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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7 14:31:24

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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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개념3. 한국에서의 이자4. 한국의 주요 금리5. 이자의 역사6. 여담7. 관련 문서

1. 개요

/ Interest

다른 사람의 과 상품을 이용하는 대가로 주고받는 돈과 상품의 사용료. 시간을 돈으로 환산해 얻는 수익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중에 특히 화폐에 붙는 이자를 금리(金利, interest rate)라고 한다. 국가별 기준금리(영문 위키백과)

2. 개념

이자의 근거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예를 들어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매년 10%의 이자로 1억 원을 빌렸다고 가정하자. 채무자가 원금을 동시에 상환하지 않되 이자를 성실히 납부할 경우, 채권자는 채무자에게 매년 1억 원의 10%인 1000만 원을 받아야 한다.

이자는 대개의 경우 플러스이다. 이자가 마이너스로 바뀔 경우는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에다 이자까지 채무자에게 줘야하는 황당한 일이 전개된다. 따라서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마이너스 이자가 붙는다.
이자는 계산되는 방식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산술적으로, 즉 초기 원금에 대해서만 이자가 붙는 단리 이자이고, 둘째는 원금에 붙은 이자를 다시 원금에 포함시켜서, '이자의 이자'까지도 계산되는 복리 이자가 있다. 전자는 채권액이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고, 후자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된다.

3. 한국에서의 이자

일반적으로 예금이자는 제1금융권<제2금융권협동조합 순으로 높다. 특히 마이너일수록 이자가 높은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자에도 세금이 붙는다.[3]

과거 대한민국에서 이자율은 이자제한법에 의해 연 20~40%를 넘지 못하게 규제되어 오다가, IMF 사태 이후 긴축 정책을 위해 폐지되었었다. 외환 위기에서 회복한 2007년이자제한법이 부활하였고 2021년 7월 이후 연 20% 한도가 적용되고 있다. 한편 대부업체의 경우 대부업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약칭 대부업법에 적용을 받아 마찬가지로 2021년 7월 이후 현재 최대 연 20.0%로 제한되어 있다.[4] 시기별 최고이자율 변천 과정은 이자제한법 문서 참고.

한편 민법 제379조에 따르면 이자 있는 채권의 이율은 다른 법률의 규정이나 당사자의 약정이 없으면 연 5%의 민사법정이율이 적용되며, 제397조에 따라 금전채무불이행에 대한 손해배상액 산정 시에도 민사법정이율이 붙는다. 다만 상행위로 인한[5] 채권채무에 대해서는 상법 제54조에 따라 연 6%의 상사법정이율이 적용된다.

4. 한국의 주요 금리

5. 이자의 역사

이자의 역사는 보기보다 상당히 오래되었다. 4대 문명들 중 하나인 수메르 문명의 쐐기판에도 이미 이자의 개념이 드러나 있으며 그 후에 작성된 함무라비 법전에도 "상인이 곡물을 빌려줄 때 곡물 1구르(18000L)에 대해 60카(7200L)의 이자를 받는다. 은을 빌려줄 때에는 은 1세켈에 대해 1/6세켈의 이자를 받는다"라는 조항이 새겨져 있을 정도다. 곡식의 이자율(40%)과 은의 이자율(16%)이 크게 차이 나는데, 곡식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떨어지지만 은은 그렇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35.너희 동족 가운데 누가 옹색하게 되어, 너희에게 의탁해야 할 신세가 되거든, 너희는 그를 몸 붙여 사는 식객처럼 붙들어 주고 함께 데리고 살아라.
36.너희는 그에게서 세나 이자를 받지 못한다. 너희는 하느님 두려운 줄 알아 그런 동족을 함께 데리고 살아야 한다.
37.너희는 그에게 이잣돈도 놓지 못하고, 그에게 양식을 장리로 꾸어주지도 못한다.
레위기 25장 35~37절

성경에서는 토라의 세 번째 책인 레위기에서 형편적 어려운 동족을 도와줄 때 이자를 받지 말라는 구절을 통해 최초로 언급되는데 그 시절에도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일이 일반적인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유대인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이집트에서 400년 동안 살다 나온 자들임을 증언하는 것에 비추어 볼 때 이집트에서도 이자의 개념이 존재했음을 유추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정작 유대인들은 중세 이후 고리대금업에 주로 종사하여 세력을 키웠다.
고리대금업은 가장 미움을 받는다. 그것이 미움을 받는 데에는 마땅한 이유가 있다.(중략) 왜냐하면 화폐란 교환하기 위한 것으로서 사용되는 것이지 이자를 불리기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르키메데스. 출처: 『유대인 이야기』

고대 그리스에서도 이자는 좋게 취급하지 않았다. 플라톤의 경우 모든 만물에는 각자의 역할이 있고 그 역할에서 벗어났을 때 세상이 혼란한 것이라 주장했는데, 이때 돈은 상품의 교환 즉, 가치 척도의 역할이 있으니 그 역할에서 벗어난 행위 즉, 이자를 주고받는 행위는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플라톤은 이자를 받고 빌려주는 것을 단죄했을 뿐만 아니라, 꾸어준 사람은 원금의 상환도 거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자를 붙여서 돈을 빌려주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돈을 빌린 사람은 이자도 원금도 일절 갚지 않아도 됩니다.
-플라톤, 『법률』 742c, 김남두 등(정암학당) 역주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정의 이자와 상업적 이자를 대비하면서, 후자를 단죄했다.
저리(低利)로 이자 놀이를 하는 기술(obolostatikē)[6]은 가장 정당하게(eulogōtata) 미움을 받게 되는데, 그 획득(ktēsis)이 돈이 고안된 바로 그 목적으로부터가 아니라 돈 그 자체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돈은 교환을 위해서 생겨난 것이지만, 이자(tokos)는 돈 자체의 양을 증대시키기 때문이다. 바로 거기서[7] 그것이 그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부모와 닮은 것은 정확하게는 자손이고, 이자는 돈으로부터 돈으로서[8]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화를 획득하는 모든 방식 중에서, 이것은 실제로 가장 자연에 어긋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1258b, 김재홍(정암학당) 역주

로마 공화국에서 고리대금업은 공화정의 몰락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 복무 규정에 따라 집안의 가장이 해외 원정을 나서면 남은 가족들은 대금업자에게 돈을 빌릴 수밖에 없었고 가장이 전사하거나 약탈에 실패한 채로 귀국하면 엄청난 이자 때문에 농지를 헐값에 넘기고 자영농에서 소작농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이렇게 양산된 무산층들은 원로원파를 적대하고 그와 대립하던 민중파였던 가이우스 마리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를 지지했는데 내전의 결과로 민중파가 승리함으로 결국 공화정이 해체되고 로마 제국이 성립되었다. 제정이 들어선 이후로도 높은 이자를 받는 대금업은 귀족과 민중 양쪽의 증오와 혐오의 대상이었고 국가의 강력한 통제를 받으면서도 여전히 로마의 사업 중 하나로 존재했다.

중세 그리스도교 역시도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성경, 랍비, 교부들의 일치된 견해에 따라 상업적 대부업을 금기시했다. 유대인들이 고리대금업으로 돈을 벌 수 있었던 것도 기독교인들이 이런 이유로 고리대금업을 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9][10] 죄를 뉘우치지 못한 고리대금업자는 땅에 묻히는 것조차 거부당했을 정도. 중세에는 땅에 묻히는 것이 거부되는 자들이 창녀, 범죄자 등이었는데, 이런 이들의 시체는 주로 도축이나 가죽 세공 후 후 남은 동물 시체의 찌꺼기를 버리는 곳에 버렸다.

그러나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이탈리아의 상업 도시를 중심으로 대부업이 발달하기 시작했고,[11] 14세기 르네상스 시기에 들어서며 페루치가가 예금을 받고 대출해 주는 업무를 개시하며 현대적인 은행이 탄생했는데 어음을 통해 이자를 받지는 않지만 이자를 받고 대출해 주는 방식과 유사하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17세기 금융 개인 기관이 발달하기 시작하며 이자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사라졌다.

단, 이쪽 출신이라 해서 무조건 이자를 긍정적으로 본건 아니어서, 피렌체 출신인 단테신곡에서 고리대금업자가 깊은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묘사하기도 하였다. 이건 이자 자체를 부정했다기보단 고리대금업의 횡포를 비판한 것이지만...[12] 법적인 제약이 있는 21세기에도 사채업과 관련된 사회적 문제가 벌어지고 있는데, 그런 제약조차 없던 시대라면 오죽했겠는가. 베니스의 상인만 하더라도 결국에는 이교도인 샤일록을 당시 최고의 권위였던 종교의 권위를 빌려 겨우 막아낸 것이니...

한국에도 이자 개념이 있는데, 국사 시간에 배우는 환곡 제도에 이자가 언급된다. 궁휼기에 곡식을 풀어 수확기 때 이자와 함께 거두는 것. 당대 기준으로는 저리대출을 시행한것이지만, 조선 후기에 지방관청의 부세제도로 활용되면서 필요이상으로 이자를 높게 받아서 이른바 삼정의 문란이라 하여 사회문제로 지목받았다.

6. 여담

7. 관련 문서



[1] 예컨대 은행이 빌려주는 돈 중 평균적으로 약 10%가 떼어먹힌다면, 여기에 맞춰 상응하는 이자를 받지 않는 한 고객의 예금을 손실하게 될 것이다. 채무자가 파산면책 되어버리거나, 아예 잠적해 버리거나 죽고 나서 상속인들이 상속을 포기해 버리면 채권자는 영원히 돈을 떼어먹히게 된다. 아무리 소송을 걸어도 법원이 없는 돈을 만들어내 줄 수는 없다. 그리고 미래에 누가 돈을 떼어먹게 될지는 결코 확정적으로 알 수 없다. 1997년 전에 대우가 망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래서 신용이 낮은 사람(서브프라임 (Subprime))에게는 돈을 떼어먹힐 확률이 높기 때문에 은행은 아예 대출을 거부하거나, 대출을 해주더라도 높은 금리로 돈을 빌려주는 것이며 대출 한도 또한 매우 낮다. 반대로 신용이 높은 사람에게는 돈을 떼어먹힐 확률이 극히 낮으므로 저이율을 산정하며, 또한 고신용자에게는 더 많은 돈을 빌려주어도 충분히 갚을 능력이 되기 때문에 원금의 액수를 높여 같은 이율로도 더 많은 이자수익을 내기 위해 대출 한도까지 증가하는 것이다.[2] 대한민국, 일본 등의 동양권 국가에서 영업하는 대부분의 금융 기관들은 예금에다 일정한 이자를 지급하여 준다. 그러나, 미국, 스위스 등의 서양권 국가에서 영업하는 상당 부분의 금융 기관들은 여전히 예금에다 이자는커녕 오히려 보관 수수료를 요구하는 곳이 있다고 한다.[3] 금융소득이 2,000만 원을 초과하지 않을 때의 한정으로 15.4%의 이자소득세가 부과된다.[4] 20%도 절대 낮은 금리가 아니지만 이것도 예전에 비해 훨씬 낮아진 것인데, 최절정기였던 2002년 10월부터 2007년 10월까지의 이자율은 최대 연 66.0%라는 극악무도한 이자율이 적용됐다. 2005년 광고된 산와머니의 대출 광고인데, 당시 산와머니의 연 금리가 65.7%이었다...[5] 여기서의 '상행위'는 쌍방적 상행위와 일방적 상행위를 불문한다. 즉 거래 당사자 중 한쪽 입장에서만 상행위이고 나머지 한쪽 입장에서는 상행위가 아니어도 무방하다.[6] (번역자 주석) 흔히는 영어권에서 'usury'(고리대금업)로 번역한다. 당시 대부에 대한 이자율은 고리(高利)로부터 평균적 이자율, 저리 등이 있었다고 하는데, '고리대금업'은 정의롭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당연히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다. 뉴먼은 'the trade of a petty usurer'로 주석하고 있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가 고리뿐만 아니라 저리도 다 같이 비판하는 입장에 서 있다고 보아야 한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부끄러운 취득욕'(aischrokerdeia)을 언급하면서, 그 가운데 하나로 "적은 돈을 높은 이자로 빌려주는"(tokistai kata mikron epi pollō) 고리대금업자를 언급하고 있다(1121b34). 어쨌거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돈'으로 '돈'을 버는 것, 요즘식으로 말하자면 '금융업'을 무겁게 비판하는 입장에 서 있다. 나아가 오늘날에 유행하는 금융 자본주의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이윤 추구를 극대화하는 '신자유주의'에도 적대적인 입장을 취한다고 볼 수 있다.[7] (번역자 주석) 이자를 뜻하는 'tokos'는 사람이나 동물의 자손, 새끼를 의미한다. 플라톤 『국가』 507a 참조.[8] (번역자 주석) 요컨대 그 관계가 '부모-자식 관계'와 같다는 것이다.[9] 기독교인끼리는 이자를 주고받을 수 없었는데 유대인은 기독교인이 아니라 가능했다.[10]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한 판타지 소설인 늑대와 향신료에서도 "이자를 받는 것은 죄악"이라는 논리를 이용해 두 주인공이 사건을 해결하는 에피소드가 등장한다.[11] 이들은 벤치같이 생긴 의자에서 대부업을 했고 이 의자를 이탈리아어로 Banco라 했다. 이것이 유럽 언어에서의 은행(Bank, Banque 등)의 어원이다.[12] 상인 항목에도 알 수 있지만 법적인 규제가 제대로 되지 않은 사회에서 돈을 가진 자가 부릴 수 있는 횡포는 상상을 초월했기에 이런 반감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