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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7 08:51:54

권혁조

파일:권철휘.jpg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창씨명 곤도 테츠로(權藤哲郞)
예명 권철휘(權哲輝)
자 / 호 호(豪) / 우암(宇庵)
본관 안동 권씨[1]
출생 1923년 6월 25일
경상북도 예천군 개포면 상동
(現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 상동리)[2]
사망 2002년 1월 14일[3] (향년 78세)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학력 배재중학교 (졸업)
주오대학 (학사)
가족 둘째사위 배우 임동진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4묘역-342호
상훈 건국포장

1. 개요2. 생애3. 여담4. 작품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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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기업인, 영화감독. 2007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권혁조는 1923년 6월 25일 경상북도 예천군 개포면 상동(현 예천군 예천읍 상동리)에서 아버지 권오환(權五煥, 1890 ~ 1949.10.30)과 어머니 개성 고씨(開城 高氏, 1891 ~ ?.5.18)[4] 사이에서 5남 1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상경하여 배재중학교에 입학하였으며, 재학 중에 항일운동에 참여하였다.

일본 주오대학에 재학 중이던 1944년 1월 20일 소위 학도 특별지원병 제도일본 제국 육군에 징집되어 대구 제24부대[5]에 배속되었다. 그후 그를 비롯한 한국인 학병들은 탄약고를 폭파하고, 무기를 탈취한 후 일본군을 몰살시킬 계획을 세웠다.

그는 당시 제1대대 제3중대에 편성된 문한우·김이현(金而鉉) 등의 한국인 학병 6명과 함께 8월 8일 집단 탈출에 성공한 후 팔공산에 입산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체포되었다. 그해 12월 그는 조선군사령부 군법회의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고쿠라(小倉)육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옥중에서 8.15 광복을 맞아 출옥하였다.

귀국 후에는 권철휘(權哲輝)라는 예명으로 영화계에 투신하여 23편의 작품에 참여했다. 1973년 이후에는 사실상 은퇴하고 자신의 호에서 이름을 딴 주식회사 우암식품을 설립하여 회장에 취임하였다.

2002년 1월 14일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별세하였다.

2007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그의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4묘역에 이장되었다.

3. 여담

해방 후에는 일본에서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하고, 1961년부터 1967년까지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단장을 역임하기도 했으며, 1967년 귀국하여 제8대 국회의원(민주공화당), 제9대 국회의원(유신정우회)를 지냈다.
권일은 생전에 동생 권혁조의 독립운동 경력을 논하면서, "아버지에게 있어서는, 나처럼 일본에 협력하는 입장에 있던 장남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동생 일로써 세상을 대하는 면목도 섰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7]

4. 작품 목록

《오부자》 - 각본, 제작
《마도의 향불》 - 제작
《웃어야할까 울어야할까》 - 제작
《한 많은 청춘》 - 제작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남자다》 - 감독
《죽자니 청춘 살자니 고생》 - 각본, 감독, 편집
《명동 44번지》 - 각본
《의형제》 - 각본
《피와 살》 - 각본
《무적자》 - 기획
《역전 중국집》 - 각본
《무번지》 - 각본
《역전부자》 - 각본, 감독
월하의 공동묘지[9] - 각본, 감독, 기획, 단역
《남》 - 각본, 감독, 기획
《오부자》 - 각본, 감독
《북경열차》 - 각본, 감독
《쌍태양》 - 각본, 감독
《여인 전장》 - 각본
《홍콩의 단장잡이》 - 각본
《과객》 - 각본, 감독
《힘》 - 각본, 감독
《넋》 - 각본, 감독


[1] 좌윤공파 미윤(美胤)계 36세 혁(赫) 기(奇) 경(景) 영(英) 항렬.[2] 안동 권씨 집성촌이다.[3] 대전현충원묘적부에는 1월 4일에 별세한 것으로 등재되어 있다.[4] 고맹훈(高孟勳)의 딸이다.[5] 보병 80연대. 지금의 대구광역시 남구 이천동 캠프 헨리 부지에 위치해 있었다.#[6] 초명 권혁주(權赫周). 창씨명 곤도 요시로(權藤嘉郞).[7] 김두식, 『법률가들 -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탄생』, 창비, 2018.11.20.[8] MBC 공채 탤런트 4기 출신이다.[9] 영화 속 박노식이 분한 '김한수'가 학생항일운동 사건에 연루되어 일본 경찰에 체포되는 설정은 권혁조 자신의 경험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