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 및 천년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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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 기원전 100년~기원전 1년 |
단기 | 2234년~2333년 |
불기 | 445년~544년 |
황기 | 561년~660년 |
간지 | 경진년~경신년 |
히브리력 | 3661년 ~ 3761년 |
전한 | 천한 원년~원수 2년 |
고구려 | X~유리명왕 19년 |
백제 | X~온조왕 18년 |
신라 | X~혁거세 거서간 57년 |
인류세력 | 9901년~1000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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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원전 1세기는 기원전 100년부터 기원전 1년까지의 기간이다.2. 연표
- 기원전 100년 - 로마의 호민관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 사투르니누스가 급진적인 법안을 제출하였고, 5일 이내에 원로원 의원들이 이 법안을 인정하는 선서를 해야 한다는 강압적인 조항을 신설하자 로마 원로원은 크게 반발하였다.
- 기원전 99년 - 이릉이 흉노와의 전투에서 패배한다. 사마천은 그를 변호하다 궁형을 당한다. 전한으로 귀화한 조선인 삼이 조선포로를 구출하다 들켜 사형을 당했다.
- 기원전 98년 - 스진 덴노가 일본 10대 덴노가 되었다. 전한에서 술의 전매제가 시행되었다.
- 기원전 96년 - 셀레우코스 6세 에피파네스가 셀레우코스 제국의 왕이 되었다.
- 기원전 95년 - 티그라네스 2세가 아르메니아 왕국의 왕이 되었다.
- 기원전 94년 - 니코메데스 4세가 비티니아의 왕이 되었다
- 기원전 93년 - 아르샤크 1세가 이베리아 왕국의 왕이 되었다.
- 기원전 92년 - 로마와 파르티아 간에 협정이 맺어졌다.
- 기원전 91년 - 고대 로마와 동맹시 연합 사이에서 동맹시 전쟁이 발발한다.
- 기원전 90년 - 전한에서 무고의 화 사건에 대한 조사 끝에 증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져 황태자 유거의 결백이 증명되었다. 무제 또한 태자의 거병이 강충의 핍박에 의한 것이었다고 스스로 인정했다. 거기에 전천추의 말을 듣고 감동한 무제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여 아들을 위한 궁궐의 건축을 명해 죽은 아들을 생각하는 궁이라는 뜻의 '사자궁(思子宮)'을 지어 명복을 빌었다. 그리고 강충의 삼족을 멸하고 강충의 일당들을 불태워 죽였다.
- 기원전 89년 - 로마가 폼페이를 합병하였다.
- 기원전 88년 - 동맹시 전쟁이 로마의 승리로 끝나면서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 전체의 동맹시 및 부족들에게 로마와 동일한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게 되었고, 완전한 반도 통일을 이루게 되었다. 또한 이 전쟁에서 상당한 활약을 한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는 로마의 집정관에 선출되었다.
- 기원전 87년 - 전한 제7대 황제 무제가 조서를 내려 자신의 아들인 유불릉을 태자로 삼고 곽광을 대사마와 대장군에, 김일제를 거기장군에, 상관걸을 좌장군으로 삼아 어린 유불릉을 보필하도록 지시하였다.
- 기원전 86년 - 카에로네아 근처에서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가 이끄는 로마군이 아르켈라오스의 폰토스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 기원전 85년 - 오르코메누스(Orchomenus)에서 로마의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가 미트리다테스 6세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 기원전 84년 - 한사군 중 진번군과 임둔군이 폐지되어 낙랑군에 흡수된다.
- 기원전 83년 -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가 그리스 원정을 끝내고 이탈리아에 상륙한 뒤, 그를 급습한 집정관 가이우스 노르바누스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 기원전 82년 - 진번군이 낙랑군에, 임둔군이 현도군에 병합되었다.
- 기원전 81년 -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가 종신 독재관이 되었다
- 기원전 80년 - 프톨레마이오스 12세가 이집트의 파라오가 되었다.
- 기원전 74년 - 전한의 곽광이 창읍왕 유하를 폐위시킨다.
- 기원전 73년 - 로마의 검투사 스파르타쿠스가 반란을 일으킨다.
- 기원전 69년 - 4월 15일, 혁거세가 탄생한다.
- 기원전 63년 - 셀레우코스 제국이 로마의 장군 폼페이우스에게 멸망하고 로마의 시리아 속주로 편입된다.
- 기원전 60년 - 로마에서 제1차 삼두정치가 시작된다.
- 기원전 59년 - 율리우스 카이사르,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에 의해서 제1차 삼두정치 체제가 성립되었다
- 기원전 58년 - 부여에서 주몽이 출생한다.
- 기원전 57년 - 6개 부족의 연맹체인 신라가 건국되고, 박혁거세가 거서간으로 추대된다.[1]
- 기원전 56년 - 고대 로마의 정치가, 군인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가 사망했다.
- 기원전 55년 - 국민들의 불만으로 인해 파라오 자리에서 물러나 로마에 망명했던 프톨레마이오스 12세가 로마 장군 폼페이우스의 지원을 받아 이집트로 돌아온 뒤, 딸인 파라오 베레니케 4세를 처형한 뒤 복위하였다.
- 기원전 54년 - 갈리아 지방에서 에부로네스족의 족장인 암비오릭스가 로마를 상대로 한 반란을 일으켰으며, 로마군 지휘관인 퀸투스 티투리우스 사비누스, 루키우스 아우룬쿨레이우스 코타의 군대를 거의 전멸시켰다.
- 기원전 53년 - 카르헤 전투에서 파르티아가 로마에 승리. 로마는 제1차 삼두정치가 붕괴하고 확장 정책에도 제동이 걸린다.
- 기원전 52년 - 알레시아 전투 -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이끄는 로마군이 베르킨게토릭스를 중심으로 하는 갈리아 연합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이 전투에서 승리한 카이사르는 갈리아 전체를 로마의 영토에 편입시키는 데 성공하게 되었으며, 로마가 멸망하기까지 갈리아족의 대규모 항전은 다시는 일어나지않았다.
- 기원전 51년 - 클레오파트라와 그녀의 남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가 이집트의 공동 통치자가 되었다.
- 기원전 50년 - 신라 남해 차차웅 탄생.
- 기원전 49년 -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 장군이 루비콘 강을 건너며 카이사르의 내전이 시작된다.
- 기원전 48년 - 카이사르가 파르살루스 전투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 기원전 44년 - 3월 15일, 프린켑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다.
- 기원전 43년 - 로마에서 제2차 삼두정치가 시작된다.
- 기원전 42년 - 필리피 전투: 필리피에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의 군대가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암살한 마르쿠스 브루투스,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이 전투에서 패배한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는 둘 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기원전 41년 - 신라의 혁거세 거서간이 왕비 알영과 함께 6부를 순행하면서 신라 백성들에게 농사와 누에치기를 장려하였다.
- 기원전 40년 - 파르티아의 왕자 파코로스 1세와 로마에서 망명해 온 퀸투스 라비에누스의 군대가 유프라테스 강을 넘어 페니키아 지방, 안티오크, 예루살렘을 점령하였다. 그리고 하스몬 왕조의 안티고노스가 파르티아의 권세를 등에 업고 유대의 왕이 되고 그와 대립하던 헤롯은 로마로 도망쳤다.
- 기원전 39년 - 아우구스투스의 딸, 율리아 아우구스투스가 태어났다.
- 기원전 38년 - 시리아 지방에서 로마군이 파르티아의 왕자인 파코로스 1세가 이끄는 파르티아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파코로스 1세는 이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 기원전 37년 -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한다.[2]
- 기원전 36년 -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파르티아에 대한 대규모의 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프라스파(현재의 이란 마라게)를 공격하던 도중 포기하고 회군하였다.
- 기원전 35년 - 섹스투스 폼페이우스가 동방으로 도주하던 도중 소아시아 지방의 밀레투스에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부하에게 붙잡혀 살해당하였다.
- 기원전 33년 - 「흉노전」에 따르면 이 해에 흉노의 호한야 선우가 전한에 입조하여 전한의 사위가 되어 친분을 쌓는 것을 원해 황제 원제가 왕소군을 호한야에게 시집을 보냈다고 한다.
- 기원전 31년 -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7세의 연합함대에게 승리한다.
- 기원전 30년 -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멸망한다.
- 기원전 27년 - 아우구스투스 칭호를 받은 옥타비아누스가 제위에 오르고, 로마 제정이 시작된다.
- 기원전 18년 - 소서노의 아들 온조왕이 백제를 건국한다.
- 기원전 17년 - 게르만족 지도자 아르미니우스가 태어났다.
- 기원전 16년 - 로마 제국이 노리쿰 지방을 병합하였다.
- 기원전 15년 - 로마 장군 네로 클라우디우스 드루수스가 알프스 산맥을 대군을 이끌고 원활히 통행할 수 있도록 Via Claudia Augusta 도로를 건설하였다.
- 기원전 6년 - 이스라엘에서 예수가 출생한다.
- 기원전 3년 - 로마 제국의 황제 갈바, 로마 제국의 철학자, 정치가 세네카가 태어났다.
- 기원전 2년 - 파르티아의 왕 프라아테스 4세가 무사에게 살해당하고 무사의 아들인 프라아테스 5세가 파르티아의 왕이 되었다.
- 기원전 1년 - 평제가 전한 제14대 황제가 되었다.
3. 주요 사건
3.1. 아시아
동아시아의 대륙에 자리잡은 한나라는 한무제의 통치 하에 크게 발전한다. 동아시아 최초의 기전체 역사서인 사마천의 사기는 이 시기(대략 기원전 91년)에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하 곽광이 국정을 농단하고, 후반에는 왕망이 권력을 잡는 등 멸망의 위기를 겪는다.한국은 한나라의 혼란기에 한반도에서는 철기를 바탕으로 한 국가들이 하나둘 성장한다. 대부분 성읍국가의 행태를 띄었고, 성읍국가에 발전하여 신라, 고구려, 백제, 가야국과 같이 군주제 국가가로 발전/성장하게된다.
남아시아 데칸 고원의 안드라 왕조는 유럽의 로마, 동남아시아 등과 교역한다. 안드라 왕조와의 교역으로 상좌부 불교와 브라만교가 동남아시아에 전파된다.
3.2. 유럽
기원전 2세기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군사적으로는 지중해 패권을 장악한 로마의 시대, 문화적으로는 헬레니즘의 시대였다. 이러한 추세는 기독교 문화가 헬레니즘 문화를 밀어내는 4세기 초까지 지속된다.이 시기 로마의 정치사는 공화정의 위기-삼두정치-제정의 출현까지 이어진다.
로마에서는 노예 반란이 일어나는 등 공화정의 붕괴가 계속된다. 동맹시 전쟁과 같은 내전을 자주 겪었다.
원로원은 평민파의 권력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에게 종신독재관의 자리를 부여해 마리우스의 평민파들을 대거 숙청했다. 술라 또한 원로원을 등에 업었던만큼 종신독재관 자리를 마음대로 누릴 수는 없었고 결국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빈 자리를 폼페이우스가 채우고, 평민파 중 살아남았던 카이사르가 나타났으나, 폼페이우스는 재정을 함부로 사용할 수 없었으며 카이사르는 재정이 상당히 쪼들렸던지라 재정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크라수스가 나타나 삼두정치의 시대로 넘어간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라는 영웅의 등장은 로마를 사실상 제정으로 만들었고, 그의 사후 레피두스, 안토니우스, 옥타비아누스가 제2차 삼두정치를 벌였다.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는 내전을 벌였으며, 악티움 해전에서 승리한 옥타비아누스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끝장내면서 정치적 의미의 헬레니즘 시대는 종료되었다.
옥타비아누스는 원로원으로부터 존엄한 자 '아우구스투스'의 칭호를 받아 신격화되었고,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절대권력자가 되었다. 공화정의 제도는 유지되었고, 아우구스투스 스스로 황제를 칭한 적은 없으나, 그가 자칭한 원로원의 1인자 '프린켑스'를 비롯해 많은 권좌를 독식하면서, 사실상의 제정이 수립된 것과 마찬가지였기에, 기원전 27년부터를 제정 즉 로마 제국이라 칭한다.
유럽과 서아시아. 아프리카에 걸친 알렉산드로스 제국의 마지막 남은 헬레니즘 제국이였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멸망으로 헬레니즘 시대가 '정치적으로는' 기원전 30년에 종결되었다. 그러나 헬레니즘의 문화적 의미는 로마 제국의 동쪽 영역에서 끝까지 살아남았다. 신약성서가 코이네 그리스어로 쓰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후 4세기에 동로마 제국이 형성될 때도 헬레니즘 문화는 큰 영향을 행사했고, 기독교 문화와 융합하면서 비잔틴 미술과 같은 독창적인 양식을 낳는다.
4. 사망
니계상 삼 (? ~ 기원전 99년)동방삭 (기원전 154년 ~ 기원전 93년)
전한의 7대 황제 한무제 (기원전 157년 ~ 기원전 87년)
전한의 8대 황제 한소제 (기원전 94년 ~ 기원전 74년)
전한의 9대 황제 한폐제 (기원전 92년 ~ 기원전 59년)
5. 탄생
- 신라의 1대 거서간 혁거세 거서간 (BC 69 ~ AD 4)
- 신라의 2대 차차웅[혹은] 남해 차차웅 (BC50 ~ AD 24)
- 고구려의 1대 왕 고주몽 (BC 37 ~ AD 29)
- 백제의 1대 어라하 부여온조 (BC 18 ~ AD 28)
- 예수 (BC 6 ~ AD 28)
6.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
7. 기원전 1세기 범위
- 기원전 100년 - 기원전 99년 - 기원전 98년 - 기원전 97년 - 기원전 96년 - 기원전 95년 - 기원전 94년 - 기원전 93년 - 기원전 92년 - 기원전 91년
- 기원전 90년 - 기원전 89년 - 기원전 88년 - 기원전 87년 - 기원전 86년 - 기원전 85년 - 기원전 84년 - 기원전 83년 - 기원전 82년 - 기원전 81년
- 기원전 80년 - 기원전 79년 - 기원전 78년 - 기원전 77년 - 기원전 76년 - 기원전 75년 - 기원전 74년 - 기원전 73년 - 기원전 72년 - 기원전 71년
- 기원전 70년 - 기원전 69년 - 기원전 68년 - 기원전 67년 - 기원전 66년 - 기원전 65년 - 기원전 64년 - 기원전 63년 - 기원전 62년 - 기원전 61년
- 기원전 60년 - 기원전 59년 - 기원전 58년 - 기원전 57년 - 기원전 56년 - 기원전 55년 - 기원전 54년 - 기원전 53년 - 기원전 52년 - 기원전 51년
- 기원전 50년 - 기원전 49년 -기원전 48년 - 기원전 47년 - 기원전 46년 - 기원전 45년 - 기원전 44년 - 기원전 43년 - 기원전 42년 - 기원전 41년
- 기원전 40년 - 기원전 39년 - 기원전 38년 - 기원전 37년 - 기원전 36년 - 기원전 35년 - 기원전 34년 - 기원전 33년 - 기원전 32년 - 기원전 31년
- 기원전 30년 - 기원전 29년 - 기원전 28년 - 기원전 27년 - 기원전 26년 - 기원전 25년 - 기원전 24년 - 기원전 23년 - 기원전 22년 - 기원전 21년
- 기원전 20년 - 기원전 19년 - 기원전 18년 - 기원전 17년 - 기원전 16년 - 기원전 15년 - 기원전 14년 - 기원전 13년 - 기원전 12년 - 기원전 11년
- 기원전 10년 - 기원전 9년 - 기원전 8년 - 기원전 7년 - 기원전 6년 - 기원전 5년 - 기원전 4년 - 기원전 3년 - 기원전 2년 - 기원전 1년[4]
[1]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의 건국을 기원전 57년으로 전하고 있으며, 삼국유사 역시 동일한 사실을 전하고 있다. 다만 삼국유사에는 이 외에도 건호 원년(기원후 25년), 건원 3년(기원전 138년) 등의 연호도 같이 전하고 있다.[2] 기원전 58년설, 기원전 3세기설도 있다.[혹은] 거서간[4] 기원전 1년 12월 31일후에는 0년이 아닌 기원후 1년 1월 1일이다.