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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09 16:45:20

공정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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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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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66b3><colcolor=#fff> 제16·17대 서울특별시교육감
공정택
孔貞澤 | Gong Jeong-taek
파일:공정택2.jpg
출생 1934년 1월 26일
전라북도 남원군
(現 전라북도 남원시)
사망 2021년 10월 27일 (향년 87세)
본관 곡부 공씨
재임기간 제16대 서울특별시교육감
2004년 8월 26일 ~ 2008년 8월 25일
제17대 서울특별시교육감
2008년 8월 26일 ~ 2009년 10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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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66b3><colcolor=#ffffff> 가족 여동생 공정자
종교 개신교[1]
가족 부인 육완숙[2]
장남 공훈식[3], 차남 공문식[4]
학력 남성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학 / 학사)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행정전공 / 석사[5])
약력 덕수상업고등학교 교장
잠실고등학교 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중등교육국장
남서울대학교 총장
}}}}}}}}}

1. 소개2. 경력3. 선출직 교육공무원
3.1. 서울특별시 교육위원3.2. 서울특별시교육감
3.2.1. 제16대3.2.2. 제17대
4. 몰락5. 여담6. 선거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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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대한민국공무원으로, 2004년 8월 26일부터 2009년 10월 29일까지 서울특별시 교육감을 지냈다.

남성고등학교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1999년 미국의 칼슨뉴먼대학교에서 명예 학위를 받았다.

남서울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공정자의 친오빠이며, 공정택 본인도 1998년부터 2002년까지 남서울대학교 총장을 지낸 바 있다.#

2. 경력

1972년 4월부터 1978년 9월까지 덕수상고 주임교사
1978년 9월부터 1982년까지 교육청[6] 장학사
1982년부터 1986년까지 성동여자실업고 교감
1986년 9월부터 1991년 2월까지 중랑중학교 교장
1991년 3월부터 1994년 9월까지 덕수상고 교장
서울특별시 강동교육장출처
1994년 12월부터 1996년 2월까지 서울 도봉중학교 교장 - 당시 재학 중이던 학생들에게 공포의 훈화 시간을 선사했다.
1996년 9월부터 1998년 2월까지 서울시교육청 중등교육국장
1998년 2월[7]부터 2002년 8월까지 남서울대학교 총장

3. 선출직 교육공무원

3.1. 서울특별시 교육위원

남서울대 총장으로 재직중이던 1998년 9월[8]부터 제 16대 서울특별시 교육감으로 취임한 2004년까지 서울시 교육위원을 역임[9]하기도 했다.

3.2. 서울특별시교육감

3.2.1. 제16대

2004년, 서울특별시교육위원회 위원과 교육감을 뽑는 교육자치선거[10]에서 서울특별시교육감으로 당선되었다. 보수 후보 난립으로 1차 투표에서 진보 진영 단독 후보가 1위를 하고 공정택은 2위였으나, 1위 득표자가 과반수를 얻지 못 해 2차 투표를 치렀고 2차 투표에서 보수 표심이 단합해서 공정택을 밀어줘서 당선될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경쟁이 있어야 학생들의 학업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전형적인 경쟁 지상주의/서열 지상주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인물로, 재직시절 수우미양가를 부활시키는 등 각종 경쟁체제를 도입해서 심한 비판을 받았다.

동호공고 폐교 논란 등으로 인해 남산아파트 주민들의 극단적 님비질을 과도하게 하는 것도 모자라, 아예 동호공고[11]폐교시키겠다고 하는 극단적인 대중영합주의까지 보여주었다.[12]

3.2.2. 제17대

교육감이 직선제로 전환된 2008년에도 진보 성향의 주경복 후보[13]를 누르고 당선되면서 최초의 직선 서울시교육감이 되었다. 두 번째 임기가 시작된 이후에도 국제중학교 신설[14], 특목고 확대 등의 경쟁강화형 정책을 추진했으며, 때문에 사교육 의존도가 더 높아졌다는 비판을 받았다.

4. 몰락

그러나 선거 직후 사설학원업체로부터 무려 18억원의 선거비용을 차입하고, 급식업체 등에서 돈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재산 신고시에 억대 차명예금을 누락한 것도 드러났다. 이에 따라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당선무효에 해당되는 150만원의 벌금형이 확정되면서 결국 2009년 10월 29일, 재선된지 1년 3개월 만에 교육감직을 상실했다. # (서울중앙지방법원 2009고합29, 서울고등법원 2009노682, 대법원 2009도5945)

이것도 모자라서 교육감 재직 시기에 승진과 보직 발령 등의 편의를 봐주겠다며 서울특별시교육청 간부들로부터 1억 4천 6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2011년 대법원에서 징역 4년, 벌금 1억원, 추징금 1억 4천 600만원이 확정되어 복역하고 2014년 만기 출소하였다.[15](서울서부지방법원 2010고합74, 서울고등법원 2010노1697, 대법원 2010도13766)

2021년 10월 27일 사망했다. 연합뉴스.

5. 여담

교육감은 정당 활동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정당 활동을 한 적이 없으나, 당시 여당이었던 한나라당의 물밑 지원을 받았다.

학부모들의 반감이 얼마나 심했는지 2010년 진보 성향의 곽노현당선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을 정도이다.

6.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8 2008년 서울교육감 선거

[[무소속(정치)|
무소속
]]
499,254 (40.1%) 당선(1위) 당선 무효[16]


[1] 분당구에 있는 갈보리교회의 장로이다. 해당 교회는 어느 교파에도 속하지 않은 초교파 성향의 교회이다.[2] 이문세의 장모인 육완순의 동생이다. 즉, 공정택은 이문세의 처이모부이다.관련 기사.[3] 산부인과 의사.[4] 남서울대학교 교직원.[5] 석사 학위 논문 : 商業高等學校 敎育課程의 社會的 適應度 分析 : 銀行 및 主要 企業體를 中心으로[6] 아마도 당시에 동대문구(동대문구 + 중랑구)와 성동구(성동구 + 광진구)를 관할하던 동부교육청에서 근무했을 것이다.[7] 출처[8] 출처[9] 교육위원의 임기는 4년을 넘지 않으니 재선했음을 알 수 있다.[10] 서울특별시 관내 초/중/고 학교운영위원회 위원들이 참여한 간접선거였다.[11]서울방송고등학교[12] 동호공고는 방송고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옆에 신설된 서울동호초등학교 때문에 운동장이 없다.[13] 전교조의 지원을 받았으며 38%를 득표해 간발의 차이로 낙선했다.[14] 당시 독립기관이었던 서울특별시교육위원회(심지어 보수 13, 진보 2로 보수일변도였음에도)조차도 반대했던 사안이었다. 그러나 공정택은 서울특별시교육위원회가 부결시켜도 나는 추진하겠다며 밀고 나갔고, 결국 이명박 정부의 비호 아래 관철시켰다.[15] 스스로를 리틀 이명박이라 부르며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음에도 이명박 정부 끝날 때까지, 그리고 이어진 보수 정권(박근혜 정부)에서도 만기 출소할 때까지 사면해주지 않았고, 이후로도 복권해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의 불법행위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 수 있다.[16] 2009년: 선거법위반(뇌물수수) 등으로 인한 교육감 직책 상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