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4-20 11:16:53

국해성

국해성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두산 베어스 우승 엠블럼 V5.svg파일:두산 베어스 우승 엠블럼 V6.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2016 2019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bordercolor=#002561> 파일:KBO 퓨처스리그 로고 가로형.svgKBO 퓨처스리그
북부리그 홈런왕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rowcolor=#002561> 1991년 1992년 1993년 1994년 1995년
김홍기
태평양 / 8개
길홍규
OB / 5개
김원근 외
4명(A)
5개
이전진 외
1명(B)
5개
이보형
OB / 8개
<rowcolor=#002561> 1996년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공의식
현대 / 14개
임노병
LG / 16개
안재만
LG / 12개
추성건
두산 / 12개
문희성
두산 / 14개
<rowcolor=#002561>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강병식
상무 / 9개
정원석
1명(C)
9개
장익현
상무 / 10개
김재구
상무 / 13개
최길성
LG / 13개
<rowcolor=#002561>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김상현
상무 / 23개
최형우
2명(D)
22개
박병호
1명(E)
24개
조영훈
경찰 / 24개
최주환
상무 / 24개
<rowcolor=#002561>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문선재
상무 / 21개
김회성
경찰 / 18개
최승준
LG / 19개
김사연
KT / 23개
한동민
상무 / 21개
<rowcolor=#002561>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이성곤
경찰 / 19개
윤대영
경찰 / 24개
이성규
경찰 / 31개
허정협
1명(F)
10개
이재원
LG / 13개
<rowcolor=#002561> 2021년 2022년 2023년 2024년 2025년
이재원
LG / 16개
김민혁
2명(G)
10개
홍성호
두산 / 15개
A: 김원근, 황대연(빙그레), 소상영(OB), 김성기(LG)
B: 이전진, 곽연수(OB)
C: 정원석(상무), 윤형국(SK)
D: 최형우, 곽용섭(경찰), 박석민(상무)
E: 박병호(상무), 조영훈(경찰)
F: 허정협(고양), 국해성(두산)
G: 김민혁, 홍성호(두산), 주성원(고양)
}}}}}}}}} ||


두산 베어스 등번호 90번
김현수
(2006)
국해성
(2008~2009)
이창석
(2010)
두산 베어스 등번호 33번
채상병
(2007~2009.7.15.)
<colbgcolor=#ed1c24><colcolor=#fff> 국해성
(2010~2015)
정진호
(2016)
두산 베어스 등번호 15번
오현택
(2013~2015)
국해성
(2016~2021)
박성재
(2022.5.18.~2022)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12번
김재유
(2020~2023.5.8.)
국해성
(2023.5.23.~2023)
정우준
(2024~)
}}} ||
파일:두산 국해성.jpg
국해성
鞠海成 | Kook Hae-Seong
출생 1989년 12월 8일 ([age(1989-12-08)]세)
전라북도 군산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군산중앙초 - 동인천중 - 인천고
신체 180cm, 95kg, B형
포지션 외야수[1], 1루수
투타 우투양타
프로 입단 2008년 신고선수 (두산)
소속팀 두산 베어스 (2008~2021)
성남 맥파이스 (2022~2023)[2]
롯데 자이언츠 (2023)
등장곡 Skrillex - 《Bangarang
응원가
[ 이전 응원가 보기 ]
두산 베어스 시절
멘델스존 - 《노래의 날개위에[가사][4]
본관 담양 국씨[5]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4. 여담5.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두산 베어스, 롯데 자이언츠 소속 외야수.

2. 선수 경력

통합 선수 경력 : 국해성/선수 경력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 2023년

3. 플레이 스타일

스위치 히터인지라 활용폭이 상당히 넓고, 거기에 장타 툴까지 겸비해서 빠른 발에 컨택트 능력이 좋은 좌타자 위주로 재편되고 있는 두산 외야진 사이에서[6] 확실한 차별점을 가졌던 선수이다. 무늬만 스위치 히터인 2018 시즌 흑역사 용병 지미 파레디스와는 다르게 양 타석에서 고르게 장타를 생산해낼 수 있는데, 이미 중학교 시절부터 양손으로 야구를 해왔던 국해성으로서 크게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다. 다만 2019 시즌엔 우타석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심하게 말하면 그냥 '서 있을 수 있는 정도'.[7] 그럼에도 스위치 히터를 고집하는 이유는 좌투수를 상대할 때 좌타석에 서면 공이 잘 보이지 않아서라고 한다. 또한 좌타 위주의 두산 타선에서 우타가 가능하다는 것은 꽤나 큰 장점으로 작용하기 때문. 다만 2020년에는 우타석에서의 생산력이 크게 개선된 모습을 보이며 진정한 스위치 히터로서의 모습을 다시 보이고 있다.

김재환과 유사한 타격폼을 가지고 있는데, 중심을 조금 더 스트라이크 존 쪽으로 잡고 간결한 레그킥을 한 뒤 타격한다. 다만 김재환과는 달리 게스히팅을 하지 않으면 깎여 맞는 스윙 궤적을 가지고 있어 밸런스가 흔들리면 타격 침체가 오래 가는 유형이다.[8] 거기에 아마추어 시절부터 고질적인 문제로 꼽혀왔던 극악의 변화구 대처 능력이 아쉽긴 하지만 나름대로 프로 입성 이후 많이 개선되고 있다. 타구의 질이 매우 좋고 선천적인 힘이 좋아 맞기만 하면 양질의 타구를 쏘아올릴 수 있는 타자.

애초에 타격능력 몰빵 유망주였기 때문에 타격 외의 분야에서는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발목 부상, 무릎 인대 손상 전력으로 인해 평범한 주력에 평범한 수준의 주루플레이를 선보이며, 수비범위가 매우 좁다. 다만 코너 외야는 그럭저럭 커버가 가능하고 타구 판단 능력 등은 부족한 경험으로 인해 조금 떨어지더라도 중학교 때까지 스위치 투수로 뛴 경력이 있어 보살은 꽤나 잡아내는 강견이다. 부상이 잦긴 했지만 어깨만큼은 튼튼한 듯.

또한 덩치와 파워에 어울리지 않게 잔부상이 많은 유리몸이다. 선수 경력 문서에 소개한 대로 팔꿈치 문제로 시카고 컵스와의 계약이 엎어진 뒤에도 국해성은 프로 선수 생활 내내 부상을 달고 살게 되는데, 입단하자마자 두번째 팔꿈치 수술, 2010년 발목 부상으로 인한 재활에 이어 3차 팔꿈치 수술 등 야수임에도 불구하고 투수의 메디컬 이력을 방불케 하는 수준의 부상을 당했다. 2018년 무릎 전방 십자인대 파열까지 잔부상도 아니고 정말로 야구선수로서 입을 수 있는 굵직굵직한 부상은 다 입어본, 상당히 안타까운 선수. 이 외에도 무릎 인대 손상, 손가락 골절 등의 부상 전력이 있다. 2020년 무릎 철심 제거 수술과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다. 선수의 SNS 계정에 올라온 사진을 보아 뼛조각이 상당히 컸던 모양.#

결국 이러한 아쉬운 모습들로 인해 두산에서 재능을 꽃피우지 못하고 팀을 떠나게 되었다. 유리몸만 아니었으면 웬만한 실력은 나왔을 것이기 때문에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래도 독립 리그를 거쳐 롯데로 입단하면서 프로 복귀에 성공함에 따라, 다치지 않고 제 컨디션을 꾸준히 유지한다면 다시 1군 무대를 밟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2023년 5월 24일 NC 다이노스전에서 6번 지명타자로 선발출전하며 1군 무대에 복귀했지 또 햄스트링 부상으로 일주일도 채 안되어 다시 말소되는 등 롯데에서도 잔부상으로 인해 1군에서 모습을 많이 보이지 못하며 10월 중순에 방출되고 말았다.

4. 여담

5. 관련 문서


[1] 좌익수, 우익수 모두 맡을 수 있다.[2] KBO 퓨처스리그 FA 미계약 시기[가사] 오! 두산의 국해성~ 오! 두산의 국해성~ 오! 두산의 국해성~ 오~오오오~ ×2[4] 무려 데뷔 11년만에 나온 응원가로, 응원할 때 풍선을 드는 것이 특징이었다.[5] 장성-선전공파 34세 호(鎬) 항렬이나 항렬자를 쓰지 않았다. 다만 아버지 국중련(鞠重鍊)은 33세 중(重) 항렬을 사용했다.[6] 김인태, 조수행, 정수빈, 안권수, 양찬열 등이다.[7] 좌타석에서 28타수 6안타, 우타석에서 7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8] 본인도 자신의 이런 특성을 아는지 타석에서 볼카운트에 따라 노림수를 많이 가져간다고 발언하기도 했다.[9] 복성 사공에 외자 이름 엽을 쓴다.[10] 1977년 청룡기 때 군산상업고등학교 야구부 소속 선수로 출전했었는데 이때 주장이 김성한이었다.[11] 국해성과 박종훈전라북도 군산시에서 같이 산 적이 있다. 군산 지역 초, 중학교 유망주들이 타 지역으로 진학하는 사례가 많다. 자세한 내용은 군산상일고등학교 야구부 문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