메탈 보컬 대부분이 전성기 시절 목을 혹사당해 현재는 목 상태가 좋질 못하다. 그래도 그냥저냥 슬래시와 별문제 없이 투어를 잘 소화해냈고 아쉽지만 그저 왕년의 거물 밴드 중 하나로 남은 느낌이다.
재결성 라인업은 2016년 10월 말부터 남미 투어를, 2017년 1월부터 일본/오세아니아 투어를 진행하게 된다.
2018년 데뷔 앨범인 Appetite for Destruction의 리마스터링 박스 셋을 발매한다. 리마스터링 이외 데모곡과 미발표곡 미발표 라이브 음원이 수록되어있다. 2016년 코첼라에서 재결합한 이후 2년의 시간이 지났으나 투어를 제외하면 아직 새로운 곡 소식은 없다. 대신 슬래시의 새로운 솔로 앨범을 발표되었다.
2019년 슬래시는 솔로 투어를 진행하고, 액슬 로즈는 AC/DC의 새 앨범에 보컬로 참여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리고, 건즈 재결합은 추억 팔이로 돈 긁어모으는 수작이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여전히 새 앨범은 시간이 더 걸릴 듯하다.
2020년 1월 마이애미를 시작으로 중남미부터 시작해 유럽까지 다시 월드투어를 가질 예정이었으나 코로나로 전부 취소되었다. 그러나 멤버들은 항상 잠수를 타는 이지 스트래들린을 제외하고 모두 인스타로 소통을 팬들과 활발히 하는 편이다. 최근 유튜브 채널에서는 팬들과 소통을 하거나 코비 브라이언트 추모 사진을 올리는 등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2021년 8월 3일 보스톤 펜웨이 공원에서 있었던 라이브 공연에서 2001년도부터 Silkworms로 알려져있던 미공개 노래를 최종 편곡한 Absurd를 최초 공개하였다.[58] 이어 8월 6일 유튜브를 통해 뮤직비디오와 함께 공식 음원을 공개하였다.[59] 따지고보면 현 멤버 라인업으로 발매된 첫 노래나 다름이 없어서 수많은 올드팬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2021년 9월 24일 Hard Skool이라는 신곡을 발표했다. 이 곡은 Chinese Decmocracy 발매 이전 유출되었던 데모트랙들 중 Checkmate라는 명칭으로 20초 남짓의 분량만 유출된 채 알려져있던 미공개 노래를 최종 편곡한 것이다.[60]
2023년 8월 18일 Perhaps라는 신곡을 발표했다. 이 곡은 Chinese Democracy 세션에서 녹음되었으며, 2019년 유출되었다.
2023년 12월 8일 The General이라는 새로운 싱글을 발표했다. 이 곡 역시 이전에 발표한 Perhaps과 같이 Chinese Democracy 세션 중 만들어졌다.
[1] 더프 맥케이건은 이미 시애틀에서 30개 이상의 밴드에 참여했다.[2] 이지 스트래들린, 크리스 웨버, 액슬 로즈.[3] 후에 AFD에 수록된 'Anything Goes'의 데모. [4] 스티븐 애들러는 당시를 회상하며 "액슬은 마이크를 움켜쥐고 뛰어다니면서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로 노래했어. 그 순간 나는 성공할 거라고 생각했지."라고 말했다.[5] 밴드명을 지을 때 Head Of Amazon, Aids 같은 밴드명이 나왔으나 결국 트레이시 건즈와 액슬 로즈의 성을 딴 '건즈 앤 로지스'로 결정된다.[6] 올레 베이흐는 덴마크 출신 베이스 연주자로서, 훗날 자신이 몸담았던 건즈 앤 로지스가 엄청나게 유명해지자 탈퇴를 후회하고 우울증에 걸려서 고향에서 알코올, 약물중독으로 지내다 91년 호수에 빠져 자살하였다.[7] 특히 액슬은 트레이시 건즈에 대해 자신이 살면서 본 최악의 인간성을 가진 사람으로 평가한 바 있다.[8] 트레이시 건즈는 건즈 앤 로지스 탈퇴후 'L.A. Guns'를 재건해 나름 인기를 누리다 탈퇴하여 현재는 솔로 기타리스트로서 활동하고 있다.[9] 롭 가드너는 건즈 앤 로지스 탈퇴 이후 음악적 활동은 그만두고 공연 기획자로서 활동하고 있다.[10] 슬래시의 오랜 친구이자 당시 록 밴드들의 사진을 찍고 다녔던 마크 켄터(Marc Canter)는 이 때의 건즈가 서로 만난지 일주일도 안 된 밴드였는데 놀라울 정도로 합이 잘 맞았고, 카메라를 어느 곳으로 향하든 반드시 찍을 게 있어 가슴이 두근거리는 경험이었다고 회상했다. 액슬과 슬래시는 이후 마크의 결혼식에도 참가했었다고. [11] 망사 나시를 입는다던가 모든 멤버가 스모키 화장에 화려한 분장을 하던 시절도 있었다. 심지어 액슬 로즈는 엉덩이가 뚫린 팬츠를 입기도 했다. 물론 튀기 위한 전략이었고 성장하면서 글램 성향을 버렸다.[12] 정규앨범을 낸 전후의 스티일 비교. 색색깔의 의상과 짙은 화장을 버리고 메탈 룩으로 무장했다.[13] 게펜과 계약 전에 크리 설리스 레코드의 제의도 있었다. 게펜의 두 배를 제시했지만, 그들은 밴드의 이미지와 사운드를 바꾸길 원했고, 게펜은 완전한 예술적 자유를 제공했다.[14] 게펜과 계약 전 일이지만, 슬래쉬는 마약을 사려고 자신의 첫번째 레스폴을 헐값에 넘기기도 했다.[15] 그는 이전에 팝 음반을 주로 녹음하던 프로듀서였다. 최대 히트 앨범은 록키의 Eye Of Tiger.[16] 보컬에 액슬 로즈, 리드 기타에 슬래시, 베이스에 더프 맥케이건, 리듬 기타에 이지 스트래들린, 드럼에 스티븐 애들러. 흔히 수많은 락덕후들이 가장 추억하는 시절의 건즈.[17] 초창기 건즈의 똘끼를 잘 확인할 수 있는 영상. 라이브가 끝나고 넋이 나간 시상식 MC를 보여주는 건 덤...[18] 머틀리 크루가 그들을 수상시켜준다. 그 외에도 영상에서 에어로스미스, 메탈리카처럼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하드 록/메탈 밴드들이 나온다.[19] 1위는 조지 마이클의 Faith.[20] 우리나라에서는 예능 프로그램 정글의 법칙의 오프닝 곡으로 쓰이고 있어 메탈 팬이 아닌 한국인들에게도 알려진 곡인데, 이는 정글이라는 은유가 배제된 오용일뿐이다. 건즈 앤 로지스의 활동 무대 LA라는 도시 자체가 배경으로 쓰인 GTA: San Andreas 게임의 홍보 영상 속에 BGM으로 적절히 쓰이게 된다.[21] 곡 전체를 통틀어 계속 들리는 기타 리프가 유명하다.[22] Patience은 이지 스트래들린이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작곡, 작사한 곡이다.[23] 그래서 간혹 국내 GNR 팬들 중 일부는 이 앨범을 멜로디만 좋은 불쏘시개 취급하는 사람들도 있다.[24] One in a million의 가사에 나오는 단어들 Immigration Faggot, Nigger. 흑인인 슬래시는 이 단어를 듣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25] 액슬이 쓴 가사를 듣고나서 모든 멤버들이 '이건 아니다'라며 들고 일어섰으나 독재적인 성향에 성격 파탄인 액슬을 설득시키지 못했고, 결국 자포자기 심정으로 곡을 발표했다는 후일담이 있다.[26] 한국 사회에서도 만연한 전형적인 타민족/이민자에 대한 분노.[27] 액슬 로즈가 트럼프를 극혐하고 타 인종 친구들과 가깝게 지내기 때문에 XX 주의자가 아니라고 볼 수도 있을 수도 있다. 근데 그게... 전형적으로 나쁜 놈에겐 써도 된다는 논리라 또 문제다.[28] 액슬과 이지가 참가하였고, 데뷔한지 고작 2년 된 신인 밴드였던 건즈가 록 음악의 전설격 밴드인[29] 왼쪽에서부터 더프 맥케이건, 슬래쉬, 맷 소럼, 액슬 로즈, 이지 스트래들린, 디지 리드.[30] 이지가 회상하길 모든 멤버가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특히 이 둘은 항상 그 일주일 안에 죽을 것 같았었다고 한다.[31] 실제로 어느 무대 위에서 액슬 로즈가 노래 시작 전 멤버들에게 Mr. Brownstone과 헤어지지 않으면 밴드를 해체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Mr. Brownstone은 멤버들의 마약 중독 얘기를 다룬 노래이다.[32] 데모를 다 연주하고 약물 문제로 쫓겨난 스티븐 애들러는 서운했는지 인터뷰에서 맷 소럼을 비난하다 나중에 사과하기도 했다.[33] Use Your Illusion 앨범은 각각 독립 발매된 음반이지만 그와 동시에 Use Your Illusion 1, Use Your Illusion 2 앨범 각각 더블 앨범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CD를 사서 플레이어에 재생 시키긴 커녕, 대부분의 음악 리스닝이 스트리밍이나 음원 다운로딩에 의해 이뤄지고 있지만 Use Your Illusion 앨범 발매 시기인 1991년엔 CD 이상으로 카세트 테이프와 LP 판이 팔리던 시절이다.[34] Use Your Illusion 앨범은 1, 2 모두 LP와 카세트테이프로는 2장의 앨범으로 발매됐으며 오로지 CD만 각 1장의 디스크로 발매되었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 Use Your Illusion 1은 수록곡 중 Right Next Door to Hell과 Back off Bitch가 심의 통과를 하지 못해 누락될 위기에 처했는데 오리지널 트랙 모두 수록되지 않는 국가에 앨범 판매 자체를 허락하지 않은 그룹의 방침으로 인하여 발매가 지연되는 일이 발생, 결국 국내에는 해적 음반(백판)이 돌기 시작했다. 이에, BMG 코리아는 Use Your Illusion 2를 먼저 판매했으며, Use Your Illusion 1은 게펜과의 협상 끝에 심의를 통과하지 못 한 곡은 삭제되어 판매가 시작됐다. 그로 인해 Use Your Illusion 1은 한구에서 카세트 테이프는 1장으로 발매되었다.[35] 액슬 로즈에게 이지 스트래들린이 전화하여 탈퇴 의사를 전했고, 서로 절친이었던 액슬 로즈는 전화기를 붙잡고 엉엉 울었다고 한다. 이후 이지 스트래들린은 'Ju Ju Hounds'라는 밴드를 만든다.[36] 실제로 Appetite for Destruction 때부터 슬래쉬와 마찰이 있었고 AFD의 수록곡들을 잘 들어보면 슬래쉬보다 이지의 기타 사운드가 더 크게 녹음 된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솔로 비중은 역시 슬래시쪽이 압도적.[37] 애초에 밴드라는 것이 어느 하나를 위한 것이 아니므로, 기타리스트끼리의 알력 다툼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AFD의 사운드가 더 타이트하고 다이나믹한 것은 서로의 양보하지 않는 케미가 폭발한 결과물이다.[38] 액슬과 이지는 학생 때부터 온갖 밴드를 거치며 무려 10년 넘게 같이 음악 할동을 해 온 친구 사이다. 그런데도 밴드를 떠날 걸 보면 상황이 정말 최악이었던 모양.[39] 가입하자마자 수많은 곡을 며칠 만에 다 외워야 해서 힘들었다고 한다.[40] 곡 후반부에 슬래쉬의 기타 솔로가 작렬하는 이 라이브 버전을 최고로 꼽는 팬들도 많다[41] 슬래시의 탈퇴 전에 이지 스트래들린의 후임으로 잭 와일드를 염두에 둔 액슬 로즈는 건즈 앤 로지스와 잭 와일드의 합주도 주선했다고 한다. 결국 레이블의 사정으로 불발되었다고는 하지만 만약, 성사되었다면 록 팬들은 유례없이 강력한 하드락 트윈 기타를 보게 되었을 것이다. 혹은 주도권 싸움으로 둘 중 하나가 탈퇴했을지도 모르지만...[42] 슬래시의 주장이다.[43] You Ain't the First, 14 Years, Dust N' Bones.[44] 여담으로 이 때 길비 클락은 개인 활동 중이었는데, 자기 없이 Sympathy For The Devil 작업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난 이제 짤린 거구나'라는 것을 직감했다고 한다. 실제로 길비 클락도 건즈 내에서 이지 못지 않는 롤링 스톤즈 광팬으로 유명했다고 하는데, 그런 자신 없이 롤링 스톤즈 곡을 커버하는 것은 곧 단 하나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45] "If you've ever wondered what the sound of a band breaking up sounds like, listen to Guns N' Roses' cover of Sympathy for the Devil."[46] 스캇은 액슬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는 이후 스톤 템플 파일러츠에 재합류한다.[47] 아메리칸 아이돌 시즌 8 준우승.[48] 줄여서 SMKC[49] 얼터 브릿지의 보컬 마일즈 케네디가 리드 보컬을 맡고 있다.[50] 액슬은 투어를 거부했고, 공연이 연기될 위기였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수백만 달러를 손해보게 되었다고.[51] 디지 리드는 건즈에서 탈퇴하지 않았고 현재까지 활동하므로 전 멤버가 아니라 나름 현역이다.[52] 2004년 경 탈퇴.[53] 공연 전날 입국해서 피곤한 관계로 실제로 공연 당일 갑자기 액슬 로즈가 대기실 문을 잠가버리고는 한참 동안이나 나오지를 않았다고 한다.[54] 액슬 로즈는 후에 트윗에 인이어 모니터가 엉망이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보컬 컨디션 자체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 외로 반응은 꽤나 만족한 모양.[55] 데뷔한지 25년이 지나야 자격이 주어진다. 건즈는 Appetite for Destruction 앨범으로 1987년도 데뷔하였으므로 25년째 되는 2012년에 헌액 자격이 주어진 것이다.[56] 마일즈 케네디는 2010년 슬래시의 솔로 앨범에 참여한 바 있으며, 그 후의 모든 앨범과 모든 투어에 리드보컬로 참가하고 있다.[57] 사실, 참여 앨범이 1개뿐이라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지 슬래시보다 재직 기간이 4년 정도 더 길다. 2019년 기준으로 17년차이다.[58] https://www.youtube.com/watch?v=anRDMvMgqCA[59] https://www.youtube.com/watch?v=Qx3RfdAdCpQ 메두사를 모티브로한 캐릭터가 영상 내내 나오는데 기괴할 수 있으니 시청에 주의.[60] 당시 유출되었던 데모트랙의 풀버전은 2019년에 Chinese Democracy 당시의 미수록곡들이 유출되었을때 함께 유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